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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신학과 웨슬레 신학의 구원론 비교이해

by 【고동엽】 2021. 11. 4.

칼빈신학과 웨슬레 신학의 구원론 비교이해

Ⅰ.서 론


개신교 선교 1세기가 지난 지금,한국 개신교는 1천만 교세를 이룩했는데,신학적으로는 칼빈주의적 장로교와 아르미니안 웨슬레주의적 감리교,성결교,침례교,오순절교회,나사렛,구세군 등등으로 계보를 나눌 수 있다. 한국 개신교회가 신학적으로 그 원류를 찾아서 신학적 노선을 명백하게 정립하는 일은 중요한 과제이다. 왜냐하면 신학은 교회와 신자들의 신앙을 인도하는 사명을 갖고 있기 때문이며,신학은 인간이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의 방법론이며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에서 정립된 신앙체계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본 연구에서 다루고자 하는 칼빈신학과 웨슬레신학도 그러하다.칼빈의 신학은 그가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만남에서 확립된 신앙체계이다.1) 그가 많은 서적을 연구하고 여러대학에서 르네상스 시대의 사상들에 영향을 받았으나2) 그것이 그의 신학의 주류가 된 것은 아니다.
웨슬레 역시 초대교회 교부들의 사상과 여러 서적들을 연구했으나3) 그의 신앙체계의 확립은 1738년 5월 24일 올더스케잇 체험에서 비롯된다.4)
즉 칼빈신학과 웨슬레 신학은 칼빈과 웨슬레가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만남에서 확립된 신앙체계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론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두 신학을 다른 신학보다 성서적 신앙체계로 인정하므로 연구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본 연구는 당위성과 필연성을 갖는다. 그것은 한국교회를 지금까지 이끌어 오며 신앙과 신학을 주도해 온 것이 바로 칼빈신학과 웨슬레 신학이라 하겠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신학의 여러 분야중 구원론을 취급한다.그것은 기독교가 도덕종교가 아니고 생명을 구원하는 계시종교이기 때문이다.구원론의 골격이라 할 수 있는 구원의 단계를 중심으로 칼빈과 웨슬레 신학을 고찰하려고 한다.


A.연구동기와 목적
최근의 추세는 칼빈과 웨슬레의 차이점 보다 일치점 확인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입장이다. 「요한 웨슬레의 재발견」을 저술한 셀(Cell)은 "우리가 웨슬레의 가르침과 설교를 객관적으로 검토해 볼 때 웨슬레의 신학은 종교 개혁자들의 신앙으로부터의 이탈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그들의 신앙의 재인식과 재발견이었다"5) 고 주장하였다.이러한 기본적 인식아래 칼빈신학의 형식 구성원리 중에 "일치라고는 하나 혼합은 아니다. 구별이기는 하나 분리는 아니다."6)는 표제가 있다. 이 말은 진리 규명에 있어서 혼합보다 일치에, 분리보다는 구별에 그 중요성이 있음을 밝혀 준다. 이 원칙에 따라서 칼빈의 구원론과 웨슬레의 구원론, 좀 더 세부적으로 구원의 단계의 조화되는 면과 독특하게 구별되는 면, 이 양면의 창의적 종합에 대한 가능성을 확인하려하는 것이 본 논문의 목적이다.


B.연구방법과 범위
본 연구는 칼빈신학과 웨슬레 신학의 구원단계순서를 비교 고찰하되, 연구방법과 범위는 주로 칼빈과 웨슬레의 저서들을 주 자료로 삼아 기독교강요와 웨슬레 통서를 연구하고 그외 여러 가지 학자의 견해를 보조자료로 삼는다.
먼저 1장에서는 서론과 구원론의 중요성 및 연구목적을 피력하여 논문의 방향을 설정하고 2장에서는 칼빈과 웨슬레의 신학적 특징을 3장에서는 칼빈과 웨슬레의 신학중 구원관을 중심으로 이해하며 제4장에서는 칼빈과 웨슬레의 구원론중 구원단계를 비교하고 끝으로 두 양대신학을 배타적 입장에서가 아니라 논점의 상호공존의 가능성 및 조화의 필요성에 의한 구원단계의 중요성을 중심하여 결론을 맺을 것이다.


Ⅱ.칼빈과 웨슬레의 신학적 특징


A.신학형성의 배경
1.요한 칼빈의 신학형성 배경
(1)시대적인 배경
에라스무스(Erasmus)가 "우리는 모든 면에 있어서 무언가 숙명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감지한다"라고 말한 것 처럼1) 칼빈이 출생하기 전 그 당시의 세계는 중세에서 근세로 이행하는 역사적 전환점의 문턱에 이르러 있었다.
당시 교회안에는 각종 추악한 부정부패의 사례가 있었으며 교리적 탈선(doctrinal deviation)이 만연되어 있었다. 각종 신조들은 명확하게 정의되어 있지 못한 상태였으며, 로마 교회의 미사나 예배의식과는 공존할 수 없는 성격을 띠고 있었기에 더 이상 카톨릭이라 부를 수 없는 신조들이 합법화되어 있었다.2)
교황청의 자세와 성직자 임명의 관심은 일반에게 압박감을 주었고 교황청의 교회 사무 집행은 낭비, 부패의 인상을 주었다. 성직자 계급은 상하를 막론하고 대체로 존경할 가치가 없는 자들이라고 비난을 받았다. 상업도시들은 성직자들의 세금 면제, 이자금지, 많은 교회 명절, 걸식 장려(Countenance of beggars)등으로 원성이 높았다. 경제적 불안 상태에 빠진 농민들은 지방조직에 의하여 거두워진 십일조, 사례금 따위도 반발이 심하였다. 이러한 불안의 소용돌이 속에서 일어난 신자들의 종교적 각성의 열정은 깊은 공포의식과 구원에 대한 열망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시대적인 위기상황을 배경으로 칼빈의 종교개혁은 발생하게 되었다.3)


(2)생애와 회심의 영향
죤 칼빈은 1509년 7월10일 파리 북동부 피카르디(Picardy) 지방 노용(Noyon)에서 태어났다.4) 그의 아버지 이름은 제랄 코반(Gerald Cauvin)이었는데, 그는 노용시의 유력한 인사로서 교회의 서기요 회계의 직분을 오랫 동안 맡아본 사람이다. 베자(Theodare Beza)5)의 기록에 의하면 그는 "판단력이 예리하고 지혜에 있어서 특출하였으므로, 그 지방의 고급 귀족들과 교직자들에게 두터운 존경과 신임을 받았다"는 것이다.
칼빈은 법률학을 포함하여 폭넓은 교육을 받았다. 복음주의 신학에 관한 한, 칼빈은 이를 독학으로 읽었으며, 그가 루터의 사상과 친숙하게 된 것도 주로 그의 저작을 통해서였다.6)
1531년 5월26일 부친의 갑작스러운 사망은 그의 생애에 큰 전환기가 되었다.7) 이제 그는 외적 압력에서 해방받아 그의 자유로운 선택으로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특별히 취미있는 고전학에 몰두하였다.
칼빈은 1532년 봄 세네카 주석을 낸 후로 1534년 초까지에 별안간의 회심 (Sudden conversion)을 경험했다.8) 원래 자신에 관하여 말하지 않는 칼빈은 그의 회심에 관한 사유를 "돌연한 회심"9) 이라고 간단히 표현하였다.
그의 시편 주석에 "내가 아직 교황권이란 미신을 가지고 있을 때 '돌연한 회심'으로 나를 부르셨다.."고 하였는데 그의 체험 내용은 잘 알 수 없으나, 요점은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자기에게 말씀하였다'함과 '하나님의 뜻에 반드시 복종해야 한다' 함이다.
그의 회심을 지적인 면에서 본다면 회심은 종교적 진리탐구의 정점이었으며 하나님의 뜻이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격렬한 연구의 결실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자서에 "이 도(道)안에 전진하려고 불붙었고 … "는 그가 성서연구에 "말씀"이 참 신앙의 표준이며 성령의 조명에 의한 이해로 말미암아 교황의 도는 참 그리스도교의 왜곡이며 오류와 우상숭배에서 그리스도가 지어논 참 공효(功效)를 무효하게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한 것이었다.
회심은 심리적인 면으로 보면 그것은 구원에 대한 질의요 루터의 경우와 같이 교회에서 되는 참회와 공적이 구원을 가져오겠는가 하는 의문에서 해방받은 것이 된다. 그러나 루터의 경우와 성격적으로 다른 것은 루터는 회심으로 말미암아 고뇌하던 양심에 평화를 얻었으나 칼빈은 반대로 마음이 복음주의 신앙의 소식을 들음으로 도리어 불안하여 졌다는 점이다. 회심에서 칼빈은 구속의 확신이란 평화가 아니라, 주님의 말씀에 복종하려는 결의와 주님의 영광을 바라는 마음,자기 안에 만족을 찾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오심을 기다리는 초조한 마음을, 좋은 의미의 불안을 겪었다.10)


(3)사상적 배경
1559년 칼빈이 기독교강요의 결정판을 출판했을 때, 그의 대작은 아마도 신약성경 이후 교리신학에 대한 가장 영향력있는 단행본이었다. 워필드(Benjamin B. Warfield)는 그의 저서「칼빈과 어거스틴 」 (Calvin and Augustine)에서 그의 신학적 위업을 다음과 같이 평가하였다.
"종교개혁운동의 프로그램에 대한 첫 번째 언급으로서, 기독교 강요는 개신교 신학의 전체 발전의 기초이며, 복음적 사상에 대해 지울 수 없는 영향을 남겨주었다. 3세기 반이 지난 후에에도,그것은 모든 교리신학 작품 중에서 가장 훌륭하고 영향력있는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11)
그런데 워필드는 칼빈 신학의 사상적 배경으로서 어거스틴을 제시하며 칼빈이 어거스틴에게 진 빚을 강조하였다. 칼빈이 비록 교회론에 활력을 불어 넣었지만 그의 교회론은 하나의 논제를 이루지 않는다. 벤쟈민 워필드가 지적하여 강조하였듯이 그것은 칼빈 자신의 창작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후에 칼빈주의라고 불리울 만큼 특징적인 것은 바로 은총의 교리인 바 그것은 어거스틴에서 온 것이다.
소위 칼빈주의 5대 강령은, 바울에게서 그것들에 대한 영감을 얻어낸 어거스틴에 의해 은연중 형성되었다. 그래서 근대에 와서 칼빈은 그 바탕이 어거스틴주의자라고 하는 평가를 받는다.12)
찰스 핫지(Charles Hodge) 는 개혁신학의 유산을 잘 요약해 주고 있다.
"그것들은 역사상 바울,어거스틴 또는 칼빈주의의 것으로 알려진 위대한 교리의 개요인데, 그것은 성경에서 가르쳤고, 어거스틴에 의해 발전되었으며, 라틴교회에 의해서 공적으로 승인을 얻었고 중세기의 진리의 증인들에 의해 추종되었으며 … 13)
이상과 같은 어거스틴의 예정론과 기타 구원사상은 칼빈에게 전승되어져서 칼빈의 구원관의 주요 개념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헨리 미러(Henry Meeter) 가 "칼빈의 교의들은 … 어거스틴 사상의 부흥"14)이라고 말한 것은 올바른 평가하고 말할 수 있겠다.


