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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 18,185편 ◑/곽선희목사 1,910편

한 무화과수에 내린 심판! (마 21:18-22)

by 【고동엽】 2022.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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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무화과수에 내린 심판! (마 21:18-22)


성도 여러분, 잠시 여러분이 어렸을 때 생각으로 생각을 한번 돌리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부모님 슬하에서 성장하면서 부모님과 어떤 관계 속에서 자랐습니까?  혹, 어머니에게 매를 맞아 본 일이 있습니까?  어떤 어린 아이는 아버지로부터는 가끔 가끔 맞았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그런가보다'하고 한편 아버지를 좀 무서워하기도 하고 그렇게 자랐습니다만은, 어머니로부터는 전혀 맞은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 '어머니는 좋은 분이다, 어머니는 참으로 자애로운 분이다'라고만 생각했는데 어느 날, 어머니로부터 맞았습니다.  세게 맞았습니다.  그리고 너무 분하고 마음이 아파서 '우리 어머니가 이럴 수 있단 말인가?'하고 하루종일 울더랍니다, 중얼거리면서.  여러분, 그런 기억이 없습니까?  어머니는 특별히 자애롭습니다.  그러나 그 어머니가 그 자식을 때릴 때도 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매질을 합니다.  그가 아파하고 하루종일 울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래도 어머니는 그 자식을 징계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습니다.  이제 불과 몇 일 후에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실 것을 다 알고 이 자리에 온 것입니다.  성전에 올라갔을 때 보니 성전이 엉망입니다.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 강도의 굴이 되었습니다.  장사치들의 시장바닥이 되어버렸습니다.  돈 바꾸는 사람들, 재물을 사고 파는 사람들, 이 성전 뜰이 완전히 양 시장이요.  양 팔고 사는 시장이에요.  아주 이렇게 어지러워지고, 더러워진 성전을 보시고 분노했습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고요.  채찍을 들어서 모두 내쫓았습니다.  그때, 저희들이 워낙 잘못하고 있던 터라 예수님의 그 권위있고 권세있는 위세를 보면서 저들은 다 멀리멀리 도망가게 되었습니다.  성전 뜰은 깨끗해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마음은 아팠습니다.  어쩌다가 성전이 이 모양이 되었는가?  그리고 가까운 마을, 베다니 마을에 가서 하룻밤을 쉬시고 그 다음날 새벽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십니다.  성전을 향하여 올라가시면서 예수님의 마음은 벌써 성전에 가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갔다가 실망하는 저 성전, 많은 위선자들과 거짓지도자들이 우글우글 대고 있는 저 썩어빠진 성전을 마음에 생각하면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십니다.  그 대제사장에 의해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십니다.  그것까지 생각하시며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여 올라가시는 길에, 길가에 있는 무화과나무를 보게 됩니다.  몹시 시장했습니다.  시장한 가운데 저 무화과나무에서 어떤 열매를 얻어 잠시라도 시장기를 끌 생각으로 가까이 갔으나 열매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에 있는 무화과, 그것은 좀 특별합니다.  우선 그 키가 15에서 20피트까지 자랍니다.  그 키보다 옆으로 더 많이 퍼집니다.  그래서 20에서 30피트까지 넓게 퍼집니다.  이렇게 옆으로 퍼지는 나무요.  그리고 무화과나무 잎이 비교적 큽니다.  멀리서 볼 때, 한 그루의 무화과나무도 굉장히 무성하게 그렇게 보입니다.  그런데 이 무화과는 일년에 두 번 열립니다.  4월경에서는 1년 동안 묵은, 묵은 나뭇가지에서 그대로 열매가 생깁니다.  이 열매는 먹을만한 것이 못됩니다.  아주 맛도 없고 떫고 씁쓸합니다.  먹을만한 것이 못되지만 그래도 정 시장한 사람들은 이 열매를 먹고 잠시 시장기를 면할 수 있는 그런 열매올시다.  그리고는 9월달 쯤 돼서 진짜 열매가 맺습니다.  이것은 새로 나온 가지에 달린 열매입니다.  그리고 노랗게 익어가면 냄새도 좋고 먹을만한, 맛있는 무화과나무 열매를 얻을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마가복음 11장 13절에 보면 "제 철이 아니다" 하는 말은 바로 가을, 그 맛있는 열매가 맺을 바로 그 때가 아니다 그런 뜻입니다.  