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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로마서 15:22-33

by 【고동엽】 2022.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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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9일(목) 55강


본문: 로마서 15:22-33
제목: 우주적인 공교회의 위엄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1차, 2차, 3차 전도 여행을 다 마친 후에 에베소에서 고린도로 잠깐 내려가는 그때 쓴 편지입니다. 그러니까 로마서는 바울이 1차, 2차, 3차 여행을 다 마치고 주후 57년경 또는 58년경 고린도에서 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고린도전서 18장에서 20장 사이를 보면은 바울이 에베소에 3차 전도 여행을 마쳤다가요, 다시 유럽 땅, 에베소를 들립니다. 이때 1차, 2차, 3차 전도 여행을 마친 후에 에베소에서 고린도로 내려와서 거기서 잠시 체류하면서 로마에 편지를 쓰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이 오늘 보십시오. 이런 말이 있습니다. 23절입니다.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이 지방이라는 말은 고린도 지방, 아가야 지방, 마케도니아 지방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 북부가 마케도니아 지방이고, 그리스 남부가 아가야 지방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 반도는 이제 지난 거죠. 그러니까 여러분 어제께 일루리곤이라는 말 썼죠? 예루살렘에서 일루리곤이라는 말은 뭐냐 하면은 일루리곤이 지금 정확하게 터키를 가리키는지, 터키에서 조금 내려오는 달마치아 반도, 오늘날 유고슬라비아 반도, 이 발칸 반도를 가리키는지는 모릅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할 때 소아시아 일대를 통틀어서 일루리곤이라고 한 것 같습니다. 일루리곤. 그래서 예루살렘에서 소아시아 일대를 다 전도했고 또 유럽도 전도를 다 했습니다. 그러니까 남는 것은 이제 아프리카입니다. 아프리카. 왜냐 하면은 하나님께서 이제 아프리카,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그랬으니까 예수님이 말한 그 땅끝은 서바나입니다. 그러니까 땅끝까지 가서 다시 알렉산드리아를 거쳐서 예루살렘으로 오면은 그러니까 원을 한 바퀴 도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예루살렘이 6시죠? 예루살렘이 6시이니까 예루살렘에서 일루리곤이 3시 입니다. 일루리곤이 3시인데 12시가 서바나입니다. 서바나를 거쳐서 그다음 9시가 알렉산드리아입니다. 알렉산드리아 찍고 그다음 다시 6시가 예루살렘입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한 바퀴를 돌면은 주님의 재림, 예수님의 재림이 일어난다고 보는 거죠. 그러니까 그 당시 그런 idea(견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렇게 지중해 일대를 이렇게 주를 전하면서 그 당대 생애에 이렇게 다 하려고 애를 썼다는 것이 너무 너무 대단한, 하나님에 대해서 너무나 불이 탔고 사무쳤습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이렇게 불타고 사무치는 사도적 목회자를 성도들이 도와주기를 기도합니다. 왜 그러면 로마로 들어가려고 했을까요? 로마에서 서바나로 가는 교통편, 경비 이런 모든 물적, 영적 지원을 받기를 원합니다. 다시 말해서 서바나까지 가는 그 먼 길에 로마에서 공중 급유를 좀 군수지원을 받듯이 물자지원, 영적지원을 받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이게 왜 가능합니까? 북그리스, 북쪽에 있는 마케도니아 사람도 헌금을 했고 아마 데살로니가 교회를 가리킬 것입니다. 그다음에 남쪽 지방에 있는 아가야 지방 이것은 빌립보 교회와 고린도 교회입니다. 고린도 교회와 빌립보 교회도 헌금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북쪽 그리스와 남쪽 그리스 사람이 사도 바울을 도와주고 사도 바울의 여정을 챙겨주고 예루살렘에 있는 가난한 사람에게 헌금을 했다는 말이죠. 그러니까 이런 것이 지금부터 2000년 전에 이것이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세계사에서 이런 종교 없거든요. 세계사에서 이렇게 보편적 이념에 묶여서 국적과 인종을 초월하고 돈을 주고받는 일은 없었단 말이에요. 이것이. 그러니까 바울이 처음 밥 피어스 목사나 한경직 목사가 만든 월드비전보다 더 오래 전에 월드비전 국제구호단체가 생긴 거죠. 그러니까. 이것이 참 어떻게 가능한가? 이것이 바로 로마제국이라는 하나의 문명사회, 로마제국의 문명통치의 혜택을 보는 거죠. 그러니까 사도 바울은 소아시아 일대와 유럽 전역을 다 복음 전도했는데 로마, 이탈리아 반도는 아직까지 못 간 거죠. 여러분, 유럽을 보면은 발칸 반도, 그리스 반도, 이탈리아 반도거든요. 그러니까 손가락으로 말하면은 이런 겁니다. 이게 발칸 반도, 그리스 반도, 이탈리아 반도, 스페인 이 네 개이거든요. 유럽은 4개예요. 발칸 반도, 발칸 반도 요 위에 터키가 있고요, 그리스 반도, 이탈리아 반도, 이제 스페인 가는 겁니다. 이렇게 유럽을 다 주를 전하면서 로마를 거쳐서 서바나로 간다, 이것이 바울의 꿈이었죠. 그러니까 바울은 온 세계를 품은 거죠. 오늘날 이렇게 기상이 고귀하고 출중하고 온 세계를 품어내는 이런 사도적 목회자가 매우 적습니다. 사실은. 그런데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역사하면은 절대로 고인 물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사도적 목회자에게 영적 필요가 있는 곳으로 파송을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순종을 하려고 합니다. 이 스페인까지, 이게 스페인까지가 얼마나 머냐 하냐면요, 프랑스 남부에서 스페인까지가 1000km이거든요, 1000km. 걸어가면 1000km입니다. 그래서 유럽에 있는 유학생들이 30일 동안 여기 1000km를 걷죠. 이 먼 거리를 바울은 배를 통해서 육지를 통해서 가려고 하는 거죠. 그러니까 사도 바울의 그 웅장한 꿈은 스페인까지 가서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고 싶었던 거죠. 이사야가 땅들아, 섬들아, 바다 끝에 있는 땅들아, 섬들아, 땅끝에 있는 멀리 있는 백성들아, 그러니까 이사야의 예언에 보면 땅 끝에 있는 사람들을 전부 다 시온 산으로 초청하려고 하는 이사야의 웅대한 비전이 있었다는 말이죠. 그러니까 바울은 이사야의 그 웅대한 비전을 따라서 땅끝까지 기꺼이 가려고 하고 예수님도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땅끝까지 가라고 한 거죠. 스페인이 바로 땅끝이었거든요. 땅끝, 대서양의 입구가 스페인이잖아요. 그러니까 이 땅끝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거기에 사람들을 영적으로 포획하여서 시온 산으로 데려오는 것, 이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요, 여러분께서 오늘 본문에 중요한 말이 하나 있는데 28절 한 번 읽어보십시오.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