2.요한웨슬레의 신학 형성 배경
(1)시대적인 배경
웨슬레가 일생동안 추구한 것은 바로 구원이었다. 그의 모든 사고는 이 한가지 목적을 구심점으로 삼았다. 그러나 우리가 유념해야 할 것은 웨슬레에게 있어서 구원은 항상 추구였다고 하는 점이다. 그의 생애가 운동과 점철되어 있듯이 그의 사상도 끊임없이 발전되고 진보된 모습을 보여준다.15)
웨슬레의 신학형성 과정을 살펴보면 그의 신학이 신앙체험을 통해 얻어진 확신에 기초하였음을 알 수 있다. 먼저 시대적인 배경을 살펴보면 웨슬레의 부흥운동은 18세기의 지적인 기풍을 이루고 있는 합리주의와 자연신론을 대항하여 복음적인 그리스도교의 적극적 주장으로서 출연하게 되었다.16)
분명히 18세기는 현저한 과학적 발전의 시대였고, 또한 정치적 변동의 급격한 시기이기도 하였다. 특히 17세기 말, 18세기 초 영국에는 계몽주의 정신이 편만해 있었는데 그 중요한 결과는 종교에 있어서 합리주의 발전(development of rationalism in religion)이었다. 종교적 합리주의의 강력한 자극은 종교전쟁 시대의 격정과 잔혹성에 대한 도덕적 반동이었다. 영국 종교사상에 나타난 합리주의는 3가지 개별적 성향을 띠고 나타나게 되었는 바, 온전한 형태는 합리적 초자연주의(Retional Supernaturalism)로, 대부분의 주류는 기독교 자연신론(Christian Deism)으로 나타나게 되었고 급진적인 형태는 반기독교 자연신론 (Anti -Christian Deism)으로 전향되었다.17)
그러나 웨슬레는 이러한 자연신론과 이성주의에 대항하여 지적으로 공격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진리가 성서 속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자신의 신앙을 간증하는 것으로써 만족하였다. 왜냐하면 웨슬레는 자연신론자들을 끌어오는 가장 명확한 방법은 논쟁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인격적 생활의 산 모범과 성경의 진리에 대한 적극적인 확신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18)
요한 웨슬레의 신학 형성의 시대적 배경을 특징짓는 두 번째 요소는 그의 신앙부흥운동이 18세기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부도덕과 부패의 경향에 맛서는 도덕갱신 운동으로서 등장했다는 것이다.19) 당시 하층 계급의 영적 상태는 거의 파멸의 지경이었다. 대중들의 오락은 야비하고, 문맹은 만연되고 법률집행은 야만적이요, 감옥은 질병과 죄악의 소금이요, 음주는 영국 사상 최고조에 이르렀다.20) 새로운 정치 경제적 동향은 정치가와 학자들로 하여금 서슴치 않고 추태와 외설을 감행하도록 만들었다. 결혼서약은 벌써 신성한 것이 되지 못하였고21) 상류사회는 회의주의에 빠져 종교를 조소하고 있었다.
이러한 정세에 있어서 웨슬레의 과업은 영국의 도덕과 종료를 회복시키는 데 있었다. 그래서 그는 사변적 신학을 피하고, 다만 깨끗하고 관대하며, 건전한 생활을 하며 실제적으로 "인간 가운데서 모범되신 그리스도의 산 모습"이 되려 하였다.22) 그래서 웨슬레는 그의 설교와 그의 복음적 운동의 타당성을 변호하면서 도덕적 성취, 인간생활의 변화, 신앙의 열매 등을 강조하였던 것이다.23)


(2)영국 국교회의 신학적 영향
특히 영국의 고교회(High Church)의 영향을 받아서 의식주의적이고 율법주의적인 신앙생활을 체득했다. 그 후에 규칙쟁이(Methodist) 라는 조롱을 받기까지 규칙적인 생활에 힘쓰며 수도원적인 신앙생활이 깊어지면서도 내면세계의 불안과 번민 때문에 몸부림 쳤다.
1789년이 저물어 가는 무렵에 웨슬레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겨 놓았다. "나는 어린시절부터 성서를 사랑하고, 초대교회의 교부들을 존경하며, 다음으로는 우리 교회인 영국 국교회를 세계에서 가장 성서적인 국가 교회로서 존경하라는 교훈을 받았다."24) 이 구절로부터 우리는 웨슬레의 구원관에 미치게 된 영향을 그의 교회와 가정에서 찾아 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영국 교회의 신학의 대변자라 할 리챠드 후크(Richard Hooker) 는 ①성서는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이 포함된 책이며, 이것은 순결무구하고 다함이 없는 생명수라 하였다. ②그러나 그는 교회의 권위를 역시 인정하여 교회는 우리로 성경을 바로 깨닫게 하는 성경 다음 가는 지도자라 하였다.25)
후크의 신학에 영향을 받은 사람은 영국교회 소장파 지도자요 칼빈주의 반대자였던 윌리엄 로우(William Laud) 인데, 그는 자신의 책 「제수이트파 피셔와 그 자신과의 회합의 관계」(Relation of a Conference Between Jesuit Fisher and Himself)에서 "인간은 믿음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성서의 진리를 인식할 수 있는 길도, 하늘에 이르는 길도 발견할 수 없다"고 말하여 믿음을 강조하였으며, 그 믿음 자체는 사람의 동의 즉 "사람의 의지와 이해가 혼합된 행위"라고 보았다.26)
Laud에게 있어서 신앙 자체는 하나님의 선물인 은혜는 이성적 피조물에게만 주어지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성적 피조물인 인간은 그의 본성 때문에 신앙의 진가를 판단하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으며, 하나님의 말씀 까지도 이성의 도움을 통하여 판단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며, "인간은 그리스도가 자신을 위하여 죽으셨다는 확신에서만 만족할 것이 아니라,인간 자신이 그 구속의 효과가 나타나기 위하여 자신의 생활을 개조하여야 한다"는 것을 거듭 강조하였다.27)
즉 영국 국교회는 "신앙에 의한 의인"이라는 바울의 개념을 해석할 때에 "인간의 행위에 의하여 의롭게 된다"는 야고보서의 교훈을 배제하지 않았다. 이처럼 웨슬레 시대에 있어서 영국 국교회의 구원의 개념은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의무를 하나님의 체계로 묶어 보려는 시도였다고 볼 수 있다.


(3) 가정적 배경
웨슬레의 모친 수산나 웨슬레(Suzanna Wesley) 는 그 자녀교육의 모토로서 "이지와 경건"의 지배를 받도록 하기에 힘썼다. 즉 종교의 모든 원리가 그 자녀들의 마음 속에 깊이 뿌리 박히도록 교육했다.28)
웨슬레 어머니 수산나는 비 영국국교도 가정에서 양육되었다.그러나 수산나는 만 13세에 이르기 전에 벌 써 "기성 교회와 비 영국 국교회 사이의 논쟁"에 관한 문헌을 검토하기 시작하여 차츰 영국 국교회의 교리편으로 사고의 방향을 돌리게 되었다.29)
사무엘 웨슬레와 수산나 웨슬레는 둘 다 "영국 알미니우스주의"로 분류한 학파에 속한다.30) 그들은 다같이 만인 구원설을 믿으며,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속박하시지 않으며, 따라서 인간의 구원이나 멸망을 강요하시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31) 즉 칼빈주의의 무조건적 예정을 말하는 이중예정론을 반대하였다.32)
웨슬레의 부모가 영국 국교회로 전향하여 그 신앙을 고수하였지만, 그들이 청교도의 전통속에서 자라왔으며 또한 어렸을 적부터 모두 청교도적 신학과 교육을 받은 분들이었기에 그들의 자녀교육에는 청교도적 양육의 흔적이 많이 발견된다. 따라서 웨슬레는 "성공회의 제도 및 권위와 청교도의 두려움 없는 창의성과 금욕주의의 영향"을 부모를 통해 받게 되었다.33)
이러한 모든 점에서 웨슬레는 그의 부모를 통하여 영국 교회의 전통과 교리를 이어 받았으며, 영국 교회의 고교회주의34)도 그대로 물려 받았다.


(4)Aldersgate Street에서의 회심의 영향
웨슬레는 1738년 5월 24일 저녁 9시 15분 모라비안 교도들의 기도회에서 홀연히 마음이 뜨거워지는 이상한 체험을 했다. 여기서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개신교의 핵심되는 진리가 확연해졌다. 과거에는 믿음을 선행 또는 의식에 예속시켰으나 회심 후에는 구원에 이르는 참 믿음이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적으로 인정하며 그리스도의 보혈에 전적으로 의뢰하고 마침내 그리스도에게 접붙힘 되는 것으로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깨닫게 되었다.35) 웨슬레는 여기서 과거에 믿음을 "지적 동의"로 보았던 견해를 바꾸어 "신뢰(trust)"로 수정했다. 이런 신앙관의 변화는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가져왔으며 종합적으로 그의 구원론 형성에 크나큰 영향을 끼쳤다.


B.신학적 특징
1.요한칼빈의 신학적 특징
(1)칼빈신학은 창조적이기보다 공식적이다.1)
칼빈은 종교개혁에서부터 루터, 쯔빙글리를 잇는 제세대에 속하는 개혁자이다.2) 그는 루터와 쯔빙글리가 닦아 놓은 터 위에 건물을 세우는 유리한 위치에서3) 쯔빙글리의 스위스 종교개혁운동으로부터 연유하는 개혁파 교회의 초기유산을 이어받아 개혁운동을 계속하고 개량하여 완성시켜 더 중대한 사업으로 진전시켰다. 칼빈은 위의 두 선배보다 더 감화를 끼쳤는데 그것은 개혁파 교회들의 교리가 칼빈과 일치하였으므로 가능했다.4) 그는 두 선배에 비해 사업가로는 부족했으나 재능,사상가,조직가로서는 우월하였다. 즉 두선배는 새로운 개혁의 기초를 이룬 사상을 창출하였고 칼빈은 그것을 체계있게 조직한 것이다.5) 칼빈은 새로운 종교사상의 체계를 개혁하는 면에서는 독창적인 인물은 아니다. 그는 대체로 어거스틴,루터,기타 여러 사람들의 관념을 이어받았다.6) 이런 입장에서 칼빈은 개혁에서 자기의 임무가 선구자들의 교리적 근거를 다시 닦는 일이 아니라 그것을 조직,확립하여 새로운 세계에 확장시키는 일임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칼빈은 법과 질서와 훈련에 관심이 집중되었으며7) 개혁에서 산출된 교리와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조직적으로 질서정연하게 기독교강요에서 전술한 것이다.8) 이런 의미에서 칼빈신학과 칼빈의 사상구조는 창조적이기 보다 오히려 공식적(formulative)이며 조직적이다.
(2)칼빈신학은 성서주의이다.
칼빈주의 신학자들은 "칼빈주의"라는 말이 칼빈에게서 비롯되었으나 칼빈의 이름에 집착하면 큰 오류를 범하게 되며9) 칼빈에 의해 전해진, 신학사상이거나 창작물로 여겨서도 안된다고 한다.10) 칼빈주의는 성경전체의 사상이며 바울,어거스틴이나 동시대의 개혁자들과 일치하는 사상으로 성경교훈을 조직적으로 해설한 것으로 인간의 사색된 철학, 종교가 아닌 참된 복음과 하나님의 법을 성서 그대로 강조하는 것이다.11) 이런 칼빈주의에 대한 기초를 세운 사람이 칼빈이었고, 칼빈의 신학은 "하나님 앞에서의 신학"이며 칼빈주의는 "하나님 앞에 선 신앙"이라 할 수 있다.12)
칼빈의 신학체계 수립의 근거는 성서였다.13) 성서는 그에게 기독교 진리의 유일한 근원이며 규범이었다.14) 칼빈신학의 특징은 "전체로서의 성서"의 이해와 실제적 동기에서 촉진된 것이다. 그는 성서에서 이해되는 하나님,말씀,은총,거룩을 보고 계시의 하나님의 관점에서 성서를 읽으려 했다.15) 기독교 강요를 쓴 의도를 칼빈은 제 3판 서문에서, 성서의 내용을 요약하여 읽는 자에게 성서의 안내서를 제공하려는 것이었다.16) 칼빈신학은 그 권위의 기초를 성서에 두는 성서주의이다.


