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참음과 부드러운 혀 잠25:15
잠25:15 ‘오래 참으면 관원도 설득할 수 있나니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느니라’
고린도전서 13장은 우리가 잘 아는
유명한 사랑 장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사랑만큼 중요한 것이 어디 있을까요.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고
그보다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하고
우리 인간을 인간 되게 하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근데 사랑은 참 어렵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배우는 가장 중요한 사랑에 대한 교훈은
'사랑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이렇게 하는 거 잘 아시잖아요.
그때 '사랑은...' 하고 나오는 것이 15가지예요.
오래 참고, 온유하고
성내지 아니하고, 무례히 행치 아니하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그냥 생각 없이 읽으면 죽죽 읽는데요.
하나하나 곱씹어 생각하면
미션 임파서블입니다.
오래 참는 거 쉽지 않죠.
무례한 거 참는 거 쉽지 않죠.
성내지 아니하는 것
하나같이 다 어려운 건데
그게 하나가 아니라 15가지나 되는 게 사랑입니다.
사랑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70년 남짓 살아오면서
'정말 사랑이 힘들구나'
하는 것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그 15가지가 다 어려운데요.
'김 목사는 뭐가 제일 어려웠어?'
이렇게 물으면 몇 가지 생각나는 게 있어요.
저는요. '오래 참고'
이게 탁 걸리더라고요.
제가 참 오래 참는 것이 힘들었어요.
그리고 '성내지 아니하며'
참지 못하고
성내지 아니하며
이게 얼마나 저한텐 취약한 부분이었는지 모릅니다.
근데 그 취약함 때문에
오래 참지 못하고
성내는 것을 참지 못하고
성냈기 때문에 잃어버린 것
놓쳐버린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참지 못해서 일을 그르친 적이 참 많고요.
부드러운 말로 해도 될 것을
옳은 말인데 바른 말인데도 성내서 화를 냈기 때문에
일을 그르친 적도 참 많거든요.
그렇게 되면 참 억울하고 화가 나죠.
▲그런데 세상에는요 이제
크게 두 종류의 사람이 있을 수 있지 않겠어요.
-바르게 살려고 애쓰고 노력하는 사람
바르게 사는 사람은 없고요.
바르게 살려고 애쓰고 노력하고 발버둥질 치는 사람
-그냥 대충대충 꾀부리고
요.령 피우고 적당히 죄도 짓고
그렇게 살려고 하는 사람,
이렇게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
누가 참지 못하고 누가 성을 더 잘 낼까요?
-바르게 살려고 하는 사람이 참을성이 많을까요?
-대충대충 적당히 꾀부리고
요령 부리고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참을성이 많을까요?
-여러분 바르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성을 잘 낼까요?
-적당히 대충대충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성을 잘 낼까요?
물론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어서
딱 꼬집어 얘기하기는 어렵지만
그냥 제 생각인데요,
바르게 살려고 하는 사람
정직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의 취약점이 있어요.
참을 줄을 몰라요.
너무 급해져서 옳은 것만 생각하고
상대방이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면은요.
인내심이 없어져요.
그리고 화를 내요.
불같이 화를 내요.
옳지 못한 걸 보면은
견디지를 못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그 사람을 감화시키지 못해요.
그냥 적을 만들고 판단하고 그래서
일을 다 깨버리고 말아요.
▲왜 제가 이런 얘기를 할까요?
제가 그랬기 때문이에요.
저는 40대 때,
하나님이 저한테 주신 나름대로 소명은
'교회 개혁'이라는 것이었어요.
'교회를 한번 개혁하자!
우리 한국교회가 커지고 부흥하면서
옛날의 중세 가톨릭교회와 같이
사람이 주인이 되고
사람이 왕 노릇 하고 하는 그런 교회가 되니까
교회가 점점 교회다워지지 못하고
세상에 밟히는 소금 같아진다..'
하는 마음이 있어서
늘 사람이 주인 되려고 하는 일을 공격하고
바른 말하고, 개혁하려고 그랬어요.
그랬을 때에, 그 40대 때에
제 나름대로 정의감에 불탈 때에
저의 모습을 보면은요, 무서웠어요.
