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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의 삼위일체론 형성과정과 중요성-김재성

by 【고동엽】 2021.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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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의 삼위일체론, 그 형성과정과 중요성
(The Development and Significance of Calvin's Doctrine of Trinity)

김재성 교수 (조직신학)


I. 서론

기독교 신학사에서 수많은 논쟁이 얽혀있는 삼위일체론의 정립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신학자는 요한 칼빈이다. 그의 삼위일체론은 중세말기와 종교개혁 초기에 하나님에 대한 여러 이단들이 분출하는 가운데 가장 성경적인 하나님 이해의 길을 열어놓았다. 그리고 삼위일체라는 매우 어려운 주제에 대해서 매우 딱딱하고 차가운 학문이라는 고정관념을 바꾸어 놓았다. 삼위일체를 접근하는 그의 신학적인 설명들은 목회적이요, 실천적이며, 성경적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서 가장 올바른 복음을 찾으려는 현대인들에게도 큰 길잡이가 되어주고 있다. 특히, 하나님에 대해서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성도들에게 가장 균형잡힌 안목을 열어주고 있다.
이 글에서 필자는 단순히 칼빈의 삼위일체론에 담긴 내용분석에만 그치지 않고, 그 형성과정을 중점적을 조명해 보고자 하며, 이를 근거로 하여 과연 기독교 신학사에서 가장 첨예하게 논의되어온 여러 주장을 뛰어넘어서 무엇인가 새로운 독창성을 가진 것이냐의 여부를 다루고자 한다. 지금부터 약 일백여년 전에 칼빈 탄생 사백 주년을 기념하여 주옥같은 칼빈연구 논문을 펴낸 워필드 박사는 칼빈의 삼위일체론이야말로 기독교 교리사의 기념비적인 장을 열어놓았으며 새로운 발전이라고 극찬한바 있다. 그런가하면, 그 후로 약 오십 여년 후에, 유럽의 대표적인 칼빈학자 프랑소와 방델은 칼빈은 당대 여러 종교개혁자들의 삼위일체론에 관한 이론들을 모아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비평을 내놓았다. 이제 다시 오십여년이 지난 후에 그간의 칼빈학자들이 내놓은 연구업적을 근거로 하면서, 특히 필자는 칼빈의 삼위일체론을 이해하는 핵심은 여러 차례의 논쟁을 통해서 형성된 과정을 주목해야만 한다는 것을 제시해 보려고 한다.

II.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삼위일체

II.i. 삼위일체론을 다룬「기독교강요」의 구조분석

하나님은 과연 어떤 분이신가에 대해서 바르게 알고 믿는 것은 칼빈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문제였고, 기독교 개혁신학의 초석을 놓은 많은 신학적 저술을 통해서 교회가 고백해야할 신지식에 관하여 큰 공헌을 남겼다. 중세 시대에 변질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 칼빈을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은 예배와 섬김을 받으시는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에 대해서 심혈을 기울여 연구하였다.
성경을 통해서 발견한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칼빈으로 하여금 삼위일체되신 하나님을 고백하게 만들었다. 칼빈이 다섯 번의 개정을 거듭한 후 펴낸 1559년 최종판 「기독교강요」 제1권을 분석해 보면 저자의 의도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처음 열 두 장에 걸쳐서 칼빈은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과 거짓된 신을 대조한다. 그리고 제 13장을 삼위일체에 할애하고, 그에 기초하여 14장부터 18장까지 창조와 섭리을 다룬다. 따라서 초반은 기독교 인식론과 신론의 기초작업을 한 후에 삼위일체론을 제시한 것이고, 삼위일체론을 다룬 후에는 하나님이 하시는 두 가지 중요한 사역을 다루고 있다.
「기독교강요」제 1권 13장을 다시금 상세히 들여다 보면, 먼저 삼위일체론을 다루는 칼빈의 주요 관심이 초대 교부들의 용어에 대한 비평적 논의에 있음이 드러난다 (2-6항). 그리고 칼빈은 그리스도의 신성 (7-13항)과 성령의 신성 (14-15항)을 다루고, 하나님 안에서 하나됨과 구별됨 (16-20항)을 설명한다. 마지막 부분 (21-29항)은 반 삼위일체론자들에 대한 반박으로 매우 논쟁적이다.
하지만, 칼빈의 그 어떤 교리라도 일반적으로 그러하듯이, 특히 삼위일체론은 불과 40여 쪽에 불과한데, 「기독교강요」제 1권 13장을 요약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충분하지 못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칼빈의 삼위일체론은 그의 목회와 삶의 현장에서 일생 동안 수없는 논쟁을 해야만 했던 주제였다. 우리는 표면에 나타난 교리해설에 그쳐서는 안되고, 그 이면에 흐르고 있던 논쟁들을 주목해야 하고, 칼빈 자신의 연구를 돌아보아야 한다.
더욱 확실한 것은 「기독교강요」의 첫 문장에서부터 삼위일체 교리가 전제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론에서 다루어진 부분을 살펴보자.

II.ii. 신지식의 두 가지 기초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소유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두 가지 중요한 전제가 칼빈의 저술을 속에 일관되게 강조되어 있다. 첫째는 1536년에 발표한 「기독교강요」의 첫 관문이자, 항상 자주 인용되는 그의 유명한 문장, "우리가 갖고 있는 참된 지혜의 총체는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니,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우리 자신을 아는 지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I.i.1)는 선언 속에 담겨있는 바, 경건과 신앙 (pietas et religio)이 철저하게 근저에 있는 것이다. 칼빈이 추구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사변적이요, 회의적인 지식을 추구하였던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단순한 이성적 확신을 갖으려 했던 것도 아니었고, 하나님의 속성들이나 본성에 대해서 합리적인 체계를 구축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다.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뜨겁고 감격에 찬 존경심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결합하여 바르게 예배하기를 소원하였다. 하나님께 예배하는데 합당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소유한 사람의 태도라는 것이다. 교부들이 사용했던 '경외심' 혹은 '신앙'을 의미하는 헬라어 ' '가 신약성경에 사용되었음에 주목하였다. 하나님을 모르던 무지 속에 살던 자들이 미신숭배에서 벗어나서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심령을 갖기를 원했던 것이다. "이것은 거대한 신비이다. 철저한 경외심과 냉정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
두 번 째,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칼빈이 기본적으로 강조하면서 지속적으로 서술한 것은 하나님의 존재는 물체가 아닌 영적인 본질이므로 사람의 제한된 지식으로는 '이해가 불가능하다는 성격' (intrinsically incomprehensibility of God)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완전하게 가질 수 없으며, 하나님이 자신을 아시는 것처럼 알 수 는 없다. 칼빈은 1539년 개정판에서 보다 포괄적으로 "우리가 갖고 있는"이라는 용어를 첨가하여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제한성과 한계를 보다 철저하게 전달하고자 했다. 우리가 갖고있는 가장 참된 지혜를 갖는 길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는 것이다 (잠1:7). 지혜란 하나님을 알고 자신을 아는 것이다. 이 설명은 「기독교강요」의 총주제와 같은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곧 바로 하나님의 존재의 특징을 이해하는 것으로 직결된다. 하나님의 존재는 사람의 존재와는 전혀 다른 창조주로서 신의 속성을 갖고 있으므로, 사람의 상상이나 개념이나 탐구범주를 넘어선다.
따라서 칼빈은 중세 시대 라틴계 신학자들이 하나님의 본성을 풀이하고자 자주 사용했던 질문인 '하나님은 누구인가?' (quid sit Deus)라는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의문에 답하는 방식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본질과 위엄에 관한 부당한 호기심은 적절한 것이 아니다. 질문을 합당하게 하려면,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qualis sit Deus?)
다시 말하면, 앞에서 규정한 두 가지 기본 전제에 근거하여 볼 때에, 칼빈은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갖는 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활동하신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만 알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중보자가 되어주시고 화목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계시하신 것만을 안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창세 전에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요17:5)로서, 성육신하심으로서 계시된 신성만이 우리가 정확하게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칼빈의 하나님에 대한 지식에서 자주 등장하는 인간의 제한성과 신성에 대한 불가이해성은 다시 한걸음 더 나아가면, 하나님은 자신만이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해 주신 자기 계시와 자기 증거를 떠나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어떻게 자신의 조그만 계산능력을 가지고 인간의 마음대로 무한하신 하나님의 존재를 규정할 수 있는가?"
성경에 계시하신 바에 따라서 하나님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내용은 성부, 성자, 성령으로 자신의 존재를 계시하신 것이다. 믿음의 방식으로 하나님에 대해서 설명하고 보여준 것이 바로 삼위의 인격적인 구분이며, 하나님은 한 분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삼위일체가 아니고서는 다른 방식으로는 하나님을 알려주시지 않으셨기 때문에,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자신을 이름지으시고, 풀이하여주신 계시를 떠나서는 어떤 경우라도 하나님을 바르게 알 수 없다. "삼위일체" (Trinity)는 그저 그렇게 하나님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이 아니다. 이것은 참된 하나님을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세 인격이 하나의 참된 하나님을 이루는 것은 하나님 자신에 대한 유일한 계시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해라는 확고한 개념을 위해서 칼빈이 자주 인용한 두 사람은 이레니우스와 힐러리 (Hilary of Poitiers, 315-368)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이레니우스는 무한하신 성부께서 그의 아들 안에서는 유한하게 되셨다고 쓴 바 있는데, 왜냐하면 그분이 우리의 아주 작은 계산능력 속에 자신을 낮춰주셔서 측량할 수 없는 영광으로 압도하실 수 있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이해되어진다." 성부에 의해서 성자를 아는 지식 가운데서 알려 주신 것을 통해서, 그리고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내려주신 그 계시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말이다 (마 11:27, 고전 12:3, 고전 2:9, 눅 10:22). 특히, 이 말은, "우리는 그의 말씀의 지도를 벗어나서 다른데서 하나님을 찾으려는 생각을 갖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말씀을 지도를 벗어나서는 그분을 생각지도 말아야 한다는 것이며, 바로 그 동일한 말씀을 떠나서는 절대로 말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힐러리는 라틴어로 헬라 교부들의 신학서적을 번역한 걸출한 서방 신학자였는데 이로 인해서 서방교회와 어거스틴의 삼위일체 신학의 형성에 큰 공헌을 남겼다.
하나님이 자신을 우리에게 알려주신 한계 안에서 믿음으로 받게 되는 지식은 "삼위일체"라는 것인데, 이것은 한 분 참되신 하나님은 실재적으로 본래적으로 삼위라는 것이며, 그 외에 다른 것으로는 전혀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신 지식을 떠나서 달리 생각해서는 안되는 바 하나님은 오직 성부, 성자, 성령 세 인격이신 참된 한분이시다. 이를 떠나서는 하나님의 존재의 실재와 인격을 생각할 수 없다.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이 정확하게 증언하는 바를 따라서 우리에게 하나님을 이해하도록 하신 것은, "하나님의 한 존재 안에 세 인격들이 있으며, 성경이 말하는 대로 여러분이 증거하는 것이 공허한 말을 이기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신성을 보여주셨고, 자신의 사랑을 나타내셨다. 이러한 점들이 칼빈의 「기독교강요」에서 나타난 삼위일체 교리의 기본적인 원칙들이요 강조점들이다.

