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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있는 사람들(욜 2:21-32) / 박조준 목사

by 【고동엽】 2021. 12. 1.

꿈이 있는 사람들

요엘 2:21~32

 

 

 

이미 봉독한 말씀 중에 요엘서 2장28절 말씀을 다시 받들어 읽겠습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것이라"

 

여기서 말하는 꿈이나 이상의 의미는 같습니다. 표현만 다르게 한 것뿐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 가장 필요한 것은 꿈입니다. 이상입니다. 꿈이 없는 사람은 인생을 살아가는 맛이 없고 그 삶이 초라합니다. 사람은 꿈이 있어야 삶의 의미와 보람을 갖습니다. 잠언에 보면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지금 어디 있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느냐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꿈이 있어야 합니다.

 

1. 꿈이 있는 사람은 활력이 넘칩니다.

 

사람은 생기가 활발하고 원기가 왕성해야 합니다. 박력과 패기를 가지고 보람된 일에 정열을 쏟고 젊음을 바쳐야 합니다. 얼굴에는 생기가 넘치고 눈에는 정기가 빛나고, 걸음걸이는 발랄한 기상이 팽배하고, 생활에는 활기가 충만해야 합니다. 기력도 없고, 패기도 없고, 야망도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21세기 세계 속의 한국에 살고 있습니다. 오대주육대양이 한국인의 새로운 활동무대가 되었습니다. 현대는 실력 경쟁의 시대요, 능력 본위의 사회입니다. 우리에게는 활동력이 강하고 성취 욕이 왕성한 사람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일찍이 맹자 선생은 호언지기를 강조했습니다. 천지간에 충만해있는 늠름한 원기, 도의에 뿌리를 박고 있는 광명 정대한 기상, 하늘과 사람 앞에 부끄럽지 않은 올바른 마음, 넓고 크고 너그럽고 활달한 정신이 호연지기입니다.

 

현대 사회는 성취 사회요, 고도 산업사회입니다.

 

저마다 무엇인가 보람된 일을 하는 사회입니다. 일하는 재미에 살아가는 사람처럼 늠름한 사람은 없습니다. 너는 세상에서 무엇을 이루어 놓았느냐? 이것처럼 인생의 중요한 물음은 없습니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이루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아무런 보람있는 일을 남겨 놓지 못한 다는 것은 사람으로서 수치스런 일입니다. 사회에 도움을 주지 못하고 무위도식하는 것은 인간의 치욕이요, 허송세월은 사람으로서 부끄러운 일입니다.

 

사람이 일한다는 것은 사는 것입니다. 일이 없는 인생은 지옥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세상에 할 일이 없는 사람은 권태와 무기력과 허무감속에서 방황해야만 합니다.

 

사람은 자기의 일을 가질 때 행복합니다. 자기의 젊음을 불태우고, 자기의 개성을 발휘하고,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때 사람이 살아가는 기쁨이 있고 생활의 보람이 있습니다. 일은 생활의 수단만은 아닙니다. 직업은 생계 유지를 위한 경제적 방편만이 아닙니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보람있는 일을 하는 것이요 보람있는 일을 하는 것이 사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가장 무서운 적은 무기력과 무관심 그리고 무책임입니다. 우리는 기력이 왕성하게 살아야 합니다. 하는 일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맡은 일에 책임감이 투철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비겁한 것이 책임회피, 책임전가입니다. 이 나라에 필요한 사람은 범사에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적극적인 태도로 씩씩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2. 꿈이 잇는 사람은 앞을 향해 나아갑니다.

 

꿈이 있는 사람 바울의 말을 들어보세요.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아직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했습니다.

 

이 말은 바울이 젊은 아이에 한 말이 아입니다.

 

그는 나이도 들었습니다. 경험도 많았습니다. 사람 편에서 보면 인격도 원숙한 자리에 이르렀을 때였습니다. 그러나 자기 스스로 이제는 다 얻었고 온전히 이루었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평생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성공한 것도 잊어버렸습니다. 실패한 것도 잊어버렸습니다. 과거는 뒤에 두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생활을 했습니다. 거기에 성장과 발전 그리고 향상이 있었습니다.

