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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 영성 이해

by 【고동엽】 2010.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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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빈의 영성 바른이해 
                                  
“제네바는 그 도덕적인 힘 때문에 존속할 수 있었습니다. 제네바는 영토도 군대 도 시간이나 공간, 그리고 물질을 위한 그 어떤 것도 소유하고 있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제네바는 '은총에 의한 선택’이라는 반석 위에 '엄격한 금욕’의 윤리로 세워진 성령(Spirit)의 도시였습니다. 프랑스의 방종으로 유럽이 빠진, 그 흉칙하게 어두운 진흙 구덩이 속에서, 이 영웅들의 훈련소는 꼭 필요한 곳이었습니다. --- 그러한 유럽에 순교가 필요한 상황이 발생하여 사람들이 불에 태워지고 수레에 깔려 죽어야 할 어떤 필요가 생겨나기만 하면 요한 칼빈은 찬송을 부르며 기꺼이 그곳으로 죽으러갈 제네바 사람이었습니다.”1

위의 말은 칼빈주의자(Calvinist)도 아니고 개신교도도 아닌 불신자 역사가인 쥘미셸레가 칼빈(John Calvin)의 학문과 사람됨에 대해 내린 평가이다. 칼빈(John Calvin)에 대한 그의 이같은 평가와 인상은 오늘날과 같이 영적으로 메마른 신학이 만연한 시대에 시원한 한줄기 샘물처럼 다가온다.


존 칼빈이 박해를 피하여 도망한 바젤에서, 종교개혁사에 있어서 찬란한 빛을 던진 불후의 명저인 [기독교 강요]를 저술하였을 때는, 바로 마르틴 루터가 성경을 번역하고 있던 시기였다. 그가 제네바에서 목회할 때에 옷소매에 향상 새져둔 문장(紋障)은 심장(heart)를 들고 있는 손이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이런 글귀가 있었다. “Cor meum tibi offero Domine”(나의 마음을 주님께 드리나이다). 사실 '마음'(Cor)이라고 번역된 이 단어는 원래 심장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리고 싶어하는 하나님의 사람 칼빈의 전존재적인 갈망의 표현이었다.

2. 문제는 무엇인가
우리는 위대한 종교개혁자들에게 참된 신앙에 관한 한 빚을 지고 있다. 개신교 신양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신학을 공부하는 처지에 있는 자라면 누구든지 그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위대한 개혁자들을 마치 교주를 떠받들 듯이 존경하고 심지어는 그들의 학문적인 결론을 통해서 성경의 결론이 무엇인지를 추론해가는 듯한 인상까지 받는다.


칼빈만하더라도,그가 종교개혁에 몰두하던 당시에 과연 몇백 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 교회들이 자신을 이처럼 떠받들어주고, 자신이 내린 신학적인 결론들에 대하여 이같은 존경심을 표현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필자는 신학공부를 하던 중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신학적인 토론을 할때, “성경은말하기를 (the BibIe says)…”이라고하면 토론의 결말이 안나도, “칼빈이 말하기를(Calvin said)…”이라고하면 결론이 난다는것이다.그의 신학적인 진술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건전한 것이고, 그가 하지않는 이야기나 반대되는 말을 하면 말하는 사람의 신학적인 배경을 의심받는다는 것이다. 우스개 소리였지만 이러한 일화는우리로 하여금 많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우리의 의문은 바로 여기에 있다. 칼빈이 남겨준 방대한 신학적인 유산과 학문적인 결론들에 대하여는 신성하리만치 엄숙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물론 교단에 따라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교회나 신학교도 있지만), 우리의 목회는 전혀 칼빈의 것들을 닮지 않았다는 것이다.


칼빈의 셜교를 연구하면서 느낀 것은 칼빈은 자신이 발견한 개혁사상을 전파하는 일에 열심을 낸 것이 아니라 성경 자체를 설교하는 일에 최션을 다했다는 것이었다. 칼빈은 역사의 소용돌이와 급변하는 정치적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독특한 사상을 확신시키기 위하여 분주해 하지 않고 모든 성경을 골고루 셜교해 나갔다. 우리 생각에는 그가 로마서 같은 교리적 서신을 주로 설교했을 것 같은데 사실은 이상하리만치 균형을 유지하면서 신구약을 골고루 설교해 나갔다. 그는 실로 개혁 사상의 종이 아니라‘말씀의 종’(the servant of the Word of God)이었다.


그의 이러한 놀라운 균형은 종교개혁이 인간의 손에 달린것이 아니라 시대를 초월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달렸다는그의 믿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의 신학적인 유산을 사랑하면서도 그와같이 설교하지는 않는다. 전기적인 유산을 소중히 여기면서도 그처럼 살지 않는다. 같은 진리를 가르치면서도 그 사람처럼 불타는 마음으로 가르치지는 않는다. 그의 학문의 세계에 대하여 감탄하는 이들은 많지만 칼빈을 닮은 ‘성학’(聖學, the Divine)들은 출현하기를 그쳤다는 것이다.2 일반적으로 그 영역이 무엇이든지 간에 찬미자들은 찬미의 대상을 닮아가게 마련인데, 칼빈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목회와 신학의 세계에서는 이러한 일반적인 인간의 경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것일까?


