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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붙잡혀야 할 4가지 (사도행전 16장 25-26절)

by 【고동엽】 2023. 1. 18.

성도가 붙잡혀야 할 4가지 (사도행전 16장 25-26절)

 

 예수님은 남을 복되게 하라고 하는데 세상은 나를 복되게 하라고 한다. 예수님은 약자 곁에 서는 강자가 되라고 하지만 세상은 강자 곁에 서는 약자가 되라고 한다. 세상 것에 붙잡혀 살지 말고 좋은 것에 붙잡혀 살라. 무엇에 붙잡혀 살아야 하는가?

 

1. 성령

 

 어느 날 바울 선교 팀이 빌립보의 한 기도처로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한 여종을 만났다(16졸). 그 여종은 점으로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었는데 바울 일행을 알아보고 몇 날을 계속 소리쳤다.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실제로 맞는 말이지만 너무 사람을 높이는 느낌이 든다. 그런 말을 들으면 영성이 없는 사람은 좋아하지만 영성이 있는 사람은 부담스럽게 여긴다. 칭찬이 너무 지나치면 참된 영성을 가진 사람은 부담스럽다 못해 괴롭게 느낀다.

 

 그 여종이 여러 날을 계속 그렇게 말하자 바울이 괴로워서 마침내 돌이켜서 귀신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해서 그 여종에게서 나오라고 했다. 깊은 영성을 원하면 사람의 칭찬을 너무 좋아하지 말라. 칭찬을 과하게 하는 사람은 주의하라. 과도한 칭찬 중에는 부실한 아부성 칭찬이 많다. 어떤 사람은 속마음을 감추고 거짓으로 칭찬한다. 마귀는 영혼과 공동체와 인간관계를 무너뜨리려고 칭찬을 이용할 때가 많다.

 

 남이 띄워주는 말에 마음이 너무 붕 뜨지 말라. 거짓 칭찬은 힘써 멀리하라. 칭찬은 원래 세워주려고 하는 것이지만 마귀가 개입된 칭찬은 넘어뜨리려고 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귀신 들린 여종이 하나님까지 언급하며 바울 일행을 칭찬하는 것을 듣고 그 내면의 의도를 알고 괴로워하다가 결국 귀신을 쫓아냈다. 이 장면은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의 이름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도 참된 믿음도 없이 귀신에 사로잡힐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살면서 미움과 상처에 붙잡혀 살고 불평과 원망이 체질화된 삶을 사는 것도 귀신에 붙잡혀 사는 것과 다름없다.

 

 귀신에 붙잡혀 살지 말고 성령에 붙잡혀 살라. 사도 바울은 성령에 붙잡혀 살았기에 힘들게 살았어도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었다. 성령에 붙잡혀 세상적인 방식과 권리를 포기하고 살라. 내 뜻과 방식을 내세워 남을 판단하지 말고 때로는 나의 옳음을 증명하려는 권리까지도 포기하라. 성격 문제로 고민되거나 진실한 삶이 부족해서 탄식이 나올 때도 성령충만을 구하라. 사람은 성령님만이 진정으로 바꿀 수 있다.

 

2. 사명

 

 바울이 귀신 들린 여종으로부터 귀신을 쫓아내자 여종의 점을 통해 돈을 벌던 주인들은 더 이상 돈을 벌지 못하게 되자 바울과 실라를 끌고 가서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한다고 고소했다(19-20절). 사람이 가장 난리를 칠 때는 자기 밥그릇을 건드릴 때다. 그런 육적인 본능을 잘 극복해서 남의 생명과 영혼을 팔아 돈을 벌려고 하지 말라. 돈에 영혼이 지배되면 나눔을 통한 영혼의 감격과 보람과 기쁨을 빼앗긴다.

 

 사탄은 돈을 흔들며 미혹한다. “돈은 네가 벌었으니 네 거야.” 그러나 모든 소유는 하나님의 것이다. 사람은 돈의 최종 소유자가 아니다. 또한 사탄은 미혹한다. “돈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그러나 돈으로 할 수 없는 것이 훨씬 많다. 돈만 있으면 행복할 것이란 사탄의 말에 넘어가지 말라. 돈 때문에 오히려 불행해질 때도 많다. 돈을 숭배하지 말고 선하게 사용하라. 돈을 어디에 쓰느냐는 것은 믿음과 인격과 영성을 잘 나타낸다.