저의 동기 목사님 교회의 부목사님이 휴가를 맞아서
자기 교회를 떠나서 예배할 때
우리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렸던 모양이에요.
김동호 목사 교회는 어떻게 예배 드리나 한번 와서 보고는
제가 강단에서 불같이 설교하는 것을 보고
'김동호 목사님이 설교하는데 무섭더라고
저렇게 설교하고 괜찮으시겠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얘길 들어서, 제가 그때 웃었습니다.
그때 제가 그랬거든요.
그랬어요. 불같았어요.
부드러운 혀로 말하는 법을 몰랐어요.
찌르고
강하게 비판하고
정죄하고 판단하고
그러는 무서운 일을 했어요.
제가 옳다고 생각해서
상대의 옳지 못한 것에 대해서
화내고 성내는 것이 가득했었어요.
그래서 저를 사람들이 대개 다 무서워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워요.
부끄러워요.
사람이 사람을 무섭게 본다는 것은
잘 사는 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여러분 날기새 하면서는 제가 부드러워지려고
애쓰는 거 혹 여러분은 아셔요?
말 한마디라도
생각도 좀 부드럽게
정말 '부드러운 혀가 뼈를 꺾는다' 잠25:15
이 말씀이 참 맞거든요.
부드러운 말이 사람의 뼈를 꺾어요.
강한 말은 도리어 뼈를 꺾지 못하고
아무 문제도 해결하지 못해요.
▲또 중요했던 게 뭔가 하면 '(사랑은) 오래 참고' 예요.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불같아서요. 참지를 못해요.
이제 장로님들에게
교회 개혁의 방향을 제시해요.
그러는데 저를 잘 따라오지 못하셨어요.
제가 너무 급진적이니까
너무 빠르게 움직이니까
옳긴 옳은데, 정말 그런가 이렇게 머뭇머뭇 그러는데
제가 조금만 기다렸으면 되는데
조금만 기도하고 참고 기다렸으면 되는데
그걸 기다리지 못했어요.
너무 급해가지고 그냥
이해 못 하면 그냥 따라오세요.
따라오세요 하고
같이 가자고 기다리지를 못하고
제가 끌고 가다가 혼자 내뛰었어요.
쉽게 말하면 혼자 내달렸어요.
어느 순간에
제 나름대로 교회 개혁하려고 했던 일을
다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제가 매우 중요한 생각을 깨달았어요.
제가 거기에 혼자 있더라고요.
우리 장로님들과 같이 갔어야 되는 건데
너무 급해서
따라오지 못할 것 같으면
그냥 거기 있으라고.. 나 혼자 간다고..
쫓아오려면 쫓아오시고
방해나 하지 마시라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그건 진정한 개혁의 성공이 아니었어요.
하나님은 그렇게 일 안 하시더라고요.
하나님은 기다리세요.
'내가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문 밖에 서서 기다리노니'
하나님은 기다리시는데
제가 조금 바른 생각하고, 바른말 한다고
그걸 못 견뎌주고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고
왜 그렇게 사냐고 윽박지르고
나 혼자 옳은 것처럼 그러고 그랬을까요?
이해하고 따라올 때까지 조금만 기다렸으면 되는데...
개혁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 함께 해야 하는 건데...
[날마다 기막힌 새벽 #743] 오래 참음과 부드러운 혀 - YouTube
◈오래 참음과 부드러운 혀 잠25:15 출처
잠25:15 ‘오래 참으면 관원도 설득할 수 있나니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느니라’
고린도전서 13장은 우리가 잘 아는
유명한 사랑 장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사랑만큼 중요한 것이 어디 있을까요.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고
그보다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하고
우리 인간을 인간 되게 하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근데 사랑은 참 어렵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배우는 가장 중요한 사랑에 대한 교훈은
'사랑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이렇게 하는 거 잘 아시잖아요.
그때 '사랑은...' 하고 나오는 것이 15가지예요.
오래 참고, 온유하고
성내지 아니하고, 무례히 행치 아니하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그냥 생각 없이 읽으면 죽죽 읽는데요.
하나하나 곱씹어 생각하면
미션 임파서블입니다.
오래 참는 거 쉽지 않죠.