3. 경배로서의 신학함
우리는 이러한 원인을 그의 신학함에서 발견한다.칼빈에게 있어서‘경건’은 그의 신학함의 구심정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경외’였으며, 교리를 세울때나 성경을 해석할때 언제나 적용되는 원리였다. 따라서 그의 학문적인 탐구들은 늘 목회적이고 실천적인 관심사와 동떨어지지 않았다. 사실 신학에 있어서 이와 같은 목회적이고 실천적인 성격은 종교개혁 이후 청교도들에게도 그대로 이어진다.


오늘날의 신학함의 문제는 너무 사변적이라는 데 있다. 다시 말해서 신학의 동기가 지나치게 순수(?) 학문적이라는 것이다. 분명히 이런 방식의 신학함은 종교개혁자들이나 청도교들에게는 매우 낯선 것이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성경을 올바르게 깨닫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참된 신앙이 무엇인가를 규명하기 위하여 신앙의 원칙들을 발견해내는 것이었다.


그들은 하나의 교리를 발견했다고 하더라도 실천적인 삶 속에서 진실임을 입증받기 전까지는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일을 삼가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학문이 아니라 신앙이었으며, 현학이 아니라 거룩한 삶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은 단지 우리의 이론과 지식의 자랑을 통해서가 아니라 진리를 따라 사는 거룩하고 투쟁적인 삶을 통해서였기 때문이다.


"신학’(神學)이라고 할 때 ‘신’(神, ‘하나님’)과 ‘학’(學, ‘탐구’)의 관계는 속격(genetive)이기도 하고 대격(accusative)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신학에 있어서는 모든 학문적인 탐구 활동이 신학의 성취가 하나님이 자신을 먼저 알려주시는 계시라고 하는 선행된 신학(antecedent theology)에 전적으로 빚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신학은 하나님의 신학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신학은 하나님을 탐구하고 배우는 학문이라는 것이다.
이 모든 논의 위에 있어야 할 전제는 하나님은 우리의 연구의 대상이기 이전에 경배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한 사람이 신학을 공부함에 있어서 그의 신학함은 ‘경배 의 과정’이 되어야 하고, 경배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어야 하며, 신학적인 결론은 하나님을 향한 ‘송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신학의 시작점은 진리인 성경이다. 그러나 하나님께 대한 영적인 체험이 신학을 공부하는 이의 성경 이해에 영향을 미친다.


4. 칼빈의 회심
따라서 신학자 칼빈을 규명함에 있어서는 먼저 신앙인으로서의 칼빈을 고려해야하고, 신학의 결론을 받아들이기 전에 그의 신학함이 어떠하였는지를 파악하지 않으면 안된다. 바울이나 마틴 루터(M. Luther)가 그러했듯이, 칼빈에게도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한 신앙적인 계기가 있었다. 그는 시편 주석 서문에서 자기의 회심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어둡고 비참한 상태로부터 끌어올리셨으며, 나에게 가장 명예로운 하나님의 사자(使者)와 복음 사역자의 직무를 부여하셨습니다. 나의 아버지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신학을 공부시킬 의도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법률가가 되는 것이 보다 많은 부를 소유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갑작스럽게 마음을 바꾸셨습니다. 공교롭게도 나는 철학을 공부하다가 법학을 공부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역시 아버지의 소원에 부응하려는 순종심에서 그렇게 한 것이었으나, 나는 열심히 공부하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당신의 비밀스러운 섭리의 고삐(ferno)로 나의 진로를 다른 방향으로 돌리셨습니다.

제일 처음 일어난 일은 예기치 못한 회심으로 다년간 완악해진 나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온순하게 길들이시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교황제의 미신에 너무강하게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이보다 못한 그 무엇으로는 나를 그깊은 수렁에서 끌어내실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이렇게 참 경건의 맛을 본것이 그안에서 진보하려는 나의 갈망에 불을 불이게 되었습니다.나는 비록 전적으로 포기하지는 않았지만, 남은 기간의 공부는 열심을 잃은 채 냉랭하게 해야 했습니다. 회심한지 일 년도 채 못된 초보자요 신출내기인 나에게 사람들은 교리를 배우기롤 갈망하며 몰려왔습니다”3


그는 회심을 통하여 경건의 깊은 맛을 경험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경건의 맛을아는 신앙은 그로 하여금 회심한 지 일 년 밖에 안되었는데도 참된 기독교 신앙에 대한 상당한 식견을 갖게 만들었다. 결국 그의 이러한 탐구는 개인의 신앙적인 변화의 계기가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회심을 통하여 깊은 경건을 맛본 영적인 체험이 신학함에 미치는 영향을 알게 된다.


5. 신(神) 지식과 경외함
역사적으로 한 신학자의 위대함은 단지 학문 자체만이 아니라, 신학을 연구하는 ‘신학함’(doing the theology)의 독특함에서 입증된다. 칼빈이 파리에서 하나님을 깊이 경험하고 개혁 신앙을 갖게 된 후에 그가 언제나 자신의 삶의 모토(motto)로 삼았던 것이 있다 ‘경건과학문’(Pietas et scientia)이 바로 그것이었다. 경건이 먼저였다. 그 다음 학문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경건한 삶에 유익을 주지않는 학문은 학문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을 안 지식에 관하여 말하자면, 나는 그것이 이런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 지식에 의하여 우리가 단지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만을 알게 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우리의 관심이 무엇이어야하며,그분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즉 간단히 말해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통하여 우리는 그분에 관하여 아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신앙이나 경건이 없는곳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4


결국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느끼고, 그분과 교제를 나누는 인격적인 앎과 거기에서 비롯되는 거룩한 경건 없이는, 신학적인 탐구가 하나님을 알게 하는데 기여할 수 없다는 것이다.잘못된 신학함이 우리의 신학 수업 중에 고쳐지지 않으면,신학을 통하여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아는 것은 수학을 통하여 천국을 알고자 하는 것과 다름없이 어리석은 공부가 될 것이다.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한다.