(3)칼빈신학은 경험적이다.
칼빈신학의 근본을 이해하려면 그가 기독교 강요를 쓴 내적 필연성과 그 목적한 바를 알아야 한다.17) 칼빈이 강요 초판에서 전하고자한 회적 동기는 당시 개신교를 박해하는 프랑스왕 프란시스(Pransis)에게 개신교 신앙을 변호하기18) 위함이었으나 실제 의도는 어떤 사상이나 주의가 아니고 자기의 변화된 생명이 출발한 처음에 있었던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시하려는 것이었다.19)
칼빈은 하나님과 만난 경험을 통해 은총을 체험한 것이 성서의 주제와 일치하였다.20) 이것이 칼빈신학이 지닌 논리를 초월한 비의(秘義)이다. 칼빈신학의 출발점은 회심이 가져온 하나님 체험이었다.21)


2.요한 웨슬레의 신학적 특징
웨슬레 신학은 구원론이 중심이며 자신과 신자들의 신앙경험을 바탕으로22) 모든 성도의 신앙목표가 되는 성결, 완전에 강조점을 둔다.23)
이 땅의 모든 종교는 한결같이 구원을 말하고 구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막상 구원이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천편일률 동일한 것이 아니다. 우선 기독교 개신교 안에서도 구원이란 개인의 영혼이 죄와 사망에서 벗어남이라는 복음주의적 정의가 있는가 하면 구원이란 사회의 구조악인 정치적 경제적 양심의 부자유와 속박에서 해방되는 것이라는 진보적 신학노선을 걷는 해방신학 민중신학의 주장이 있어 양극화 현상이 있기도 하다.24)
전술한 바와 같이 웨슬레 신학의 특징이 구원론 중심이라면 웨슬레는 구원을 어떻게 이해하고 정의하였는가?
웨슬레는 구원이란 첫째로 법적인 차원(legal dimension)으로서 형벌에서 사면을 받는 일이이라 했다. 그 둘째로는 의학적 차원(medical dimension)으로서 질병 즉 죄성에서의 치유함을 받는 일25)이라고 보았다.
이제 이러한 구원론적 신학을 형성한 웨슬레 신학의 제반 특징을 개괄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1)웨슬레 신학은 복음적이다.
웨슬레 신학은 개혁자들의 신학이 그랬듯이 복음적이다. 그것은 웨슬레가 당시 영국교회의 인본주의적 신학사상에 대해 루터,칼빈의 복음주의를 주장하고 이를 부흥운동의 추진력으로 삼은 사실에서 나타난다.26) 웨슬레의 복음주의 원리 세가지는 첫째, 모든 선은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에 의하며, 둘째,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서 인간의 천부적 자유와 모든 능력을 전적 부인하며, 셋째, 인간의 모든 공로, 하나님의 은혜로 소유하거나 행한 것 까지도 공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체험을 통해 확신한 것이다.27) 이 면에서 웨슬레는 루터, 칼빈과 함께 믿음으로 구원 받음에 있어서 하나님이 전부요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복음주의를 확고히 한다.28) 웨슬레는 그의 신앙이 복음적이요, 사상과 전도가 복음적이었다.29)


(2)웨슬레 신학은 경험적이다.
일반적으로 웨슬레의 기독교관은 경험의 신학이라 할 수 있으며,그 특색은 신자의 경험을 긍정한 데 있다.30) 웨슬레는 경험에 호소하는 그의 신학 작성에 있어 모든 사람은 자율적으로 생각하고 그 직능과 권리를 남에게 맡길 수 없다는 계몽주의 사상의 경험적 제 1원리를 적용시켰다.31) 그의 완전 교리 역시 경험의 한 호소이다. 하퍼는 웨슬레 신학이 체험을 근거로 하므로 상아탑 신학에 결여되기 쉬운 신빙성이 있는 즉 시험을 거치고 그 결과 효과적인 것으로 밝혀진 신학이라 하였다.32)
웨슬레가 말하는 경험은 인간이 하나님의 임재를 직감하는 것으로 33) 이성적 지각과 같으며, 잡다한 현상계의 낮은 차원의 감각적 경험이 아니라 성령이 마음 속에 직접 증거하시는 초월적 경험이다.34)
웨슬레는 이런 주관적 경험으로 종교적 지식을 얻는다고 생각한다.35) 셀은 웨슬레를 기독교 역사상 최초의 경험주의 신학자로 보며36) 그가 당시 과학정신을 신학연구에 도입하여 신학제반문제를 경험주의와 응용적 기독교의 실험관에 통과시킴으로써 진리성을 증명하려고 시도했다고 한다. 즉 그의 신학연구 방법은 경험주의이며,그것은 그의 신학이 경험주의 신학임을 말해주는 것이다.37)


(3)웨슬레 신학은 창의적 종합이다.
웨슬레는 성서와 함께 기독교전승을 중요시하였는데, 특히 그리스도와 사도들과 연대적으로 가깝고 동,서 교회 양분 전인 초대교회 교부들의 문헌을 좀 더 기독교진리로 인도해주는 신빙성과 권위를 지녔다고 인정했다.38) 또 종교개혁자들이 주장한 신약성서의 중요요소들도 강조하고39) 각 학파의 장점들을 창의적으로 종합했다.40)
그 종합은 기독자의 완전 교리에 잘 나타났는데, 이 교리는 종교개혁자들이 충분히 취급, 강조하지 못한채 간과한 것을 웨슬레가 재발견하여 체계화한 가장 성서적인 것이다.41) 이 교리를 웨슬레는 하나님께서 메도디스트들에게 위탁한 위대한 유산이라 믿었으며, 이를 전파하도록 감리교도를 일키셨다고 확신했다.42)
완전의 개념을 기초로하는 웨슬레 신학은 한마디로 초대교회의 전통에 뿌리를 박았고 자기부정과 훈련을 통한 완전에의 노력으로 나타나는 로마 카톨릭의 강조와 종교개혁자들의 "이신칭의"강조를 보강하고43) 동시에 알미니안주의와 실제적인 신비주의적 요소를 지닌 영국고교회적인 것과 칼빈적이며 경건주의와 모라비안주의의 형식으로 나타난 루터적 특색을 창의적으로 종합한 것이다.44)


(4)웨슬레 신학은 실제적이다.
웨슬레 신학은 신학을 위한 신학이 아니고 인간 구원과 신자의 신앙향상을 목표로한 실제적 신학이다.45) 웨슬레는 생의 목표가 자기 영혼 구원과46) 목회 범위 내의 모든 사람의 영혼 구원이었다.47)
웨슬레는 구원을 현재의 구원과 궁극적 구원을 포함한 본연의 그리스도의 구원으로 구분한다. 구원은 실제 시작이 있고 계속되며, 끝이 있다.48) 이에 근거한 구원의 단계가 웨슬레의 구원론 체계이다. 따라서 그는 구원의 본질적 시작인 칭의와 현재적 완전인 성화를 강조한다. 또 죄의 성격에서 구원론을 설명하여 죄책에서 용서는 의인, 부패성에서 씻음 받는 면은 성화라하여 의인과 성화를 현재적 구원이라 한다. 웨슬레는 죄의 성질 중 주관적인 면에 관심을 갖고 성화를 더 강조한다49)
웨슬레는 이 구원의 도리를 난해한 신학용어나 사상이 아니라 평범한 언어로 모두가 듣도록 증거하였다. 그의 신학은 실제적으로 평민을 위한 신학이다.50)


Ⅲ.칼빈과 웨슬레의 구원관 이해
A.칼빈의 구원이해
앞장에서 살펴본 바대로 칼빈의 여러 신학적 특징을 살폈으나 사실상 특징은 칼빈의 예정론 사상에 있다. 칼빈신학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은총의 신학이라 할 수 있는데 칼빈의 은총의 표현은 예정론이라 하겠기 때문이다.1) 그는 은총을 회심사건에서 체험하였다. 칼빈신학에서 일관하여 나타나는 것은 하나님이 저항하는 자까지도 복종시키는 힘으로 나타난 은총의 사실이다. 칼빈은 바울 처럼 회심에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체험하였고 그에 따라 그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응답한 것이다.2)


1.칼빈의 예정론
(1)예정론의 위치
칼빈이 예정론을 취급한 형식과 기독교강요의 구조에서 보면 예정론이 그의 신학적 중심적 가르침이라 볼 수 없다. 강요 초판에서는3) 예정론의 항목이 없고 단지 은총으로 선택받은 무리 공동체로서의 교회론 안에서 취급되었다.4) 예정론은 1537년"신앙의훈련" (Instruction in Faith) 의 제 13장 "선택과 예정"에서 처음 별도의 취급을 받았고 "제네바 신앙문답"5) 에서도 독립된 항목으로 다뤄졌다. 1539년에 강요2판에서는 전 17장 중 제 8장에서 예정을 논술하였고, 1559년 라틴어 기독교강요 결정판에서는 예정론을 제 3권의 성령론 속에 마지막 부분인 종말론과 소명론 사이에서 다뤘다.6) 구조와 형식으로 보면 예정론은 칼빈신학에서 기독교강요의 일부분으로 다루며 전체를 결정하는 예정론신학으로 취급된 것이 아니다.7)
연구가들은 칼빈신학의 체계가 예정사상에 기초를 두었는가 하였으나 예정사상은 칼빈사상의 출발점이 아니고 그가 은총을 말할 때에 논리적으로 도달한 귀결점이다.8) 구조와 형식상 예정론은 일부분이지만 칼빈신학 전체에서 예정론의 정신과 성서의 근본적으로 이해된 주제, 하나님의 선한 뜻과 그의 자유를 표현하였으므로 칼빈신학에서의 예정론 위치는 부분이 아니라 전체적이라 하겠다. 칼빈신학은 하나님의 절대적 은총을 종합적으로 표현한 예정론 신학이다.9)
(2)이중 예정
이중예정론은 칼빈만이 했는 얘기는 아니다. 칼빈보다 1,000년이나 앞선 어거스틴(Augustinus)에 의해서 확립된 것인데 칼빈이 이를 더 체계화 시킨 것이다.10) 이중예정이란 유기(reprobation)를 포함한다. 그래서 이중예정이란 한다.11) 즉 어떤 사람은 구원으로 어떤 사람은 멸망으로 예정되었다는 것이다.
칼빈은 복음이 모두에게 동일하게 전해지지 않고 받아들여지지도 않는 경험적 사실을 지적하면서 예정론을 언급한다.12) 예정론은 반대가 거세었기에 칼빈은 그의 주장을 방어하려고 오랜 연구, 발전시켜 그의 특유의 교리형태로까지 형성하여 결국 이중예정 이론에 도달했다.13) 하나님이 어떤 사람은 생명의 소망으로 받아들이고, 어떤 사람은 죽음으로 선고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원한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 하나님의 심판은 다양성 가운데 놀라운 깊이가 드러난다.14) 이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인 예정에 대한 무지가 하나님의 영광을 훼손하며 참된 겸손을 무시하는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행위를 완전 무시하고 자기 안에서 작정하신 자를 선택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은혜는 은혜가 되지 못한다고 한다.15)(롬11:5,6)
칼빈은 이중교예정에 대한 많은 반대에 대해서 "선택이란 것 자체가 유기와 대치되지 않으면 존립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16) 또한 예정 교리를 성경에서만 찾아야 하며 말씀이 허용하는 외에 예정에 대해 알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 한다.17) 아브라함과 이스라엘 민족의 선택은 하나님의 사랑에 의한 선택이며18) 하나님은 원하시는 자에게 은혜주심에 있어서 자유하시다는 것이다.19)
이중예정 교리는 하나님의 뜻의 절대성을 적극 긍정하는 것이며,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함과 하나님의 은총의 철저성을 설명하는 것이다.20)
(3)예정론과 예지
칼빈은 예지를 예정의 원인으로 생각하는 자들을 적으로 규정하며 그들의 하챦은 이론도전을 비방한다.21) 경건한 사람은 하나님의 예정을 감히 부정하지 못한다고 일축한다.22) 그러면서도 그는 분명히 예지와 예정이 하나님 안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편 다른편에 종속시킴은 불합리하다고 본다, 하나님의 지식에는 과거,미래,없이 모두 현재로서 그의 앞에 놓여있는 것으로 실제 바라보고 식별하시는 것과 같은 현재이다.23)
선택은 공로의 예지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목적에서 오는 것이다.24) 예지의 근거로 칼빈은 엡1:4을 제시한다. 아담의 자손 전체를 통해서도 선택할 만한 가치가 되는 것은 하나도 없으므로 하나님은 생명에 참여토록 미리 정하신 자들을 위해 그리스도를 세우셨다.25) 하나님은 인간구원을 자신 안에서만 세우시며 우리 구원은 하나님의 자유한 사랑의 샘에서 나온 것이다.26)
예정론은 선택과 함께 거부를 포함하며 거부, 영원한 포기도 행위에 근거하지 않고 하나님 뜻안에서 일어난다.27) 아담의 타락 역시 예정에 포함되어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 계획에 의한 것이다.28) 하나님은 인간창조 이전에 첫사람의 타락을 예지하시고 아담안에서 그 자손들의 파멸을 예지하셨는데 그것은 그의 영원한 결단에 의한 규정이다. 이것은 무서운 예정이다.29)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인간의 구원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서 나오는 하나님 자신의 업적이다.30) 따라서 선택의 본래 동기는 하나님 자신 안에 있다.31) 칼빈은 철저히 인간공로의 예지를 배격하며 인간의 공로와 타협하지 않는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에 의한 예정을 강조한다.