이 열매가 뭐냐 하면은요, 이방인들이 바치는 헌금도 이 열매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5명의 이방인 개종자입니다. 사도행전 20장 21절 이하에 나옵니다. 사도 바울을 따라서 이방인 5명이 지금 예루살렘 성전에 갑니다. 오순절에 가는 거예요. 열매를. 오순절은 뭐예요? 첫 열매, 이방 선교의 열매를 데리고, 5명을 데리고 이방인들이 바친 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이것이 뭐라고 했습니까? 이 헌금이 이방인 개종자들이 하나님께 받으심 직하게 이런 이방인 개종자들과 이방인이 바친 헌금이 하나님께 인정받는 예물이, 봉헌물, 예물이 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가는 겁니다. 그러면 이 바울의 마음속에는 뭐가 있었을까요? 이사야 61장과 62장이 있습니다. 이방인들이 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 성전에 오고, 이방인들이 막 몰려 들어서 시온 산에 올라가서 토라를 배우는 이 환상이 이사야가 지금 성취하려고 하는 환상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데려와서 이방인이 바치는 헌금이 예루살렘에 봉헌되고 이방인 개종자들이 예루살렘에 봉헌되는 이런 비전을 품고 갑니다. 그런데 그는 자기가 이방인 교회로부터 받았던 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의 가난한 사람을 도우길 원했고 이방인 개종자 5명을 데리고 하나님께 봉헌물로 바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마음 한켠에 근심이 있습니다. 31절입니다.


나로 유대에서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로부터 건짐을 받게 하고 또 예루살렘에 대하여 건짐을 받게 하고 또 예루살렘에 대하여 내가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을 만하게 하고


이것이 바로 이사야 61장의 성취입니다. 이사야 61장과 62장에는 만일에 시온으로 이방인들이 몰려들어 토라를 배우고 말씀을 배우고 그들의 재물을 시온의 성전에 풀어 놓고 하나님께 예물을 바치는 그런 이사야의 비전이 이제 자기를 통해 성취되었다고 보는 거죠. 그래서 사도행전 28장 마지막 절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내가 쇠사슬에 매인 까닭은 28장 20절입니다.


