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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1:1-10 기억해야 할 것
삿1:1-10까지 말씀으로 기억해야 할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무엇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인가.
하루살이하고 메뚜기하고 놀다가 메뚜기가 하루살이에게 얘기했습니다. 내일 우리 놀자고 그러니까 하루살이는 그 말이 이해가 안되었습니다. 하루살이는 내일을 모르기 때문에 메뚜기가 설명을 합니다. 내일아침에 해가 뜨면 내일이야 그렇지만 하루살이는 화가 났습니다. 왜요? 메뚜기가 생전 모르는 말을 하니까요. 그리고 하루살이는 네가 나를 구렁텅이로 빠뜨릴려고 그러지 하고는 화가 나서 갔습니다. 메뚜기는 혼자 중얼중얼 하면서 내일은 분명히 있는데 했다고 합니다.
천국을 바라보지 못한 자는 이 땅에다가만 애착을 갖고 살 것입니다. 천국이 있다고 소망을 가진자는 이 땅에 애착이 아니라 항상 주님을 생각하며 앞으로 주님 앞에 설 것을 준비할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하고 관계된 것을 꼭 기억을 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할 때 이 땅에 무엇인가를 쌓아놓으려 하는데 나중에 을지병원 중환자실에 가서 그 사람이 하는 말을 하는걸 보면 다 압니다.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가. 그 사람이 다른 어떤 사람이 오면 말도 잘 못하면서 나 같이 살지마 그때는 귀를 갖다 대야 들릴만큼 힘이 없이 나 같이 살지마 그 말도 아주 작게 얘기합니다.
우리도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기억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에 바쁘고 삶이 바쁘다 보니까 자꾸 잊어버려요. 그러나 시장가서 콩나물 좀 안사온 것은 다시가면 되지만 진짜 것은 연습이 없기 때문에 기억을 해야되는데 오늘 본문에서 사사기 1장의 내용입니다.
사사기 1장은 여호수아가 죽은 후부터 시작을 합니다. 정복전쟁의 3차를 가지고 여기다가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1차때 는 정복을 한 것이고, 2차 때는 분배를 한 것입니다. 이제 3차 때는 각 지파가 그 안에서 가나안족속과 전쟁하는 내용 속에 오늘 본문에는 이스라엘자손이 하나님에게 물었습니다. 우리 중 누가먼저 올라가서 싸울까요. 물으니까 하나님이 유다가 올라가라 그럽니다. 유다가 제일먼저 가서 싸우라고. 그래서 유다가 시므온이랑 함께 가자고 애길합니다. 그래서 시므온이랑 같이 가서 하나님이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사람을 붙여서 베섹에서 1만명을 죽이고 베섹의 우두머리인 아도니 베섹을 만나서 수족의 엄지가락을 잘랐어요. 그랬더니 아도니 베섹이 하는 말이 옛적에 70명 왕이 있었는데 자기가 그 수족을 잘랐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기 상아래서 먹을 것을 주어먹더니 오늘날 하나님이 나한테 갚으셨구나 라고 말하고 아도니 베섹이 죽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유다가 예루살렘을 쳐서 취하고 그 후에 산지 남방, 평지 가나안 사람과 싸우고, 또 유다가 헤브론에 가서 가나안 사람을 쳐서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라고 하는 중요한 인물들을 다 죽였는데 그 헤브론의 본 이름은 기럇 아르바 였다고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데 있어서 그 내용을 설명하면서 우리에게 기억해야 될 것을 여기다가 얘기를 해주고 있습니다.
오늘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무엇을 기억해야 될 것인지 한번 보겠습니다.
2-3절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유다가 올라갈지라. 보라 내가 이 땅을 그 손에 붙였노라 하시느라. 유다가 그 형제 시므온에게 이르되 나의 제비뽑아 얻은 땅에 나와 함께 올라가서 가나안 사람과 싸우자 그리하면 나도 너의 제비뽑아 얻은 땅에 함께 가리라. 이에 시므온이 그와 함께 가니라.