무례한 거 참는 거 쉽지 않죠.
성내지 아니하는 것
하나같이 다 어려운 건데
그게 하나가 아니라 15가지나 되는 게 사랑입니다.
사랑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70년 남짓 살아오면서
'정말 사랑이 힘들구나'
하는 것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그 15가지가 다 어려운데요.
'김 목사는 뭐가 제일 어려웠어?'
이렇게 물으면 몇 가지 생각나는 게 있어요.
저는요. '오래 참고'
이게 탁 걸리더라고요.
제가 참 오래 참는 것이 힘들었어요.
그리고 '성내지 아니하며'
참지 못하고
성내지 아니하며
이게 얼마나 저한텐 취약한 부분이었는지 모릅니다.
근데 그 취약함 때문에
오래 참지 못하고
성내는 것을 참지 못하고
성냈기 때문에 잃어버린 것
놓쳐버린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참지 못해서 일을 그르친 적이 참 많고요.
부드러운 말로 해도 될 것을
옳은 말인데 바른 말인데도 성내서 화를 냈기 때문에
일을 그르친 적도 참 많거든요.
그렇게 되면 참 억울하고 화가 나죠.
▲그런데 세상에는요 이제
크게 두 종류의 사람이 있을 수 있지 않겠어요.
-바르게 살려고 애쓰고 노력하는 사람
바르게 사는 사람은 없고요.
바르게 살려고 애쓰고 노력하고 발버둥질 치는 사람
-그냥 대충대충 꾀부리고
요.령 피우고 적당히 죄도 짓고
그렇게 살려고 하는 사람,
이렇게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
누가 참지 못하고 누가 성을 더 잘 낼까요?
-바르게 살려고 하는 사람이 참을성이 많을까요?
-대충대충 적당히 꾀부리고
요령 부리고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참을성이 많을까요?
-여러분 바르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성을 잘 낼까요?
-적당히 대충대충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성을 잘 낼까요?
물론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어서
딱 꼬집어 얘기하기는 어렵지만
그냥 제 생각인데요,
바르게 살려고 하는 사람
정직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의 취약점이 있어요.
참을 줄을 몰라요.
너무 급해져서 옳은 것만 생각하고
상대방이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면은요.
인내심이 없어져요.
그리고 화를 내요.
불같이 화를 내요.
옳지 못한 걸 보면은
견디지를 못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그 사람을 감화시키지 못해요.
그냥 적을 만들고 판단하고 그래서
일을 다 깨버리고 말아요.
▲왜 제가 이런 얘기를 할까요?
제가 그랬기 때문이에요.
저는 40대 때,
하나님이 저한테 주신 나름대로 소명은
'교회 개혁'이라는 것이었어요.
'교회를 한번 개혁하자!
우리 한국교회가 커지고 부흥하면서
옛날의 중세 가톨릭교회와 같이
사람이 주인이 되고
사람이 왕 노릇 하고 하는 그런 교회가 되니까
교회가 점점 교회다워지지 못하고
세상에 밟히는 소금 같아진다..'
하는 마음이 있어서
늘 사람이 주인 되려고 하는 일을 공격하고
바른 말하고, 개혁하려고 그랬어요.
그랬을 때에, 그 40대 때에
제 나름대로 정의감에 불탈 때에
저의 모습을 보면은요, 무서웠어요.
저의 동기 목사님 교회의 부목사님이 휴가를 맞아서
자기 교회를 떠나서 예배할 때
우리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렸던 모양이에요.
김동호 목사 교회는 어떻게 예배 드리나 한번 와서 보고는
제가 강단에서 불같이 설교하는 것을 보고
'김동호 목사님이 설교하는데 무섭더라고
저렇게 설교하고 괜찮으시겠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얘길 들어서, 제가 그때 웃었습니다.
그때 제가 그랬거든요.
그랬어요. 불같았어요.
부드러운 혀로 말하는 법을 몰랐어요.
찌르고
강하게 비판하고
정죄하고 판단하고
그러는 무서운 일을 했어요.
제가 옳다고 생각해서
상대의 옳지 못한 것에 대해서
화내고 성내는 것이 가득했었어요.
