본문 바로가기
◑ 자료 18,185편 ◑/자료 16,731편

우리는 행복합니다(신 33:1-6, 29)/ 박조준 목사

by 【고동엽】 2021. 12. 27.
우리는 행복합니다.
신명기 33:1~6,29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이스라엘 민족의 위대한 영도자 모세가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을 느끼면서 그의 백성을 위해서 축복해 주신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능력을 주셔서 애굽에서 종살이 함 살던 이스라엘 민족을 바로 왕의 지배에서 벗어나 약속의 땅을 향하여 나아가게 된 것입니다.


애굽을 떠나자마자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된 것이 아닙니다.


40년간이란 긴 세월을 광야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모세의 관심은 하루도 그칠 날이 없었습니다. 더구나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에게 많은 부담을 주었습니다. 배가 고프다고 불평을 했습니다. 목이 마르다고 야단했습니다. 고기생각이 나서 못살겠다고 하면서 차라리 종살이하면서도 애굽에서 고기 먹던 생각이 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저들에게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보내서 배부르게 먹게 했습니다. 반석에서 샘물이 솟아나서 마시게 했습니다. 메추라기 떼를 보내 주셔서 마음껏 고기를 먹게 했습니다. 그래도 그들에게는 만족이 없었습니다.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뜨거운 태양열을 막아 주셨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사막의 찬 공기를 덥혀 주셨습니다. 그러나 구름기둥 불기둥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가야 했기 때문에 장막을 치고 장막을 걷고 하는 일이 얼마나 번거러운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고 40년간 매일 이런 일을 반복하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들었겠습니까?


우리는 몇 년만에 한번 이사를 해도 힘이든데 이스라엘 민족은 거의 매일 이사를 해야 하는 불안정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애굽의 종살이를 벗어 날 때의 감격과 감사는 다 잊어버리게 되고 당장 불편한 생활 때문에 모세를 원망하고 시비하게 까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놀라운 인내와 온유의 자세로 그 백성을 대해 주었습니다.


한번은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위해 산에 올라가 40일을 지내는데 백성들은 모세의 형 아론을 찾아와서 '우리를 인도한 신을 만들어 달라'고 했습니다. 이때 아론은 '너희에게 있는 금부치를 가져와라'해서 가져왔더니 그것으로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이것이 너희를 인도한 신이다'고 말하니까 백성들은 거기서 술을 마시고 춤을 추고 난리가 났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보시던 하나님이 대노하셔서 모세더러 '내가 당장 이 백성을 멸해버리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모세가 뭐랬어요? 보통 사람 같으면 "하나님 뜻대로 하옵소서. 내가 저들의 위해서 바로의 공주의 아들의 지위도 포기하고 이렇게 희생해도 저들이 알지도 못하는 배은망덕한 백성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지요. 그런데 모세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겠습니까? 그러면 애굽사람들이 '여호와가 화를 내려 그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고 인도하여 냈다'하게 하려 하십니까?" 역시 모세는 위대한 지도자였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모세는 그가 누릴 수 있는 지극히 영광스러운 지위를 포기하고 그의 백성과 함께 고난의 길에 나선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그 은혜를 잊어버리는 행동을 했지만 어미가 그 자식을 사랑하듯이 그들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목이 곧고 완악한 그의 백성을 계속 가르치며 인도하고 지도했습니다. 모세의 마음속에는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나타나는 하나님의 영광 외에는 아무 다른 생각이 없었습니다.


이와 같은 모세가 세상을 떠날 날이 가까워 오는 것을 느끼게 될 때 자기 백성에 대한 관심이 더 컷을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모세에게 오직 하나의 희망이 있다면 그의 백성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것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혼자서 이렇게 중얼거렸을 넌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 저는 더 이상 거동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저에게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을 제가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정말 사랑하는 이 백성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땅에 들어가게만 된다면 저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모세의 깊은 눈에서 눈물이 핑 돌며 주름잡힌 그 얼굴로 흘러 내렸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모세는 그의 백성을 향하여 하나 하나 축복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의 위대한 입법자입니다.


이와 같은 모세가 이런 입장을 표현한다는 것은 매우 의미가 깊은 일입니다. 모세는 지나간 일들을 생각하면서 감격스러움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아, 너는 행복자로다"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 앞에서 이 말 외에 무슨 말을 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아마 모세의 눈에는 자기를 계대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지도하게 될 새로운 얼굴이 떠올랐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바로 젊은 종 여호수아였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은 새로운 지도자 여호수아의 지휘하에 요단강을 건너야 하고 여리고성을 점령해야 하는 전투가 남아있었습니다. 이들은 광야 생활하는 동안 아말렉과 싸웠고 비산록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경험도 갖고 있지만 대개의 경우는 평화롭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제 모두가 군인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세상을 떠나게 된 모세는 약속의 땅에 이르게 될 이스라엘 백성을 생각하면서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ㄴ를 돕는 뱅패시오,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고 말했습니다.


