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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를 잊지 맙시다 (눅 17:11-21)/ 박조준 목사

by 【고동엽】 2021. 12. 27.

은혜를 잊지 맙시다

누가복음 17:11~21

 

 

 

 

 

오늘 읽은 말씀은 우리가 잘 아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 갈릴리와 사마리아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어느 시골 마을에 들리시게 되었습니다. 그 마을 어구에서 열 명의 나병환자를 만났습니다. 대부분이 유대 사람이고 그 가운데 사마리아 사람도 한 사람 섞여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유대 사람과 사마리아 사람 사이에는 감정이 좋지 않아서 보통 사람들은 서로가 교제하기를 꺼려했습니다. 그러나 여기 나병환자들은 다같이 불행한 처지에 있다 보니까 서로가 동정하면서 한 무리가 되어서 이리저리 쫓겨다니는 신세에 유대 사람 사마리아 사람 할 것 없이 같이 지냈던 것 같습니다.

 

이 사람들이 예수님이 지나가시는 것을 멀리서 보고 소리 질렀습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아마 이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원하시면 그들의 병을 고쳐 주실 수 있는 분으로 확실히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겨서 하신 말씀이 "가서 제사장들에게 네 몸을 보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옛날 나병환자들이 혹시 병이 낫게 되면 낫다고 하는 증명서를 제사장들에게 가서 받아야 다시 일반 사회 사람들과 자유롭게 교제할 수가 있었습니다. 물론 제사장들에게 가서 몸을 보이라고 한 그 말씀 가운데는 네 몸이 곧 나을 것이라고 하는 뜻이 내포된 줄로 생각합니다. 이 나병환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듣자 서슴지 아니하고 곧 그 자리에서 떠나서 예루살렘에 있는 제사장들에게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가는 도중에 그 추악한 나병이 온전히 나았습니다.

 

열 명의 나병환자가 다 나았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오직 한 사람만이 예수님의 은혜가 얼마나 감사한 것을 깨달아서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예수님께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송하며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리어 사례했습니다. 그 사람이 사마리아인이었습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사마리아 사람 한 사람 밖에는 하나님께 돌아와 영광을 돌리는 사람이 없느냐?"고 하셨습니다. 열 사람이 다 나음을 받았지마는 그 은혜를 깨닫고 돌아와서 감사를 드릴 사람은 오직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아홉 사람은 은혜를 받았지마는 그 은혜를 잊었습니다. 그러므로 감사를 드리지 아니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 마음 가운데 생각되는 것은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런 큰 은혜를 받은 사람이 또 그렇게 많은 사람이 은혜를 잊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좀 더 생각해 보면 그것이 우연한 것은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타락한 인간성의 일면이 아닌가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이 나병환자들은 말할 것 없거니와 우리도 여러 가지 병에 걸리게 될 때 이 병이 낫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 후에 우리의 병이 나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병이 나은 다음에 우리가 간절히 기도하면서 하나님 앞에 약속하고 하나님 앞에서 서원한 그대로 꼭 지키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것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고 바로 우리의 이야기 같습니다.

 

영국에 유명한 트렌취라는 감독이 있었는데 그분이 특별히 예수님의 행하신 이적에 대한 해석을 중심해서 유명한 책을 썼습니다. 이 분이 이적에 대해서 해석해 내려가다가 이런 구절을 썼습니다. 자기가 살펴보는 대로는 "모든 은혜 가운데 감사할 줄 아는 은혜는 제일 드문 은혜라"고 했습니다.

 

옛날부터 우리 동양에 내려오는 속담과도 비슷한 말입니다. '원수는 돌에 새기고 은혜는 문에 새긴다' 그러니까 은혜는 곧 잊어버린다는 말입니다. 언제나 국가에 대한 충신이 많지 않고, 가정에 효자가 드물고, 회사에 참된 일꾼이 적고, 교회에도 참된 신자가 적은 것은 이 진리를 우리에게 웅변으로 말하여 주는 것입니다.