그래서 저를 사람들이 대개 다 무서워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워요.
부끄러워요.
사람이 사람을 무섭게 본다는 것은
잘 사는 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여러분 날기새 하면서는 제가 부드러워지려고
애쓰는 거 혹 여러분은 아셔요?
말 한마디라도
생각도 좀 부드럽게
정말 '부드러운 혀가 뼈를 꺾는다' 잠25:15
이 말씀이 참 맞거든요.
부드러운 말이 사람의 뼈를 꺾어요.
강한 말은 도리어 뼈를 꺾지 못하고
아무 문제도 해결하지 못해요.
▲또 중요했던 게 뭔가 하면 '오래 참고' 예요.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불같아서요. 참지를 못해요.
이제 장로님들에게
교회 개혁의 방향을 제시해요.
그러는데 저를 잘 따라오지 못하셨어요.
제가 너무 급진적이니까
너무 빠르게 움직이니까
옳긴 옳은데 정말 그런가 이렇게 머뭇머뭇 그러는데
제가 조금만 기다렸으면 되는데
조금만 기도하고 참고 기다렸으면 되는데
제가 그걸 기다리지 못했어요.
너무 급해가지고 그냥
'이해 못 하면 그냥 따라오세요' 하고
같이 가자고, 기다리지를 못하고
제가 끌고 가다가.. 혼자 내뛰었어요.
쉽게 말하면 혼자 내달렸어요.
어느 순간에
제 나름대로 교회 개혁하려고 했던 일을
다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제가 매우 중요한 생각을 깨달았어요.
제가 거기에 혼자 있더라고요.
우리 장로님들과 같이 갔어야 되는 건데
너무 급해서
따라오지 못할 것 같으면
그냥 거기 있으라고 나 혼자 간다고
쫓아오려면 쫓아오시고
방해나 하지 마시라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그건 진정한 개혁의 성공이 아니었어요.
하나님은 그렇게 일을 안 하시더라고요.
하나님은 기다리세요.
'내가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문 밖에 서서 기다리노니'
하나님은 기다리시는데
조금 바른 생각하고 바른말 한다고
그걸 못 견뎌주고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고
왜 그렇게 사냐고 윽박지르고
나 혼자 옳은 것처럼 그러고 그랬을까?
이해하고 따라올 때까지 조금만 기다렸으면 되는데
개혁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 함께 해야 하는 건데
▲성내는 것도 마찬가지죠.
제가 부모, 선생, 어른들이
대개 옳은 말을 하는데
아이들이 듣기 싫어한다는 얘기를 했었죠.
그 이유를 제가 재미있게 표현했잖아요.
'우리 부모, 우리 어른, 선생들은
아이들, 자식에게
옳은 말 좋은 말을 기분 나쁘게 하는 은사가 있다'고!
여러분, 성내는 말
옳은 말이라도, 성내면 거기에 사랑이 없어서
울리는 꽹과리가 되는 거예요.
옳은 말을 왜 부드럽게 못 할까요?
옳은 일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왜 그렇게 성급할까요?
여러분, 악한 사람들은 도리어
인내가 많아서 기다릴 줄 알고, 성급하지 않고
때를 기다릴 줄도 아는데,
악한 일에 그렇게 지혜로운데
악한 사람들은
함부로 성내지 않고, 사람 비위 잘 맞추고
부드러운 말로 해서 사람을 다 넘어가게 만드는데
왜 옳은 길을 가려고 하는 사람들은 참지 못하고
성냄으로써
옳은 길로 사람들을 이끌지 못할까?
하는 그런 생각을 참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의 말씀
잠언 25장 15절 말씀
'오래 참으면 관원도 설득할 수 있나니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느니라'
날기새 가족 여러분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세요.
'옳은 말을 오래 참자
그리고 바른말일수록 성내지 말자!'
'부드러운 혀가 뼈를 꺾는다.
강한 말은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사람을 감동시키지 못한다. 이끌지 못한다.'
여러분 이 말씀은 참 귀한 말씀입니다.
제가 너무 성급하고 다급해서
바른 생각과 바른 일임에도 불구하고
일을 그르치는 일이 참 많았는데요.
