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으로 문을 내라! (창 6:13-22)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셨음을 탄식하셨습니다. 그래서 홍수로 온 세상을 멸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 때 모든 사람들은 누워서는 음탕하고, 앉아서는 술퍼마시고 놀음하며, 서서는 춤을 추는 온갖 경우에 죄를 범하였습니다.
그러나 죄에 물들지 않은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노아였습니다. 하나님은 노아만은 살리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리고 노아에게 홍수를 대비하여 방주를 지으라고 명하셨습니다. 노아는 아라랏 산 꼭대기에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방주 모양을 하나님이 직접 지시하셨습니다. 노아는 방주를 120년간 만들었습니다. 그것도 산 꼭대기에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은 비난하였습니다.
미드라쉬에 보니 노아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홍수를 대비히여야 합니다. 앞으로 큰 비가 옵니다. 그 비는 발목을 적시는 비가 아닙니다. 무릎까지 차는 비가 아닙니다. 온 몸을 담그는 정도의 홍수가 아닙니다. 온 땅을 잠기게 하고 모든 생물을 죽이는 홍수입니다. 배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허허! 웃기지 마십시오. 불의 홍수가 오면 물로 막을 것이고 물의 홍수가 오면 철판으로 막겠습니다. 그런 소리 마십시오. 산꼭대기에 배를 만드는 사람을 우리는 보지 못 하였소!>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만일 노아가 믿음이 없었다면 그렇게 하지 못 하였을 것입니다. 노아의 믿음이 돋보이는 것이 두 가지입니다.
(1)120년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토록 오랫동안 실망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믿음의 결과입니다.
(2) 산위에 배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바닷가에 만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산에서 재목을 구하기에 편하게 하려고 한 의도도 있겠지만 믿음을 보신 것이기도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후에 모세에게 하나님의 집인 성막도 정확하게 지시하셨습니다. 재료, 크기 그리고 모양등을 상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성경대로만 하면 됩니다. 1,000 년간 연구하지 않아도 성경대로만 하였으면 1,000년 앞 서 갔을 것입니다.
방주의 재료 재료는 잣나무로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칸칸을 막고 역청으로 발라 물이 새지 못 하게 하고 방과 방 사이가 밀패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배를 만드는 나무중에 가장 좋은 나무가 잣나무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고대 알렉산드리아의 배들이 모두 이 원리에 다라 잣나무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역청을 바르면 배에 물도 스미지 않고 가장 견고하다는 것입니다.
성베드로 성전 문도 잣나무로 만들었는 데 1,000년간 썩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방주의 안정성과 견고성은 완벽하였습니다. 방주의 크기 길이는 300 규빗 그러니까 150 m로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축구장 길이가 108 m입니다. 축구장 길이의 1.5배입니다. 그리고 넓이는 50 규빗 25 m입니다. 그리고 높이는 30 규빗 그러니까 15 m입니다. 그런데 이런 배는 바다위에 떠있는 배중에 가장 이상적인 배라는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었습니다.
1844년 영국 조선소에서 1,000년간 연구하여 만들어 낸 배 브리튼 호와 같은 배였습니다. 하나님은 과학자중에 과학자요 조선기술자중에 기술자입니다.
노아의 방주는 현대 조선기술자들이 감탄하는 배라는 것입니다. 방주안의 생명 하나님은 노아의 8식구에게 방주안으로 들어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방주 안에 지구상에 있는 모든 동물들을 넣어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동물을 보호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예비하고 계신 분이십니다. 노아는 500 세에 결혼하여 500세가 넘어서부터 아들을 낳기 시작하였습니다(창5;32) 그리고 950세에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500세가 된 노총각이 결혼하였다는 것도 이상합니다. 이삭은 40세에 결혼하였는 데 노아가 그렇게 늦게 결혼한 것이 이상합니다. 그리고 더욱 이상한 것은 생애 중간에 결혼하여 생애 반이 지나도록 3명의 아들을 낳았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홍수를 맞이하였습니다. 그리고 950세까지 살았습니다.
