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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죄에 대하여 7

by 【고동엽】 2021. 10. 2.
기독교의 죄에 대하여 7
6. 예수의 죄용서란 무엇인가
5 세기 신학이 정립될 때 아우구스티누스는 죄를 용서받는다는 것은 죄가 더 이상 있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죄를 더이상 간주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1)
이것을 이어서 가톨릭은 세례를 통해 인간의 모든 죄가 제거된다고 가르쳤습니다.(*2)
개신교 현대신학자들도 하나님이 마지막 날에 죄를 묻지 않는다고 가르쳤습니다.(칼 바르트 등) 최근에 신학자 감세윤이 기존 자신의 입장을 바꿔서 마지막 날에 하나님이 죄를 물으신다(유보적 칭의)라고 해서 신학계와 성직자들로부터 맹렬한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으면 죄가 없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죄를 신에게 용서받기 때문에 잘못을 저지른 상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영화감독 이창동은 이러한 문제에 대해 영화를 통해 비판합니다. 영화 밀양에서 전도연은 고통하다가 신앙에 귀의하여 아들을 살해한 살인범을 용서합니다. 그녀는 면회가서 살인범을 용서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살인범은 자기는 예수로부터 이미 용서받았기때문에 상관이 없다고 합니다.
결국 전도연은 실성한다는 영화 입니다. 이 영화가 나온지 14 년이 지났지만 어느 신학자도, 교계에서도 이 문제를 논의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습니다. 이 문제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서지현 검사를 성추행해서 공분을 일으킨 모 검사가 세례를 받고 모든 죄가 용서되었다는 간증이 공개되어 다시 한 번 세간의 공분을 일으켰습니다. 피해자는 고통 중에 있는데 가해자는 신의 용서를 받고 평화하다는 것이 사회 보편인식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 입니다.
죄용서 교리 영향사
당시 유대인들은 구원 시대가 오면 하나님이 자신들의 죄를 심판하지 않고 구원해 주시리라고 기대했습니다.(시51:4, 143:2, 이사50:7-9)
에세네파는 사막에 쿰란 공동체를 세우고 종말의 날에 올 구원을 대비하고 살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위대하고도 신비로운 활동들을 통해 그들의 잘못을 용서해주시고 그들의 죄를 씻어주셨다 라고 기록했습니다.(다마스쿠스문서)(*3)
그러나 최초로 세례를 시행한 세례요한은 세례를 죄용서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세례는 새로운 삶으로의 회개를 의미했습니다.(*4)
1 세기 역사가 요세푸스의 증언에 의하면, 당시 세례는 자신이 무슨 죄라도 용서받기 위해 세례를 사용해서는 안 되며 다만 몸의 정화를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5)
예수가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기독교 속죄교리는 이른시기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들과 함께 예루살렘 성전제의에 계속 참여했습니다.(*6)
세례요한은 세례가 죄를 제거하는 것으로 사용하지 않은 반면에 그리스도인들은 점차로 예수의 죄용서와 세례가 죄를 제거하는 것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이스라엘에 약속된 하나님의 구원약속(언약)이 예수에게서 성취되었다는 인식이 뚜렸했습니다.(폰 라드)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예수의 십자가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예수가 우리죄를 사하기 위해 죽으셨다는 대속교리가 발생하였습니다. 대속교리가,
첫 번째 천 년 동안에는 대속교리인 예수 십자가가 마귀에게 빚을 갚는다는 의미로 여겨졌습니다.
속량설인데 노예해방을 위해 속전을 내듯이 마귀에게 속전을 낸다는 의미 입니다.
두 번째 천 년 동안은 대속교리가 안셀무스에 의해 하나님께 빚을 갚기 위한 교리가 되었습니다.
만족설인데 하나님이 우리 죄를 대신 갚으신 십자가의 피에 만족하셨다는 의미 입니다.(*7)
교리가 발전되면서 세례가 죄를 제거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기독교를 로마 국교로 삼았던 콘스탄틴 황제는 죄없이 천국가기 위해 죽음 직전에 세례 받았습니다.
계몽 사상가 볼테르의 「관용」에 보면 중세 폴란드 어느 마을에서 가족 중 1 명은 천국에 보내기 위해 자녀 1 명을 세례받은 후에 이웃과 서로 교차해서 죽이는 일도 있었습니다.
