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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철원-개혁파 교회 바른이해

by 【고동엽】 2009. 3. 19.

 


                                    개혁파 교회 바른이해
‘교회’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함에 의해서 처음으로 신약에 등장한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라는 신앙고백에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마16:18)라고 답하므로 신약에 “교회”가 처음으로 나타났다. 그전에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표기되었고 교회로는 표기되지 안했다.

 

그 백성의 모임이 에다와 카할로 표기되었지만 아직 교회로는 표시하지 안했다. 후에 히브리어 성경이 희랍어로 번역될 때 카할과 에다가 교회로 표기되었지만 구약 자체는 백성들의 모임을 교회 에클레시아라고 말하지 안했다.  그러므로 구약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표기되어야 한다. 교회의 설립자인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를 그리스도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므로 이 고백 위에 자기의 교회를 세우기로 약속하므로 교회가 설립되게 되었다. 따라서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신앙에서만 교회가 세워지게 된다. 즉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받아 그를 자기의 구주로 고백하면 그곳에서는 언제든지 교회가 발생한다.

 

교회는 말씀의 선포 곧 복음의 선포에서 발생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증거하고 그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죽고 부활에 이르렀다고 선포하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이 생겨나고 따라서 거기에 자동적으로 교회가 발생한다. 정작 교회 설립은 예수 그리스도가 구속 사역을 이루어 성령을 파송하므로 이루어졌으니 교회는 성령이 오셔야 가능해진다. 왜냐하면 성령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시는 자이므로 그의 예수 증거에 의해서만이 사람들이 예수 믿음에 이르기 때문이다.

 

성령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할 권세와 직임을 위임받았고 그의 증거로만이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구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믿는 자들이 교회를 이룰 수 있는 것은 성령께서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 연합시키기 때문이다. 로마 교회의 주장처럼 교황과 연합하므로 교회가 되고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 결합시키시므로 교회가 된다. 그러므로 교황이 있는 곳에 교회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전파되어 그를 믿는 믿음이 있으면 교회가 세워진다.  

 

교회가 되기 위해 먼저 사람들이 불리워져야 한다. 사람들은 그냥 교회에 오도록 불리워지는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불리워진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구주로 믿도록 선포하는 것이 사람들이 부름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교회를 만드시기 위해 언제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도록 그의 이름으로 부르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듣지 못해서는 사람들이 결코 교회를 이룰 수 없다. 이렇게 교회는 사람들이 예수의 사람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부름받았기 때문에 교회 에클레시아라고 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불러내어 자기의 백성으로 삼으셨는데 이제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상과 죄악에서 불러내신다.

 

불러내어 자기의 백성이 되게 하기 위해 교회로 만드신다.  부름 받은 사람들이 교회가 되려면 그들이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아야 한다. 부름받은 것만으로는 교회가 되지 못한다. 부름받은 사람들이 교회를 이루려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그들의 죄가 용서되고 깨끗해지는 피흘리셨음을 믿으면 죄가 용서되고 깨끗해져서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  교황에 충성하고 그와 연합하므로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를 신앙 고백하므로 사죄가 이루어져 새사람이 된다. 이 일 곧 사람들로 예수 그리스도를 신앙고백하도록 하는 일도 성령이 하신다.

 

성령이 인도자이므로 교황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성령의 가르침이 진리이고 그리스도를 사람들에게로 인도하기 때문에 성령으로 충족하여 교황의 역할을 불필요하게 만든다.  구속받은 백성들이 교회가 되려면 예수 그리스도에게 연합되어야 한다. 이 연합은 사람들이 서로 연합하여 교제가 되므로 그리스도에게 연합되는 것이 아니다. 로마교회에 의하면 교회에서 연합이 시작되어 그리스도에게 까지 이른다. 그러나 성경에 의하면 사람들을 성령이 그리스도에게 연합시키신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사람들이 결합되므로 사람 상호간의 연합과 교제가 가능하다. 이렇게 사람들이 그리스도에게 결합되므로 교회가 되고 그 교회는 바로 그리스도의 몸이 된다.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 된다. 성령에 의해서 사람들이 그리스도에게 연합하면 그리스도의 몸을 이룬다. 이 연합은 영적인 것이나 가장 실재적이고 구체적이다. 이 연합은 영적이지만 가장 실재적이므로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고 한뼈와 살이된다.

