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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을 이겨내는 5대 기도 (시편 69편 1-18절)

by 【고동엽】 2022. 12. 20.

고난을 이겨내는 5대 기도 (시편 69편 1-18절) 1. 눈물로 간구하는 기도

 다윗은 목이 마를 정도로 부르짖어 기도했고 눈이 쇠할 정도로 눈물로 기도했다(3절). 그렇게 간절히 눈물로 기도한 것은 자신을 이유 없이 미워하는 자가 많았고 부당하게 자신을 파멸시키려는 원수가 강해서 자신이 빼앗지 않은 것도 물어주게 되었기 때문이다(4절). 다윗은 용사였지만 눈물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눈물을 비웃거나 냉소하거나 부끄러워하지 말라. 눈물 섞인 빵 껍질을 씹을 때 위선의 껍질을 벗길 수 있고 축복을 감싼 껍질도 벗길 수 있다. 다만 눈물을 잘 분별해서 악어의 가짜 눈물이나 스토커의 거짓 눈물에는 속지 말라.

 어떤 남자는 자기를 사랑해주지 않으면 죽겠다고 사랑을 구걸한다. 믿음직한 행동을 보여주지 못하고 수시로 잘못해서 여자의 마음이 멀어지면 그때마다 눈물로 빌면서 “내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는 줄 알아. 당신 없으면 난 죽어버릴 거야.”라고 하는 남자도 있다. 그 눈물에 속아서 마음이 약해져 불의와 무책임을 계속 덮어줌으로 자기도 힘들어지고 상대도 정신적인 허약과 오염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얼마 전 둘째 딸에게 이런 결혼 코칭을 해주었다. “한나야! 만나주지 않으면 죽겠다고 위협하는 청년은 마음을 굳게 먹고 더 멀리해라.” 대개 마음이 약하고 착한 여성들은 스토커의 거짓 눈물에 잘 속는다. 죽음을 내세워 사랑을 구걸하는 사람은 죽도록 사랑할 사람이 아니라 죽음을 무기로 상대 영혼을 통제하려는 사람이다. 그런 극단적인 언행이 없이 평소에 사랑과 책임감이 넘치는 행동을 보여주는 사람이 진짜 죽도록 아내를 사랑하고 보호한다.

 사람은 거짓 눈물에 잘 속는다. 특히 마음이 약한 사람은 거짓 눈물에 속아 인생 전체를 도난당할 때가 많다. 사이비 교주는 대개 거짓 눈물을 잘 연출한다. 수많은 나쁜 소문이 돌면서 사람들이 대부분 지탄해도 교주가 거짓 눈물을 흘리며 변명하니까 마음 약한 신도들이 그 수중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거짓 눈물에 사람은 속아도 하나님은 속지 않는다. 하나님은 진실한 눈물의 기도에만 최선으로 반응해주실 것이다.

2. 회개를 앞세우는 기도

 다윗은 우매함을 죄로 여기고 눈물로 기도하면서 자기 우매함과 죄를 토로하는 회개 기도를 드렸다(5절). 최고의 눈물은 진실한 회개의 눈물이다. 기도할 때도 회개하며 기도하면 급속히 회복의 역사가 시작된다. 어떤 사람은 회개 기도를 했는데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기도할 때 “내가 회개 기도를 했으니 빨리 변화를 일으켜주세요.”라고 요구하는 마음을 가진 것은 참된 회개가 아니다. 눈물을 줄줄 흘리며 잘못했다고 말하는 것도 참된 회개가 아닌 경우가 많다. 회개는 사과나 반성이나 뉘우침 이상의 것이다.

 뉘우침과 회개는 겉모습은 비슷해도 의도와 속성은 많이 다를 수 있다. 눈물을 펑펑 흘리며 뉘우치는 것이 사람 눈에는 더 회개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은 속마음을 다 아신다. 하나님은 죄의 대가를 덜 치르려고 잘못했다고 하는 ‘뉘우침’보다 죄를 대가를 달게 받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진심으로 사죄하는 ‘회개’를 원하신다. 하나님 관계의 복원을 위해서는 진실한 회개가 필요하듯이 인간관계의 복원을 위해서도 진실한 사과가 필요하다.

 가끔 보면 잘못한 남편이 아내에게 사과한다고 말한 후 “사과했으니 끝내자. 사과했는데 왜 안 푸느냐?”라고 사과도 일방적으로 할 때가 있다. 그때 아내가 사과를 바로 받아주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속으로 “내가 아내를 많이 힘들게 했구나!”라고 하면서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진짜 사과하는 자세다. 그런데 부끄러움도 모르고 주변에 “내가 사과했는데 아내가 안 받아줘요.”라고 소문까지 낸다면 그것은 자기 잘못보다 아내의 잘못을 부각시키려는 모습으로서 그 사과에 진정성이 없었다는 반증이다.

