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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마 15:21-28/막 7:24-30)

by 【고동엽】 2022. 2. 3.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마 15:21-28/막 7:24-30)

 

▶오늘 본문은 믿음에 대한 말씀입니다.
미국의 물리학자인 아인슈타인은 "과학의 근거는 믿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자동차도, 비행기도, 우주선도, 그 어느 것도 믿음이 없이는 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믿음이 과학의 기초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믿음은 과학의 기초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생활에서도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우리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 믿음이 필요합니다. 가정의 안정을 위해서도 믿음이 필요합니다. 사업에 성공하기 위해서도 믿음이 필요합니다.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도 믿음이 필요합니다.
1930년대 미국에서는 대공황으로, 주식이 폭락하고 기업이 망하고 공장이 폐쇄되고 은행이 파산했습니다. 실업자가 점점 늘어나고, 따라서 자살하는 사람도 많아졌습니다.
그때 미국의 32대 대통령에 당선된 '루스벨트'는 미국 국민들을 향해 외쳤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전진합시다' 그는 국민에게 믿음과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고, '뉴딜 정책'을 통해서 미국을 파멸에서 구했습니다.
1970년대 영국도 IMF를 당했습니다. '영국 병'이라고 불리는 노동자들의 시위가 그치지 않았습니다. 영국은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들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철의 여인'이라 불리는 영국 수상 '대처'는 "우리 영국은 다시 회복될 수 있다"라고 영국 국민에게 믿음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경제를 회복하여 다시 세계 강대국의 반열에 들어서게 만들었습니다.
미국의 사상가이자 문필가인 '에머슨'은 "인간은 믿도록 태어났다. 나무가 과일을 맺듯이 인간은 믿음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 신용이 없는 사람은 사람대접도 못 받고, 사람 구실도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소원에 대한 말씀도 됩니다.
사람은 대개 다 소원을 가지고 살지만, 종종 어떤 사람은 소원 없이 살기도 합니다. 소원이 없는 사람은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죄악 가운데서 삽니다.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타락하고 방탕한 삶을 삽니다. 반면 소원이 있는 사람은 목표를 정하고 열심히 삽니다. 그래서 때가 되면 응답을 받고 소원을 이룹니다.
어떤 사람은 '건강'이 소원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마음의 평강'이 소원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행복한 가정'이 소원일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좋은 직장'이 소원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좋은 친구'를 갖는 것이 소원일 수 있고, 또한 '풍부한 물질', '열심 있는 신앙', '명예'를 가지는 것이 소원인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소원이 막연한 소원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소원을 가지되 우리는 불타는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무에서 유를 만들고, 남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해내고, 불가능에 도전하는 창조적인 믿음을 가지고 소원을 성취해 나가야 합니다.
세종대왕도 불타는 소원이 있었습니다. 백성들이 배울 만한 우리 글이 없는 것을 보시고 쉬운 우리 글을 만들어야겠다는 간절한 소원을 가지셨습니다. 그래서 만드신 것이 바로 한글입니다.
백범 김구 선생도 불타는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는 일제의 침략 앞에 날로 기울어지는 조국의 비운을 보고 어떻게 해서든지 나라의 독립을 쟁취하고 말겠다는 간절한 소원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그 간절한 소원이 그로 하여금 위대한 애국자가 되게 했습니다.
미국의 링컨 대통령도 불타는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는 19세의 소년이었을 때, 노예시장에서 쇠사슬에 묶여 마치 짐승처럼 이리 팔리고 저리 팔리는 흑인들을 보고 노예제도를 쳐부수고야 말겠다는 간절한 소원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훗날 법을 공부하고 대통령이 되어, 당시로서는 불가능해 보였던 노예해방의 역사를 이루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소원을 주시고 그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빌2:13절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오늘 본문 28절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우리 모두 믿음 안에서 소원을 이루는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제목소개!▶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칭찬하시고 축복하신 큰 믿음을 가졌던 여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이방 땅인 두로와 시돈 땅으로 가셨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로서는 이방 사람을 마치 개처럼 취급하며 무시하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여자 하나가 예수님께 나와서 소리지르기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한 귀신들렸나이다" 라고 외치면서 딸을 고쳐 달라고 매달렸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그 여인을 향하여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질 수 없다"고 냉정히 거절하셨습니다. 즉, 이 말은 어찌 거룩한 은혜를 이방의 개 같은 사람에게 주겠느냐는 말씀이었습니다. 정말 이 말씀을 받을 때 얼마나 이 여인은 큰 상처가 됐겠는가? 그런데 이 여인은 "옳소이다 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하면서 개 취급을 당해도 좋으니 그저 부스러기 같은 은혜라도 달라고 할 때에 예수님은 크게 놀라시며 이 여인의 큰 믿음을 칭찬하시고 축복하셨는데 이때 딸의 병이 나았습니다. 28절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여러분! 이 여인의 큰 믿음을 본받으시기 바랍니다. 큰 믿음은 우리의 소원을 이루는 통로입니다. 오늘 이 여인의 믿음을 분석해 보고 우리들도 이 여인의 믿음을 본받아야 할 줄 믿습니다.

