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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파하라! (딤후 4:1-8)

by 【고동엽】 2022.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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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파하라! (딤후 4:1-8)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사람이 길을 가고 있었는데 왕이 물었습니다. '어디 가느냐?', '모릅니다. 나는 내가 지금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왕이 그 대답을 듣고 무시하는 것 같아 화가 나서 '감옥에 가두어라'고 명령했습니다. 그가 감옥으로 가면서 '왜 나를 감옥에 가두십니까? 나는 바른 소리를 했을 뿐입니다. 나는 아침에 나올 때 어디로 갈 지 도무지 몰랐습니다. 오늘 감옥에 갈지는 꿈에도 생각지 못 했습니다'
바른 말 하고도 감옥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사람은 무슨 말을 하여도 감옥에 가게 작정되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사는 동네에는 분명히 하나님이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한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작정하신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 전도는 하나님이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한 사람들을 찾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인간이 하나님을 향한 사명으로 예배드리는 일과, 세상을 향한 사명으로는 선교(전도)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독생자 외아들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신 오직 하나의 목적은 영혼구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 중에 어느 한 사람도 멸망당하지 않고 다 천국으로 구원받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마28:16절 이하에 보면 '모든 족속에게 가서 이 말씀을 전파하라'고 하셨고, 막16:15이하에 보면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셨고, 행1:8에는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본문 2절에는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 쓰라'고 했고, 5절에서는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전도는 지상 최대의 과업입니다. 전도는 어느 특정인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모든 성도는 다 전도자입니다.
왜 전도해야 하는가? 고전1:21절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주님의 최후 명령이 우리의 최고의 관심사가 되어야 합니다.
2004년! 우리 성림교회의 목표는 '한 영혼이 한 영혼을 주께로 인도해서 배가의 운동을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한 사람이 한 명씩 전도하는 이 운동'에 다 참여하여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제목소개!▶

 

디모데후서는 바울이 마지막 죽기 전에 기록한 유서와 같은 편지입니다. 바울은 여러 전도자들 중에서 특별히 디모데를 사랑했습니다. 디모데야말로 자신의 뒤를 이을 후계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디모데후서를 통해 바울은 죽기 전에 디모데에게 여러 가지 권면을 합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가장 엄숙하고 중요한 권면이 바로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는 명령입니다. 물론 이 말씀은 그의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왜 전도해야 합니까?

 

1.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1).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희에게 엄히 명하노니 항상 힘써 복음을 증거하라"고 했습니다. 전도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명령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꼭 해야 합니다. ▶왜 꼭 해야 됩니까?

①주님의 엄한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엄히 명하노니' 즉 엄격한 명령입니다. 이것은 반드시 지켜야 할 명령이기에 엄격하게 명하는 것입니다.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방대한 성경말씀 중에서 엄한 명령이라고 말한 곳은 오직 복음전도에 대한 말씀뿐입니다. 복음전도는 하나님의 명령이요 모든 명령 중에서도 가장 엄격한 명령인 것을 기억하고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②우리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명령입니다.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행위에 대해서 심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도 받지 못한 죽은 영혼들에 대해서 그 책임을 우리에게 묻고 심판하신다고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③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모든 사람의 인생은 하나님 앞에서 이루어지는 삶입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 앞에서 시작하여 하나님 앞에서 끝이 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 앞에서라는 신전의식(神前意識)을 가져야 합니다.
이 의식이 있다면 우리는 막 살지 못합니다. 함부로 행동하지 못합니다. 그 분이 보고 계시는데 어떻게 막 살 수 있습니까?

 