 사과를 무조건 즉시 받아주는 것이 사랑은 아니다. 사과에는 진정성이 필요하듯이 회개에도 진정성이 필요하다. 고난이 죄 때문에 생기는 것만은 아니다. 죄와 상관없이 이유를 알 수 없는 선한 목적으로 생기는 고난도 있다. 그때는 고난을 감사하고 고난과 담대하게 맞서라. 그러나 고난 중에는 불순종과 죄 때문에 생기는 고난도 많다. 그때는 진심으로 회개하라. 진실한 회개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고 상상 이상의 큰 역사를 일으킨다.

3. 이웃을 생각하는 기도

 다윗은 하나님을 바라고 찾는 사람들이 자신 때문에 수치와 욕을 당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다(6절). 그는 극심한 고난 중에도 이웃과 공동체를 생각하며 기도했다. 큰 인물은 사랑의 폭이 다르다. 사랑의 폭을 넓혀야 축복의 지경도 넓혀진다. 이웃을 조금 더 생각할 때 인생이 조금 더 아름다워진다. 기도할 때도 이웃사랑을 실천하며 기도할 때 그 기도가 고난을 극복하는 능력 있는 기도가 된다.

 어느 날, 교회에 승합차가 필요할 때 개인버스 한 대를 운영하면서 어렵게 생활하는 한 집사 부부가 찾아와 말했다. “목사님! 저희 버스를 팔면 어느 정도 받는데 그 버스를 팔아 교회 승합차 헌금을 하고 싶습니다.” 당시 그의 아내는 투병 중이었는데 수술 결과가 좋아서 더 이상 목돈이 들지 않고 남편은 다른 일을 하면 되니까 자기들의 정성을 받아달라는 얘기였다. 그때 너무 감격해서 할 말을 잃었다.

 곧 재정 집사들과 그 헌금을 받아야 할지 상의했다. 그리고 헌신의 감동을 막으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그 집사 부부의 마지막 희망의 씨앗을 받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그 집사를 불러 말했다. “집사님! 집사님의 마음은 잘 알지만 그 헌금은 도저히 받을 수 없습니다. 마음으로는 이미 다 받았습니다. 절대 섭섭하게 여기지 마세요.” 그렇게 대화할 때 감동적인 전율을 느끼면서 “이것이 성령충만의 역사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삶의 목적을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누군가를 섬기는 데 두라. 더 나아가 은밀하게 선을 베푸는 부자의 꿈을 가지라. 큰소리 없이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고 힘써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은 인생최대의 행복이다. 무협지에서 주인공이 무공으로 정의를 세우듯이 현대에는 물질이 정의를 세우는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 자기가 가진 물질과 재능과 힘으로 하나님의 영적인 암행어사 역할을 잘한다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는가? 그런 마음을 품고 기도할 때 그의 기도가 고난을 이겨내는 능력 있는 기도가 된다.

4. 공의를 추구하는 기도

 본문 13절을 보라. “여호와여 나를 반기시는 때에 내가 주께 기도하오니 하나님이여 많은 인자와 구원의 진리로 내게 응답하소서.” 하나님이 다윗을 반기시는 때는 극심한 고난의 때였다. 즉 의인이 까닭 없이 고난당할 때는 하나님이 가장 반기시는 때다. 그때 기도하면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구원의 진리를 체험할 가능성이 많아진다. 하나님은 행한 대로 갚아주시는 공의의 하나님이다. 다윗은 그런 하나님의 공의가 나타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하나님의 사랑도 잘 인식하면서 하나님의 공의도 잘 인식하라. 사랑과 공의는 함께 가야 한다. 누가 크게 잘못했으면 사랑이 많은 기독교인도 그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할 수 있다. 때로는 자리에서 깨끗하게 물러나는 것이나 물러나게 하는 것도 일종의 사랑의 행위가 될 수 있다. 공의를 바로 세우는 행위가 사랑이 없는 행위는 아니다. 그래서 사랑의 하나님께서 고난도 있게 하시고 죽음도 있게 하시고 무서운 심판도 행하시는 것이다.

 공의만큼 사랑을 세우고 사랑만큼 공의를 세우라. 심판과 징계를 사랑이 없는 행위로 정죄하지 말라. 기독교인 사장도 공동체의 비전과 역동성과 인사의 효율성을 살리기 위해 20-30년 동안 같이 일했던 고위 임원들을 퇴사시킬 수 있다. 그것을 사랑이 없는 행위라고 오해해서 “교회 다닌다는 사람이 왜 저래?”라고 하면서 시험에 들거나 배신감을 가지면 그런 반응이 오히려 기독교의 사랑을 오해한 것이다. 사랑은 자기중심적인 사감이 아니다. 때로는 전체 공동체를 위해 사적인 감정을 배제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랑도 중요하지만 공의도 중요하다.

