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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과 함께 사는 생활 (롬8:12-17)

by 【고동엽】 2022. 1. 4.
성령과 함께 사는 생활 (롬8:12-17)
  조 용기 목사님과 식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조 용기 목사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내 아내와 수 십년을 같이 살지만 내 아내의 성격보다 성령님의 성격을 더 잘 알아" 나는 이 말씀에 너무나 놀랐습니다.
"과연 큰 목사님은 다르구나. 나는 성령님 성격보다 내 아내의 성격을 더 잘 아는 데.." "이렇게 성령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 가니까 큰 일을 하는 구나"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고백하는 이들의 마음을 주소로 살고 계시다고 하셨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 3;16)
개가 사는 집이 개 집입니다. 대통령이 사는 집이 청와대입니다. 토끼가 사는 집이 토끼장입니다. 성령님이 사시는 집이 성전입니다. 우리 몸이 성령님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거하시고 계십니다. 여러분 안에 김 순덕이 거하고 계십니까? 내 안에는 김 순덕이 가득 차 있습니다. 김 순덕은 돌아 가신 우리 어머니입니다. 6.25 때 나를 업고 피난 나오시다가 헛간에서 주무시면서 사타구니에 끼고 주무신 우리 어머니, 나는 그 어머니만 생각하면 지금도 눈시울이 뜨겁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제일 좋아 하시던 음식이 잡채였습니다. 잔치 집에 다녀 오실 때면 나는 으래 어머니가 좋아 하시던 잡채를 조금 싸 달라고 하여 갖다가 어머니를 드리 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500원짜라 동전이 처음 나오던 때에 버선속에 500 원 짜리 동전을 신기한 듯 차곡차곡 모아 두시던 어머니, 그 어머니가 지금도 미치도록 그립습니다.
그 어머니가 지금도 내 속에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이 다음에 천국에 가면 제일 먼저 어머니를 만나게 하여 달라고 하나님께 부탁할 것입니다.
그 다음에 우리 갈보리 선교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다가 천국에 먼저 가신 이들을 한 분 한 분 만나 볼 것입니다. 생각만 하여도 가슴 벅찬 일입니다.
그 김 순덕이 내 안에 가득 차 있는 데 여러 분 안에는 김 순덕이 좁쌀만큼도 있을 리가 없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영접한 이들 속에는 성령님이 가득차 있습니다.
그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다음과 같은 일을 하십니다.


1. 증거
성령님은 우리 안에 거하시고 계시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고 계십니다. 내 안에 김 순덕이 거한다는 사실은 내가 김 순덕이 자녀라는 증거입니다. 바울은 로마 교회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 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 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롬 8;14-17)
성령은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여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습니다. 성령님이 안에 거하시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아이들 속에서 자기 자녀를 찾을 때 결코 망설이지 않습니다. 아무리 수 천명 자녀가 있어도 자기 자녀는 금방 알아 봅니다. 한참 뜯어 보고 나서 <내 아들이구나!> 결론을 내리는 법은 없습니다. <내 아들인지 아닌 지 긴가 민가 한데...> 이런 경우는 없습니다. 자기는 너무나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성령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자기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확실히 압니다. 내 안에서 성령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2. 인도
성령님은 우리 안에 거하고 계십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하고 계시면서 하시는 두 번째 일은 인도하심입니다. 바울은 이미 봉독한 성경말씀에서 이렇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14-17)
성령님은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일을 하십니다. 어디론가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나도 모르게 어디론가 가고 있습니다. 나는 어째서 성막을 연구하게 되었는 지 잘 알 수 없습니다. 지나 놓고 보니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확실한 성령님의 인도하심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 하기를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라>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계획은 사람이 세울 지라도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바울이 전도여행을 할 때였습니다.