(4)예정과 자유의지
칼빈은 어거스틴의 견해를 인용하여,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으나 자유하지 못하며 의에 대해 자유하지만 죄에 대해서는 노예라 한다.32) 어거스틴은 자유의지를 이성과 의지의 기능으로 보며 은혜의 도움을 받아 선을 택하고 은혜가 없으면 악을 택하게 된다고 한다.33) 인간 의지는 성령이 없으면 속박된 것이고 속박자인 정욕에 예속되어 있으므로 자유하지 못하다.34) 인간은 자유의지의 남용으로 자신과 의지도 잃었고, 자유의지는 노예로 속박되어 의를 위해 무엇을 할 힘도 없다.35) 이제 자유의지는 옹호하는 것 자체가 그것을 짓밟는 것이며36) 타락한 인간의 어떤 공로도 하나님께 온전할 수 없고, 인간은 스스로 회복할 수 없는 부패한 존재이다.
칼빈은 어거스틴의 주장을 인정하면서 자유의지가 전적 하나님의 은혜에 의존함을 주장하며 이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 주시는 하나님 앞에서 인간은 자신의 어떤 힘이나 의견을 주장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37) 인간은 타락으로 초자연적 은사는 박탈되고 자연적 은사는 부패되었으나 짐승과 구별되는 이성은 남아있다고 칼빈은 인정하나 그 이성과 자유의지가 있어도 인간은 선행을 못하며 오직 은혜로만 가능하다고 한다.38)
자유의지는 선행하는 하나님의 은혜로 지도를 받는다.39) 인간의지는 은혜로 자유를 얻어 선으로 전향되며 계속 선하게 나아간다. 하나님의 뜻에만 절대의존하는 것이다.40)
이상에서 자유의지는 하나님의 은혜로 선을 행하게 된다. 하나님의 절대은총의 표현인 예정에 의해 선택받은 자의 자유의지가 회복되며 은총으로만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5)그리스도안에서의 예정
칼빈은 선택이 그리스도안에서만 이해되고 인정되어야만 함을 주장하지만, 영원한 하나님의 결단에 따르는 절대이중예정의 무서운 교리에 비해 그리스도안에서의 선택에 대해서는 적게 취급한다. 기독교강요 제24장 5절에서 이를 진술하는데, 이 때문에 예정론은 결정론적이고 숙명론적이며, 무자비한 교리라는 의심을 사고 적잖은 반론을 받게 되었다. 그것은 칼빈이 예정론을 은헤론이라 하면서도 실제 예정론을 그리스도론적으로 전개시키지 못한 때문이다.41) 그리고 적게 취급되었어도 그리스도안에서의 은총의 선택은 칼빈신학의 구조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칼빈은 가장 명확한 예정과 은총의 예증이 그리스도이며 그는 미연의 행위나 신앙의 공로없이 그 인간성 안에 이 자격을 얻은 것이라42) 한다. 하나님의 자녀는 그가 저희를 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택한 것이며, 저희를 사랑함도 그리스도께 의거해야만 한다. 따라서 선택을 생각할 때 반드시 비춰볼 거울은 그리스도이다.43) 그것은 그리스도가 그의 몸 안에서 하나님이 영원 전에 택한 자들을 그의 몸에 결합하는 인격이시므로, 또 아들에 속한 모든 사람들을 그 안에서 아들들로 인정되므로 그리스도와 교제에 있는 사람은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는 확증을 갖는 것을44)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창조 이전에 은총으로 결단된 우리의 구원과 선택의 근거인 것이다.45) 선택은 오직 그리스도안에서만 이해되고 인식되어야 한다.46)


(6)예정론이 의미하는 것
칼빈은 강요 3권 제23장 6-13절에서 예정론의 반론들과 답변을 진술한다. 반론들은 선택론이 하나님을 폭군으로 만들고47) 인간에게서 죄와 책임을 빼앗고48) 하나님이 인간에게 편견되다는 견해로 인도하며49) 삶에 대한 정열을 파괴하고50) 모든 설교를 무의미하게 한다는 것51) 등이다. 칼빈은 이에대해 강력히 반박한다.
칼빈은 궁극적인 하나님의 결단 속에 있는 예정의 근거가 성서의 증언을 받은 것으로 보고, 말씀에 복종해야 한다고 여겨 말씀에 대한 충성으로 선택론을 전개한 것이다. 그는 여기에서 결정적인 것을 의미하려고 하였다.52) 첫째 선택론은 복음적 은혜론의 궁극적이고 본질적인 표현으로 구원의 근거는 오직 하나님안에만 있다는 사실의 예리한 진술이다.53) 둘째, 선택론만이 구원의 확실성에 효과적인 현실을 준다. 우리 구원은 하나님의 순전한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54)
이상에서 칼빈은 예정론을 신론이 아니라 성령론에서 다뤘는데 그것은 예정론이 신앙과 삶,희망,성도의 인내 등 성령의 활동과 하나님 은총에 의한 확증속에 있다는 고백이기 때문이다.55)


2.구원의 단계
칼빈의 구원론은 예정론의 맥락에 놓여 있으므로 구원단계가 애매하다. 그러나 구원단계는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구원역사를 인간의 마음에 적용시키는 순서로써56) 하나님의 은총에 의한 것이므로 칼빈의 기독교강요에 나타난 것을 중심으로 연구한다.
칼빈신학의 구원단계 근거는 롬9:29-30으로 정하시고,부르시고,의롭다하시고,영화롭게 하셨다는 것이다. 이 사상을 논리적을 발전시켜 칼빈신학에서 세부적으로 단계 순서를 규정하는데 ① 예정, ② 소명, ③ 중생, ④ 믿음, ⑤ 회개, ⑥ 칭의, ⑦ 성화, ⑧ 견인, (⑨ 영화)이다.57)


(1)유효한 부름 (소명)
칼빈의 구원단계가 예정론을 기초로 함으로 예정 다음에는 자연히 택한 자를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소명이 온다. 이 부르심은 선택의 증거이다.58) 하나님이 자신 안에 숨겨두었던 선택을 부르심으로 표명함은 하나님이 이 순서를 택하신 때문이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속한 자들을 이미 아들의 위치에 택하셨으나 칼빈은 부르심 받은 자만이 이 위대한 긍휼을 소유하게 된다고 본다.59) 하나님은 택한자들을 자녀로 하고 그들의 아버지가 되신다. 또 부르심으로 그들을 가족 가운데 받아들이고 자신을 그들에게 결합시켜 하나가 되게 하신다. 성서는 선택에 부르심을 결부시켜 말하면서 거기에는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긍휼 외에 아무것도 구해서는 안됨을 충분히 시사해 준다.60) 부르심의 방법은 은혜에만 의존하는 것이다.
부르심은 말씀의 들음과 성령의 조명이 있을 때 성립된다.61) 말씀의 빛은 값없이 비추이나 하나님의 긍휼은 모든 사람을 위함이 아니다. 그것은 버려진 자들은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를 거절하는 것이므로 무거운 심판이 그들에게 남아 있기 때문이며 하나님은 영광을 빛나게 하시려고 성령의 효과를 그들에게서 취해 가시기 때문이다.62)
따라서 택한자들에게 내면적 부르심은 거짓없는 구원의 보증이 된다.63) 칼빈은 예정에 대한 연구를 오직 부르심으로 시작되고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끝나게하자고 주장한다.64)
부르심은 보편적 소명과 특별소명이 있는데 보편적 소명은 하나님께서 이것으로 외적 말씀전파를 통해 모든 사람을 부르시지만 이것은 사망에 이르는 향기와 무거운 단죄의 기연이 되는 부르심이다. 특별소명은 하나님께서 신자에게만 주시는 것으로 전파된 말씀을 그들의 마음에 뿌리내리도록 성령의 조명을 실현하시는 경우이다. 때로는 일시적 조명을 받은 자도 이에 참여하게 되나 후에 그들은 배신의 연고로 버려지게 된다.65)


(2)중 생
소명과 중생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66) 중생 없이는 전체 구원론은 업급할 수 없다. 중생은 하나님께서 인간이 의식하는 것과 무관하게 성령으로 직접 나게 하시는 것이다. 인간의 의식 밖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이뤄지므로 중생은 인간이 거절하거나 용납할 수 없다. 즉 하나님의 절대은총에 의한 예정, 불가항력적인 하나님의 주권에 의존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칼빈주의 5대 강령 중의 하나인 불가항력적 은혜를67) 이해해야 할 것이다.
본질상 죽은 자연인이 생명을 되찾을 수 있음은 하나님께서 자신에 대한 지식으로 우리에게 비춰주실 때에만 가능하다. 그때 인간은 죽음에서 살아나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68) 중생전의 모든 사람은 죄로 죽은 자들이기 때문이다. 중생은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해 이뤄지며 아담 안에서 타락하여 상실한 하나님의 의 가운데로 회복되는 것으로69) 말살된 하나님의 형상을70) 우리 속에 다시 회복시키는 것이 그 목적이다.71)
엄밀한 의미로 중생은 새생명의 원리를 인간 속에 주시고 영혼의 지배적 성향을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행위로 정의할 수 있다. 중생은 인간의 근본적 변화로 전인격에 형향을 미친다. 이것은 성화와 같이 점진적 과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순간적으로 완성되어지는 것이다.72) 중생으로 그리스도는 우리 것이 되시며, 우리는 그의 몸에 접붙힘 받아 그의 영을 통해서 살고 그의 통치를 받게 된다. 또 중생은 그리스도의 죽음에 동참하므로 예사람이 그의 능력으로 십자가에서 못박혀 죄의 몸이 죽어 타락한 성품이 힘을 못쓰게 된 사건이다. 이후에야 우리는 그리스도와 교제하게 된다.73) 그것은 그리스도안에서 우리와 교제를 추구하시는데, 죄된 우리를 그냥 두지 않으시고 죄를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이다.74) 이런 중생의 목표는 신자의 생활 중에 하나님의 의와 신자의 순종과의 조화 및 일치를 나타내는데 있고, 그들이 자녀로 영접되었음을 확신케 하는 것이다.75)


(3)믿 음(신앙)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의 은사가 우리에게 적용되어 우리가 구원에 참여하게 되는 것은 성령의 역사로, 우리가 복음을 믿게 조명하고 새로운 새피조물로 나게 하시며 부패와 더러움에서 씻어주심으로 가능한 것이다.76) 우리가 이를 얻고 구원을 소유함은 신앙에 의해서이고77) 그것은 바로 성령의 역사이며78) 하나님의 은사이다.
칼빈은 신앙을 정의하여, "신앙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확실한 인식이며 그것은 그리스도안에 있는 값없이 주시는 진리의 약속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성령을 통해 우리 심정 위에 인치시는 것이다." 79) 라고 한다.
신앙의 대상은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하나님은 신앙의 목적지이며 그리스도는 그 나아갈 길이다.80) 또 신앙은 근거가 의존하고 있는 하나님의 자비를 분명히 진술함에 있지 무조건적인 맹종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81) 신앙의 인식은 논증으로 가르쳐지는 것이 아니며, 사람에게 어느 정도 파악되고 어느 한도를 넘어서는 이해되지 않는 것을 납득하는 것이다.82) 신앙은 인간이해가 아니라 확실성에 의존하는 것이다.
칼빈은 신앙의 열매를 화평으로 보며 신앙의 처음, 아주 적은 것이라도 마음속에 떨어지면 벌써 우리는 은혜로우신 하나님의 얼굴을 보기 시작하는 것이라 한다. 아무리 약한 신앙도 신앙으로서 확실성을 갖는 것이다.83) 그는 예정론에 입각하여, 신앙으로 신자는 궁극적 승리를 하며 불신앙이 신자의 마음을 결코 점령할 수 없다고 본다.84) 신앙으로 승리의 확실성은 신자가 그리스도와 한 몸되는데 있다.85)


(4)회 개
회개는 언제나 신앙에 따라서 올뿐만 아니라 신앙으로부터 나온다. 그것은 죄인이 사탄의 전제와 죄의 멍에와 죄악의 비참한 예속에서 해방되어 하나님 나라로 옮겨가기 위하여 죄사함과 번제가 복음의 선교를 통해 제물되었기 때문에 누구도 과거 잘못에서부터 정로로 돌아서지 않으면 복음의 은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86)
회개는 단순히 잘못을 뉘우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말씀을 따르려고 생을 돌이키는 것이며, 그것은 바르고 거짓없는 하나님 경외에서 나오고 육과 낡은 자아를 죽이며 영이 소생하는 데서 나타난다.87) 회개는 양면성이 있다. 죄를 인식하는 것과 그 받을 심판을 의식하고 영혼의 슬픔과 고통으로 낙담하는 것이 회개의 첫째 부분으로 통회라 부르는 것이며, 새로 사는 것은 신앙에서 일어나는 위로를 말하는데 이는 사람이 죄를 인식하므로 좌절되고 두려움에서 하나님의 자비를, 그리스도를 통해 오는 긍휼과 구원을 보게 되어 자신을 분기시켜 용기를 되찾아 사망에서 생명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말한다.88) 즉 회개는 죽이는 것과 새로 사는 것이 있는 것이다.
칼빈은 회개를 율법적 회개와 복음적 회개의 두형태로 본다. 율법적 회개는 그것으로 죄인은 뼈아프게 생각하나 거기에 머물지 않고 더나아가 자기 상처를 위한 약으로, 공포에 대한 위로로 그리스도를 붙드는 것이다.89)
회개와 신앙은 불가분리의 관계가 있으나 칼빈은 구분시킨다. 회개의 뜻은 신자의 생활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전향하는 것이며, 그 전향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외할 때 일어난다. 그것은 옛사람과 육신이 죽는 것과 성령에 의해 새로 사는 것이다.90) 이 갱생은 순간의 사업이 아니라 죄와의 투쟁에 있어서 신자의 지상생활 중 계속하는 것이다. 비록 허물은 씻겼으나 죄의 사실이 정욕 가운데 남아 있기 때문이다.91)
회개의 열매는 하나님께 대한 경건의 의무와 사람에게 대한 사랑의 의무이며,중생,성결,순결 등으로 나타나야 한다.92) 이것은 자기 생활을 하나님의 법에 표준하여 회개한 증거를 분명히 보이는 것으로 성령께서 지적하는 마음의 근원적 불결을 정죄하는 내적 회개에서부터 진정한 회개를 나타내는 외적회개로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93)
이 회개는 인간이 하는 것 같으나, 하나님이 하게 해주셔야 가능하므로 회개 역시 하나님의 독자적 행동에 기인하는 것이다. 회개는 지정의의 요소를 포함해야 하며 회개의 지(知)는 죄를 깨닫는 것이다.94) 회개는 지적수준에서 정적 수준으로 향상되어야 하며 완숙한 회개는 의지적 단계까지 이르러야 한다. 이것은 과거지향적이 아니라 앞으로 삶을 결단하는 것이다.95)


