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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이길 수 있다. (마 26;30-35)

by 【고동엽】 2022. 1. 4.
죄! 이길 수 있다. (마 26;30-35)
  하나님이 사람을 이 땅에 만드신 것은 사람을 통하여 영광을 거두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죄를 범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 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 교회를 향하여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 하더니>(롬3;23)
그래서 우리는 죄를 범하면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루지 못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수시로 죄를 짓습니다. 죄를 안 지으려고 발버둥치지만 좀체로 죄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죄를 이길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가요? 죄를 이길 수 있는 비결은 다음 세 가지로 인간이 노력하였지만 실패하였습니다.


1. 결심으로 안 됩니다.
죄를 안 지으려고 결심한다고 죄를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분의 고백입니다. 남에게 말하기 부끄러운 반복되는 죄가 있었습니다. 그는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헛 것이었습니다. 자꾸만 반복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결심하였습니다. 그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혈서를 쓰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손가락을 입으로 깨물었습니다. 대단한 결심이었습니다. 손가락을 잘라 혈서를 쓰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손가락만 아프지 손가락이 잘라지지 않았습니다.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시 힘껏 물어 뜯었습니다. 그러나 도저히 피까지 나오지는 못 하였습니다.
그는 입으로 피를 내는 것을 포기하였습니다. 그리고 면도칼로 손가락 끝을 조금 베어 냈습니다. 피가 흘렀습니다. 그는 다시는 그 죄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혈서를 썼습니다. 그리고 책상위에 붙여 놓았습니다. 그러나 작심 삼일이었습니다. 삼 일만에 다시 그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그는 혈서 앞에서 울었습니다. 혈서를 쥐어짜면서 몸부림치면서 울었습니다. 결심으로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이런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다시 묻습니다. 결심으로 되던 가요? <결심으로 됩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요 어쩌면 사람이 아닐 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베드로를 등장시켜 봅니다. 오늘 본문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그 때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예수님이 베드로 말을 들이시고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베드로는 다시 결심하며 말했습니다.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죽을 지언정 주를 따르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대단한 결심입니다. 그러나 그 날 밤 예수님이 로마 병정들에게 잡히셨습니다. 끌려 가셔서 재판을 받으셨습니다. 베드로는 세 번씩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죽을 지언 정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여 보아야 작심삼일이 아니라 작심삼시였습니다. 불과 몇 시간만에 결심을 어기고 말았습니다.
결심으로 안 됩니다. 결심하고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이를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결심으로 안 됩니다. 사람의 결심은 작심 삼일입니다.


2. 인격으로 안 됩니다.
인격을 잘 수양하면 죄를 이길 수 있을 가요? 인격이 좋으면 죄를 이길 수 있을 것같은 가요? <지킬 박사와 하이드>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어느 마을에 가난한 이들을 무료로 치료하여 주고 동네 사람을 사랑하는 지킬 박사가 있었습니다. 동네 모든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는 인격자였습니다. 그런데 그 마을에 밤마다 강도가 나타나서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하이드라고 이름을 밝히고 동네 사람들 괴롭히는 데 좀체로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경찰을 그를 체포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놀랐습니다. 그가 바로 지킬 박사였습니다. 낮에는 성자, 밤에는 악마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두 모습입니다. 사
람들은 천사의 모습과 악마의 모습을 같이 가지고 있는 중간자라고 파스칼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인격이 좋다고 죄를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1999년 5월 신문기사가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대학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미국 하버드 대학입니다. 그 대학대에 신과대학이 있습니다. 신과대학 학장 로널드 쉬만이 파면되었습니다. 그가 파면된 이유는 학교 내에서 그의 사무실을 옮겨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컴퓨터 기사가 컴퓨터를 옮기면서 보니까 음란 싸이트를 정기적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학장 사무실에서 늘 음란 싸이크를 접하고 있는 것이 발각이 되었습니다. 그는 성공회 신령한 목사였습니다. 예일 대학을 졸업하였습니다.
그의 논문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준 논문입니다. 제목은 <종교와 도덕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인격으로도 죄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3. 도를 닦아도 안 됩니다.
