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간 건강하셨습니까. 오늘 저희가 사도행전 2장부터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도행전 2장을 보시면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 사건 이후에 초대교회가 탄생하게 된 아름다운 사건이 나옵니다. 예수 공생애 사역을 할 때 제자들이 너무나 예수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일반적인 유대인들이 기대한 것처럼 예수가 유대 민족을 정치적으로 구원해 줄 그런 정치 군사적인 메시아로 제자들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다음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나서 부활한 이후에도 제자들은 여전히 낙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한 결정적인 사건이 있는데 그게 바로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입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이라고 하는 것이 어떻게 제자들을 새로운 존재로 환골탈태 시켰는가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요한복음 16장 7절의 말씀을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내가 아버지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했을 때 제자들은 굉장히 낙담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주십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겠다 이것이 바로 요한복음 16장 7절 말씀입니다. 쉽게 얘기하자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내가 너희를 떠나 가야 된다 라고 했을 때 제자들이 너무 낙담합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을 중심으로 제자들이 하나 된 공동체를 일궈왔죠. 그런데 그 구심이었던 예수님이 떠난다고 할 때 얼마나 제자들이 불안했겠습니까. 마치 아버지가 없는 고아처럼 너무 힘들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뭐라 말씀하시냐면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내가 아버지에게로 돌아가게 되면 그리고 성부 하나님과 온 우주를 통치하게 될 때 가장 먼저 행하시는 사역이 뭐냐면 성령을 너희를 위해 보내주시겠다는 겁니다. 그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게 되면 너희가 새로운 힘을 얻고 세계 만방에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 내가 가야만 너희에게 성령을 보낼 수 있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정말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나서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이 임한 겁니다. 이 성령의 임함이라고 하는 것이 가능하려면 무엇이 선결되어야 합니까? 예수님이 원래 계셨던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심, 성부 하나님과 온 우주를 통치하심, 그 온 우주를 통치하시는 사역 가운데 하나가 바로 당신의 제자들을 위해서 성령을 보내주심, 즉 성령이 임하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모든 것들이 하나하나 완성되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은 뭘 확신하게 된 거냐면 예수가 하나님께 참람한 말을 하고 불경한 행동을 하고 성전에서 난동을 부려서 예수가 지금 지옥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있다는 것이 유대인들의 주장이었는데 그렇지 않다, 예수는 유대인들이 깨닫지 못했지만 태초부터 계셨던 하나님이시고 하나님과 함께 온 우주 만물을 통치하시다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 당신의 백성을 찾아오셨다, 그런데 당신의 백성들이 그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알아보지 못했다, 예수를 환영하기보다는 도리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그런데 성부 하나님께서 죽임 당한 예수를 다시 부활시키셨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원래 계셨던 하나님의 자리로 돌아가셨고 성부 하나님과 함께 지금 온 우주를 통치하고 계시고 그 온 우주 만물을 통치하시는 사역 가운데 하나가 바로 당신의 백성들을 위해서 성령을 파송해 주신 것이다, 즉 성령 파송 사건을 통해서 제자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그동안 이해할 수 없었던 모든 것들이 진실이고 진리이고 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겁니다. 이때부터 제자들은 용기 백배한 존재가 된 겁니다. 뭘 확신하게 된 거죠? 예수야말로 태초부터 하나님이셨다, 지금도 성부 하나님과 더불어서 온 우주 만물을 통치하고 계시다 라고 하는 강한 확신을 제자들이 갖게 된 겁니다. 이 성령 강림 사건이 너무 중요한 겁니다.
