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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직임기원 바른이해

by 【고동엽】 2010. 3. 18.
 
 

 

목사 직임기원 바른이해                

[벧전2:5-10]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이 말은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제사장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기독교인은 거룩한 제사장의 기능을 갖고 있다고 볼수 있다.
사도의 필요성은 많은 성도의 공동체들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이 성도를 대변하는 기능을 갖고 있는 것이다.


사도권은 계급의 분리가 아니라 은사의 구분이다.
교회는 예수의 재림이 지연됨에 따라서 교회의 제도가 형성되었는데,
12명의 제자들은 교회의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장로.감독.집사를 임명하게 되었다.

이 세 직책을 안수함으로서 권위가 인계되기 시작하였다(행6:6, 13:3, 딤전4:14).
[행6:6]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
[딤전4:14]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으로 말미암아 받은 것을 조심 없이 말며 "

그러나 이때까지 안수받아 계승하는 과정에서 계급의 차이는 없었다.
그러니까  2세기초 단일 감독제도가 등장하면서부터
교권주의가 발전하기 시작했는데,
325년 니케아회 의 이후 계급 즉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이 시작되었다.

이것을 로마 카톨릭이 극대화시켰다.
감독이 감독을 안수하면서부터 교회내에 계급구분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로마 카톨릭에서는 사도권의 전통이 베드로 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보고 있다.
 
초대교회시대엔 팔레스틴적 회중(베드로 계열)과 헨라적 회중(바울 계열)사이에
서로 갈등하고 있음을 알수 있다.
 
사도 계승의 차원에서는 사도가 베드로-요한-야곱보로 계승되는 것은 카톨릭의 제도에 의한 계승이고 또 하나는 바울은 자신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그 부활하신 주님의 환상에 따라서 증언자가 되고 사도로 임명을 받은 즉 영에 의한 사도권 임명 사이의 갈등이 초대교회때부터 있어왔다.
 
오늘날 교회 안에는 다양한 직임이 있는데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직임은 목사이다.
목사는 행정적으로 교회의 대표권을 가지고있고 또한 교인들을 가르치는 지도자로서의 책무를 가지고 있다.

목사 직임에 있어서 목사와 비슷한 어원이 구약에서는 히브리어로 로이(רעי))'라 하고
헬라어로는 ‘포이멘(ποιμην)’인데, 
신약성경에는  ‘포이멘(ποιμην)’이라는 단어가 18번 나오는는 중 17번은 모두 목자라고 번역되었다.

그런데 딱 한군데인 에베소서 4장 11절에만 ‘포이멘(ποιμην-목자)’을 목사로 번역해 있다. 
개역 성경을 위시하여 10여 종류의 한글성경과, 90여 종류의 영어성경도 마찬가지로 목자를 목사로 바꾸어 번역했다.

원래는 1968년의  신구교 학자들로 구성된 공동위원회가 성경 원본을 공동으로 번역하기로 결정하여 만든책이 공동번역성경이다.
그 당시 신구교 학자들은 성경번역의 원칙을 정했는데, 그것은 성경을 원문 그대로 번역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그래서 처음엔 제대로 엡4장11절도 목사를 목자로 번역했다. 

그러나 그후 목사들이 생각할때에   만일에 목사를 목자로 그대로 놔 둔다면 앞으로 개신교회 목회 존립문제가 심각하게 될 것을 우려해, 
 
당시엔 개신교 목사들은 가톨릭 신부들 때문에 목자를 목사로 바꿀 수가 없었지만, 그 후 개신교 목사들끼리 따로 모여서 목자를 목사로 번역했다. 

그러나 에베소서 4장 11절의  ‘목사’를 공동번역성서에서는 원문대로 ‘목자’로 번역하였고, 
신구교 학자들이 함께 번역한 공동번역성서와 가톨릭 성경,
그리고 헬라어 학자들이 직접 번역한 성경에는,  올바르게 목자로 번역하였다.   

그  '목자'의 뜻은  '양떼를 돌보다' 라는 의미로 사용이 되었다.
여기의  '목자'라는 말은 선지자가 가지고 있는 임무의 성격을 표현하는 말로서
신약의 목사 직임의 성격과는 다르다.

구약 가운데  선지서에서 목자라는 명칭은 선지자나 제사장이나 왕들을 가리켜 사용하는 말로서 장차 오실 선한 목자이신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명칭인 것이다.
목사는 헬라어로 포이메나스(ποιμενας)  즉  '목자'이다.