 

이 연합이 사람들의 연합으로 교회가 되게하고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 되게한다. 백성들을 그리스도에게 연합시키는 이 연합은 신비한 연합이다. 말로 설명할 수 없으나 가장 확실하여 그리스도의 분신이 된다 . 이 연합은 성령이 이루신다. 성령이 이 연합의 고리이고 끈이다. 성령이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 연합시켰으니 아무도 이 연합을 헐 수 없다. 성령이 교회를 그리스도에게 연합시키므로 교회발생은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에 가능하게 되었다.  

 

교회에 대한 위의 진술들을 종합하면 교회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불러내어 예수의 피로 구속하여 그리스도에게 연합시킨 공동체이다. 교회는 피로 연결된 것이 아니고 성령으로 결합된 공동체이다. 더욱 정확하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성령으로 사람들을 자기에게 연합시키신다.  이미 교회의 정의에서 밝혀졌지만 교회가 교회되는 것은 사람들이 모여서 교제를 하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부름받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몸에 연합하므로 교회가 교회된다.

 

이 연합은 성령께서 하사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그리스도와 결합하게 한다. 이 연합은 가장 구체적이고 실재적이어서 모든 구원 은혜가 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서 온다. 이 그리스도와의 연합 때문에 교회 밖에서는 구원이 없다는 키프리아누스의 진술이 교회에 타당하다. 이 연합은 물질적인 것이나 실체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다. 이 연합으로 그리스도와 사람들이 한 몸을 이루고 한피와 한 살을 이루게 된다.

 

이 연합 때문에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지목된다. 더욱 정확하게 말하면 그리스도꼐서 자기의 백성을 자기에게 결합하사 자기의 몸이 되게 하신다. 이 연합은 신비란 연합이어서 사람의 눈에 식별되지 않는다. 따라서 누가 그리스도의 몸에 연합되었는지는 하나님만이 아신다.  그런 면에 있어서 교회에는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불가시적인 교회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의 몸에 연합한 자들만이 중생하였고 성령으로 살 수 있다.

 

그리스도의 생명 곧 성령이 교회의 생활 원리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성립하므로 교회가 성령의 거소 혹은 성전이다.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들에게만이 성령이 내주하시기 때문에 교회 밖에서 성령은 없고 활동하지 않는다.  아브라함 카이퍼는 교회의 구성을 중보자의 설립보다 앞세우고 더 근본적인 것으로 본다. 창조시부터 하나님은 교회를 가지실려고 하셨기 때문에 선택교리를 교회 성립의 핵심으로 삼으나 교회 성립의 근본 진리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

 

이 연합이 사람들을 서로 교제하게 하고 교회로서 존속하고 활동하게 한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하나님의 구원의 적용의 핵심이어서 칼빈이 가장 경탄한 요목이다.  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해소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한 번 그리스도에게 연합한 자들이 교회 밖으로 벗어나가 구원에서 탈락이 불가능하다. 이 진리가 불가항력적 은혜 혹은 은혜의 주권성으로 표현되었다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들은 바로 그리스도의 풍성한 구원에 동참하고 성령의 주장하심을 누리며 살게 된다.

 

 로마 교회는 교황과 연합하므로 교회가 성립한다고 주장한다. 교회가 교회되는 것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이루어지고 사람과 연합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사람과 잘 연합하여도 그리스도와 연합하지 않으면 교회가 될 수 없다. 바로 이 그리스도와의 연합 때문에 교회를 하나님의 구원기관이라고 한다.  개혁신학만이 교회의 핵심진리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강조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시작하고 그 연합으로 존재하며 교회로서 마감한다.

 

이 연합에 의해서 성도의 교제가 나온다. 따라서 교회를 성도들의 교제라고 종교개혁은 규정하였는데 성도의 교제가 근본이 아니고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성도의 교제가 귀결한다.  교회가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성립하면 그리스도에게 연합된 자만이 교회가 된다. 그러나 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중생으로 이루어진다. 중생은 영적이어서 육체적인 눈에 식별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만이 자기의 교회를 바로 아신다. 교회에는 외식자도 있고 불신자도 있으며 비중생자도 있다.

