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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어거스틴- 회심

by 【고동엽】 2009. 1. 29.
 

 

회심시리즈(1):어거스틴의 회심

 

그는 로마의 속주인 북아프리카의 타카스티에서 354년에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 모니카는 경건한 기독교인이었던 반면에 아버지 패트리셔는 어거스틴의 유년시절 내내 이교도로 있었다. 어거스틴은 이러한 영적인 어머니와 육적인 아버지의 혼합된 생애를 살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사도바울과 공통점이 많은 그는 극적이고 드라마틱한 회심의 경험을 했다. 이 회심 경험은 뒤이어지는 그의 생애와 사상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는 소위 초대교회의 가장 위대한 "교부"였으며, 중세 초기의 한 발자취를 남겼다. 그러므로 교부신학과 중세신학은 어거스틴의 신학체계 하에서 조화를 이룬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주요한 두 가지 신학적 체계는 죄와 은혜이다. 자신의 경험 속에 있었던 이 두 가지의 갈등이 회심 이후에 모든 저술의 주요 주제가 되었다.  

 
수사학 교사로서 점차 성공하게 된 그는 제국의 수도인 밀라노로 가서, 그곳에서 암브로스의 설교를 듣게 되었다. 암브로스는 어거스틴이 전에 듣지 못했던 아주 정교한 설교를 했다. 어거스틴의 친구들은 그에게 모든 것을 버리고 사막으로 떠난 수도사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던 중에 그는 386년 8월 말경의 어느 오후에 성경을 펴놓은 채 밀라노의 한 정원에 있었다. 그는 그때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그때에 갑자기 한 목소리가 가까이 있는 곳에서 나에게 들려왔다. 그리고 일종의 노랫말이 계속되었다. '성경을 읽어라 성경을 읽어라' 즉시 나는 성경을 펴서 열었다. 그때에 침묵 속에서 나에게 다가오는 구절이 있었다. 즉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나는 더 이상 읽기를 원치 않았다. 더 이상 읽을 필요가 없었다. 내가 이 문장의 끝에 도달하자마자 나의 가슴은 확신의 빛으로 가득 찼고 나의 의심의 그림자는 모두 일소되었다."


이런 회심체험 후에 그는 곧 세례를 받았고 몇몇 친구들과 함께 기도와 연구의 삶으로 은신했다. 어거스틴 자신이 쓴 회심기사는 더 이상의 주석적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10년이 지난 다음에 그가 썼을지라도 그 회심 경험의 강렬함 때문에 그는 그것을 생생하고 자세하게 기술했기 때문이다. 아래의 내용은
그의 회심에 대한 전문이다.  


“나는 이와 같이 병들어 있었다. 그리하여 자신을 매섭게 꾸짖으며 괴로워하였다. 사슬에 이리 눌리고 저리 넘어지며 몸부림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그런 상태에 묶여 있었다. 하나님은 엄하신 중에서도 온유하시고 두려움과 부끄러움이라는 두 개의 채찍을 가지시고 나의 가장 깊은 곳에 오셔서 때리시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곧 이루어 주소서, 곧 이루어 주소서." 그리하여 이러한 나의 소원을 말뿐만 아니라 결심으로 옮기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행할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었으나 아직 행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과거의 일들을 되풀이하고 있지는 않았으나, 제 본래의 위치에 가까이 가면서 머뭇거리고 있었다. 나는 다시 기운을 내었으나 역시 모자랐다. 나는 진리를 꽉 붙잡으려고 하였으나 아직 거기까지 미치지 못한 채 죽음과 삶의 갈림길에서 망설이고 있었다. 이미 몸에 배인 옛 습관이 아직 길들지 못한 선보다 나를 더 억누르고 있었다. 나는 새사람이 되는 이 시점에 더 접근하면 할수록 옛 악습의 회오리가 내 마음속에 세차게 불어 닥쳐왔다. 그러나 나를 뒤로 물러서게 하지는 못하고 도망치게 하지도 못했다. 다만 나는 허공에 떠 있었다.


내가 저지른 옛날의 헛된 일, 어리석은 일들이 나의 육체의 옷자락을 붙들고 소근댔다. "우리를 두고 어디로 가려느냐?" 또한 이제는 영원히 그대와 함께 있을 수 없단 말인가?" "이제부터는 이런 모든 일들이 모두가 그대에게는 당치도 않다는 말인가?" "주여 이 일 저 일이라고 소근거리는 것이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원하건대 주여, 당신의 자비가 그것들을 당신의 종의 영혼에서 멀리 하게 하옵소서."
그런데 결국 그러한 것들이 나의 발길을 더디게 하였다. 나는 그런 악에서 몸을 빼고 주님을 향해 몸부림치며 줄달음쳤을 때 끈덕진 옛 악습들이 나에게 "이것 없이 내가 어떻게 살겠니?"라고 외치는 바람에 나는 머뭇거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이미 맥이 풀려 있었다. 내가 얼굴을 쳐들고 몸을 돌리려던 곳에서, 내가 가기를 두려워하던 그 길에서, 정결이 매우 위엄 있게 걸어 나왔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에게 단정한 얼굴에 맑은 웃음을 띠고 오라고 손짓하였다. 그러고 나서는 나를 품에 안으려고 팔을 벌리는 것이었다. 그 거룩한 팔구비에는 많은 어린이들과 젊은이들 그리고 점잖은 과부들과 늙은 동정녀 그 밖의 여러 연령층의 사람들이 있었다.그들은 한결 같이 정결하였고 주님을 베필로 모시고 있었기 때문에 기쁨의 자녀들을 많이 낳은 어머니가 되어 있었다.