이 4월에 맺는 열매, 예수님은 그것을 구했는데 그것마저 없었습니다.  실망했습니다.  예수님은 실망케하는 죄에 대하여 이 사건을 앞에 놓고 계시적으로 말씀하게 됩니다.  마태복음 18장에 보면, 자녀를 실망케 하는 실족케 하는 부모의 죄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경고한 말씀도 읽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가난한 사람, 가난한 사람은 언제나 마음 상하기 쉽습니다.  무엇인가 기대했다가 또 실망을 합니다.  배고픈 사람은 코가 예민합니다.  아 배고픈 사람, 정말 배가 고프면 배만 고픈 게 아니에요.  슬픕니다.  이게 인간이올시다.  제가 6·25 전쟁 때입니다.  광산에서 탈출해 가지고 나와서 산에 숨어있을 때, 몇 달 동안 산에서 헤매는데 식량이 없습니다.  그저 뭐하나 생기면 그저 그런 대로 이렇게 저렇게 먹을 수도 있지만은 어떤 때는 식량을 구할 수가 없는 것이 토벌대들이 밑에서 막 찾아다니고 있기 때문에 저분들에게 발각되면 그냥 즉석에서 총살을 당합니다.  그래서 높은 산으로만 헤매는데 이게 뭐, 식량이 있을 리가 없죠.  그래서 그 산에 물이 흐르는 곳에서 가재가 거기 있더만요.  그거 몇 마리 잡아먹으면서 시장기를 끄고 그랬는데, 몇 일 동안 밥을 못 먹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마침 비가 옵니다.  몸은 젖지요, 배는 고프지요, 와∼ 높은데서 내려다보니까 저 산밑에 오막살이 외딴집 하나가 있어요.  저는 생각을 했습니다.  '죽더라도 먹고 죽자.  내려가서 뭔가 좀 구해보겠다'하고 목숨을 걸고 그 무서운 산을 내려왔습니다.  그 집에 가서 사정을 하고 "이렇게 내가 몇 일을 굶었는데 먹을 것이 없을까요?"  아무 것도 없어요.  고구마 몇 개 있던 거 다 먹었대요.  그리고 그 주인, 할아버지 할머니가 "어떡하지요?  저희는 지금요, 식량을 구하러 동네로 내려가려고 하던 참입니다."  그리고 뭐 꿀, 꿀 받아 놓은 거 이만큼, 한 종지 주면서 "이것 밖에는 없는데요"그래요.  참 실망했습니다.  배가 더 고프더라고요.  그래 뭔가 있을까 하다가 없으니까 더 아주 힘이 빠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1997년 클린턴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사에서 이런 명언을 했습니다.  "The enemy of our time is inaction."  '이 시대의 적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행동은 없이 말만 하고, 책임은 지지 않고 비판만 하고, 행동 없는 사람들의 그 많은 말이 많은 사람을 더 실망케 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4장에 보면은 40일을 굶고 주릴 때에도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고 말씀하시던 분입니다.  꼭 배가 고파서의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이 열매 없는 나무에 대하여 심판하고 계십니다.  여기에 중요한 계시적 의미가 있는 것이올시다.  여러분, 이적이라고 하는 것은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좋은 편으로만 생각하려고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이적은 대체적으로 긍정적입니다.  병자를 고치고 장님의 눈을 뜨게 하고 문둥병을 깨끗하게 하고 거친 바다를 고요하게 하고 죽은 자를 살리고…….  이렇게 좋은 면으로 이적이 나타납니다만은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나무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영원히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말라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적이란, 병든 자가 건강해지는 것만이 이적이 아닙니다.  건강한 사람이 병드는 것도 이적입니다.  잘되던 사업이 일이 꼬이면서 망하는 것도 이적입니다.  지진이 이적이요, 재난이 이적입니다.  그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손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그걸 알아야 합니다.  이적이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좋은 방향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이적이 아니고 심판적인 이적, 이런 부정적인 면으로 나타나는 큰 이적도 함께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 오늘 예수님 말씀은 "이 무화과나무가 왜 말랐나이까?"  "믿음으로 구하면 마른다" 이랬어요.  이적이에요.  그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어째서요?  문제는 실망케 했기 때문에.  열매가 없었어요.  수고에는 결실이 있어야 합니다.  땀을 흘렸으면 가을에 추수가 있어야 됩니다.  그렇지 않다면 목적을 배반한 것입니다.  열매가 없을 때, 열매를 위해 수고한 사람에게 얼마나 큰 실망을 줍니까?  은혜에 대한 배반이올시다.

