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설교〓/곽선희 목사 설교

교회의 속성(사도행전 9장 26절~31절)

by 【고동엽】 2023. 2. 5.
처음 목차로 돌아가기

교회의 속성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의 제자됨을 믿지 아니하니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본 것과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던 것을 말하니라 사울이 제사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형제들이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니라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사도행전 9장 26절~31절)


고등학교3년생이 부모님의 성화에 상담을 합니다. 목사님과 함께 만나서 상담을 하려니 떨리는 게 그가 아니라 목사님입니다. 그래서 부지런히 준비를 했다고 합니다. 잊어버린 상담학을 뒤적거리고 기도로 준비를 하기도 하고 한참을 그렇게 하는데 혹시 몰라 그래서 이성의 문제의 책을 뒤지기도 하고요 한참을 합니다. 그런데 정작학생이 와서는 떡하니 묻는 게 목사님 천국과 지옥은 있는 겁니까? 그렇게 질문을 하니 이 목사님 다시 물어 보십니다. 그건 왜 물어보냐? 어려서 지금까지 매일 천국이 있는 세상보다 살기가 좋다는 그곳에 안 가려고 애를 쓰는 것을 보면 좀 이상 하자나요? 그러니 그게 있는 게 확실은 합니까? 그렇다면 내가 진실하게 살아보고 싶습니다. 여러분 천국이 있는 자의 삶을 지금 사는 겁니까?
인생이 제대로 살려고 한다면 가치 중심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계속해서 일어나는 이유는 다른 곳에서 찾으면 그거 아닙니다. 여기서 찾아야 합니다. 천국이라는 가치에 목숨을 거는 겁니다. 오늘의 분문의 사람 사도 바울이 그런 경우입니다. 그의 가치는 이제 완전히 옮겨진 겁니다. 저기에서 살 때는 열심히 천국을 가치 중심에 두고서 사는 사람들을 잡으러 다닙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게 아닙니다. 자기도 거기에 모든 것을 두고서 삽니다. 여기에 부흥의 길이 있고 교회에 아름다움이 일어나는 겁니다.
저 유명한 인도의 정신적, 민족적 지도자였던 간디는 독실한 예수 숭배자이면서도 정작 기독교인은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그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 숭배하면서 왜 전형적인 교인이 되지 않고, 교회에 나가지 않습니까?" 그는 그 때마다 입버릇처럼 이런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예수는 좋으나 교회는 싫습니다." 깊이 새겨들어야 할 말입니다. 그가 교회에 안 나가는 이유 가운데 이런 말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의 친구 중에 안드루스라고 하는 영국 선교사가 있었는데 간디는 그와 인간적으로 매우 친했고, 그에게 전도를 받고, 설교도 듣고, 성경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주일날 간디는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배당 문지기가 그를 유색인종이라고 해서 밖으로 내쫓았습니다. 그 후로 그는 교회에 다시 나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요새 우리는 일련의 비도덕적이요 반인륜적인 많은 사건들을 접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마음이 어지럽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묻습니다. 무슨 문제 때문에 이런 일이 있느냐고 말입니다. 여러분, 어찌 이런 일이 있습니까? 가정문제입니까, 사회문제입니까, 경제문제입니까, 정치문제입니까, 분배문제입니까?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이런 겁니다. 성경이 무엇을 말씀을 하시는 가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확실한 대답은 이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복음을 듣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너나할 것 없습니다. 누구든지 복음을 듣지 못할 때에 그 민족이든, 개인이든 이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복음이 모두의 가슴에 가장 높은 자리에 두고서 산다면 이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습니다.