“오히려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졌으면 마땅히 그 지식은 우리에게 경외감과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르치는 효력을 가져야합니다. 그 지식외 두 번째 효력은 우리를 안내하고 가르쳐서 모든 좋은 것을 하나님께 구하도록 우리를 유도하고, 구한 것을 받았으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게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삶의 법칙이 되는것이 마땅합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복종하는 방식으로 틀이 짜여져 있지 않다면, 정말 우리의 삶은 서글프게도 부패한다는 피할 수 없는 확실한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한편 하나님께서 모든 선함의 기원과 근원임을 부인하는 그릇된 개념은 분명하지 못한게 틀림없습니다. 그러니 이 지성의 부패로 인하여 탐구의 바른과정을 벗어나게 되지만 않았었다면, 하나님께 대한 확신과 하나님께 대한 간절한 애착심이 함께 일어났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경건한 지성은 그 자체로 어떤 류의 신도 찾지 않고 오직 유일하신 참 하나님만 바라봅니다. 또한 자기가 좋아하는 어떤 류의 특성을 상상하여 하나님이 그런 특성을 가지고 계신 것 같이 꾸며대지도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스스로 당신의 특성을 계시하여 주셨는데, 경건한 지성은 바로 그 계시하신 특성으로 만족해하며 언제나 부지런하여 깨어 하나님의 뜻을 범하지는 않았는지, 주제 넘은 무엄한 자세로 바른 길을 벗어나 방황하지는 않고 있는지 돌아보아 자신을 살핍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위엄을 존중합니다. 그리하여 자신이 더욱 더 하나님의 영광이 되고 하나님의 계명에 복종하는 것을 목표로 삼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은, 하나님을 엄중하게 범죄를 심판하실 의로우신 재판장으로 여기므로, 항상 그 생각 속에 하나님의 심판받을 자리가 그려져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재판 보좌에 대한 외경심 속에 항상 깨어서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의 노를 격발하까 두려워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의 판단을 알고 두려워한 나머지 그 재판 보좌 앞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스스로 그 보화에서 물러서기를 바라는 식으로 하나님의 심판 보좌를 이해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하나님께서 악을 복수하시는 분인 동시에 의인에게 상을주시는 분 이심을 믿고 환영합니다. … 순전하고 진정한 신앙, 곧 하나님을 확신하는 것이 그와 같이 진지한 두려움(단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율법이 지시하는 합법적인 경배를 내포하고 있는 두려움)을 수반합니다. 모든 이들이 하나님께 충성심을 가지고 있다고 멋대로 고백을 하고 있으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들은 아주 소수에 지나지 않으니 더욱 주의깊게 생각해볼 일입니다.”


“우리가 마음으로 그 분을 경외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모든 선(善)의 근원이시며, 이에 관한 아무 것이라도 그 분 밖에서 찾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확신하지 않으면서, 단지 하나님을 경외와 찬양의 대상으로 주장하는 것은 충분하지 못합니다. 창조하신 우주를 무한하신 권능으로 유지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식하는 것은 신앙을 낳게 하는 경건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기 때문입니다. ‘경건’은 하나님께 대한 경외와 사랑이 결합된 것을 가리키는데, 이 사랑은 그의 은혜를 깨달아 앎으로써 오는 것입니다." 5


그는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잘못된 신학함의 위험과 진정한 의미의 신학함에 대하여 알고 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그분의 은혜를 깨달아 아는 지식에서 비롯되고, 그 지식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낳는다. 그가 말하는 바에 의하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더하면 더할수록 주님의 은혜를 아는 지식에서도 자라가고, 그 은혜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면 갈수록 하나님을 더 깊이 사랑하게 되며, 이 모든 탐구는 신앙과 경건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신학함이 얼마나 심각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지를 알 수 있지 않은가?
신학에 있어서 이러한 경고는 제2차 세계대전 전후 독일의 신학자였고 영향력있는 목회자이자 설교자였던 헬무트 틸리케(Helmut Thielicke)에 의해서도 반복된다.


“역사 비평적 연구 방법이 횡행하는 이러한 신학의 시대에서 강조해야 할 것은 그리스도인의 공동체 속에 성경 말씀과 연결된 강건한 영적인 생명력이 신학 연구에 탄탄한 기반이 되어야한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젊은 신학생들의 희미하고 미성숙한 사고력은 그리스도와의 영적인 연합이 가져다 주는 생명력에서 그 신학적인 생명을 유지시키는 피를 공급받지 않으면 안됩니다.”6

6. ‘다아트 엘로힘’
성경에는 자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거론된다. 구약 성경에서는 ‘다아트 앨로힘’( )이라는 표현을 쓴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반드시 체험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다. 호세아 선지자는 ‘지식( )을 그것을 소유한 사랍의 모든 종교와 삶을 움직이는 원동력으로 이해한다(호 4:6). 그리고 그 지식이 계속 그 사람 안에 거하는 것도 신앙과 사랑을 통하여 가능하게 된다는 사실올 보여준다.


