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충만한 교회> 행2:42-27
오늘 본문은 오순절날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초대교회의 생동하는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기록입니다. 본문이 전하는 초대교회는 어떤 교회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적어도 여덟 가지로 그 면모를 말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첫째, 초대교회는 배우기를 힘쓰는 교회였습니다. 본문 42절에 따르면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힘쓴 일 가운데 첫 번째 것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는 일이었습니다. 46절에도 그들이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그들이 주일에만 아니라 "날마다" 성전에 모였다는 것은 반드시 공적인 예배를 위해서라기보다 일차적으로 사도들로부터 말씀을 들으며 배우는 일에 열심이었음을 가리키는 것으로 짐작하게 합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됨으로써 그 동안 그들이 얼마나 잘못 믿어왔는가를 깨닫고는 열심히 그들의 신앙을 바로 잡으려고 사도들의 말씀에 귀기울이고 있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함은 언제나 이렇게 진리의 말씀을 배우기를 힘쓰며 진리를 깨닫고 삶을 그 진리대로 살려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둘째, 초대교회는 사랑의 교제를 나누기를 힘쓰는 교회였습니다. 본문 44-45절은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다"는 것은 성도들 사이에 신뢰와 사랑이 있었으며 그 신뢰와 사랑의 바탕 위에 뜨거운 교제가 있었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뢰와 사랑 위에서의 교제는 자연스럽게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는 일"을 가능하게 했던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한 사람들은 자기의 물질에 대한 소유의식이 적어지며, 그 대신 다른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법입니다. 행4:32-35에서는 그 사실을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요일3:17에서는 뭐라고 말합니까?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또 본문 46절은 뭐라고 말합니까? 그들이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다"고 합니다. 그들의 교제는 성전에 모여 말씀을 배우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고 가정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각 가정에서 번갈아 가며 모여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떡을 떼며 음식을 먹었습니다. 여기서 떡을 떼는 것은 42절에서의 떡을 떼는 것과는 달리 공식적 예배에서의 성찬식보다는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단순히 "떡을 뗀다"는 표현은 이 때의 식사가 요란하게 잘 차린 식사라기보다는 보통 때의 검소한 식사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서로 마음이 통하고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기뻐서 별 것 아닌 식탁이지만 함께 둘러앉기를 즐겼다는 것입니다. 또 그들은 이렇게 모여 함께 식사하는 일을 "순전한 마음으로" 했습니다. 즉 어떤 이해타산에 따라 남을 초대해서 대접한 것이 아니라 그저 좋아서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초대교회는 사랑이 넘치는 교회였습니다.
셋째, 초대교회는 기도하기를 힘쓰는 교회였습니다. 본문 42절 끝에 보면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시기를 기다리라 하시고 하늘로 올려지신 후 예수님의 제자들과 친지들이 한 일이 "더불어 마음을 같이 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는 것"이었다고 행1:14은 전하고 있습니다. 행4:31에도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했습니다.
넷째, 초대교회는 예배드리기를 힘쓰는 교회였습니다. 본문 42절에서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한 것은 예수님의 제자들과 그들을 따르는 무리들이 설교와 기도와 성찬식과 성도의 교제로 이루어지는 예배를 열심히 모여 드렸음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사모하며 한 믿음 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함께 예배하기를 기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다섯째, 초대교회는 전도하는 교회였습니다. 사도행전은 초대교회의 역사 속에서 성령 충만함의 일차적인 역사는 언제나 전도였음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며 성령께서 임하실 때에 그들에게 일어날 일은 "그들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되는 것"이라 하셨습니다(행1:8). 