(5) 칭 의
예정하사 택하고 부르신 자를 거듭나게 하시고 믿음을 주셔서 회개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신앙은 칭의에서도 유효하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보내주심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무죄함을 통해 하나님과 화해되어 하나님을 심판주가 아니라 자비로운 아버지로 모시게 하심과 그리스도의 영으로 성화되어 삶의 결백과 순결을 향해 전심하게 하심인 것을 중생에서 언급하였는데, 칭의를 언급함은 하나님의긍휼로 값없이 의를 얻는 신앙이 선행을 결여하지 않으며 성도에게 선행이 무엇인가를 이해시키고,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파악하고 구원을 확립해 주는 기초가 됨을 강조하기 위함이다.96)
칭의의 개념은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에서 의로 간주되고 용납되는 것이다.97) 이 칭의 교리는 개신교 신학의출발점이며, 교리이기 이전에 체험이다. 칼빈은 이것을 강요에서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말한 다음 기독교의 제일되는 요지로 의인을 설명한다.98) 칭의는 의의 전가이며 그리스도를 통해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죄사함을 받음을 말한다.99) 칼빈은 스콜라주의의 선행 즉 행함으로 얻는 의를 반박하며, 거듭난 자의 선행도 의를 가져올 수 없고 오직 믿음으로만 의인됨을 주장한다.100) 칭의는 선행에 대한 값이 아니고 값없는 은혜인 것이다.101) 칭의는 근거가 우리 밖에 있다. 오직 그리스도안에서만 의롭기 때문이다.102) 이 칭의의 방법은 놀라운 것이며 그리스도의의로 옷입고, 심판대에서 두렵지 않으며, 인간 스스로는 정죄하지만 외부에서 의롭다함을 선고받는 것이다.103)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보시고 의롭다하시므로 칭의를 원하는 자는 자신 안에 있는 조그만 의도 거절하고 우리 밖에 있는 의 그리스도에게 도피해야만 한다.104) 이것으로 칼빈의 칭의는 "오직 우리 밖에" 즉 "그리스도안에서만" 발견될 수 있음을 지적하므로 중생교리만 아니라 칭의 교리에서도 계시신학을 추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105)
칼빈은 유죄한 인간을 무죄하다고 하는 칭의가 법적관계로 전환이 이뤄짐을 강조한다.106) 곧 심판자 하나님이 유죄 고소받은 자를 용서하는 사법행위이다. 의인과정은 최고 재판자로 말미암은 은혜의 용서에서 이뤄지는 것이다.107)
칭의의 목적은 하나님만이 의로우시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다. 자기 의를 자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훼손하는 것이다.108) 자기 의를 생각하는 한 양심의 평안은 있을 수 없고 값없는 하나님의 의가 선물로 부여될 때 양심의 평안을 얻을 수 있다.109) 칭의에서 신앙은 전혀 수동적이므로 우리가 갖고 있는 무엇으로도 하나님의 은혜를 얻을 수 없고 오직 그리스도에게서 우리에게 없는 의를 받는 것이다.110)
이상에서 칭의는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종의 형상을 취하시고 성부께 복종하신 그 순종을 믿음으로 그 의를 옷입는 죄인이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이다. 그것은 무죄하기 때문이 아니고 은혜스러운 전가로 그리스도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6)성 화
칭의의 상태는 하나님께 헌신된 성화의 생활을 요청한다. 성화란 죄인을 순결하게 하시며 죄인의 전성질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새롭게하여 선행하도록 하시는 성령의 계속적이고 은혜로운 작용이다.111)
칼빈에 의하면, 죄용서와 성화 또는 의인과 중생은 우리가 그리스도와의 합일로 얻게 되는 최상의 두선물이다. 칼빈은 강요에서 하나님이 그리스도께 부여하신 은총과 그리스도가 가지는 모든 것을 우리의 것이 되게 하는 그리스도와의 합일112) 즉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내주는 신앙을 통해 성령께서 이루심인 것을 말한 뒤에 먼저 성화를 말하고 의인교리를 발전시키는 것은 칼빈의 특수한 면으로 성화가 바로 이해될 때 의인론이 잘 이해되기 때문이다.113)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합일되고 접붙임을 받는 것은 그의 영으로 사는 것이며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내주할 뿐아니라 우리 전존재를 소유함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와 합일되고 그의 영으로 사는 것이 성화의 삶이다.114) 칼빈은 단순히 회개를 성화로 설명하여 성화의 목표는 아담의 범죄로 더러워지고 상실된 하나님의 형상을 우리 안에 다시 회복하는 것이라 한다.115)
그런데 칼빈은 재침례파가 주장하는 기독자의 완전 즉, 하나님의 자녀들은 무죄한 상태로 회복되었으므로 더 이상 육신의 정욕을 억제할 필요가 없고, 성령을 따라 행동하면 미로에 빠질 우려가 없다는 사상을 신랄하게 비판한다.116) 그는 신자들도 범죄하며, 그것은 중생한 사람 속에 나타남은 악의 부싯개가 있기 때문에 불같은 정욕이 솟아나와 범죄하도록 자극하는 것이라 한다.117) 칼빈은 어거스틴의 신자들의 죄악성에 대한 견해를 따르되,118) 어거스틴은 죄악성을 연약이라한 대신에 그는 그것을 죄라고 지적한다.119) 그는 신자들에게 죄는 지배력을 상실하였어도 내주한다고120) 보며, 우리는 성령의 성켤케 하심으로 정화되나 죽을 육체에 거하는 한 많은 죄와 연약으로 쌓여 있으므로 완전을 향해 꾸준히 전진하며 얽매이기 쉬운 죄를 날마다 대적해야 한다고121) 주장한다. 이처럼 칼빈은 순식간에 성화되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 성화과정을 말하며 그동안에도 여전히 죄인이므로 평생 회개해야 함을 말한다.122)
칼빈에 있어서 성화가 일어나는 근거는 하나님의 선택과 소명에 의존하며 그의 은총에 근거하지 우리 자신의 노력,선행,의에 의존하지 않는다.123)


(7)성도의 견인
그리스도안에 있는 하나님의 선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그리스도의 보호 아래서 선택된 자의 인내가 보증된 것이다.124) 성도의 견인은 신자가 구원의 길에서 인내하는 계속적 활동을 암시해 주지만 실제 견인은 신자의 활동이기 보다 하나님의 사역으로 신자가 이활동에 참여한 것이다. 이는 성령이 신자 내부에서 이루시는 계속적인 구원완성을 위한 작용이다. 성도가 현세에서 구원의 확신을 얻을 수 있음은 이런 하나님의 견인은혜를 믿을때이다.125)
참 신자는 신앙과 복음의 말씀에서 이미 명하신 선택의 확실한 기초가 있으므로 결코 타락할 수 없다.126) 그들의 구원은 세계의 전 구조가 흔들린다 해도 확실성 자체는 변함없이 확고한 기초위에 있으므로 망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그의 것이 된 이상 우리가 영원히 안전함을 확신하게 하신다.127)
칼빈의 구원관은 이처럼 예정론에 근거하여 구원된 성도를 하나님이 끝까지 지켜주시는 견인에서 절정에 이른다.


B.웨슬레의 구원이해
1.웨슬레의 인간이해와 죄관
(1)타락이전 인간
웨슬레는 인간의기원과 성격을 성서 그대로 해석한다.1)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이간은 피조물 중 으뜸이다.2) 웨슬레는 인간육체의 구성성분을 만물의 4성분인 흙,물,불,공기로보고 연구하였다.3) 그러나 인간은 물질적 존재만이 아니라 생각,판단,상상,기억,오감으로 느끼는 능력 등 전혀 다른 본성인 정신 혹 영혼을 갖고 있다. 이것은 물질적 실체가 아니다.4) 웨슬레는 인간의 육체와 구별되는 존재이며,육체가 죽어도 영혼은 죽지 않음을 기억시켜 준다.5)
웨슬레는 인간의 영혼에 하나님과 같이 이지가 품부되어 있어 판단과 의지적 감정작용을 하며, 영혼의 여러 속성 외에 자유를 또 하나의 심적 요소로 보아 이것으로 행동의 결단과 선악간의 선택을 한다고 생각한다.6)
웨슬레는 인간이 지닌 하나님의 형상을 셋으로 분류한다.7) 첫째,자연적 형상으로 인간은 영원한 존재로서 이해력, 의지의 자유 및 여러 정서를 지닌 영적 존재이며8) 둘째,정치적 형상으로 다른 피조물을 관리하는 능력의 소유자이며9) 셋째,도덕적 형상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의로우심,순결성,진실성,자비,사랑으로 인각되어 있다.10) 이중에서 도덕적 형상을 본래적 형상으로11) 보아 중요시한다. 이것으로 인간은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하나님을 알며 사랑하고 순종한다.12) 인류의 조상 아담의 원 상태는 죄없는,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사는 모습이었고,13) 원의를 즐기며 피조물을 돌볼 책임을 갖고 있었다.14)
이상은 타락 이전의 인간의 상태이다. 그러나 웨슬레의 구원의 대상은 범죄한 인간이다. 웨슬레는 타락이후 인간은 그 상태가 완전 역전되어 원시적 완전성이 변하고 본성이 완전 부패한 것으로 본다. 웨슬레의 바른 인간이해는 타락한 인간 이해이며 죄관에서 뚜렷해진다.