 

그들은 외형적으로는 교회에 속해 있지만 참교회에 속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들은 다 하나님의 택자들이다. 이 선택자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으므로 이런 교회는 비가시적인 교회라고 한다. 그러나 교회는 교회의 신앙고백과 예배 말씀선포와 성례에서 또 교회 조직과 정치 그리고 회집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따라서 가견교회 혹은 유형교회라고 말한다.  무형교회와 유형교회는 서로 분리되어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함께 존재한다.

 

무형교회가 참교회이지만 지상의 가견교회를 떠나 성립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말씀선포를 신실히 행하여 가견교회가 참교회가 되도록 해야 한다.  교회는 지상에 존재하는 한 전투하는 교회이다. 교회는 죄악과 싸우는 공동체이다. 개인의 죄악을 대항하여 각자가 투쟁하지만 죄악과의 연대성을 갖고 쉽게 유기적으로 번지므로 교회가 죄악과 투쟁한다. 또 나아가 교회 밖의 사회의 악에 대해서도 투쟁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교회가 자체 거룩을 유지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교회가 지상에 존재하는 한은 성화가 완결되지 않으므로 계속해서 악과 투쟁해야 한다.  그러나 천상교회는 승리한 교회이다. 아직 심판이 이루어지지 안했으므로 영광의 교회라고 말할 수 없지만 지상에서 겪는 투쟁은 없고 안식하는 교회이다.  교회가 교회로 성립하고 존속하려면 두 가지 역사가 진행되어야 한다. 그것은 칼빈의 가르침대로 순수한 말씀의 선포와 성례의 정당한 집행이다. 말씀의 선포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사역의 선포이다.

 

말씀이 선포되면 사람들이 예수 믿어 교회를 이룬다. 그러므로 교회를 말씀의 창조물이라고 부른다. 말씀이 선포되면 사람들이 믿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 자라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된다.  교황이 있는 곳에 교회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선포로 교회가 생겨나고 자라간다. 교황은 구원의 보장이 아니며 교회의 머리가 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가 교회를 다스린다.

 

그 통치는 말씀과 성령으로 이루어지는 신령한 통치이고 외형적인 통치가 아니다.  말씀이 바로 선포되면 언제나 교회가 발생하고 교회가 존속한다 종교개혁 때 로마교회가 교회로서 바로 지칭받기 어려운 것은 바로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가 최소수준에서도 유지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때에라고 교회가 전혀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은 칼빈이 말한대로 여로보암 때에 교회가 다 훼파되었지만 그래도 남은 자들이 있었고 아합 때에도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칠천명이 있었던 것과 같다.

 

말씀이 순수하게 선포되면 교회가 언제나 발생하고 자라서 존속한다.  그러므로 말씀이 바로 선포되면 교회는 언제나 어디서나 존재하고 그리스도의 재림시까지도 존속할 것이다. 로마 교회는 사람들의 결정을 하나님의 말씀의 자리에 세우므로 교회가 교회되기 어려웠다. 말씀의 선포의 내용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그의 사역이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구원 사역을 빼고 다른 것을 말하면 곧 교회는 쇠락하게 되고 변질되어 구원기관이 될 수 없게 된다.

 

이 말씀의 선포 때문에 교회가 구원기관이 된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자는 교회를 어머니로 가져야 한다고 키프리아누스가 말하였다. 이것을 로마교회는 자기들에게 적용하여 로마교회에만 구원이 있다고 주장해 왔다.  로마교회에 교황이 있으므로 구원기관이 된 것이 아니고 교회에 복음의 선포가 있기 때문에 구원기관이 된다. 카푸리아누스는 교회 밖에서는 구원이 없다고 주장하여 카톨릭 교회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믿게 되었다.

