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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후2:1-14 거짓 것을 조심하자

by 【고동엽】 2021. 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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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후2:1-14 거짓 것을 조심하자

오늘 벧후2:1-14 말씀으로 거짓 것을 조심하자라고 하는 제목으로 같이 생각해 보겠습니다.

영국에 거부인 피츠 제럴드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그의 아내가 갑자기 죽었습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아들들도 병으로 앓다가 죽게 되었습니다.

슬픔을 달랠길이 없던 이 사람은 미술품을 수집하는 일에 마음을 쏟기 시작했습니다.

온 힘을 다 써서 많은 미술품을 수집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많은 그림 중에 무명화가가 그린 자기 아들의 초상화를 가장 아꼈습니다.

어느덧 거부도 죽을때가 가까워 오자 유언을 해놓기로 했습니다.

뭐라고 유언을 했냐면 ‘내가 죽고 많은 이 그림을 경매에 붙이는데 조건이 있다.’그리고

조건을 감춰서 봉한 다음 변호사에게 보내서 내가 죽고 나서 경매가 시작되면

봉했던 유언장을 읽으라고 얘기했습니다.

거부가 죽고 경매가 시작됐습니다.

제일먼저 무명의 화가가 그린 자기 아들의 초상화를 첫 번째로 경매를 붙였는데

한사람도 경매에 응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거부의 집에서 같이 살았던 늙은 종이었던 사람이 그 그림을 사겠다고 나와 응찰됐습니다.

그때 변호사가 경매를 중지시키고 유언장을 뜯어서 읽었습니다.

유언장에는 '우리아들의 그림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 그 사람이

나의 미술품 전부를 가질 수 자격이 있다.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에게 나의 모든 재산을 다 주겠다'고 써 있었습니다.

이 늙은 종은 주인집 아들을 키웠기 때문에 그 그림이 정말 가치있고 소중했기에

자기의 모든 돈을 다 들여서 그 그림을 샀던 겁니다.

그런데 다른 많은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가치만 따져서 사려고 했기 때문에

거부가 원하는 소중함을 몰랐던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하면서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겉으로만 보기 좋고,

무엇인가 되고, 무엇이 있으면 거길 다 따라갑니다. 아닙니다.

진정한 중요한 것은 멀리서 볼 때 예쁘게 보이고 좋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실지로 그 안에 가서 보면 얻을게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어려서 토끼 키우기를 좋아해서 토끼풀을 뜯으러 다녔습니다..

멀리서 보기에 파란잎이 많아서 거길 가봅니다. 그런데 막상 가보면 뜯을게 없습니다.

그런데 바로 옆을 찬찬히 쳐다보면 뜯을 것이 많은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멀리서 보면 아름답게 보이고 좋게 보이는 것이 진정 소중한 것이 아닙니다.

내 옆에 아무것도 아니게 보여도 가까운 곳에 소중한 것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내가 무엇이 되려고 하고, 내가 무엇을 이루려고 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철야를 하고 기도를 하면서 신앙생활 하는 사람 많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진짜 것을 얻지 못한 사람입니다.

진짜 것을 얻는 사람은 옆에 계시고, 앞에 계시고, 내 안에 계신 우리 주님을 늘 느끼고

이해하고 만나고 깨닫는 사람이 진짜 소중한 것을 얻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늘 보이는 것에 속고, 욕심에 속고, 마귀에 속으면서 살아갑니다.

정말로 거짓 것들이 판을 치고 있는 현 세상입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우리주님은 우리를 살립니다.

말씀은 생동감 있게 우리를 살려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짓 것에 정말 조심해야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가 자기도 옛날에는 거짓 것에 많이 속았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라고 대단한 고백을 했지만

문제가 생겨서 예수님이 대제사장 집으로 잡혀가니까 손해 안 나려고 멀찌기 따라갔습니다. 그리고 안에 들어가서 예수님이 대제사장 너 무릎꿇어!

다른 모든 군사들을 다 넘어뜨리고 꼼짝못하게 하기를 바랬는데,

예수님이 아무런 힘도 없이 아무런 능력도 없이 가만히 앉아있었어요.

대제사장이 큰소리쳐도 예수님이 가만히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베드로 눈에는 예수님이 아무것도 아니게 보여요.

사람들이 베드로한테 너 그 당이지 하고 물으니까 나 그 사람 몰라요!

아니 너 그 당 맞잖아 하니까 나 그 사람 모른다니까요.

너 그 당 맞는데 하니까 저주하며 모른다고 부인하잖아요.

성경에는 없지만 베드로가 아마 이렇게 표현을 했을 겁니다.

예수님 보고 나 그놈새끼 모른다고 그랬을 겁니다. 자기 살기 위해서요.