 

꿈이 있는 사람은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노력합니다. 노력이 따르지 아니한 꿈은 공상에 그치고 맙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사회는 격변과 격동의 사회입니다.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른 사회입니다. 고도의 과학기술의 발전은 세계를 일일생활권으로 만들고 지구촌의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이런 때 우리가 배우지 않으면 격변하는 사회의 적응력을 상실하고 맙니다. 쉬지 않고 배우는 노력이 따르지 아니하면 사회의 낙오자가 되고, 변하는 사회 속에 설자리가 없어지고 말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쉬지 않고 배워야 합니다. 평생교육의 정신과 의지를 가지고 항상 공부해야 합니다. 대학을 졸업했다고 공부를 다 끝낸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생애는 죽는 날까지 배우고 공부하는 학생으로 살아야 합니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배우는 것입니다. 배움이 없는 인생은 무의미하고 무가치합니다. 이 사회의 변화의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학교에서 배운 지식은 10년도 못가서 쓸모가 없어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배우고 공부하는 사람만이 사회의 낙오자가 되지 아니하고 새로운 환경에 창조적인 적응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역사란 도전과 응전의 역학관계입니다. 내게 밀려오는 도전을 적극적으로 응전하면 승자가 될 것이고 소극적으로 응전하면 패자가 되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흘러가지 아니하고 고인 물은 썩기 쉽습니다. 사람의 재주도 마찬가지입니다. 쓰지 아니하고 내버려두면 녹이 쓸고 때가 낍니다. 구슬도 닦아야 빛이 납니다. 시인 괴테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가장 유능한 사람은 끊임없이 배우는 사람이다" 옳은 말입니다. 사람은 본성이 쉽고 편한 것을 찾습니다. 그러므로 그냥 내버려두면 게을러집니다. 뛰기보다는 걷는게 쉽습니다. 걷는 것보다는 서 있는게 편합니다. 서 있기보다는 앉아 있는 것이 쉽습니다. 안자있기보다는 누워있는게 편합니다. 누워 있는 것보다는 잠자는 게 좋습니다. 자는 것보다 아주 가면 더 좋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게을러지기 쉬운 자신에게 격려의 채찍을 항상 가해야 합니다. 사도바울도 디모데에게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금생과 내생에 복이 된다"고 했습니다. 연습은 같은 일의 반복입니다. 지루하고 귀찮은 일입니다. 그러나 연습을 통해서 향상하고 발전하게 됩니다.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위대한 잠재력과 놀라운 가능성이 있습니다. 여러분 안에는 위대한 천재가 잠자고 있습니다. 자기 편달로 여러분 안에 잠자고 있는 천재를 깨우시기 바랍니다. 교육이란 말을 영어로 Education 이라고 하는데 본래 라틴말 Educe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Educe란 '끌어낸다'는 뜻입니다. 우리 안에 위대한 재능이 잠자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잠자는 재능을 끌어내야 합니다. 자기의 재능을 끌어내어 발휘하는 것처럼 보람된 일은 없습니다.

 

사람은 배우고 공부하지 않으면 속물이 추물로 전락하고 맙니다. 끊임없이 배우고 공부하면 인간은 거물이 되고 인재가 되고 명인이 되고 비범한 인물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사람이 완전한 존재가 될 수는 없습니다. 완전하신 분은 하나님밖에 안 계십니다. 그러나 사람은 완전을 향하여 끊임없이 노력하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하나님의 온전하심같이 온전한 자리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배우고자하는 마음을 가지는 일입니다. 이런 사람은 모든 사람과 온갖 사물에서 항상 배우고 깨닫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은 그 인생이 향상하고, 생활이 발전하고 그의 인격은 전진합니다.

 

3. 꿈이 잇는 사람은 성실합니다.

 

사람의 덕중에 가장 귀한 덕은 성실입니다. 중국 송나라때 사마광(司馬光)이란 선생에게 유안세(劉安世)라는 제자가 있었습니다. 어느날 유안세는 선생님께 물었습니다. "선생님, 한문자에는 수만개가 있는데 그 중에서 우리에게 좌우명이 될 수 잇는 글자 하나를 골라 주시겠습니까? 그러면 우리가 항상 그 글자를 마음속에 간직하고 생활로 표현하고 행동으로 실천하겠습니다."