모세는 자기 백성의 어려운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이런 위안의 말을 했습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은 영적인 면에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 이스라엘인데 우리에게 이 말씀이 축복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워 주고 육신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 모두에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행복합니다.


왜 하나님의 백성이 행복합니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백성이기 때문에 모세 자신도 이를 생각할 때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비할 데 없는 은총을 받은 것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주신 말씀에 보면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고 말했습니다.


그 당시 애굽사람은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초대 강국의 사람들로서 교양을 갖추고 있었고 세상의 주변 사람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살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히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했습니다. 배운 것도 없었습니다. 교양미도 없었습니다. 가진 것도 없었습니다. 세련미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의 백성을 육신의 눈으로 본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특별히 택해서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하나님의 백성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라는 말하게 된것입니다.


사실 세상사람의 기준으로 볼 때 우리 그리스도인이 세상사람보다 나은 것이 없습니다. 우리보다 학식 많은 사람, 돈 많은 사람, 권력누리는 사람, 잘난 사람, 세련미 있는 사람이 세상에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함을 받은 백성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 신분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를 특별히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좋은 것으로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누가 행복합니까? 돈 많은 사람입니까? 권세 있는 사람입니까? 학식 많은 사람입니까? 참 행보한 사람은 사람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돈으로 이 행복을 살 수 있습니까? 권력으로 이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까? 학문으로 이 행복을 배울 수 있습니까? 우리는 돈으로 살수 없고 권력으로 누릴 수 없고, 학문으로 배울 수 없는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영적인 것이 물질적인 것보다 얼마나 더 귀하다는 것을 우리에게는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누가 가장 강한 자 입니까?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힘이 되시고 우리의 찬양과 분 깃과 영광의 대상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마음속에 있는 이 행복은 이 세상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죄사함 받은 사실을 알고, 구원받은 사실을 믿고, 영생 얻은 사실을 확인할 때 이 세상 어디에서도 맛 볼 수 없는 놀라운 행복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혜의 왕 솔로몬은 이 세상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것을 다 누려 본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의 결론은 무엇입니까? "헛되고 헛되면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고 했습니다.


인간 세계에서 소위 행운아라고 말하는 괴에테의 말을 들어 보셨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나를 행운아라고 합니다. 사실 외부적인 조건이나 환경으로 보아서 그렇지 않다고 말 할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더러 솔직히 말하라고 하면 나는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내가 행복하다고 생각해 본적은 하루도 없었습니다"


참된 행복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마음이 원하는 행복은 세상 적인데 절대로 있지 아니합니다. 행복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습니다. 먼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데 있습니다. 아무리 행복의 조건을 구비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마음속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면 그는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행복은 결국 마음의 문제입니다.


사람들에게 행복이 어디에 있느냐? 그 주소를 물어보면 그 대답은 십인십색이요 천차만별입니다. 어떤 이는 돈이 있어야 행복하다고 합니다. 어떤 이는 행복은 권력속에 있다고 합니다. 어떤 이는 참 행복은 쾌락 속에 있다고 합니다. 어떤 이는 행복은 예술 속에 있다고 하고 어떠이 는 사업 속에 있다고 합니다.


참 행복이 어디에 있습니까?


행복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인생이라는 주어진 소재를 가지고 창작해야 하는 작품입니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대리석을 가지고 행복이라는 작품을 조각해 가고 있습니다. 행복은 예술과 같습니다. 꼭 같은 재료를 가지고 걸작을 만드는 사람도 있고 졸작을 만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행복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이라는 재료를 가지고 행복이라는 걸작을 만드는 사람이 있고, 불행의 졸작을 만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소재는 같은데 왜 작품의 우열이 생깁니까? 왜 어떤 사람은 흐뭇한 행복의 집을 짓고, 어떤 이는 짜증나는 불행의 집을 짓습니까? 그것은 집을 짓는 사람의 정성과 노력문제입니다. 인생을 성실하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은 아름다운 행복의 집을 짓고, 불성실하게 되는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불생의 집을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술가가 훌륭한 작품을 만들기 위하여 피와 눈물의 정성을 쏟는 것처럼 우리는 행복이라는 작품을 만들기 위하여 우리의 지혜와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행복은 인생의 예술입니다. 우리는 인생의 재료를 가지고 행복이라는 작품을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이 세상 사람들이 볼 때 형편없이 보일러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왜요?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얻은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정리함이 없나니" 다시 말해서 우리는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았기 때문입니다. 사망의 권세 아래서 해방 받은 것 이상 행복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왕 바로의 속박 밑에서 구원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팔로 그들은 건져내신 것입니다. 우리도 사실 무서운 죄의 권세로부터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사탄이 우리를 지배할 수가 없고 묶어 놓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좇는 것뿐입니다. 우리는 악의 속박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은 멸망시키는 하나님의 사자에게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그 날밤 애굽에 다니며 애굽사람의 장자를 다 죽였지만 문설주에 피를 바른 이스라엘 사람의 장자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사람들보다 의로워서 구원한 것이 아닙니다. 문설주에 바른 양의 피를 보고 넘어간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리가 의로워서가 아닙니다. 어린양 예수그리스도의 피 때문에 구원받은 것입니다.