전에는 예수님이 기도하니까 죽은자가 살아나고, 병든자가 낫고 해서 우리 선생님이라고 따라 다녔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안하니까 예수님제자 아니라고 저주하며 부인했던

베드로가 자기 모습을 뒤돌아 보면서 베드로후서를 쓴 것입니다.

여러분들 거짓 것에 속지마세요. 나는 속았지만 여러분들은 속지 말라 그 말입니다.

그러면서 거짓 선지자들은 이렇다고 설명합니다. 옛날부터 죽 내려왔다는 겁니다.

그런데 거짓것들은 하나님이 다 심판했다고 옛날 역사를 설명합니다.

범죄한 천사를 용서했더냐 아니라는 겁니다.

노아때 하나님이 심판했지 않느냐, 소돔과 고모라때 어떻게 했느냐 다 심판했지 않았느냐

옛날 역사를 들이대면서 이 거짓것들은 담대하고 고집이 세고 떨지 않고

하나님을 훼방하는 그런 사람들이었다는 겁니다.

그러니 그런 사람들에게 절대로 속지말라고 얘기하면서

이 말속에는 나도 거짓것들에게 속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들 절대로 거기에 넘어가지 말라고 하는 본문의 내용속에서

우리에게 왜 이렇게 거짓것에 속지말라고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본문을 통해서 보겠습니다.

 

벧후2:1-2절 보겠습니다.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저희가 탐심을 인하여 지은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를 삼으니

 

첫 번째 끌어들여서 미혹하고 속이기 때문에 거짓 것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1절에 보면 거짓 선지자들이 있어 났다 거짓선생들이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저희는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서 주를 부인하고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고 호색을 좇고 진리의 도가 훼방 받을 것이고 저희의 탐심을 인하여 지은 말을 가지고

못된 짓을 했다는 것을 얘기합니다.

이것은 거짓선생들의 성격을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혹하고 속이기 때문에 거짓것들을 조심하라고 여기다가 얘기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옛날에 성령받고 사도행전2:2절 이후에 변화되기 전에는

자기자신도 그런것들에게 속았다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속고 욕심에 속고 마귀에게 속았다는 것입니다.

속아서 엉뚱한 짓을 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전.후서는 베드로의 간증입니다.

자기가 속았기 때문에 우리보고 간절한 마음으로 속지 말라고 하는 겁니다.

그들은 미혹하고 속이기 때문에 결국에는 못된길로 구렁텅이로 빠트려 버리기 때문에

따라가면 안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금방 눈에 보이는 것, 화려한 것, 큰 것 좋아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말에도 100M미인이란 말이 있어요.

멀리 볼 때는 아름답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미인이 아니라는 거죠.

세상 것도 멀리서 보면 좋습니다. 마귀적인 것도 괜찮게 보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속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내 뜻을 이루려고 신앙생활합니다.

그것은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신앙생활을 해야되고,

하나님의 것이 돼야되고, 하나님이 이 세상에 나를 태어난 그 이유를 이루려고 해야지

내가 무엇이 되고, 이루고, 내 자랑하려고 신앙생활 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전부 거짓 것들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기억하면 내가 무엇을 했다고 기억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을 한 것보다는 내가 그분을 어떻게 인정했느냐를 더 중요시 합니다.

 

우리는 무엇인가 자꾸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 기본이 내가 무엇이 되려고 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 신앙은 어느 때 자라냐면 삶속에서 하나님이 나를 향해서

무엇을 한 것을 깨달았을 때 신앙이 자랍니다.

내가 신앙을 절대 자라게 할 수 없습니다.

내가 해서 신앙이 자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어떻게 했는가를 깨달을 때 신앙이 자랍니다. 그럴 때 내가 변합니다.

이 변화가 많이 있을 때 나중에 예전에 만났던 사람들을 만나면 얼굴이 변했다는 소리를 합니다. 속에 있는 변화가 얼굴로 나타납니다. 속에 불만이 많은 사람은 얼굴로 드러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하신 일이 내 안에서 인정이 되면 속이 편안해집니다.

그러면 얼굴도 편안해 보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속으로 나만을 좀 인정해 주라고 합니다. 인정받고 싶은 것은 보상심리입니다. 보상심리는 나에게 목표가 있기 때문에 보상 심리가 나는 것입니다.

인정 안해주면 목사님이 나 인정해 주지 않으니까 나 교회 떠난다고 합니다. 그것은 아닙니다. 애기가 그럽니다.

우리는 사람에게 인정받으려하면 속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는 거짓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거짓것은 금방은 좋아 보이지만 한참 지나보면 본색이 딱 드러납니다.

제비족은 콩나물사러 바구니 들고 나온 아줌마를 꼬실 때 말투도 좋고, 향수냄새도 좋고,

옷도 멋져 보이고, 매너가 얼마나 좋은지 자기 남편에게서는 그것을 못 느꼈던

여자는 금방 넘어가기 쉽지요.