그리고 실제로 오순절날 성령께서 임하셨을 때에 베드로를 위시하여 온 제자들이 한 것이 다름 아니라 모든 지방의 언어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이었습니다. 행4:31에도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했고, 행5:42에도 보면 사도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섯째, 초대교회는 능력을 행하는 교회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서로 사랑하며 예배와 전도에 힘쓰는 교회를 하나님께서는 그냥 두지 않으십니다. 그런 교회는 하나님께서 쓰시기 위하여 능력을 주십니다. 오늘 본문 바로 다음인 제3장 첫머리에서 당장 우리가 목격하는 사건이 무엇입니까? 은과 금 같은 재물이라고는 한 푼도 없었던 베드로와 요한이지만 성전으로 들어가는 미문 앞에 앉아 구걸하던 그 걷지 못하는 사람을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으켜 세우고 걷고 뛰고 하나님을 찬송하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본문 43절 하반절에도 보면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또 행5:12은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났다"고 전하며, 15-16절은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누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의 그림자라도 누구에게 덮일까 바라고/ 예루살렘 부근의 수많은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일곱째, 초대교회는 존경받는 교회였습니다. 본문 47절에서는 사도들과 성도들이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다"고 전하고 있으며, 행5:13도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했습니다. 이들은 그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에 의해 전통적 유대교 신앙에 어긋나는 이상한 종교집단이라고 경계의 시선을 받고 있었던 상황을 고려할 때 예수님의 제자들이 온 백성으로부터 칭송과 존경을 받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성령 충만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삶이 너무나 아름답고 흠이 없었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과 고마움을 안겨주는 능력을 지녔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여덟째, 초대교회는 성장하는 교회였습니다. 본문 바로 앞의 41절은 베드로가 성령 충만하여 설교를 마치자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했고, 본문 47절은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전하고 있습니다. 또 행4:4은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했으며, 5:14은 "믿고 주께로 나아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했고, 6:7은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서로 사랑하며 예배와 전도에 힘쓰는 교회에 하나님께서는 능력을 주시고 또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듣게 하시며 많은 무리를 보내주심으로써 크게 성장케 하시어 더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양육하시는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교회가 성장하는 비결이 어디에 있는지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보다도 먼저 주목해야 하는 것은 교회의 외적 성장은 내적 충일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먼저 그 안에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려는 열의와 구원의 진리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찼었습니다. 자기 안에 알고 확신함이 없이 남을 믿게 할 수 없습니다. 회의와 불신에 젖어있는 교회는 성장은커녕 쇠잔해가고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앞서 인용한 행6:7은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증거하고 있지 않습니까?
초대교회는 또 그 안에서부터 사랑으로 충만했었습니다. 사랑이 없는 교회는 사람을 모을 수 없습니다. 냉냉한 교회에 사람이 붙어있을 수 없습니다. 사랑을 나누고 삶을 나누는 교회가 성장하는 법입니다.
초대교회는 또 기도하기를 힘쓰는 교회였습니다. 기도 없이 성장하는 교회는 없습니다. 기도 없이는 교회는 유지될 수도 없습니다. 또 참되고 열심있는 기도에는 반드시 성령 충만함의 응답이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또 모이기를 힘쓰고 그 안에 예배의 감격이 있는 교회였습니다. 예배의 감격과 기쁨이 없으면 교회는 절대로 성장하지 않습니다. 예배의 기쁨과 감격이 있기에 모이기를 힘쓰는 것입니다.
이렇게 초대교회의 폭발적인 외적 성장은 그 안에서부터 말씀과 기도와 예배의 감격과 사랑이 충일한 결과였습니다.
우리가 그 다음으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초대교회의 외적 성장은 또한 교회밖의 사람들에게 유익함을 주고 존경을 받은 결과라는 사실입니다. 사실 교회밖의 사람들에게 유익함을 주고 존경을 받지 못하는 교회가 진정 성장할 수 없습니다.