그들 중에 누가 조롱하듯 웃으며 말했다. "이런 성도들이 한 일을 네가 못하다니 말이 되나? 저들은 제 힘으로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야. 그들의 하나님께서 그들과 행동을 함께 하신거야. 그대는 어찌하여 서지도 못하는 주제에 자기에게만 매달리고 있나. 어서 그분에게 그대를 맡기게. 두려워할 것이 없어 그분은 그대가 넘어질까봐 염려하여 보살펴 주실테니 마음 푹 놓고 그대 자신을 맡기세 그러면 그대를 구원해 주실 테니까?"


나는 부끄러워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나의 어리석은 속삭임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여 머뭇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 말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이 땅의 더러운 짓거리의 말을 듣지 말라" 그것이 그대에게 즐거움으로 말하지만 쾌락은 그대 하나님의 법과 같지 않느니라. 이러한 갈등은 계속 되었다. 그것은 오직 내가 나 자신과 싸우는 싸움이었다. 알리피우스는 잠시도 내 옆을 떠나지 않고 나의 흥분이 가라앉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내 자신의 그윽한 마음속에서 깊은 상념이 나의 비참한 모습을 이끌어내어 마음에서 폭풍이 일면서 눈물이 비오듯하게 하였다. 목놓아 실컷 울려고 알리피우스를 피해 자리를 떴다. 마음껏 울려면 혼자 있는 것이 좋을 듯 하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는 될 수 있는 한 멀리 떠나 아무도 방해받지 않는 곳으로 나아갔다.


이러한 나의 심정을 그는 알아차렸다.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는 기억이 없으나 목소리에 벌써 울음이 섞여 있었다. 나는 어느 무화과나무 아래 주저앉았다. 거기서 울음을 터트리기가 무섭게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 내렸다. 이것은 당신께서 즐겨 받으시는 제사입니다라는 말을 하나님께 아뢰었다. "주여 언제까지 진노를 그치지 않으시렵니까? 원컨대 옛날에 저지른 저의 죄를 기억하지 마옵소서." 나는 그런 죄악에 매어있는 것 같아 애처롭게 부르짖었다. "주여 언제까지 내일로 미루시고 저의 더러움을 씻어주지 않으시렵니까?"


나는 이렇게 아뢰면서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져 슬피 울었다. 그때 이웃집에서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집어서 읽어라 집어서 읽어라"하고 소년인지 소녀인지 분간하기 힘든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러자 나는 곧 얼굴색이 변하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어린이들이 무슨 놀이를 하면서 저렇게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그런 노래는 전에 전혀 듣지 못했던 노래였다.


나는 울음을 그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노래 소리는 하늘에서 들려오는 것으로 성경을 펴들고 첫눈에 보이는 말씀을 읽으라는 확신이 들었다. 안토니우스가 어느 때 복음을 익다가 "너는 가서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 보화를 얻으리니 그런 다음에 나를 따르라"라고 하신 말씀이 자신에게 하는 말씀인 줄 알고 즉시 그 분부대로 하고 주께 돌아왔다는 말을 전에 들은 적이 있었다. 나는 알리피우스가 앉아 있는 곳으로 급히 돌아갔다. 아까 전에 일어나 이리로 왔을 때에 사도 바울의 서간문을 두고 왔기 때문이다.


내가 그 성경을 집어들고 첫 장을 펼쳤을 때에 첫눈에 들어오는 대목은 이랬다.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나는 더 이상 읽어나갈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이 말씀을 읽는 순간 나의 마음속에는 기쁨이 넘치고 모든 어두움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나는 책갈피에 표시를 해놓고는 알리피우스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도 역시 내가 모르고 있었던 자신의 심정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었다. 그가 나에게 성경에서 읽은 대목을 보여달라고 하기에 책을 펴주었다. 그때에 그는 내가 읽은 구절보다 아래 구절에 눈길을 주었다. 그것은 "믿음이 연약한 자를 마땅히 받아들이라"(롬 14:1)는 말씀이었다. 그는 그 구절을 자기를 가리켜 하신 말씀으로 여기고 나에게 설명을 해주는 것이었다. 그는 곧 이 말씀에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전부터 나와 선에 대한 관계에서 의견 차이를 보이던 그가 스스로 자기의 의사를 굽히고 나와 견해가 일치하게 되었다.


우리는 그 길로 어머니에게 찾아갔다. 그리고 되어진 일들을 모두 이야기했다. 어머니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녀는 하나님을 찬양했다. "우리 가운데서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는 모든 것을 넘치도록 능히 행하실" 하나님을 높이 찬미하였다. 어머니가 나를 위하여 슬픔과 눈물로 간구하던 것보다도 훨씬 더 많은 은총을 하나님께서 나에게 허락해 주신 것을 어머니는 분명히 알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돌이키게 하셨음으로 나는 여자나 이 세상의 속된 욕망을 모두 집어 던지고 오직 주께만 그전에 어머니에게 환상 가운데서 보여주신 그 신앙의 반석 위에 굳건히 서게 되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머니의 슬픔을 즐거움으로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어머니가 바라던 것보다 더욱 풍족하게 해주셨고 나의 육체가 바라던 것보다 더욱 순결한 기쁨을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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