도를 닦으면 죄를 이길 수 있을 가요? 아무리 도를 많이 닦아도 죄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우리 나라에 자기가 재림 예수라고 하는 사람이 34 명이라고 합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백마를 타고 다니는 양 도천입니다.
나는 그가 자기가 재림 예수라고 주장하는 이유를 설명한다고 하여 직접 한번 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명동 YWCA 강의실로 직접 가 본적이 있습니다. 그는 자기가 재림 예수임을 여러 가지고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미친 사람같았습니다.
몇 가지 증거중에 자기 자가용 번호가 3650번인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 삼위 일체(3)가 육신(6)을 입고 오(5)셨다는 의미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달라고 하지도 않았는 데 이런 번호를 준 것만도 자기를 간접적으로 인정한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합니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는 중에 이런 말도 하였습니다. 산속에 들어 가 몇 년을 나오지 않고 도를 닦았습니다. 그리고 오랜 만에 세상으로 내려 왔습니다. 이제는 세상 때가 안 묻었을 것같은 데 아직도 욕심, 음란, 시기, 질투, 짜증이 남아 있는 자신을 발견하였다는 이야기도 하였습니다.
도를 닦아도 죄를 없앨 수는 없습니다. 안토니오라는 수도사가 수도원에 들어가서 오랜 세월 수도했습니다. 이제는 이만하면 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도원을 졸업한다고 생각하고 구두부터 수선하려고 수도원 앞에서 구두룰 수선하는 수선공에게 갔습니다.
구두 수선을 하는 동안에 물었습니다. “식구는 몇 명입니까? "아내와 아이들 8명으로 모두 10명입니다." "그러면 구두를 수선하여 열 식구가 굶지 않을 수 있습니까?" 구두 수선공은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저는 다만 주님의 종들의 신발이 오랫동안 편안하고 해지지 않도록 수선할 뿐입니다. 이것에만 최선을 다하면 나머지는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겠지요"
이 수선공의 말을 들은 안토니오는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아직까지 수도가 덜 되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수도원으로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시간만 흐르면 수도가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도를 닦으면 자기 죄가 스스로 물러 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다시 수도원으로 들어가 하나님앞에 자기를 내놓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같이 우리는 결심으로도, 인격으로도 그리고 도를 닦음으로도 죄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죄를 이길 수 있을 가요? 세 가지 비결이 있습니다.


1. 건전한 일에 미치면 됩니다.
어두움을 이기는 비결은 어두움을 물러가라고 애를 쓸 필요가 없이 불 하나 키면 자연히 어두움은 물러 갑니다. 서쪽으로 안 가는 비결은 동쪽으로 가면 됩니다. 죄를 이기는 비결은 건전한 일에 미치면 죄를 멀리 하게 됩니다.
바쁜 꿀벌은 슬퍼할 시간이 없습니다. 일에 쫓기는 사람은 죄지을 시간이 없습니다. 에디슨은 인류 역사상 제일 발명을 많이 한 발명의 왕입니다. 그는 평생을 연구실에서 살았습니다. 하루 24시간중에 18시간을 연구실에서 연구하면서 살았습니다.
나는 미국 오하이오주 데이튼에서 에디슨의 발자국과 손자국을 세멘트가 굳기 전에 찍어 놓은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작은 체구의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오직 연구실에 파묻혀 살았습니다.
한번은 제자들이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언제 취미 생활을 합니까?” 이 때 에디슨이 말했습니다. “나는 한번도 일한 적이 없다. 하루 18 시간 취미 생활만 하고 있다” 일하는 것이 취미였습니다. 건전한 일에 미치면 죄는 자연히 물러 가게 됩니다.
지난 주일 새벽 예배를 마치고 사무실에서 6시 뉴스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어느 할머니의 인생을 그린 이야기를 방송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길거리에서 버려진 노인들만 데려다가 살고 있는 천사같은 할머니였습니다. 외롭게 혼자 살자가 자기같은 노인들의 사정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살아가는 할머니였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같이 살면서 자기만 없어지면 불안해 하였습니다.
특별히 병들었을 때는 그만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죽어 갈 때에는 항상 할머니 손목을 붙잡고 죽어 가는 것이 유일의 행복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디 한번 여행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자기를 요구할 때마다 살아가는 행복을 느끼며 생의 의미를 찾곤 하였습니다.