III. 칼빈과 고전적 삼위일체론

칼빈은 니케야 신조에 관한 설명, 초대교부들의 다양한 주장들, 갑바도기아 신학자들과 어거스틴의 차이점등 삼위일체 신학의 다양한 흐름을 아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서방 교회와 헬라 정교회의 두 전통은 서로 다른 기초 위에서 서로 다른 체계를 세웠음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초대교회부터 보이지 않는 성삼위 하나님의 신비로움을 인간이 표현할 때에, "삼위일체"라는 용어와 개념을 사용하여 왔는데, 이런 용어들이 가장 성경의 표현을 잘 드러내는 신학적인 술어인가에 대해서, 그리고 적합하게 사용된 것이냐에 대하여 의문이 제기되어 왔었다. 이점에 대해서도 칼빈은 매우 솔직하게 용어적인 혼란들의 실상을 직시하였다.
칼빈은 초대교회 삼위일체 신학의 형성과정을 거쳐서 사용된 '위격' (hypostasis)라는 용어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차이를 드러내려했던 고전적인 삼위일체론의 용어들을 채택하고 사용하였다. 그리고 '휘포스타시스'의 라틴어 번역이 '수브스탄티아'라는 것도 그대로 초대교회처럼 채용하였다.

III.i. 초대교부들의 삼위일체론

칼빈은 고전적 삼위일체론에 담겨진 종속주의의 잔재를 매우 잘 이해하고 있었고, 그의 「기독교강요」에서 이를 잘 설명하고 있다. 칼빈의 전체적인 관심사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동등성을 극대화하는데 있었다. 그는 어떠한 종속적 암시라도 못마땅하게 여겼고, 삼위일체에 대한 바른 이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첫 번 째로 삼위일체 교리를 발전시킨 신학자는 스토아 철학과 로마 법률의 영항을 입고서 자라난 터툴리안 (Tertullian, 196-212에 활약함) 이었다. 그는 라틴어 '수브스탄티아' (substantia)라는 용어를 헬라어 '휘포스타시스' (hypostatis)에 해당한다고 확신하였는데, 스토아적인 의미에서 보면, '통합적 실재' (corporeal reality)라는 뜻이었다. 이 용어를 가지고 최초로 삼위일체 교리를 다루었던 터툴리안은 하나님의 단일성을 설명하고자 했으나 분명하게 삼위일체 교리를 설명할 수는 없었다.
터툴리안은 하나님의 삼위성을 표현하기 위해서 또 다른 법률용어인 '페르소나' (persona)를 사용했는데, 원래 이 단어의 뜻은 오늘날의 인격이라는 뜻보다는 'mask' (가면)이라는 뜻으로 연극에서 서로 다른 얼굴을 하고서 출연할 때에 쓰였다고 한다. 후에 이 용어는 점차 뜻이 확대 되어서 '개인적으로 구별된 실재' (individually distinct entity)를 의미하게 되었다. 아직 충분하게 위격과 본질을 구분하여 설명할 수 없었던 터툴리안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각자의 특수한 역할, 즉 극중에서 역할이 서로 다른 인물과 같이, 독립적인 권능을 수행한다고 풀이하였다. 칼빈은 헬라어 '프로소폰' (prosopon)이라는 단어를 라틴어로 '페르소나' (persona)라고 번역하여 사용되는 것도 받아들였다.
고전적인 삼위일체론의 대미를 장식하는 것은 알렉산드리아의 장로 아리우스 (250-336)와 아타나시우스(296-373)가 격돌한 니케야 종교회의였다. 안디옥 학파 (300-484까지 활동)의 아리우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입은 바 있었다. 히브리서 1장 3절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본체라고 설명되었으므로, 삼위일체 신학에서 '동일본질'이라는 대목이 논쟁의 대상으로 등장하였었다.
아리우스는 하나의 존재에서 다른 위격들의 구분을 용납할 수 없었고, 결국 성자는 피조물이라는 이해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반면에 아타나시우스는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를 구원할 자이시면, 그는 하나님과 동일한 본질을 소유한 하나님이라고 강조하였다. 니케야 종교회의 (325년 제 1차회의)는 성자가 성부와 동일본질임을 선언했다.
세 번째 고전적 삼위일체론의 전개는 갑바도기아의 교부들에 의해서 전개되었다. 가이사랴의 바질 (329-379), 그의 친구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 (Gregory of Nazianzus, 329-390), 바질의 동생인 닛사의 그레고리 (Gregory of Nyssa, 330-395)등은 삼위일체 신학의 이론적 기초를 제시하였다. 이들의 사상은 콘스탄티노플 종교회의 (381) 아폴리나리우스의 이단설을 척결하고, 성령의 신성을 확고히 정립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동방에서 발전된 이런 내용들은 포이티어스의 힐라리 (Hilary of Poitiers, 315-368)에 의해서 라틴어로 소개되어서, 어거스틴의 서방신학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갑바도기아 교부들은 유출과정에서 셋으로 확대되어지는 식으로 생각하지 않고, 삼위일체는 공히 영원 속에서 존재하고 있음에 주목하였다. 하나님의 '우시아'는 하나이며, 삼위는 휘포스타세스에서 발견된다고 보았다. 서로 달리 보이는 외적인 위격들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원인관계에서 그 발생과 기원을 중심으로 설명하고자 했다. 그래서 성자는 성부로부터 '출생'(begotten)하고, 성령은 성부로부터 '발출' (proceeds) 한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요1:14, 15:26). 그리고 이런 관계에 대한 표현들을 곧바로 각 위격의 속성들로 바꾸어버렸다. 그래서 성부는 무출생성 (unbegotten)을 그 존재의 속성으로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성자는 성부로부터 영원출생 하는데 이것이 성부와 성자와의 관계를 결정지었다고 보았다.

성부는 무출생적이다 (unbegotten, agenn tos).
성자는 성부로부터 출생했다 (begotten, genn tos).
성령은 성부로부터 발출했다 (proceeds, ekporeuetai).

하나님의 '우시아'가 하나임을 설명하기 위해서 세 위격은 하나의 신적인 공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설명을 첨가하였다. 위격들의 상호점유, 혹은 상호교류, 상호순환으로 번역되는데, '페리코레시스' (perichoresis)라는 헬라어를 사용하였다. 이를 라틴어로 번역한 것이 '써큐민쎄시오' (circuminsessio)로서, 삼위일체의 각위가 구별되더라도 신적 본질의 완전한 현시임을 이해시키고자 노력하였다. 세 위격은 모두 다 전능하며, 전지하고, 영원하다.
하지만, 갑바도기아 교부들은 신적인 '우시아' (본질)이 '휘포스타시스' (위격)들보다 훨씬 더 근본적이라고 간주하는 잠재적인 경향을 드러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갑바도기아 교부들이 각 휘포스타시스의 신성을 극대화하는 수단으로 상호점유설을 주장했지만, 역시 신적인 본질을 중시하는 존재론적 삼위일체론을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성부의 위격 안에 신적인 '우시아'를 위격화 시킴으로서 상호 점유론에서 주장했던 위격들의 동등성을 상대적으로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오리겐을 이미 오래 전에 배척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부우위론으로 해석될 요소들은 여전히 바실의 글에 남아있으며, 그 후 헬라 정교회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칼빈은 이러한 입장의 모호한 부분들을 더욱 선명하게 주장하였으니, 성자는 자유의사로 종의 형체를 입고 이 땅에 오셨기 때문이다. 물론 성자는 성부의 보냄을 입고 오셨고, 보냄을 받았다.
성경적인 증거와 용어사용에 주의를 기울였다 하더라도 '출생'과 '발출'이라는 단어를 지나치게 추상화하는 경향은 결코 환영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관계'로부터 '속성'이 나온다면, 성부의 무출생성에서 과연 어떤 속성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삼위가 모두 영원하시는 속성을 공유하고 있는데, 어떻게 성부의 무출생성만을 주장할 수 있는가? 그리스도는 영원하신 분이요, 알파와 오메가이시다. 성자와 성령의 위격도 똑같이 무기원적이다. 낳으심과 나오심은 기원에 대한 기술이 아니라 '관계'에 대한 묘사인 것이다.
갑바도기아 신학자들의 삼위일체론은 아직 성경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하던 초대교회 형성기의 혼란을 수습하는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었으나, 후대의 학자들에게 해결할 과제를 남겨놓는 미완성의 패러다임이었다. 휘포스타시스들의 상호점유를 인정하면서 동등성을 강조하는 측면과 신성의 원천으로서 성부 수위성을 주장하는 그들의 주장 사이에는 여전히 미해결의 장이 남아있다.
칼빈은 초대교회 교부들이 채택하고 주장한 용어들과 그 신학이 지닌 약점과 오류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어떤 한가지만을 집착하면 그것은 곧바로 온전한 균형을 놓쳐버리게 되어서, 삼위일체의 경우에 핵심적인 내용을 왜곡시키게된다는 힐라리의 지적을 칼빈은 아주 잘 기억하고 있었다.