이러므로 너희를 보고


이 너희라는 말은 로마입니다. 로마, 로마예요. “내가 여러분, 로마교인 여러분들을 보고 함께 이야기하려고 청하였습니다. 제가 이스라엘의 소망으로 말미암아 이렇게 쇠사슬에 매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소망이 무엇입니까? 온 이방인들이 시온으로 몰려들어 아브라함의 식탁에 앉아서 전 세계적인 peace 평화를 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통치를 받는 기가 막힌 미래, 그 미래를 앞당기려고 내가 앞당기려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극우파 동족 유대인들로부터 오해를 받아서 이렇게 쇠사슬에 매인 죄수가 되었습니다. 제가 이스라엘의 희망을 성취하려다가 이렇게 죄수가 되었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기가 바울이 바로 사도행전 28장 20절에서 말하는 요 이스라엘의 소망이 뭡니까? 이방인 개종자들을 예루살렘에 데리고 와 하나님께 봉헌물로 바치고자 함, 이방인들이 바친 물질 헌금을 예루살렘 성도들을 구제하는 구제기금으로 써서 이 구제헌금이 예루살렘 성도들에게 수용되고 받으심 직한 선물이 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가는 거죠. 여기가 바로 바울이 지금 로마 교인들과 나누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편지가 끝납니다. 33절입니다.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그러니까 편지의 내용은 로마서의 본 내용은 끝납니다. 이제 16장은 추신, 16장은 추신입니다. 추신. 16장은 추신이고 사실상 로마서는 15장에서 끝났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아시아와 아프리카와 유럽을 이으려고 하는 이런 거대하고도 웅장한 비전으로 전 세계를 달려갔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전 세계 만민을 향해서 복음을 전하려고 불이 탔다는 말은 참 중요합니다. 오늘날 교회 부흥은 군중적 다수가 필요하지 않고 단 한 사람의 불붙는 장작불이 필요합니다. 여러 사람이 필요 없습니다. 한 사람의 가슴에 복음의 불이 붙으면은 그 사람 옆에는 복음의 장작불이 필요한 사람들이 몰려들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는 시작됩니다. 그런데 그 가슴에 복음의 장작불이 타지 아니하면은 복음의 장작불이 타지 않는 그런 사역자가 있는 곳, 그런 목사님이 시무하는 교회는 죽은 교회이고 성령의 음성을 들을 귀가 없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많은 교회가 너무 안타깝게도 젖어서 축축한 장작으로 바뀌었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이고 복음의 잉걸불이 활활 타오르게 만드는 이런 우주적 공교회의 위염을 가슴에 안고 사무치게 하나님을 불러대는, 사무치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 이런 열심이 특심이 진동하는 교회, 이런 교회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담임목사님이랑 교회 사역자들은 불붙는 장작더미가 되어야 됩니다. 불붙는 장작더미는 길게 오랫동안 중보기도 해야 됩니다. 그래서 담임목사님의 사역은 참 중요합니다. 그냥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을 놓고 우주적 공교회의 일원으로 주야로 기도하면은 그 목사님에게 불이 붙고 그 목사님에게 붙은 불은 성도에게 옮겨붙는 거죠. 그래서 교회는 땅끝을 지향하는 봉화, 하나님 나라로 사람들을 대규모로 불러들이는 강력한 영적 자력을 가지는 메신저가 되는 거죠. 우리 가향교회가 성도들을 위해서 계속 기도하는 목사님이 필요합니다. 제가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사람이 필요합니다.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되고, 교회를 위해서 불이 붙도록 기도해야 됩니다. 설교가 목사님 사역이 아닙니다. 기도가 사역입니다. 설교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는 못합니다. 목사님이 주일날 설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이 남들이 안 보는 곳에 기도하고 하나님만 아는 곳에 진정을 토하여 불이 붙는 경험을 하는 것, 이것은 목사님들이 자기와 하나님 사이에서 이것은 목사님의 진실이 되어야 됩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교회가 목사님들이 많이 분주하죠. 그래서 영적 권능이 많이 없죠. 그런데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달려가게 만드는 하나님의 마음에 사로잡힌바 됩니다. 여러분도 목사님이 아니지만 이 하나님의 마음, 땅끝에 있는 저 격리되고 고립되고 저 외롭게 사는, 땅끝에 사는 즉 끝자리에 있는 사람들 그들에게 복음을 들고 나아가는 복음 전도자의 열정이 여러분들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여러분들에게 사무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행복합니다. 많이, 많이 행복합니다. 여러분 놀라운 사랑에 몰두하는 사람만이 행복합니다. 사랑할 사람이 많은 사람이 행복합니다. 중보기도 할 사람이 많은 사람이 행복합니다. 중보기도해 줄 기도의 제목이 많은 사람이 행복합니다. 물론 고단합니다. 그러나 행복한 사람은 뭡니까? 땅 끝에 있는 사람을 ‘영적 친척’ 삼으려고 달려가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 교회는 중대한 전환점에 있습니다. 또 전임목사님을 모십니다. 전임목사님 모시면은 교회가 훨씬 영적으로 풍요로워집니다. 훨씬, 훨씬 좋아집니다. 설교만 하는 신학지도 목사 때와는 다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이 목사님과 동역을 하면은 여러분 또한 비상한 영적인 영적 고도를 유지해줘야 됩니다. 지금 우리 교회가 2가지 기도 제목이 필요합니다. 담임목사님이 살 집이 필요하고, 이 담임목사님과 1년 동안 일할 운영위원들이 필요합니다. 이 인적 준비와 물적 준비가 조속하게 일어나도록 여러분 기도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의 중보기도의 챔피언이신 장로님이 지금 병원에 입원해서 검사받고 있는데 여러분 중보기도 부탁드립니다.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의 성령에 사로잡혀서 땅끝에 있는 사람까지도 불러내는 강력한 복음 전도의 열정이 저와 가향교회를 사로잡게 도와주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노쇠하고 연로해진 우리 장로님, 세월의 무게 앞에서 약해지는 법을 배우는 우리 장로님, 강건하게 붙드시고 지상의 날들을 마무리하기 전에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복음의 용사 그 위엄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예수님 이름 들어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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