2. 전도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해야 할 성도들의 최대의 사명입니다(2).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란 말은, 언제 어디서나 기회만 있으면 항상 전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바빠도 핑계하지 말고 전도하라는 명령입니다.
'전파하라'는 말은 '공포하다, 선포하다, 공개적으로 알리다, 말을 넓게 퍼뜨리다, 전도하다, 가르치다'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마치 왕이 이웃 나라에 대사를 파견할 때, 대사가 왕을 대신하여 왕의 위엄과 권위를 가지고 메시지를 전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주시는 권위와 위엄을 가지고 담대하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전도는 곧 하늘나라의 정권을 받아서 담대하고 당당하게 말씀을 전파하는 일입니다. 그 일에 우리가 보내심을 받았고, 하나님의 사명을 받았습니다.
무엇을 전해야 하는가?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것입니다. 고전1:18절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십자가는 기독교의 핵심입니다. 설교나 간증이나 비유나 그 속에 예수 십자가 사건이 들어가지 않으면 복음이 될 수 없습니다.
●복음 전하는 일이 왜 급한지 아십니까? 인생이 언제 어떻게 될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야고보 사도가 말한 것처럼 사람의 생명은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기 때문에 장래를 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약4:13-14절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엘리자베스 로스'라는 임상 심리학자가 암으로 죽어 가는 사람 600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했는데, 다섯 단계를 거치면서 죽더라는 것입니다.
첫 번째 단계는 부인하는 단계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당신의 병은 암입니다. 앞으로 6개월밖에 살지 못합니다" 말하면 한결같이 부인하더라는 것입니다. "정말입니까? 오진일 것입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조금 지나면 생각을 고쳐서 수그러든다고 합니다. "아니야, 사실일지도 몰라. 나도 죽을지 몰라" 그리고 어깨가 축 늘어져 충격과 낙심과 심한 고독감에 깊이 빠져들어 간다고 합니다.
그때 누가 위로를 하면 그 위로가 비웃음으로 들린다고 합니다. 친구가 위로하면 "자네는 내 심정 몰라", 아내가 위로해도 "나 죽으면 다시 시집가고 좋지?" 그러면서 순순히 그 위로를 받아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 단계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종말이라고 합니다. 사람에게는 모두 이런 때가 옵니다. 형식이 다르고 과정이 다르고 모양이 다를 뿐이지 사람에게는 모두 이런 종말의 때가 찾아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 종말을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그 종말은 예고 없이 오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분노하는 단계입니다. '내가 암에 걸렸다'고 생각하면 어느 순간 갑자기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고 합니다. "세상에는 도적놈, 강도, 사기꾼, 나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왜 선하게 살아온 내가 죽어야 하지?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이것은 하나님이 없다는 증거야" 하며 분노합니다.
세 번째 단계는 흥정하는 단계입니다. 사람들은 분노하고 흥분하고 심지어는 발악을 하기도 하고 나중에는 하나님을 원망하며 욕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마음이 진정되면 하나님께 흥정을 합니다. "하나님, 이번 한번만 살려 주십시오. 이번 한번만 살려 주시면 죽도록 헌신하겠습니다. 이제부터는 하나님만을 위해서 살고, 십일조 생활도 철저히 하고, 새벽기도도 잘하겠습니다"
아마 이것이 인간의 본성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면 모두 이렇게 됩니다. 이 모습이 가장 인간적인 모습일 것입니다. 이 때는 자존심도 체면도 부끄러움도 있을 수 없습니다. 이 단계에서 하나님과 흥정이 잘되면 고침 받고 살아납니다. 이 단계에서 살아난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이 단계를 '신유의 단계'라고 합니다.
네 번째 단계는 우울증에 빠지는 단계입니다. 이제는 소망이 없습니다. 흥정이 되지 않아서 희망도 없습니다. 그래서 완전히 포기합니다. 비관합니다. 그래서 초조하고 우울하고 불안하고 고독해집니다. 이 단계가 네 번째 단계인 깊은 절망과 우울에 빠지는 단계입니다.
다섯 번째 단계는 받아들이는 단계입니다. 체념의 단계입니다. 수용의 단계입니다. 그 길이 아무리 고독하고 힘들고 무서워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단계입니다. 그래서 한숨을 쉬면서 후회하기 시작합니다. "내 인생이 겨우 이렇게 끝나고 마는가? 이럴 줄 알았더라면 신앙생활 좀 잘 할걸. 헌금도 좀 잘하고 싸우지도 말걸. 나도 참 한심한 인간이구나." 그러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립니다. 이 단계가 사람이 가장 진실해지는 단계라고 합니다. 거짓이 없어지고 세상에 미련이 없어지고 인심이 후해지는 단계입니다.
여러분! 인생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항상 힘쓰라' 여기서 힘쓴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①최선을 다하라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 힘쓰지 않고 되는 일이 어디에 있습니까? 힘쓰는 만큼 되는 것입니다.
②힘쓴다는 것은 노력과 수고와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복음전도에는 희생과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③힘쓴다는 말은 열심을 내라는 말입니다. 즉 열심을 다해서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열심은 힘입니다. 추진력입니다. 이 세상 어떤 일도 열심 없이 되는 일이 없습니다.

●어떤 자세를 전할 것인가?
①인내하는 마음입니다. 전도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니카는 아들 어거스틴을 위하여 일평생 기도했으나 아들은 사후에 변화되어 성자가 되었습니다. 갈6:9절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②잘 가르쳐야 합니다. '가르침'이란 말은 '상대방을 설득하여 교훈을 주는 것'을 말합니다. 전도는 설득시키는 일입니다.
③말씀으로 권면해야 합니다. 딤후3:16절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성경만이 우리를 온전케 세우는 삶의 규범입니다(Canon).

