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뱃속까지 내려가야 겔3 :1~27
◑가마우지 낚시
1989년 고무로나오키라고 하는 일본의 경제평론가가 책을 하나 써냅니다.
책 제목이〈한국의 붕괴〉입니다. 한국이 붕괴하게 되는 이유는 뭐냐?
한국의 경제 구조의 특성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물론 그의 예측은 빗나갔습니다.
70년대 말부터 80년대 말 90년대로 이르면서
우리의 경제가 굉장히 활발하게 활성화 될 때가 아닙니까?
그런데 그가 초 치는 이야기를 합니다.
‘한국이 경제구조의 취약성으로 인해서 붕괴될 것이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그 경제구조의 취약성이 뭐냐?
바로 ‘부품과 소재의 산업이 취약하다’는 겁니다.
부품 소재 산업의 취약성이, 한국 붕괴의 결정적인 이유가 될 것이다..
라고 주장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우리가 자동차를 만들어서 팝니다.
그런데 그 자동차 속에 들어가 있는 많은 부품과 소재(원자재)가
일본에서 수입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완제품을 많이 팔면 많이 팔수록
일본에 줘야 되는 부품과 소재 수입비로 더 커진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많이 팔아서 뭐 하냐? 결국 일본이 다 가져가고
부품과 소재 산업이 발전한 나라들이 다 갖고 가버리는데
기껏 한국에서는 조립비나 판매 마진 정도만 챙길 뿐이지,
실질적인 실리는, 부품 소재 산업의 주인공들이 다 가져간다는 겁니다.
이 경제구조를 명확하게 하기 위하여,
그가『가마우지 경제』라는 비유를 듭니다.
‘가마우지’라는 새 이름 들어보셨죠? 물새입니다.
목이 길고, 부리가 길고, 부리 끝이 갈고리 모양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물에서 놀다가 배가 고프면, 물속으로 긴 목을 빼서 잠수합니다.
물속으로 잠수를 해서, 물속에서 놀던 물고기들을 잡아서 먹고 살아요.
그런데 중국의 계림지방이나 일본 등지에서는
‘가마우지 낚시’가 아주 성행하는 곳들이 있다는 겁니다.
‘가마우지 낚시’란..
가마우지 새를 잡아서, 긴 목 밑 부분에다 줄로 목을 졸라매요.
그러면 이 가마우지가 물속에 들어가서 물고기를 낚시를 하면
목줄을 매놨기 때문에 목구멍까지만 물고기가 들어오고,
뱃속으로 내려가지 못합니다.
그러면 주인이 그 목구멍에 걸려 있는 생선을 꺼내서, 자기 바구니에 담죠.
한국 경제의 가마우지의 목줄, 그게 바로 ‘부품소재산업’이라는 겁니다.
부품소재산업이 목을 조르고 있다는 겁니다.
아무리 완제품을 만들어봐야, 배속으로 들어가질 못하고
자기 것이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주인이 누굽니까? 일본입니다. 일본이 그 수익을 다 챙긴다는 거예요.
그러나 그의 예측이 틀렸죠.
한국경제는 망하지 않았고, 오히려 한국 전자회사의 매출이
소니, 산요 등 일본 전자회사 다 합쳐도 안 될 만큼, 크게 성장했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 부품소재산업의 취약성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일부 사실이라고 합니다.
대對 일본 무역적자 중에 50~60%가
바로 이 부품소재산업 때문에 생기는 적자라는 겁니다.
뭐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무역량이 늘고 산업이 발전하고 있어서
한국이 그런대로 경제적으로 잘 나가고 있습니다.
비전문가인 제가 경제 이야기를 논하는 것은 아니고,
저는 그저 신앙적 이야기, 영적 논리를 말씀드립니다.
만약에 우리나라가 망한다면, (‘만약에’입니다.)
‘가마우지 경제’ 때문에 망하지 않고,
만약에 한국이 붕괴되는 것은
한국에 살고 있는 선민하나님의 백성들이 붕괴되기 때문이고
하나님이 선민의 불신앙을 심판하실 때, 덩달아 나라가 망하는 것이죠.
선민들이 붕괴되는 이유는, ‘가마우지 경제’가 아니라
『가마우지 신앙』 때문에 선민들은 붕괴될 것이라는 겁니다.
가마우지 신앙이 교회 안에서 팽배해질 때에,
교회가 망할 것이고.. 뒤따라 한국사회도 망할 것입니다.
◑그럼 ‘가마우지 신앙’이 뭡니까? *설교자가 만든 말!
가마우지가 물고기를 삼켰음에도, 뱃속까지 집어넣지 못하고, 목에 걸렸듯이..
‘가마우지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이 목구멍에 걸리고
뱃속으로나, 창자까지 내려가지를 않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선민의 붕괴의 원인이라는 거예요.
겔3장에 에스겔의 소명(부르심) 사건이 나옵니다.
에스겔이 하나님 보좌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두루마리를 발견하게 되고
그 두루마리의 앞면 뒷면 가득히 쓰여 있는데
탄식과 슬픔과 재앙의 내용들입니다. 2 :10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를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겔3 :3
에스겔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그 두루마리를 먹었을 때에
목구멍을 지나서 배에 채워지고, 창자까지 말씀이 채워집니다.
