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나라 역사적 배경 바른이해
신약의 선포의 중심 주제는 하나님의 나라이고 특히 공관복음은 전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주제에 의해 지배된다. 예수의 선포의 첫 마디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였고, 그의 선지자 세례요한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고 있음을 분명히 하였다.
하나님의 나라 혹은 천국, 혹은 나라 라는 용어가 마태복음에는 56회, 마가복음에서는 21회, 누가복음에서는 46회나 나타난다. 예수의 설교의 중심은 하나님의 나라였고, 그가 사용한 설교법인 비유로 그는 주로 하나님의 나라의 성격과 본성에 관하여 가르치셨다.
메시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세상에 오심이 곧 하나님 나라 도래이기 때문이다. 그가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 의하여 세례를 받았을 때 성령으로 셰례를 받으므로, 메시야 곧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임명되셨다. 그의 성령의 세례는 메시야 임직식이였다. 그리스도는 이렇게 메시야 곧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일을 시작셨으므로 그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특별한 의식을 가졌다. 따라서 그의 이해에 의하면 하나님 나라가 그의 인격에서 실재가되고 영적 실체가 되었다. 하나님께서 예수의 인격에서 친히 다스리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였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서 친히 다스리기 시작하였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사탄의 왕국을 파멸하고, 죄를 제거하므로 하나님 나라를 확립하셔야 했다. 그가 자기의 죽음과 부활로 죄과의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완전하게 확립하기 전에도, 그는 사탄의 권세를 제어하고, 마귀를 추방하며, 사탄의 권세로 당하는 질병등의 고통을 해결해 주시므로, 사람들을 사탄의 권세에서 해방하셨다.
뿐만 아니라 그가 친히 죄를 사해 주고 새 생명을 주었다. 그의 권세로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에 입적하였다. 즉 사탄의 권세와 사탄의 나라는 궤멸되기 시작했고, 하나님 나라는 세워지기 시작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사 세상 죄과를 속량하시고 나라와 백성들과 종족들 가운데서 사시사 사람들을 하나님 아버지께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시므로 하나님의 나라가 본격적으로 확립 되었다. 그리스도의 속죄의 사역으로 성령께서 사람들 가운데 오시므로 하나님께서 실질적으로 백성들을 소유하시고 직접 다스리기 시작하셨다.
이 모든 일은 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메시야 곧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서 하신 일이고 또 하실 일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함께 도래하였고, 그의 구속의 사역으로 확립되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가르치셨다. 그러나 사도 요한과 다른 서신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개진하였다. 이것이 바울과 다른 신약 부분들에 하나님 나라의 언급이 적은 이유이다. 그래도 신약에 하나님 나라, 천국 혹은 나라들의 용어가 162회 나타나고 있다.
하나님 나라의 논의의 배경
‘하나님의 나라’가 신약의 중심 주제를 이루고 특히 공관복음을 지배하여도 신학계의 주의가 하나님 나라에로 옮아 온 것은 19세기 말엽부터 20세기 초엽까지이다. 19세기의 지배적인 예수의 연구와 예수상은 윤리적 종교적인 측면의 강조였다. 예수는 이상적인 윤리의 교사요 또 천재적인 종교가였다. 그는 특히 사랑의 화신이었으므로 우리가 본 받고 모방할 이상으로 우리 앞에 서 있다. 즉 19세기 말엽까지 예수의 이해는 서구의 기독교화 된 문명의 세계에 통용되고 적용될 수 있는 내재적인 이해이고, 서구 문명 세계와 동일 선상에 서는 그런 예수상이였다.
이런 윤리적이고 내재적인 예수의 이해에 반동이 생겼다. 그것은 1892년 종말론적 운동의 아버지라고 할 요하네스 바이쓰(Johannes Weiss)의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예수의 선포(Die Predgt Jesus Vom Reiche Gottes)란 책의 출판으로 시발되었다. 이것은 릿출(Albrecht Ritschl)이 가르쳐온 하나님 나라의 관념에 대한 반대로 시작 한다. 릿출에 의하면 하나님 나라는 예수가 설립한 윤리작 종교적 공동체였고, 법을 시행하기 원하는 모든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참조; Herman Ridderbos, the comming of the Kingdom,lnho du cfi on, Xii) 이 하나님의 나라는 완전히 내재적이고 인간의 활동과 진보에 의해 진보하는 그런 나라였다.
그러나 바이쓰와 그의 후계자 슈바이쳐(Albert Sscheitzer)에 의하면 예수의 선포에는 종말론적인 긴장이 지배하였다. 예수는 통상 생각해 오듯 그런 친숙한 존재라기 보다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생소한 사람으로서, 종말론적인 급박한 기대속에 산 사람이었다. 그는 후기 유대주의적 묵시 문학적인 배겅 속에서 살았던 사람으로서, 예수의 이해에 의하면 하나님 나라는 순전히 미래적이고 종말론적인 사건으로서 햔 세계의 질서가 붕괴되고 도입 될 새 세계이기 때문에, 릿츌의 내재적인 神國이해는 배척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슈바이쳐도 예수를 그의 종말론적인 생소함과 긴장 중에서 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구체적인 역사적인 인물로서 예수를 우리 시대에는 낯선 사람이다고 슈바이쳐는 주장한다.(Abert Schwietzer,The quest of the Historical Jesus, 401) 예수는 알려지지 않는 이로 우리에게 오신다고 주장한다.(Ibid, 403) 예수는 이처럼 종말론적인 분위기 속에 산 인물이었다. 세상 끝이 임박한다는 기대 속에 살았다. 그러나 이 기대가 충족되지 않자 자기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종말의 새 세계를 도입하려고 하였다. 이들 종말론적인 대변인들에 의하면 하나님 나라는 시간의 끝에 나타 날 미래의 실체이다.
이들 종말론 운동의 대변자들에 의해 사람들의 관심이 하나님 나라로 오게 되었다. 그러나 예수의 선포의 종말론적 특색에 다시 전통적인 자유주의의 윤리적인 교훈의 이해가 복합되었다. 현, 세상을 긍정하고, 그 안에서 살 윤리적 지침과 이상을 재 정립하였다. 그리하여 종말론의 개념이 시간과 역사의 끝으로 이해하던 데서 초시간적인 개념으로 바뀌었다. 역사 끝 역사의 도식이 역사, 초역사 혹은 시간 초시간의 도식으로 바뀌고, 종말은 언제든지 개인에게 임하는 것으로 보고, 따라서 결단에의 촉구로 보았다. 이 순간이 각 개인에게 종말이기 때문이다.
이 역사, 초 역사의 종말도식은 발트와 불트만등의 변증신학자들에 의해 20세기 중반 이후까지 진행되고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신약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는 종말에 하나님에 의해 최종적으로 도입되고 완전하게 설립될 것이지만, 그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과 죽음과 부활로 현 세상에 도입되었고 설립되었다. 이 나라가 결코 인간의 노력과 진보에 의해 설립왼 것이 아니지만, 하나님의 통치는 현 인류 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통치의 확립이 역사의 시작부터서 하나님께서 경륜하시고목표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작되고 진행된 하나님의 나라의 논의가 20세기를 신학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논의가 그 특색이 되게 하였다. 전통적으로 진행된 신학적 논의가 신약의 본문의 가르침에서 이탈하였어도, 사람들의 주의를 하나님 나라에 집중되게 한 공을 이루었다.(פרופסור שְׂצְליוּ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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