아직도 이 세상에 할 일이 있다는 행복감을 맛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소원이 성지 순례 한번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10 일 가량을 비운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할머니가 한 말 가운데 제일 잊지 못 할 말이 하나 있습니다.
성지 순례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면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이 다음에 하늘나라에 가서 내려 다 보지. 지금 일하자” 그리고 평생 일만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건전한 일에 미친 사람들은 죄 지을 틈이 없습니다. 죄를 이길 수가 있습니다.
마르틴 루터가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의자 옆에 앉아있던 개가 루터가 식사하는 모습을 열심히 올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손이 밥그릇으로 가면 눈이 밥그릇으로, 손이 입으로 가면 강아지 눈은 입으로 갔습니다. 그가 움직이는 대로 개 눈이 따라 다녔습니다.
그 모습을 본 루터가 개에게 감동되었습니다. 그래서 개에게 고기 한 점을 던져주었습니다. 개는 정신없이 먹어치우고는 또 눈을 똑바로 뜨고 바라보았습니다.
그때 루터는 한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루터는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개가 내 손을 쳐다보는 것처럼 나도 하나님만 바라보았더라면 하나님은 내게 더 크게 감동하셨을 것이다>
우리는 온갖 잡된 것들을 다 버리고 건전한 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에 미치면 죄를 멀리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죄를 이기는 비결입니다.


2. 회개하면 됩니다.
넘어지고 또 넘어지는 것이 사람입니다. 용서하고 또 용서하는 것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에 회개하고 또 회개하면 용서하시고 또 용서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베드로는 죽음을 두고 결심하였습니다. 죽을 지언정 예수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그러나 결심으로 안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잡히셔서 재판을 받으실 때 어린 여자 앞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였습니다. 같이 잡혀 죽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하고 났을 때 닭이 울었습니다.
베드로는 닭울기 전에 세 번 부인할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밖으로 나가서 통곡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회개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다가 3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을 제일 먼저 찾은 사람은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제자중에 가장 먼저 예수님의 무덤을 찾은 제자는 바로 베드로였습니다(눅24;12) 회개하고 나니 예수님을 부인하던 죄에서 멀어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예수님을 위하여 순교할 수 있었습니다.
회개하면 죄를 멀리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 나약하여 죄를 짓고 회개하고도 또 같은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또 회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회개할 때마다 용서하여 주십니다. 몇 번 정도 회개할 때까지 용서하여 주실까요? 같은 죄로 100번 정도 회개하여도 하나님은 용서하여 주실까요? 똑같은 죄로 200번쯤 반복하고 용서를 빌어도 하나님은 용서하여 주실까요?
그 해답을 성경에서 찾아 보십시다. 한번은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물었습니다.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번까지 하오리이까>(마18;21) 그 때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일곱번 뿐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할지니라> 그러면 490번만 용서하라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무한히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나는 의사들이 음식물을 입에 넣고는 50번씩 씹어 넘기면 위에서 저절로 소화가 되어 위장이 좋아 지고 소화가 잘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50번을 씹어 보니 불가능이었습니다. 50번을 씹기 전에 음식은 저절로 녹아 목구멍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화가 나면 10을 세고, 더 화가 나면 100을 세라고 어른들은 말했습니다.
그러나 100을 세기 전에 화는 풀어지고 말게 됩니다. 490번 용서를 하려면 그 사람을 향한 사랑으로 마음이 녹아지게 됩니다. 그렇게 용서하라고 하신 하나님은 무한히 우리를 용서하시겠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오뚜기입니다. 오뚜기는 100번 넘어져도 100번 일어납니다. 1000번 넘어지면 999번 일어나고 한번 쯤은 쓰러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꾸만 용서를 빌어도 자꾸만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지을 때마다 뻔뻔스러워도 회개하여야 합니다. 그렇게 반복하다 보면 반드시 끝장이 있습니다. 죄가 문제가 아니라 회개가 문제입니다. 죄를 지을 때마다 낙심하지 말고 회개하면 죄가 이기기 않고 회개가 결론이 됩니다.