(엡4장 11절) 바울이 그리스도의 선물을 언급하면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기록한 내용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 외에도 다른 시제로 하나는 포이마니네 (ποιμανινε)라는 단어로서
그 뜻은 요 21장 16절에서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내 양을 치라' 이다.
 
또 다른하나는'포이마나테'{ποιμανατε}라는 단어인데,
그 뜻 역시'양 무리를 치라'는 뜻으로서
벧전서 5장 2절에서 베드로가 장로들에게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말고"라고 권하는 내용에서  언급된 것이다.
  
그리고 목자를 목사직의 대칭해서 사용하는 단어는 포이메나스(ποιμενας)외에도
그 의미를 같이 하는 단어들이 몇 개 더 있다.

그 대표적인 것들 중에 하나가 에피스코포스(επισκοποζ)'라는 단어로서
감독'이라는뜻을 가지고 있고,
또 하나는 '프레스부테로스 (πρεσβυτεροζ)'라는 단어로서'장로'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상과 같이 신약성경에서 사용된 단어들의 뜻을 종합적해서 정리해 보면
포이메나스(ποιμενας)(목자)'이라는 말은 성도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쳐 기르는 자' 라는뜻으로 설명이 가능해진다.

예수께서 직접 세우신 사도 직임이 목사 직임의기원은 아니다.
구약시대에 있었던 제사장과 왕과 선지자 직임들은 그 시대에 필요했던 직임들이고,
신약시대 초기에 있었던 사도의 직임 역시 그 시기에만 단회적으로 있었던 직임들인 것이다.

사도 바울은 목자 대칭 목사 직임의 기원에 대하여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너무도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다.

그러므로 목자 대칭 목사 직임이 구약시대의 제사장과 왕과 선지자의 직임들과,
또 신약시대에도 사도 직임과도 관계가 없는 것이다.
지금은 일반적으로 목사 직임을 부여할 때에 장로교나 감리교 및 성결교 등의 경우에
노회나 지방회에서 목사 후보생을 선발하여 신학교육을 받도록해서 시험을 거쳐 목사로 안수를 주어 세우는 것이 통례로 되어 있다.

어디까지나 목사 직임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유익하게 하시려고 은사와 직임을 각 사람에게 직접 나누어 주신 것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목사 직임자가 세례와 성찬을 집행하는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대한 말씀을 전파하기 위한 것이고,
권징을 행하는 것은 전파되는 말씀의 능력에 의해 행해지는 결과인것이다.
다시 말하면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세우신 교회에서 세례를 베풀고
성찬을 행하며, 성도가 서로 교제케하게 하며,선한 일을 행하게 하며, 말씀으로 책망하고 격려하며 위로하는 일에 쓰임 받는 일이다.

정확무오한 하나님의말씀인 성경 66권을 정확하게 깨달아 택한백성들에게 잘 가르쳐 주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도 성도들을 가르쳐야 하는 디모데에게 성경을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고 당부한 것이다.
 
‘목자’와 ‘목사’ 차이에 있어서 목자’라는 말은 영어로는 pastor(패스터), ‘양을 치는 사람’, ‘양치기’라는 뜻이다.
따라서 목자라는 말은 양이라는 짐승과 아주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용어이다.
양들을 풍성한 꼴이 있는 곳으로 안전하게 인도하고 지키며 수고하는 소박한 자를 가리킨다.

  이에 반하여 ‘목사’라는 말은 reverend(레베런드)라는 말로서 다른 사람과 특별히 구별되는 거룩한 자, 숭상할만한 자, 경외할만한 자, 공경할만한 자, 위엄이 있는 자, 성직자라는 의미가 강하다.

영어 reverend(레베런드)는 revere(리비)라는 단어에 nd가 합쳐진 말인데, revere(리비)라는 말은 ‘경건한 마음으로 숭배하다’, ‘경외하다’, ‘존경하다’라는 의미로서 다분히 계급적이고 권위적이고 특권의식이 강한 성격이 잘 표현되어 있다.
 