 

3. 전도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①전도는 은사다’라는 편견을 버려야 합니다.
성도들 가운데 전도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은사 받은 특별한 사람들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나는 그런 특별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전도 할 수 없다', '나는 그런 특별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전도하지 않아도 된다'고 스스로 자위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물론 전도를 남달리 잘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나름대로 전도 경험이 많아서 전도 노하우를 가진 분들은 전도를 잘합니다. 대상자를 놓고 정말 오래 간절히 기도한 분들은 전도를 잘합니다. 시간 내서 특별한 훈련을 받은 분들도 전도를 잘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은사라기보다는 은사 받은 것을 잘 개발한 것일 뿐입니다.
은사는 개발하는 것입니다. 노래 잘하는 재능을 타고난 사람도 피 땀 흘려 노력해야 훌륭한 성악가가 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전도하다보면 점차 은사가 개발되어 더 잘할 수 있게 됩니다. 문제는 전도하지 않고 그 은사를 묻어두고 있다는 점입니다.

②'전도는 어렵다'는 편견을 버려야 합니다.
성도들 가운데 전도는 정말 어렵다고 생각하면서 일종에 전도에 대한 공포를 가진 분들이 많습니다. 전도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내 노력으로 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나는 하나님께서 영생주기로 작정된 자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구원받지 못할 사람은 내가 어떤 노력을 해도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성경 말씀대로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만 믿습니다(행3:48).

