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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권능(마 18:15-20 ) / 이철신 목사

by 【고동엽】 2021. 12. 27.

교회의 권능

마태복음18:15-20

 

 

 

가. 교회의 특성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기관들이 있습니다. 그 기관들은 각각 자기 나름대로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병원은 환자의 병을 치료하고 생명을 살리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학교는 학문을 가르치고 인생을 함양시키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다양한 기관들 말고도 크고 작은 상점들도 각각의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식당은 배고픈 사람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여관은 여행을 하는 사람들에게 쉴 수 있는 잠자리를 제공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도 분명한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교회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이 지난 주에 우리가 살펴본 마태복음 16장 말씀과 오늘 본문인 마태복음 18장에 나타나 있습니다. 마태복음 16장 18절 말씀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에는 그 교회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고 또 어떤 권능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예수님 이름으로 모인 모임(20)

 

교회가 여러 가지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 첫번째 특성은 20절에 있는 말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 모임’이라는 특징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모였다’는 것은 교회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여러분, 교회는 예수 때문에 모인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므로 죄 사함 받고, 생명구원 받은 사람들이 모인 모임이 교회입니다. 예수님을 생명의 구주로,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사람들의 모임이 교회입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종으로 살기로 다짐한 사람들의 모임인 것입니다. 예수님만 내세우며 예수님의 이름에만 영화와 존귀를 돌려 드리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예수님을 선생님으로 모시고 우리는 제자로서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람들의 모임이 바로 교회입니다.

 

여러분, 세상에는 각종 다양한 모임들이 있습니다. 사회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모임이 있습니다. 인권을 신장하기 위한 모임이 있고 경제정의를 위해서 모인 모임이 있고 혹은 환경문제를 위해서 모인 모임도 있습니다. 사회봉사와 구제를 하기 위한 모임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그런 모임이 없습니다만, 미국에는 각 학교의 우등생만 모인 공부 잘하고 머리 좋은 사람들만 모이는 모임도 있더라구요. 오늘날에는 인터넷이 발달하여, 온라인 상에서 동호회를 만들어서 취향과 취미에 따라 다양한 모임을 가지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이 모임들은 모두 사람을 내세우는 모임입니다. 사람을 중심으로 한 모임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본질적으로 그 특성이 다른 모임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예수님 이름으로 모인 모임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교회에서도 사회사업을 위한 모임을 가질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사회정의를 위해서 여러 가지 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여러 가지 취미 모임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본질적으로 예수님 이름으로 모인 모임입니다. 만일 예수의 이름이 빠진다면 그것이 아무리 중요한 목적을 가졌고, 사회사업이나 구제, 사회정의와 같은 선하고 좋은 이름을 가진 모임일지라도 그것은 교회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2. 두 세 사람이 모인 모임 (19, 20)

 

교회의 특성 두 번째는 두 사람이나 세 사람, 적은 숫자가 모여서 모인 모임도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은 개인이고 두 사람이 모이면 그 때부터 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을 것입니다. 두 세 사람은 공동체가 형성되는 최소 인원인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남자 10명을 공동체를 형성하는 최소단위로 생각했습니다. 남자 10명이 모이면, 10세대이기 때문에 10가정이 모이면 숫자가 꽤 되겠지요. 그렇게 10명이 모이면 그때부터 회당을 짓고, 랍비를 초청해서 성경을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10명에서부터 숫자를 파격적으로 줄여서 두 세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이기만 하면, 그것은 교회 혹은 공동체라고 규정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 예수님의 숫자개념은 세상의 숫자개념과는 전혀 다른 숫자 개념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누가복음 15장 7절 말씀에는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흔 아홉 사람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산술적으로 하면 한 사람 보다는 아흔 아홉 사람이 훨씬 더 소중하지요. 그러나 우리 예수님께서는 아흔 아홉 사람이 물론 소중하지만, 잃어버렸던 한 사람,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는 것을 더 기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예수님께서는 산술적인 의미의 숫자보다는 질적인 변화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셨습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그 오병이어의 기적은 적은 숫자의 헌신이 얼마나 놀라운 능력을 나타내느냐 하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병이어는 한 사람이 먹을 만한 식사분량에 불구한데도 그것을 주님 앞에 헌신하니까 오천명이라는 많은 사람의 숫자가 먹고 그들이 배고픔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비록 적은 수임에도 헌신을 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엄청난 역사를 일으키시고,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수 있게 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숫자의 개념을 파기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본문 말씀에는 두 세 사람의 최소의 인원이라도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면 그것이 교회, 하나의 신앙공동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이느냐도 중요하지만 그것 보다는 어떤 사람이 모이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기도에 대해서 가르치시면서,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를 각각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눅18:9-14). 바리새인은 교만한 자세로 교만하게 기도했습니다. 그 반면에 세리는 겸손한 자세로 한쪽에서 가슴을 치면서 자신이 죄인 됨을 고백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은 세상에서 큰 자이고 세상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자이지만,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듣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는 세상에서 멸시와 천대를 받는 자이지만, 겸손하게 기도한 세리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들으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그 말씀을 하실 때는 세상에서 큰 자, 많은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겸손한가, 진실한가, 간절한가,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교회가 하나님 앞에 서는 교회로서 우리 교회 성도들이 모일 때에 겸손하고, 믿음 있는 분들, 진실한 분들이 모이는 모임이 되어야만 합니다.