(2)타락이후 인간과 죄
a. 죄의 기원
웨슬레는 죄의 기원을 에덴에서의 아담의 불순종으로 보며 그것은 불신앙과 반역


이라고 한다.15)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와 함께 지켜야 할 법을 주셨는데 자유의지로 법을 지키는 선 대신 법을 안지키는 악을 택했다. 창조주의 뜻 대신 자신의 뜻을 선택한 것이다.16) 이처럼 하나님과의 원래 충성된 관계를 깨어지게 한 인간의 불순종이 원죄이다.17)
b. 원 죄
웨슬레는 구원론을 전개하면서 인간의범죄사실을 중요시하며 인간의 죄의 진상과 범람하는 죄와 그 기원을 원죄로 설명한다.18) 이 원죄설이 기독교 중심도리이며 이것을 신앙하는 여부로 기독교와 이교를 구분할 수 있다.19)
웨슬레의 원죄사상은 어거스틴,루터,칼빈과 동일하다.20) 웨슬레는 인간이 범죄로 그 성품이 전적타락하였고, 영혼이 완전부패하였으며 마음의 생각,계획이 항상 악하다고 한다.21) 즉 인간은 범죄로 본래 소유한 하나님의 형상인 원의에서 떠나 본질상 악한 성향을 갖게된 것이다.22) 원죄는 하나님으로부터 빗나가 하나님 대신 거짓 신을 만드는 인간적 능력이며23) 인간은 하나님을 배신하며 복된 삶을 버리고 스스로의 행위의 교만한 안내자가 된 것이다.24)
이렇게 완전타락한 인간은 자신을 구원 못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도 없고 하나님께 나갈 희망도 없다.25)
c.죄의 전달
아담은 인류의 원형 또는 대표이므로 모든 인류의 상태는 아담에게 달려있다. 그의 의지적 범죄로 모두가 타락하였고 고통,슬픔,온갖 불행을 상속하였으며, 또 죄성을 얻어 세상을 더럽히는 모든 죄와 악덕을 낳았다.26) 죄의 결과로 인간에게 죽음이 왔다.27) 어린이가 아직 범죄하지 않았어도 아담안에서 함께 죽음을 당한다.28) 이 죽음에는 영혼의 영원한 죽음도 포함된다.29)
이 퍼져나가는 원죄의 저주는 아담과 각자를 넘어 모든 사회적 관계와 조직 및 피조물을 함께 타락시켜 고통을 겪게 한다. 모든 피조물에 번지는 악은 타락의 직접적 결과이고 증거이다.30)
d. 원죄를 지닌 인간
자유의지를 남용한 결과 타락한 아담31)에 의해 죄성을 지닌 자연인은 영적 수면 상태에 있다. 그는 하나님이나 그의 법도, 영적 선물, 영적 사건을 전혀 모르며 항상 위기 가운데 있다.32)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고 자신에 대해서도 무지하며 범죄하면서도 자책감이 없는 죄의 종이다.33)
웨슬레는 자연인을 우상숭배자로 규정짖는다. 그것은 마음 속에 하나님 보다 자신을 더 섬기고, 세상을 더 사랑하기 때문이다.34) 인간이 타락 이전에 완전한 자유를 지녔으나, 타락이후 자연인은 원하는 대로 악을 선택할 자유는 있어도 선을 택할 자유는 잃었고, 하나님 대신 마귀의 속성이 그에게 있는 것이다.35) 이런 자연인은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고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며 하나님과 관계회복을 위해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다.36)
e.원죄와 특수한 죄
웨슬레는 죄를 원죄와 특수한 죄로 구분하는데 양자간의관계는 유기적이고 밀접하다.37) 원죄는 인간본성의 내적 타락으로 열매맺게 하는 악의 뿌리이며 특수한 죄는 원죄에서 나온 악한 싹이다.38)
웨슬레는 개인의 죄 즉 자범죄를 둘로 나눠 내적인 죄와 외적인 죄로 본다, 내적인 죄와 구별되는 또 하나의 죄가 있는데 태만죄이다. 이는 소극적인 내적 죄로 인간의 하나님과 멀어짐과 형제의 죄를 책하지 않음과 경건훈련을 게을리하는 것등이다.39) 이것은 영적 나태함이다. 또 다른 내적인 죄는 자랑, 성냄, 하나님의 외의 것을 지나치게 사랑하고, 피조물에서 행복을 얻으려는 욕망등에서 나타난다.40)
인간의 내적 죄는 성장하여 결국 영혼을 어둡게 만들어 외적인 죄로 노출된다.41) 곧 특수한 죄는 인간 본성에 잠재한 죄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상에서 원죄 즉 죄성은 모든 다른 죄의 씨이며 인간 마음과 생활에 나타나는 모든 특수한 죄의 원인이다.42)


(3)웨슬레의 죄관과 구원관
린드스트롬(H.Lindstrom)은 웨슬레의 죄관이 죄책관념에 집중되어 있으면서 언제나 죄를 선천적 타락으로 본다고 한다.43) 웨슬레는 선천적 타락, 원죄를 일반적인 죄와 같이 객관적이고 주관적인 각도에서 파악한다. 이런 두가지 국면, 곧 일면은 죄와 하나님과의 관계와 죄와 인간 자신과의 관계를 두 개의 관계로 본다. 웨슬레의 의인 교리는 죄책으로서의 죄와 관련되어 있고 성화교리는 선천적 요소로서의 죄와 관련되어 있으므로 그의 죄관의 객관적, 주관적 국면은 구원론에서 의인과 성화와의 관계와 같은 것이다.44)
속죄의 요소로서 죄사함은 구원의 근원이다. 즉 용서하심의 사랑이 모든 것의 근원이며 인간은 죄책에서 해방되므로써 선천적 죄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리스도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로 죄사함 받는 동시에 그리스도안에 있는 믿음으로 성화될 수 있다. 죄는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에게 그 권세를 상실한 것이다.45)
웨슬레는 죄를 질병으로 보므로 객관적, 법적 견지에서가 아니라,주관적, 의학적 측면에서 구원을 관찰한다. 구원은 질병을 치유받는 것이다. 웨슬레는 원죄를 문둥병으로 다른 죄들은 원죄에서 기인하는 상처, 질병, 타락으로 묘사한다. 죄를 이처럼 구원의 동기와 핖수성으로 보므로 웨슬레는 성화관념을 중요시하는 것이다.46)
인간은 자신의 질병을 의식하기 전에 의원되시는 그리스도께 나올 수 없다. 인간본성의 타락에 대한 지식이 성화의 주관적 조건이며, 구원과정의 첫단계이다. 그 구원의 목적은 성화이다.47) 또 인간은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고 그의 죄성과 죄책,무력함을 깨닫기 전에 그리스도를 신앙할 수 없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온 인류를 위한 치유자, 의원이 되신 것이다.
이상에서 웨슬레의 죄관과 구원관은 죄를 질병으로 보며 구원은 그 질병을 치유하는 것으로 주관적, 의학적인 견해가 객관적, 법적 태도를 능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48)
2.구원의 단계
웨슬레는 여러번 구원단계순서의 윤곽을 요약했는데49) 이는 그의 신학적 관심이 인간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것으로 인간에게 택해야 하는 길을 제시하고 그 길을 걷도록 도와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웨슬레가 말하는 구원은 값없이 주신 하나님의 축복으로 현재의 것이며50) 믿음을 가진 자가 실제 과거의 죄책, 죄의 세력과 두려움에서 구원받는 것이고51) 하나님께 나가는 것이다.52) 이 구원은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거룩하고 겸손, 온유, 참는 사랑으로 의롭게 되는 순간부터 시작되어 점진적으로 성장하여 결국 마음의 모든 죄가 씻겨 순수한 사랑으로 충만해진다. 그 후 계속 성장하여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을 때 까지 증가한다.53) 이런 구원이해에서 은총관,의인,성화교리가 나왔는데 웨슬레는 성화에 비중을 둔다54)
또 믿음은 그리스도의 복음 전체에 대한 동의이며, 그리스도의 보혈에 전적으로 의뢰하는 것, 우리 자신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의존하는 것이다.55)
웨슬레는 구원순서를 a.선행은총, b.칭의전 회개, c.칭의 d.신생=중생, e.점진적 성화, 신자의 회개, 영의 증거, f.성결, 그리스도인의 완전, (g. 영화) 으로 요약한다.56)


(1)선행은총과 복음적 신인협동설
a.선행은총
많은 이들에게 선행은총은 새로운 개념이 되고 있지만 이 용어는 웨슬레의 구원단계를 이해하는데 필수적이다. 이를 잘못 이해하면 웨슬레가 자연인의 능력과 자유의지의 공로를 믿었다고 오해하게 된다. 선행은총은 특별한 은총이 아니라 보편적인 하나님의 은총으로 구원의 시작과 완성 전체에 역사하는 은총이다. 이 은총을 특별한 관계의 목적에 따라 여러 방식으로 정의할 뿐이다. 은총은 영적순례 전반을 통해 단계적으로 수여되며 다양한 효과와 응답을 야기한다.57)
이 선행은총은 인간이 하나님과 그 필요성을 인식하기 전부터 작용한다.58) 웨슬레는 선행은총으로부터 구원이 시작된다고 본다.59) 웨슬레 신학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구속사업과 이에 대한 인간의 적응에 대한 것으로60) 타락한 인간에 대한 구속론적 입장에서 하나님 편에서 시작된 구원의 손길을 선행은총으로 표현한 것이다. 타락한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을 지향할 수 없으므로61) 구원을 얻으려면 하나님의 은총에 전적으존해야 함을62) 말한다. 선행은총은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역사로 인간이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과 그리스도의 인간을 교화하는 빛과 성령께서 사람에게 역사하여 깨닫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63)
선행은총은 우리안에 하나님의 의지를 감지할 수 있는 최초의 감각을 창조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어겼다는 확신을 순간적이나마 갖게하며 우리의 제일 가는 소원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동기를 부여한다. 이로써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역사에 인간의 응답이 가능케 된 것이다.64) 웨슬레는 이와 같은 체험으로 인간이 참회에 이르며 이것이 완전한 구원에 이르는 한 단계가 된다고 믿는다.65) 그러나 이 선행은총은 구원을 위하여 충분하지 못함을 명심해야 한다.66) 이 선행은총으로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빛은 양심과 양심의 활동에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 웨슬레는 양심을 자연적인 것이나 타고난 것이 아니라 선행은총의 표현으로 본다.67) 그러므로 인간이 하나님의 영, 빛을 꺼버리지 않는 한 은총의 역사 밖에 있는 자연상태의 사람은 하나도 없다. 모두가 적든 많든 이 선행은총을 가지며 양심의 빛을 거역했을 때 불안을 느낀다. 인간은 은총이 없어 범죄한 것이 아니고 받은 바 은총을 활용치 않아 범죄하는 것이다.68)
선행은총은 사실상 아담 이후 인간이 의롭다고 인정되기 전부터 역사하고 있었으며69) 그 결과 그리스도의 대속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값없이 주어져 타락으로 완전파괴된 하나님의 형상이 부분적이나마 회복된 것이다.70)
이상에서 선행은총은 구원의 시작이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으며71) 웨슬레의 구원론이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어거스틴이나 종교개혁자들의 신앙과 일맥상통함을 말하는 것이다.72)