예수의 죄용서가 죄를 제거한 것인가
이스라엘은 주전 5 세기에 바빌론 포로생활을 마치고 고국으로 귀환합니다. 이때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이 새 삶을 주시며 죄를 묻지 않기로 하셨다고 선포합니다.(이사44:22)
우리는 하나님이 새 삶을 주시며•••
에 주목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죄를 용서하셨다는 대속교리는, 이와같이 우리가 죄인이지만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부르시어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새 기회를 주셨다는 말씀 입니다.
죄를 저지르는 죄인인 인간이 구원받고 용서받은 인간이 되어서 그 행위가 선한 행위로 바뀌는 변화는 존재하지 않습니다.(*8)
세례는 우리의 몸을 다른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으로 인도합니다.
바울이 하나님이 믿음으로 우리를 의롭다 하셨다는 칭의가 바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새로운 길을 열어 주셨다는 뜻 입니다. 이것이 구원이고 죄용서 입니다.
바울은 법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루터는 법은 죄의 자리고 복음은 그 죄를 용서하는 자리로 이해했습니다. 즉 복음이 죄를 없에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예수의 죄 이해와 다릅니다. 예수의 세리와 죄인을 용납하시는 행위는 치유하여 구원에 참여하게 하는 것 입니다.
즉 죄를 완전히 없에 주는 것이 아니라 이제 구원의 삶을 살도록 하나님나라에 초대해 준 것 입니다.(*9)
십자가의 죄용서가 죄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완전한 구원도 아닙니다. 바울 구원관의 특징은 십자가가 완전구원이 아니라는 것 입니다. 구원이 이루어졌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예수 곁에 붙어있던 가롯유다도 마귀가 잡아갔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빌3:12)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2:12)
초기 그리스도인들도 십자가가 죄를 없에 주었다고 방자하게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2 세기 초에 기록된 요한 1 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가르쳐야 했습니다.
(요한일서 1장)
8.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신학자와 성직자들은 성서에도 없는,
1. 예수의 죄용서가 죄를 없에준다고 하고
2. 예수가 우리를 구원했다는 사실을 완전구원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이것은 오류임이 분명합니다.
하나님께 용서받으면 잘못한 상대에게 갚지 않아도 되는가 ?
이스라엘의 실패는 저들이 세상에서 구출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통해서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자신들이 선택되었음을 망각한데 있습니다.(출4:22, 19:6) 유대인들은 세상과 괴리되었습니다. 한국 교회도 그 길을 가고 있습니다. 젊은이들과 지성인들이 기독교를 조롱해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기독교가 게토화(유대인들 촌락)되는 중심에 죄용서 교리가 있습니다.
이명박 장로가 뇌물죄로 감옥가면서 국민들에게 사죄하지 않고, 믿음으로 이기겠다고 측근들에게 말하고 감옥으로 갔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생각 때문일 것 입니다.
성서를 봅니다.
(누가복음 19장)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7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예수가 로마 앞잡이 세금 징수원인 삭개오를 용서하였습니다.
당시 세금 징수원은 지나가는 사람의 짐을 수색하는 등 악랄하게 세금을 징수하여 백성들이 증오하는 대표 죄인 입니다.
삭개오가 용서를 받고서 자기가 착취한 것의 4 배를 갚겠다고 합니다. 당시 법에 4 배를 갚아야 공동체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용서받는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인정할 만큼 잘못한 상대와 사회에 갚으며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 구원받은 신앙인 입니다.
속량이라는 대속에 관한 성서 기록(마가10:45 로마3:24)은 노예를 해방시키려면 대신 갚을 치러야 하는 고대 세계의 언어 입니다. 대속 기독론은 현대 세계관에 맞게 재해석 되어야 합니다.
다음회에 인문학자들이 새롭게 해석한 십자가의 대속을 소개하고 글을 마치겠습니다.
각주
1. 김균진 루터의 종교개혁 새물결플러스 2018, 323p
2. 같은 책 322p
3. 로널드 헨델 창세기와 만나다 박영희 비아 2021, 99p
4. 제임스 던 예수와 기독교의 기원 상 차정식 새물결플러스 2010, 491p
5. 같은 책 477p
6. 제임스 던 초기 교회의 기원 문현인 새물결플러스 2019, 323-326p
7. 리차드 로어 오직 사랑으로 김준우 한국기독교연구소 2020, 229p
8. 자끄 엘륄 자유의 윤리 김치수 대장간 2018, 272p
9. 볼프하르트 판넨베르그 판넨베르그 조직신학 3 신준호 새물결플러스 2019, 147-149p
여러분과 가정에 평화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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