이게 바로 참 신앙인의 모습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이 목구멍을 지나 배에 까지 채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배에 까지 채워진다’는 말은, 자기 몸에 배인다/생활화된다..
이런 뜻이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약에서도 종종 ‘떡’이나 ‘양식’으로 비유됩니다.)
그저 건성으로 듣지 않고 (건성으로 듣는 것은 소위 ‘가마우지 신앙’)
정말 내 오장육부에 박히고, 심비 마음의 비석 에까지 새겨야 하는데,
에스겔이 그랬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이 참 신앙인데
겔3 :4절부터 이어서 나오는 말씀은
그러나 반면에 유다백성들이
에스겔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결코 듣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게 바로 ‘가마우지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나, 그것이 몸속으로까지 들어가질 않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먹어 몸속까지 내려가는 에스겔과,
그렇지 못한 유다백성들이.. 겔3장에 비교되어 있습니다.
10절에, 너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받고, 귀로 들으라.. 말씀합니다.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를 모든 말을,
너는 마음으로 받으며 귀로 듣고’ :10
우리는 귀로 먼저 듣고, 그 다음에 마음으로 받습니다.
그런데 거꾸로 얘기해요. ‘마음으로 받고, 귀로 들어라.’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의 문을 먼저 열고서야
귀로 들어온 말씀들이 참으로 내 것이 된다는 얘기지요.
마음이 닫혀 있어요.
귀와 마음 사이에 마음이 먼저 열려야
귀로 들어온 것들이 뱃속까지 들어올 텐데
귀와 마음 사이에 가마우지 낚시처럼 목에 줄이 메였습니다.
가마우지의 낚시에서처럼 줄에 메였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이 귀로 들어와도, 뱃속까지 마음속까지 들어오질 않습니다.
◑적용
그러면 어떻게 가마우지 신앙이 됩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왜 안 들어옵니까?
출애굽 당시의 예를 들어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바로 왕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할 것을 촉구합니다.
이때 바로가 그 말을 듣고, 자기 부하들에게 내린 명령이
‘이들이 지금 너무 삶이 여유로우니까, 이따위 쓸데없는 생각들을 하고 있다.
이제부터 짚단을 공급해주지 말고, 자기들 스스로 밭에 나가서 짚단을 주워서
벽돌을 만들게 하되.. 벽돌을 만드는 숫자는 동일하게 하라.’ 출5 :9
그러니까 갑자기 이스라엘 노예들의 생활이, 두 배로 바빠지게 생겼습니다.
그러면서 바로 왕이 하는 말이 ‘그 거짓말을 받아들이지 말게 하라.’고 합니다.
‘그 사람들의 노동을 무겁게 함으로 수고롭게 하여,
그들로 거짓말을 듣지 않게 하라’ 출5:9
히브리인들의 생활을 바쁘게 함으로서
모세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말을
거짓말로 들리게 하라는 겁니다.
이 이야기가 나타내는 바가 뭡니까?
출애굽해서 광야로 나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이
까마득한 비현실적인 이야기로 들리게 하려면,
삶과 일과를 바쁘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도 이런 얘기 합니다. ‘목 맨다.’
어떤 일에 너무 그 일이 좋고 해서 마음이 쏠려가지고
정신 못 차리고 그 일을 쫓아갈 때 ‘목 맨다’ 그러잖아요.
“야, 넌 어떻게 그런 여자에게 그렇게 목을 매냐?” 이러지 않습니까?
“아니 그렇게 등산이 좋아요? 아휴, 등산에 목을 매구만 목을 매.”
이렇게 얘기할 때.
이 삶의 현실에 목을 매게 될 때에.. 소위 ‘가마우지 신앙’이 나타납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고,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도
돈 벌기에 바빠요. 일하기에 바빠요. 자식 키우기에 바빠요.
당면한 현실문제 앞에서
그 문제를 껴안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전전긍긍해요.
이렇게 생활에 목매게 되면,
어떤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져도
절대로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뱃속까지 내려가지 않습니다.
에스겔이 지금 창자까지 채우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3
형통한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비전이 이루어진다는 말씀이 아니에요.
건강할거라는 말씀도 아니고 부자가 될 거라는 말씀도 아닙니다.
재앙과 심판과 멸망이 두루마리 앞뒤로 가득 찬 말씀이에요.
재앙과 슬픔의 노래와 탄식으로 가득 찰 수밖에 없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걸 먹었는데 입에 꿀과 같이 달다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게 때로는 우리의 삶의 현실에 재앙을
그리고 정말 슬픈 일을 도대체 원치 않는 일을 가져오는
그런 말씀일 수도 있어요.
그러나 먹을 때 꿀과 같이 달다는 것은,
그게 ‘생명의 살리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재앙과 탄식의 노래가 들어 있지만
그 말씀을 먹을 수 있을 때
창자까지 채울 수 있었더라면,
선민은 살아났을 것이고, 선민의 붕괴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에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받아들일 때,
우리들이 바라는 방식/소원대로, 하나님 말씀이 주어지는 게 아니에요.