첫 번째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승리를 보장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자손이 하나님에게 물었습니다. ?우리 중 누가먼저 올라가서 가나안사람과 싸워됩니까? 물을 때 하나님이 ?유다가 올라가라? 그랬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내가 이 땅을 그 손에 붙였노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유다가 나와 제비뽑아 얻은 땅에 시므온에게 ?나와 같이 올라가서 싸우자? 했더니 시므온이 함께 올라가서 그 전쟁에서 하나님이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을 그 손에 붙여서 승리했다고 지금 여기에 적어져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에 물었을 때 유다가 올라가라고 하면서 그 땅을 그손에 붙였다고 승리를 하나님이 말씀을 했을 때 유다는 시므온에게 같이 올라가자고 하며 하나님이 승리를 보장하신 다는 그 말에 함께 올라가서 싸웠더니 가나안족속들을 이겼다는 오늘 본문의 내용같이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다도 하나님이 그 손에 붙였다는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순종하고 시므온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같이 올라갔더니 가나안 사람을 이겼다는 것입니다. 유다는 승리를 보장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그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여 갔던 것입니다. 그랬더니 그 전쟁을 승리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늘 기억을 해야 되는데 우리에게 여가지로 얘기를 합니다. 우리는 내 힘으로 하려고 하니까 그것을 두렵고 떨리는 맘 때문에 못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선은 환경을 보면 우리는 못합니다. 하나님이 하라고 하면 하라고 하는데 이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우리는 못합니다. 어떨 때 갑니까? 내가 할 수 있을 때 갑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한다는 것은 말씀 그대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가 광야에서 힘들고 어려울 때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시험하서 마침내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고 말씀하셨으면 아하~ 끝은 복을 주려고 그러시는 구나 하고 광야를 걸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광야 길을 가는데는 좋은일 만 생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가라고 하는 그 길이 힘든 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40년간 광야 길을 걸어갈 때 하나님은 왜 풍성하게 꿀도 주고, 메추라기도 많이 거두게 해주고, 광야에 대궐도 지어놓고, 에어컨도 틀어놓고 시원하게 살고,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사슴피도 날마다 다 먹고 지금 내가 엉뚱한 얘기를 하는 겁니다. 그렇게 살면 세상사람들은 출세했다고 그럽니다. 그런데 그것은 집을 잘못 지은 겁니다. 광야에다가는 백날 집을 지어봤던들 가야됩니다. 그 다음날 구름 뜨면 가야돼요.
우리도 날마다 그래요. 얼마나 우리가 세상에 집을 많이 짓습니까? 그런데 그거 다 쓸데없는 거에요. 하나님이 구름 뜨면 가야 되고 구름 멈추면 가고 싶어도 못 갑니다. 하나님이 가라고 하면 가고 하라고 하면 하고 서라고 하면 서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거기를 가라고 하면 그때는 힘들고 어려워도 결국 가라고 한 그 땅이 가나안 땅입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이 가라고 하면 풍랑이 있어도 우리에게 영적가나안은 분명히 있는 겁니다. 비바람이 몰아쳐도 그 길을 계속 가다보면 우리 주님 안이라는 곳이 딱 기다리고 있다는 겁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여러 가지 형태로 늘 말씀하셔요. 그 말씀하신 것을 우리는 늘 기억을 하고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잊어버려요.
시편37편을 보시겠습니다.
시37:4-5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승리를 보장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맡기고 따라가다 보면 분명히 귀한 것이 우리에게 펼쳐질 것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그 힘들고 어려운 가나안땅에 정복사역을 하려고 할 때, 하나님이 여호수아 1장에 나타나서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 두려워하지 마라, 놀라지 마라, 내가 너를 이끌어 줄 것이다. 그렇게 얘기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말씀을 믿고 따라가는 겁니다. 그 말씀을 존중하고 따라갔더니 전부다 이기게 되잖아요. 그런데 그 말씀 따라 안가고 자기가 해보려고 아이성에 가니까 안되잖아요. 여호와군대장관을 따라가면 틀림없이 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신발을 벗어야 됩니다. 내 입장을 벗고요, 내 계획을 벗어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멋지게 작업을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가 내꺼 다 신고 하나님은 나를 도와주는 옵서버, 내가 내 길을 가면 하나님이 내 길을 도와주는 그런 하나님이야. 그런 하나님이면 정말로 귀한 것을 못얻습니다. 그러나 나를 다 내려놓고 그분이 말씀하시면 그 말씀을 믿고 따라가다 보면 그 말씀에는 엄청난 능력이 역사하셔서 나중에는 기가막힌 환경이 우리앞에 펼쳐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기억해야 될 것 하나님이 나에게 뭐라고 말씀을 하시면 그 말씀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승리를 보장해 주신다고 나에게 뭐라고 했으면 지금 닥친 환경이 아무리 힘들어도 그대로 밀고 가는 것입니다. 가다보면 승리는 내것일세가 분명히 나옵니다.