일본에 어느 대학 교수가 학생 몇 명을 데리고 프랑스 파리에 가서 포도주에 대해서 현지 답사와 함께 연구를 하려고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은 포도주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그 방법이 뭐겠습니까?" 물었을 때에 쟌 그로트 교수라고 하는 분은 아주 자세하게 친절하게 이렇게 설명하는 것이었습니다.  "좋은 포도를 얻는다는 것은 기후와 토질이 80%를 결정합니다.  기후가 좋고 햇빛이 좋아야 되고, 그리고 토질이 또한 좋아야 됩니다.  여기에 80%가 있고,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20% 뿐입니다.  그런데 포도 씨앗을 심어서 포도를 딸 때까지 7년이 걸립니다."  그러니까 이 포도가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를 결정하고 알아보는데 7년 걸려요.  그러니까 또 다시 다른 포도를 또 심고, 또 이렇게 특별히 배합해서 또 심고, 7년마다 겨우 경험을 할 수 있어요.  "좋은 종자 하나 만드는데 30년 걸립니다."  이 좋은 포도를 따서 숙성하는데 좋은 포도주가 되려면 30년 걸린다고 그래요.  "나는 100년 후의 행복을 위하여 포도를 연구하고 포도를 심습니다.  이 내가 만든 이 포도주가, 정말 아름다운 포도주가 될 때는 나는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끈질기게 좋은 포도를 얻기 위하여 이렇게 힘을 쓰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농부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기대한 바 좋은 포도가 맺혀지지 않으면 이보다 더 피곤하고 이보다 더 실망스러운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제가 북한에 갔을 때, 김순권 박사님.  소위, 별명 옥수수 박사님이라고 하는 분을 만났습니다.  거기 좋은 옥수수 종자를 가지고 가서 이것을 좀 퍼뜨리려고 애를 써요.  제가 두 번이나 만났어요.  그런데 "잘 돼갑니까?" 그랬더니 얼굴이 보니까 벌써 틀렸어요.  "왜 그렇습니까?"   아, 글쎄 좋은 옥수수 종자를 갔다가 심었는데 잘 자라면서 굵게 자라 올라오더랍니다.  "아! 이거 됐다."  그랬더니, 이만큼 자란 다음에요 이삭이 안나오고 말더랍니다.  "그거, 왜 그렇소?" 그랬더니 "땅기운이 모자라서요" 그래요.  비료가 모자라서 안된데요.  보세요.  애써서 종자를 심어서 이렇게 잘 자라오다가 마지막에 이삭이 나오지 않고 말면 이런 실망이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 다시 생각해 보십시다.  사랑을 받고 사랑의 열매를 맺어야지요.  용서받았으면 용서의 열매를 맺어야지요.  긍휼하심을 입었으면 긍휼의 사람이 되어야지요.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았으면 겸손이라고 하는 열매를 맺어야지요.  열매는 다 어디 갔습니까?  예수님께서 친히 간곡하게 말씀한 바 있습니다.  10,000달란트라고 하는 빚을 진 사람이 있더라.  아무리해도 갚을 길이 없어서 어려운 것을 알고, 그 주인이 탕감해 주었대요.  그거 애쓰지 말라고.  그래서 "다 탕감해 주노라."  이 분이 감사, 감사 해가지고, 감지덕지하고 고맙다고 인사하고 나가는데 자기에게 빚진 사람, 100데나리온 빚진 사람을 만났대요.  이 사람을 붙들고 "갚으라" 갚기 전에는 놓아주지 않겠다고 감옥에다가 쳐 넣었대요.  이 소식을 이 주인이 듣고 너무 마음이 아파서 "내가 10,000달란트를 탕감해 주었는데, 네가 그 100데나리온 탕감해 주는 것이 마땅치 않느냐?  내가 너를 긍휼히 여겼으면 너도 남을 긍휼히 여기는 열매를 맺어야 될것이 아니겠느냐?"  10,000달란트는 천만불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100데나리온은 20불이에요.  그건 오십만분의 일이요.  이 엄청난 죄를 용서받고 사는 그리스도인이 누구를 정죄하는 것이요?  누구를 비판하겠다는 거예요?  긍휼하심을 얻은 사람은 긍휼의 열매를 맺어야지요.  내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원수사랑을 받고 내가 구원을 받았거든 내가 어떤 원수를 용서하지 못하겠단 말이에요?  당연히 용서하는 열매를 맺어야지요.