칼빈의 [基督敎 綱要] 시작 부분에서 강조하고 있는 신지식(神知훌)에 대한 사상도 이러한 성경 이해에 기초를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칼빈은 이미 신학이라는 학문적 활동이 하나님을 더 잘 이해하고, 신학의 본래 목적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그가 하나님을 더 잘섬기기를 원하는 거룩한 사랑과 두려움의 정서를 가진 사람일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가 은혜로운 종교적 정서의 기원이 신령한 은혜 체험에 있음을 누누히 강조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는 인간 마음의 정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신앙에 있어서) 정서라고 하는 것은 영혼이 지닌 성향과 의지의 힘 있고 지각할 수 있는 실천이다.”7

그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영혼에 두 가지 기능을 부여하셨다 그 하나는 지각하고 사변할 수 있는 기능이다. 그것을 통해서 영혼은 여러 가지 사물을 분별하여 살피고 판단한다. 우리는그것을‘이해’(understanding)라고 부른다. 또 하나의 기능은 단순히 사물을 지각하고 살피는 것만이 아니라 살피고 생각하는 것들에 관하여 어떤 성향을 보이게 하는 기능이다. 그 살펴보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하여 마음이 기울어지게 하든지, 아니면 그것들로 부터 멀어지며 반감을 가지게 한다는 것이다.8


따라서 하나님을 아는 거룩한 지식에 불붙게 할 목적으로 습득되는 신학 지식이 아니고, 하나님을 더욱 정성껏 섬기기 위한 목적으로 배우는 하나님에 관한지식이 아닌 한,그것은 참된 지식이 아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의 실천과 그리스도를 본받는 인격적인 변화에 대한 체험 없이 단지 자랑을 위하여 신학을 공부하는 것은 신학적인 간음이다. 식학에 대한 이러한 이해 없이는 칼빈을 아무리 공부해도 그의 신학적인 결론만을 인용하는 것 외에 더 이상 칼빈을 닮는 것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7. 메마른 신학
단지 공부만 열심히 하고 도무지 신앙의 깊이와 뜨거움이 없는 신학자들을 가리켜서 ‘메마른 학자’(dry scholar)라고 한다.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신학적인 지식과 신앙이 아름답게 연결되어서 하나님 교회의 영적인 자산이 되고, 또 그 지식이 자신의 영적인 삶과 신앙을 풍요하게 하는지 그 실천(praxis)을 보여줄 수 없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그런 방식으로 신학의 지식과 신앙생활을 분리하게 될 때, 우리는 매우 심각한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오늘날 신학을 공부하고 목회 사역에 들어간 많은 목회자들이 신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아무런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학문에 있어서 실용적인 특성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신학함의 신앙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신학 자체를 배우는 것과 함께 어떻게 신학하는 것이 올바른 신학함인가를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9 거룩한 은혜와 하나님께 대한사랑이 깃든 경건의 지배를 받는 삶이 아니고는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10


하나님께서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잠23:26)라고 말씀하실 때 그것은 사랑의 정서가 깃들인 경건에 바쳐진 마음을 달라는 것이었고,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것을 소유하시는 방법이기도 하다.
인간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가장 중요한 태도인 ‘경외’(敬畏)는 두려움과 사랑으로 이루어진다.그리고 이 두가지 모두 사랑과 열정이 있는 ‘경건’을 배제하고는 생각할 수 없는 마음의 작용이다. 종종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이처럼 사랑하고 경외하는 사랑의 정서가 깃든 경건 없이 종교적인 의무만을 행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더욱 하나님의 진노를 자극하는 것이었다(암5:23-24, 신 10:12).
하나님은 우리가 가진 사랑의 정서를 세상에 빼았기기를 원치 아니하시며 그것을 독점하시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우리도 우리의 모든 정서가 하나님을 향한 사랑에 의하여 지배받게 될 때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구원의 계획도 성취될 수 있다.

8. 붙 붙은 신학
진정한 의미에서, 신학은 불 붙을 때 비로소 신학으로서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불 붙은 신학을 칼빈에게서 본다. 베자(Beza)는 칼빈의 말씀 사역에 대하여 이렇게 평가하였다.

“그의 설교에는 동정이나 매력이 부족하고 상상력의 결핍도 나타났으며,예화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어떠한 시적인 전환이나 감동적인 호소나 솟구쳐 오르는 웅변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의 장점은 놀라운 것이 었습니다. 용기, 정직함 진리에 대한 불같은 사랑, 맡은바 직무에 대한 헌신, 신앙적인 원칙에 충실한 삶과 섬김, 동료들에게 보여준 신실함, 거룩한 목표에 대한 열심, 하나님께 대한 거룩한 순결과 사역에 몸과 마음을 바친 것 등 여러 가지 뛰어난 특성들을 주목할 때 앞서 언급한 결점들을 잊어버리게 됩니다.”11

그의 설교사역에 대한 또 다른 평가는 에드윈 다아간(Edwin C.Dargan)에게서 본다.