여호수아가 많은 어려움을 겪지만 결과적으로는 전부다 정복을 다하거든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고 하면 그 말씀을 인격으로 대접하고 그 말씀이 능력으로 알고 그 말씀을 그대로 받아드려서 기억하고 잊어버리지 않고 따라가다 보면 하나님이 귀한 역사를 펼쳐주실 줄 알고 주님이 말씀하신 것을 늘 기억하고 담고 다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제가 늘 그런 말씀을 드립니다. 병아리는 알에서 22일 있으면 삐약삐약 하고 나옵니다. 어떻게 신기한지 모릅니다. 그 닭이 달걀을 20-25개씩 털을 세워서 품어요. 달걀을 품으면서 한쪽으로만 있으면 고니까 돌려가면서 품어요. 그래서 22일이 있으면 분명히 삐약삐약이 나옵니다. 우리 사람도 10달 있으면 분명히 응애 하고 나옵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하나님의 때가 되면 틀림없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 말씀을 늘 기억하고 다녀야 됩니다.
저한테는 3가지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각자에게 말씀하신 게 있어요. 언제되요 그런말 하지말고 언제는 하나님소관이고, 하나님이 하신다고 하면 분명히 하신다 그 말이에요. 하나님이 하시면 나에게 가장 좋을 때, 적당할 때 하실줄 믿습니다.
승리를 보장하신다는 그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삶 속에서 늘 기억하고 다니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는 6-7절을 보겠습니다.
아도니 베섹이 도망하는 지라. 그를 쫓아가서 잡아 그 수족의 엄지가락을 끊으매 아도니 베섹이 가로되 옛적에 70왕이 그 수족의 엄지가락을 찍히고 내 상 아래서 먹을 것을 줍더니 하나님이 나의 행한 대로 내게 갚으심이로다. 하니라. 무리가 그를 끌고 예루살렘에 이르렀더니 그가 거기서 죽었더라.
두 번째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은 악행을 보응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아까는 말씀을 기억해야 되고, 이제는 악행을 보응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기억해야 됩니다.
지금 여기에 유다가 시므온과 같이 쳐들어 오니까 먼저 베섹에서 1만명을 죽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베섹의 우두머리가 아도니 베섹입니다. 이 아도니라고 하는 말은 아말렉의 아각이라는 말과 똑같고, 애굽왕인 바로라는 말과 똑같고, 그랄쪽 블레셋의 왕인 아비멜렉인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이 아도니라고 하는 말은 대명사입니다. 그래서 베섹의 우두머리가 아도니 베섹입니다. 그런데 그 아도니베섹이 옛날에 70명의 왕의 수족의 엄지가락을 짤랐더니 자기 상 아래서 먹을 것을 얻어먹고 했는데 지금 자기가 짤려놓고 보니까 뭐라고 느꼈냐면 하나님이 내가 행한대로 내게 갚으셨나이다. 이렇게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악행을 보응했다. 하나님이 공의로 심판했다. 이 말을 아도니 베섹이 자기입으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행한대로 심판하신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다 보고 계십니다. 우리는 보통 어떤 나쁜 사람이 지금 잘되고 있어요. 그것이 한도 끝도 없이 잘 되냐 아닙니다. 어느 땐가인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이 분명히 그를 회개하라고 돌아오라고 기다리고 계시는 것이지 하나님의 공의가 들어나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니란 것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잣대는 틀림없는 잣대입니다. 사람의 잣대는 어쩝니까. 철로도 여름에는 늘어져서 사이사이가 틈이 없어서 덜컥덜컥 소리가 덜 납니다. 붙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겨울에는 붙어있던 것이 줄어들어서 간격이 벌어지니까 소리가 심합니다. 철로가 추위에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잣대도 내가 조금 괜찮으면 늘어지고 내가 조금 힘들면 줄어듭니다.
우리잣대는 움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잣대는 그러지 않아요. 하나님의 공의는 절대로 그러지 않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꼭 기억해야 됩니다. 이것을 기억하지 못할 때 많은 어려움을 당합니다.