III.ii. 중세의 삼위일체론

중세의 삼위일체 신학은 고전적 유신논증이라는 형태를 취하고 발전된 사변적 삼위일체론과 신비주의자들의 왜곡된 신론으로 압축될 수 있다.
사변적 이성을 중시하는 경향을 처음 들여온 것은 안셀름이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으로 형성된 스콜라주의 신학에서 정점에 달했으며, 현재까지도 일부에서는 주장되고 있다. 은혜와 자연의 영역을 대비시킨 토마스 아퀴나스 (1226-1274)는 감히 하나님에 대한 물질적 존재증명이라는 연구를 탄생시켰다. 아퀴나스의 신학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이성을 서로 혼합하여 모든 진리를 논리적으로 입증하고자 노력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설명할 수 없는 실재는 은혜의 영역으로 교회가 베푸는 성례전을 통해서 전달된다고 보았다. 또 하나는 중세 말기에 이르러서 유명론이 대두되어서 진리의 개체화에 치중하게 되었다.
아퀴나스의 신론은, 존재의 유비를 통해서 이 세상이 존재들보다도 더 고차원적인 존재가 있다는 논증을 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서의 '최초의 원인'을 신존재 증명으로 채용하되,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연결고리가 있다는 점을 중시하고 단서들을 사용해서 존재증명을 발전시킨 것이다.
아퀴나스는 갑바도기아 교부들과 마찬가지로, 출생(generation)과 발출(procession)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되 내용을 달리 규정하였다. 출생은 성부가 성자를 생산하는 것처럼 자신과 같은 것을 생산하는 것이요, 발출은 신적의지의 충동이라고 정의했다. 특히 삼위사이의 관계를 '아버지되심'(paternity), '아들됨' (filiation), '발출' (procession) 이라는 용어로 풀이하고, 결국 삼위 사이에 존속적 관계 (subsistent relation)를 위격과 동일시했다. 아퀴나스의 삼위일체론은 성경적 사고를 벗어나서 철저히 철학적으로 변질했고, 추상화되고 말았다. 비철학적인 용어였던 '위격'을 약화시켜서, 위격이란 본성의 한 측면, 한 양상으로서 본성 안에 존재하는 독특한 것으로 취급하고 말았다.
따라서 중세신학에서도 역시 성부 우위설을 피할 수 없었고, 성자와 성령은 신성의 근거인 성부에 비교해보면 모든 면에서 동등하신 하나님으로 취급되지 못했다.
아퀴나스에 의해서 정립된 삼위일체 신학은 '한 본성'에 세 위격을 가진 하나님이었다. 일반적으로 고전적인 삼위일체론이나 중세 시대의 것이나 비슷하게 '하나님의 본성'에 강조를 두었다. 그래서 위격들의 차이는 본성에 비해서 부수적인 것으로 생각하였다. 여기에는 신비주의적인 전통과도 무관하지 않는데, 세상에 대한 거부와 포기로 이끌어가는 자연을 매개체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자들은 토마스주의자들이 만들어낸 이중 구조 (은총과 자연)라는 학문방법론보다는 그 이전의 고전적인 스콜라주의인 피터 롬바르드 (1095-1160)의 「명제집」(Sentences)을 읽고 교육을 받았었다. 점차 인문주의자들과 접촉하면서, 낡고 시대에 뒤떨어진 아퀴나스의 글이나 신비주의자들에게서 멀리 벗어나고자 노력하면서 성경연구에 집중하였다.
중세 신학은 교회의 전통 안에서 삼위일체론은 매우 왜곡시켜 버렸다. 존재론적 삼위일체론에 치중한 나머지 하나님의 본질과 속성에 대한 논의에만 집중하면서도 각 삼위를 공정하게 다루지 않았다. 성경을 넘어서서 미신적인 형상이나 마귀적인 성상을 만들어놓고 부적당한 논의를 계속하고 있었다. 따라서 칼빈은 중세 스콜라신학자들이 구분해 놓은 사변적인 항목들을 열거하지 않았다.
또한 중세 신비주의자들처럼 하나님의 본성을 초월적인 연합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중세 신비주의자들이 하나님의 본성을 미지의 구름 속에 감추어버렸다. 끌레르보의 버나드, 윌리엄, 구아릭 등은 인간은 자신을 초월하는 실재의 세계에 들어가기를 동경하면서, 영혼은 내적인 깊이에 이르면 초월하신 분을 경험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신비주의자들과는 달리, 종교개혁자들은 황홀경적인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영혼이 초월적으로 연합하는 것을 가르치지 않았다. 종교개혁자들은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생활을 위해서는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만으로 충분하다고 확신하였다.

IV. 반삼위일체론자들과의 논쟁

칼빈의 삼위일체론은 피를 말리는 이단들과의 논쟁을 통해서 더욱 견고하게 발전되고 형성되며, 조직되었다. 따라서 칼빈의 삼위일체론 이해는 격렬한 토론 부분들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다시 말하면, 칼빈의 삼위일체 신학이 사변적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목회현장의 문제였던 것이다. 그리고 삼위일체 교리는 성경에서 가르친 대로 하나님을 믿는 진실된 교회임을 입증하는 핵심적인 교리이었기 때문에 그 어떤 논쟁의 주제보다도 진지하게 대응하였다. 성부와 성자 사이에 하나됨을 강조하였으므로 양태론적 유니테리언으로 공격을 받았는가 하면, 일부 유니테리언들로부터는 삼신론자로 오해를 받기도 했다.
칼빈의 삼위일체론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끈임없는 논쟁 속에서 자신의 입장을 견고히 세워나갔다는 점이다. 그가 제네바 종교개혁자로 활약하기 시작한 초기부터 그의 생애의 마지막까지 지속적으로 그를 위협한 사람들은 이단적인 삼위일체론자들이었다.

IV.i. 제세례파에 대한 논평

칼빈이 처음 신학적인 비평논문을 쓴 대상은 16세기에 널리 퍼져나간 재세례파들에대한 것인바, 「영혼의 잠에 관하여」(Psychopannychia)라는 글이다. 칼빈은 한 친구로부터 재세례파의 한 그룹에서 영혼의 불멸성을 부정하므로 이것을 논박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펜을 들었다. 동시대의 성도들이 가진 문제점 즉 인간 영혼은 사후에 잠을 자고 있다거나, 영혼의 멸절을 맞이한다는 등 형이상학적인 불안감과 절망감에 빠져들지 않도록 바른 지침을 주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삼위일체와 관련해서 재세례파들이 가진 하나님에 대한 곡해를 밝히 드러내고자 칼빈은 그의 초기 저술에서 이미 논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칼빈에게 있어서 삼위일체론의 첫 출발점이자 강조점은 하나님의 "인격" (person) 이라는 개념이며, 이를 왜곡한 재세례파에 대해서 통렬하게 비판하였다. 하나님의 인격이라는 주제는 중세 신학에서 논란이 많았는데, 보에티우스나 토마스 아퀴나스는 인격을 이성적 본성 안에 있는 독특하게 구별되는 본질로 생각하였다.
이와는 다른 방향에서 하나님의 인격성 (personhood)이란 상호교류할 수 없는 속성으로 생각하면서 (immutability), 본질로서 실재하기보다는 영적이며 보이지 않는 존재의 질서 (order of existence)라고 가르치는 부류가 있었다. 12세기의 성 빅터의 리챠드와 13세기 둔스 스코투스 등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계시된 하나님은 신성의 차원에 속하기 때문에 결코 상호 교통할 수도 없고, 함께 나눌 수도 없다고 보았다. 하나님 안에도 세 차원이 있는데, 그리스도의 계시가 그 핵심이라고 하였다. 계시된 로고스의 아버지는 아들도 아니요, 성령도 아니며, 성부는 오직 성자의 아들됨이라는 계시를 통해서, 그리고 성령의 나오심을 통해서 비쳐질 뿐이다. 이것은 중세 말기의 신비적인 명상에서 비롯된 것들이었다.
칼빈은 특히 제세례파들이 영혼의 불멸성에 대해서 이해를 잘못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인간의 영혼에 내주 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임재의 차원을 강조하였다.

IV.i. 삐에르 까롤리의 고소와 칼빈의 논쟁

소르본느 박사 출신으로 스위스 개신교 진영에 가담한 삐에르 까롤리 (Pierre Caroli, 영어로는 Peter)는 1536년 봄 뇌사뗄의 개혁교회 담임목사로 취임하여 여러 종교개혁자들과 사귐을 가진 후, 그 해 11월에는 로잔의 수석목사로 부임하였다. 이 도시에는 칼빈이 일생동안 가장 절친하게 우정을 나눈 삐에르 비레가 종교 개혁진영의 지도자로 있었다. 그런데 까롤리가 로마 가톨릭의 옛 습관을 따라서 죽은 자를 위한 기도를 가르치고 시행한다는 문제가 발생하였다.
까롤리는 자신이 죽은 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온 것은 로마 가톨릭의 오류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아무런 반론을 제시하지 못하였다. 점차 수세에 몰리자 자신의 로마 가톨릭적인 잔재를 변호하기 위해서 칼빈과 파렐 등을 터무니없는 말로 공격하는 야비한 수법을 폈다. 1537년 2월 17일 첫 번 째 토론장에서 도리어 칼빈의 신학사상이 아리우스주의라고 공격하였다. 그리고 아다나시우스 신경에 절대적으로 복종한다는 서명을 해야만 삼위일체에 대해서 정통신앙을 가진 개혁진영의 목사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칼빈은 한 개인이나 한 종교회의에서 결정한 어떤 신경이나 신앙고백이라도 성경을 능가할 수 없으므로 어떤 특정한 문서에 서명할 수 없다고 맞섰다. 사실 까롤리가 이의를 제기한 것은 하나님 안에서 인격들 사이의 구분과 하나님의 본성에 관한 것이었는데, 그가 인용한 근거문서들은 칼빈이 작성했다는 확증도 전혀 없는 것들이었다.
칼빈이 아리우스주의자라는 비난은 전혀 터무니없는 것이었지만, 한번 퍼져나간 불명예스러운 호칭은 칼빈의 초기 사역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히고 말았다. 니케야 종교회의에서 정죄된 아리우스를 따르는 자라는 오명을 입게 됨으로써 칼빈이 당한 치명적인 상처는 이루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종교개혁 초기에 유럽 각지역에서 막 피어오르던 칼빈의 명성에 결정적인 오점을 남기게 되었고, 이를 불식시키는데 오랜 세월이 흘러야 했다. 칼빈이 제네바에서 초기 사역에 실패하게 되어 1538년 봄에 쫒겨 나게 되는 것도 이런 불명예스러운 인신공격이 널리 펴져 있음을 부인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까롤리와의 논쟁은 칼빈의 강력한 요청으로 몇 차례 더 지속되었다. 2월 28일, 3월 1일 연이은 회의에서 칼빈은 이미 발표한 제네바 요리문답 31항과 33항에서 삼위일체 교리를 천명하였다고 반박하였다. 칼빈은 「기독교강요」초판 제 2장 신앙에 관한 풀이에서 이미 삼위일체를 믿는 신앙을 고백한 바 있었으나, 까롤리는 의도적으로 이런 문서들에 담긴 칼빈의 증언을 외면하였던 것이다. 까롤리는 새로 발표된 신앙고백서나 요리문답들은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초대 교회에 만들어진 세 가지 신앙고백서들 (사도신경, 니케야 신경, 아다나시우스 신경)에만 서명을 하라고 주장하였다.
두 번 째 논쟁에서 칼빈은 자신의 입장이 왜 아리우스주의자 아닌가를 밝히는데 주력하였다.