③'전도는 상대방을 귀찮게 하는 것이다'는 편견을 버려야 합니다.
성도들 가운데 전도는 상대방을 귀찮게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전도 때문에 그 사람과 좋은 관계를 깨뜨리게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마치 전도를 무슨 영업사원들처럼 내 실적을 올리기 위해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하기를 주저합니다.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전도는 나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④'전도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일'입니다.
이 땅에서 가장 위대한 일은 사람을 살리는 일입니다. 최고의 애국자가 누구입니까? 복음을 전한 사람입니다. 이 민족을 여기까지 살려놓은 것이 뭡니까? 지금부터 120년 전 언더우드 목사가 복음을 들고 이 땅에 왔기 때문입니다. 그 복음이 이 민족을 우상숭배에서 깨어나게 했습니다. 우매한 이 민족을 새롭게 변화시켰습니다. 여자들을 남자의 학대 속에서 해방시켰습니다. 문맹인을 문명인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 정도로 잘 살게 된 것은 경제적인 노력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 때문입니다. 우리보다 더 잘 살던 북한이 지금 가난하게 된 이유가 뭡니까? 하나님을 거역했기 때문입니다. 전도자들을 핍박했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폐쇄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저들은 황폐한 나라가 되어버렸습니다.
복음이 들어가는 곳마다 사람을 바꾸었습니다. 가정을 살려놓았습니다. 사람의 운명을 바꾸었습니다. 인격을 변화시켰습니다.
영국에서는 존 웨슬레의 부흥운동이 영국을 피의 혁명에서 구해낼 수 있었고, 독일은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독일을 발전시켰고, 미국에서는 D.L 무디의 부흥운동이 그 나라를 문명국으로 발전시킨 것입니다.
복음을 거역한 나라들은 공산주의로 망하든지, 가난한 미개의 나라가 되든지, 혁명으로 피 흘리는 나라가 되든지 다 비극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민족을 살리고 역사를 살리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은 끝까지 전도하는 일입니다. /믿/
여러분의 자녀가 잘 되기를 원합니까? 어느 학교에 들어가서 공부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예수를 알아야 됩니다. 그래야 인격이 변화되어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주어야 할 최고의 선물은 복음입니다. 자녀에게, 친구에게, 이웃에게 주어야 할 최고의 축복은 복음입니다.
롬10:13-15절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많은 종교는 인간이 구원받는 수단으로 선행을 제시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선하게 살아야 구원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성경 행4:12절에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원효대사 이후에 불교의 대승이라고 말하는 성철 스님도 마지막 죽을 때 "내 죄악이 수미산 구만리 넘어 나를 지옥에 빠뜨리는구나!" 이렇게 탄식하고 죽었답니다.
●정말 오래 전에 고재봉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육군 중령 일가족을 도끼로 쳐죽인 살인자였습니다. 고재봉이 교도소에 들어가니까 아무도 무서워서 그 곁에 접근을 못합니다. 간수도 형목도 접근을 못합니다. 눈에 살기가 있어서 그를 만나면 다 죽음의 위기를 느낍니다.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리고 어떤 죄수도 들어와서 '나 고재봉이야' 하면 그 앞에 엎드려서 '형님' 그럽니다. 사람 셋 죽인 사람도 '내가 고재봉이야' 그러면 '형님' 하고 엎드렸습니다. 그래서 고재봉이가 교도소 왕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고재봉이 앞에 소포 한 장이 날아왔습니다. 열어보니까 성경이 들어있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재수 없다고 한쪽 구석으로 던졌습니다.
그러다가 '이걸 찢어서 담배나 피우면 좋겠다' 해서 성경을 찢어 가지고 담배를 말아 피웠습니다. 담배를 피우다가 심심해서 성경을 펼쳐서 읽었습니다. 그렇게 한 장 한 장 읽다가 은혜를 받았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는 말씀을 읽고 '아! 나 같은 죄인도 하나님께 갈 수 있단 말인가' 생각하고 같은 감옥 안에 무기징역을 받은 이인수 대령이 있었는데 고재봉이 이인수 대령에게 묻습니다. "대령님 나 같은 사람도 하나님이 받아줄까요?" 이인수 대령이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는 죽을 것 같아서 입을 딱 다물고 속으로 '또 무슨 트집을 잡으려고 저러나' 하고는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또 묻는 것입니다. "대령님, 나 같은 사람도 하나님이 받아줄까요"
그 얘기를 하는데 가만히 보니까 고재봉이 눈에 살기가 빠졌어요. 옛날에는 눈에 살기가 있었는데 살기가 빠졌어요. 그래서 자기는 아무 말도 못하고 형목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아무래도 고재봉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습니다. 눈에 살기가 빠졌으니 목사님이 한번 만나보시죠" 그래서 목사님이 찾아가서 그를 면회했습니다. 그가 하는 말이 "목사님, 나도 예수 믿으면 용서받을 수 있습니까?"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목사님이 너무 기뻐서 "그럼요. 누구든지 예수를 영접하고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십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고마워" 하면서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가 예수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후에 전도를 하기 시작하는데 교도소 안에 있는 2천명 죄수들 가운데 1800명을 전도했습니다.
고재봉이 속에 예수가 들어가니 살 길이 열렸습니다. 하늘가는 길이 열렸습니다. 그가 죽을 때 "내가 일찍이 예수를 알았더라면 어찌 사람 넷을 죽였겠는가 내가 일찍이 하나님을 알았더라면 어찌 이렇게 악한 사람이 되었을까 내가 어쩌다 이렇게 늦게 믿어 가지고 교도소 안에서 죽는단 말인가" 하고 탄식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마지막 사형장에 가서 죽기 전에 목사님에게 "목사님, 나를 믿음으로 돌보느라고 많이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말하고, 또 형무소 간수에게 "나 때문에 고생들 많이 했지요. 죄송합니다"라고 말하고는 '하늘 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 하나님을 찬양하며 최후를 맞이했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 있는 많은 악한 사람들이 달리 악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몰라서 악한 것입니다. 부모에게 불효하는 자식이 왜 불효합니까 부모님의 은혜를 몰라서 그럽니다. 예수를 알아야 부모님의 은혜를 압니다.
북한 땅이 왜 그렇게 황폐해졌습니까 왜 저렇게 가난합니까 예수를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도록 복음을 전하는 것은 남도 살리지만 나도 사는 것입니다. 민족을 살리는 길입니다.

⑤하나님을 사랑하고, 영혼을 사랑하는 증인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마지못해서 의무감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자동적으로 나타나는 외적인 표현입니다. 또 사랑하는 네 이웃이 지옥 불에 떨어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샘솟게 됩니다.
여러분! 아무 것도 모르고 지옥 불을 향하여 달려가는 이웃들을 볼 때 견딜 수가 없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우리 안에 있기를 바랍니다.
●인간은 모두 다 마음 중심에 공백이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공허하다고 말하는 것은 속이 비어있기 때문입니다. 돈 벌어도 공허합니다. 출세해도 공허합니다. 청와대에 있는 대통령에게 물어보십시오. 5년 동안 이 지상의 모든 영광을 누렸던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나와서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가시방석에서 5년을 살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블란서의 유명한 물리학자요, 철학자였던 파스칼은 "사람의 중심에는 한 공백이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만든 공백인데 우리 주님께서 이 공백 속에 좌정하실 때까지는 그 공백을 채울 길이 없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네 이웃에게 예수로 채웁시다! 주님만 진실로 영접하면 그 안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습니다.
증인의식이 중요합니다. 행2:32절을 보면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순례하기 위해 온 사람들에게 이렇게 외쳤습니다. "이스라엘이 십자가에 넘겨준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일의 증인이로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비전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가 가는 곳마다 예수의 증인이 되는 비전 말입니다. 베드로의 뒤를 이어 저와 여러분이 이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어드려야 합니다. /믿/