 

 돈에 붙잡혀 살지 말고 영횬 구원의 사명에 붙잡혀 살라. 그러면 영혼도 튼튼해지고 미래도 튼튼해진다. 사도 바울의 영혼이 늘 강건했던 것은 고난을 감수하고 복음 전파에 힘썼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감옥에 있는 시간이 오히려 쉬는 시간이었다. 하나님은 가끔 쉬라는 의미로 고난을 허락하신다. 고난조차도 쉼으로 여길 정도로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어떤 고난도 감수하려는 사명의식에 붙잡혀 살 때 가장 복된 삶이 펼쳐진다.

 

3. 사랑

 

 여종의 주인들이 바울과 실라를 잡을 때 그곳에는 누가와 디모데도 있었는데 왜 바울과 실라만 끌고 갔는가? 바울과 실라가 주도적 인물이어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본문 20절에 언급된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라는 구절을 보면 민족적인 편견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선동은 상당히 먹혔다. 당시보다 1년 전쯤 로마 황제 글라우디오가 로마에서 유대인을 축출하는 칙령을 내릴 정도로 제국 내에 그리스도인에 대한 적대적인 편견이 심했기 때문이다.

 

 성도는 편견의 희생양이 될 때가 많았다. 물론 성도도 잘못한 점이 있겠지만 편견 때문에 잘못 이상의 비판을 받을 때가 많다. 그런 편견 전략이 일시적으로는 성공할 수 있다. 본문에서도 여종의 주인들이 ‘유대인과 로마인’을 가르며 선동하자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바울과 실라를 고발했고 결국 상관들도 동조해 바울과 실라의 옷을 찢어 벗기고 매질한 후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든든히 지키라고 명했다(20-23절).

 

 악인이 의인을 공격할 때 마땅한 공격거리가 없으면 편견을 부추겨 선동할 때가 많고 대중은 그 선동에 휩쓸릴 때가 많다. 특히 불의한 리더가 권력을 강화하려고 주로 사용하는 전략이 편견이다. 그러므로 편견에 붙잡혀 살지 말고 사랑에 붙잡혀 살라. 사랑의 폭을 넓히라. 폭넓은 사랑은 폭넓은 인격의 표시이고 폭넓은 축복의 전조다.

4. 기도

 

 간수가 상관들의 명령을 따라 바울과 실라를 중죄인으로 여겨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다(24절). 발을 차꼬에 채운 것은 육신적인 고통을 주려는 의도도 있지만 바울의 초자연적인 능력에 관한 소문을 듣고 그의 탈옥을 철저히 막으려고 그랬을 것이다. 그런 상태로 갇혀 있다가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다른 죄수들에게 들릴 정도로 하나님을 찬송했다(25절).

 

 왜 밤중쯤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찬송했는가? 처음에 그들은 고난 중에 이런 의문도 가졌을 것이다. “왜 거룩한 비전을 따라 사는데 이런 고난이 있을까?” 그 문제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누다가 고난 중에 펼쳐진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섭리를 발견하고 기도했는데 그 기도가 점점 뜨거워지면서 밤중에 저절로 찬송이 터져 나왔을 것이다.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찬송하고 감사하는 모습은 가장 성도다운 모습이다.

 

 고난 중에 믿음이 부족한 모습을 보여도 “평소에는 안 그러더니 때가 되니 본색을 드러낸다.”라고 하면서 쉽게 판단하지 말라. 그런 식으로  판단하면 사람에 대한 시선이 차가워진다. 이 세상에 한 번도 짜증내거나 분노하거나 낙심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사랑의 사도 요한도 변화받기 전에는 예수님으로부터 ‘보아너게(우레의 아들)’란 별명을 얻을 정도로 화를 벌컥벌컥 잘 냈었다. 사람은 누구나 부족한 모습을 노출할 수 있다.