우리는 한 죄인을 봅니다마는 소위 정치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해가면서 정치가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습니까? 러시아의 그리스정교에서 책임질만한 높은 자리에 있는 분의 말입니다. 구소련은 공산주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서 1년에 1백만 명씩을 숙청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엄청난 사건을 다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정치한다는 사람들이 무서운 일들을 저지르지만 이런 것들은 다 가려집니다. 우리나라는 다릅니까? 아니지요 자기들의 정원을 연장하는 도구로서 비밀경찰을 두고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어야 했습니까? 뿐만 아니라 목하 우리 앞에 있는 사건들이 지금 우리의 마음을 많이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 누구든 복음을 듣지 못했기 때문이요, 둘째는 복음을 전하지 않았기 때문이요, 셋째는 우리의 행위와 우리의 사랑으로, 우리의 선행으로 증인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유명한 말이 있지 않습니까? '누구든 한 사람의 진실한 교인을 만나고야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 모처럼 한번 만난 교인이 가짜 교인이라면 믿지 않던 사람은 실망해버리고 맙니다. 다시 교회로 안 돌아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참 그리스도인으로 나타나지 못하고, 생활을 통하여 증거 하지 못한 데에 원인이 있습니다. 로마서 10장 14절은 말씀합니다.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일을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지 않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 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저는 여기에 한 가지 더 말하고 싶습니다. '복음을 듣지 못했으면 어떻게 사람이 되리요'---인간화의 문제는 복음화의 문제와 직결된 것입니다. 복음 없이는 사회도, 개인도, 민족도 절대로 바로 설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신일이 다른 것이 없습니다. 복음을 전하신 겁니다. 그게 답니다. 다른 것이 있었던 게 아닙니다. 천국이 가까워 왔다. 그러니 ...자 너희의 가치를 땅에서 옮겨라 어디로요? 천국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하신일은 기쁜 소식을 너희에게 알린다. 그런데 너희의 가치 중심을 옮겨라 천국으로 그것을 옮기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 소식을 듣지를 아니하고서 어떻게 믿고 알 수가 있는가를 말씀을 하는 겁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교회에 평안히 든든히 서가는 방법입니다.
신문기자가 유명한 구세군 창립자인 윌리엄 부스 대장에게 물었습니다. "다가오는 미래에 닥쳐올 가장 큰 위험은 무엇이겠습니까?" 마침 윌리엄 부스는 나이가 많아 임종을 가까이 두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신중하게 대답했습니다. "이제 세계가 직면하게 될 가장 큰 위험은 중생 없는 용서를 전하는 철학적 기독교입니다. 추상적인 지식만을 전하는, 말만 하는 철학적 기독교,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리스도 없는 교회입니다. 교회라고 하지만 그 교회에 가서 그리스도를 만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 없는 정치, 지옥 없는 천국을 말하는 잘못된 교리, 이런 것들이 앞으로 문제될 것입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오늘의 우리가 그러한 문제에 부딪히고 있습니다.
교회가 무엇입니까? 말씀과 성령입니다. 전해지는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성령 안에서 중생의 역사가 일어나고, 그리스도의 생명력을 체험할 수 있다면 어느 교회든지 그 교회는 부흥할 것입니다. 틀림없습니다. 그러면 교회는 반드시 부흥합니다. 그것이 교회의 속성입니다. 돌아가신 한경직 목사님께서 언젠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보았습니다. "교회는 싸움만 안하면 부흥하지요." 그렇습니다. 최소한 분쟁만 하지 않아도 교회는 부흥합니다. 교회는 부흥하게 되어 있습니다. 부흥할 수밖에 없는 생명체이니까 말입니다. 독일의 신학자 본훼퍼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그리스도는 교회 공동체로 실존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유명한 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살아 역사 하셔서, 그래서 교회입니다.
자,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를 배우고, 그리스도를 모시고, 그리스도를 추구하고, 그리스도를 닮고…… 교회는 단지 이런 곳이 아닙니다. 이것은 철학적 교회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institute에 불과합니다. 사실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우리와 함께 하시고, 그가 당신의 사람들을 고용해 역사 하시고, 그가 당신의 사람들을 선택하시고, 그가 함께 친히 역사 하셔서, 그래서 교회입니다. 현재적이요 종말론적인 생명력으로 그리스도께서 역사 하십니다.
여러분 실은 교회에 꼭 있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잘 살아도 돈이 많은 국가라고 해도 다 선진국이 되지는 못합니다. 돈이 많아서 선진국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돈은 중동 산유국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런데 그들은 선진국이라고 하지를 아니 합니다. 그냥 산유부국이라고 합니다. 그게 답니다. 선진국이 되려면 여러 가지 충족여건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재정의 넉넉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에 더하여 문화적 역량이 있어야 합니다. 문화가 없으면 선진국이 되지를 못합니다. 그리고 하나가 시민의 도덕성입니다. 도덕성이 없으면 선진국이라고 부르지를 아니합니다. 건물이 있다고 다 교회는 아닙니다.