아시아로 갔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 하게 막았습니다. 브루기아로 갔습니다. 역시 성령님이 막으셨습니다. 갈라디아로 갔습니다. 무시아로 갔습니다. 비두니아로 갔습니다. 그 때 상황을 성경은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행16;7)
모두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않았다고 성경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때 기도하는 데 마게도니아 청년이 환상중에 나타나서 바울에게 말했습니다.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행16;9) 그래서 바울은 그 곳으로 가서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바울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았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나는 이런 체험이 있습니다. 미국 LA 은혜 한인교회에서 부흥회를 마쳤습니다. 부흥회를 하고 나면 강사비를 줍니다. 강사비를 바라고 부흥회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반드시 주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런데 그 날은 이상하게도 주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상하다 여겼지만 강사비 왜 안 주느냐고 물을 수는 없었습니다. 뉴욕을 들러서 다시 LA에 왔다가 귀국하는 일정이었습니다. 나는 거냥 뉴욕으로 왔습니다. 뉴욕에서 지하철을 타고 맨하탄 31가에서 내렸습니다. 혼자 짐을 들고 약속 장소로 걸었습니다.
나는 얼마든지 혼자 다닐 수 있게 익숙한 거리였습니다. 그 때 흑인 5명 정도가 나를 둘러 쌌습니다. 그리고 칼을 들이 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와 같이 걸어 가며 나에게 가진 것을 다 내놓으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우리는 일행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나는 할 수 없이 다 내놓았습니다. 지갑은 물론 패스포트까지 다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돈도 다 털리고 말았습니다. 영사관에 가서 임시 패스포트를 만들어 가지고 간신히 돌아 올 수 있었습니다. 돈도 없어서 아는 이에게 좀 빌려서 비행기 표까지 다시 구입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LA로 왔습니다. 김 광신 목사님이 재정부장님과 함께 오셨습니다. 그리고 강사비를 주면서 말했습니다. "강 목사님! 우리가 너무나 결례를 행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재정부장님이 강사비를 직접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날은 이상하게 나에게 드리게 하고 싶어서 내 책상위에 강사비를 놓아 두었습니다.
나는 드린 줄만 알고 있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 때 나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알았습니다. 그 교회로서도 처음 있는 일입니다. 만일 그 때 주었더라면 나는 그 돈을 다 빼앗겼을 것입니다. 나느 뉴욕에서 있었던 사건을 김 목사님에게 말씀드렸습니다.
김목사님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둘이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 계시면서 우리를 유익되게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3. 책망
성령님은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우리에게 죄와 의로움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증거하여 주십니다. 예수님은 고별 설교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실상을 너희에게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 가 너희에게 오시지 아니 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16;7-8)
성령님은 우리 안에 거하고 계시면서 우리에게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책망하시는 분이십니다. 같이 죄를 지었어도 성령님이 안에 계신 분은 너무나 괴로워 합니다. 성령님이 가르쳐 주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목수 장로님의 간증을 들어 본 적이 있습니다. 집을 다 짓고 돈을 다 받았습니다. 같이 술집에 가서 술을 마시고 술집 여인과 범죄를 하였습니다. 모두가 즐겁게 돌아 갔습니다. 그러나 장로님 안에는 성령님께서 거하고 계셨기에 성령님이 죄를 책망하셨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은 즐거워 하는 데 왜 장로님만 그렇게 괴로워 하는 것일까요? 성령님이 책망하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태리 앗시시에 가서 가시없는 장미 밭을 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조금만 죄를 지어도 못 견디는 프란시스였습니다. 그는 조그만 죄에도 성령님께서 책망하셔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 견딜 수 없어서 자기가 자기에게 벌을 주려고 장미 밭에서 가시에 찔리려고 디굴디굴 굴렀습니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내려다 보시고 깜짝 놀랐습니다. 천사를 동원시켜서 가시를 모두 없애 버리셨습니다. 지금까지 가시없는 장미가 피어 있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조그만 죄를 지어도 책망하시기에 언제나 괴로워 합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하심을 진정 믿으면 정말 인격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도저히 죄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성령님이 내 안에서 나와 함께 계신 데 부부 싸움을 할 수 있을 가요?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목사가 들어서면 싸움을 그칩니다. 화가 났다가도 금방 웃습니다. 성령님이 지금 나와 함께 계신 데 싸운다면 성령님은 목사보다 못 하다는 말입니까? 성령님이 안에 계심을 믿는다면 그 분과 음란 비디오를 볼 수 없습니다. 성령님과 같이 볼 것입니까? <성령님! 같이 보실까요?> 이렇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우리를 책망하시는 분이십니다. 주일에 예배 참석하지 않고 단풍놀이를 갔습니다. 뻐스 안에서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며 심지어 춤을 추며 즐거워 합니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는 왠지 불안이 있습니다.
