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계신 주, 살아있는 신앙 요일4:1~6
사도 요한이 요한일서를 기록한 목적은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예수 믿는 성도에게는 충만한 기쁨이 있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서였죠.
요일1: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성도들에게 있는 충만한 기쁨은 살아계신 주 예수님입니다.
그 주님과 친밀히 교제하며 사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성육신만 하신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 안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마음에 임하신 사람은
반드시 죄짓지 않는 의로운 삶을 살게 되고, 사랑만 하며 살게 됩니다.
주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살면서
죄짓고 다투고 미워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인지, 마귀의 자녀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겉으로 만으로는 모릅니다. 교회 안에서
적그리스도가 나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부인한 니체는 목사 아들이었고 신학생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교훈이든지 겉만 보지 말고 그 영을 분별해야 합니다.
▲요일4:1 사랑하는 여러분, 어느 영이든지 다 믿지 말고,
그 영들이 하나님에게서 났는가를 시험하여 보십시오.
거짓 예언자가 세상에 많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은 영을 분별하는 기준을
예수님의 성육신을 믿느냐 아니냐로 제시합니다.
2절 여러분은 하나님의 영을 이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
께서 육신을 입고 오셨음을 시인하는 영은 다 하나님에게서 난 영입니다.
왠 교리인가 하시겠지만,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오셨음을 믿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마귀가 가장 공격하는 복음이 하나님이 참 사람이 되셨다는 성육신 교리죠.
이것을 믿지 못하면 속죄함과 거듭남의 복음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육체로 오셨음을 믿지 않는 이들이 요한 사도 때 있었습니다.
소위 영지주의자들입니다. 그들은 영과 육은 완전히 별개라
구원은 영혼이 받는 거고, 육은 죽으면 끝나는 영원히 타락한 존재라 믿었죠.
그래서 참 하나님이 참 사람이 되셨음을 안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것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의 영이 인간 예수 안에 임하였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인간 예수 안에 하나님이 영이 잠깐 머물렀다가 예수가 십자가에 달릴 때
그 몸에서 떠나 하늘에 올라갔다는 것입니다.
인간 예수 안에 하나님의 영과 인간 예수가 함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영지주의 식으로 믿으면
속죄함의 십자가 은혜는 없습니다. 부활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더 이상 그리스도가 아닌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와 한 몸이 되시고
우리의 생명이 되셨다는 믿음도 부인됩니다.
죄짓지 않고 의롭게 살 수 있고 사랑만 하며 살 수 있다는 믿음도 무너지죠.
그러니 정말 무서운 미혹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초대교회 때 이야기이고
우리는 다 성육신을 믿으며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으니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 아닌가 생각하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도 이와 같은 미혹이 주위에 무섭게 퍼져 있어요.
▲3절 그러나 예수를 시인하지 않는 영은
다 하나님에게서 나지 않은 영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적대자의 영입니다.
여러분은 그 영이 올 것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영이 세상에 벌써 와 있습니다.
우리가 정말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시인하는지 아닌지는
말을 보고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분별의 기준이 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요15:4-6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예수님이 정말 성육신하셨으며, 그리스도라면
우리도 예수님과 포도나무와 가지처럼 한 몸이 될 수 있으며,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은 우리 안에 거하는
완전한 하나됨이 예수님을 믿는 기준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이 믿어지고 실제로 누려집니까?
그렇지 않다면 성육신을 믿는다는 것은 머리로만 믿는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는 육신대로 살고
교회 와서는 영으로 예배합니다.
예수님과 자신이 정말 하나가 되었음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입니다.
영지주의자들의 삶을 그대로 사는 것입니다. 자신 안에 예수님도 계시지만
자신과 하나가 된 것은 아닙니다. 자기 안에 두 인격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엄밀히 말하면 성육신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자신이 하나가 되었다고 믿지 못하면
우리는 형식적이고 율법적인 신앙에 빠지게 됩니다.
한국 교회는 지금 형식적 신앙의 함정에 빠졌습니다.
“나는 이단에 속하지 않고 정통 교회에 속하였어!” 방심하면 안됩니다.
형식적 신앙이 위험한 것은 자기도 속고 남도 속이기 쉽기 때문입니다.
형식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다!” 시인합니다.
그렇다는데, 자신이 그렇게 믿는다는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고 신앙고백도 하고, 주기도문도 하지만
말로만 그렇지 행위로는 부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초대교회 때는 그나마 예수가 그리스도다 고백하느냐 아니냐로
영 분별을 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고백하는 것만으로 분별할 수도 없습니다.