그러나 어떤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지든지 간에
꿀처럼 단 것이고, 나를 살리는 생명력이 있는 것입니다.
설령 그 내용이 재앙과 탄식으로 가득 찬 내용일지라도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면.. 결국 나를 살리는 것이고, 꿀처럼 단 것이고
그걸 뱃속까지 창자까지 채울 때라야만... 내가 살 길이 열리는 것이에요.
그런데 삶의 현실이 바빠지고, 삶에 목매게 되면,
즉 돈 버는 일에 목매고, 자식 키우는 일에 목매고
건강관리 하는 일에 목매고, 이런저런 취미생활에 목매고
이 세상 일에 목맬 때에.. 하나님 말씀은 절대로 내 속에 들어오질 않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선민들이 이방인들보다 더
에스겔의 말씀을 안 듣게 될 거라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여러분?
‘너를 언어가 다르거나 말이 어려운 백성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 족속에게 보낸다. 너를 언어가 다르거나 말이 어려워
네가 그들의 말을 알아 듣지 못할 나라들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니라.
내가 너를 그들에게 언어가 다른 이방인들에게 보냈다면
그들은 받아 들였을 것이다.’ :5~6 이렇게 말씀합니다.
왜 그래요?
삶에 목매게 될 때, 여호와 신앙은 미신이 되어 버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오질 않고 미신이 되어 버려요.
‘성전이 있으니까 예루살렘은 망하지 않을 것이다...’ 이게 미신이죠.
‘(형식적으로라도) 교회에 다니니까, 나는 망하지 않을 것이다.’ ..
라는 식입니다.
우리 귀에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도 안 들릴 때가 있어요.
왜요?
삶의 문제에 허덕거리면서
시간만 나면 부자 되게 해달라고 빌고 있으면서
‘교회는 다니니까, 우리는 안 망할거야’ 라는 미신 같은 신앙을 갖고 있습니다.
실제로 성경의 모든 말씀은,
자기 목에 딱 걸려 있는 상태인데도 말입니다. 몸으로 전혀 순종하지 않습니다.
이 상태가 바로, 여호와 하나님과 상관없던 이방인 (불신자)보다도
더 말씀을 못 받아들이는 겁니다.
지금 내가 혹시 그런 상태가 아닐까요?
삶의 문제에 목매여 가지고 여호와 신앙을 미신적 신앙으로 바꾸어 놓은 상태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못 받아들이고 있는 건 아닙니까?
“나는 설교시간에 말씀 잘 들리는데”
그렇다면 아마 그 설교가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삶에 목매여 있는 말씀일 것입니다.
‘돈 벌수 있다, 부자될 수 있다, 건강할 수 있다, 형통할 수 있다...’ 등
그럼 어떻게 해야 됩니까?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말씀이 창자까지, 내 몸 깊숙이 채워집니까?
한 가지 밖에 없어요. 목줄을 풀어야 됩니다.
지금 내 목을 죄고 있는 줄이 뭐예요?
삶에 목이 매여 있습니다. 삶의 문제에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에스겔은 어떻게 해서 하나님 말씀을 창자까지 채웠습니까?
삶의 현장을 마음이 떠나서
하나님의 강권적인 하나님의 손의 권능을 통하여 압류되어서
하나님 보좌에 갔을 때라야만 하나님의 말씀이 창자까지 채워질 수 있어요.
삶을 떠나야 됩니다. 삶에서 격리되어야 됩니다.
◑삶이 격리 당한 에스겔
그래서 여러분, 겔3 :25절 이하에 보면
하나님이 갑자기 파수꾼의 사명을 준 뒤에 방에다 가두어버리십니다.
입이 천장에 붙게 하십니다.
겔3:25 너 인자야 보라 무리가 네 위에 줄을 놓아 너를 동여매리니
네가 그들 가운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라.
26 내가 네 혀를 네 입천장에 붙게 하여 네가 말 못하는 자가 되어
그들을 꾸짖는 자가 되지 못하게 하리니 그들은 패역한 족속임이니라
27 그러나 내가 너와 말할 때에 네 입을 열리니..
왜 그래요?
에스겔을 분주한 삶으로부터 격리시키시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대화할 때만, 그 입을 열어주십니다. :27
에스겔에게 침묵 명령을 내리고 방에 가두는 이유는
삶으로부터 격리되는 일을 통해서만
파수꾼의 사명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뱃속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삶으로부터 격리되어야 됩니다.
우리 삶을 얽매고 있는 목줄을 풀어야 됩니다.
어떻게 삶으로부터 격리 됩니까?
주님의 십자가 붙잡고 삶에 대해 죽는 것이요.
또한 simple life를 사는 것입니다.
TV도 하루 보고, 하루 안 보고 하든지, 매주 수요일은 안 보기 하든지..
자기 나름대로의 심플 라이프를 통한 격리가 필요한 것입니다.
출처
'주제별 설교 > 말씀설교 108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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