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와 영혼 바른이해
살전 5:23 은 인간의 구조에 대한 난해 성경 구절 중 하나이다. 영과 혼과 육이 등장하기 때문에 3분설로 이해될 수 있는 난해구절이다. 그러나 인간의 구조를 3분설로 이해하는 것은 성경 전체의 맥락과 일치하지 않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사람을 생령으로 만드셨다. 두 번의 과정을 통해서 만드셨다. 그래서 영혼과 육체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과정을 창세기에서 설명하는 것이다. 그런데 살전 5:23절에서 3분설로 근거해서 해석하면, 역으로 창세기 1장에서 한 과정이 생략된 것이 된다. 그래서 중조설(重造說, gap theory)이 등장하게 되는데, 창세기에서 생략했다는 근거는 전혀 없다. 중조설을 따르면 귀신론이 등장하게 되어 성경의 가르침과 전혀 괴리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인간은 영혼과 육체로 구성된 한 인격이다. 그러나 영혼에는 영과 혼으로 구분이 있다. 이 구분이 별개의 실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한 실체 안에 두 구분이 있다는 것이다. 이 두 구분은 다름은 아니지만 혼합이 되지 않는 한 실체를 의미한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양성의 이해에서 도출될 수 있다.
인간의 구조를 영과 혼과 육으로 나누는 것은 희랍철학의 가르침이 기독교에 도입된 것이다.
희랍철학에서는 영과 육을 상반된 요소로 보고 혼이 둘을 조화시키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이러한 중간존재는 창조주의 사역과 괴리가 있다. 영혼과 육체의 부조화는 죄로 인한 것이지, 구조의 결함이 아니다. 희랍에서 육체를 감옥으로 영혼의 모순되는 존재로 터부시한 것으로 바르지 못한 것이다. 전인격이란 건겅한 육체와 건강한 영혼이다. 육체와 영혼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다.
인간의 영혼은 하나님의 창조 작품이다. 인간의 영혼은 유전에 의해서 전달되는 것이 아니며, 선재된 어떤 영혼이 부여된 것도 아닌, 수태시에 창조되는 하나님의 고유의 작품이다. 인간의 수태까지도 하나님의 창조된 작품으로 보아야 한다.
가장 건강한 인격은 자신의 존재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것이다. 자기 존재를 있게한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것이 하나님 공경의 시작이며, 효의 시작이다. 하나님의 존재를 바로 믿는 사람은 당연히 효를 행하게 되어 있다. (유교의 효가 산자를 위한 효가 아니라, 죽은 자를 위한 효이기에... 살아서 사랑스러운 말 한마디, 물 한 잔이지 죽은 다음에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
영혼은 선재되지 않았기 때문에 '전생' 혹은 '윤회'등의 개념은 이교 사상이다. 미디어에서 전생과 윤희 등을 방영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것처럼되지만 전혀 근거가 없는 것입니다. 전생이라는 것도 재창조에 해당됨으로 전혀 논리적으로 맞지 않고, 신앙적으로 받아드를 수도 없는 낭설이다.
인간의 영혼이 바르다고 할지라도 육체가 타락하면 바른 신앙이 되지 못하다. 구원파의 교리가 죄사함을 받았음으로 육체의 죄악이 무효하다는 것은 전혀 바르지 않는 것이다. 영혼을 담지한 육체의 상태는 영혼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육체가 피곤하면 영혼의 침체가 올 수 있고, 육체의 죄악이 영혼의 심각한 타격을 준다. 그러므로 영혼의 거룩만큼 육체의 성결도 필수불가결이다.
인간의 영혼과 육체를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온전히 찬양과 감사를 드리는 인간이 가장 바른 인격을 갖은 것이다. 이것을 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의 속죄제사, 죄사함이 필연적으로 선결되어야 한다. 죄사함의 은혜없이는 나의 존재의 고귀함을 알 수 없고 아버지께 진정한 감사와 경배를 할 수 도 없다. 나의 영혼의 창조주, 나의 육체의 창조주 아버지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자. 할렐루야!(פרופסור שְׂצְליוּ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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