 

 

 

3. 교회는 합심하는 사람들의 모임(19a)

 

세 번째 교회의 특성을 19절 상반절 말씀에는 “합심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모인 사람들은 합심해야만 된다고 말씀합니다. 합심이란 ‘조화와 일치를 이루어서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교회는 화목하게 된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하나님과 원수 되었다가 예수의 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사람과 사람간에 장벽이 있다가 예수님께서 피를 흘리시고 죽으심으로 인해서 그 담이 허물어 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사람이 화목하게 되고, 사람과 사람이 화목하게 되었습니다(엡 2:13-17). 그리고 우리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습니다(고후 5:18). 결국 교회는 성도들이 화목한 것이 본질적인 특성입니다.

 

물론 교회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교회에 모입니다. 우리 교회 교구가 19개 교구가 있는데, 목사님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획일적으로 규정짓기 어려울 정도로 교구마다 특성이 다 다릅니다. 얼마나 다양한지 모릅니다. 우리 성도님들의 삶의 방식과 사고방식이 다양합니다. 그런데 합심이라는 것이 이 모든 다양한 것들을 다 내버리고 획일화되고 규격화 되어서 하나가 되라는 말씀입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합심이라는 것은 각자 가지고 있는 다양한 개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살리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다양한 것들이 협력하고 조화를 이룸으로써 하나를 이루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 본당의 창문이 스테인드글라스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만든 작가의 말씀을 들어보니까 각각의 떨어져 있는 창들이 하나로 연결된 작품이라고 합니다. 주류색인 빨간색과 청색이 각 창마다 다 연결되어 있다고 합니다. 각각 색깔과 모양이 다르지만 이 다양한 것들이 모여서 협력하고 조화를 이룰 때에 더 아름다운 하나를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그렇습니다. 각각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지만 그 다양한 것들을 살려가면서 서로 조화를 이루고 협력할 때에 더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4. 교회는 기도하는 모임입니다(19)

 

교회의 특성 네 번째는 19절에 교회가 기도하는 모임인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9절 말씀을 보면, ‘합심해서 무엇이든지 구한다’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교회가 해야 할 많은 일들 중에서 가장 근본적인 일은 기도입니다. 기도를 조금 넓게 생각하면 예배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일보다 중요한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예배 드리고 기도 드리는 일은 교회가 해야 할 일 중에서 가장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일입니다. 예배와 기도를 소홀히 해서는 안됩니다. 예배를 소홀히 하면서 다른 봉사나 회의를 하는 것은 신앙성장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기도를 소홀히 하면서 선교사업, 봉사사업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제일 먼저 예배 드리고 기도하는 것이 기본이 되는 것이고 그것을 토대로 해서 기타 다른 다양한 봉사와 사업을 하는 것입니다.

 

제가 농촌의 미 자립교회에서 잠시 목회를 했는데, 그 교회에 가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그 지역에는 양계를 하는 분들이 많이 계셨습니다. 교인 중에도 양계를 하시는 분이 있었고, 목사님도 미 자립교회니까 생활이 어려워서 양계를 했습니다. 그런데 닭의 특성이 불을 몇 시간 켜 주는가에 따라 닭의 알 낳는 수명과 관계가 됩니다. 그래서 불을 많이 켜주면 12개월동안 알을 낳고 불을 짧은 시간 켜주면 13-14개월동안 알을 낳는다고 합니다. 이렇게 불을 켜주는 시간에 따라서 닭이 알을 낳는 수명이 달라집니다. 또 모이를 얼마나 정확히 주느냐도 아주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배가 11시에 모여서 12시에 마치게 되는데, 예배를 드리다가 예배가 조금 늦어져 12시가 넘어가게 되면 닭 모이 주는 시간에 맞춰서 목사님이나 교인 모두 닭 모이 주러 예배를 조퇴하고 집으로 간다고 합니다. 예배시간을 조퇴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 얘기입니까? 말도 되지 않는 얘기이지요. 여러분, 그러면 교회에 와서 여러 가지 봉사하고 회의하다가 예배시간 지각, 조퇴가 말이 됩니까?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니까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예배가 가장 기본적이고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예배가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다른 일들을 하기 위해서 예배를 지각하거나 조퇴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예배가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기본을 소홀히 하고 다른 것들을 한다는 것은 결국 모든 것들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는 예수의 이름으로 모여서 합심해서 기도하는 모임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영락교회는 예수만 내세우는 교회, 기도와 예배를 충실히 하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 교회의 권능.