<주일인데 하나님이 노하시지 않을가? 뻐스가 사고나지 않을가? 오늘 무슨 일이 있지 않을가? 지금 예배드리고 있는 시간인 데 무슨 설교를 하실가?> 안에 계신 성령님은 이렇게 책망하십니다.
이런 마음이 있어야 성도입니다. 다같이 즐겁고 아무 생각이 없다면 그 안에서는 성령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십일조를 드리지 않아도 불안합니다. 무슨 재산상의 손해를 보면 내가 십일조를 드리지 않아서 그런 가 보다라고 깨닫게 됩니다.
한번만 십일조를 제대로 하지 않아도 이런 마음이 드는 데 세상 사람들은 평생 십일조를 드리지 않고도 이런 마음이 들지 않습니다. 이는 성령님이 안에 거하고 계시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요나가 배를 타고 가다가 풍랑을 만났습니다.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다시스로 가다가 그랬습니다. 요나는 나 때문에 풍랑이 일어나니 나를 바다에 던지라고 말했습니다. 안에 계신 성령님이 이런 마음을 주신 것입니다. 이같이 성령은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우리를 책망하시는 분이십니다.


4. 심판
성령님은 우리 안에 거하시고 계시면서 심판하여 주십니다. 칸트는 하늘에는 반짝이는 별이 있고 마음에는 양심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은 우리 안에 거하고 계시면서 하나님이 심판이 어떤 것인가를 가르쳐 주십니다.
그래서 심판을 대비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실상을 너희에게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 가 너희에게 오시지 아니 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16;7-8)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한 것이요 죽음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히브리서 기자는 증언하여 주고 있습니다(히9;27)
우리는 김 수연 집사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위암 말기 환자였습니다. 세브란스 병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이제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정말 아득하였습니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가장 큰 걱정은 하나님의 심판대였습니다. 하나님앞에서 심판받는 장면이 자꾸만 떠올랐습니다. 성령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치료비 남은 것을 다 드려서 말리부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대나무로 잘 지어졌습니다. 그 교인들은 그 교회 이름을 수연교회라고 붙였습니다. 봉헌에배에 꽂았던 꽃을 내가 주어서 내가 갖다가 김 수연 집사님에게 드린 기억이 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심판을 가르쳐 주십니다. 내가 국민일보 겨자씨에 원고지 두 페이지에 이 이야기를 썼습니다. 이 이야기를 읽은 어느 권사님의 마음을 성령님이 두드렸습니다. "너도 하나님의 심판대에 설 터이니 심판을 준비하여라" 성령님의 이런 음성을 듣고 그는 얼마 전에 300만원을 보내 오셨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짓고 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심판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5. 소원
성령님은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우리에게 소원을 주신다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향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2;13)
마음속에 무엇을 하고 싶은 소원이 막 일어나면 그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고 성령의 음성입니다. 마가복음 5장에는 12년을 혈루증으로 앓다가 예수님을 만나 옷자락을 붙들고 고침받은 여인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 여인은 그 병을 고치려고 의사란 의사를 다 만났습니다.재산도 다 허비하였습니다.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하여 보았습니다. 그러나 도리어 더 중하여졌습니다.
그는 갑자기 예수님을 만나고 싶은 소원이 일어 났습니다. 예수님 뒤로 와서 몰래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들었습니다. 갑자기 혈루 근원이 마르면서 통증이 사라지는 것을 알았습니다. 고침받았습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소원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나는 1989년 4월 19일 미국 란카스타에 가서 성막을 보는 순간 한국에도 성막을 만들고 싶은 소원이 분수대처럼 품어 올랐습니다. 자나깨나 그 생각이었습니다. 기도하여도 찬송을 부를 때도 오직 그 소원이었습니다. 그래서 성막 제작에 들어 갔습니다.