나는 당신이 어떻게 내가 아리우스를 따르는 이단이라고 알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소이다. 나는 내가 이미 공개적으로 표명한 증언들을
살펴보라고 권하는 바이며, 당신은 그 어느 누구보다도 열심히 그리스도의
신성을 확고히 주장해온 나의 입장을 아무런 어려움없이 발견하게 될 것이라
확신하는 바입니다. 나의 저술들은 모든 사람이 손쉽게 볼 수 있는 것이며,
모든 정통교회들이 나의 신앙과 내 견해에 동의하리라 확신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술이나 마시고 팁을 주는 일 외에 과연 어떤 글이라도 남긴게
있소이까? 당신이 관련된 것이란 고작 싸움하는 일 뿐이요.
도대체 무슨 근거로 나를 아리우스주의자라고 고소하는 것이요?
나는 그러한 정당치 못한 의심을 나에게 던지는 것을 결코 묵과하지 않을 것이며
나에게 가해지는 비난을 깨끗이 해소시킬 것 입니다.

칼빈은 이 논쟁이 끝난 후 (1537년 8월) 쮜리히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왜 자신이 아타나시우스 신경에 서명하지 않았는지 밝히고 있다. 그는 이 문서가 비신앙적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어떤 한 개인이 만든 신앙고백이나 문서에 서명을 강요하는 것은 한 개인의 신앙을 강압적으로 무시하는 폭거라고 반박하였다. 더구나 로마 가톨릭은 그러한 행위를 교회의 이름으로 자행하고 있는데, 이것은 성경 자체의 권위를 짓밟는 것이라고 항변하였다.
마지막으로, 5월 31일 파렐은 결정적으로 까롤리의 부도덕을 증언하였다. 칼빈의 강력한 발언이 있은 후, 칼빈의 입장은 정통개혁주의 신학임을 천명하게 되었고, 까롤리는 설교를 금지 당한 후 6월 6일 다시 출두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나타나지 않고 몰래 도시를 빠져나가서 로마 가톨릭으로 되돌아가 버렸다. 그 후에 다시 그를 모르는 개신교 교회에 일시적으로 가담하였다가, 또 다시 로마 카톨릭으로 회귀하는 등 일생 동안 세 차례의 반전을 거듭하였다. 최종적으로 1543년 멧츠의 로마 가톨릭 설교자로 복귀하고 말았다.
1545년 칼빈은 「삐에르 까롤리의 중상모략에 대한 반론」(Pro Farello et collegis eius adverseus Petri, Caroli calumnias)을 저술하여 다시금 아리우스주의자드라는 불신과 오해를 벗어나고자 노력하였다. 초대 교부들의 문서를 철저히 섭렵한 칼빈이 아리우스의 어떠한 신성도 그리스도에게 존재하지 않았고, 그리스도는 오직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사상을 과연 칼빈이 받아들였다고 상상조차 할 수 있을 것인가?

IV.ii. 세르베투스와의 대결

성경적 삼위일체론을 수호하려는 칼빈과 종교개혁자들은 유티테리안들이나 삼신론자들을 그저 신학적인 이견을 가진 사람들로 그저 보아 넘길 수 없었다. 이단적인 가르침은 어느 시대에나 그저 묵과할 수 없는 절박한 문제다. 칼빈은 삼위일체 이해를 잘못한 자들이 종속주의와 양태론적 단일신론을 주장하고 있음을 매우 경계하고 이를 바로 잡으려 노력하였다. 특히 칼빈은 사벨리우스주의자이며, 아리우스파로서 제네바 종교개혁에 매우 어려운 삼위일체 논쟁을 야기시킨 세르베투스 (1511-1553)를 처벌해야하는 난제를 떠맡게 되었다.
세르베투스는 스페인 출신으로 처음에는 의학을 공부하다가 신학으로 방향을 전환하였다. 오랫동안 스페인에는 모슬렘이 점령하고 있었는데, 그 영향으로 세르베투스는 사벨리우스주의를 받아들이게 되었던 것 같다. 더구나 세르베투스는, 칼빈이 날카롭게 지적한 바와 같이, 모든 이단설을 종합하여 자신이 새로운 체계를 세워놓은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는 「삼위일체에 대한 오류들에 관하여」(De Trinitatis Erroribus, 1531)와 「삼위일체에 관한 두권의 대화록」(Dialogorum de Trinitate libri duo, 1532)를 펴냈는데, 모두 다 사벨리우스주의적인 양태론적 단일신론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칼빈은 나름대로 헬라 정교회의 삼위일체론과 서방의 삼위일체 모델을 종합하려고 시도하였는데, 세르베투스는 정반대로 이단들만을 종합하여 중대한 오류를 범하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마니교도들의 조잡한 신론이 혼합되어 있었다. 결국, 비엔나에서 사형언도를 받았으나, 감수에게 뇌물을 주고 도망쳐 나온 세르베투스를 지지하는 일부 반대파들이 의회에 포진하고 있어서 칼빈 편을 들어준다는 확고한 보장이 없었던 어려운 시기였다.
칼빈은 지금까지 세르베투스의 이단적인 삼위일체론에 대해서 단호히 맞서서 그가 죽도록 했다는 오명을 안고 있으며, 이로 인해서 그의 모든 인간성이 매도당하고 매우 냉혹한 인간으로 오해를 받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세르베투스가 주장한 사상들이 바로 중세 말기에 내려온 이단적인 사상에 젖어서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을 조롱하고, 하나님의 아들 성자에 대한 모독죄'로 고소를 당하였다. 가히 하나님에 대해서 천재적인 새로운 교리를 자신이 발표하겠다는 야망을 품고있던 세르베투스는 사벨리우스와 아리우스의 종속설을 교묘히 혼합시킨 사상을 유포하였다.
칼빈은 삼위일체 위격들 중에서 한 위격을 다른 위격보다 더 높이는 것은 안된다고 생각하였다. 이것이 세르베투스의 문제를 다룰 때에 칼빈이 가장 염두에 둔 문제점이었다. 세르베투스는 "하나님의 본질 안에 세 위격이 존재한다고 말할 때마다 삼중적인 신을 도입하는 것이며, 이것이 하나님의 단일성에 일치되지 않는 한 이 삼위는 공상적인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더구나 세르베투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는 아리우스주의자였다.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에 의해 성자로 임명되었다는 사실이 함축하는 바 이외에는 그 어떠한 신성도 그리스도에게 존재하지 않았다고 가르쳤던 것이다. 따라서 칼빈은 강도높게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는 점을 역설하면서, 1559년 「기독교 강요」최종판에서 신성과 인성을 포기하는 세르베투스의 기독론을 비판하고, '신성과 인성의 완벽한 통일'을 주장했다.

그는 말씀의 영원한 위격을 아무 것도 아니라고 간주해버리고, 다윗의 아들을
[즉, 인간이요, 역사적인 사람이요, 예언을 전달하는 유대인] 우리로부터 낙아채
버린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의 구세주로서 약속된 분이다... 만일 육체가 신성만을
가진 것이라면, 그곳은 신성의 성소가 되지 못할 것이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
으로 낳으신 분으로, 우리의 유일한 구속주가 되신 분만이 육체를 따라서 참된 인 간의 몸으로 지음을 받았다.

그렇다고 해서, 칼빈이 항상 정통 삼위일체론을 거스리는 모든 이단자들만을 쫓아다니면서 정죄하는 일에만 몰두한 것이 아니었다. 당대에 여러 도시에서 심각한 물의를 일으키고, 비엔나에서 투옥되어 있던 중 도망을 다니던 세르베투스를 처형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칼빈이 모든 유니테리언들을 다 처벌한 것이 아니다. 세르베투스가 극도로 위험하게 주장한 내용은 "신의 본질 안에 세 위격이 존재한다고 말할 때마다 삼중적인 신을 도입하는 것이며, 이것이 하나님의 단일성에 일치되지 않는 한, 이 삼위는 공상적인 것"이라고 주장한 대목이다. 더구나 성부로부터 태어난 자이기 때문에 성자의 신성을 거부하는 세르베투스의 가르침은 성경의 모든 설명보다도 아리우스주의자들의 이성적인 설명을 더 신봉한 자들의 극치라고 할 것이다. 칼빈은 「기독교강요」제 13장 23항-29항에서 세르베투스와 사벨리우스주의자들에 대한 반격을 자상하게 첨가하였다.