 

1. 이 여인의 신분은 유대인들이 개 취급을 하던 이방 여인입니다.

 

두로와 시돈 지방에 살고 있는 가나안 여자입니다. 막7장에 보면 이 여인은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고 했습니다. 수로보니게는 이 여인이 살고 있는 지방인데 '수리아 지방의 뵈니게' 출생이란 뜻입니다.
두로와 시돈은 항구 도시로,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 땅입니다. 또한 가나안 사람은 유대인에게 천대받는 이방인이었고, 이스라엘과는 조상 대대로 원수 관계에 있는 이방민족입니다. 가나안땅의 대표적인 종교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알과 아세라 신을 섬겼습니다.
예수님은 1-20절에서 장로들과 유전 문제로 변론하시고 나서 분위기가 살벌해지자 거버나움을 떠나 이방 땅까지 복음을 전하시려 가신 것입니다. 이곳은 거버나움에서 80Km에 위치한 유대 변방으로 완전히 이방 땅입니다. 이곳에서 이방 여인이 예수님께 '큰 믿음을 가진 여인'이라고 칭찬해 주었습니다.

 

2. 이 여인의 형편을 보면 흉악한 귀신들린 딸을 둔 여인입니다.

 

귀신 들린 딸을 가진 어머니입니다. 귀신이 시키는 데로 살아가는 딸입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옷을 찢기도 하고, 벗기도 하며 길거리를 뛰어 나가 엉엉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합니다. 부모로서는 감당키 어려운 고통입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어떻게 했겠습니까? 분명히 자기가 믿는 신에게 하소연도 했고, 좋은 약, 용하다는 의사는 안 찾아간 곳이 없었을 것입니다. 제산도 탕진되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주의해서 보면 이 여인이 예수님께 외친 소리를 들어보십시오. 무어라고 합니까? '내 딸이 병들었나이다' 이렇게 말하고는 '내 딸을 불쌍히 여기소서'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 여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말을 다시 조명해 보면 "귀신들린 딸을 가진 어머니의 이 비참한 모습을 불쌍히 여겨 주소서"입니다.
여러분! 이 여인은 딸이 병들었습니다. 그러나 병든 딸보다도 자기가 더 아프고 더 고통스럽습니다. 이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자식들의 문제가 부모의 문제이고, 아픔이고, 절망이고, 사건입니다.
●'빅톨 유고'가 쓴 글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불란서 혁명직후에 병사들이 숲을 지나가는데 전쟁에 지친 사람들 중에 한 어머니가 아이 셋을 데리고 길바닥에 굶주려 지쳐 있었습니다. 그 중 한 상사가 빵을 하나 던져 주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가 그 빵을 주워서 세 조각으로 나누어 아이에게 각각 주고는 자기는 자식들이 먹는 것을 쳐다보고 기뻐 웃고 있습니다.
그때 한 병사가 말하기를 "저 여자는 배가 고프지 않은가 봐" 그때 상사가 이런 말을 합니다. "그게 아니야. 어머니이기 때문에 안 먹는 거야" 어머니이기 때문에 자기는 굶어도 아이들에게 빵을 나누어주는 것을 기뻐하는 게 어머니의 모성입니다.
여러분! 자녀들이 평탄하게 잘 살아준다면 큰 축복이요, 행복입니다. /할/

