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문맹의 시대를 살던 대다수 신도들은 성직자들의 말이 곧 진리인 줄 알았다. 성서를 신학 전공자들의 전유물로 간주하는 풍토가 워낙 컸고 또한 각자 먹고 살기에 바빠서 인간이 만든 교리에 별 의문을 갖지 않았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갈수록 교회가 교회답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고 점차 성직자 중심의 종교로 변질하게 되자 그들의 해석과 주장을 갈수록 의심하게 되는 심각한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종교회의가 결정한 정경
과연 현재의 성경(Bible)은 정말 통째로 하나님의 계시일까? 과거 여러 종교회의에서 다수결로 선정된 책들이 정말 절대적으로 정경(Canon)일까? 여기에 약방 감초처럼 등장하여 인용되는 구절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3:16)"라는 구절인데 이는 사실 우리를 아주 슬프게 웃기는 인용이다.
당시는 외경이나 위경을 포함하여 소위 '성문서(Scripture)'로 분류되던 책들이 제법 많았다. 오히려 마리아복음이나 도마복음 등 정경이 되지 못한 다른 복음서들이 더 많았다.
그런데 디모데후서에서 사도바울이 표현한 "모든 성경"의 범위는 대체 어디까지를 포함할까. 일단 우리가 아는 4개의 복음서는 제외다. 디모데후서는 마가복음이나 마태복음보다도 훨씬 전에 쓰여졌기 때문이다.
그러면 일단 구약 성경이 우선 포함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또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사도바울의 시대엔 구약 성경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누구도 단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흔히 '70인역'이라고 알려진 헬라어 역본성경에는 많은 외경들이 포함되어 있었고 AD 90년경의 얌니아(Jamnia 지금의 Yavneh)에서 있었던 종교회의에서 유대교 구약 정경이 정해진 것도 바울 후대의 일이다. 그러니까 당시 사도바울이 언급한 "모든 성경"의 정확한 목록은 지금 누구도 모른다.
또 다른 문제는 심지어 그 "모든 성경"이란 목록에 자신의 편지인 디모데후서가 포함되었는지도 큰 의문이다. 어느 경우든 이는 논리상 큰 헛점이 발생한다.
순환논리의 함정
만일 디모데후서가 거기에 포함되었다면 바울이 자기 글을 스스로 성경이라고 말한 셈이어서 도무지 상식적이지 않다. 게다가 이는 사실상 '순환논리'인 셈이다. 마치 이런 식이다. "성경은 하나님말씀이다. 왜 그런가? 성경에 그렇게 쓰여있으니까". 좀 더 부연하자면 내가 아무 책이나 하나 쓰고 나서 "내 책은 하나님말씀이다"고 주장하고, "왜 그런가?" 물으면, "하나님말씀인 내 책에 그렇게 쓰여있으니까"하는 식의 황당한 논리다.
즉 바울이 자신의 편지를 미리 성경에 포함시켜 놓고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는 주장은 논리상 그 편지가 하나님말씀이라는 근거가 될 수 없다는 거다.
반대로 디모데후서가 그 "모든 성경"에 포함되지 않을 경우 이 또한 매우 우습게 된다. 이 경우 디모데후서는 성경이 아니고 그 성경도 아닌 책에서 주장한 내용은 신적 계시로 믿을 만한 근거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디모데후서를 예로 들었지만 '축자영감설'을 주장하는 다른 구절들도 마찬가지로 심각한 논리의 모순을 가지고 있다. 아마 일반 대학에서 이를 논리적으로 토론한다면 상식을 지닌 그 누구도 개신교의 여러 성경영감설을 쉽게 수긍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종교라는 맹신 울타리에서는 이런 유치한 순환논리가 대충 어물쩡하게 허용되고 있다. 바로 '신앙'이나 '신조'나 '전통'이란 이름의 종교적 포장지에 의해 눈이 멀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손에 들고 있는 성서를 존귀히 여기고 그것을 하나님말씀으로 믿는 건 개인의 자유다. 하지만 그것이 모두 정말 하나님말씀인지, 부분적으로만 하나님말씀인지, 아니면 대부분 인간의 작품인지는 그 누구도 모르고 그 어떤 확실한 근거도 없다. 이는 오늘날 가톨릭, 개신교, 그리스정교, 그리고 에티오피아정교의 정경 갯수가 서로 다른 것을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성서 오류'가 '계시 오류'는 아니다
성서에 오류가 존재하는 이유는 사본 필사 오류, 교권적 사본 변개 오류, 원본 편집 오류(비정경 자료 삽입), 그리고 정경 선정 오류 등이 있다. 설사 하나님의 계시에는 본래 오류가 없더라도 그것을 전달하는 문서에는 인간에 의한 오류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의 성서 본문 일부분이 어느 특정 시기 누군가에 의해 고의적으로 변개되거나 추가되었어도 그것을 족집게처럼 가려낼 방법이 별로 없다. 그런 오류들은 지금 당장 과거로 돌아가서 검증할 수 없는 사실상 거의 해결 불가의 문제다.