IV.iii. 유니테리언들과의 논쟁

칼빈은 당대에 가장 큰 문제 거리로 등장한 이탈리아의 반삼위일체론자들 문제로 곤욕을 치루었다. 이들 중 일부는 제네바에 있던 회중교회와 연계를 맺고 있어서 칼빈의 입장에서는 그냥 지나갈 수 없었다. 칼빈이 오직 세르베투스와 같은 단일신론자들만을 정죄한 것일까? 세르베투스 사건이 끝난 후, 1558년 5월 18일부터 유니테리안파의 불순한 영향을 차단하기 위해서 삼위일체 교리를 고백하는 사람만이 교회의 회원이 될 수 있도록 조건화하였다. 지속적으로 제네바에 유입해 들어오는 많은 난민들 중에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불순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 중에는 성자의 본질이 성부와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오랫동안 성자의 위격을 격하시켜 온 로마 가톨릭 교회에 습관적으로 젖어서 성부 수위설에 이성적으로 동조하는 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유니테리언들은 아직 확고하게 신앙이 정립되지 못했던 개혁파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도 쉽게 동조자를 얻고 있었다.
1557년 이탈리아 지방에 널리 퍼져있던 유니테리안들의 사상에 입각하여, 이단자들은 칼빈이 세 마귀들을 예배하고 있다고 비난하였다. 이들 중에서 네 사람의 '비전문가들'은 주목할 만한 인물들이다. 삐드몽의 의사로 산부인과와 여성병 전문가였던 죠지오 비안드라타 (Giorgio Biandrata 혹은 Blandrata)는 삼위일체를 거부한 유니테리안으로서 제네바에서 쫒겨 난 후 폴란드 지역에서 세를 형성하였다. 적어도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신성을 갖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점에 있어서는 세르베투스의 입장에 충실한 제자였다. 죠반니 파올로 알치아티 (Giovanni Paolo Alciati)도 역시 칼빈을 삼신론자라고 공박하다가 제네바에서 추방되었다. 그리발디 (Matthias Gribaldi)는 당대에 매우 잘 알려진 법학자로 세르베투스의 저술에 신뢰를 더 두는 인물이었다. 학교 교사였던 죠반니 발랑띤 장띨 (Giovanni Valentine Gentile)도 역시 칼빈과 충동하였다. 이들은 일반적으로는 지식이있고 뛰어난 인물들이었지만, 신학적인 훈련을 전혀 받지 않아서, '이성적'이요, '논리적'인 이해를 추구하고 있었다.
특히, 쟝띨의 삼신론은 오히려 칼빈으로 하여금 양쪽의 극단적인 이단들 (삼신론과 양태론적 단일신론)의 문제점을 공정하게 비판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칼빈은 삼위일체를 부정하고 삼신론을 주장하던 장띨에 대해서 설득과 권고를 겸한 논문을 펴서 그 시정을 권고하였다. 여기서도 칼빈은 성자가 '아우토테오스' (스스로 하나님)임을 강조하고 본질을 셋으로, 즉 세 위격과 세 본질로 증식시키는 일을 금하도록 타일렀다. 1561년 칼빈은 「발랑띤 장띨의 불경건에 대한 해설」(Impietas Valentini Gentilis detecta)를 저술하였다.

V. 칼빈의 삼위일체론의 중요한 독특성

V.i. 종교개혁과 새로운 삼위일체 패러다임

16세기 유럽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신앙이 원인이 되어서 세계사의 대변혁이 일어난 특별한 시대였다. 이 때에 하나님은 서양역사에서 타락한 교회사를 수정하도록 휴머니즘의 후예들로 성장한 탁월한 학자들을 배출하여 성경연구에 몰두하게 하였다. 이 때에 종교개혁자들은 '성경이 가라는 데까지만 간다'는 성경중심의 신학을 발전시켰다. 하나님에 대한 연구도 마찬가지로 중세 전통을 무조건 답습하지 않았다. 성경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본질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지 않는 한, 그 한계 내에서 신학을 세워야 하고, 사변적인 탐구는 피해야 하는 것이다. 칼빈의 주장은 이처럼 종교개혁자들이 주장하는 크나큰 변화를 종합적으로 반영하고 주도하였던 것이다.
건전하고 견고한 종교개혁자들의 신학은 역시 삼위일체론에서도 드러났다. 16세기 유럽 종교개혁자들이 남겨준 위대한 신앙의 유산들은 주로 칭의론, 예정과 선택론, 구원의 확신 등으로 압축되고 있는데, 이런 주제들은 모두 다 하나님에 대한 삼위일체의 배경에서만 풀이되어 나올 수 있었다. 하나님의 대한 이해를 바르게 회복시키는 일이 없었다면, 종교개혁은 형태만을 바꾼 또 다른 기독교 유사 종파로 전락했을지도 모른다. 중세 교회의 악습에 대해서 바르게 성경적인 교회론과 구원론을 회복하려했던 종교개혁자들은 먼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하게 됨으로써 타락한 로마 가톨릭 교회와는 더 이상 영적인 교제를 할 없다고 판단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본질은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는 신비이다. 아무리 인격적인 용어를 동원한다하더라도 정확히 묘사할 수 없다. 그래서 칼빈은 하나님의 본질에 대해서 말하기를 아주 싫어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오직 위격들을 통해서 안다고 강조하였다. 이점에서 칼빈은 중세 스콜라주의에서 벗어나서 성경으로 향하고 있었다고 보여진다. 하나님은 본질상 알려질 수 없고, 오직 그의 위격들을 통해서 알려질 수 있다고 말하였다. 우리가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인격적 존재로 표현하였다.

하나님의 형상은 타락하기 전 아담이 지녔던 인간 본성의 완전한 탁월함이었다.
그러나 그가 타락의 상태로 떨어졌을 때에,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되는 손상을
이었다. 따라서 비록 우리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파괴되어졌고, 심각하게 오염되어서 잔해만 불순하게 남아있다. .... 그것이 오늘날 선택된 자들에게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는 한 부분적으로
나타나지만 하늘에서 온전한 영광에 도달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과 알 수 없는 것을 칼빈은 구분한 것이다. 여기서 알 수 있다는 것도 오직 인격적인 관계라는 상황에서만 가능하게 된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과학자가 실험으로 입증하듯이 하나님에 대해서 객관적인 지식을 세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하나님의 알 수 없는 측면인 존재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있었다. 위격적인 표현에만 치중하다 보면, 인간이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존재 전체적인 측면을 소홀히 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신성과 권능을 평가절하 하거나 등한시하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세심하게 노력하였다.
칼빈의 삼위일체론이 집중된 「기독교 강요」(1559년 최종판) 제 1권 13장을 보면, 전통적인 용어의 정의 (2-6항)에 이어서, 성자의 영원한 신성 (7-13항), 성령의 영원한 신성 (14-15항)을 따로 설정하였고, 다시 한번 삼위일체의 구분과 일치의 문제를 다루고 난 후 (16-20항), 반삼위일체 이단들을 논박하였다 (21-29항).
칼빈은 새로운 삼위일체론의 패러다임을 형성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본질을 신학의 핵심으로 생각하지도 않았고 이를 중요시 하지도 않았다. 중세 서방신학자 보에티우스와 토마스 아퀴나스가 추구했던 신적인 각각의 본질 (the conception of individua in the Trinity)에 대한 연구보다는 하나님 안에 영원한 본질의 관계 (eternal subsistent relations in God) 에 강조점이 있음도 드러났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신이 본질에 대해서 자세히 언급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사실에 근거해서 하나님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이나 환상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본질에 대한 논의를 하게 되므로 성경의 근거를 훨신 뛰어넘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의 관심의 눈길과 우리의 예배를 그분의 본질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에 맞추기를 원하지 않으셨음을 발견하였다.

V.ii. 구원론적인 관점

칼빈이 설명하는 삼위일체 교리는 세 인격으로 역사하시는 한 분 하나님, 혹은 한 분 안에 존재하는 세 인격들인데, 먼저 하나님이 인격적으로 구분되어져서 표현되어짐에 대해서 주목하고 있다. 하나님을 정확하게 아는 것은 먼저 세 인격들을 아는 것인데, 이는 하나님 아버지와 구별되는 성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계시되었고, 성령도 그의 신성을 드러내셨기 때문이다 (마28:19).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은 삼위일체의 이해에서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면 인격이란 무엇인가? 칼빈이 인격에 대해서 매우 날카롭게 풀이한 설명을 들어보면,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사벨리우스와 같은 양태론의 여지는 전혀 성립의 근거를 찾지 못할 것이다.

나는 인격(Person) 이라는 말을 하나님의 존재 (God's Being) 안에 있는 실재 (혹은 본질, subsistence or essence)라고 부르는데, 다른 인격에 연관을 갖고 계시 면서, 서로 공유할 수 없는 성질에 (incommunicable property) 의해서 구별되어진다. 우리는 "실재"(essence, 혹은 본질) 라는 용어를 가지고서, "존재" (being)와 구별되 는 어떤 것으로 이해되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말씀이 단순히 하나님이지만, 그분이 갖고 것이란 어떤 것도 없다고 한다면, 요한이 그가 하나님과 항상 함께 있었다 (요1:1)고 말하는 것은 합당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 뒤에 그는 그 말씀이 하나 님이라고 추가했는데, 그는 그 말씀을 한 분 하나님이라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 안에 머물러있지 아니하고서는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그로 인해서 본질이 있는 것이기에, 분리할 수 없는 연합된 존재로 함께 묶여있고, 그 본질로부터 따로 떼어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표식 으로 그를 구별하는 것이다. 지금 나는 다른 인격들과 관련을 맺고 있는, 세 실체의 각각에 대해서 말하고자 하는데, 그 고유의 독특한 성격으로 구별되어진다. 이 관계 는 특별하게 표현되는 바, 하나님에 대해서 매우 단순하고도 불명확한 언급이 주어 졌으니, 아버지와는 다른 이름인 아들과 성령이라는 이름들이 사용되어져 있다.
하지만, 동시에,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있는 것으로 생각되어지면서, 서로 다른
각각의 독특한 성격이 있는 것이다. 세 번 째로, 각각에 속하여 있는 것은 비공유 적이라고 주장하는 바, 아버지에게 속한 것은 아들에게 적용할 수도 없고, 전이되어 질수 도 없을 만큼 구별되어지는 것이다.