 

교황이 있으므로 교회에 구원이 있는 것이 아니고 교회에 말씀 곧 복음의 선포가 있기 때문에 교회밖에 구원이 없다. 어떠한 경우에라도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사역의 선포없이는 구원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둘째로 교회가 교회 되는 데는 성례를 바로 집행해야 한다. 성례는 가견적인 복음이다. 귀로 듣는 복음 대신 눈으로 보는 복음이 성례이다. 성례는 하나님께서 그의 구원을 우리의 몸의 기관에 접촉하게 하시는 역사이다. 성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우리의 몸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례는 눈으로 보는 복음이다. 이 성례를 바로 집행하면 성도들이 구원의 확신에 이르며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확고히 한다. 성례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강화목적으로 집행된다.  그리스도가 이룩한 구원이 우리 몸의 부분들에 적용되어 확실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미 교회가 될 때 이루어진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이 성례를 통하여 더욱 강화하므로 그리스도와 한 뼈가 되고 한 살이 되어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이 연합은 실체적인 것이 아니고 영적이나 가장 실재적이어서 이 연합을 깰 수가 전혀 없다. 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구원이 개인에게 전달되고 확실하게 적용된다.  로마교회는 성례를 구원의 은혜의 필수적인 매개로 보아서 교회가 성례를 집행하므로 마력적으로 구원을 전달한다. 성례는 집행만 하면 자동적으로 은혜가 전달된다. 그러므로 말씀과 무관하게 성례를 집행한다. 마력적으로 성례를 집행하여 집행 그 자체에서 은혜가 전달된다. 따라서 구원의 전달은 교회의 배분에 달려 있다.

 

사제가 식사를 하면서 성례를 집행하면 구원은혜가 전달되어 구원에 이른다.  그러나 성례는 말씀과 분리해서 시행하면 죽은 성례가 되어서 아무런 효력을 낼 수가 없다. 성례는 귀로 듣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므로 말씀과 함께 집행될 때에만이 성례가 본래의 직임을 다한다. 말씀은 그 자체로 완전한 은혜의 방편이나 성례는 그 자체로는 완전한 은혜의 방편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선포하고서 그 구원의 확인을 위해서 성례가 집행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설립내용을 잘 밝혀야 한다 . 이미 이루어진 구원을 확인하는 것이므로 성례를 구원에 필수적인 것이므로 성례를 구원에 필수적인 것으로 여겨 누구든지 성례를 반드시 집행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또 임종석에서나 병원 혹은 개인집에서 시행할 것이 아니고 언약백성들이 모이는 교회에서 시행해야 한다.  개혁교회는 로마교회와 루터교회와 달리 권징을 교회됨의 지표로 삼는다. 말씀의 선포로 거의 교회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에 권징을 교회 성립의 필수적인 구성요건으로 보지 않지만 권징이 필요하다. 권징을 하지 못하면 교리와 교회의 거룩을 지킬수가 없다. 

 

권징은 우선 윤리적인 면에서 시작하므로 윤리만을 그 전 대상으로 알기 쉬우나 윤리의 역역에서 권징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교리도 바로 지킬 수 없다. 권징은 교회가 전투교회로서 지상에서 죄와 싸우고있기 때문에 시행되어야 할 사항이다.아직 완전해지지 못했기때문에 그릇된 가르침과 윤리적으로 문제가 된 행동을 고치는 교회의 자체 정화행위이다. 권징은 권면과 수찬정지와 출교로 구성된다. 권징은 교리를 순수하게 보존하기 위해서 이루어진다.

 

교리가 교회의 생명이다. 말씀의 선포가 기본교리에서 벗어나면 이단이 되거나 자유주의가 되어 기독교이기를 그치게 된다. 이단은 기독교의 기본 교리중 일부를 합리적인 해석을 한 것이고 자유주의는 모든 교리를 다 합리적인 해석을 한 것이다. 이단은 어느 일부분에서 합리적인 해석을 하기 때문에 쉽게 식별해내지만 자유주의는 모든 교리를 다 합리적인 해석을 하였으므로 쉽게 식별하여 권징을 잘못하게 된다.  특히 학적 방식으로 신학이 이루어져야 하다고 주장하므로 쉽게 넘어가고 오히려 거기에로 물들게 된다. 교회가 자기 믿음에 대한 권징이 없이는 교회로 남기가 불가능하다.

