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은사와 관련된 교훈(1) (고린도전서 12장 4-11절) 1. 하나 됨을 추구하십시오
은사도 다양하고 직분과 사명도 다양하고 체험도 다양하지만 그 모든 것을 주신 분은 성령(4절), 성자(5절), 성부(6절)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이고 궁극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목적으로 은사가 활용되어야 합니다. 은사를 흔히 ‘하나님이 주신 신비한 재능’으로 여기지만 원래는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는 은혜의 선물’을 뜻합니다. 그래서 특별한 사람에게만 은사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사람마다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를 수 있지만 다 같은 성령님이 주신 것이기에 남의 은사를 인정하고 분열을 피하십시오. 믿음의 본질적인 삶은 기독교적인 열심을 갖고 주를 위해 일할 때 성령의 아름다운 역사가 나타나게 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은 분열을 위해 은사를 주시지 않았습니다. 자신은 은사를 통해 좋은 일을 했다고 여기지만 하나님 앞에 가서 “내가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라는 소리를 들으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성령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독불장군이 되면 안 됩니다. 성령님과 함께 한다는 사람이 늘 혼자라면 문제입니다. 자기가 다 가졌다고 여기고 남이 필요하지 않다고 여겨도 안 됩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썼기에 하나님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셨습니다. 분열을 좋아하는 고독한 배회자는 성령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합니다.
사람은 원래 남 칭찬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합니다. 요즘은 동생이나 형이 잘 살아도 배가 아픈 시대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남을 칭찬해주면서 분열을 힘써 피해야 합니다. 교회의 논쟁은 희망보다는 고통을 주면서 본질적으로 비생산적일 때가 많습니다. 그런 논쟁을 피하고 묵묵히 자기의 길을 가면서 자신의 은사를 통해 교회의 연합에 기여하십시오.
2. 은사로 유익을 주십시오
왜 각 사람에게 성령의 은사를 다르게 주십니까? 공동체를 더욱 풍성하게 하고 유익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7절). 하나님께서 각 사람마다 바이올린과 같은 은사, 트럼펫과 같은 은사, 피아노와 같은 은사를 다르게 주시는 것은 각각의 은사로 교회를 아름다운 영적인 오케스트라로 만들라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본문 8-10절에서 성령의 9가지 은사를 언급합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의 9가지 은사 중 가장 먼저 ‘지혜의 말씀의 은사와 지식의 말씀의 은사’를 듭니다(8절). 은사의 서열은 없지만 사도 바울이 가장 먼저 ‘지혜의 말씀의 은사와 지식의 말씀의 은사’를 든 것은 이 2가지 은사를 중시했다는 뜻도 됩니다. 지혜(소피아)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실제적으로 잘 적용하는 능력이고 지식(그노시스)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론적으로 잘 이해하는 능력입니다.
믿음의 은사는 구원의 믿음을 뜻하기보다는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는 믿음을 뜻합니다. 병 고치는 은사는 “육체의 질병을 고치는 능력뿐만 아니라 영혼과 정신과 마음의 질병을 고치는 능력도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능력 행함의 은사는 기적적인 일을 통해 하나님을 믿게 하는 은사를 말하고 예언의 은사는 하나님이 주신 통찰력으로 사람들을 바르게 인도하는 은사를 말하고 영분별의 은사는 거짓 선지자로부터 교회와 성도를 지키는 은사를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사도 바울은 방언의 은사와 방언 통역의 은사에 대해 언급합니다.
어떤 교인은 방언의 은사가 주는 유익에 대해 의문을 품지만 방언의 은사도 잘 활용되면 교회에 유익이 됩니다. 특히 자신 및 공동체의 기도를 돕는데 좋은 역할을 합니다. 방언의 은사는 고린도 교인들이 가장 자랑했던 은사였습니다. 문제는 방언 구사로 1등 신자와 2등 신자를 나누면서 교회의 갈등이 커진 것이었습니다. 그런 자랑이 없도록 사도 바울은 의도적으로 방언의 은사를 가장 뒷부분에 배치했고 또한 방언의 은사와 함께 방언 통역의 은사를 언급함으로 방언의 무절제한 사용을 주의시키고자 했을 것입니다.
또한 방언 통역의 은사를 언급한 것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행해졌던 방언이 오순절 다락방에서 주어졌던 ‘분명한 언어로 들려졌던 방언’과는 달리 ‘남이 이해할 수 없는 말로 들려진 방언’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런 다양한 은사 문제로 인해 교회에 갈등이 생기는 상황을 보면서 사도 바울이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습니까? 은사는 본질적으로 교회에 해가 되지 않고 유익이 되도록 활용되어야 합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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