그런데 노아가 죽을 때 쯤 되어서의 인구는 100 만명이 되었습니다. 노아의 8식구가 500년 가량 지나면 100만명이 충분히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신비의 예정이 들어 있었습니다. 홍수 이전에 인구를 번성시키면 그 가족들을 다 살릴 수가 없습니다. 만일 노아가 400세에만 결혼하였어도 노아의 식구는 10,000명도 넘었을 것입니다.
나는 10,000명이 동시에 탈 수 있는 배를 본적이 있습니다. 엄청나게 큰 배였습니다. 노아 당시 그런 정도의 배는 만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노아의 아들을 셋만 주시고 홍수를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예정이 들어 있습니다.
되어져 가는 모든 일은 하나님이 주관하고 계심을 우리는 분명히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예정하시고 섭리하시는 분이십니다. 방주의 문 그런데 이상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창은 위로 하나만 내고, 문은 옆으로 하나만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거기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16) 이 문은 바로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성격을 7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1) 나는 선한 목자다. (2) 나는 생명의 떡이다. (3) 나는 빛이다. (4) 나는 길이다. (5) 나는 진리이다. (6) 나는 생명이다. (7) 나는 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요10:7)
방주에 낸 옆구리 문은 바로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이 문을 보면서 우리는 예수님의 네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하나이신 예수님
방주는 거대한 항공 모함입니다. 이미 언급한 대로 축구장의 한 배 반 되는 배를 상상하여 보십시오. 그렇게 큰 방주에 문은 하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상상하여 보십시오. 천국은 거대한 곳입니다. 수 천년동안 이 땅에서 살아 온 사람들이 구원을 받아 들어 가는 문은 오직 하나밖에 없습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누가는 말하고 있습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4:12)
다른 종교에서는 기독교가 너무나 독선이라고 혹평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만 구원이 있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철저한 독선입니다. 예수님 외에 구원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석가모니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공자로 안 됩니다. 모하멧으로는 지옥갑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천하 인간에 구원받을 만한 다른 이름이 없습니다.
30 여년전 프랑스의 한 잡지에서 세계의 저명인사 1백명에게 다음과 같은 설명을 했습니다. “지구가 파멸할 날이 예고되었다. 할 때 가장 먼저 들고 나갈 지구상의 보물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 결과는 이탈리아 토리노 대성당에 보관중인 예수 그리스도의 수의(壽衣)가 제1위로 뽑히고 버금이 미로의 비너스상이었습니다. 그 토리노 대성당이 지난 주말 누전으로 내부가 모조리 불타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3중 방탄 유리속 성궤에 든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인 예수의 수의는 비상 반출되어 무사하였습니다.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신 분은 이 세상에 오직 예수님 한 분뿐이기 때문입니다. 방주에는 오직 문이 하나밖에 없습니다. 오직 한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2. 생명되신 예수님
방주는 문이 오직 하나입니다. 예수님은 문입니다. 그런데 이 문은 무엇하려고 만든 문입니까? 노아의 식구 8명이 들어가는 문입니다. 지구상에 온 짐승들이 들어가는 문입니다.
노아의 홍수때 방주안에 들어간 생명만 살았고 방주 밖에 있는 생명은 다 죽었습니다. 사람도 짐승도 모조리 죽었습니다. 생명과 죽음을 갈라 놓는 문입니다. 문안은 생명이요, 문밖은 죽음이었습니다. 예수님안에 있으면 영생이고, 예수밖으로 나가면 죽음입니다.
요한은 말했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오늘 본문에서 3 곳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으리라>(17)
<.... 너는 각기 암 수 한쌍씩 방주로 이끌어 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케 하되>(19)
<새가 그 종류대로, 육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 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케하라>(20)
문안은 생명이요, 문밖은 죽음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도대제 지구상에 17,600 종류의 동물들이 살고 있는 데 이 동물들을 다 집어 넣을 수가 있었을 가요? 불가능일가요? 요즘에 과학자들은 이런 사실들을 밝혀 내고 말았습니다.
300 규빗, 50 규빗, 30 규빗이면 모두 한 층이 축구 경기장에 1.5배가 되는 크기입니다. 그것이 3층이라고 성경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화물차량 522 대의 용적과 맞먹는 크기입니다. 17,600종을 하나님의 지시 수만큼 넣으니가 모두 35,000마리입니다.