칼빈은 서로 연관을 가진 각각의 독특한 인격을 설명하기 위해서 터툴리안이 주장했던 한 분 하나님의 어떤 구별이나 경륜이 다르다는 표현에 대해서도 용납하였다. 또한 아타나시우스가 주장한 성자가 성부와 항상 본질적으로 함께 있다는 주장을 따르면서도, 성육신한 성자의 존재와 성부의 존재가 하나라는 것과 함께 하나님 안에서의 세 구별된 인격을 풀이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로 성육신하였는데, 이 존재는 그냥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공허한 소리가 아니라, 영원하고도 본질적인 아버지의 말씀이며, 태초부터 계시되 정작 시작은 없었던 분이요, 아버지와 함께 계시면서 창조부터 함께 하신 분이다. 그분은 실체를 가진 말씀으로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서 구별되어졌다. 그분은 항상 한분 하나님으로 동일하게 머물러 계시면서, 아버지로부터 낳으신 분이시다. 칼빈은 심지어 구약의 '여호와'라는 이름에서도 이미 그리스도에게 영광을 돌리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예배가 표현되어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하나님은 한 분이라는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성부와 성자의 구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칼빈은 성부와 성자 사이의 권능과 역할에서 항상 한 분임을 강조한다. 좀더 범위를 확대하여 말하자면, 삼위일체되시는 하나님은 궁극적으로 한 분이시므로, 먼저 철저하게 각 위격을 알고 난 후에 하나되심을 제대로 이해하여야만 그 하나님이 한분이심을 온전히 알게 된다는 것이다.
각 위격을 풀이하는 칼빈의 핵심은 성자의 참된 존재, 영원하심, 신성을 증명하는데 집중되고 있음은 확연하지만, 그러나 필자는 칼 바르트의 주장처럼 칼빈의 신학이 '기독론 중심'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삼위일체에서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다루는 칼빈의 관점은 구원론적이면서 존재론적 (soteriological and ontological approach)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과 치유 사역은 창조의 시작부터 성부가 지속적으로 해온 인류 구원의 사역이었다. 그리스도가 하신 것과 성부가 하신 것은 연속적이며 상호 관련을 맺고 있다. 죄를 용서하시면서 그리스도는 오직 하나님께만 속해있던 권세를 갖고 있음을 주장하였다. 그리스도는 다른 어떤 분으로부터 구원의 은혜를 받아서 전달하거나 그냥 소개해주는 분이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으로서 지녀야 할 모든 의로움과 생명과 거룩함을 소유하시고서 구원을 시행하신 분이다. 그리스도는 예배의 대상이요, 구원의 창시자요, 모든 축복의 수여자로서, 하나님의 충만하심이 육체로 거하신 분이다.
칼빈은 성령의 신성을 입증하는 것으로 삼위일체를 보다 더 잘 설명할 수 있다는 확신을 표명하면서, 성령이 자신의 권세로서 역사하심을 특히 강조하면서 생명을 주시는 권능과 우리가 체험하게 되는 본질에 대해서 설명한다. 성령은 여러 성경구절에서 중생과 영생의 창조자로 언급되어있다. 이 권능은 그 누구로부터 빌려온 것이 아니라, 그분 자신의 고유한 권능이다. 칼빈은 성자에게 속한 것으로 설명한 방식으로 모든 신성의 활동들을 성령에게 적용한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살려주시는 권능을 체험하고 참여하는 것은 오직 성령을 통해서이다. 성령만이 우리의 칭의와 성화의 근거이자 저자가 되시며, 모든 진리와 은혜와 선한 것들의 출처이시다.
그리고 성령은 하나님의 위격으로 존재하지 않으면 결코 존재할 수 없는 분이시다. 왜냐하면 바울 사도가 로마서 8장과 고린도전서 2장에서 성령을 하나님의 권능으로 구별하면서, 하나님 안에서 위격적으로 존재하며,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성령의 존재는 하나님을 떠나서, 혹은 하나님 밖에서는 상상할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가능하다. 성령의 존재와 활동은 하나님의 존재와 활동의 즉각적인 실재이다. 모든 구원사역과 재창조의 사역은 성령의 사역과 하나님과의 사이에 긴밀한 관련 속에서만 가능하다. 칼빈의 삼위일체론은 구원론적이며, 동시에 존재론적이라고 평가해 볼 수 있다. 칼빈은 성부와 성령 사이에 하나됨은 성경적으로 구원을 베푸시는 존재이자 대행자로서 하나됨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V.iii. 위격과 본질의 명확한 구별

칼빈은 '위격'(휘포스타시스) 혹은 '인격' 이라는 용어를 충분히 수용하면서도, 전통적인 방식에 무조건 따르기보다는 신중하게 성경을 연구하여 답변하고자 했다. '실체'라고 번역하는 '휘포스타시스'는 성부의 존재나 본질을 가리키지 않고, 그의 위격 혹은 인격(person)을 가리킨다. 칼빈은 교부들이 채택했던 '휘포스타시스'라는 단어를 바르게 파악하여, 하나님에게는 삼중의 '휘포스타시스'가 있고, 단일의 '우시아' (본질)가 있다고 가르쳤다. 이것은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헬라 정교회에서는 세 '휘포스타시스'가 있다고 가르친 반면에, 서방 교회에서는 '휘포스타시스'를 '수브스탄티아'로 번역하여, 하나님의 존재와 본질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하나의 '휘포스타시스'로 직역하므로서 크나큰 혼란이 빚어졌던 것이다.
다시 반복해서 요약하여 보자. 칼빈의 삼위일체론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본질 ('우시아' 'essence', 라틴어로는 essentia)과 각 위격 ('휘포스타시스' hypostasis) 간에 명확한 구분을 제시하고 있는 점이다. 칼빈은 본질과 위격을 확연히 구분하여 사용하라고 강력히 주문하였다. 칼빈에 의하면, 삼위의 각각의 인격이란 한 하나님의 본질 안에서 (in Dei essentia) 내재적인 위격 (hypostasis), 혹은 실재이며 (subsistence, 라틴어로는 subsistentia), 서로 간의 관계에 있어서 다른 인격과는 전적으로 구별되며, 서로 바꿀 수 없는 독특한 요소를 갖고 있다는 말이다. 이때에 '실재' 혹은 '실체' (subsistence)라는 의미는 '존재' (being)라는 용어와는 좀 다른 말로 쓰여졌는데, '존재'와는 분리할 수 없는 용어이지만, 존재와 연관을 갖고 있는 한 위격이라는 말로 이해되어진다. '수브시스텐티아'라는 말은 존재 내에 있는 관계성을 드러내는 단어이며, '에센티아'라는 말은 존재 그 자체 (esse in se ipso, a se ipso)를 의미하는 단어이다. 지금까지 설명한 칼빈의 강조점을 다시 한번 인용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In the absolutely simple unity of God these three hypostases or subsistence
coexist in one Being without being confused with one another. Hence although
the Father is one God with his Word and Spirit, the Father is not the Word,
nor the Word and Spirit.
(절대적으로 단순한 하나님의 통일성 속에서, 이들 세 위격들 혹은 실재들이
서로간에 그 어떤 혼동도 없이 하나의 존재 속에 함께 거하고 계신다.
그리하여 성부는 말씀과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나님이시지만, 성부는 말씀이 아니며,
성령도 아니다)

우리가 성부께서 성자와 함께 거하신다고 할 때에, 서로 구별되는 인격으로서 두 실체들 사이의 관계 (relatio)를 생각하는 것이며,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고 말할 때에는 성부나 성자나 성령의 구별된 위격들과는 확연히 다른 용법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삼위의 구성원들 사이에 존재 (Being)는 전혀 구별이나, 구분이란 없다. 칼빈은 하나님이 한분이라는 것에서는 다른 어떤 관련성을 포함하는 단어로서 생각하지 말고 단순하게 절대적으로 한분만을 생각하라고 주장하였다.
중세 스콜라신학자들의 영향으로 인해서 많은 기독교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본질을 일종의 확고한 상태의 어떤 존재 혹은 정태적인 어떤 것으로 이해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래서 하나님의 각 위격이 담당하는 행위를 순수한 존재로 동일시하였다. 칼빈은 위격이 본질에 앞서서 거론되고 있음에 대해서 매우 우려하였다. 행위와 사역은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나는 구체적인 사건들이요, 이것들은 위격들의 기능에 해당한다. 이것들은 결코 각 위격의 공통적인 본질을 설명하여 주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위격과 본질은 구별하여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칼빈에 있어서 세 위격들은 하나의 본질 안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본질로부터 분리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본질은 일반적으로는 인지가 가능하지 않으며, 오로지 세 위격의 속성들을 통해서만 인식될 수 있다고 보았다. 성부와 마찬가지로, 성자와 성령도 역시 본질을 충만하게 보여주시는데, 역시 '아우토테오스'이며, 완전한 하나님으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각 위격은 개별적으로 하나님의 충만하심을 보여주신다. 이것은 하나님은 한 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칼빈의 삼위일체론은 위격들에 대한 신학적 설명이라고 보아야 한다. 위격들의 속성에는 그들 각 위격의 독특성과 그들이 본질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단일한 하나님의 본질적 속성을 모두 다 소유하고 표현하고 있다.
위격을 통해서 설명되는 그리스도는 마땅히 '하나님에게서 나온 하나님' (theos ek theos)이다. 아들로서는 성자는 성부로부터 존재하게 된 것이다. 위격적으로 볼 때에 성자의 '낳으심'과 성령의 '나오심'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한 관계 속에서 이해되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성경이 이런 용어들을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본질에 대해서 말할 때에는 성자와 성령은 성부의 본질과 동일하기 때문에, 그들의 속성과 자존성과 영광은 모두 동일하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위격적인 술어들 때문에, 성부가 계시고, 그와 다른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이 계신다는 이해를 하게되므로 삼신론에 빠지게 되고 만다.

V.iv. 각 위격의 동등성과 독특성

니케야 신경을 작성했던 시대의 성도들과 초대 교부들은 주로 본질의 통일성이 아니라, 개별성을 지닌 각 삼위 사이의 근원적 관계에 대해서 연구하는데 집중하였었다. 그러나 칼빈은 삼위일체 내에서 하나의 공통 본질을 지니고 계신 것을 삼위 사이의 관계보다도 더 중요시했다. 어거스틴은 위격 개념을 주로 신적인 관계로 국한시키려고 했었으나, 칼빈은 위격 (서열)은 본질 (비서열, 완전한 동등)과 명확히 구분하려고 했다. 본질 면에서 볼 때에 삼위일체는 한 분이며, 서열이 없다. 반면에 위격에서 볼 때에는, 성자의 위격을 구분하는 특성으로 태어나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자가 본질로서는 완전히 하나님과 한 분이시다. 또한 성령의 위격을 구분하는 특성은 영원한 발출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물론 성령의 본질은 영원하신 하나님과 동일하다. 각 위격은 자존성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서, 성부께로부터 성자가 나오셨지만, 똑같은 신성을 가지셨으면서도 성부와 성자 사이를 구분하는 독특한 개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점은 칼빈의 삼위일체론에서 가장 강조되는 조항으로서 그가 신론의 발전에 끼친 중대한 공헌이 아닐 수 없다. 칼빈은 성자와 성령의 자존성과 동등성을 먼저 강조하고 난 후에, 세 위격이 본질상 지니고 계신 통일성을 동시에 강조하였다.

본질은 아버지와 아들에게 전적으로 완전하게 공동으로 남아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 때는 진실로 본질상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전혀 구별이 없게
된다.