자 욥기서 11장을 보세요.
욥11:7-11절 보시겠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오묘를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온전히 알겠느냐? 하늘보다 높으시니 네가 어찌 하겠으며 음부보다 깊으시니 네가 어찌 알겠느냐? 그 도량은 땅보다 크고 바다보다 넓으니라. 하나님이 두루 다니시며 사람을 잡아 가두시고, 개정하시면 누가 능히 막을소냐? 하나님은 허망한 사람을 아시나니 악한 일은 상관치 않으시는 듯하나 다 보시느니라.
상관치 않으시는 듯하나 다 보시느니라 그랬습니다. 악행을 하나님이 다 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의 잣대는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안 보시는 것 같지만 항상 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되는 것입니다.
모르드개와 하만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이 간섭하지 않은 것 같지만 2장에 있을 때는 하만이 모르드개를 죽이려 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도 천천히 움직이십니다. 왜 상을 줄 것도 상을 안주면서 천천히 움직이세요. 그러다가 하만이 빨리 움직이면 하나님도 빨리 움직입니다. 하만이 죽이려고 장대를 달아놓으니까 왕을 잠을 안재우게 하고 열왕의 일기를 읽게 만들어서 하만을 무너뜨리는 하나님인 것을 우리는 잘 알아야 됩니다.
그 하나님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그것을 항상 가슴속에 늘 담고 다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악행을 보응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우리의 삶 속에서 더 많이 기억하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하나님은 어느때인가 그 일을 하시기 때문에 항상 우리는 조심하고 살아야 되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의 공의를 우리 가슴에서 늘 기억하고 사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인 것입니다.
세 번째는 9-10절입니다.
그 후에 유다 자손이 내려가서 산지와 남방과 평지에 거한 가나안 사람과 싸웠고 유다가 또 가서 헤브론에 거한 가나안 사람을 쳐서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죽였더라. 헤브론의 본 이름은 기럇 아르바 이었더라.
세 번째 기억해야 될 것은 할 일을 맡겨 주시는 하나님의 사명을 기억해야 됩니다.
유다는 먼저 예루살렘을 쳐서 취했다고 말하면서 그후에 유다자손이 내려가서 산지와 남방과 평지에 거하는 가나안 사람과 싸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헤브론에 거하는 가나안 사람을 쳐서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죽였다 했습니다.
헤브론에 거한 이 3사람은 전부 우상의 이름을 따서 지은 이름입니다. 세새라고 하는 이 말은 태양이라고 하는 우상에게서 나온 이름입니다. 아히만은 문이라고 하는 우상에게서 나온 이름입니다. 그 다음 달매라고 하는 것은 골짜기라고 하는 우상을 섬겼던가 봅니다. 그래서 지금 여기에 유다가 가서 여러 사람을 쳤지만 헤브론에 거한 가나안사람 곧 가장 큰 세력인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죽인 것이 유다가 할 일중에 큰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유다는 사명을 완수했습니다. 죽였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도 우리 안에 있는 우상을 쳐서 없애는 것 우리가 꼭 해야될 일입니다.
유다가 그 땅 안에 있는 가나안 사람을 처리했듯이 우리도 우리 안에 영적가나안을 처리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그 사명을 우리가 기억하고 살아야지 그것을 잊어버리고 내 안에 것은 빼내려 하지 않고 다른 것만 받아서 부자되려고 아무리 해봤던들 영적으로는 평안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가나안 사람인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죽인 것은 바로 유다가 해야될 일입니다. 가나안사람을 죽이는 것은 유다가 해야될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 땅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 죽여야 그것을 다 누릴 수가 있습니다. 다 죽이지 못하면 누리지 못합니다.
우리 안에서도 내가 세상적인 요소가 우리 안에 있다고 하면 철저히 죽이는 것은 내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래야 주님을 내안에서 누릴수가 있습니다.
유다가 헤브론에 거한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치는 일인 것은 어떻게 보면 무섭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유다가 해야 될 일입니다.