“그의 설교에는 설교자의 기교를 더함이 없이, 성경의 표현으로 성경의 사상을 드러내는데, 날카로운 자각과 명확한 이해, 표현력이 총동원되어 있다. 설교 양식은 명쾌하고 박력 있고 예리하며, 꾸밈이 없으면서도 순결하고 엄격한 우아함이 있고, 인간적인 따스함은 없지만 거룩한 열정과 힘에 불 붙은 설교였다.”12

그런 점에서 볼때, 하나님을 말씀으로 섬기기 원하는 사람들은 성경에 대한 지적인 준비와 함께 영적인 체험에서 비롯된 거룩한 정서가 깃든 경건을 소유하는 것이 성경에 관한지식을 삶으로 연결시켜 주는 다리가 됨을 잊지 말아야한다. 신학적인 지식이 어떻게 신앙과 조화되고, 선학을 통해 알게 된 성경에 관한 지식이 어떻게 사람들의 인격속에서 불 붙여져서 구체적인 섬김으로 나타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지에 대한 신앙체험을 지녀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가 이해하는 성경에 대한 지식은 언제나 깊은 한계를 가진다. 이러한 신앙의 체험을 통한 사랑과 헌신의 경건을 유지하지 못한 채 계속되는 신학 연구는 단지 그로 하여금 현학과 인간적인 자랑을 위하여 헌신하게 한다.

만약 우리가 18세기 미국교회들의 영적인 각성과 부흥의 역사를 주의깊게 살펴 본다면, 오늘날 볼 수 없는 희귀한 현상에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그 시대의 신학교 학장들의 목록은 곧 당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능력있는 경건한 설교자의 목록과 거의 일치한다. 그들은 뛰어난 학자들이었고, 동시에 뛰어난 설교자들이었다. 그들은 목회할 수 없는 신학자들이 아니었고 오히려 모든 교회의 설교단이 그토록 목말라하는 영적인 설교자였으며 목회자들이었다. 1790년대 미국 버지니아의 부흥과 대각성의 역사를 개관한 후 던져진 이얀 머레이(Iain Murray)외 다음과 같은 지적은 우리에게 두고두고 교훈이 된다.

“위대한 부흥은 장로교회들에게 정통적으로성경적으로 올바른 설교-물론 그것이 교회에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것이기는 하지만-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권위, 부드러움, 열정, 긍훌-이러한 것들이 하늘로 부터 쏟아부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기독교 사역 속에 이같은 것들이 깃들 때, 비로소 진정으로 신학이 불붙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13

9. 목회와 신학은 분업인가
그들은 신학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목회를 하고, 목회를 할수 없는사람들이 신학을 가르치는 이상한 분업 체제(?) 같은 것에 대하여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더욱이 신학을 아는 지식이 해박해진다고 하는 의미가 곧 신앙적인 정서와 열정을 상실하고 냉담하고 직업적인 학자가 된다는 것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는 논리 같은 것들은 그들에게는 당연히 매우 낯선 것이었다.

요점은 이것이다. 신학을 공부하면서 거룩한 정서와 열정을 함께 배우지 못하거나 그것을 잃어버리는 것은 필수적이지도 않고 필연적이지도 않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은 우리에게 거룩한 경건을 불러 일으킨다. 단지 올바른 신학을 배우고 경건한 신학자들의 성경과 학문 연구의 유산들을 습득한다고 해서 그지식이 곧 우리로 하여금 그런 삶을 살아가도록 만들어 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는 단지 그들이 이루어 놓은 연구 업적들과 신학의 결론만이 아니라,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갔으며, 그들이 어떻게 신학하였는가에 대하여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 성경의 진리를 예리하게 주석해 나가다가 하나님께 드리는 긴 탄원으로 이어지는 칼빈의 주석이나, 자신의 저서 [프롤로그(Prologue)]속에서 신(神)의 증명을 기도로 시작하던 안셀름(Anselm)을 생각해 보라. 영적인 경험을 통하여 성경의 진리를 터득하고, 삶의 실천을 통하여 진리를 획득하던 사람들에게서만 나타날 수 있는 담대함과 거룩한 갈망이 넘쳐흐르는 루터(Martin Luther)나 오웬(John Owen)의 글들을 보라.

17세기 이후의 영국의 청교도 계통의 많은 성학(聖學)들의 생애를 살펴보라. 신학은 그들에게 성경에 대한 이해를 제공하였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바를 영적으로 경험하여야 할 필요성을 일깨워주었다. 기독교는 처음부터 이러한 체험적인 특성을 가진 종교였다. 그래서 크라일사이머(A. J. Krailsheimer)는 이같이 말한다.