그러면 회개가 승리하게 됩니다. 이렇게 살다가 회개로 승리로 결론 내리고 천국에 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우리는 자꾸만 죄를 지어도 죄의 결론은 회개여야 합니다. 그러면 죄를 이길 수 있습니다. 죄가 문제가 아니라 회개가 문제입니다. 회개하면 죄를 이길 수 있습니다.


3. 성령받으면 됩니다.
죄를 이기는 가장 큰 비결은 역시 성령받는 것입니다. 성령을 모시고 사는 사람을 결코 죄를 지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여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12 장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속에 있는 한 마리 귀신을 내쫒았습니다. 그 귀신은 물없는 곳 그리고 쉴만한 곳을 찾아 다녔습니다. 신이 들어가는 두가지 종류의 마음이 있습니다. 물이 없는 곳입니다. 예수님은 물은 성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7;37-39)
성령이 없는 마음 그리고 쉴 만한 마음을 귀신은 찾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 충만하고 귀신이 들어 와도 영적으로 편히 쉴 수 없는 마음에는 결코 들어 올 수 없습니다. 성령받으면 귀신이 들어 올 수 없습니다.
내가 신학교에서 강의할 때 특이한 학생이 한 분 있었습니다. 나보다 나이가 10살 정도 많은 분이었습니다. 경부선 열차를 타고 다니면서 돈많은 사람을 노려 돈을 빼앗는 쓰리꾼이었습니다. 현찰을 들고 다니는 사람을 기가 막히게 골라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돈을 어떤 수단으로든지 빼앗습니다.
그리고는 달리는 기차에서 뛰어 내리는 기술을 익혔습니다. 100 km 이상 달리는 기차에서 뛰어 내려 디구르 굴러 살아나는 수법을 썼습니다. 그러니까 도저히 잡히지 않았습니다. 점점 범죄가 커졌습니다. 이제는 으슥한 골목에서 기다리다가 여자들 핸디백을 빼앗고 성폭행하기도 일수였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한 사람이 몹시 반항하자 죽여 버리고 말았습니다. 살인을 저지른 것입니다. 재판에서 무기징역 선고를 받았습니다. 교도소에 수감되었는 데 얼마나 난폭한 지 독방에 가두었습니다. 그래도 난폭하니까 포승줄로 묶어 두었습니다.
죄수 중에 최악의 생활을 하였습니다. 밥도 돼지처럼 입으로 먹어야 했습니다. 안 먹을 수는 없었습니다. 좁은 감방에서 묶여 살다 보니 몸에 진물이 흐르고 그 곳에 구더기들이 왔다 갔다하는 몸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인가 전도자 한 분이 성경을 넣어 주었습니다. 그는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종이가 얇아서 구더기들을 싸서 죽이기에 안성마춤이었습니다. 그는 성경을 한 장 찢어 구더기를 싸서 죽였습니다. 감방 한 구석에 구더기를 사서 죽인 종이가 쌓이기 시작하였습니다. 너무나 심심하였습니다. 찢어진 성경 종이에 쓰여진 글이 유난히 돋보였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1;12-13)
마음에 무엇인가가 꿈틀거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성경을 넣어 준 전도자 면회를 신청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물었습니다. 그는 설명하여 주었습니다. 그 순간 성령께서 임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통신으로 신학교를 공부하였습니다. 점점 모범수가 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묶었던 줄이 풀렸습니다. 독방에서 여러 명이 있는 방으로 옮겨졌습니다. 전도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교도소 생활을 모범벅으로 치루자 형이 경감되었습니다.
오랜 세월을 수감생활을 하고 출감하였습니다. 신학교 문을 두드렸습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기도하였습니다. 성령을 체험하였습니다. 지금은 훌륭한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나는 그 분이 목회하는 부산에 집회를 다녀 왔습니다. 그 분을 볼수록 성령님의 능력이 얼마나 놀라운 지를 체험하게 됩니다.
성령받으면 죄를 멀리 할 수 있습니다. 성령받으면 죄를 문제없이 이길 수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도와 주시기 때문입니다. 죄를 이길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성령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1. 결심으로 죄를 이길 수 없습니다. 2. 인격으로 죄를 이길 수 없습니다. 3. 도를 닦아도 죄를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죄를 이길 수 있습니다. 1. 건전한 일에 미치면 됩니다. 2. 회개하면 됩니다. 3. 성령받으면 됩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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