b.복음적 신인협동설
웨슬레는 선행은총으로 인간이 하나님을 찾을 수 있고 회개하며 믿음으로 의인에 이르게 됨을 주장하는데73)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인간의 책임문제이다. 웨슬레는 칼빈과 같이 인간의 전적타락과 완전 무능력을 인정하지만 차이점은 선행은총으로 하나님의 구원에 응답할 능력이 인간에게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구원의 책임이 칼빈은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에 좌우되므로 인간의 책임이 없으나, 웨슬레는 모든 사람이 선행은총으로 자기의지의 결정에 따라 책임을 지게 된다는 것이다.74) 이면에서 인간은 하나님과 협력자이다.75)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은총으로만 가능하며 하나님께서 시작하여 이루신 사건으로 신인공동적이다.76)
웨슬레가 주장하는 신인협동설은 반펠라기우스주의나 중세 카톨릭의 주장처럼 자연인이 하나님과 협동할 능력을 가진 것을 근거로 하는, 협동이나 인간이 절반, 하나님이 절반씩 나눠 맡는 협동이 아니다. 인간의 자유는 펠라기우스처럼 손상되지 않은 자연적 능력행사로 생각할 수 없다77) 스타키(L.Starkey)는 이를 복음적협동설(Evangelical Synergism) 이라 했으며 콕스(Leo Cox)는 하나님이 홀로 역사하시는 범위안에서의 협동설이라 하였다.78)
콜린 윌림암즈(Coollin Williams)는 이 선행은총이 우리 속에 신앙을 용납하거나 거부할 능력을 창조한다고 보며79) 선행은총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구원의지에 응답하는 것을 인간의 공적이나 수고의 행위로 보아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80) 따라서 복음적 신인협동설은 인간이 하나님의 은총으로 하나님의 구원하심에 책임있는 위치에서 함께 호응하여 구원을 이뤄나가는 것을 말한다.81)
(2)회개(칭의전)
웨슬레는 선행은총으로 시작된 구원이 깨닫는 은혜인 회개로 인해 계속 이뤄진다고 보아82)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계속적으로 본다83)
그는 복음을 믿기 전에 회개해야하며 그리스도를 신뢰하기 전에 자신에 대한 의와 신뢰를 포기해야 한다.84) 이 회개는 죄인이 일순간 선행은총으로 자신의 추한 모습과 죄과를 깨닫는 것으로 죄책에서 벗어나려는 욕구와 행동을 말한다.85)
웨슬레는 회개를 철저히 죄를 뉘우치는 율법적 회개와 죄에서부터 정결한 마음으로 변화받아 생활까지 변화되는 복음적 회개로 나눈다.86) 한편에서 웨슬레는 회개와 그 열매는 믿음을 위해 간접적으로 필요한 것이라 했다.87) 웨슬레는 칭의 이전의 회개와 그에 다른 열매가 믿음을 갖기 전에 있어야함을 주장하므로 성서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3)초기성화(칭의 신생)
a.칭의(의인)
죄인은 선행은총으로 죄를 깨닫고 회개한 후에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주어진 선물인 믿음으로 구원을 체험하게 된다.88) 웨슬레는 그것을 칭의라 하며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ㄱ)칭의: 죄책에서 구원받아 하나님의 사랑안에 거하게 되는 것으로89) 죄의 용서와90) 같은 말이며 이것은 죄인이 하나님께 수납되는데 필요하다91) 광의로는 그리스도의 대속을호 지금 그를 믿는 죄인에게 이뤄지는 죄책과 형벌에서의 해방이요 그의 마음 속에 형성된 그리스도로 인해 죄 전체에서 벗어남을 의미한다.92)
ㄴ)칭의의 기초: 그리스도의 보혈과 의 즉 그리스도께서 우리 범죄함을 인해 자기 영혼을 다 쏟도록 행하시고 고통 당하신 모든 것이며,93) 하나님이 아담안에서 타락한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안에서 화해하시고 죽음에서 영생에 이르도록 회복시켜 주신 은혜이다.94)
ㄷ)칭의의 조건: 불경건한 자를 의롭다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믿음)만이 유일한 조건이며95) 그리스도께서 죄를 완전히 씻어 주셨음을 확신하는 것이다.96)
ㄹ)칭의의 대상: 용서받아야할 죄를 지닌 불신앙의 사람들로서 죄책을 벗고자하고, 불경건하고 행한 것이 없는 자들97)
ㅁ)칭의와 회개: 회개와 그 열매가 어떤 의미에서는 칭의에 필요하나 믿음과 같은 정도로 필요한 것이 아니고 조건부로 필요하다98)
ㅂ)칭의의 결과: 칭의되는 순간에 거듭나서 흑암에서 광명한 빛으로, 잔악한 마귀의 형상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악마적 생각에서 그리스도안에 있는 마음으로 내적변화가 일어나 그 결과 외적인 죄의 지배에서 구원되고 내적인 죄의 힘도 깨어져 신자가 더 이상 죄를 따를 필요가 없다.99) 그러나 아직 내적인 죄가 근절된 것이 아니다.
ㅅ)웨슬레는 칭의가 실제 죄없는 사람이 된 것이 아니고 그것은 성화에서 이뤄지며, 칭의는 하나님이 그 영으로 우리 속에서 해 주시는 것을 의미한다.100) 이 칭의를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개선은 하나님의 진노를 사라지게 한다.101) 웨슬레는 의인의 조건은 믿음이며 그것으로 죄인이 하나님과 관계개선은 되지만 실제 죄인이 성화된 것은 아님을 말한다.102)
ㅇ)칭의와 신생:웨슬레는 의인되는 순간 성결이 시작되며, 거듭나 위로부터 성령으로 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내적 새로워짐과 보내주신 성령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된다고103)하여 칭의의 다른 측면으로 동시적 사건인 신생을 말하고 있다. 린드스트롬은 엄밀한 의미에서 구원이 시작되는 단계는 의인부터이며 의인과 신생은 순간적으로 온다고 한다. 의인은 상대적 변화이고 신생은 참된 변화이다.104) 캐논(Cannon William)은 이 의인교리가 웨슬레신학의 기본교리이며,의인 다음에 부수적인 것으로 신생을 언급한다.105) 조종남 박사도 의인은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로서 죄인이 실제 의로와지기 시작하는 신생과 구분한다.106)
b.신생(중생)
웨슬레는 의인사건과 동시적 사건인107) 신생이 사고적 순서로 보아 의인 뒤에 온다고 본다. 의인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우리 죄를 사해주신 역사이고 신생은 우리 안에서 하나님이 타락한 본성을 새롭게 하시는 역사이다.108)
ㄱ)신생의 본질: 하나님께서 우리를 생명으로 이끄실 때 우리 영혼 안에서 역사하시는 위대한 변화 즉, 그리스도안에서 새 피조물이 되었을 때 전능하신 하나님의 영으로 우리 영혼 안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변화이다.109)
ㄴ)신생의 이유: 인간이 타락으로 본래 소유한 생명과 하나님이 형상을 상실하여 거룩함 보다 악마의 형상을 쫓아 죄악 가운데 살게 되었는데, 이처럼 인간본성이 전적타락하였으므로 성령으로 새롭게 다시나야 한다.110)
ㄷ)신생의 필요: 성결을 위해, 영원한 구원과 이세상 및 장차 올 세상에서의 행복을 위해 필요하다. 곧 다시 태어나 본성의 경향이 변화되고 새롭게 되야만 한다.111)
ㄹ)신생과 세례: 세례는 외적인 역사, 가시적 사건, 육신을 깨끗케하는 인간행위이나 신생은 내적 역사, 불가시적 사건, 영혼속에서 일어나는 변화이다. 신생은 항상 세례를 수반하지 않는다.112)
ㅁ)신생과 성화: 신생은 성화의 일부분이며 성화의 문 통로이다. 갓난아이가 성장해야 하듯 신생하면 그후부터 내적, 외적인 성화가 시작된다.113)
ㅂ)신생의 표적: 믿음은 진리에 대한 지적 동의가 아니고 하나님 안에서의 확고한 의뢰와 믿음이며 모든 죄를 이기는 힘과 그 결과로 오는 평안이다. 소망은 하나님께 나온 신앙의 철저한 확신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다. 사랑은 주를 변함없이 사랑하여 주와 한 영혼으로 결합되어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이다.114)
ㅅ)신생으로 된 하나님의 자녀: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믿음으로 범죄하지 않고 늘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하나님을 소망하여 선한 양심의 증거를 갖는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결과 이웃을 사랑한다.115)


(4)점진적 성화.
a.신자와 회개
칭의 전에 회개가 있듯이 칭의 후에도 회개가 필연적으로 있으며 이 회개를 등한히 하면 성결을 기대할 수도 없고 은혜안에서의 성장도 할 수 없다.116) 신자의 회개는 하나의 내적 변화 곧 죄에서 거룩하여 지는 마음의 변화를 의미한다.117) 이것은 중생전 회개와 다른 올바른 회개로 자신을 죄인으로 아는 것, 곧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고 성령의 역사로 우리 속에 남아 있는 죄를 깨닫는 것이며118) 하나님의 자녀이면서도 자신이 죄에 대해 책임이 있고 무능한 죄인임을 인식하는 것이다.119) 웨슬레는 교회신조 제9조에서 원죄를 언급하면서 이 본성의 부패성은 거듭난 사람에게도 남아있으며 이 신자의 죄는 내적인 죄, 죄된 성질, 의욕, 감정이라 한다. 신자는 의롭다함을 받는 순간부터 내,외적인 죄를 이길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으나,육욕, 악한 성질이 성령을 거스리고 있으므로 서로 대적하는 두 세력이 신자 안에 있음을 긍정해야 한다.120) 그러므로 신자의 회개는 중생한 사람들 속에 남아 있는 육에 속한 마음, 악에로의 경향성, 타락하기 쉬운 마음 즉 성령을 거스리는 육의 경향성을 깨닫는 것이다.121)
b.영의 증거
웨슬레는 진실한 그리스도인의 체험에 입각하여 모든 신자에게는 그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하나님의 영의 증거와 우리 영의 증거가 있음을 주장한다. 이 영의 증거는 중생 후 점진적 성화과정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신자 안에 있는 상반되는 두세력간에 갈등을 통한 성장 중의 신자에게 하나님의 영이 그들의 영과 더불어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는 아직도 성령을 거스리는 육성을 부인할 수 없으나 이런것들이 성령을 이길 수는 없다.122)
ㄱ)성령의 증거: 이것은 신자의 영혼 위에 나타나는 하나의 내적인상이며 그리스도께서 나를 사랑하사 구속하심으로 내 모든 죄가 사했음을, 하나님과 화목되었음을 증거하는 것이다.123) 웨슬레는 이 증거를 계속적인 것으로 보아 성령이 신자 안에 내재하는 한 지속되는 것으로 본다.124)
ㄴ)우리 영의 증거: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도 거룩하게 하셨다는 양심의 증거이다. 또 우리가 양자의 영안에서 그의 영에 의해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된 양자된 자에게 속하는 성품을 받았다는 의식, 곧 온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이다. 신자가 성령으로 인도함 받아 거룩한 성품과 행동을 가진 것을 알면 그는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안다.125)
ㄷ)영의 분별(공동증거): 신자가 의식하는 내적인상 즉 성령의 순수한 열매 곧 내적, 외적인 성결을 가져올 때 하나님께서 신자에게 계속 증거를 주신다.126)
c.점진적 성화
신자는 거듭난 때부터 성결의 점진적 역사를 시작하며127) 점진적 개념에 순간적 요소가 결합되어 종말론적으로 성장하는 것이다.128)
이 단계에서 신자는 성령으로 인해 육의 행위와 악한 성질에서 나오는 행위를 억제할 수 있으며 그가 죄에 대해 죽을수록 더욱 하나님을 향해 살게 된다. 악의 모든 모양도 버리며 힘껏 사람들에게 선행하기를 열심하여 은혜로 나아간다. 또 책망할 것이 없이 하나님의 규례안에서 걸으며 성령과 진리로 예배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향락을 외면하면서 은혜에 계속 나아간다. 그런식으로 신자는 온전한 성결 즉 모든 죄에서 완전한 자리로 진행하는 것이다.129)


(5) 완전성화(성결, 완전)
a. 성 결
신자는 중생이후 점진적 성화과정을 거쳐 순간적으로 성결을 체험한다.130) 성결은 신자가 죄악의 권세와 뿌리로부터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됨을 의미한다.131) 웨슬레는 신생했어도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시기 전에는 악의 뿌리, 육의 마음이 멸절되지 않음을 말하여 은혜에 의한 성결을 강조했다. 이 두 번째 변화에서만 생래적인 죄는 생존치 않게 된다132)
ㄱ)성결의 조건: 칭의에서 처럼 믿음이다. 믿음 없이는 아무것도 성결을 받을 수 없다. 믿음으로만 성결받기에 충분하다.133) 웨슬레는 중생후 올바르게 이해된 회개와 선한 일을 실천, 자비와 경건행위들이 어떤 의미에서는 성결에 필요하다고 한다.134)
s)성결의 방법: 신자는 계속해서 믿음에서 믿음으로 나아가고 내주하는 죄에서 깨끗함을 받을 수 있으며 모든 불결함에서 구원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때 모든 죄책과 형벌에서 구원받는다.135) 또 매일 매시 매순간 이를 구해야 한다. 선행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 그 모습 그대로의 상태에서 믿음으로 구할 때 기대할 수 있다.136)
ㄷ)성결에 필요한 믿음: 하나님께서 성결을 성서에 약속하신 것에 대한 신적인 증거와 확신이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무엇이나 이루실 수 있다는 신적인 증거와 확신이고, 하나님께서 지금 성결을 이루고자 하신다는데 대한 신적 증거와 확신이다.137)
ㄹ)성결의 증거: 칭의에서 처럼 하나님께서 신자에게 주신 성령의 증거와 열매롤 알 수 있다. 칭의에서 죄가 용서되었음을 증거하듯 성화에서도 되가 제거 되었음을 증거한다.138)
ㅁ)성결의 변화를 기다리는 마음: 무관심이나 게으름이 아닌 활발한 전적순종과 모든 계명의 열성적 준행, 깨어있어 애쓰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기다리며, 열심히 기도, 금식하고, 하나님이 정해주신 은혜받는 방법을 지키며 기다려야 한다. 몰론 믿음으로 받는 것이지만 하나님은 그가 정하신 방법을 따라 부지런히 구하지 않2는 자에게는 주실 생각도 않으신다.139)


b. 완 전
웨슬레의 성결은 성화,완전으로도 표현된다.140) 완전은 완전한 사랑을 뜻하며 이는 죄를 내쫓는 사랑이며, 영혼전체를주관하며 온 몸을 채우는 사랑이다. 이것이 곧 항상 기뻐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사랑이다.141)
ㄱ)어떤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이 완전하지 못한가?: 지식에 있어 불완전하며 실수를 전혀 범하지 않을 정도로 완전하지 못하며 연약성을 떠나 완전할 수 없고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유혹을 벗어날 수 없다.
ㄴ)어떤 의미에서 완전한가: 하나님으로부터 났다는 의미에서 완전(요일5:18)하며 신자는 죄를 짓지 않기 때문에, 즉 죄를 범하지 않을만큼 완전한 것이고, 악한 생각과 성품에서 벗어나 해방되었다는 의미에서 완전하다.142)
ㄷ)그리스도인의 완전에 대한 소고: 이는 웨슬레의 완전에 대한 말년의 견해로서, 완전은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겸손, 온유, 오래참는 사랑이 우리의 기질과 언행을 지배하는 것이며 부분적으로나 전적으로 타락할 여지가 있다. 받는 모양은 언제나 믿음이란 단순한 행위로 이뤄지며 즉각적이다. 그 순간 전후에 점진적 성장이 있다. 그 시기는 보통 죽기 직전이라고 보지만 죽기 10,20,40년 전일수도 있다.143)