또한 오늘 본문에 보면 무화과나무가 길가에 서있더랍니다.  가는 사람 오는 사람이 쉽게 볼 수 있는 잎이 무성했어요.  그런고로 찾아갔다가 실망한 거지요.  이 뭘 말합니까?  기대감에 대한 실망입니다.  위선을 말하는 것이에요.  열매도 없으면서 있는 척 해요.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는 것처럼 해요.  아무것도 된 것이 없는데 된 것처럼 말해요.  아무 능력도 없으면서 마치 무엇인가 다 할 수 있는 것처럼 큰소리만 치는 거야.  웬 약속만 하는 거야.  이게 무슨 소용있어요?  정말로 실망하죠.  설사 다른 건 다 없다하더라도 최소한도 진실은 있어야지요.  진실이 빠져나갈 때 실망할 수 밖에요.  진실이 없는 약속, 그 많은 서약이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입니까?  이건 지도자의 기본입니다.   위선, 그것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실망하게 합니까.  이제는 어떤 약속도 믿으려고 들지도 않아요.  이게 얼마나 실망에 지친 사람들의 모습입니까?

오늘 본문을 자세히 보세요.  비 없는 구름 같이 가뭄 때에 구름 한 점이 지나갈 때 기대를 걸었는데 그냥 지나가 버려요.  더 목말라 합니다.  물 없는 우물같이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보았는데 들여다보니 물이 없어요.  이 얼마나 실망입니까.  최소한의 열매를 구했습니다.  뭐 좋은 열매도 아니고 4월의 무화과를 구했습니다.  그런데 그 최소한의 열매마저 없었다는 얘기입니다.

일본에 요새 신종 용어가 있습니다.  패러사이트 프리터(Parasite Freeter)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패러사이트라는 말은 기생충이란 말입니다.  그리고 프리터라고 하는 말은 프리(free)라는 말과 아르바이터(arbeiter)의 일본식 합성어올시다.  이것은 '기생인간' '청년 백수군'을 말하는 것입니다.  일류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 애써서 대학을 보냈고 대학을 졸업했는데 직장을 가지지 않습니다.  귀찮으니까.  부모님들이 집한 채 있는데 거기에 떡 얹혀져 살면서 직장도 가지지 않고 장가도 가지 않습니다.  귀찮은 장가 왜 가냐고.  그리고 한 주일에 한 두 번 아르바이트 해가지고 용돈 조금 벌어서 이래저래 먹으면서 편안하게 살겠다는 거예요.  이러한 족속이 무려 130만이 넘습니다.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설문지를 내서 "freeter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묻자 60%가 "그것, 참 좋은 아이디어"라고 그랬어요.  이제 일본의 장래가 어디로 갑니까?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그 어려운 것을 애써서 애써서 대학을 마쳤어요.  대학 간 이 놈이 장가를 안가요.  직장도 얻지 않아요.  그리고 집에서 빈둥거린다면 이런 기막힌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남의 얘기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상하게 또 일본에 있는 일은 이리로 곧 넘어오거든요.  곧 유행이 됩니다.  요새도 보니까 우리 부모님들 가운데 "아, 이 놈이 장가를 안갑니다"하고 고민하는 사람들 많아요.  나보고 좀 구원해달라고 그래요.  내가 무슨 수로 구원합니까?  왜 그런지 아세요?  극단적인 이기주의요.  귀찮은 거야 다.  '그 까짓 것 뭘 장가를 가느냐?  아내 위하고 아이들 위하고 아이고 귀찮아 까짓 것.  아∼ 아버지, 어머니 집 있으니까 얹혀 살다가 돌아가시면 내 것 될거고.  뭐 됐구만 뭐'  이러고 사는 거예요.  이게 얼마나 실망적이냐 그 말이에요.