더 심각한 미혹이 온 것입니다.
정말 예수님이 그리스도라고 믿는다면 반드시 삶에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4절 ...여러분 안에 계신 분이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시기 때문입니다.
세상 보다 큰 분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사람이
어찌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 수 있겠습니까?
미국 어느 교회가 술집으로 사용하던 건물을 사서 옮기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술집 주인이 기르던 앵무새 한 마리를 교회에 선물하고 갔습니다.
주일 아침이 되었는데, 목사님이 가운을 입고 강단에 올라가자
“새 주인, 새 주인”하더랍니다.
성가대가 성가대석에 올라가자 “새로운 팀, 새로운 팀”하더랍니다.
그런데 교인들이 예배당으로 들어오자 “그 손님, 그 손님”하더랍니다.
그 중에 술집에서 늘 보던 그 사람들이 주일이면 교회에 온 것입니다.
삶으로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부인하면서
자신이 구원받았다고 속고 사는 이들이 있습니다.
계2:4-5 그러나 너(에베소교회)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계3:1 ...내가 네(사데교회)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계3:15-17 내가 네(라오디게아교회)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어느 목사님이 어느 교회 장로님과 권사님들이 싸우시고
남의 말을 많이 하기에 제 설교를 들어보라고 하셨답니다.
얼마 후 만났더니 은혜를 받으시는 정도가 아니라 열렬한 팬이 되셨더랍니다.
그런데 여전히 서로 미워하고 싸우신답니다.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자신은 전혀 보지 못하니 말입니다”
설교 듣고 은혜 받았다고 정말 깨달은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지만 삶에 기쁨도, 감격도 없습니다.” 이 말은 거짓말입니다.
정확히 말해야 합니다. 실제로는 예수님을 안 믿는 것입니다.
윌리엄 로우는 「경건한 삶을 위한 부르심」에서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성도는 가장 기도 많이 하거나
가장 금식 많이 하는 성도가 아니다.
가장 구제 많이 하는 성도도 아니다.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모든 것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성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어떻게 기쁨이 넘치는 사람이 됩니까?
생명이 바뀐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4절 ...여러분은 하나님께로서 온 사람들이며
6절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왔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에게서 왔습니다” 는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이 임하셨다’ 정도가 아닙니다.
(근본이, 출처가) 생명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주님이 우리 안에서 우리의 생명, 우리의 주님이 되셨습니다.
분명히 전에는 세상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생명이 바뀌었음을 정확히 믿어야 합니다,
“나는 죽었다! 장례식을 이미 치렀다!”
그러면 이제부터 어떻게 살겠습니까?
가족은 어떻게 만나나?
예수님의 생명으로 예수님의 사랑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직장동료를 어떻게 만나나?
예수님의 생명으로 예수님의 사랑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길거리에서 지나치는 사람은 어떻게 만나나?
예수님의 생명으로 예수님의 사랑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교인들은 어떻게 만나나?
오직 예수님의 사랑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모든 염려, 두려움, 조급함, 미움, 갈등, 다 사라집니다,
없애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다 사라졌습니다,
죄에 대한 완전한 승리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나를 죽여주세요 라고 기도하지 말고, 나는 죽었습니다!”
하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교회를 10년, 20년 다니는데도 계속해서
시험이 오고 방황하고 무너집니다. 근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것입니다.
‘열심히 새벽기도 안 해서 그런가 보다!'
근본 문제가 해결이 안되어 있는데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나를 다스리는 다른 존재가 있다’를 깨달아야 합니다.
‘나를 잡고 있는 실제적인 지배자’가 세상인데,
무슨 수로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예수 안에 죽고 예수 생명으로 사는 자에게는 마귀는 역사할 수 없습니다.
새해 결심을 해도 대부분 1주일도 못가 예전으로 돌아갑니다.
습관을 바꾼다는 것은 엄청난 일입니다. 어지간해서는 못 바꿉니다.
습관이 바뀌어지면 좋겠지만 안 바뀐다고 해서 치명적이지 않으면,
다시 옛 습관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폐암에 걸린 환자는 담배를 끊을 수 있고,
간암에 걸린 환자는 술을 끊게 됩니다. 심각한 문제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언제 정말 거듭날까요? ‘예수님과 함께 죽었구나!
그렇지 않은 자는 구원받은 자가 아니구나!’ ‘한 해만 주어졌구나!’