오늘의 본문을 보면 초대교회의 한 단면이 나타납니다. 여기서 우리는 교회의 속성을 읽을 수 있습니다. 본문 31절은 "그리하여"라고 말씀합니다. "그리하여……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수가 더 많아지니라---굉장한 말씀이 아닙니까? 또한 이렇게도 말씀합니다.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들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저들이 뭘 굉장하게 해서 부흥됐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분명히 이해하세요. 초대교회는 오순절 성령이 충만한 교회입니다. 성령만 충만했던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유무상통했고,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했고, 온 교회가 사랑으로 넘쳤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핍박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됩니다. 성령 충만한 교회에 핍박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예수 믿으면 잘살고, 행복하고, 번영하고, 그래야 되겠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초대교회는 깨끗하게 예수를 잘 믿었는데, 야고보 사도는 순교했고,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박해자들이 살기등등해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모조리 잡아 죽이려고 하니까 다 도망쳤습니다. 요샛말로 난민이 된 것입니다. 피난민이 되고, 이산가족이 되고, 재산몰수 당하고, 이리저리 쫓겨서 다른 나라로 가기도 하고……띠 자, 이런 형편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것을 어떻게 이해하겠습니까? 이것, 큰일 난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초대교회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흩어지는 것은 강압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것은 자발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 핍박을 선교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이 큰 환난을, 이 가난과 어려운 고통을 저들은 창조적 기회로 소화했습니다. 이 어려움을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고, 이 어려움을 통하여 전도하고 선교했습니다. 이렇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 저들을 통하여 큰 역사를 이루신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께 집중을 한다는 겁니다. 어느 교회든지 부흥을 프로그램이 좋아야 하고 무슨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그게 아닙니다. 어떤 순간에도 오직 그리스도께 집중을 한다는 겁니다. 그게 중요해요. 그리스도를 집중한다는 것은 언제나 그리스도를 닮아서 일을 한다는 겁니다. 그게 중요합니다. 교회가 그리스도께 집중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러니 초대교회는 변화가 일어납니다. 오늘의 본문에 나타난 대로 교회를 핍박하던 괴수 사울이라는 청년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나고는 확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변화---굉장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핍박자가 복음 전도자가 된 것입니다. 세상에 사람이 달라진 것입니다. 요새 보면 탤런트들이 옷 하나 갈아입고 나서 변신이라고 합디다마는 무슨 머리 한번 자르고 옷 바꿔 입었다고 변신입니까? 어쨌든 이런 인간개혁, 한 사람이 완전히 변하는 이런 일에 대해서는 사도 바울만한 사람이 다시없을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한, 그토록 극악했던 사람이 이제서 확 돌려져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변화, 이 중생, 바로 이것이 교회입니다. 중생의 역사가 있어야 교회입니다.
선배목사님께 들은 이야기입니다. 결혼한 지 20년이나 된 부부가 있습니다. 그 남편은 교회에 나온 지 불과 한 달밖에는 안됐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목사님을 찾아와서 이런 딱한 얘기를 합니다. "목사님, 제가 좀 성질이 나쁩니다. 그래서 어렵사리 지내왔는데 이제 와서 아내가 나와 안 살겠다고 도망을 갔습니다. 어린애가 둘이고 이십 년 동안 살았는데 어떻게 하나, 저는 너무 답답해서 교회에 나왔습니다. 막상 교회에 나와 보니 제 자신이 아주 달라진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 아무리 아내한테 가서 다시 돌아오라고 사정을 했지만 제가 달라진 것을 믿어주지 않습니다. 제가 결심하고 맹세하기를 손바닥 뒤집듯 잘하는 사람이라서 믿을 수 없다고 말입니다. 그러니 목사님께서 제 아내를 좀 만나서 설득해주세요." 그래서 목사님이 커피숍에서 그 아내를 만나 사정을 해보았답니다. 당신 남편이 지금 달라졌다는데 같이 살라고 말입니다. 그랬는데 아주머니가 아주 묘한 말을 합니다. "예수가 누군지 몰라도 그 사람은 사람 되기 글렀습니다. 내가 이십 년 동안 그 사람과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갖은 노력을 다 했는데도 안됐습니다. 맹세도 시키고, 각서도 쓰게 하고, 별 짓 다 해봤는데도 안 되는걸요." 그래서 이렇게 말했답니다. "내가 좀 사정을 합시다. 당신도 한 달 동안만 교회에 나와보세요. 그리고 나서 다시 한번 얘기해봅시다." 언젠가 미국의 모처에 집회를 인도하러 갔을 때에 보니, 거기에 그들 내외가 있었답니다. 그 교회 집사가 되어서 그 교회 목사님 말씀이 "이 분들은 우리 교회 집사라기보다 사찰입니다. 얼마나 궂은일을 잘하는지 이 내외는 우리 교회의 보배입니다."
