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죄에 대하여 8
7- 2 십자가는 우리 죄를 대신한 희생양 입니다
예수를 화해자 하나님으로 인식한 최초 사람은 바울 입니다. 그는 예수를 속죄제물이라 하지 않고 화목제물이라 합니다.(로마3:25) 대부분 신학자들은 바울을 은혜 산학자라고 하는데 제임스 던은 바울을 화해 신학자라고 합니다. 또한 여러 신학자들은 예수를 역사 하나님이라 하는데 칼 바르트는 화해자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예수는 자신 스스로 십자가 죽음을 통해 하나님과 인간이 화해하고 인간 서로간에 화해 길을 열었습니다.
새질서를 세우는 예수가 옛질서인 차별과 소외를 일으키는 권력에 자신을 내 맡겼습니다.
신 죽음은 신이 버림받은 자들과 함께 함을 계시합니다.(*1) 그러므로 십자가는 하나님 사랑을 계시합니다.(*2)
예수가 스스로 자신을 내 줌으로써 화해 길을 열었다는 화해신학은 종교개혁자 루터 복음 개념에서 빠졌습니다.(*3)
종교개혁자들은 30 년 동안 유럽 인구 삼분지 일이 죽는 상황에서 화해를 말할 수 없었을 겁니다.
예수사랑과 화해가 그리스도인 신앙에서 전혀 작동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가르치지 않는데 무슨 수로 작동하겠습니까
기독교가 사랑은 명시로라도 가지고 있지만 화해를 잃어버린 건 큰 비극 입니다.
우리는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했다는 예수 말씀을(마가10:45),
고대인 언어인 마귀에게 우리 피 대신에 예수 피를 주었다는 속량설이나
하나님이 예수 피를 받고 만족했다는 만족설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르네 지라르가 해석한 희생양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르네 지라르는 인문 학자로서 세계 신화와 성서를 비교 연구하다가 신앙을 얻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인간은 희생양을 만듭니다. 상위계층을 모방하여(미메시스) 경쟁하며 일으키는 질투와 일상적 분노(르상티망)는 희생양을 요구합니다.
우리나라 학교, 직장, 사회에서 일어나는 왕따 문화와 일본 이지매 문화가 희생양 만들기 폭력 입니다.
남을 정죄하여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태도가 희생양 만들기 폭력 입니다.
세계 가치는 만장일치 폭력으로 카타르시스로 정화시키는 희생양을 찾습니다.
유대교 의로운 전쟁 개념이나 헤라크레토스 그리스 신화는 폭력 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신이 스스로 희생양이 되는 비폭력 입니다.
인류가 탄생한 이래로 발생한 희생양 기제(메카니즘)에 관한 인류학 비밀이 밝혀지려면 신 스스로 희생양인 십자가가 필요했습니다.(*4)
예수 십자가 희생양 개념을 파악하기 전에 인류학 희생양 개념 2 가지를 먼저 파악합니다
1. 세상 모든 희생양 신화에서는 언제나 희생양이 실제 죄인이고 사회는 정당합니다.
아버지를 죽일 거라는 신탁으로, 아기 때 버려진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친 아버지인 줄 모르고 테배 왕을 죽여, 자신이 왕이되고 또 자신의 친 어머니인 줄 모르고 왕비와 결혼합니다.
테배에 페스트가 창궐하자 백성들은 오이디푸스 왕 비밀을 밝혀내고 추방합니다. 오이디푸스는 테배를 위한 희생양이 되지만 그에겐 실제 죄가 있습니다.(*5) 재난을 막는 인간 희생제물을 파르마티코스라고 합니다.
2. 고대 신화에서 희생양은 최고신이고, 재난에 처한 백성의 희생양 폭력 대상은 절대 권력 상징인 왕이나 아버지였습나다.
수메르 신화에서, 하위 신들은 최고 여신인 티아마트를 죽이고 그 몸을 잘라서 세계를 만듭니다. 인도 신화에서는 푸루샤라는 최초 희생양이 군중에 의해 조각으로 절단되어 그 조각으로 백성 등급을 나누는 카스트 제도가 발생했습니다.(*6)
고대 희생양 개념은 작은 악으로 큰 악을 막는다는 카테콘 개념입니다. 성서에도 있는데 데살로니카 후서 2 장 7 절 불법을 막는 자가 카테콘 입니다. 현대에선 법 사상가 칼 슈미트가 처음 사용했습니다.
희생양에 대해 어려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희생양은 고대에 정착된 문화 현상임을 말하기 위해서 입니다.
스스로 희생양이 되신 예수
주전 5 세기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빌론 포로였을 때 활동한 제 2 이사야는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가 어떤 분인가를 예언했습니다.
(이사야 53장)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8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9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세계 모든 신화에서는 희생양이 실제 죄인이고 백성이 정당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희생양인 예수는 죄가 없고 백성들에게 죄가 있습니다.
예수가 백성들 죄를 대신해 희생양이 되어 십자가 죽음을 맞았습니다.(마가10:45)
예수는 인류 화해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십자가는 인류가 희생양 만들기를 그치고 화해하라는 메시지 입니다.
희생양 문화를 없에려면 인간 품성인 지배욕구를 없에야 합니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는 지배하려는 권력의지가 있습니다. 이러한 권력의지는 봉사하려는 자에게도 있습니다. 자신이 더욱 강해져서 자신 일을 수행하려는 의도 때문 압니다.(*7)
하나님 일을 한다는 교회가 악을 일으키는 이유 입니다. 마땅히 해야할 일에, 개혁 현장에서 악이 발생합니다.
나는 아니고 싶지만 나에게서 악이 발생합니다. 비움 십자가에서 다시 설명하겠습니다만, 십자가는 지배하려는 의도를 버리라는 메시지 입니다.
(마가복음 10장)
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기독교가 살려면 제도 조직 껍데기를 버려야 합니다. 기독교가 조직체로서 새상에서 무엇을 하려고 하지 말고 신자들 삶 속에 사랑이 일어나도록 하는 일에 전념하는 게 옳습니다. 기독교 출현을 위해 예수가 죽었듯이 신자들 삶 속에 예수가 살아나도록 교회와 성당이 죽어야 합니다.(*8)
십자가에 걸려 넘어지지 않는 사람에게 복이 있습니다.(마태11:6)
1. 리차드 보컴 예수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이형일외 새물결플러스 2019, 450-451p
2. 기타모리 가조 하나님의 아픔의 신학 이원재 새물결플러스 2018, 483p
3. 볼프하르트 판넨베르그 판넨베르그 조직신학 3 신준호 새물결플러스 2019, 150p
4. 정일권 십자가의 인류학 대장간 2015, 30, 51, 87, 94, 96p
5. 르네 지라르 그를 통해 스캔들이 왔다 김진식 문학과 지성사 2007, 61-70p
6. 르네 지라르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 김진식 문학과 지성사 2015, 110-112p
7. 프리드리히 니체 마틴 하이데거 니체 신은 죽었다 강윤철 스타북스 2011, 243-244
8. 슬라보이 지젝 죽은 신을 위하여 김정아 길 2008, 277p
고통, 비움, 저항 십자가는 다시 다음회로 이어집니다.
여러분과 가정이 평화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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