 

은혜를 구하는 이는 많지마는 은혜를 받은 다음에 그것을 기억하는 이는 적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특별히 조심하고 힘쓰지 아니하면 우리도 그 무서운 나병의 고침을 받고도 잊어버린 아홉 사람과 같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스스로 자기 영혼을 깨우치며 하는 말이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혜를 잊지 말찌어다' 하며 자기 영혼을 스스로 깨우친 것입니다.

 

빌립보 3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좇아간다는 말을 했습니다. 사실 우리가 잊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과거의 실패도 잊어야 합니다. 슬픔도, 아픔도, 원한도 잊어야 합니다. 성공한 것도 잊어야합니다. 성공한 것 계속 기억하고 있으면 교만한 마음이 들어오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있습니다. 신명기 6장 12절에 '너는 조심하여 너를 애굽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잊지 말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섬기며 그 이름을 맹세 할 것이니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그의 계명을 그의 섭리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어디를 가든지 언제나 하나님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아브라함처럼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 제단을 쌓아야합니다. 요셉처럼 언제나 어디서나 하나님을 잊지 않아야 죄에 빠지지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잊어버림이 많습니다. 그런데 특별히 은혜를 입은 것을 잘 잊어 버립니다.

 

요셉이 누명을 쓰고 감옥에 있을 때입니다. 애굽 궁중에서 술 맡은 관원과 떡 맡은 관원이 어떤 협의를 받고 요셉이 있는 감방에 수감되었습니다. 얼마 후에 두 관원이 각각 꿈을 꾸었는데 그 뜻이 무엇인지 몰라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이라는 청년이 지혜가 많다는 말을 듣고 꿈 이야기를 했습니다. 술 맡은 관원이 "간밤에 꿈에 보니 좋은 포도나무가 있는데 가지가 셋이 있어요 그 세 가지에서 꽃이 피고 어느덧 열매가 맺었어요. 포도가 맺히자마자 잘 익었어요. 그래서 나는 그 포도를 따서 포도즙을 잘 만들어서 왕에게 다시 바쳤습니다. 그것이 무슨 뜻일까요?"

 

요셉이 이 꿈 이야기를 듣더니 꿈 해석을 잘 하는 사람이니까 "그 꿈은 대단히 좋은 꿈입니다. 세 가지는 사흘을 의미합니다. 사흘만에 당신이 협의를 벗고 이 감방에서 나가게 될 것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사흘 후에 감방 문이 열리고 술 맡았던 관원을 나오라고 했습니다. 그 때 요셉이 술 맡았던 관원에게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당신의 꿈을 잘 해석해서 석방되고, 또 우리가 그 동안 서로 가까이 지냈으니 당신이 나가서 왕 앞에 서게 되면 나를 잊지 말고 왕에게 말해서 내 이 억울한 사정을 좀 알려 주세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하고 철석같이 약속을 하고 헤어졌습니다.

 

그 후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술 맡았던 관원은 복직이 되었습니다. 왕 앞에 다시 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술 맡은 관원은 어떻게 했습니까? 창세기 40장 마지막 절을 보세요. "술 맡았던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치 아니하고 잊었더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 사람이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이것이 보통 우리 사람들이 하는 일입니다. 은혜를 받을 때는 감사한 것을 생각하는 것 같지만 얼마가지 아니해서 잊어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우리가 부모의 은혜도 스승의 은혜도 잊어버리고 친구의 은혜도 국가의 은혜도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은혜까지도 잊어버립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은혜가 크면 클수록 더 잘 잊어버립니다. 오늘 주신 말씀의 내용이 그렇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열 사람의 나병환자들을 똑같이 고쳐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한 사람만이 잊어버리지 않고 예수님을 찾아와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면서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은혜를 받고도 잊어버린 아홉 사람은 어디 사람이었어요? 유대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유대 사람과 사마리아 사람을 비교하면 어느 민족이 더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았습니까? 유대 사람은 아브라함 때부터 제일 많은 축복을 받은 민족이 아닙니까? 그런데 이 사람들이 주님의 은혜를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중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으신 분들이 특별히 정신차려야 합니다. 그래서 흔히 외아들이 부모의 은혜를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잣집 아들이 부모의 은혜를 모른다는 말도 있습니다. 성경에도 '네 배가 부를 때에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절기를 정해 주셨습니다. 유월절을 왜 정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속박에서 해방시켜 준 그 놀라운 은혜를 잊지 말라고, 장막절은 왜 매년 지키라고 했어요? 하나님께서 광야 생활에서 만나를 주시고 생수를 주신 은총을 잊지 말라고, 오순절을 왜 주셨어요? 하나님께서 해마다 밀과 보리, 오곡백과를 주신 것을 잊지 말라고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사야 선지를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내 백성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한다고 말씀했습니다. 은혜를 잊어버리기가 쉽습니다. 아마 은혜를 받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 으레 받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모양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많이 받을수록 은혜를 잊어버리기가 쉽습니다. 사실 이 아홉 사람은 은혜를 받았는데 보통 은혜를 많이 받은 것이 아닙니다. 이 사람들은 그야말로 큰 은혜를 받았지마는 그것까지 잊어버렸습니다. 나병환자가 나병이 나았다는 것은 생명을 도로 받은 것이나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 은혜를 잊어버렸습니다.