제자들은 오순절에 주님이 약속하신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시간적으로 보시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 부활하시고 나서 40일 동안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하시면서 하나님 나라를 제자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승천하시고 오순절에 주의 성령이 임한 거니까, 시간적으로 보면 승천하시고 나서 10일 후에 주님이 약속하셨던 성령이 제자들에게 임했다 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주의 성령이 임했을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데 마가의 다락방, 또는 성전에 모여있던 초대 교인들에게 방언의 역사가 일어난 겁니다. 여기 나와 있는 방언은 나중에 고린도전서 14장에서 말하는 방언과는 조금 다른 방언입니다.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한 지역에서 사용되는 언어, 이것을 초대 교인들이 구사하게 된 겁니다. 예수님의 대다수의 제자들은 갈릴리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오순절에 성령이 그들에게 임했을 때 여러 지역의 언어들을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다양한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이 초대 교인들이 방언을 하는 것을 보면서 깜짝 놀랍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들 대다수가 갈릴리 사람들인데 자기 지역의 언어를 구사하고 있는 겁니다. 그 언어를 배워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말입니다. 그래서 여기 나와 있는 방언이라고 하는 것은 구체적인 한 지역의 언어를 말하는 것이고 이후에 고린도전서 14장에 나와 있는 방언이라고 하는 것은 기도 시간에 행하게 되는 알아들을 수 없는 의성어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여러분 신약 성경에 보시면 방언에 두 종류가 있습니다. 구체적인 한 지역의 언어로서의 방언이 있고 그다음에 알아들을 수 없는 의성어로서의 방언이 있는 겁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왜 성령이 임했을 때 초대 교인들이 방언을 하게 되었을까요?. 어떻게 한 지역의 언어를 구사하게 되었을까. 당시 오순절을 맞아서 다양한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초대 교인들이 행하는 방언을 통해서 자기의 언어로 주의 복음을 듣게 된 겁니다. 왜 성령이 임재했을 때 방언이라는 은사를 초대 교인들이 행하게 되었을까. 이것은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주셨던 마지막 사명과 연관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8장 끝부분을 보시면 예수님 승천하시면서 이 땅에 남아 있는 제자들에게 중요한 사명을 주십니다. 이것을 우리가 지상명령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어떤 사명을 주셨습니까? 그러므로 가서 너희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 이제 제자들은 누구를 만나야 합니까? 모든 족속을 만나야 합니다. 유대인들만을 위한 제자가 아니라 모든 족속을 위한 제자가 되는 겁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땅을 찾아가서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해야 될 사람, 그런 중요한 사명을 초대 교회가 위임받게 된 겁니다. 이때 모든 족속을 찾아가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할 때 가장 큰 난관이 뭐죠? 언어의 장벽입니다. 언어의 장벽이라고 하는 것을 한 순간에 해결해 준 것이 바로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을 통한 방언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초대 교인들은 한 번도 그 지방의 언어를 배운 적이 없지만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그 지역의 언어를 구사함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복음, 예수의 메시아 되심을 선포한 것이고 그것을 들었던 사람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이 제자들이 선포한 방언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 복음에 아멘으로 응답하게 되면서 이방 지역에도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믿는 예수의 제자들이 생겨나게 된 겁니다. 그것이 바로 2장에 나와있는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 그것을 통한 방언의 역사의 굉장히 중요한 의미입니다.
특별히 1~4장 앞부분에서 주목해야 될 인물이 베드로 사도입니다. 1장에서 가롯 유다가 예수를 배반한 사건에 대해서 시편을 인용하면서 베드로가 그 가롯 유다의 사건을 설명해내고 그리고 맛디아라는 새로운 사도를 뽑는 일에 굉장히 주도적인 역할을 감당합니다. 그다음에 사도행전 2장에 보시면 주의 성령이 임했을 때 이 놀라운 사건에 대해서 베드로는 요엘서에 나와 있는 말씀을 인용하면서 이 사건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설명해냅니다. 그리고 3장, 4장 베드로는 유대인들 앞에서 굉장히 놀라운 메시지를 선포하기도 하고 대제사장 앞에서 너무나 담대한 자로 변화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여러분 초대 교회는 예수가 부활하셨다, 예수야말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메시아이다, 이것을 끊임없이 선포했는데 예수의 부활을 점점 많은 사람들이 믿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뭐냐면 예수 부활을 경험했던 사람들이 이전과 전혀 다른 존재로 변화되어진 겁니다. 여러분 베드로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3년이나 함께 했던 예수를 모른다고 3번이나 부인했던 전형적인 소시민 아닙니까?. 