 이처럼 ‘목자’와 ‘목사’라는 용어는 상이한 성격을 담고 있다.
 ‘목자’는 단순히 교회를 돌아보는 은사를 지닌 교회 일군을 의미하고 있으며,
 ‘목사’는 일반 성도들과 신분적으로 구별되는 성직자를 의미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초대교회에는
오늘날과 같은 ‘목사’라는 직임이 존재하지 않았고 다만 장로들이‘목자’의 은사를 가지고서 그러한 일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성경에는 장로(감독)와 집사의 자격에 대해서는 직접 자세하게 언급이 되어 있어도(딤전3:1-13, 딛1:5-9) 목사의 자격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되어 있지 않는가?
만약 초대교회에도 오늘날과 같은 목사제도가 있었다면 목사의 자격에 대해서 자세하게 언급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 전혀 언급이 없는 것은 오늘날과 같은 목사제도가 그 때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약교회가 세워진 이후의 상황을 기록한 사도행전엔 목사의 자격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을뿐더러 아예 ‘목사’라는 단어조차도 없다.
신약교회(초대교회)가 세워진 이후에 교회와 관련하여 기록된 성경 말씀 중 ‘목자’라는 단어는 총 6번 밖에 사용되고 있지 않다.

교회가 처음 형성되어진 과정부터 점차 여러 지역에 교회가 세워진 과정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사도행전에는 ‘목자’라는 단어가 한 번도 사용되어지고 있지 않다.
오직 서신서에 5번, 계시록에 1번 사용되어지고 있다.

그런데 에베소서 4장 11절은 교회 안에 성도들을 돌아보는 은사로서의 목자를 말씀하고 있으며 히브리서 13장 20절,
베드로전서 2장 25절,
베드로전서 5장 4절,
계시록 7장 17절은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고,
유다서 1장 12절은 이단자인 영지주의자들을 가리키면서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라고 표현되어 있다.
 
만약 초대교회에도 오늘날과 같은 목사 제도가 있었다면 사도행전에 최소한 몇 번은 목사라는 호칭이 등장했었을 것이며, 특히 각 교회에 보낸 서신서에는 당연히 매번 목사라는 호칭이 등장했을 것이다.

성경에는 장로에 대한 언급 과 또 그 자격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으며,
장로들이 교회를 돌아보고, 다스리며 목회했다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다.

바나바와 사울(바울)은 구제헌금을 유대의 가난한 교회(예루살렘 교회)의 장로들에게 주었다.“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행11:30)
왜 구제헌금을 목사에게 보내지 않았을까? 예루살렘 교회에 있는 장로들이 실제로 교회를 다스리고 교회를 인도하며 목회를 하고 있었기에 장로에게 구제헌금을 전달했던 것이다.

예루살렘 교회의 장로들은 교리적인 문제가 있었을 때 12사도들과 함께 의논도 했다(행15장).
“바울과 바나바와 저희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에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의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였다.

이에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그 중에서 사람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를 가결하니 곧 형제 중에 인도자인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실라더라 그 편에 편지를 부쳐 이르되 사도와 장로된 형제들은 안디옥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이방인 형제들에게 문안하노라”(행15:2, 4, 6, 22-23)
 
왜 이 중요한 회의에 목사가 빠졌을까?
이 해답은 그 당시에는 교회에 목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교회 규모가 작고 재정이 부족해서 목사를 모실만한 여유가 없어서가 아니고 
애당초 초대교회 안에는 목사라는 직위가 없었다.

로마 카톨릭교회는 애당초 성경에도 없는 독신 신부제도,
교황제도를 만들었고,
개신교는 이것을 모방하여 목사라는 직위를 만들었다.

바울과 베드로 사도는 교회 장로들에게 직접적으로 지역교회를 돌아보고 감독하라고 명했다.
그리고 장로들은 성령님께서 교회를 감독하도록 세운 사람들이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다.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행20:17, 28)
 바울은 왜 에베소 교회의 목사를 부르지 않고 장로들을 불러 그들에게 목회자의 사명을 일깨워주었을까?

또한 베드로는 왜 목회자로서의 올바른 자세에 대해 소아시아의 다섯 지방(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두니아)에 흩어져 있는 교회의 목사들에게 말하지 않고 교회의 장로들에게 말했을까?
만약에 교회 안에 오늘날처럼 목사라는 별도의 신분이 존재했다면 당연히 목사에게 이러한 말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오늘날과 같은 직임으로서의 목사제도가 아예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장로들이 서로 그 역할을 분담하여 목회 활동을 했던 것이다.
그래서 바울과 베드로는 장로들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그리고 바울은 장로들이 이와 같은 목회 활동을 하도록 교회의 감독자로 삼은 분이 바로 성령님이라고 말하고 있다.
 
성경 그 어느 곳에서도 목사를 교회의 감독자로 삼았다는 말은 없다.
그리고 장로라는 직분과 감독이라는 직분은 서로 다른 직분이 아니라 동일한 직분을 두 가지로 표현한 것이라는 점이다.
 