그런데 그런 용적에는 125,280 마리가 들어 갈 수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노아의 식구들이 다 들어가고 그 동물들이 다 들어가고 일년분 양식을 다 넣을 수 있는 방주라는 것이 정확하게 발표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입니다. 핀란드에 선정을 베플어 백성들에게 추앙을 받는 왕이 있었습니다. 왕은 백성들의 평안과 행복을 지켜주기 위하여 노력하였습니다. 이 왕에게는 말 못 할 고민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대를 이를 후계자 아들이 없었습니다. 왕은 왕업을 이을 사윗감을 찾는다는 방을 전국 방방 곡곡에 붙였습니다. 전국에서 수많은 젊은 이들이 몰려 들었습니다.
몇 일간 활쏘기, 말타기등 무예시험에 합격한 10명에게 왕이 말했습니다. <하늘과 땅, 이웃과 이웃을 이어주는 나무를 일주일 내에 구하여 오라> 일주일 후 청년들은 저마다 웅장하고 괴상한 나무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나 죤 페로라는 청년은 왕앞에 십자가를 내밀었습니다.
<폐하! 십자가의 세로 막대는 하늘과 사람을 연결하고, 가로는 인간과 인간을 연결하여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왕이 구하는 최고의 상징입니다> 왕은 그에게 왕위를 물려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과 우리의 일시적인 생명을 이어주신 생명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노아의 방주의 문은 생명되신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영국 미들랜드 지방에는 이상한 두 개의 무덤이 있습니다. 이 무덤 앞에는 오른 손이 없는 여인 동상이 우뚝 솟아 있습니다. 이 동상 이야기 때문에 이 동상을 구경하러 오는 관광객이 연인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
이 오른 손이 없는 여인 동상 이야기가 있습니다. 회교도들이 성지 이스라엘을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십자군이 출동하여 회교도들과 치열하게 싸울 때였습니다. 십자군병중에 한 병사가 회교도 정복자 살라딘(1138-1193)에게 포로로 잡혔습니다.
그런데 그 병사에게는 사랑하는 애인이 있었습니다. 약혼까지 하였습니다. 그 여인은 담대하게 회교도 장군을 찾아가서 자기 애인을 석방시켜 달라고 애걸하였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허사였습니다.
지쳐버린 여인은 일단 집에 가서 기다려 보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사라딘은 그 여인이 얼마나 자기 애인을 사랑하는 가 시험하여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편지를 썼습니다.
“당신의 진심어린 사랑에 감동을 느낍니다. 당신의 간청을 듣고 생각한 결과 당신의 오른손을 잘라 보내면 당신의 애인은 당신 품으로 무사히 돌아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 편지를 읽고 그 여인은 당장 오른 손을 잘라 종이에 싸서 정복자 사라딘에게 보냈습니다. 그래서 그 병사는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그 후 두 사람의 묘는 나란히 있게 되었고 오른 손없는 동상이 서게 되었습니다. 이 여인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오른 손을 주었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습니다.
3. 새로운 시작이신 예수님
이제 지구상의 모든 사람과 동물은 다 죽었습니다. 방주 문안으로 들어간 동물이 동물의 시작입니다. 방주안에 들어간 8 식구가 인류의 새로운 시작입니다. 우리는 모두 노아의 후손이 되었습니다.
모든 동물들의 시조는 노아의 방주에 들어 간 동물들에게서 시작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요10:9)
미드라쉬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하여 주고 있습니다. 그 좁은 공간에서 온 세계 동물들이 골고루 살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사고가 없었습니다.
노아 시대에는 사람들만 방탕하였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동물들도 성적으로 타락하여 있었다는 것입니다. 개와 늑대가 성적 교배를 하였습니다. 닭과 꿩이 교배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동물들이 다른 동물들과 교배를 하였습니다. 한 마디로 난장판이었습니다.
그러나 방주안에 있는 동물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질서가 있었습니다.부정한 동물들이 사고를 친 적이 없었습니다. 모든 동물들이 평안하게 있다가 이 세상을 새롭게 시작하는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방주안에 들어간 동물들 외에는 모두가 죽었기에 새로운 형태가 이루어졌습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림(Reem)이라는 동물이 있었습니다. 이 동물은 너무나 커서 방주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나 큰 동물이었기 때문입니다.
