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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곽선희 목사 설교

주기도문9(마 6:9~15)

by 【고동엽】 2024.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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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문9(6:915)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지금까지 산상보훈 중에서 주기도문을 공부했습니다. 이 기도는 먼저 하나님께 대한 신앙고백이 있고 그리고 우리들을 위한 일곱 번의 간구가 있었습니다. 복습하는 의미에서 다시 정리하면 첫째, 이름을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둘째, 나라이 임하옵시며 셋째,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며 넷째,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다섯째, 우리 죄를 사해 주시며 여섯째,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며 그리고 일곱째가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상으로 7가지 간구가 있은 다음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송영으로 기도가 끝나고 있습니다.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니다 아멘") 이 본문은 성경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괄호 안에 들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내용이 고대 사본에서 없기 때문에 아마도 원문에 없는 내용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에서 괄호 안에 넣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보는 성경은 어느 것 한 장도 친필로 쓴 원문은 없고, 모두가 필사한 사본뿐입니다.

그런데 이 본문이 고대 사본에서 없고 후에 필사된 사본에만 있기 때문에 혹시나 원문에는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괄호 안에 넣었으므로 조금도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원문에 없는 송영이 어찌해서 중간에 필사하면서 들어갔을까를 추리해 보면 다음 몇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사본하는 필사가 이 기도문을 옮기다가 너무 감격해서 기도문 끝에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라고 신앙고백으로 삽입했을 것이라는 추측입니다. 즉 필사가 감격한 나머지 임의대로 이 송영을 넣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 당시 일반 교회에서 예배시에 지금 우리들처럼 주기도문을 암송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의 기도 방식은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하는 송영으로 기도를 끝마쳤기 때문에 여기에 익숙한 필사가 이 성경 본문을 적어 나아가다가 늘 기도하던 그대로 삽입하게 되었다는 생각입니다. 어쨌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을 당시에는 이 내용이 없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 마지막 부분에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송영이 있어야 함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주권을 인정하는 중요한 신앙고백입니다.

셋째로, 기도에는 일반적인 순서가 있습니다. 제일 먼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둘째로 회개하며, 셋째는 이렇게 되어지기를 원합니다하는 간구가 있고, 넷째는 헌신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는 헌신 기도를 하셨습니다. 이렇게 기도의 마지막 부분에는 반드시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하나님 이렇게 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아멘" 하고 다소 고집스런 기도로 끝내는 것을 봅니다만 야고보서에 보면, 하나님 앞에서 낮추면 하나님께서 높여 주시겠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기도할 때는 무엇보다 겸손한 자세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내가 구하는 것이 반드시 이루어져야만 잘된 일이라고 보장할 수 있습니까? 비록 병에 걸렸다 해도 이 병이 꼭 나아야 하는지 아니면 좀더 앓아야 될는지는 잘 모릅니다. 단지 우리는 하나님께 겸손한 자세로 아뢸 뿐입니다. "하나님, 이것은 나의 소원입니다. 이 사건을 나에게서 지나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이대로 실패하는 것이 나에게 유익하다면 겸손하게 받겠습니다" 하는 자세가 필요하단 말입니다. 지나치게 내 뜻을 고집하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들어주실 것 같습니까? 아무튼 기도의 마지막 부분에는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끝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마치게 되는 것입니다.

헌신이란 신앙고백이므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내용으로 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죽은 나사로를 위해 기도하실 때도 "하나님이여, 나의 기도를 들어주심을 감사하나이다"(11 : 41)라고 기도하시지 않았습니까? 억지 기도와는 거리가 먼 기도입니다. 요한복음 17장에도 보면 예수님은 시종일관 하나님께서 당신의 기도를 들어주신 것에 감사하다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또한 십자가상의 마지막 기도에서도 예수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겨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시는 여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무튼 기도는 감사와 회개와 간구, 그리고 헌신의 순서로 드려져야 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나는 이렇게 저렇게 하겠습니다"라고 약속을 드리는 것도 좋습니다. 가능하면 서원 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주기도문의 마지막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신앙고백으로 마무리하는 것은 바람직한 기도입니다.

이제 본문의 말씀을 순서대로 의미를 찾아보겠습니다.