 

그릇된 교리를 가르치면 이 가르침을 교정하거나 버리도록 해야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출교해야 한다.  교회의 권징은 자체 정화작업이다. 성찬의 거룩을 지키지 않으면 교회가 거룩해질 수가 없다. 교회의 거룩은 성찬의 거룩에 성립한다. 성찬에 참여하는 자들이 일반 불신자들과 같은 삶을 살면 그 교회는 교회가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신자들로 하여금 죄악을 버리고 성령의 인도를 좇아 거륵한 삶을 살도록 권고하고 가르친다.

 

그래도 고치지 않으면 수찬 정지를 집행하여 교회 앞에 고쳐야 할 사람임을 분명히 한다. 그래서 전혀 고치지 않고 일반 불신자들과 동일한 삶을 계속하면 그를 출교하여 교회밖으로 내여 보낸다.  루터교회는 권징을 하지 않으므로 교리와 거룩을 바로 지킬 수가 없다. 그들은 사랑을 강조하여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각자의 자유에 내어 맡긴다. 그리하여 교회가 거룩을 유지할 수 없고 교리를 바로 지킬 수 없어서 다 퇴락하게 되었다. 로마교회도 권징을 하지 않는다.

 

로마 교회는 듣는 교회와 가르치는 교회로 나누고 가르치는 교회에 거룩성을 귀속한다. 가르치는 교회가 대표적인 교회이다. 듣는 교회인 평신도들은 간접적으로 교회이고 간접적으로 교회의 특성에 동참한다. 따라서 교회가 권징을 하지 않으므로 교회가 도덕적으로 말할 수 없이 타락하여도 아무런 제재조치룰 취하지 못하게 되었다.  사제들의 윤리 생활에 대해서도 아무런 규제가 없으므로 신불신간에 아무런 차이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

 

권징이 교회를 발생시키고 구성하는 요소는 아니지만 교회가 교회로 남으려면 권징이 교회에서 시행되어야 한다. 성화가 완결되지 안했으므로 교회는 언제나 권징을 행하여 교회의 거룩을 지켜야 교회가 교회로 남아 거룩한 구원기관이 될 수 있다.  교회는 사도신경의 고백대로 또 니케아 신경의 고백대로 하나의 거룩한 보편 사도적 교회이다. 이 교회의 특성들은 주로 무형교회에 적용되지만 로마교회는 이 특성들을 거의 배타적으로 유형교회에 적용시켜 로마교회만을 참교회라고 주장한다.  

 

교회는 하나이다. 모든 교회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연합되어 있기 때문에 한 교회이다. 이에 반하여 로마교회는 전세계에 자기 교회가 다 퍼져있기 때문에 하나의 교회라고 주장한다. 전세계를 다 포용하기 때문에 하나의 교회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그에게 연합되어 성령에 의해 하나로 통일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의 교회이다.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으므로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하나의 교회이다. 이 교회는 인류 역사의 시작부터 역사의 끝에까지 하나의 교회이며 지상과 천사의 교회를 다 포함하는 하나의 교회이다.  둘째로 교회의 특성은 거룩성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생명에 연결되어 있고 그의 생명으로 살므로 거룩하다. 예수의 피로 씻어져서 깨끗할 뿐 아니라 그의 거룩을 전달받아 거룩해지고 있기 때문에 거룩하다. 거룩은 죄를 떠남에 성립한다. 그러므로 교회의 거룩은 신자들의 내면의 거룩이요 생활의 거룩이다.

 

 이와 반대로 로마교회는 교회의 거룩을 교회의 외적인 면에 둔다 그것은 교리와 도덕적인 교훈 예배와 의식의 성결을 뜻한다. 그리고 이 거룩은 가르치는 교회인 대표적인 교회에 전적으로 타당하고 듣는 교회로서 평신도들로 이루어진 교회는 간접적으로 이 거룩에 동참한다. 로마교회는 신자들의 생활과 내면의 거룩없이 거룩이 가능하다고 본다.  교회의 거룩은 그리스도안에서 신자들이 원리적으로 완전히 거룩하지만 내면적으로는 원리적으로 완전히 거룩하다.