그런데 베드로가 부활한 예수를 만난 이후에 너무나 새로운 존재로 변화된 겁니다. 새로운 존재로 변화된 베드로가 예수는 부활하셨고 그 부활한 예수를 우리는 만났다 라고 말했을 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믿을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예수 부활을 증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뭡니까? 부활한 예수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도저히 살아낼 수 없는 삶을 살아낼 때, 부활한 예수를 만난 삶의 증거가 우리에게 있을 때, 그때 사람들은 예수 부활의 메시지를 경청할 수밖에 없고 신뢰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오늘날 교회가 예수가 부활했다 라고 하는 것을 아무리 힘있게 외친다고 해도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가 부활했다는 메시지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예수 부활했다는 메시지는 넘쳐나고 있지만 부활한 예수를 만난 삶의 증거가 우리에게 잘 보이지 않습니다. 부활한 예수를 만났다고 하면서도, 나는 예수의 부활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너무나 많은 신앙인들이 세속의 가치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이때 여러분 어떤 사람들이 우리가 예수 부활을 경험했다, 나는 부활한 예수를 믿는다 라고 하는 것을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부활을 신뢰할 수밖에 없었고 성령이 우리에게 임했다라는 것을 신뢰할 수밖에 없었던 중요한 이유가 사도행전 2장과 4장을 보시면 주의 성령이 임한 이후에 사람들은 자기의 것을 자기만의 것으로 주장하지 않습니다. 주의 성령이 임한 다음에 사람들의 이기심이 눈 녹듯 사라져 버립니다. 어떤 고백이 나온 겁니까? 내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은 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를 위해서 사용되어야 될 하나님의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의 것을 기꺼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서 우리의 것으로 내어놓은 겁니다. 쉽게 얘기하자면 신앙 안에서의 한 가족이 탄생한 겁니다. 교회는 어떤 곳입니까? 신앙 안에서의 한 가족된 곳이 교회 아닙니까? 여러분 아버지가 돈을 벌어오고 어머니가 돈을 벌어왔을 때 자녀들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벌어온 것을 가지고 자녀들을 위해서 소비하는 것은 아깝지 않습니다. 내가 벌어 온 내 것이지만 자녀들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은 아깝지 않습니다. 가족들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아깝지 않습니다. 그런 일이 일어난 곳이 어디냐면 바로 교회입니다. 바꿔 얘기하자면 진짜 예수로 말미암아 혈육을 뛰어 넘어서 민족을 뛰어 넘어서 예수를 통해 모인 모든 사람들이 이제 한 가족이 된 겁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해진 겁니까? 성령이 그들에게 임했을 때입니다.
여러분, 성령이 우리에게 임했을 때 우리가 흔히 경험하는 것처럼 몇 시간 동안 기도하고 몇 시간 동안 방언하고 이것이 성령이 우리에게 임한 가장 중요한 역사가 아니고 진짜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면 관계 안에서 이기심으로부터 우리가 해방되는 겁니다. 예수로 인해 만난 사람들을 신앙 안에서 가족으로 고백하게 되고 정말 가족됨을 누리게 되는 겁니다. 이것이 정말 우리에게 성령이 임한 중요한 증거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성령 충만한 공동체의 특징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고 있는 굉장히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그래서 이 사도행전 앞부분에 보시면 베드로라는 사람이 정말 새로운 존재로 변화된 겁니다. 부활한 예수를 만난 증거가 그의 삶을 통해서 증거된 겁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부활한 예수를 만난 삶의 증거, 성령이 우리에게 내주하시는 삶의 증거가 아름답게 구현되었으면 좋겠다 라는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사도행전 앞부분에 보시면 베드로는 정말 구약 성경에 대해서 너무나 해박한 박사입니다. 중요한 사건을 경험할 때마다 그 말씀을 구약에 있는 말씀을 통해서 설명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베드로가 무식한 사람일 것이다, 그렇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구약 말씀에 대해 너무나 해박한, 여러분 당시에 말씀에 대해 이렇게 해박한 사람은 율법학자 아니면 서기관 아니면 바리새인입니다. 사도행전 10장에 보시면 베드로는 어렸을 때부터 정결법을 철저하게 준수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베드로가 정통 바리새인이었을 것이다 라고도 봅니다. 말씀에 대해 너무나 해박하고 정결법을 철저하게 준수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빈 자리를 너무나 잘 메꾸었던 사람이 베드로입니다. 주님이 승천하신 이후에 주님 없이 남게 된 제자들의 구심의 역할을 베드로가 너무나 잘 감당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주의 성령이 임했을 때가 오순절인데 이 오순절이라는 것은 맥추절이라고도 하고 칠칠절이라고도 합니다. 맥추, 맥추의 열매를 하나님께 바치는 날이 바로 맥추절 또는 오순절, 칠칠절인데 중간기 시대의 유대인들은 이 오순절을 어떤 날로 이해했냐면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갱신하는 날로 오순절을 지켰습니다. 그 오순절에 주의 성령이 초대교회에 임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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