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영생 얻을 자와 영멸(永滅) 당할 자를 창세 전에 별도로 예정해 놓으셨다"는 게 칼뱅 예정론의 요지다. 사람이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그 운명이 결정되어 있다. 사실상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자신의 운명에 인간이 특별히 협조할 것도 없다. 그냥 모든 게 다 신의 손바닥에 있는 셈이다.
개역개정 성경의 심각한 번역 오류
그런데 과연 성경은 이런 이상한 예정론을 가르치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칼뱅의 주장은 강아지 풀뜯어 먹는 소리다. 이 글에서는 로마서 5장18절을 근거로 그의 예정론을 단호히 논박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먼저 개역개정 한글성경의 엄청난 번역 오류부터 지적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사도바울은 그의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런즉 한 범죄(아담)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예수)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롬5:18, 개역개정)."
하지만 여기서 "많은 사람"은 명백한 번역 오류다. "모든 사람"이 바른 번역이다. 한국교회의 '개역개정'과 '개역한글' 성경 외에 전세계 어느 성경에도 이 부분을 이렇게 엉터리로 번역한 성경은 거의 없다.
다행히 '새번역', '공동번역', 그리고 '현대인의성경'은 "모든 사람"으로 바르게 번역되어 있다. 그리고 영어성경 NIV, KJV, 그리고 NASB 또한 모두 "모든 사람(all men)"으로 제대로 번역되어 있다. 참고로 새번역과 영어흠정역은 아래와 같다.
"그러니 한 사람(아담)의 범죄 행위 때문에 모든 사람이 유죄판결을 받았는데, 이제는 한 사람(예수)의 의로운 행위 때문에 모든 사람이 의롭다는 인정을 받아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롬5:18, 새번역)."
"Therefore as by the offence of one judgment came upon all men to condemnation; even so by the righteousness of one the free gift came upon all men unto justification of life(롬5:18, 영어흠정역)."
물론 이 구절의 헬라어 성경원어 "판타스"는 "모든"을 의미하며 이는 위의 영어 성경들이 지극히 정상적으로 번역되어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고의적 번역 오류는 성경 변개
그럼 하필이면 왜 유독 한국 교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던 '개역개정'이나 '개역한글'에 저런 황당한 번역 오류가 존재할까. 나는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그 오역 실수를 옹호할 수가 없다.
일반적으로 성경을 번역할 때 원어 성경은 물론이고 당연히 영어 성경을 함께 비교하는 건 지극히 기본적인 순서다. 그러니 번역전문가들이 단순히 무식해서 "모든 사람"을 "많은 사람"으로 오역했다고 생각할 순 없다. "모든"과 "많은"은 아주 다른 단어다. "많은"은 전체 또는 한 부분일 수 있으나 "모든"은 반드시 전체이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개인적으로 이 부분의 번역 오류는 전문가의 실수가 아니라 매우 "의도적인 오류"라고 의심하고 있다. 즉 이건 번역 실수라기보다는 성경을 고의로 '변개'한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의도적 성경 변개는 종교적 범죄 행위다. 한국성서공회는 이 부분에 대해 분명한 해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런 합리적 의심의 배경에는 이 구절이 칼뱅식 예정론과 아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이는 과거 한글성경에서 '연보'를 '헌금'으로 고치고 '경배'를 '예배'로 변개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른바 이게 조직신학이냐 아니면 조작신학이냐 하는 비난의 단초가 될 수 있다.
만일 이 구절이 원어 성경 그대로 아담 한 사람으로 인해 "모든 사람"이 정죄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으로 인해 누구도 예외없이 "모든 사람"이 칭의된 것이라면 칼뱅식 예정론이 설 자리는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칼뱅은 '제한된 속죄(Limited Atonement)' 교리로 일부 선택된 자들만 칭의되어 구원 받는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원어 성경은 제한된 속죄가 아니라 "예수께서 모든 사람을 속죄했다"고 명백히 증거하고 있다. 제대로 된 번역으로 보면 로마서 5장18절은 한 사람 예수로 인해서 "모든 사람"이 칭의된다고 분명히 말한다. "모든"이란 이 단어 속에는 무슨 다른 조건이나 제한이나 예외가 없다. 말 그대로 모든 사람이 예수로 인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을 누린다는 뜻이다.
'부분칭의론'과 '만인칭의론'
나는 지금 내 개인의 견해를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게 아니다. 이건 롬5:18에 대한 지극히 상식적이며 보편적인 해석이다. 굳이 전문 신학자가 아니라도 고등학생만 되면 누구나 도달할 수 있는 합리적 결론이다.
만일 아담 한 사람으로 인해 인류의 일부가 아닌 모든 사람이 정죄된 게 사실이라면, 이 문장의 논리 전개상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으로 인해 또한 인류 전체인 "모든 사람"이 칭의되어야 정상이다. 반면에 아담 한사람으로 인해 인류 전부가 정죄되었는데 이에 비해 예수로 인해서는 단지 인류 일부만 칭의된다면 그 문장의 흐름이 너무 우습게 되지 않겠는가.
따라서 누구든 로마서 5장18절을 자기 성경책에서 남몰래 지워버릴 생각이 아니라면 이제부터라도 그 칼뱅식 예정론은 즉시 쓰레기통에 버리는 게 좋을 것이다. 로마서를 열심히 읽고서도 '일부 선택'과 '일부 유기'라는 이중예정론을 주장한 칼뱅은 많은 사람을 큰 오류로 이끈 인물이다.
진실을 모르면 진리를 만날 수 없다. 진실이 왜곡되면 진리가 가려진다. 그런데 우린 사실 성경의 어떤 진실은 아직도 정확히 모르는 부분이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로마서 5장18절이 증거하는 이 '만인칭의론'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으로 정말 인류 모두가 칭의된 게 진실이라면 이는 신학적으로 '만인은총론', '만인화해론', 심지어 '만인구원론'까지 연결되는 엄청난 파장과 충격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러니 현 시점에서 신학 문외한인 내가 솔직하게 할 수 있는 말은 "난 잘 모른다"이다. 다만 한가지 분명한 점은 일부 어설픈 신학자들처럼 자기도 잘 모르면서 별로 논리도 없고 근거도 없는 억지 주장을 하거나 신학교에서 교조적으로 배운 화석 교리나 신조를 만날 앵무새처럼 따라해선 안 된다고 믿는다.
지금은 성경신학이 다시 분출하는 시대다. 특히 한국 장로교는 아직도 500년 묵은 칼뱅주의 5대 교리나 축자영감설을 여전히 고집하고 싶다면 우선 로마서 5장18절의 '만인칭의론'부터 먼저 분명하게 해명한 후에 다시 주장해야 할 것이다.
이제 현대 교회는 답해야 한다. 과연 예수는 오직 믿는 자만을 위해 오셨는가 아니면 세상 모든 만민을 위해 오셨는가.
"그래서 한 사람의 범죄로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판정을 받게 된 것처럼 한 사람의 의로운 행동으로 모든 사람이 의롭다는 인정을 받아 생명을 누리게 되었습니다(롬5:18, 현대인의성경)."
신성남 / 집사, <어쩔까나 한국교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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