 

3. 이 여인의 신학적인 믿음을 분석해 보자!(21-22)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가로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하되"
①예수님을 생명의 구주로 고백하는 신앙입니다,
보통 그 당시 사람들은 예수를 선생으로 랍비로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22, 25, 27절에 보면 예수님을 "주"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님을 "주"라고 부르는 것은 그의 신성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즉 그 여인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②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으로 불렀습니다.
22절에서 그 여인은 예수님을 또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이란 말은 약속된 메시아를 일컫는 유대인 특유의 표현입니다. 즉 그 여인이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 불렀다는 것은 예수님을 이스라엘이 기다리던 그 메시아로 믿고 있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 유대 종교지도자들도 예수를 메시야로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예수를 메시야로 보고 믿었다는 것입니다.
③22절 이 여인은 예수님을 향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말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긍휼을 간구할 때 쓰는 말입니다. 이 여인이 예수님을 향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말했다는 것은 그녀가 예수님을 신적 치유와 구원의 능력을 가지신 분으로 믿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첫째,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위대하시고, 전능하시고, 응답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이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고, 저 사건을 푸실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둘째, 고백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롬10:10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심과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심과 나를 사랑하시는 그 사실을 고백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교제하던 남녀가 결혼하려면 서로 사랑을 고백해야 합니다. 사랑을 고백하지 않으면 결혼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나에게 믿음이 있다면 주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고백해야 합니다.
여기서 주목하고 조심해야 할 것은 고백은 분명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향해 고백하는 것은 독백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나는 주님을 믿는다, 사랑한다, 나는 구원받았다, 주님은 나와 함께 계신다, 나를 지키시고 도우신다, 주님은 내편이시다"라고 고백하는 것은 산 고백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향해 내가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며 얼마나 믿고 있는가를 고백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어느 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요즘 세상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제자들이 대답했습니다.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세례 요한이라 하더이다." 주님이 다시 물으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때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 대답이 끝나자마자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것은 혈육이 아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 베드로가 주님을 향해 주님이 누구이시며 어떤 분이신가를 올바로 고백했을 때 주님은 기뻐하셨고 그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고백이 있어야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우물우물하지 맙시다. 입을 열고 사람들 앞에서 주님을 향해 고백합시다.
셋째, 순종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순종이란 고분고분 따라가고 말 잘 듣는 것입니다.
넷째, 믿음은 모든 것을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은행을 믿기 때문에 그 곳에 돈을 맡깁니다. 우리는 음식점 주방장을 믿기 때문에 그가 만든 음식을 먹습니다. 우리는 병원이나 의사를 믿기 때문에 그곳에 가서 내 병을 맡기고 치료를 받습니다. 하물며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면 예수님께 나의 모든 것을 맡기고 신뢰해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 링컨은 "믿음은, '하나님은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4. 이 여인의 보여준 믿음은 무엇인가?

 