칼빈은 위격에 있어서 성자가 성부로부터 낳으셨다는 말에 대해서 의심없이 받아들이면서, "만약 성부와 말씀 사이의 구별에 주목해서 살펴본다면, 하나가 다른 하나로부터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고 하였다. 하지만, 성자의 본질은 성부로부터 온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성자의 본질은 무발생적이며, 낳아진 것이 아니라, 성부의 본질과 동일하며, 성령의 본질도 이와 동일하다. 그리스도가 신이었다는 말은 신적인 속성과 본질을 소유한다는 말이며, 자존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해서 칼빈은 강조하면서, "그는 혼자서도 스스로 항상 자존하신다... 만약 말씀의 근본적인 본질이 성부와 함께 한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을 고려한다면, 성부 하나님에 대해서 거론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영광의 삼위일체의 제 2위격이신 그리스도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칼빈의 핵심적인 강조점은 삼위일체 세 위격 가운데 각 위격의 자존성, 다른 말로 하면 성자와 성령의 충분한 신성에 대한 강조점이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칼빈은 교회가 오랫동안 채택해온 삼위일체라는 말을 이해하려면, 이러한 동등성과 독특성의 의미를 분명하게 이해해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한 분 하나님이시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은 아버지가
아니시고, 성령은 아들이 아니다. 세분은 독특한 특성 (property) 에 의해
구분된다.

칼빈은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히1:3)는 구절에 나오는 헬라어 '카락테르 휘포스타세오스 아우투' (라틴어로는 character substantiae eius)라는 말씀의 해석에서부터 시작하여 용어를 정의한다. 칼빈은 바른 단어의 사용이 얼 마나 중요한가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고전적인 기독론에서 항상 문제가 되었던 것은 하나님의 '실체' 혹은 '본체'라는 단어였다. 성부의 본질과 성자의 본질이 과연 어떤 관계인가를 풀어보고자 노력하였던 것이다. "성경에 난해한 내용이 있을 때 좀 더 분명한 단어들로 그 내용을 설명하는 일을 막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다만 그런 단어들을 사용하더라도 성경의 진리를 충실하게 견지하고, 그 단어들을 시의적절하게 절제하여 사용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할 것이다."
칼빈이 헬라 정교회에 속한 교부들의 글과 서방 어거스틴파의 저술들을 연구하여 각각의 공헌을 종합하고 체계화하여 제시한 삼위일체 이해의 핵심은 삼위일체 안에서 각 위격들은 '스스로 하나님이심' (아우토테오스, autotheos)이라는 것이다. 이점은 니케야 종교회의 삼위일체론에서 다루었던 모호성에 대해서 정면으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 것이다. 각 위격들 자체가 하나님이지 임명에 의해서 신성이 된 것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처음 이 용어를 사용한 사람은 오리겐이었다. 그는 오직 성부에 대해서만 이 용어를 적용하였다. 칼빈과 같은 이해가 없고, 오리겐처럼 생각하는 경향 때문에 헬라 정교회에서는 성부만이 '아우토테오스'라고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였고, 결국에는 성령이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온다는 "이중발출"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칼빈은 삼위일체 위격들 각각이 '아우토테오스'라고 말함으로써 모든 형태의 오리겐주의적인 요소들을 공격했다. 성자와 성령은 성부에 비해서 열등하거나 종속되어 있지 않고, 성자와 성령도 충만한 하나님이라고 주장했다. 어느 한 위격이 다른 위격에 대해서 자신의 의지를 강요할 권위를 주장하지 않는다. 특히 칼빈은 성자의 위격이 하나님 안에서 시작되어졌다는 표현에서 아주 세심하게 어떤 인과적인 암시라도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한다. 성자의 존재가 성부의 존재에 의존적이라고 간주되어서는 안되고, 단지 그런 관계 속에서만 성자가 되기를 바라셨음에 유의하도록 호소한다.
칼빈은 요한복음 1:1에 나오는 '말씀' (로고스)는 자신만의 특성을 지닌 실재로서 성부와 함께 계셨음을 역설한다. 각 실재는 저마다 고유의 속성이 있으며, 아버지만의 독특한 표지로 인정되는 것은 아들에게 속할 수도 없고, 아들에게 돌릴 수도 없다. 아버지는 처음부터 아들의 출생을 아시고 함께 하셨다. 하지만 성자는 처음부터 '아도토테오스'이다.
그리고, 이러한 위격의 구분에서 삼위일체의 위격들 안에 있는 논리적인 순서를 무시하지는 않는다. 삼위의 각 위격을 논할 때에는 물론 일정한 순서를 함축하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세상이 말하는 앞과 뒤의 순서를 논하려는 것이 아니다. 일등과 이등과 삼등을 주장하려는 순서도 아니다. 삼위께서는 함께 영원하기 때문이다. 이 순서에서는,

비록 순서의 준수가 의미 없는 일도 아니요, 불필요한 것도 아니지만, 성부가
첫째이고, 그 다음이 성자 이며, 성령을 그 후에 거론하게 되더라도 영원하신
중에도 먼저와 이후로 나누어서 생각해서는 안된다.

특히 서구 신학에 잠재해 있는 사벨리우스주의, 즉 양태론에 대해서도 공격했다. 사벨리우스주의가 삼위의 각 위격들이 서로 동등함을 인정하고 있으면서도, 그 위격들이 신적 본질 자체와는 완전히 동등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칼빈은 세 위격이 그들의 신성에서 상호 동등하며, 비인격적인 본질의 공유에서가 아니라, 세 위격의 상호 교류와 상호 교통함에 의해서 하나가 되었다는 교리를 주장했다.
칼빈은 하나님의 본질에 대해 언급하면서 '거짓-디오니시우스' 에 대해 통렬히 거부하고 있다. 계시에 근거하여 볼 때에, 비록 충분히 하나님의 본질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처럼 환상에 근거한 신학으로 지나치게 나가는 것은 성경의 범위를 훨씬 넘어서 버린다고 비판하였다. 반대로, 칼빈은 하나님의 본질에 대해서 계시된 것이 적다고 하더라도 사변적인 지식을 발전시켜서 함부로 말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칼빈 한 사람 뿐만 아니라, 종교개혁자들은 삼위일체의 모든 위격들이 동등하다는 믿음을 굳게 가졌다. 이점은 중세 신학이 아타나시우스 신경에 나오는 조항들에 대해서 변질된 해석을 가한 부분들을 배척하는 것이기도 하다. "삼위일체에서 어느 위격이 앞서거나 뒤서지 않으며, 어느 위격도 다른 위격보다 더 위대하거나 모자라지 않다"는 것이 아타나시우스 신경의 삼위일체론이었다. 그런데 중세신학자들은 성부를 성자와 성령의 원천으로 해석해서 이 두 위격보다 더 높이려는 경향을 갖고 있었다. 또한 성령에 대해서는 성부와 성자 사이의 연결만을 하고 있다고 함으로써 인격성이 의문시되는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여기서 삼위 사이의 동등성과 자존성을 강조하는 칼빈은 성부께로부터 나오는 것은 성자와 성령의 본질이 아니다고 주장한다. 성자와 성령은 모두 완전하신 하나님으로서 스스로 본질을 지니신다. 성부께로부터 나오는 것은 독생하신 성자의 고유성과 성령의 고유성이라는 것이다.
칼빈은 하나님의 삼위일체 위격들이 모든 점에서 서로 동등함을 강조하였다. 이것은 중세 전통에서 무시되었던 성령의 인격성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나님의 은혜는 모두 성례전에 묶여 있었고, 성령의 적용사역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그러나 칼빈은 구원의 적용은 전적으로 성령의 사역임을 분명히 밝혀냄으로서 '성령의 신학자'라고 불리어지는 것이다.
구약성경에는 다양한 하나님의 현현이 나타나 있는데, 이들에 대해서 칼빈은 주저없이 기독론적으로 해석이 가능하다고 받아들인다. 구약의 성도들은 아직 충분한 계시를 이해하지 못하던 성도들이었으므로 세 위격으로 구분되지 않는 하나님에 대해서 예배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창조와 구속과 성화라는 경륜적 삼위일체에 대해서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칼빈은 이런 식으로 이해하는 것에 대해서 반대한다. 위격들 각각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전체로서 삼위일체가 동시에 창조주이시며, 동시에 구속주이자, 동시에 성화자이다.
하나님이 자신의 내부를 보다 명백하게 드러내신 것은 오순절 때 성령님을 보내면서부터이다. 이때 이후로는 성부의 위격과 사역, 성자의 위격과 사역, 성령의 위격과 사역을 구분해서 볼 수 있게 되었다. 이 때에 위격들은 상호 다른 두 위격들의 지식을 동시에 포괄적으로 이해한다.

성경은 활동의 기원과 만물의 원천과 샘이 성부에게 귀속되며, 지혜와 경륜과
만사의 주관하심은 성자에게 귀속되며, 행동의 능력과 효과는 성령께 귀속된다고
말씀한다.

여기서, 칼빈은 특히 처음 시작과 근원이 성부에게 귀속되기에 혹시라도 성자와 성령의 신성이 손상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설명을 첨가하고 있다.
특히, 요한복음 14장 28절에서 '아버지는 나보다 크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오해되고 있음에 주목하였다. 성자는 우리로 하여금 자신과 하나되게 하시고자 육체를 입고 오셨고, 그로 인해서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하나를 이룩하게 시도하였다. 그렇다고해서 성자는 이등 하나님이거나, 성부에 비해서 다소 열등하며 종속적인 지위에 있는 것은 아니다. 칼빈은 이 구절을 존재론적으로 해석하지 말고, 구원론적으로 혹은 경륜적으로 풀이할 것을 주문한다. 성자가 육체를 입고 있다고 하더라도 영원한 삼위 사이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성자와 성령의 신성과 인격성을 도입하므로써 칼빈은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초대교회 시대부터 내려온 성부수위설은 그가 '신성의 원천'이기에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졌었다. 하지만, 성령이 우리의 성도들의 생활 속에 파고 들어와서 다른 두 위격들의 사역을 유효하게 만들며, 효과적으로 적용하시는 분이시기에 결코 성령의 활동을 소홀히 취급할 수 없다. 어떠한 면에서도 성령의 인격성을 격하시켜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중세 시대의 교회가 전혀 강조하지 않았던 요소들이다. 어떤 영역과 사역에서 성부가 주도하듯이, 혹은 성자가 주도하듯이, 성령도 똑같이 인격적인 자발성과 주도성을 발휘하신다. 그렇게 하더라도 방종하거나 자유가 지나치지 않는 것은 성령이 가지신 지혜는 다른 두 위격들의 지혜를 공유하고 관통하고 있으며, 특히 삼위를 하나로 묶고 있는 영적인 사랑에 의해서 추진되기 때문이다.