제 자식에 관해서는 참음으로
큰 복을 받았던 거 몇 번 간증했잖아요.
우리 둘째가 대학교 다닐 때, 귀 뚫었다는 얘기 들었을 때
제가 화가 났어요.
이해를 못 했어요.
'사내자식이 무슨 귀걸이를 해?'
그냥 제 본심대로 얘기하면 금방 전화해서
그때 지방에 있는
한동대학교에 다녔거든요. 우리 둘째가
'너 귀걸이 당장 떼지 못해,
사내자식이 무슨 귀걸이야?
얼른 당장 떼!'
이런 말을 하고 싶었어요.
그때 제가 이런 생각했어요.
여러 번 제가 설교 중에 간증했는데
'우리 둘째가
오늘 귀 뚫은 것은 오늘 뚫고 싶은 거 오늘 뚫은 게 아니다.
몇 달 전부터 뚫고 싶었는데
참다가 참다가 참다가 아버지 때문에
참다가 참다가 참다가 뚫었을 것이다.'
제가 노트에 제 생각을 정리하는 글을 썼어요.
전 좀 흥분하면 이렇게 쓰려고 하는 게 있는데
그때 제가 이렇게 썼어요.
'애도 아비를 위해서 참다 참다 귀를 뚫었으면
아비도 애를 위해서
참다 참다가 말을 해야지..
말할 때는 하자, 아버지 생각은 이렇다..
하는 얘기는
근데 참다가 얘기해야 되지 않겠느냐?'
그 깨달음이 있었어요.
그래서 '참다가 얘기하자, 한 달 후에 얘기하자'
'오늘 얘기하면 아이하고 싸운다.
한 달 후에 얘기하자'
제가 그렇게 마음을 먹었어요.
그리고 또 썼어요.
'한 달 후에 얘기해도 얘기만 하자
화내지 말고
그리고 최종 결정은 우리 아들이 하게 하자'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리고 우리 아들한테 전화했죠.
"너 귀 뚫었다지?"
"네" 그랬어요."
아버지가 이런 생각했는데
한 달쯤 있다가 아버지도 생각 많이 하고 할 테니까
그때 한번 얘기는 해보자.
근데 결정은 네가 하는 거다.
'그런데 너 지금 돈 없어서 싸구려로 달았지?
올라오너라 아버지가 좋은 거 달아주마!'
예 그랬어요.
여러분 그거 땜에 둘째하고 사이가 아주 좋아졌어요.
한 달 후에 얘기하려니까 얘기할게 없더라고요.
왜요? 한 달 후가 되니까 제 생각이 바뀌었어요.
귀걸이하고 다니는 우리 아이가
하나도 잘못된 게 없더라고요.
나는 '귀걸이 하면 애가 이렇다'고 하는 편견이 있었는데
그건 제 편견이었지 바른 이해가 아니었어요.
귀걸이를 하거나 안 하거나 내 아이는 똑같은 아이더라고요.
그래서 내 생각이 달라져서 말 안 했어요.
근데 그거 때문에
아이에 대해서 할 말을 참았기 때문에
아이와 친해졌어요.
아이하고 관계가 아주 좋아졌어요.
저 오늘도 하루 종일 둘째 아들 또 우리 큰아들
이렇게 하고 하루 종일 점심도 먹고 같이 저녁도
시간 꽤 오래 보냈어요.
여러분 그건
오래 참음에서 준 축복이에요.
그게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만 그러겠어요.
모든 사람에 대해서 할 말이 있을 때
옳은 말이라도 좀 참고
기다릴 줄 알고
그 사람과 같이 가도록 기다려줄 줄 알고
문 열 때까지 기다려줄 줄 알고
그리고 함부로 성내지 말고
인자한 말로 부드러운 말로
우리 찬송가에 그런 거 있잖아요.
'인자한 말로 사람의 마음을 감화시키고'
하는 찬송 있잖아요.
우리 오래 참음과 성내지 않음과
부드러운 혀로 부드러운 말로
사람들의 마음을 감화시켜서
옳은 길로 사람들을 이끄는
우리 날기새 가족 식구들
다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추천인 명설교편◑ > 김동호목사 명설교 (155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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