여러분, 이게 교회입니다. 교회에 나와서 달라져야 교회이지요. 교회 20년을 다녀도 항상 짜증내는 것은 마찬가지요, 예수를 그렇게 오래 믿었다는데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어떤 분이 이런 얘기를 합니다. 자꾸만 말썽부리고 짜증내는 아내가 남편보고 교회에 나가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남편이 묻습니다. "교회 나가면 천당 간다며?" "그렇지요." "그러면 난 지옥 갈래. 당신 가는 데는 안가겠어." 이 정도면 무슨 전도가 되겠습니까? 그 교회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생각해보세요. 교회 성장이 무슨 굉장한 얘기가 아닙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transforming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창조적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인생관, 세계관, 습성, 생활태도, 가치관이 확 달라져야 그게 교회입니다. 그 능력이 오직 교회에 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달라진 사람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또 어려운 일입니다. 오늘의 본문 주제가 그것이 아닙니까? 바울이 달라졌습니다. 핍박자가 변해서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교회가 믿지를 않습니다. '아이구, 저 사람 또 무슨 음모를 꾸미려고 저 짓을 하나, 왜 교회에 들어왔나'해서 아무도 받아주지 않습니다. 믿어주지 않습니다. 그를 수용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려워진 것입니다. 그래 오늘의 본문에 보니 바나바가 이 문제를 놓고 중재합니다. 중보적 역할을 합니다. 교회가 사도 바울을 영접하도록 했다는 얘기입니다. 그것은 바울의 덕이나 바울의 인격 때문이 아닙니다. 오늘의 본문을 자세히 읽어보세요. 이것은 어디까지나 바나바의 신앙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역사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사람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사람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사람을 변화시키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사람을 통하여 이방에 복음을 전하고자 특별히 강제로 붙드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저렇게 역사 하셨습니다----이것을 믿고, 이것을 전할 때에 교회가 이 사람을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부흥합니다. 사도 바울, 그를 용서했습니다. 용서가 생활 속에서 옮겨집니다. 독일사람들의 재미있는 격언이 있습니다. "만일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용서하시지 않으면 천당은 텅빌 것이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니면 누가 천당에 가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용서하시기에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는 것입니다. 분명합니다. 교회는 회개한 자의 과거가 어떻든 간에 회개만 하면 다 용서하고, 다 수용합니다. 그것이 교회입니다.
여러분, 누가 누구를 심판할 것입니까? 누가 누구를 향하여 돌을 던질 것입니까? 교회는 넓게 용서하고, 회개한 자를 모두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영접합니다. 그래서 교회입니다.
오늘의 본문에 보니 '그리하여 교회가 평안해지고, 그리고 교회가 은혜 가운데서 날마다 성장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직도 핍박이 있습니다. 아직도 환난도 있고 어려움도 있습니다마는 저들은 주님을 경외하고, 살아 계신 그리스도의 역사하심을 믿고, 성령이 함께 하심을 믿고, 주님께서 친히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하는 그리스도 현존의 신앙이 있어서 그 교회는 날마다 새롭게 부흥하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교회의 한 일원으로서 과연 어떤 존재이며, 어떤 구성원이며, 그리고 이 교회가 어디로 향해야 하겠는가를 생각해봅시다. 이 귀한 사명을 잘 감당하는 교회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