감독이란, 교회를 감독하는 일을 한다는 측면에서 붙여진 이름이며,
장로는 그 나이와 신앙 경륜이 깊다라는 측면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감독은 장로 위에 있는 어떤 계급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감독과 장로는 동일한 직분이기 때문에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을 불러 모아놓고, 성령이 그들을 교회의 감독자로 삼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베드로에 의하면 본도와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그리고 비두니아 교회들도(벧전1:1)  장로에 의하여 감독되었음을 볼 수 있다(벧전5:1).
(행14:23)“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하며 저희를 그 믿은바 주께 부탁하고”
(행20:17)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빌1:1)“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는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딛1:5)“내가 너를 그레데에 떨어뜨려 둔 이유는 부족한 일을 바로잡고 나의 명한 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

사도 바울은 새로 세워진 교회에 왜 목사를 세우지 않고 장로들을 세웠을까?
여러 명의 장로보다는 한 사람의 목사를 세워 교회의 모든 것을 맡기면 교회가 일사불란하게 잘 돌아 갈 것인데 왜 여러 명의 장로들을 교회 안에 세웠을까?
 
하나님께서는  다수의 장로들에 의한 분담목회를  원하셨기 때문일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지혜보다 더 뛰어나신 하나님의 지혜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장로,
사도 바울이 세우고자 했던 장로는 역할을 분담하여 다른 장로들과 함께 목회하는 장로이다.
바울은 장로들이 거짓 교사들로부터 교회를 보호할 엄숙한 책임을 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딛1:5, 1:7-11) “내가 너를 그레데에 떨어뜨려 둔 이유는 부족한 일을 바로잡고 나의 명한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며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스려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 복종치 아니하고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자가 많은 중 특별히 할례당 가운데 심하니 저희의 입을 막을 것이라 이런 자들이 더러운 이를 취하려고 마땅치 아니한 것을 가르쳐 집들을 온통 엎드러치는도다”

베드로는 장로들이 권위주의자가 되는 것에 대해 경고했다.

(벧전5:1-3)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예할 자로라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장로교 헌법에는 목사를 장로라고 규정하고 있다.
목사에 대한 정의를 성경에서 장로의 임무에서 찾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목사도 장로라고 명시하고 있다.

대한 예수교 장로회 총회헌법 제2편 제5장 제24조에는 목사의 의의에 대해 6가지로 규정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목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양인 교인을 양육하는 목자이며(렘3:15, 벧전5:2-4),
  ②목사는 그리스도를 봉사하는 종 또는 사자이며(고후5:20, 엡6:20),
  ③목사는 모든 교인의 모범이 되어 교회를 치리하는 장로이며(벧전5:1-3),
  ④목사는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교인들을 깨우치는 교사이며(딛1:9, 딤후1:11),
  ⑤목사는 구원의 복된 소식을 전하는 전도인이며(딤후4:5),
  ⑥목사는 그리스도의 설립한 율례를 지키는 자인고로 하나님의 도를 맡은 청지기이다(눅12:42, 고전4:1-2).
 


   1항에서 왜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양인 교인을 양육하는 목자이며’라고 규정하면서 이에 대한 근거로 구약성경 예레미야 3장 15절과 신약성경 베드로전서 5장 2-4절을 들고 있는데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베드로전서 5장 2-4절은 장로들이 양들을 돌아볼 때 지녀야 할 자세에 대한 말씀이다.
그 앞뒤의 구절(1절과 5절) 말씀도  장로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그런데 왜 이 구절을 목사직에 대한 성경적 근거로 제시하고 있을까?
그 이유는 목사직에 대한 근거로 제시할 성경구절이 성경에는 없기 때문이다.

신약교회(초대교회) 형성 이후에는 ‘목자’라는 용어가 교회 안에서 몇 군데 사용된 흔적은 있으나, 이 단어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직접적으로 지칭한 경우는  성경에 오직 에베소서 4장 11절과 유다서 1장 12절 두 군데 밖에 없고,

나머지는 모두 예수님을 지칭하고 있다. 그런데 에베소서 4장11절의 경우에는 목사라는 직위를 말하기보다는 목자와 같은 일을 하는 은사를 가리킨다.
예레미야 3장 15절 말씀은 “내가 또 내 마음에 합하는 목자를 너희에게 주리니 그들이 지식과 명철로 너희를 양육하리라”이다.

그런데 이 말씀들은 오늘날 목사직임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구약시대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목자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사56:11,렘23:2, 50:6, 겔34:2-3) 오늘과 같은 목사라는 직위는 없었다.

예레미야 3장 15절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목자의 일을 할 사람을 보내실 것을 약속하신 말씀으로서 궁극적으로 참 목자이신 예수님에 대해 예언하신 말씀이다.
 