 

 사도행전 14장에서 바울이 이고니온에서 사람들을 피해 도망쳤다고 해서 그가 어려울 때 비겁하게 잘 도망치는 본색이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사도행전 15장에서 바울이 마가 문제로 바나바와 심히 다투었다고 해서 그가 잘 싸우는 본색을 가졌다고 말할 수 없다. 사람이 너무 힘들면 원망하고 불평할 수 있다. 그런 모습을 보인다고 그의 본색이 나쁘다고 쉽게 판단하지 말라. 극심한 고난 중에는 본능적으로 불평하고 원망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본능을 잘 극복해서 기도와 찬송과 감사로 연결시키면 하나님의 크신 능력이 임한다.

 

 바울과 실라가 하나님을 찬송하자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졌다(26절). 그처럼 기적적인 역사가 이뤄지게 한 핵심 요인은 ‘밤중의 찬송’이었다. 그들은 고난 중의 기도를 이런 찬송 고백으로 마쳤다. “하나님! 이제 하나님의 뜻대로 하소서. 죽이셔도 좋고 살리셔도 좋습니다. 다만 이 일로 인해 하나님이 영광 받으소서. .” 고난 중에 드리는 찬송과 감사는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핵심 통로다.

 

< 고난 중에 믿음으로 살라 >

 

 예전에 꿈에서 한 신비한 선생이 나타났다. 그 선생은 평소에는 쉬운 문제만 냈기에 시험을 잘 대비하지 못했다. 그런데 꿈에서 시험 문제를 받아보자 처음부터 너무 어려워서 그 문제들을 풀려고 끙끙대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결국 몇 개의 문제를 풀다가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서 빠르게 문제를 풀고 넘어가는데 조금 후에 나온 문제들은 아주 쉬웠다. 그때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후 문제를 절반도 풀지 못했는데 시험이 거의 끝날 시간이 되었다. 문제를 다 푼 사람들은 하나씩 시험장을 빠져 나가는데 저는 그때도 다급히 문제를 풀고 있었다. 그때 옆에 있던 흉측하게 생긴 사람이 저의 답안지를 막 훔쳐보려고 했다. 너무 끈질기게 달라붙어서 소리쳤다. “가까이 오지 말라. 그런 식으로 살지 말라.” 그 사람 때문에 마지막 남은 귀한 시간을 헛되이 쓰고 곧 시험이 끝났다. 결국 시험 문제의 절반도 못 풀고 나가면서 너무 걱정되었다. 꿈속에서 그런 상황에 처하자 절망적인 마음이 되고 영혼이 흑암에 싸인 것 같았다.

 

 그때 할 수 없이 마지막 카드를 썼다. 그때 꿈에서도 내가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란 확신이 강했기에 무의식중에 말했다. “나는 예수 믿는 사람인데 이런 문제로 너무 낙심하지 말고 이 어두운 꿈의 터널에서 깨어 밝은 세상으로 나가자.” 그런 생각과 함께 의지적으로 곧 꿈에서 깨어났다. 그때 묘한 기쁨이 내면에서 피어올랐다. 믿음의 힘이 무의식까지 조절하는 경지에 이른 것 같았기 때문이다. 꿈의 스토리는 조절할 수 없었지만 꿈속에서도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의지적인 믿음으로 꿈속의 절망적인 상황을 비교적 쉽게 이겨낸 것이다.

 

 살다 보면 어려운 문제를 만난다. 그때 너무 어려운 문제는 그냥 넘어가고 쉬운 문제부터 푸는 지혜도 필요하다. 특히 중요한 것은 의지적인 믿음을 가지고 찬송하고 감사하는 것이다. 밤중의 찬송이 있으면 영혼을 얽맨 모든 답답한 문제도 곧 풀린다. 밤중의 찬송은 기적을 낳고 흑암의 세력을 굴복시킨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믿음 안에서 기쁨과 감사를 잃지 않음으로 흑암과 같은 삶을 대낮과 같은 삶으로 승화시키는 복된 심령이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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