많은 이들이 미쳤다고 하였고 헛수고한다고 하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왜 복음 시대에 율법으로 돌아 가려느냐고 비난하였습니다. 왜 예수 피 시대에 짐승피를 이야기하려느냐고 욕하였습니다. 심지어 우리 교인 가운데 미친 짓 한다고 떠나는 교인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날 성막은 복음의 핵심인 것을 알게 되고 성막 쎄미나가 잘 되고 있습니다. 소원은 성령이 주시는 축복의 신호입니다.
미국 수정 교회 로버트 슐러 목사님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소원이 성령님이 주시는 것인지 단순한 내 생각인지 구별하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질문에 <예>라고 대답할 수 있으면 성령님이 주시는 소원입니다.
1. 이 소원을 이루고 나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실 것인가?
2. 이 소원을 이루고 나면 많은 사람이 유익을 얻게 되는가?
3. 이 소원을 생각만 하면 이루고 싶어서 가슴에 불타는 기쁨이 있는가? 예를 들어 봅니다. 우리 교회는 <12345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의 유일한 교회를 세우려는 것입니다. 박물관, 성막, 숙소, 쎄미나 실, 그리고 특별한 기도실을 만들어 2천 교회를 개척합니다. 3천성도가 예배드립니다. 4만명이 방문합니다. 5억을 선교비로 사용할 것입니다. 이런 일들은 세 가지 질문에 비추어 보면 모두 <예>입니다. 하나님이 너무나 기뻐하시고 수많은 이들이 유익을 얻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꿈만 생각하면 기쁨이 옵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우리에게 소원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LA 레돈돈 비치에 가면 게를 먹는 집이 있습니다. 나무 망치를 가지고 게를 까먹는 아주 특이하고 인상깊은 음식점입니다. 그렇기에 한국인은 으레 한번은 둘르는 이름난 곳입니다. 너무나 잘 되는 음식점입니다. 그 집 주인은 한국인입니다.
그가 그 음식점을 경영하게 된 동기가 있습니다. 미국에 이민와서 어떤 일을 할가 구상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하여도 말도 통하지 않고 미국도 모르고 막연하였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놀고만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비치를 거닐고 있었습니다. 배가 고팠습니다. 그 음식점에 들렀습니다. 맛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바글바글하였습니다. 이런 음식점을 경영할 수 없을가 생각하였지만 그림의 떡이었습니다. 이렇게 잘 되는 음식점을 팔 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음식을 먹는 동안에 이 음식점을 살 수 없을가 하는 소원이 들었습니다. 그는 미국인이 주인을 찾았습니다. 그에게 말했습니다. "혹시 이 음식점을 팔 생각은 없으십니까?" 그 미국인은 너무나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습니다. 왜 이렇게 잘 되는 음식점을 파느냐고 비웃었습니다.
그는 명함을 하나 주면서 말했습니다. "지금은 팔 생각이 없으시지만 혹시 이 음식점을 팔 경우가 생기면 제게 연락 주시면 제가 사겠습니다" 그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면서 관심없이 그 명함을 받았습니다. 체면상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얼마 지난 후였습니다. 그 주인은 더 큰 사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음식점을 팔아야 했습니다. 그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서 그 음식점을 사게 된 것입니다. 그 주인은 힘들지 않고 팔 수 있었고 그 사람은 힘들지 않고 살 수 있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소원을 주십니다. 그렇습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분은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5가지 일을 하십니다.
1.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여 주십니다.
2. 우리를 인도하여 주십니다.
3. 우리를 책망하여 주십니다.
4. 우리를 심판하여 주십니다.
5. 우리에게 소원을 주십니다.
일본의 유명한 내촌감삼은 <하나님과 함께 걷는 하루>라는 책을 저술하였습니다. 매일 매일 일어나서 기도합니다. <하나님! 오늘도 성령님과 순간순간 일거수 일투족 살아 가게 하옵소서> 그렇습니다. 우리는 매일 성령님과 함께 살아가면서 5가지 역사를 체험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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