 

우리가 보통으로 생각할 때는 적은 은혜는 바로 잊어버리기 쉽지마는 큰 은혜를 받은 것이야 어떻게 잊어버릴 수가 있을까? 하는데 실제는 큰 은혜를 잊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에 잊어버리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방에 전기가 나가면 방안이 캄캄해집니다. 촛불 하나를 켜 놓아도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매일 아침 온 누리를 밝히는 햇빛을 주시는데 아침마다 밝은 햇빛을 보면서 하나님께 감사 드리는 분이 몇 분이나 되십니까?

 

지난주간에 저희 집에 귀한 손님이 한 분 오셨습니다. 이 분은 20여년 전에 제 아내와 알게 된 분인데 그 때에 시장 노점에서 명란젓을 팔고 계셨는데 명란젓을 사는데 부인들이 보통 하는 대로 물건값을 좀 깎았더니 파시는 분이 아주 난처한 표정으로 '그렇게는 어려운데요, 하지만 가져가세요' 하면서 주더랍니다. 받아 가지고 가면서 어딘지 마음에 걸려서 다시 돌아가 불렀던 가격대로 다 드리고 집에 왔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아주머니 뵙는데 미안스러워서 추운 날씨에 밖에서 수고하시는 것이 안쓰러워서 스웨터를 하나사서 드렸는데 그렇게 고마워 하시더래요. "지난주일 사모님을 한번 만나 뵙고 싶어서 사모님이 참석하시는 예배 시간을 알아 늘 않으시는 곳이 어딘지 까지 알아서 내내 앉아 기다려도 못 뵈었습니다."고 하면서 찾아 오셨습니다. 제 아내는 보통 2부 예배에 참석했는데 지난 주일에는 어떻게 1부와 3부에 참석하고 2부에는 제 사무실에서 손님을 만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자매님은 20여년 전에 제 아내가 사드린 스웨터가 하도 고마워서 이사를 할 때 다른 것은 다 버렸지만 제 아내가 사 준 스웨터는 보물처럼 간수하고 있다고 하면서 "그 스웨터를 입고와야 저를 알아볼 것 같아서 꼭 입고 다시 찾아뵐게요." 하더랍니다.

 

그러면서 제 아내 하는 말이 그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좋은 것으로 사드렸으면 좋았을 터인데 그 때 일을 잊지 말고 고마워하는 그 자매의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부끄럽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감사할 때 그 감사를 받는 사람의 마음은 감격스럽습니다. 은혜를 받은 것도 귀하지마는 받은 은혜를 잊지 않는 것은 더욱 귀합니다.

 

우리가 중한 병으로 호흡이 어려워졌을 때 어떤 분이 산소를 한 통 보내면서 그 호흡하는 것을 도와주었다면 아마 그 은혜를 오래오래 기억하며 감사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 지구에 넉넉한 공기를 주어서 불편 없이 호흡하면서 숨쉴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십니까? 은혜가 클수록 우리가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이것과 관련해서 또 한가지 사실을 생각해 보세요. 이 아홉 사람을 보면 멀리 예수님께서 가시는 것을 보고 소리질렀습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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