 자녀를 교육할 때도 사랑과 공의를 겸비해야 바른 교육이 이뤄진다. 교육학에서는 남편이 자녀를 징계할 때 아내가 태클을 걸면 자녀교육을 망친다고 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심지어는 남편이 자녀를 잘못된 방식으로 징계할 때도 일단은 아내가 참견하지 말아야 한다. 잘못 징계하는 것이 확실하면 징계 후에 자녀가 없을 때 남편에게 정당한 징계에 대한 자기 의견을 내야 자녀가 가치관의 혼란을 느끼지 않는다.

 남편이 징계하는데 아내가 옆에서 자꾸만 자녀의 응석을 받아주고 “왜 당신이 그렇게 혼내요? 당신은 잘났어요?”라고 하면 부부간에 예의도 아니고 자기는 남편보다 사랑이 많다는 과시처럼 보일 수 있다. 자녀의 징계 받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마음 아픈 일이다. 그래도 정당한 징계라면 가만히 지켜보아야 공의가 바로 서고 자녀도 바르게 된다. 그처럼 사랑과 공의가 겸비될 때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고 또한 그때 드리는 기도가 고난을 이겨내게 하는 능력 있는 기도가 된다.

5. 은혜를 사모하는 기도

 다윗은 힘들 때 간절히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구하는 기도를 드렸다(14-18절). 필자는 큰 문제나 기도제목이 생기면 구체적으로 소원을 아뢰는 기도를 한 후 이렇게 기도한다. “하나님! 어떤 조치에도 아멘 하겠습니다. 최악의 상황이 펼쳐져도 감사하는 마음이 후퇴하지 않게 하소서!” 그리고 이런 기도를 마지막으로 덧붙인다. “하나님! 그래도 이 문제가 선하게 풀리도록 은혜를 내려주소서!” 그렇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합력하여 선을 이뤄주실 때가 많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아무리 강하고 똑똑한 사람도 어떤 문제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때가 많다. 운전할 때 아무리 속도를 줄이고 방어운전을 해도 상대방이 중앙선을 넘어와 들이받는 것까지는 막지 못한다. 때로는 가만히 서 있는 차를 뒤에서 들이받아 목숨을 잃기도 한다. 하나님께서 내 운전대뿐만 아니라 남의 운전대도 지켜주시는 은혜가 있어야 생명을 지킬 수 있다.

 사랑이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를 늘 사모하며 살라. 열심히 일하되 모든 일의 결과를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에 맡기라. 선악의 판단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고 사람에 대해 너무 실망하지 말라. 상황의 판단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고 하나님의 모든 조치에 대해 감사하라. 믿음은 노력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다. 인간적인 노력과 준비도 믿음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사람의 노력과 준비는 축복의 변수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축복의 상수다.

 필자는 지난 25년간 성경강해를 힘써 준비했다. 현재까지 성경 전체강해의 약 78%를 완성했다. 기존 강해된 것들도 계속해서 업데이트해서 더 임팩트를 주는 말씀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그렇게 노력하고 준비했어도 하나님께서 ‘키다리 아저씨’를 통해 은혜의 문을 열어주시지 않았다면 <월새기(월간 새벽기도)> 문서선교 사역은 이뤄질 수 없었다. 한 월새기 회원은 “월새기 영어판 발행을 돕는 키다리 아저씨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했다. 키다리 아저씨로 상징화된 하나님의 은혜는 가장 소중한 축복의 원천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기도를 앞세워 고난과 문제를 잘 극복하라. 극복된 고난은 아름다운 시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다. 아름다운 시는 마음을 정화시키지만 극복된 고난은 영혼을 정화시키기 때문이다. 많은 감동적인 시들은 대개 고난을 거쳐 정제된 시들이다. 다윗의 시편들은 말할 것도 없다. 여름에는 여름의 음악이 있지만 겨울에는 겨울의 음악이 있다. 겨울에 산에 가면 겨울바람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겨울 억새의 은은한 소리가 심금을 울리면서 어떤 깊은 메시지를 전달해줄 때가 얼마나 많은가?

 성숙한 믿음을 위한 필수과목인 고난을 피하려고만 하지 말라. 고난을 담대하게 맞이하면 작게 느껴지다가 진짜 작아지지만 고난을 두려워하며 회피하면 크게 느껴지다가 진짜 커진다. 고난 중에 너무 탄식만 하지 말라. 여명 직전이 가장 깊은 밤이듯이 고난의 밤이 깊을수록 찬란한 아침은 속히 올 것이다. 극심한 고난 중에도 다윗처럼 고난을 이겨내는 기도를 앞세워 고난의 때를 잘 지나고 인물의 길을 힘써 준비하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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