우리도 우리 앞에 있는 세상적으로 나보다 괜찮고 어마어마한 존재로 건들면 손해날까 싶으고 그러면 우리 건들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유다가 이 세사람을 다 쳤듯이 4절에 보면 유다가 올라가매 여호와께서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을 그들의 손에 어떻게 했습니까? 붙여줬습니다. 유다는 해야 될 일이 뭐냐 가는 겁니다. 붙여준 분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보통 하려고 할 때 내가 할려고 한다 그 말입니다. 여기서 올라가니까 붙여주는 것입니다. 유다가 헤브론에 가니까 무서워서 못 가면 안 붙여줘요. 헤브론에 가니까 이 세사람을 붙여줬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할 일을 하려고 가면 하나님이 해줄 줄 믿습니다. 이걸 기억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딤후2:15절보시겠습니다.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그랬습니다.)
할 일을 맡겨주신 그 일의 사명을 우리는 꼭 기억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자기로서는 너무나 하나님을 잘믿는 사람으로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스데반죽이는 일이 동참하고 예수믿는 사람을 핍박하고 잡으러 다녔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메섹으로 영장을 가지고 잡으러 가는 도중에 주님의 말씀이 떨어졌습니다. 왜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그러면서 저 바울은 나의 택한 그릇이다. 그랬습니다. 바로 거기서 바울이 자기의 사명을 안것입니다. 그리니까 다메섹에 가서 아나니아의 안수를 받고 눈이 떠진 다음에 자기가 베껴진 다음부터는 완전히 자기 사명을 시작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각자각자는 해야될 일이 있습니다. 우리 각자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가 있고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이 있습니다.
저는 어떤 사람같아요? 여러분들 보기에 어떤 사람같습니까? 불받아라. 그런사람같습니까? 불이 뭣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는 그것을 하라고 해도 저는 안 합니다. 왜 그것은 우스운 일이니까요. 우리 속아지는 그렇게 해서 뒤집어 지는 게 아니에요. 왜요. 내가 뒤집혀져 봤기 때문에 알아요. 얼마나 끈질긴지 내가 잘아요. 내가 나 안 죽으려고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고 별짓을 다해요. 제가 다 해봤어요. 그러니까 사람은 뒤집어지려면 그냥 안됩니다. 참새도 죽을 때 짹하고 죽어요. 그 만큰 우리가 끈질깁니다. 그런데 어느 때 우냐 하나님의 의도가 깊이 깨달아 질 때 하나님 나 만드시느라고 애 많이 쓰셨어요. 라고하고 막 울어도. 그러기 전까지는 불퉁불퉁해요. 하나님은 그것을 잘 알기 때문에 가만히 계세요. 해야될 일이 다 있어요. 각자각자가 다 있어요. 저는 관점 바꾸고 생명 살리는 일을 해야 됩니다. 말씀으로 관점이 바뀌어지지 절대로 안 바껴집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야, 하나님의 의도를 알아야 관점이 바뀌어지지 다른 걸로는 절대로 바뀌어지지 않습니다.
저는 그래서 내 평생 소원 관점 바꾸는 것, 내 평생 소원 하나남의 심정 아는 것, 내 평생 소원 하나님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제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먼저 말씀을 알아야되고, 그 다음에는 관점을 바꾸고, 그 다음에는 생명을 살려야 됩니다. 저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가 그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각자는 존재하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 이유를 이루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너 뭐하다 왔느냐 하나님이 묻는다면 아 나 거창하게 이거이거 했어요. 라고 할 때 하나님이 너 이쪽으로 나와 그러면 어쩔거요 그것을.
우리 각자는 바울과 같이 처음에는 잘 못했지만 나중에 자기가 뭘 해야될지 알고 나서는 자기를 온전히 다 드려버리고, 자기의 최고의 목표가 예수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는 것이 바울의 목표였듯이 우리도 각자각자가 해야될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 먼저 하나님 말씀을 알아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관점을 바꿔야 합니다. 관점 바꾸고 나면 다른 사람에게 나를 줄 수 있어야 됩니다. 내가 변화된 만큼 다른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나는 변화되지 않는데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려 하면 상대방이 나한테 욕합니다. 그것은 안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할 일을 맡겨주신 하나님의 사명을 꼭 기억하고, 하나님 앞에 날마다 살다가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우리모두가 되야 될 줄 믿습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승리를 보장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늘 기억하고요,
두 번째는 악행을 보응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고요,
세 번째는 할 일을 맡겨주신 하나님의 사명을 기억해서
그것을 다 이루다가 주님 안에 발견되어 지고 주님 안에서 칭찬 듣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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