 

1.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 (20b)

 

우리 하나님께서 이런 교회에 권능을 주셨습니다. 제일 첫번째는 20절 하반절 말씀에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말씀하십니다. 비록 소수이지만 예수님 이름으로 모인 교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가운데에 임재하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주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28장 20절 말씀에는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진 주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진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우리도 또한 그 놀라운 능력을 덧입게 되는 것이고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배드릴 때마다, 기도할 때마다 주님께서 함께 계시는 것을 느끼지 않습니까? 예배 드릴 때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함께 계시는 것을 우리가 느낄 때, 평안해 지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을 경험할 때, 강한 은혜와 권능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을 확신할 때 담대해지고 자신감이 생기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배를 드릴 때 마다 주님과 함께 계심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모여서 기도할 때마다 주님께서 우리 중에 임재하심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구역 모임, 가정 예배 때마다 주님께서 그 가운데에 임재하시고 함께 계심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병원에 심방 가서 환자와 기도할 때마다 그 자리에 주님이 함께 계심을 확신하십니다. 가난한 자, 외로운 자를 찾아 봉사할 때 그저 땀 흘려 일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그 자리에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비록 두 세 사람 소수가 모여도 예수의 이름으로 모이면 그곳에 우리 주님께서 함께 계시는 것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2. 기도 응답(19)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두 번째 권능은 기도 응답의 권능입니다. 소수의 사람이라도 땅에서 합심하여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성도들을 위하여 이루어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께서 두 세 사람, 비록 소수일지라도 합심하여 기도하면 그것을 무시하지 않고 존중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제가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이 있어서 도와달라고 요청하면 잘 들어 줄까요? 아마 편지를 해도 편지가 잘 전달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전화를 해서 대통령을 바꿔 달라고 하면 연결이 잘 안 될 겁니다. 그러나 대통령의 아들이 편지나 전화를 하면 어떻게 됩니까? 무슨 요청이든지 그 필요를 얻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성도들은 어떤 사람입니까? 예수를 주님으로 영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 교회는 어떤 모임입니까?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되시고 우리가 몸입니다. 하나님과 우리는 밀접하고도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는 밀접하고도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우리 교회가 하나님 앞에 간구하고 기도할 때 그 요청을 거절할 수 없는 관계를 우리가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이 합심해서 우리의 필요를 간구하고 요청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것을 이루어 주시게 됩니다.

 

여러분, 창조주 하나님께서, 온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그 분께 간구하기만 하면 기도응답을 해 주십니다. 얼마나 놀라운 권세와 능력입니까? 교회는 이런 권세와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3. 최종 결정권(18, 마16:19)

 

또 교회가 가지고 있는 권능 세 번째는 최종 결정권입니다. 18절 말씀에는,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하늘과 땅의 최종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지난 주에 우리가 함께 나누었던 마태복음 16장 19절 말씀에, 주님께서 내 교회를 반석 위에 세우시고, 교회에 천국 열쇠를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16:19). 천국열쇠, 하늘 창고를 열고 닫는 천국열쇠입니다. 천국의 모든 살림살이를 관장하는 열쇠를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치 임금의 위임을 받아서 왕궁의 모든 살림살이를 책임지는 고위 관료가 왕궁의 열쇠를 가지고 살림살이를 책임지는 것과 같습니다. 옛날에 결혼해 온 며느리가 오랜 세월 지나서 시어머니의 인정을 받으면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곳간 열쇠를 준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제는 안심하고 맡겨도 되겠다 생각하고 모든 책임과 권한을 위임해 주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며느리가 곳간 열쇠를 가지고 그 집안의 모든 살림살이는 관장하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교회에 이 권한을 위임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땅에서 결정하면 하늘에서도 결정이 되는 권능을 위임 받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에서 예수님을 주님으로 신앙고백하는 사람들에게 세례를 줍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줍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그 사람을 천국 백성으로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감히 사람들이 모여서 천국백성으로 인정할 수가 있겠습니까? 교회에 준 권능입니다. 교회가 그런 권세와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때로는 교회의 질서에 불순종하는 사람을 치리하기도 합니다. 이는 세상의 법에는 아무 효력이 없는 일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교회의 권능이 영적으로나 신앙적으로 그런 식으로 효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권능 앞에서 영적인 존재인 귀신도 무서워서 두려워하며 쫓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그런 권능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뜻에 맞게, 바르게 행사하기만 한다면 교회는 놀라운 권능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여서 기도하고 예배하는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이 교회에 우리 주님께서 함께 계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교회의 기도를 응답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늘의 권세와 능력이 교회에 위임되어 있습니다. 놀라운 권능을 교회가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교회가, 또 성도들이 이런 놀라운 권능을 위임 받았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이러한 권세와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에 힘쓰고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면서 이 세상 속에서 이 권능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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