⑥그렇다면 전도를 위한 마음의 자세는 어떠해야 합니까?
▶구원받은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갈2: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
▶성령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비록 무식하고 보잘 것 없어도 그리스도를 전할 때 성령께서 함께 하심을 믿어야 됩니다. 사실 전도는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행1: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람을 찾아가야 합니다. 가만히 앉아서 전도대상자가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전도할 사람을 찾아 나서야 하는 것입니다.
■13세기 이탈리아의 성자로 유명한 '프란시스코'가 한 번은 젊은 수도사들을 데리고 '자, 오늘은 저 아랫마을에 내려가서 전도하고 오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프란시스코는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해가 맞도록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하고, 어린이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때가 되면 밥도 얻어먹고 하다가 저녁때가 되자 수도원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자 젊은 수도사들이 프란시스코에게 와서 "오늘 아랫마을에 내려가서 전도하자고 하고는 왜 전도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마을만 실컷 돌아다니다가 그냥 돌아오셨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프란시스코는 대답하길 "오늘 우리가 하루종일 돌아다닌 것이 바로 전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꼭 입을 열어서 설교를 해야 전도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인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는 행위를 통해서도 전도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물론 입으로 전도하는 것도 있지만 생활로 전도하는 것도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기쁘고 행복한 삶을 통해서 전도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남을 도와주는 것을 통해서 전도하고, 남을 위로하는 것을 통해서 전도하고, 사람을 만날 때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며 전도하고, 절망에 처한 사람에게 긍휼을 베풂으로 전도할 수 있습니다.
▶항상 힘쓰야 합니다. 원어의 뜻은 '끈질기게 권고하라'입니다.
눅14:23절 "산울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강권한다는 말은 '팔을 비틀어'라는 말입니다. 팔을 비틀어서라도 데려오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끈질긴 노력, 강권적이고 적극적인 전도를 말합니다. 전도는 끈질기게 하는 것입니다.

 

4. 전도자의 정신자세는?(5)

 

①모든 일에 근신해야 합니다. '근신하여'라는 말은 주의 재림을 준비하며 정신을 차리고 영적으로 깨어 있는 것입니다.
②'고난을 받으며'라는 말은 고통과 시험을 참고 견디는 것을 뜻합니다. 믿음으로 살아갈 때 고난이 뒤따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여 인내하고 참아야 합니다. 모든 일에는 고난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침착하게 정신을 차리고, 잘 극복해야 합니다.
③전도인의 직무를 다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입니다. 잠28:20절 "충성된 자는 복이 많아도 속히 부하고자 하는 자는 형벌을 면치 못하리라"

 

5. 사도 바울의 고백을 보자!

 

①그의 인생 고백이 무엇인가?(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33년의 전생을 '다 이루었다'고 정리하셨고, 야곱은 '나의 나그네길은 고생과 수고뿐이었다'고 했으며, 나폴레옹은 '나는 실패자였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을 지켰다'고 했습니다. 선한 싸움! 그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요6장에서 "그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선이요, 하나님만이 선이라"고 했습니다.
②최선을 다한 바울의 고백은?(6)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이것은 당시 제사 제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제사를 지낼 때 모든 순서의 마지막은 제물의 피 한 잔을 제단 앞에서 쏟는 선서로 끝이 납니다. 바울은 그의 전 생애가 마치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과정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자기 자신의 순교의 피, 그 피 한 방울을 하나님 앞에 바침으로 그의 생을 마감하겠다는 의지입니다.
③바울의 희망이 무엇인가?(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여비되었으므로…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생명의 면류관을 바라보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시기를 바랍니다. 최고의 가치요, 보람이 면류관입니다. 바울이 받은 이 면류관을 우리 모두 받게 될 것입니다.
이 면류관 때문에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2004년도 우리 교회는 '한 영혼이 한 영혼을 주께로 인도하는 해'입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①전도 대상자를 정하십시오. 그리고 태신자 기도 카-드에 올리십시요!
②그 분을 위해 충분히 기도하십시오.
③그 분과 좋은 관계를 맺으십시오.
④그 분에게 복음을 전하십시오.
⑤그 분을 교회로 인도하십시오.
⑥인도로 끝나서는 아니 됩니다. 양육까지입니다. 믿음이 자라도록 붙잡아주어야 합니다. 놀라운 것은 전도한 사람이 믿음이 자라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신앙이 더 자란다는 것입니다.
(2004년 2월 15일 대예배설교)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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