그러나 자기 남편은 자기한테 지금은 못해도 그 사람이 진짜 남편입니다.

그러나 제비족은 속이고 돈 뺏어 가려고 온 거거든요.

그러니 거기 걸리면 속는 겁니다. 우리는 거짓 것에 넘어가면 안됩니다.

 

마태7: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거짓 선지자들을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양의 옷을 입고 나아오지만 실상은 속에는 이리라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양의 옷을 입었지만 이리라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내 곁에 아무것도 아니고 볼품은 없지만 그것이 곧 진짜것이고,

멀리 보여서 괜찮아 보이는 것은 나를 다 속이는 것임을 알고 조심해야 됩니다.

속이는 것이 사람일수도 있고 어떤 세상적인 조건일수도 있고,

세상적인 환경일 수도 있으니 속으면 안됩니다.

 

다니엘은 어떠한 환경이 와도 뜻을 정해서 절대로 안 속았습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서 끌어드려 미혹하고 속이는 거짓것들을 조심해야 될 줄 믿습니다.

 

두 번째 벧후2:3-4

3저희가 탐심을 인하여 지은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利)를 삼으니 저희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저희 멸망은 자지 아니하느니라.

4하나님이 범죄 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두 번째 심판과 멸망을 당하기 때문에 거짓 것들을 조심해야 됩니다.

베드로는 거짓것들에 대한 심판에 대해서 얘기할 때 탐심으로 인하여

지은 말을 가지고 이(利)를 삼는데 그 심판은 지체하지 아니하고 멸망은 자지 아니한다.

꼭 있을 것이다 이 말입니다. 그것을 예를 들어서 4절에 설명합니다.

이사야 14장에 보면 범죄한 천사도 심판했다.

5절에는 옛 세상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노아 때에 심판했다.

홍수로 노아때 사람을 심판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6절에는 소돔과 고모라를 가지고 심판했다 라고 거짓것들은 전부다 하나님이 심판했다고

심판과 멸망이 틀림없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거짓 것에게 속으면 우리는 심판과 멸망을 당하기 때문에 거짓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우선 눈에 보이고, 무엇인가 괜찮고, 무엇인가 된 것 같고 하지만

우리 눈을 속이는 것이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진짜 것은 화려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거짓 것은 왜 화려하게 보이게 할까요. 진짜 것이 속에 없으니까 그렇습니다.

제가 늘 그러잖아요. 재벌회장은 슬리퍼를 끌고 다녀도 스스로 아무렇지 않습니다.

왜? 자기안에 부러울 것이 없을 만큼 있으니까 두리번 거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비족은 돈이 없어요. 그러니까 누군가를 꼬셔가지고 돈을 뺏어야 돼요.

그러니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멋진 양복에 화려하게 꾸며서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게 하려고 위장을 합니다.

자기 안에 없으니까 그런 것입니다. 안이 제대로 차있으면 위장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도 안에는 없는데 겉에만 화려한 것에 속으면 심판, 멸망받습니다.

거짓 것들을 틀림없이 심판한다고 성경에 3번이나 예를 말하며 설명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3:18-19절 보시기 바랍니다.

18 내가 여러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거짓것들입니다)로 행하느니라

19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섬기는 것은 자기 배를 섬긴다는 것입니다.

자기 배를 채우는 것이 목표예요)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십자가의 원수인 거짓것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마지막은 멸망이다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느헤미야도 절대로 거짓 것들에게 속임 당하지 않았습니다.

오노평지에서 5번을 만나자고 얘기해도 속임당하지 않습니다.

끝까지 자기를 지키며 거짓 것에게 넘어가지 않습니다.

나중에 느헤미야하고 친한 사람을 통해서 성소 안에 들어가 있으면 안전할 것이다 라고

 

속여서 죽이려 하지만 느헤미야는 속아넘어가지 않습니다.

그랬더니 52일 만에 성벽을 다 완성을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자꾸 넘어뜨리려는 것이 있습니다.

그럴 때 심판과 멸망이 기다리고 있음을 기억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세상적인 욕망가운데로 가면 내가 틀림없이 넘어갑니다.

그러니 우리는 항상 거짓 것을 늘 조심하며, 느헤미야와 같이 어느환경에 처해도 끝까지

내 줏대를 세우고 내 갈길을 계속가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세 번째 벧후2:10-11

10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 특별히 형벌하실 줄을 아시느니라. 이들은 담대하고 고집하여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를 훼방하거니와

11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천사들이라도 주 앞에서 저희를 거스려 훼방하는 송사를 하지 아니하느니라.