하는 사실을 진짜 믿을 때입니다.
♣<복음학교>에 참가했던 한 성도의 간증입니다.
이 분은 평소에 직장에서 성실했고 가정적이었으며
교회도 열심히 다니던 사람이었습니다.
남의 돈을 훔친 적도 없고, 남의 아내를 탐한 적도 없고,
아들에게도 삶으로 본을 보이며“내가 내 어머니를 섬기는 것처럼
너도 이 다음에 네 어머니를 섬기도록 하라”고 당당히 말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와 아들이 복음학교에 다녀오더니,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 인생의 목표가 바뀌었으니
선교사로 헌신하겠다고 허락해 달라더랍니다.
아들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유학을 준비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평소에 교회에 다니며 거룩한 척하고 살던 이 분은 순간 당황하여
“그래 잘했다. 훌륭하다.”하지 못하고 버벅거리게 되더랍니다.
안 된다고는 차마 말하지 못하고 '꼭... 그렇게 해야 하겠냐...‘
'지금 그렇게 해야만 하겠냐...' 등
자꾸 혀가 꼬이면서 이상한 질문만 하였답니다.
아내가 당연히 반대하고 나설 줄 알았는데,
아내마저 아들 편을 드는 것입니다. 정말 걱정이 되더랍니다.
그런데 더 난감한 것은 툭하면 아내와 아들이 '자기는 죽었다‘ 는 것입니다.
도대체 뭐가 죽었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어서 자기는
'나는 살아있다!' 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살아있는 사람이 죽은 시체들 옆에서 지내는 것이
너무나 힘들더랍니다. 그래서 머리를 굴려가며 집안의 시체들을
다시 살려보려고 애쓰기도 했답니다. 하지만 맘대로 되지 않더랍니다.
그런데 갑자기 ‘아내와 아들이 정말 예수를 제대로 믿는 것이고
자기가 변화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고민하다가 아내가 이야기하는 복음학교라는 곳에 가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물었답니다. '그곳에서 5박 6일을 지내려면
어떻게 하면 가장 잘 지낼 수 있어?' 라고 묻자
아내의 대답은 '밥 많이 먹으면서.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 고 하더랍니다.
그래도 자신이 없었답니다. 다시 이야기 하였답니다.
'나는 군대도 가본 일이 없고, 사람들하고 합숙을 하면서 먹고 자고 하는
일을 해 본 적이 없는데 그곳에서 5박 6일을 살다보면.. 나 죽을 지도 몰라'
라고 했더니, 아내는 너무나 기다렸다는 듯이 '확실하게 죽으세요!'
라고 말하더랍니다. 얼마나 서운한지 몰랐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이 분은 하나님을 믿는다지만
세상 속에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는 절대 살 수 없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답니다. 믿음 따로 삶 따로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학교에서 관념적으로 알고 지내던 예수님의 피와 죽음이
이 분의 삶 속에 깊이 들어왔습니다. 드디어 십자가에서 죽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사는 진리의 복음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갈2: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는
말씀이 너무나도 이해되고 믿어지고 기쁨이 되더랍니다.
죽은 척하는 자로서가 아니라 진짜 죽은 자로,
그리고 새 생명을 얻은 자로 살도록 허락하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이렇게 십자가를 통과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아들아, 네가 선교사로 나가겠다고 할 때,
기쁘게 대답해 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했다.
하나님이 너를 도와 주시겠지만, 나도 너의 후원자가 되어줄게' 라며,
꼭 껴안아주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선교사님들을 돕는 자가 되든지,
아니면 제 아내와 더불어 선교사가 되어 주님이 보내시는 그 곳이
세상의 땅 끝에서 죽어...
하늘 복판에서 주님을 만나기를 기대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명이 바뀐 사람이 어떻게 되는 지 감이 잡히십니까?
주님은 지금 우리 안에 살아 계신 주님이십니다.
예수 믿는 것은 생명이 바뀌는 것입니다,
생명이 바뀌어야 진짜 예수를 믿은 것입니다,
성찬은 예수님이 우리 안에 임하셨을 뿐 아니라,
우리의 생명이심을 확인하는 은혜의 시간입니다.
요6: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를 인하여 살리라
:58...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성찬 떡과 잔을 먹고 마시면서, 주님께서 이렇게 내 안에 거하시는구나
하고 주님의 임재를 확인하고, 믿음으로 예수님이 나의 생명이심을 고백하고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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