"기독교는 처음부터 경험에 뿌리를 내린 신앙이었습니다. 기독교는 지적인 체계도 아니고 법적인 규약도 아닙니다. 기독교의 진리는 역사적인 예수의 삶과 죽음과 교훈에 대한 확실한 증언 위에 기초해 있으며, 그런 사건에 직접적으로 관계된 사람들의 체험 위에 서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삶 속에 나타난 실제적인 현상에 일치된 체험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 국외자들에게는 기독교의 2천 년 역사가 지적인 체계와 도덕률에 관심을 기울여온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종교가 제도화되는데 따른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영적인 진리가 없는 교회는 건전한 사교 모임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며, 기독교는 전설의 집합체로 전락하게 되고 윤리와 형이상학이 동일한 것으로 취급될 것입니다.”14

신학의 역사를 살펴볼 때, 재미있는 것은, 작은 신학자들은 신학 자체를 공부하면서 태어났지만, 교회의 역사를 움직인 위대한 신학자들은 모두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는 영적인 체험을 통하여 탄생하였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다. 학문적인 준비가 갖추어진 사람이 성경을 통하여 위대한 하나님의 성품을 경험하고, 그 시대가 심어준 신학적인 편견과 무지로부터 해방될 때 위대한 신학자들이 탄생하게 되었고, 그것은 곧 그들 안에 한결같은 경험을 가져다 주었다. 그것은 거룩한 열정의 체험이었다. 그래서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는 이렇게 말했다.

“한 사람의 신학자가 되는 것은 독서하고 명상을 한 것을 통해서가 아니다. 진리를 향하여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것을 통하여 이루어진다”15
10. 영력 있는 지성인가
종교개혁사에 나오는 다음의 일화는 칼빈의 독특한 신학함이 그의 신학의 결론에 무엇을 더하여 주었는지를 엿보게 한다.제네바에서 종교개혁을 위해 섬겼던 순수한 말씀의 증언자들 가운데는 프로망(Froment), 비레(Viret), 파렐(Farel) 이 세 사람이 출중하였다. 1536년 어느날 로잔느 (Lausanne)에서는 종교 회담이 개최되었는데, 개혁자들과 가톨릭 신학자들 간의 이와 같은 회담은 토론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으로 결과에 따라서는 한 도시가 개혁파 쪽으로 넘어올 수도 있고, 한 도시의 개혁 세력이 매장될 수도 있는 그러한 것이었다.


양측의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하나님의 사람 존 칼빈(J. Calvin)은 처음 사흘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파렐과 비레가 그들을 상대로 토론하도록 물러나 있었다. 나흘째 되던 날은 토론의 주제가 성만찬이었다. 가톨릭 측의 유능한 변론자인 미마르(Mimard)가 등단하여 자신이 준비한 연설문을 주의깊게 읽어 나갔다. 그는 종교개혁자들이 어거스틴과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교부들의 교훈을 우습게 여기고 있다고 비난하였다.
바로 그때, 마른 체구에 창백한 얼굴을 한 젊은이 한 사람이 일어서서, 비웃음을 머금은 채 승리를 확신하고 있는그 유능한 카톨릭의 변론자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칼빈이었다. 뜻밖의 인물의 출현에 의아해하는모든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는 입을 열기 시작하였다.16


“거룩한 교부들에게 영예를 돌립니다. 우리들 중에 당신보다 교부를 더 잘 알지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교부들의 이름을 들먹이지 않도록 조심하여야 할 것입니다. 당신이 그토록 존경하는 교부들의 저작들을 좀더 철저하게 읽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당신이 교부들에 대해 제대로 공부하였더라면, 그들의 저작 중에 몇몇 구절들은 당신에게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아무런 준비된 원고가 없는 상태에서 칼빈은 즉석에서 가톨릭측에의하여 제시된 여러가지 의견들을 조목조목 신학적으로 성경적으로 반박하기 시작하였다. 모든 사람들은 숨을 죽인채 그의 연설을 듣고 있었다. 그의 모든 논거들은 철저히 교부들로 부터만 이끌어져 오고 있었다. 그들은 개혁파 사람들이 무시한다고 비난하던 교부들의 글을 통해서 자신들이 이토록 궁지에 몰리게 될 줄은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칼빈은 먼저 교부 터툴리안(Tertullian)의 견해를 인용한 후 주석하기 시작하였으며, 교부 존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의 것이라고 밝혀진 설교의 한 구절을 인용하고 출처를 밝혔다. “제11장 중간 부분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는 어거스틴의 저작을 인용하였다. “제23장 마지막 부분에서….” 그리고는 마니교도인 아만투스(Amantus)를 반박한 어거스틴의 책에서 또 한 부분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이상은 그의 글 중간 부분에 있는 내용입니다.” 교부 어거스틴(A. Augustine)의 시편 98편에 대한 주석에서, 그리고 또 다른 곳에서 그는 전부 어거스틴의 저작으로 부터 인용하였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교부 어거스틴의 요한복음 설교의 시작 부분인데, 아마 여덟 번째 아니면 아홉 번째 설교일 것입니다….”17


이미 상당히 긴 시간이 흘렀으나 이 젊은 칼빈은 고대 교부들의 저작들로 부터 자신의 의견을 개진해 나가기 위해 증빙자료로 그것들을 인용하고 주석하는 일을 끝내지 않았다. 그가 능숙하게 인용하고 주석해 나가는 자료들 가운데 어떤 것들은 거기에 참석한 대부분의 사람들 즉 교부의 저작들을 스스로 신성시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조차도 낯선 것이기도 하였다.