후에 다윗에게도 림이라는 동물이 등장하게 됩니다. 하루는 다윗이 산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시원한 바람을 쏘이고 있는 데 산이 움직이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놀랐습니다. 알고보니 림이라는 큰 동물이었습니다. 산과 같이 큰 동물이었습니다.
다윗은 놀라서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나를 살려 주시면 나는 이 림과 같이 큰 하나님의 집을 지어서 바치겠습니다. 살려 주십시요> 이런 기도를 하고 있는 데 사자가 나타났습니다. 림은 사자를 잡아 먹으려고 엎드렸습니다.
이 때에 다윗은 내려왔습니다. 사자가 다윗을 잡아 먹으려고 할 때 사슴이 나타났습니다. 사자는 사슴을 먹으려고 쫓아갔습니다. 림은 사자를 잡아 먹으려고 쫓아갔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가만히 앉아서 살게 되었습니다. 림은 이렇게 큰 동물이었습니다. 그래서 방주위에 매두었습니다.
노아는 구멍을 방주위로 뚫고 먹을 것을 늘 공급하여 주었습니다. 방주의 문은 새로운 시작이 되었습니다. 이는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새로운 시작입니다. 예수님부터 새롭게 시작된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1. 새로운 기원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서기 2002년이란 달력은 예수님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2. 성령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10일만에 성령을 마가의 다락방에 보내 주셨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역사가 예수님으로부터 시작하였습니다.
3.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 이전에는 교회가 없었습니다. 예수님 이후에 교회가 생겼습니다.
예수님은 시작하는 문입니다. 노아의 방주의 문은 시작하는 문이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을 순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53;2-5)
순은 모든 일을 시작하는 분입니다. 나무 가지는 순을 통하여 자라고 생명을 순을 통하여 퍼져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순은 예수님이십니다. 순이라는 말은 시작이라는 말입니다. 방주문은 시작하는 문, 바로 예수님입니다. 오늘부터 예수님과 더불어 새로운 시작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4. 옆이신 예수님
방주의 문은 옆으로 내라고 하나님이 명령하셨습니다. 앞에 문을 내지 않았습니다. 뒤에 내지도 않았습니다. 옆에 냈습니다. 문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옆에 계신 분이십니다. 우선 예수님은 옆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 정통 종교인들인 바리새인이나 서기관이나 사두개인들에서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에게서 오셨습니다. 정통으로 오시지 않고 비정통으로 오셨습니다. 주류로 오시지 않고 비주류로 오셨습니다.
옆구리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고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었다>(마12;24)라고 말했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 같지 않다고 말했습니다(마7;28-29) 그래서 예수님을 이단 사이비로 몰았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사장중에 재사장이요, 대제사장중에 큰 대제사장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레위 족속에서 오시지 않고 유다지파에서 오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래서 별다른 대제사장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히6;20,7:6,8,11,15) 예수님은 옆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 옆에 계신 분이십니다.
스데반이 순교 당하며 하늘을 보니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 옆에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행7;55) 방주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옆에 계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방주 옆에 문을 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노아의 방주는 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옆에 있었습니다. 이 문은 생명의 문이요 시작의 문이요, 예수님을 의미하는 문입니다.
춘향전에 이런 이야기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변사또가 춘향이에게 수청들라고 하여도 들은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난장을 치고 주리를 틀어도 꼼짝하지 않았습니다. 변하지 않았습니다. 변사또는 화가 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년의 닫힌 문이 나무문이면 목수를 불러 부수고, 쇠문이면 대장장이를 불러 부수고, 돌문이면 석수를 불러 부수어라> 춘향이의 문은 열리기 힘든 문이 있습니다.
그러나 방주문은 믿는 이에게 활짝 열려 있는 문입니다. 우리 주님은 한 분이십니다. 우리 주님은 생명이십니다. 우리 주님은 시작이십니다. 우리 주님은 옆에 계십니다. 그 분과 더불어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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