끝으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초대교회의 외적 성장은 더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도행전의 기자는 본문 47절에서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나 사도들이 교회를 크게 성장시켰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하신 일임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교회를 크게 부흥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할지라도 그것이 목사든 당회원이든 제직이든 그 누구의 능력과 수고와 헌신에 의한 것이라고 믿는 교회는 반드시 시험에 들고 말 것임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진정 교회의 성장을 위한다면 겸손하게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지해야 하며, 교회의 부흥이 이루어질 때에는 그 결과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 자신의 역사에 돌릴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실로 성령 충만한 교회, 참 교회의 전형으로서 보다 교회다운 교회를 향한 변화를 추구하는 오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한국개신교의 어머니교회를 자처하는 우리는 모든 어머니교회들의 어머니교회인 초대교회의 모습으로부터 많은 것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함께 살펴본 초대교회의 면모들 하나 하나는 그대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교회의 모습들입니다. 종종 교인들로부터 제 목회비젼이 무엇인지 밝혀달라는 요청을 받곤 했는데 오늘 이 초대교회의 모습에서 그 답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배우고 그 가르침대로 살려고 힘쓰는 교인들로 가득찬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과 진리를 따라 살고자 하는 열망은 없으면서 사회정의를 부르짖고 선교를 논하는 것은 의미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사랑이 넘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의 관심과 교제와 실천이 없는 교회는 교회의 모양은 있을지 모르나 능력은 없는 교회입니다. 안에서부터 사랑의 충일함이 없으면 아무리 대외봉사를 많이 해도 오래 가지도 못하며 오히려 교회 안팎으로 갈등과 상처만 남기기 쉽습니다. 어머니교회를 자처하는 새문안교회는 더군다나 어머니의 사랑처럼 푸근하고 한이 없는 사랑의 교회가 되려고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의 사랑의 교제는 특히 각 구역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1년이 다 지나도록 구역예배 한 번 안 모이며 새신자가 와도 반겨주는 구역식구 하나 없어 물 위의 기름처럼 지내다 떠나게 만드는 교회는 이미 병든 교회입니다. 구역장 직분을 단지 명예와 벼슬로 여기거나 그저 권사 되기 위한 발판으로 삼으며 책임은 다하지 않는 현상을 이제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습니다. 내년부터는 구역활성화를 위한 구역통폐합과 구역장임기제를 과감하게 시행할 방안을 강구하고 있음을 미리 알려드리는 바입니다.
우리는 기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담임목사가 2년반 동안이나 없었어도 흔들리지 않은 것은 뿌리깊은 전통과 저력 때문이라고 흔히들 말합니다. 그러나 이 교회가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교회자체의 전통과 저력 때문이라기보다 많은 성도들이 아침저녁으로 눈물로 교회를 위해 드린 기도를 들어주신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생명력을 잃은 나무는 아무리 뿌리가 깊어도 뿌리가 깊지 않은 나무보다 조금 더 오래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나 결국은 죽고 맙니다. 교회도 자체의 전통과 저력만으로는 끝까지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기도의 호흡이 끊긴 교회는 결국은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함께 모여 예배드리기를 기뻐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감사하게도 우리 교회는 엄숙하고 경건한 장로교회의 전형적인 예배전통을 잘 가꾸고 지켜왔다는 평을 듣고있습니다. 그러나 함께 모여 예배드리기를 보다 힘써야 합니다. 항존직 선거를 위한 공동의회 때에는 입추의 여지없이 가득찼던 예배당이 투표만 끝나면 20분 후에 그 자리에서 있을 예배에도 불구하고 다 빠져나가고 썰렁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우리는 전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전도는 교회의 생명이 유지되는 수단입니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은 우리의 신앙과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증거할 능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나 전도의 방법은 말로만 아니라 행동으로, 이론으로만 아니라 삶으로, 교리로만 아니라 사랑의 실천으로, 물질로만 아니라 마음으로, 구제로만 아니라 섬김으로 다양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사회로부터 신뢰와 사랑과 존경을 받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사회로부터 신뢰와 사랑과 존경을 받지 못하면서 전도의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사회로부터 신뢰와 사랑과 존경을 받지 못하면 오히려 전도의 문을 막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고 맙니다. 교만과 탐욕과 이기주의를 버려야 합니다. 겸손과 사랑으로 남을 섬길 줄 알아야 합니다. 교회밖의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며 그들
의 아픔과 고통에 동참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의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도 나눔과 섬김의 삶을 실천해야 합니다. 어머니교회임을 자처하려면 이 사회에 대하여 그 어떤 교회보다도 책임적 삶을 추구하는 교회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우리에게 우수한 인적 자원이 풍부하게 있다 하드라도 사람의 지혜와 능력에 의지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매사를 도모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더더욱 말씀과 기도를 힘써야 하며 성령의 충만하신 임재와 역사를 간구해야 합니다.
교회성장은 근본적으로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일입니다. 단 하나님께서 각 사람이 가진 달란트와 그들의 수고와 헌신을 사용하십니다. 온 성도들이 얼마나 모이기를 힘쓰고 말씀과 기도와 사랑의 교제를 힘쓰며 전도하고 세상에 유익을 끼치며 칭찬 받는 삶을 사는가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더 크고 많은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주시며 더 많은 무리를 보내주시어 교회의 성장을 이루어주시는 것입니다. 그 외의 인위적 교회성장의 시도는 그 어떤 것이라도 다 헛될 것입니다. 참되고 위대한 성장을 향해 함께 마음을 모으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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