나는 지난 여러 글을 통해서 성서 본문의 자체 오류를 명확하게 지적한 바가 있다. 그런 오류들은 단순히 사본 오류나 필사 오류가 아니라 본문 자체가 다른 성서의 기록과 서로 상충하는 경우로 누가 보아도 분명한 문맥 전체의 논리적 오류다.
더구나 그런 오류들이 적어도 수십 개 또는 수백 개 이상이다. 이건 신학의 문제가 아니라 상식의 문제다.
굳이 예를 하나만 들자면, 가룟 유다의 죽음에 대해 마태복음과 사도행전이 서로 아주 다르게 서술하고 있다. 적어도 둘 중에 하나는 사실이 아닌 기록이다. 그래서 이는 신약 정경들이 과연 제대로 선정된 것인지 또는 제대로 전달된 것인지 우리에게 묻고 있기도 하다. 현재의 성경엔 분명히 하나님말씀(하나님의 계시)이 아닌 것도 불순물처럼 들어있다는 사실엔 틀림없다.
성경(Canon)과 성서(Scripture)
지금은 비상한 시기다. 과거 교조적 신학자들에 의해 유통된 '성경무오설'이라는 종교적 우상을 타파하고 바른 진리를 추구해야 할 때다. 사실 '성경'이란 용어 자체가 다분히 모순적이다. 현재의 성경이 절대적으로 정경이라는 증거는 세상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알고 있는 건 '성경(거룩한 정경)'이 아니라 그냥 '성서(거룩한 문서)'다. 만일 어떤 책에 오류가 있다면 그건 문서이지 정경이 될 수는 없다. 그래서 "성서 속의 부분적 오류들도 무조건 모두 진리다"라고 주장하는 자세는 신앙이 아니라 맹신이다.
만날 철지난 '축자영감설'이나 외치며 이미 사망한 화석 교리를 가지고 신도들을 맹신화하는 무리들에게 속아서 돈 열심히 바치고 알량한 복이나 받을 궁리나 할 때가 아니라는 거다.
하나님의 진리는 인간 학문의 산물이 아니고 하나님 계시의 결과다. 성서의 어느 부분이 어디까지 진짜 하나님말씀(정경)인지 분별하는 건 결코 특정 교단의 회의나 신학자들의 다수결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정경이란 사람이 표결로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다만 우리는 진짜 '하나님말씀'인 특별계시가 여러 성서들 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만을 알 뿐이다. 그래서 오염된 원광석 속에서 금강석을 추출하는 광부의 마음이 필요하다.
진실이 왜곡되면 진리를 알 수 없다. 진실을 알아야 진리를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종교 근본주의자들의 축자영감설이나 성경무오설은 진실이 아니다. 그러니 제 정신을 가진 성도라면 눈을 크게 뜨고 자기 영혼의 문제를 가지고 진지하게 고심하고 묻고 찾고 기도해야 옳다.
내가 생명을 걸고 믿어야 할 존재는 '사람을 만든 신'이지 '사람이 만든 신'이 아니다.
신성남 / 집사, <어쩔까나 한국교회> 저자
출처 : 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4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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