 

아직 죄가 다 제거되지 안했으므로 실제에 있어서는 완전히 거룩하지 못하지만 그리스도의 거룩을 받아가지고 거룩에로 나아가므로 거룩하다.  셋째로 교회는 보편성을 지닌다. 교회는 그 머리가 우주적이기 때문에 보편성을 지닌다. 그 머리에 교회가 붙어 있으므로 보편하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보편성에 의해 보편하다. 이 교회는 모든 시대와 장소의 모든 교회들을 다 포용한다. 따라서 교회는 보편 교회 곧 카톨릭 교회이다. 루터는 카톨릭이란 용어를 극력 피하였지만 칼빈은 개혁교회가 진정한 카톨릭 교회라고 보았다. 로마 교회는 교황을 정점으로하여 전세계에 다 퍼져있기 때문에 보편교회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개혁파에 의하면 무형교회만 진정한 보편교회라고 본다. 왜냐하면 이 교회만이 인류역사 시작부터서 역사의 끝까지 모든 교회를 다 포용하며 전세계 모든 교회들을 다 포함하기 때문이다. 교회는 성령에 의해 그리스도에게 연합하므로 성립하므로 성령에 의해 인도받는 교회가 보편 교회이다.  넷째로 교회는 사도적 성격을 지닌다. 로마교회는 자기들의 교회만이 진정한 사도적 교회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로마교황은 베드로의 사도권을 계승했고 주교들도 다 사도들의 법적 계승자라로 보기 때문이다. 희랍정교회는 이에 반해 그들의 대주교인 콘스탄티노플 주교가 안드레 사도의 사도권을 계승했으므로 자기들도 사도성을 지닌다고 한다. 베드로가 사도이고 로마에서 죽은 것이 사실이라고 하지만 그 사도권을 로마의 주교에게 전달했다는 증거가 없다.

 

 베드로가 처음 예루살렘 교회를 설립하고 조직을 하여 교회가 교회되게 만들었다 그의 교회 설립권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의 교회설립은 혼자만의 사역이 아니고 다른 사도들과 함께 역사하였다. 또 베드로가 얼마되지 않아서 그의 지도권을 야고보에게 양도하므로 야고보가 영적 산헤드린 굥회의의 의장이 되어 첫 사도들의 공회의를 주재하고 바른 결정을 하게 하였다. 따라서 베드로 사도만을 계승해야 사도성이 성립하는 것이 아니다. 이방교회는 바울사도가 주로 건립하였다. 그러나 바울이 건립하였기 때문에 이방교회들이 참교회가 아니라고 이의를 제기한 사람은 전혀 없었다.  사도성은 사도적 선포의 계승에 성립한다.

 

사도들이 선포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사역의 선포를 계속하면 교회가 사도성을 갖는다. 개신교회 특히 개혁교회는 사도들의 선포를 교회가 사도성을 갖는다. 개신교회 특히 개혁교회는 사도들의 선포를 신실하게 계속한다. 따라서 참 사도성은 개혁교회에 타당하다.   로마교회는 교황이 교리와 윤리의 가르침에 있어서 무오한 권세를 활용한다. 그러므로 교황이 있으면 교회가 있고 교회가 있으면 그리스도가 있다. 모든 것을 거꾸로 전개하였다. 교회에 연합하면 구원에 이르고 교황에 충성하면 구원이 확실하고 구원에 이른다. 그런 가르침은 성경에 없는 로마교회의 유전일 뿐이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가 자기의 피로 교회를 사셨다. 그리고 자기의 생명으로 살게 하셨다. 따라서 모든 권세는 그리스도에게 있게 그가 교회를 다스리신다. 교회의 머리일 뿐 아니라 교회의 생명의 원천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를 다스리신다. 그리스도는 자기의 피로 교회를 사서 자기의 교회로 세우셨다. 그가 교회의 설립자이다. 그러므로 그가 권세를 갖고 교회를 다스리신다.  교회를 다스림에 있어서 그리스도는 그의 말씀과 성령으로 다스리신다. 말씀을 선포하기 위해서 그리스도는 말씀의 봉사자를 세우셨다. 말씀을 선포하면 사람들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 자라간다.

 

그리스도의 통치는 죄를 버리고 하나님의 법대로 살도록 하기 위해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통치는 물리적인 세력의 행사가 아니라 신령한 은혜의 통치이다. 말씀의 선포로 사람들이 교회에 가입하고 또 거룩한 백성으로 자라간다. 이일은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통치는 말씀과 성령으로 이루어진다.  교황이 믿음의 도리와 바른 윤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오고 거기에 근거하고 있다. 교황의 통치에 순종해야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니고 말씀에 순종하므로 구원에 이르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교회가 되고 교회를 구성한다.  