바로의 군대가 이스라엘 백성을 추적하고 이스라엘은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습니다. 그때도 이스라엘은 택한 백성이기 때문에 구원하고, 바로의 군대는 홍해가운데 수장시켜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자기 백성을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영적 이스라엘인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유혹의 강에서부터 이처럼 건져주셨습니다. 이 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 주변의 모든 죄악과 무서운 마귀의 추적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이스라엘이 광야 생활하게 될 때 물이 없어 목이 타서 고생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반석에서 물이 나게 하셔서 그들의 기갈을 면케 하시고 살려주셨습니다. 배가 고파 할 때는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그들을 먹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지쳤을 때 아말렉 사람들에게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때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편이 되어서 아말렉을 물리치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종 모세는 여호수아가 나가 싸울 때 뒤에서 그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 팔이 이스라엘의 완전한 승리를 거두기까지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구원이 어떤 것인가를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영적인 축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늘의 떡으로 양식을 삼고, 영원한 반석 되시는 그리스도로부터 흘러나오는 생수를 마시고 삽니다.


따라서 우리의 원수들이 사방에 많이 있는 것이 사실 지만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의 손안에 있는 그의 백성된 우리를 절대로 해할 수가 없습니다. 사자가 우리의 가는 길 양옆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사자는 쇠고랑에 묶여 있으므로 우리를 해 할 수 없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에 "여호와의 구원을 얻은 백성"이라고 했는데 여기에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에 의해서 구원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런 공로가 없습니다. 우리의 구원이 우리의 자유의지에 의해서 이루어 진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구원을 전혀 값없이 주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늘 드려도 아쉬운 것밖에 없습니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하나님은 우리를 선택하셨고, 그의 아들의 피고 값을 지불하시고 사셨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세상의 많은 사람 중에서도 우리를 특별히 안도하십니다.


왜 우리가 행복합니까?


하나님의 우리를 돕는 방패시요 영광의 칼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전투하는 백성이지만 행복한 백성입니다. 왜요? 하나님이 우리를 돕는 방패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해 할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어떤 경우이든 하나님은 그의 백성인 우리를 지켜 주시고 도와주십니다.


우리가 때로는 병에 걸려 눕지만 오히려 우리는 영혼의 건강을 누리게 됩니다. 사업의 실패로 많은 물질의 손해를 볼 때가 있지만 다른 면으로 보면 그로 인해 우리가 부하게 됨을 체험합니다. 때로는 원치 않는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우리 하나님의 은혜로운 보호로 인해서 우리의 성품은 더욱 밝아집니다. 어떤 때는 유혹의 곤경에 직면하지만 그러나 악한 경향이 우리의 영혼에 침투하지는 못합니다. 왜요? 하나님이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너의 영광의 칼이로다"고 말씀했습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신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에베소교회에 편지하면서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를 물리쳤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같은 무기는 없습니다. 이 칼을 차고 다니면 가는 곳마다 승리가 보장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행복합니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한다"고 했습니다. 승리의 확신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 37절에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힘이 없으나 주님으로 말미암아 대적 마귀가 우리에게 복종합니다. 감사하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행복하시기 원하십니까? 여러분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영접하세요. 그때에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할 수가 있고, 천국의 행복을 맛볼 수가 있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있는 사람의 마음은 행복합니다.


그리고 기쁨은 또 다른 결과를 가져다줍니다. 우리가 기쁠 때 다른 축복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사는 날 동안 인자와 긍휼을 베풀어주십니다. 지난날에 베풀어주신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새로운 어려움이 닥칠 때 능히 이것을 이길 수 있고 그런 상황 속에서도 또 다른 확신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매일 매일 새로운 마음으로 힘있게 살아 갈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믿는 사람이 행복해야 다른 사람을 주앞으로 인도 할 수가 있습니다.


만일에 우리의 신앙이 거짓이라면 이런 것을 다른 사람에게 소개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행복하지 못하면서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권할 수 있습니까? 있다면 그것은 비극입니다.


우리는 믿음에서 참 행복을 찾았습니다. 우리의 행복 여부는 하나님의 은혜에 달려 있기도 하지만 전적으로 우리의 신앙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사람은 공중의 새와 같이 행복해 질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행복에 대한 선택권을 쥐고 있고, 참되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에게 참 행복을 보여 줄 수기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여러분 모두가 행복해지기를 바랍니다.


아직도 주안에서 누리는 행복을 맛보지 못한 분이 계십니까? 주저하지 마시고 그 행복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영혼을 위하여 예비하신 안식처로 나아오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마음속에 평화가 강같이 흐르고, 기쁨이 샘처럼 솟아나게 되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 세상에 사는 사람 중에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행복과 같은 행복을 맛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의 것이 아무리 좋고 훌륭하다 도 우리 영혼의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이사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어찌하여 너희가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중 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가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여러분, 빈손 들고 주님께 나아와 영혼의 배부름을 얻고 참 행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