①자신의 문제를 예수님께 가지고 나왔습니다.
이 여인은 자신의 딸의 문제를 가지고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주님께 자신의 문제를 내어놓았습니다. 때때로 사람들이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사람을 믿고 의지하고 의뢰하는 경우를 봅니다. 그러나 우리가 참 믿음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사람을 의지하는 것을 배워서는 안됩니다. 물론 사람들이 내게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내 삶에, 내 신앙에 적극적 영향, 긍정적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매우 행복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의존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어쩌면 우리의 문제가 아직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는 것은 내가 사람이 아닌 그리스도를 온전히 의지할 때까지 하나님께서 아직도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문제를 가지고 주님 앞에 나오는 것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앞에 오시기 바랍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분이 인생의 해답이라고 외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삶의 희망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소망은 누구이며, 우리의 구원자는 누구이며, 우리의 치료자는 누구입니까? 우리의 능력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볼 때 그분 안에 우리의 희망이 있습니다. 그분 안에 우리의 해답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이십니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자리에서 만나는 모든 문제를 가지고 주님 앞에 나오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어려운 삶의 문제들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와 자신들의 문제들을 해결 받았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모든 삶의 문제들을 주님께 가지고 나오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마11:28-29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②소리 질러 간구하는 믿음입니다.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가로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그는 예수님께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처지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솔직하게 고백했습니다.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불쌍한 사람이 참 많습니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물질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고통과 고난을 당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도 그들은 자신이 불쌍한 처지에 있는 것을 모릅니다. 자기는 불쌍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병으로 죽어 가는 사람, 죄악으로 파멸되는 사람도 자신이 왜 불쌍하냐고 오히려 큰소리를 칩니다.
우리는 이 가나안 여인에게서, 자신의 처지를 알고 예수님께 나아와 자신의 딸이 흉악한 귀신에 들렸으니 고쳐달라고 간구하는 신앙의 모습을 배워야 합니다.
다윗 왕도 시3:4절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막10:46절 이하에 나오는 소경 거지 바디매오도 나사렛 예수께서 오셨다는 소문을 듣고 예수님께 달려 나왔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러자 옆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잠잠 하라며 그를 꾸짖었습니다. 지금도 예수께 나아오는 것을 오히려 훼방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조롱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더욱 심히 소리 질러 외쳤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님께서 그 소리를 들으시고 그에게 물으셨습니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보기를 원하나이다."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부르짖는 믿음이 귀한 믿음입니다. 여기서 '소리질러'란 말은 적극적으로 주님을 향하여 부르짖는 기도의 모습입니다. 여리고 성의 소경 바디매오도 주님을 향하여 소리지르며 부르짖을 때 주님이 그를 만나 주셨고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도 부르짖는 기도의 사람들이 되어 기적의 주인공들이 됩시다!

③난관도 극복하는 신앙입니다.
23절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
▶여기서 첫 번째 난관은 예수님의 '무 응답'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대답지 않으신 것은 그녀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이 여인은 자기의 딸에 대한 강렬한 사랑을 가지고 호소했지만 주님은 대답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에서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님이 내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고 원망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한 말씀도 대답지 않으신 것은 그녀로 하여금 더욱 열심히 기도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칼빈은 예수님의 이 침묵을 '침묵을 지키셨던 그리스도의 동기는 이 여자의 신앙을 소멸하려는 것이 아니었고 이 여자의 열심을 더하고 그 열정을 불붙게 하시려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두 번째 어려운 난관은 제자들의 거절입니다.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 예수님은 뜻이 있어서 침묵을 하고 계시는데 제자들은 단순히 귀찮게 하니 빨리 보내라는 태도였습니다.
제자들은 불쌍한 여자의 문제 해결보다는 오히려 자신들의 평안만을 추구하는 오늘의 우리들 모습을 비쳐 주고 있습니다.
▶세 번 째 난관은 주님이 다시 한 번 거절을 하고 말았습니다.
24절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이 말씀은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곧 택한 백성을 구원하려고 왔지 너와 같은 이방인들을 구원하려고 온 것이 아니다'라는 말입니다. 이러한 끊임없는 거절 앞에도 그녀는 굴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에게 무시와 냉대 그리고 제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더욱 가까이 접근하여 무릎을 끓고 예수님께 경배하였습니다.
25절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제자들의 냉대와 예수님의 무관심도 이 여인의 열심을 꺾지 못하였습니다.
여기 '절하다'는 말은 미완료 형으로 그녀가 예수님의 발 앞에서 계속 연이어 절하고 있음을 나타내 주고 있는 말입니다. 또한 여기 '도우소서'라는 말은 긴급한 구조를 요청할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흉악히 귀신들린 딸의 문제로 예수님께 거듭 거듭 절하며 긴급 구조 요청을 하는 끈질긴 신앙의 모습을 그녀는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녀는 계속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주여 저를 도우소서" 끈질긴 기도입니다. 포기하지 않은 기도입니다. 어떠한 난관도 극복하는 기도입니다.
우리 주님은 이런 기도자 앞에 약하십니다. 응답주시고 축복주십니다. /믿/