그는 토론되고 있는 문제에 관한 복음주의적인 해석을 입증하기 위하여, 그들 사이에서도 아직 충분히 언급되지 않은 많은 자료들을 엄청나게 쏟아 놓기 시작 하였다. “[집사베드로를위한신앙론](De Fide ad Petrum Diaconum)이라는 책에는 이렇게 적혀 있고, [다르다누스에게](ad Dardαnus)라고 제목 붙여진 서간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는데---.”18


칼빈은 이 모든 것을 암기하여 대답하였다. 원고도 없이 책도 없이 그는 자신의 정리된 기억속에서 이 모든 것들을 이끌어 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한 사람의 학문적 천재성이 드러나는 순간만은 아니었다. 발표하는 자신의 신앙에 의하여 확신되어지고, 칼빈 자신이 성령에 의하여 감동되고 있는 거룩한 성경 진리였다.
천부적인 기억력을 통하여, 제시되고 있는 이 참된 기독교 신앙에 대한 학문적인 중언들을 들으면서 양측 모두는 숨을 죽였다. 자신의 고발과 비난을 확신있는 목소리로 선포하였던 가톨릭의 연사는, 작은 체구에 창백한 젊은이 칼빈이 그의 두 눈을 자기에게 고정시킨채 다음과 같이 승리에 넘치는 발언을 계속하고 있을 때, 완전히 오그라들어버리는 자신을 발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교부들에 대하여 적대적이라고 하는 당신의 주장이 무례하고 뻔뻔스러운 주장이 아닌지 스스로 판단해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보기에 당신은 교부들이 쓴 저작의 껍데기도 못 읽어 본 사람임을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 만일 당신과 당신보다 앞서서 연설했던 사람들이 단 한 번이라도 교부들의 저작을 통독하였더라면 아마도 현명하게 침묵을 지키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11. 하나님의 음성이 되어
그들은 자신들이 한 수 한 수 밀리다가 마지막에는 신학적으로 외통수에 몰리고 말았다는 패배감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빛이 역력하였다. 더욱이 그것도 자신들이 자랑하는 교부들의 저작을 통해서 말이다. 물을 끼얹은 듯한 좌중 한 가운데로, 칼빈이 내리는 토론의 결론이 하나님의 음성처럼 들려왔다.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부터 은혜에 의하여 우리가 받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통해 진리와 사실 안에서 우리들을 결합시켜주는 영적 교제, 우리들을 우리의 구세주와 연합시켜주는 영적인 연합... 이것은 영적인 끈 곧 성령의 줄을 통하여 연합되는 것입니다.이것이 바로 성만찬입니다.”19


칼빈은 자리에 앉아서 장시간의 연설로 말미암아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완전한 침묵이 교회당을 가득 메웠다. 이 연설 가운데 일부분 밖에는 이해하지 못하는 회중들 조차도, 지금 이 젊은 칼빈에 의하여 무엇인가 진리에 대한 결정적인 증언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직감할 수 있었다. 사제들은 서로 경악에 가득찬 질린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어떤 사람도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하였고, 감히 자신을 노출시키고 싶어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그들 가운데 유능한 변론자였던 미마르(Mimard)나 블랑셰로즈(Blancherose)같은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12. 수도사들을 회심시킨 강연
그때 프란시스 교단의 한 탁발승이 일어났다. 대중들에게 인기를 모으던 유능한 가톨릭의 설교자로서 개혁을 반대하는 연설을 열렬히 하고 다녔다. 장 땅띠(Jean Tandy)라는 사람이었다. 다른 때 같으면 그토록 웅변적인 설교로 온 교회당을 뒤흔들어놓았을 이 사람이 창백한 얼굴로 무엇인가를 말하기 위하여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이미 그의 혀는 목구멍에 붙어 있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말하기 시작하였다.


“성서가 말하는 바 성령을 거스르는 죄라는 것은 명백한 진리에 반항하는 완고함이라고 여겨집니다. 내가 지금 들은 바 연설에 따라 나는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그동안 나는 무지함 때운에 오류속에서 살아왔고 잘못된 가르침을 널리 퍼뜨려왔습니다. 내가 그동안 무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을 거스려 말하고 행하였던 모든 것에 대해 나는 하나님의 용서를 구합니다. 그리고 여기있는 모든 백성들에게도 내가 지금까지 가르쳐온 잘못된 것들에 대하여 용서를 구하는 바입니다. 나는 지금부터 그리스도와 그의 순수한 가르침만을 따르기 위하여 성직의 옷을 벗어 버리겠습니다.”20


그날 거기 모인 양측의 토론자들은 깊은 감명을 받았으며, 직감적으로 칼빈의 연설이 그날 그자리에 있었던 많은 가톨릭 수도사들을 회심시켰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토론이 끝난 다음날 아침, 로잔느는 참된 신앙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매춘 소굴들은 모두 폐쇄되었고, 모든 창녀들은 추방당했으며, 종교회담은 구체적인 결실을 맺기 시작하였다. 매일매일 보오(Vaux)지역의 성직자들은 개혁을 찬성하는 입장을 밝히게 되었고, 수 개월 내에 수도 사역을 한 80여명의 사제들과 수도사 서약을 아직 하지 않은 120여명의 사제들이 개혁신앙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들 중에는 로마교회의 가르침을 가장 완고하게 고수하던 자들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심지어 미미르(Mimard)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이 모든 일은 단지 칼빈의 철저한 학문적인 준비와 신학적인 천재성만을 입증한 사건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거록한 경건 속에서 획득한 자기화된 진리를 말한 것이다. 그는 생경의 교리를 말하였으나 그것은 동시에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 속에서 완성된 신앙의 고백이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성령이 그러한 신학적인 선언위에 함께하신 사실이다. 그는 비록 자신의 강연이 잃어버린 영혼을 건져야 한다는 구령의 동기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경건에 깃든 거룩한 성령의 능력이 진리 위에 함께하자 가장 극심한 어둠 속에서 살아오던 수도사들을 회심시키는 역사가 나타난 것이다.목적 자체를 영혼의 획득에 두고 설교를 해도 초라한 열매밖에 보지 못하는 오늘날의 빛바랜 복음 사역의 현장과 비교할 때, 우리는 무엇인가 부족함을 느낀다. 이것이 바로 칼빈의 독특한 ‘경외 속에서의 신학함’이 가져다준 결과이다.ㅋ