3항은 목사를 교회 치리하는 장로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그 근거를 또다시 베드로전서 5장 1-3절의 말씀으로 삼고 있다.  그 이유는, 성경 어디를 보더라도 목사들이 교회를 치리하며 목회 했다는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오늘날처럼 ‘목사’라는 별도의 직임자가 교회를 치리하고 목회 했다는 근거가 성경에 한군데라도 있다면 그 성경구절을 근거로 삼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근거가 성경에는 한군데도 없기 때문에 도리어 장로의 목회 자세에 관련된 성경구절을 그 근거로 삼고 있는 것이다.
 
 4항, 5항에서는 목사가 교사이며, 전도인(전도자)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 또한 에베소서 4장 11절 말씀이 교회 안에 있는 직위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은사에 대해 말하고 있음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목사, 교사, 전도자가 직위가 아니라 단순히 은사를 가진 자를 의미하기 때문에 한 사람이 목사(목자)의 일도 하기도 하고, 교사의 일을 하기도 하고, 전도자의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  교회 안에서 하나의 목사를 ‘목사님’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또 어느때엔 ‘전도사님’이라고 불리기도 하면서 또한 어느때엔 ‘선생님이라고 불리운다면 그것은 목사들에게 있어서 아주 난감하게 그지 없을것이다.
한 사람이 이러한 일들을 모두 하는 경우는 있겠지만 한 사람이 이러한 직위를 모두 갖고 있는 경우는 없다.

이는 마치 큰 회사에서 부득이 한 경우에 사장이 과장의 일을 하면서 과장의 일과 대리의 일을 할 수는 있겠지만 사장을 동시에 과장, 대리으로 불리는 경우는 없는 경우와 같다.

목사(목자), 교사, 전도자가 은사에 따른 교회 안에서의 하는 일의 차이가 아니라 교회 안에서의 직위이라면 한 사람이 3가지 직위를 동시에 가질 수는 없다.

이에 반하여 장로의 직무와 자격에 대해서는  성경적 근거를 확실하게 제시하고 있다.
대한 예수교 장로회 총회헌법 제 2편 제6장 제39조에서는 장로의 직무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장로는 교회의 택함을 받고 치리 회원이 되어 목사와 협력하여 행정과 권징을 관리하며,
교회의 신령상 관계를 살피며,
교인들이 교리를 오해하거나 도덕적으로 부패하지 않도록 권면하며 회개하지 않는 자가 있으면 당회에 보고한다.

또한 제40조에서는 장로의 자격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장로의 자격은 상당한 식견과 통솔의 능력이 있는 자로 무흠 세례교인(입교인)으로 7년을 경과하고 40세 이상된 자라야 한다.

그러면서 또 집사의 자격에 대해서도 성경적 근거를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대한 예수교 장로회 총회헌법 제 2편 제8장 제51조에서는 집사의 자격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집사의 자격은 교우들의 신임을 받고 진실한 신앙과 지혜의 분별력이 있고, 무흠 세례교인(입교인)으로 5년을 경과하고 30세 이상된 남자로서 디모데전서 3장 8~10절에 해당한 자라야 한다.

우리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성경에는 장로의 임무와 그 자격에 대하여 너무나도 많은 곳에서 언급하고 있는데, 그런데 왜 총회헌법에서는 이러한 성경구절들을 근거로 해서 장로의 임무와 자격을 규정하지 못을까?

그 이유는, 총회 헌법에서 목사의 임무와 자격을 규정할 때 이미 장로의 임무와 자격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모든 성경구절들을 목사의 임무와 자격에 모두 대체 해버렸기 때문이다.

장로들이 교회를 다스려야 한다’는 이 원칙에는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동의를 하고 있다. 왜냐하면 성경의 너무나도 많은 곳에서 이를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자 칼빈(갈뱅)도 장로들에 의해 다스려지는 교회정치를 주장하게 되었고,
이로 말미암아 장로교라는 교단도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교회내의 모든 직임은 하나님께서 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모든 직임 행위에 있어서 성경의 표현을 뒷받침한다.

허지만 오늘날 세계 거의 모든 교회가 신학교를 통한 목회자를 배출하기 때문에 일부 부정적인 시각이(비록 성경에는 없고 총회헌법에만있는) 있을지라도 하늘나라 확장하는 데 있어서는 이 시대에 꼭필요 불가결한 형태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또 이러한 방법을 통하여 자기일을 섭리해 가시는것에 대해서 긍정적인 것들도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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