Ⅳ.칼빈신학과 웨슬레신학의 구원단계비교
A.구원단계의 관점 비교
칼빈과 웨슬레 신학은 서론에서 언급한대로 그들의 개인적인 하나님과의 만남에서 비롯되었으며 그들은 체험된 하나님과 자신의 신앙경험을 그들의 사상체계인 신학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칼빈신학은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고 옹호하는 신론을 중심으로 형성된 것에 비해 웨슬레신학은 구원론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이것은 두 신학자의 신앙경험의 현격한 차이를 의미하는 것이다.
칼빈은 그의 관점이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영광에 있었으므로 그의 신학은 하나님과 그 은총을 적극 긍정하는 예정론을 기초로 하고 있다. 사실 그에게는 어떤 구원론의 체계가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라 구원론이 예정론의 일부로 표현되고 있다. 칼빈은 급작스런 회심에서 저항하는 자까지도 굴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은총의 능력으로1) 순간적인 구원을 경험하였으므로 그에게 있어서 구원순서는 순간적 구원에 대한 논리적인 전개이지 시간적 순서가 아닌 것이다. 중생, 믿음, 회개, 칭의, 성화는 동시적 사건이며 그에게 구원 단계라는 용어자체도 어울리지 않는다. 구원은 이중예정에 의한 선택에서 확정되었으며 선택개념에서 모든 구원순서가 논리적으로 귀결된 것이다. 성도의 견인도 그런 개념의 연장이다. 칼빈의 신학은 모든 면에서 예정사상에 근거한 결과론적인 신앙고백적 진술이다.
이에 비해 웨슬레는 18세기의 인간이성 강조와 자유의지로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다는 인간의 능력을 주장하는 합리주의의 영향과2) 영국인의 종교생활에 깊은 영향을 미친 이신론사상3) 극도로 부패한 도덕상태4) 칭의 얻는 믿음을 실제적 행위와 복음의 가르침에 대한 동의로 보는 영국교회의 변질된 신학5) 그리고 가정에서, 칼빈의 예정론에 반대하고6) 그리스도를 통한 만인구원을 강조하며 구원은 인간의 노력으로 얻는다는7) 부모의 신학적 입장 등의 영향으로 오랜 동안 선행을 통한 구원사상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고뇌에 찬 노력을 경주하였다. 웨슬레는 의지적 노력으로 구원의 길을 찾으려 했으며 올더스케잇 체험에서 응답을 얻은 것이다. 웨슬레 역시 하나님의 은총을 경험한 것이지만 그 은총의 범위에서 그는 구원의 과정을 시간적으로 그의 신학에서 전개한 것이다. 그는 경험을 기초로 구원의 길에서 인간의 응답적인 면을 체계화하였다.
이 차이점은 동일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대한 관점의 차이에서 나타난 것이다. 칼빈은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편에 서서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를 논릭적으로 전개한 것이고 웨슬레는 같은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인간 편에서의 순종과 헌신으로서의 응답에 의한 시간적 구원순서를 전개한 것이다.
또 웨슬레는 칭의와 특별히 성화를 강조하는데 그것은 그의 죄관에서 이해될 수 있다. 즉 죄를 원죄와 원죄에 의한 특수한 죄로 보고 구원은 죄문제의 해결에 있으므로, 칭의에서 모든 죄를 용서받고 점진적 성화과정과 완전성화에서 원죄의 부패성을 해결하는 실제적 생명의 구원을 강조한 것이 그의 구원단계에서 드러난다.
반면 칼빈은 예정론사상으로 구원단계에서 어떤 인간적 의지적 응답에 의한 하나님과의 협동도 철저히 배제시킨다.
이상의 관점차이로 칼빈과 웨슬레는 구원순서단계의 체계가 서로 차이가 있는 것이다.


B.구원단계상의 차이
앞에서 고찰한 두 신학자의 관점차이가 사실상 모든 비교의 근원이지만 여기서는 세부적인 차이를 비교한다.


1.선행은총과 소명.
웨슬레는 구원의 시작을 하나님의 은총으로 보았다. 그것은 아담의 타락이후 모든 죄인들에게 지금까지 역사하는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로 구원받기 이전부터 내리시는 선행은총이다. 이것으로 죄인은 누구나 응답할 능력을 부분적이나마 회복하여 의지적 헌신으로 하나님의 구원에 동참한다.
칼빈도 자유의지를 말하면서 하나님의 선행적 은총을 언급한다.
하나님의 선행적 은혜의 인도로 자유의지가 회복되고 선을 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구원순서가 아니라 신자의 선행을 설명하는 것이다.8) 칼빈은 이중예정으로 선택된 사람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은총의 절대성을 강조한다.


2.칭의와 중생
칼빈은 예정을 근거로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를 일방적인 은혜의 역사로 거듭나게 하사 그리스도의 생명을 수여하시고 또 믿음을 주셔서 회개하고 그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게 하시는 순서로 진행된다. 반면 웨슬레는 선행은총으로 죄인이 하나님께 방향전환의 회개를 한 후에 하나님 선물인 믿음을 얻어 의롭다함을 받고 내적인 참변화인 중생을 하게 된다.
칼빈의 칭의관과 웨슬레의 칭의관은 서로 일치한다.9) 웨슬레가 칭의를 하나님이 인간을 받아들이시고 그의 지난 죄를 용서하는 수단으로 이해하는 점에서 일치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총은 칼빈과 웨슬레의 사상에 있어서 똑 같이 칭의의 근원이 된다.10) 그러나 칭의에서도 대체적 일치 가운데 차이점은 칼빈의 칭의는 선택자에게 한정된 것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제한하는데 반해 웨슬레는 구원은 은총을 제한하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값없이 주시는 것이라야한다는 점이다.11)


3.점진적 성화와 성도의 견인
칼빈은 칭의된 자는 결국 구원을 잃지 않으며 성령의 돌보시는 은혜로 궁극적 구원을 얻도록 나아간다고 한다. 육신에 거하는 동안 죄와 계속적인 영적 투쟁을 하며 성화된 삶을 살도록 애써야 하는 것이다.
웨슬레는, 칭의 이후 신자는 점진적으로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성장하면서 성령의 증거를 얻어 구원의 확신을 하며 내면적인 죄를12) 극복하기 위해 자신의 연약함을 깊이 인식하고 절대적인 하나님의 은혜에 의존하는 신자의 회개를13) 하게 된다고 한다. 그렇게하여 신자는 삶이 변화되고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아가며 성결한 삶을 살게되는 것이다.


4.성결,성화
이 단계에서 양 신학은 가장 큰 차이를 나타낸다. 성결은 웨슬레 신학에서 구원론의 강조교리인데 비해 칼빈신학에서는 칭의교리가 강조되고 있다. 웨슬레는 신자가 점진적 성화과정을 거쳐서 실제 죄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경험적 신앙의 단계로 성결을 말한다.14) 몰론 이 완전성화는 칭의와 같이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며 오직 믿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성결에서도 계속적인 성장을 하며 타락의 여지도 있다. 이 성결은 재침례파가 주장하는 개념의 완전이 아니다. 신자가 내면적인 죄와의 갈 등을 성령의 은혜로 극복하여 전인격적인 변화를 이뤄 하나님의 형상을 우리 안에 온전히 회복하는 것이다.
웨슬레와 칼빈은 같은 성화의 개념, 즉 죄에서의 해방과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으로 인정한다. 그러나 칼빈은 그것이 현실에서 실제화되는 것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계속적인 신자안에서의 영육전15)을 겪게 되나 택함 받은자는 하나님께 받은바 확실한 신앙과 견인으로 흔들림이 없다고 본다.16)


Ⅴ. 결 론
지금까지 연구의 초점은 칼빈과 웨슬레 신학에서 구원론의 체계인 구원순서를 고찰하는데 있었다.
칼빈은 돌연한 회심을 통하여 즉, 자신은 어떠한 인위적인 노력이나 행위도 없이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힘에 의해 인생의 진로가 바뀌고 삶의 근본적인 변화를 체험하였으므로 그의 체험과 하나님에 대한 신앙적 표현인 신학에서는 하나님의 은총 앞에 어떤 인간의 응답적 행위도 용납될 수 없었다. 그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주권에 근거한 강력한 예정사상을 바탕으로 그의 사상을 전개한 것이다. 예정사상은 발전하여 선태과 유기의 이중예정으로 확립되었으며 그런 맥락에서 칼빈의 구원론은 이해될 수 있다.
웨슬레는 1738년 5월 24일 올더스케잇에서의 체험을 통하여 그가 이전에 개념적으로 깨달은 기독자완전 사상을 구체화시킬 수 있었고, 칭의에 있어서 선행과 지적동의를 포함하는 빋음을 가르치는 영국교회의 신학의 굴레에서 벗어나 이신칭의의 종교개혁자들의 신앙으로 돌아서게 되었다. 그는 오랜 고투 끝에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얻은 신앙경험 곧 하나님 앞에서 인간은 철저히 무력하고 부패하였으로므로 선행이 아니라 오직 은총에 의한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하나님과의 만남을 그의 신학에서 구원단계의 순서를 체계화시켜 놓았다. 웨슬레의 구원론의 특징은 하나님과 인간의 협력에 의한 구원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웨슬레 자신이 의지적 헌신의 결단과 자기포기 및 절망의 절정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을 얻게 되었으므로 자연히 그에게는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과 인간의 협력을 표현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칼빈은 구원단계가 순간적인 선택에 의한 구원의 내용을 논리적으로 전개한 것인데 비해 웨슬레의 구원은 점진적이며 순간적으로 진행되므로 구원순서가 시간적인 순서인 것이 큰 차이점이다. 칼빈의 구원순서는 시종일관 하나님의 절대적 은총과 선택사상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런데 구원에 있어서 인간의 응답을 웨슬레가 나타내므로 칼빈주의에서 인간의 능력을 의지하는 알미니우스주의라고 오판하는 경우가 있는데, 웨슬레는 알미니우스가 아니라 웨슬레주의라 해야 한다.웨냐하면 그가 말하는 신인협동의 사살은 알미니우스와 달리 인간의 부분적 타락이 아니라 종교개혁자들 처럼 완전타락과 전적부패함을 주장하면서, 원죄사상을 그의 죄관에서 강조하고 있으며, 절대적인 하나님의 은총과 능력 아래 회복된 자유의지로 순종과 헌신의 의미로서의 응답을 말하는 것읻기 때문이다. 웨슬레는 선행은총에서부터 시작되는 구원단계에서 시종 하나님의 주권적 은총에 의한 구원역사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지 인간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칼빈과 웨슬레의 구원순서에서 사실상 문제점은 웨슬레의 성결, 기독자완전사상과 칼빈의 현세에서는 불완전한 성화개념의 차이다. 웨슬레는 성결을 현세에서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 믿음으로 얻을 수 있으며 그것이 성서가 강조하는 핵심적 사상임을 강력히 주장하는 반면 칼빈은 성화의 개념은 동일하게 언급하면서도 그것은 사후에야 이룰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이 기독자의 완전은 종교개혁자들이 당시 로마교회의 선행에 의한 구원의 타락된 신학사상으로부터 성서적이고 본질적 구원의 도리인 이신칭의 사상을 적극 긍정하고 체계화하여 개혁을 완성하느라 미처 돌아보지 못한 성서의 핵심교리이다. 즉 개혁자들의 이신칭의 사상의 진보된 완성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여기에서 두 신학을 비교한 의도가 어던 것의 우열을 가늠하고자 함이 아니며, 신학은 반드시 교회와 성도의 신앙생활에 봉사하고 섬겨야 하며 또 두 신학이 그동안, 앞으로도 한국교회의 신앙을 인도해야 하므로 비교를 통하여 동질점과 차이점을 살펴 상호 보완이 되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서론에서 언급했듯이 신앙의 목적은 궁극적 구원의 완성에 있고, 당연히 신학은 그 과정을 확실히 계시해야 하므로 그런 의미에서 구원론이 신학의 핵심이 되는 것이다.
칼빈신학과 웨슬레신학의 궁극적 구원의 완성은 그리스도의 나라에서 영화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단계순서상의 차이는 있지만 목표하는 바는 같으므로 이를 신앙인의 목표로 삼고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의 관심과, 우리의 하나님께 대한 올바른 인식에 기초한 헌신을 두 신학으로부터 발췌하여 오늘의 여러 신앙적 불일치를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는데 일조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사실 웨슬레는 칼빈의 이중선택에 의한 하나님의 은혜를 제한하는 예정사상을 제외하고는 사상적인 일치를 이루고 그것을 토대로 발전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칼빈과 웨슬레 둘다 성서를 적극적으로 긍정한 성서주의자들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장로교의 대부분이 신학적 기반으로 인식하고 있는 칼빈신학의 예정론의 실생활적 한계점을 웨슬레 신학에서의 성결에의 목표를 삼는 신앙의 모습들을 긍정하고 또한 웨슬레 신학의 인본주의적으로 흐를 경향성을 조심하여 진정한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믿음의신앙을 강조 보완할 때 한국교회는 신앙적으로 한걸음 더 성숙한 교회로서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이것이 바로 이신칭의의 개혁주의적 교리를 완성해 가는 길이며 현대교회의 문제점들과 신자의 나태함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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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행복충전소♥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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