12 그러나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그 알지 못한 것을 훼방하고 저희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며

 

세 번째 육신대로 행하게 만들기 때문에 거짓 것들을 조심해야 됩니다.

베드로는 지금 거짓선지자들이 어떤 행동과 특성이 있는지 말하고 있습니다.

10절 하반부에 거짓선생들은 담대하고 고집하여 떨지 않고 영광있는자(하나님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훼방하면서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가운데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예수를) 멸시한다는 겁니다. 바로 그들은 육신의 욕심따라 행한다 그 말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하니까 우리를 그렇게 하게 한다는 말입니다.

육신의 욕심을 행하게 만들기 때문에 우리는 거짓것을 조심해야 된다고

베드로는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에 주식이 막 올라가니까 빚을 내서 주식을 사더라구요.

그 사람은 물어보나 마나 망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 아닙니다.

항상 먼저 앞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뒷북치면 아무것도 안됩니다.

그것은 속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기회를 허락 하시냐면

내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가는 사람에게 기회를 허락하십니다.

 

우리가 내 욕심 따라가면 그것은 뒷 따라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내 욕심이 없어진 만큼 따라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 욕심 따라가면 분명히 속은 겁니다.

내 욕심은 하나님 의도 안에 절대로 못 들어갑니다.

그래서 거짓선지자들은 전부 자기 욕심 따라 합니다.

우리도 그 사람들과 가깝게 얘기하면 자연히 거짓 것에 물들게 돼요.

내가 날마다 누구하고 만나느냐는 아주 중요합니다.

자꾸 세상에 욕심이 있는 사람과 얘기를 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으로 안가면

이상한 사람같이 보이게 생각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벌써 거짓 것에 속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항상 하나님의 의도를 설명하는 사람과 같이 있으면 자꾸 내가 그 의도에 물들어 갑니다. 그러면 속는 게 아니라 나중에 참된 것을 발견하고 내가 변하게 됩니다.

우리는 누구하고 만나고 접촉하느냐는 엄청나게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거짓 것하고 접촉하면 육신대로 행하게 만들어 버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육신의 욕심을 이루어야지 예수믿으면 집을 가져야지, 예수 믿으면 돈이 많아야지,

예수믿으면 복을 받아야지 하면서 어마어마 한 소리를 하는 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야지요. 예수 믿으면 복을 받아야지요. 그러나 집을 가질려고, 돈을 많이 벌려고,

복 받으려고 예수 믿으면 그것은 엉터리예요. 그것은 거짓것입니다.

진정한 예수 믿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신 이유를 이루고 죽는 사람이

진정한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세상에 무엇 때문에 태어난 것 같습니까? 각자각자에게 물어보세요.

육체의 욕심 따라 가르치고, 육체의 욕심 따라 기도시키고,

금요철야는 어떤 목표를 정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큰일납니다.

육체의 욕심이 끝이 있습니까? 끝도 없어요. 아무리 커져도 그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제가 늘 이렇게 표현합니다.

삯월세 10만원 사는 사람은 다달이 삯 월세 안내는 조그만한 것이라도 전세가 목표입니다.

전세를 사는 사람은 조그만한 것이라도 이사 안가는 자기 집이 목표입니다.

그 사람이 그 과정 다 거쳐서 10년만에 집을 사서 두 부부가 너무 좋아서 잠을 못잤어요.

그런데 다음날 옛 친구를 만났어요. 그런데 그 친구는 학창시절 내 가방들고 다녔던 친구예요. 그런데 그날 보니까 그 친구 차가 벤츠요 집에 가자고 해서 갔더니 90평이에요.

어제 18평 집을 사서 좋아했는데 그 친구 만난 이후로는 18평은 집이 아니게 느껴져요.

그 전날만 해도 남편과 좋아서 보듬고 잤는데 그날 저녁에 집에 와서 남편하고 싸웠대요. 욕심이라고 하는 것은 한도 끝도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으로 만족해야지 육신의 욕심으로는 절대로 만족하면 안됩니다.

그런데 거짓 것들은 나를 그렇게 만들어 간다 그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조심해야 합니다.

 

말씀을 정돈합니다.

우리는 거짓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거짓 것이라는 것은 사람일수도 있고, 나를 속이는 환경일 수도 있고, 마귀일 수도 있고,

세상적인 조건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에 우리는 속는다 그 말입니다.

그러면 안 되는데 왜 그러면 안 되는냐

첫 번째 우리를 끌어들여서 미혹하고 속이기 때문에 안됩니다.

두 번째 심판과 멸망을 당하기 때문에 안됩니다.

세 번째 육신대로 행하게 만들기 때문에 절대로 안됩니다.

날마다 내 눈에 보이는 것 따라가지 말고 내 옆에, 내 앞에,

내 안에 계시는 주심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정말 참된 예수를 따라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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