 

그때 사마광은 "나더러 한 글자만 고르라면 그 글자는 성(誠)이라 생각하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성이란 무슨 뜻입니까? 그 의미를 풀어 주십시오"하고 유안세는 스승에게 말했습니다. 사마광은 간결하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불망어(不妄語)" 다시 말하면 '거짓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성실은 거짓이 없는 것입니다. 성(誠)이란 말씀언변에 이를 성 한 것입니다. 인생을 허망하게 살지 않는 것이 성실입니다. 성실이 없으면 아무 일도 제대로 되는 것이 없습니다.

 

성실성이 없는 우정은 진정한 우정이 아닙니다.

 

성실성이 없는 사랑은 참 사람이 아닙니다.

 

성실성이 없는 인간관계는 참된 인간관계가 아닙니다.

 

성실성이 없는 대화는 진정한 대화가 아닙니다.

 

성실성이 없는 교육은 우리에게 깊은 감명을 주지 못합니다.

 

성실성이 없는 신앙은 진정한 신앙이 아닙니다.

 

성실과 성실이 서로 만날 때 신뢰가 있습니다. 안심이 있습니다. 행복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각기 다른 은사를 주셨습니다. 내가 받은 은사가 무엇이냐 하는 것은 내 책임이 아닙니다. 문제는 내가 받은 은사를 성실하게 활용해야 합니다.

 

거짓이 일시는 승리를 거둘 수 있을는지 모릅니다.

 

허위나 부조리가 잠깐동안의 효과가 있을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조만간 그것은 무너지고 맙니다. 비리와 역리는 반드시 붕괴하고야 밥니다.

 

인생의 승리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성실입니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하여 성실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 성실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성실해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 앞에나 사람 앞에 부끄러울 것이 없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은 큰일에도 성실합니다. 꿈이 있는 사람 요셉의 삶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성실이었습니다. 보디발 장군 집에서 노예로서 성실했더니 애굽의 총리로서도 성실했습니다.

 

4. 꿈이 있는 사람은 사명 따라 삽니다.

 

나에게 주어진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무엇을 위해 바칠 것이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내 사명이 무엇이고 내가 설자리가 어디냐? 내가 무슨 일에 정열을 쏟고 어떤 일에 내 젊음을 바칠 것이냐? 무엇을 위해 살고 무엇을 위해 죽을 것이냐? 어떻게 사는 것이 내게 있어서 가장 보람되게 사는 것일까? 이런 물음에 대한 대답을 우리는 인생관 또는 가치관이라고 합니다.

 

각 사람의 인생관에 따라서 그 사람의 생활태도가 달라집니다. 보람된 인생을 살려면 먼저 바른 인생관을 확립해야 합니다. 후회 없는 인생을 살려면 건전한 생활의 신조를 가져야 합니다. 의미 있는 삶을 살려면 내게 주어진 사명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주예수께로부터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한다"고 말했습니다.

 

사람이 사람인 것은 사명을 자각하고 사명을 위해 살고 사명을 위해 죽는 것입니다. 사명이란 말은 심부름 받은 생명이란 뜻입니다. 우리의 생명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무 목적 없이 아무 의미 없이 태어난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각자가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만 맡긴 직분이 있고, 사업이 있고, 역할이 있습니다. 그 직분과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는 것이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보람이요 의미인 것입니다. 자기의 사명이 무엇인지 깨닫고 자기 사명에 충실한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요 행복하고 만족한 사람입니다.

 

인생은 놀고 즐기는 향락의 놀이터가 아닙니다. 내 욕심이나 채우려는 소유의 싸움터가 아닙니다. 인생은 보람있는 일을 하는 창조의 일터요, 사명을 완수하기 위한 활동의 무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는 이것을 위해 살고 이것을 위해 죽겠다는 높은 이상과 확고부동한 인생의 목표를 세우세요. 사람은 자기의 사명을 자각할 때 생활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이런 사람은 성실해지고 부지런해지고 책임감이 강해집니다. 나의 생명이 나의 사명을 만날 때 내 인생에는 새로운 혁명이 생기고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새 사람이 됩니다. 새 인격이 됩니다. 그래서 새 생활이 전개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귀한 일을 한 사람들을 보세요. 모두가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고 산 사람들입니다. 서서의 철학자 칼 힐티는 "인간생애의 최고의 날은 자기의 사명을 자각하는 날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사명을 깨닫는 날부터 새 사람이 되고, 따라서 삶의 의미가 새로워지기 때문입니다.