V.v. 한 위격의 지식은 다른 두 위격의 지식을 동시에 포함함

우리는 이제 칼빈의 삼위일체론에서 인격들간의 관계 혹은 하나의 분리할 수 없는 하나님 안에 있는 실재들에 대한 해설에 대해서 주목하고자 한다. 이것은 칼빈이 삼위일체론을 발전시킨 기여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공헌으로 손꼽히는 부분이며 삼신론자라는 오해를 해소하는 답변도 되는 것이다. 칼빈은 위격들이 성부로부터 어떻게 나오느냐에 관심을 가졌던 종전의 삼위일체론과는 달리, 성자와 성령의 신성을 충분히 입증한 후에 서로 관련을 맺고 있는 공존적 연계성을 더욱 부각시키고자 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관계성을 규정하면서, 각 위는 다른 위격들의 모든 지식과 지혜를 함께 구비하고 있음에 주목한다. 이런 면에서는 성부는 성자와 성령과 함께 모든 신성과 지혜를 겸비한다. 각 위격에게만 속해있는 독특한 특성들을 서로 공유하신다. 성부는 충만하게 성자 안에 있고, 성령 안에 있다. 칼빈은 요한복음 14장 10절에서,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가 내 안에 계신다"는 구절을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성자가 성부로부터 확연히 구별된다는 것과 성령이 성자로부터 확연히 구별된다는
것은 성경에 의해서 분명하게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아주 놀라울 정도로 거대한
신비로움이 이 탐구에 있어서 우리가 추구해야할 거대한 존경심과 경각심을 일깨워 주고 있다. 나는 그레고리 나지안젠의 언급을 극도로 좋아한다: "나는 한 분을 생각
할 때에 즉각적으로 세 인격의 광채에 의해서 휩싸여있는 존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역시 나는 세 인격을 구별할 때에 즉각적으로 한분으로 돌아가는 존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우리가 세 인격들로 구분하면서 통일성으로 즉각
귀결하지 않는 생각을 허용하지 않도록 해야만 하는 것이다. "아버지" "아들"
"성령" 등의 용어는 확실히 실제적 구분을 허용하고 있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사역 들을 통해서 다양하게 나타낸다는 식으로 이런 용어들을 단순히 하나님의 별명쯤으 로 생각해서는 절대로 안된다- 그러나, 이 용어들은 구별을 (distinction) 하려는 것 이지, 분리를 (division) 시키려는 것은 아니다.

신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삼위일체 사역을 내적인 사역 (opera Trinitatis ad intra)과 외적인 사역 (opera Dei ad extra)로 나누고 있는데, 하나님의 외적인 사역은 경륜적으로 나누어지고, 구별해서 설명하고 있지만, 내적인 사역을 결코 분리하거나 나눌 수 없다고 말하였다.
칼빈은 과연 성부, 성자, 성령 사이의 내적 관계에서 어떤 점들을 중요하게 설명하는가? 영원한 관계로서 말하되, 그는 삼위 사이에는 "경륜"(economy) "세대" (dispensation) "성질" (disposition)이라는 용어를 자주 채택하였는데, 창조와 구원의 사역에서 각각의 위격들은 독특한 역할을 감당하였다. 이런 용어들은 모두 다 위격들의 영원한 신비적 교류와 공유를 표현하려는 단어였다. 각각의 인격들 혹은 위격들을 가지고 있어서 구별되면서도 한 분 하나님으로서 서로 전적으로 함께 머물러 계신다. 세 인격들의 하나됨은 본질적인 특성면에서, 그리고 실재적인 하나됨에서 전혀 차이가 없다는 말이다. 한 분 하나님이 존재 안에서 세 인격들 혹은 위격들은 서로 관련을 맺고 있다.
세 위격이 사역적으로 서로 다른 역할을 감당한다고 하더라도 한 하나님으로 존재와 한 분 하나님의 통일성을 해치지 않는다. 경륜적 질서에서 볼때에, 성부, 성자, 성령은 서로 모든 지식과 지혜를 공유하시고 모든 면에서 상호 교통하시는 관계임을 보여주고 있다.
칼빈은 "단일체 안에서" (in solidum)라는 용어를 채용하여 삼위 사이에는 서로 아무런 가등이나 차별이나 분리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in solidum"이라는 용어는 칼빈으로 하여금 삼신론자의 위험을 견제하게 하는 가장 적합한 술어였다. 한 하나님 안에서 삼위는 본래적으로, 태생적으로 상호인격적인 결합 (cohension)이 되어있음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성부는 성자 없이는 성부만으로서는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다. 전체 하나님의 존재는 각각의 위격과 모든 것을 공유하고 교통한다.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이 각각의 인격에도 그대로 충만하게 머물러 있다. 반대로 각각의 충만함은 한분 하나님 안에 그대로 충만하게 거하고 있다. 한 분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인격적이시며, 완벽한 의미에서 위격적이시고, 성부, 성자, 성령 모두 다 '스스로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한분 하나님은 하나의 인격 (una persona)만을 취하신 것은 아니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 없이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다. 성자는 구원경륜을 성취하기 위해서 성육신하여 오셨지만, 그 순간에 성자가 생겨난 것도 아니요, 독자적으로 별도의 하나님으로 존재를 시작한 것도 아니다. 삼위의 인격적인 내적 관계는 지위나 높낮이에 관한 선언이 아니요, 권세나 권위에 대한 차이를 설명하려는 것도 아니다. 존재, 권능, 위엄에 있어서는 전혀 삼위 사이에 차이가 없다. 삼위는 한 하나님의 충만한 존재 (tota essentia)과 온전한 본질(tota natura)을 동등하게 갖고 있다.
성경이 증거하는 삼위일체의 통일성과 삼위성은 성자의 오심으로부터 성령이 밝히 계시되기 시작하였음에 유념해야 한다. 앞에서 지적한 바대로,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인격을 떠나서 하나님을 이해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이 아니며, 성경에 위배되는 망령되고 헛된 사상이다. 에베소서 5장 5절과 마태복음 28장 19절에 근거하여 칼빈은 하나님의 하나됨과 삼위성을 모두 강조한다.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이다. 성부, 성자, 성령은 모두 하나로 묶여져서 하나님으로 불리어지며, 그 이름을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존재 안에 세 인격이 머물러 있지만, 한 분 하나님으로 알려진다. "따라서 하나님은 여러분이 아니라, 한 분이시다. 우리는 말씀과 성령이 하나님의 바로 그 본질적인 존재 그 이상이 아니라는 점을 결론적으로 말하고자 한다."

결론: 구속 역사적 관계의 신학

하나님을 바르게 이해하게 되면 어떤 유익이 주어지는가? 삼위일체 신학은 무엇 때문에 성경에서 주어졌는가? 칼빈이 전개한 삼위일체론은 루터와 마틴 부써가 가지고 있던 초기 종교개혁자들의 시각을 갱신하는 것이요, 특히 초대교부들과의 접목을 통해서 새롭게 세우고자 한 것들이다. 중세신학은 칼빈에 이르러서 완전히 새로운 삼위일체론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따라서 칼빈의 신학이 지닌 중요성과 의의에 대해서 몇 가지로 결론을 맺고자 한다.
첫째는 어거스틴의 전통에 확고히 서 있으면서도, 삼위일체 각 위격 부분은 헬라교부들, 특히 갑바도기아의 신학자들을 추적하여 훌륭한 결론을 도출했다는 사실이다. 겉으로는 전혀 유사성이 없어 보이는 두 전통 사이에서 일치점을 찾아내고, 절묘한 종합을 이루게 되었다는 점이다.
둘째는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적 체험과 경험에 대해서 보다 온전한 이해를 가능하게 하였다. 중세시대에는 사람이 은혜를 입게 되면 현재의 인간 됨됨이가 달라지게 되며, 그렇게 만들어주는 은혜라는 것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영적인 실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칼빈의 삼위일체론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은 하나님의 인격이나 위격적 사역의 열매이므로, 죄인들이 은혜를 받고 새사람으로 변화되어서 어떤 다른 인간으로 만들기 진다기보다는 오직 하나님의 값없는 은총이 주어질 뿐이다. 은총을 받은 거듭난 사람은 인격적인 하나님과의 교제를 가능하게 된다. 이것은 은혜의 주입이 아니라, 전가에 의해서 신적인 본성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다는 구원론적인 설명을 가능하게 만드는 요소이다. 구원의 은혜는 각 위격들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서 택함받은 자들에게 값없이 흘러내리는 것이다.
셋째로, 칼빈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전체 구속적인 관계를 설명하는 근간이 되는 구조, 패턴, 그리고 역동성을 모두 다 삼위일체의 존재방식을 통해서 분석하고 설명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삼위일체론을 옹호하고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주요 관심사항으로 보인다. 칼빈이 사변적이요, 철학적인 삼위일체론을 거부하고, 전통적인 개념을 주장하는 것도 피하였던 진정한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주장하므로써, 그를 통해서 주워진 구원의 확실성을 전파하려는데 있었다.
요약하자면, 칼빈의 삼위일체론은 구원론적으로 풀이되고 전개되었다. 이것은 아타나시우스에게서도 보여졌으며, 서방신학과 동방신학의 삼위일체론에서 간과되어온 문제점을 바르게 교정한 것이라고 보여진다.
다시 한번 지적하지만, 종교개혁자 가운데 가장 성경적이며, 기독론적인 삼위일체론을 제시한 신학자는 단연 칼빈이었다. 종교개혁자 가운데서 요한 칼빈만큼 삼위일체론을 깊이 있고, 광범위하게 다룬 신학자는 없다. 칼빈 신학의 근본원리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지만, 그 내용은 결국 삼위일체되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다. 칼빈의 신학저술 전반에는 극도로 혼란한 이단들, 특히 삼신론과 양태론의 모순과 문제점을 지적하는 정통신학의 삼위일체론이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 지어다" (고후 13:13) 아멘.


출처 : 한우리성경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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