④겸손한 신앙을 가졌습니다.
예수께서 여인에게 26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마치 여인을 예수님은 개처럼 취급하고 계십니다. 결국, 이 말씀은 개 같은 여인아 내가 개와 같은 이방인인 너에게 어떻게 거룩한 은혜를 베풀겠느냐? 라는 아주 불쾌한 표현입니다.
마틴 루터는 "예수님의 이 말씀은 그녀의 마음을, 그리고 그녀의 믿음을 산산조각나게 했다"고 주석을 했습니다.
여기 떡은 말씀입니다. 능력의 말씀, 축복의 말씀을 상징한 것으로 개 같은 이방 여인에게는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 말씀을 보면서 '자존심도 없지' 하고 말합니다. 여인이 여기에 나오기까지 나름대로 고민이 있고 주저함도 있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 있는데서 "내 딸이 귀신들렸습니다" 말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용기가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들 눈치도 보입니다. 특히 이방인을 개로 바라보는 유대인들 눈치를 봐야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감수하고 나왔는데 예수님의 대답은 너무나 충격적인 말씀이었습니다. 자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싫으면 관두시오' 하고 돌아서든지, 여기 아니면 내 딸 못 고치나?'하고 일어나든지 아니면 묵묵히 참고 받아들이든지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조용히 음미해보면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라 이 여인은 자존심을 내세우기 전에 이미 주님에 대한 신뢰가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께 처음 나왔는데 예수님을 향하여 무어라 부르고있습니까? '주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27절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주여'란 말은 예수님을 하나의 병을 고치는 것만으로 인식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자기의 인생을 새롭게 하시고, 내 인생을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자로, 메시야로 인정한 것입니다.
이 말씀을 다시 해석한다면 주님이 여인에게 개 같은 여인이라고 멸시를 하셨으나 여인은 더욱 간절히 매달리며 주님! 저는 개 같은 여인입니다. 그러나 개도 주인의 상에서 부스러기를 먹사오니 나에게 부스러기 같은 은혜라고 주시옵소서" ▶부스러기 은혜라도 달라고 합니다. 얼마나 겸손한 믿음이고, 사모하는 믿음입니까?
오늘 우리들도 이 부스러기 은혜만 받아도 승리할 줄 믿습니다. /할/

⑤큰 믿음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예수님도 이렇게 사모하는 여인의 믿음에 감탄하시고 축복하시며 칭찬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8절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텨 그의 딸이 나으니라"
'네 믿음이 크도다' 참 굉장한 말씀입니다. 크다는 개념도 여러 가지입니다. 이를테면 부자도 왠만한 부자는 갑부라고 하고, 더 큰 부자는 거부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크다는 것에도 조금 큰 것, 더 큰 것, 엄청나게 큰 것이 있는데 여기 '네 믿음이 크도다'의 원어에 보면 '네 믿음이 위대하다'라는 '메가톤'급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이 여인의 믿음이 '메가톤'급이라는 말입니다. 또 여기 '소원대로'는 '원하는 만큼'으로 어려운 난관을 극복한 그녀에게 합당한 보상을 하시는 주님의 축복입니다.
어머니의 믿음은 딸을 치료케 했습니다. 그녀의 신앙은 문제를 해결하고 말았습니다. /할/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이 말씀은 오늘 우리를 향하여 주신 말씀입니다. "이 여인을 보아라 이것이 진짜 믿음이다. 너희들도 이런 큰 믿음을 가지면 능치 못함이 없단다"
오늘 우리들도 큰 믿음의 주인공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큰 믿음의 주인공은 어떤 사람인가? 우리가 교회에 오랫동안 다녔다고 큰 믿음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큰 교회에 다닌다고 큰 믿음을 가진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직분을 가지고 있다고 큰 믿음을 가진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믿음은 가나안 여인과 같은 믿음입니다. 주님은 그런 믿음을 큰 믿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2004년 8월 8일 대예배 설교)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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