 

아프리카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평생을 바친 데이빗 리빙스톤은 "사명을 가진 사람은 그것을 달성할 때까지는 결코 죽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사람은 사명을 자각할 때 신념이 생기고 힘이 솟구치고 용기와 열의가 솟아납니다. 우리의 인생을 반석처럼 튼튼하게 하고, 상록수처럼 싱싱하게 만들고 불사조처럼 강인하게 만드는 것이 사명감입니다.

 

미국의 J.F.케네디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역사가 우리에게 던지는 네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질문에 대하여 "예"라고 긍정적인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첫째, 당신은 용감했습니까?

 

둘째, 당신은 총명했습니까?

 

셋째, 당신은 성실했습니까?

 

넷째, 당신은 헌신했습니까?"

 

이것은 역사의 네 가지 질문입니다. 우리는 이 물음에 대하여 '예, 그렇습니다'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질문의 마지막이 헌신입니다. 헌신은 몸을 바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몸을 바칠 곳을 찾으세요. 나의 시간, 나의 정열, 나의 생명, 나의 노력, 나의 정성을 바칠곳을 찾을 때 우리의 생활이 충실해지고, 우리의 삶은 빛이 나고 의미를 갖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헌신의 대상을 찾지 못한 사람은 생활에 방황하고, 삶에 회의가 있고, 권태가 있고, 허무감에 빠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시간을 주셨습니다. 건강을 주셨습니다. 재물을 주셨습니다. 덕을 주셨습니다. 재능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것들을 가지고 귀한 작품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들을 가지고 보람된 인생을 창조해야 합니다.

 

우리는 인생을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사람은 자기가 심은 대로 거둡니다. 심지 않고 거둘 수는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결코 인생의 패배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역사의 낙제생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쉬지 않고 걷는 사람만이 높은 산의 정상에 도달할 수가 있습니다.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만이 승리의 영광을 차지 할 수가 있습니다. 사명감을 가지고 헌신하는 사람만이 인생의 대업을 성취할 수가 있습니다.

 

5. 꿈이 있는 사람은 주어진 시간을 창조적으로 활용합니다.

 

인생의 성패는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을 창조적으로 활용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공평한 것은 시간의 선물입니다. 누구에게나 하루 24시간의 시간이 균등하게 분배되어 있습니다. 시간은 돈으로 살수도 팔 수도 없습니다.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문자그대로 세월은 살과 같이 빠르게 지나갑니다. 청년이 언제나 청년으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은 곧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자기의 생명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지나가 버린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인생은 일생(一生)이요 일발통행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세월을 아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시간을 아낄 줄 아는 사람만이 인생의 대업을 달성할 수가 있고, 위대한 꿈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흔히 사람이 70년을 산다면 시간으로는 60만 시간입니다. 그 중에 3분의 1은 잠자는 시간이기 때문에 우리가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은 40만 시간밖에 안됩니다. 그 중에 20이 넘도록 공부하고 준비해야 하고 또 노년이 되면 쇠약해서 일할 수가 없으므로 그것을 제외하면 20만 시간 정도 됩니다.

 

이 20만 시간에 우리는 무엇인가 보람있는 일을 하고 창조의 업적을 쌓아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주어진 시간을 창조적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책을 읽는 시간은 우리의 시야를 넓혀 줍니다. 공부하는 시간은 우리의 능력을 배양시킵니다. 운동하는 시간은 우리의 체력을 강화시킵니다. 기도하는 시간은 우리의 심령을 심화시킵니다. 일하는 시간은 우리의 부를 창조합니다. 창작하는 시간은 우리의 이웃을 흐뭇하게 합니다. 사랑하는 시간은 우리의 인생을 행복하게 합니다. 봉사하는 시간은 이웃을 유익하게 그리고 하늘의 상을 쌓게 합니다.

 

우리 앞에는 누구나 인생이라는 대리석이 놓여 있습니다. 이것으로 걸작품을 만드느냐, 평범작을 만드느냐 아니면 실패작을 만드느냐 하는 것은 각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인생의 걸작품을 만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꿈이 있는 사람은 절망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절망적인 상황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꿈이 있는 사람은 그 꿈을 바라보기 때문에 절망적인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요셉은 꿈이 있었기 때문에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아니하고 다시 일어났습니다. 그가 나중에 그를 죽이려 했던 형들에게 한말은 놀랍습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우리도 요셉처럼 꿈을 가지고 살아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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