특별히 오늘 성경말씀은 신학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답니다.  예수님께서 상징적으로, 예표적으로, 예언적으로 심판하신 것입니다.  지금 예루살렘 성전을 가서 제사장을 바라보고 있는 거예요.  예수님은 제사장, 하나님의 종이기에 직접적으로 심판하지 않았습니다.  간접 심판을 하시는 겁니다.  "영원토록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  결국은 성전을 심판했어요.  40년 후에 예루살렘 성전은 무너지고 지금까지 다시 회복을 못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심판이 여기 나타나는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김익두 목사님 밑에서 몇 번 성경공부를 한 일이 있습니다.  이 분이 싱글싱글 웃으시면서 자기 경험담을 말씀을 하는데 너무 재미있는 말씀이기에 기억합니다.  여름에, 초여름에 모내기 할 때, 어떤 마을을 지나가노라니까 모내기하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점심을 먹고 있는 거예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분입니다.  가까이 가서 "주 예수를 믿으라" 그랬대요.  밥먹던 청년 하나가 나오더니 "목사님, 이 마을에서는 전도 안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왜요?"  "몇 일 전에 비가 오고 바람이 치고 벼락을 때렸는데, 이 동네 한가운데 있는 서낭당 나무를 때렸어요.  저 가지가 부러졌어요, 불타고.  또 바위를 때려서 바위가 무너지고요, 논바닥을 때려서 논바닥이 푹 패였습니다.  이런 사건이 있었는데 아니, 나무가 무슨 죄가 있습니까?  아, 바위가 무슨 죄가 있습니까?  왜 저건 때렸습니까?  아,하나님이 안 계시던지 계시다면 장님이든지 그럴 거"랍니다.  아, 목사님이 듣고 보니 일리가 있어요.  그래서 돌아서서 본인이 기도를 했대요.  '하나님, 지혜를 주십시오' 했더니, 하나님이 지혜를 주더랍니다.  그래서 "자네 학교 다닐 때 서당에 다녔나? 학교 다녔나?"  "학교 다녔습니다."  "선생님의 손에 무엇이 있던가?"  "아, 막대기가 있지요."  "그 막대기는 무엇에 쓰는 것인가?"  "아니, 흑판도 땅!땅! 때리고, 책상도 땅!땅! 때리고 뭐, 그런 거죠."  "흑판이 무슨 죄가 있나?, 책상이 무슨 죄가 있기에 책상을 치나?"  "아 그거야 졸지 말라고……."  "이놈아!  지금은 바위를 때렸다만은 다음에는 네 머리를 친다" 그랬더니 "아이고, 아이고,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그 청년이 예수를 믿고, 그것이 중심이 되어서 거기에 교회를 세우고, 그 사람이 장로가 되었다고 이런 얘기를 말씀을 하십니다.

여러분, 대신 친다는 걸 잊지 마세요.  하나님의 사람, 당신을 칠 것인데 열매 없는 당신을 쳐야 할 것이지만은 지금 간접적으로 누군가를 쳤어요.  내 대신 누군가가 매를 맞고 있어요.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점점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  열매 없는 세계를 향해서 말입니다.  길가에서 잎만 무성해서 많은 사람에게 실망을 주고 있는 무화과처럼, 예루살렘 성전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실망을 주었어요.  위선이 심판을 받는 시간입니다.  이제는 열매를 맺어야 할 것입니다.  이 무서운 경고를 듣고 우리는 새롭게 열매를 맺어야 할 것입니다.  충성과 진실, 감사에서 감사로, 사랑에서 사랑으로, 은혜에서 은혜로, 아름다운 열매를 이제는 맺어야만 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열매 없는 우리를 향하여 오래오래 참아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원컨대 이제는 열매를 맺을 수 있고, 인격에 생활에 사회에 확실하게 그 크신 은혜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갈 수 있게 하소서.  모든 실망을 거두고, 이제는 충만함과 감사와 은혜로 충만케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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