먼저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하는 기도문에서대개의 의미를 생각하겠습니다. 대개는 대충 또는 대략이라는 뜻으로 잘못 이해하여 문제가 되고 있는 단어입니다. 대개란 요즈음은 잘 쓰지 않은 말로써 다소 생소하게 들립니다만 헬라어로는 ""이고 영어 번역에는 "For"로 되어 있습니다. 이를 직역해서 옳기면 "왜냐하면"으로 앞 문장을 연결해 주는 접속사입니다. 지금까지 앞에서 말한 것에 대해 왜냐하면 이러이러하기 때문입니다라고 기도한 내용에 대한 이유를 말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연결시켜 보면, 하나님이여 내게 양식을 주옵소서. 왜냐하면 그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다 당신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내가 양식을 구하는 것은 당신이 양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 내가 권세를 구하는 것은 당신이 권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고, 그리고 죄를 사하여 주십사고 구하는 것은 당신만이 죄사함의 권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는 말입니다. 그러고 보면 대개란 얼마나 귀중한 말입니까? 그런데 요새 번역에는 이 말을 생략해 버렸습니다.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입니다. 아마도 대개라는 뜻이 대충이라는 말로 잘못 해석될 것을 염려하여 생략한 듯합니다만대개는 아주 중요한 접속사입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하나님께만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나라는 주권을 의미하는 것으로 원어로는 바실레이아이며 영어로는 킹덤(Kingdom)입니다. 과거나 현재나 미래의 모든 주권이 하나님의 것이며 앞으로도 영원한 당신의 것이니 우리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는 말이 되겠습니다.

다음,권세는 원어로 "두나미스"라고 하며, 영어로는 파우어(power)입니다. 물론 우리에게도 가진 권세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권세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우리가 가진 것 뿐입니다. 하나님만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신앙고백이 여기에 포함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에 "하나님께서 이런 일을 하실 수 있을는지 없을는지는 모르지만 한번 구해 봅니다"하는 자세로 기도한다면 얼마나 모독적인 기도입니까? 마가복음 9:14절 이하에 보면 악령에게 사로잡힌 아이의 아버지가 예수님께 "선생님께서 하실 수 있다면 자비를 베푸셔서 도와주십시오"라고 간청하고 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책망하시며 "할 수만 있다면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믿음 안에서는 모든 일이 가능함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올 때마다 "모든 권세가 당신에게 있습니다. 당신은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하는 분명한 신앙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그분만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한다는 것을 믿고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음은영광입니다.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만 있으므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 기도의 목적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내용은 내가 편하고 불편하고가 아니라 결국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여기에 참 신앙의 고백이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내용으로 기도를 했더라도 목적이 나를 위한 것이고 내 정욕을 위한 것으로 귀결된다면 이 기도는 미신적인 것이 되고 맙니다. 궁극적으로 모든 소원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구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영광이란 무엇입니까? 히브리어로 "영광"이란 "뿌리"라는 말로써 무겁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즉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는 말은 하나님께 무거운 비중을 드린다는 뜻이 됩니다.

영광이란 말을칭찬이란 말로 바꾸어 보면 보다 쉽게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내가 어떻게 살든지 어떻게 구하든지 간에 나의 모든 것을 통해서 하나님께 칭찬이 돌아가기를 원하옵나이다"라고 단어를 바꾸고 나면 좀더 친근한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다음은영원히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영원이란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하는 영원성입니다. 권세도 영원히, 나라도 영원히,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갈 것이라는 뜻입니다. 설사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지 전쟁과 죽음과 갖가지 부조리 속에서도 나라와 권세와 영광만은 영원히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는 것이 우리의 고백입니다. 우리는 죽음 앞에서도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히 당신의 것입니다"라고 같은 기도를 해야 합니다. 얼마나 놀라운 고백이며 위대한 기도입니까? 어떤 상황하에서도 당신의 영광은 나타날 것이며 당신의 나라가 임할 것이며 당신의 뜻이 이루어진다는 신실하고도 경건한 그리스도인의 기도입니다.

이제 기도의 마지막으로아멘이 나옵니다. 아멘은 원래 히브리말인데 헬라 발음으로 아멘입니다. 아멘이란 진실, 충성, 믿음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기도가 끝난 다음 아멘이라고 하는 것을 직역하면, 지금까지 기도한 그대로가 진실입니다 하는 뜻이기도 하고, 말한 이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아멘이라고 했으면 도장을 찍은 것으로 그 이상 말을 하면 안 됩니다. 아멘하고 나면 그 이상 잘 되었든 못 되었든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견이 없어야 한단 말입니다. 전적으로 신뢰와 헌신과 위탁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필자가 신학교 시절에 아멘을 우리말로 고쳐서 하면 어떨까 하고 곰곰이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멘"이나 "할레루야"같은 단어는 번역하기보다는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더 좋다는 결론을 보았습니다.

이상으로 주기도문의 강해는 끝났습니다. 다시 부탁하고 싶은 것은 가슴이 답답하거나, 괴롭거나 또는 기도가 잘 되지 않을 경우에 항상 주기도문을 외우시기 바랍니다. 특히 세상을 떠날 때는 이 기도 이상의 기도가 없는 줄로 압니다. 예수님께서도 세상을 떠나실 때 모범으로 우리에게 보이시지 않았습니까? 나의 생애를 마감할 때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로 끝낼 수 있다면 정말 축복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바로 됨으로써 신앙 생활 전체가 바로 되는 귀한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주기도문9(6: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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