 

교회의 직분자들은 이 그리스도의 통치를 구현하기 위해 세워졌다 목사는 말씀의 선포의 직임을 지닌다. 이 말씀 선포로 사람들의 생명과 사망이 결정된다. 이것이 교회가 갖는 생명과 음부의 권세를 가졌다는 말씀의 뜻이다.  장로는 교회의 성화를 이루기 위해서 세워졌다. 선포된 말씀대로 성도들이 살도록 하기 위해 심방하고 권면하기 위해서 세워졌다. 치리는 성도들이 말씀대로 바로 살도록 권고하고 지도하는 것이지 권세를 휘두르는 것이 아니다. 집사는 교회의 재산관리와 구제를 위해 세워졌다.

 

그러므로 교회는 구제하는 일을 쉬면 안되고 힘써 행하여 사회정의가 교회에서 이루어지게 해야 한다.  이 모든 직분자들은 다 봉사자이고 권력행사를 위해서 세워진 것이 아니다. 교회는 권력기관이 아니고 구원기관이므로 봉사하는 것이고 모든 것이 다 그리스도의 권세아래 매인다. 교회의 통치는 그리스도가 그의 말씀으로 행사하신다. 교회의 모든 행사는 다 이 그리스도 통치를 위해서 세워졌고 다른 독자적인 권세를 갖는 것이 아니다. Ⅶ. 교회의 권세 교회는 믿음의 도리를 바로 전파하고 보존하는 권세와 책무를 지닌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 곧 복음을 선포할 사명과 책임을 부여받았다.

 

이 복음을 선포하여 사람들로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게한다. 이 가르치는 권세에 의해 성경을 해석하고 신앙고백서를 작성하여 바른 믿음을 고백하고 우리의 믿음이 무엇인지를 세상에 알리고 이 진리를 보존한다. 그리고 이 진리의 보존과 전파를 위해 신학교육을하여 복음의 전파자를 양육한다. 이렇게 교회는 자기가 믿는 진리를 전파하고 보전하며 전승한다. 그리하여 교회가 교회로 곧 하나님의 구원기관으로 남게 한다.  

 

교회가 갖는 권세는 또 치리권이 있다. 교회는 자기의 자체 질서를 가지고 그 질서에 맞게 생활한다. 이 일을 위해 교회 생활을 바로 규제하는 규칙과 교회 헌장과 예배모범을 스스로 정하는 권세를 갖는다. 신자의 자격과 교회 직분자들의 자격을 규정하는 규칙을 제정하여 교회의 질서를 유지한다.  또 교회는 거룩해야 하므로 권징을 시행하여 모든 성도들로 거룩에 힘쓰도록 하는 권세를 갖는다. 교회의 생명은 거룩에 있다. 거룩은 죄를 떠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을 말한다.

 

이 일을 위해서 교회는 권징을 시행하여 건강한 신자들로 더욱 건강하게 하고 병들고 연약한 신자들을 고치고 건강하게 하며 그것이 불가능할 때는 교회에서 제거하여 교회의 거룩을 지켜 나간다. 이 거룩의 유지를 위해 권면과 징계를 행사한다.  징계에는 수찬정지와 출교가 있다. 교회는 또 봉사하는 직임 혹은 권세를 갖는다. 이 일을 위해 교회는 그 시작부터 집사를 세워 구제하고 어려운 사람들의 생활을 보살피게 하였다.

 

구제는 어려운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교회의 재산을 재분배하는 형식을 취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영적으로만이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물질적인 면에서도 이루어지므로 교회에서 사회정의가 세워지게 하기 위해서 헌금을 통해 생활의 기초를 어느 정도 고르게 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또 구제는 교회내에서만이 아니라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도 확대하여 어려움 당한 사람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생활의 어려움을 도와주는 것이다. 따라서 가난한 자들과 병든자들과 정처가 없는 자들을 돕고 위로 하는 일을 교회가 해야 한다.(פרופסור  שְׂצְליוּ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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