13. 신학은 거룩한 감화와 결별하는가
칼빈을 공부하고 그의 가르침을 존중함에도 불구하고 그를 닮은 후예들을 만나기 어려운 것은, 그의 학문적인 결론을 이용할 뿐이지 그의 글과 학문에 의하여 감화받는기회로 도무지 접근하지 않기 때문이다. 칼빈의 신학적 열매가 자기화되기 위해서, 그에 관해서 공부하는 사람 자신이 칼빈이 잠겼던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로 들어가야 한다. 만약 우리가 칼빈의 설교와 주석들을 단지 성경 해석을 위한 사전이나 단어장처럼 활용하기를 그치고 그가 행한 말씀의 풍부한 해설들이 자신의 신앙과 인격과 명성에 영향를 미치도록 허락하기만 한다면, 잘못된 성경 지식뿐 아니라 그릇된 신학함의 태도부터 고쳐줄 것이다.


단지 논쟁거리가 되는 성경 해석에 대한 개혁주의의 입장을 알아보기 위하여 그의 글이나 주석을 대하기 때문에, 칼빈은 ‘또 다른 칼빈들’을 형성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환영받는 책이나 글 가운데 거룩한 감화를 불러일으키는 것들이 매우 적다는 것도 개혁자들의 사상을 환영하면서도 그들의 영성을 본받지 못하는 또 한 가지의 이유이다.


한 예로,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다. 그의 ‘기도론’을 읽어본 사람이면 누구든지 기도에 관한 그의 해박한 이론들이 다른 모든 주제에서와 마찬가지로, 단지 학문적인 탐구의 결론이 아니라는 사실을 즉시 깨닫게 될 것이다. 그가 일촉즉발의 교리 논쟁의 시대를 살면서도 모든 교리를 교리 자체가 아니라 거룩한 삶의 실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었던 것도 그가 경건하고 거룩한 삶을 추구하였기 때문이다.


단지 학자들 사이에 오고가는 이야기만을 차갑게 들려주는 신학적 정보로 가득찬 책만 대하지 아니하고 읽을 때 마음이 뜨거위지고 거룩한 열심이 촉발되며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진리를 향한 신념이 더욱 견고해지는 책들을 통하여 성경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해박한 신학 지식을 섭취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신학함이겠는가?2l
그러므로 이러한 거룩한 감화는 오직 거룩한 은혜의 기름 부으심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신학을 공부하면서 더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어지고, 하나님을 향한 더 간절하고 절박한 기도가 우러나오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노예쳐럼 살고 싶어하는 신령한 소원들이 불일 듯 일어나야 한다. 모든 책을 읽으며 그렇게 될 수는 없겠지만, 그러한 책들을 더욱 소중히 여기며 신학함을 배우는 토대로 삼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지난 여러 세기 동안 말씀 사역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던 훌륭한 설교자들은, 신학 서적이나 경건 서적의 진가를 측청함에 있어서 그 책을 공부할 때 받은 거룩한 감동의 정도를 기준으로 사용하기도 했고, 또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러한 기준을 가지고 독서를 하도록 가르쳐 주기도 하였다.
조지 횟필드(George Whitefield)가 지적했듯이 우리는 ‘십자가 밑에서’ 쓰여진 책, 저자 자신과 그들 작품 위에 ‘그리스도와 영광외 영이 임재한’ 저작들을 필요로 하고 있다. 횟필드의 다음과 같은 진술은 이 점에 있어서 영원한 가치가 있는 충고이다.


“그들은 특별한 권위를 가지고 저술하고 설교했습니다. 그들은 죽었으나 그들은 그들의 저술을 통해 지금까지 말하고 있습니다…우리가 예언의 영을 빙자하지 않고서도 그들의 저술들은 오래 생존하고 많은 사람들이 계속 찾으리라는 것을 예견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현대식으로 화려하게 쓰여지고 값싸게 장식된 저술들은, 성경적 표준에 가장 가까운 저술이 무엇인지를 감지할 수 있는 이들의 평가 앞에서는 점차 쇠잔해지고,사라지고 말 것입니다.”22

14. 맺는말
수고와 슬픔, 계속되는 질병과 과중한 일들, 연속되는 긴장과 시련에 시달려온 인생을 마감하는날,칼빈은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저는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들이 제게서 들은 교리들을 경솔함 없이 진리에 대한 확신으로 가르쳤으며, 순수하고 신실하게 하나님께서 제게 맡기신 책임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였습니다.”

1564년5월27일의 일이었다. 오늘날 우리의 교회의 척박한 영적 현실은 이제 ‘세뇌된 칼빈주의’가 ‘경험된 칼빈주의’를 원한다. 목회적인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알고 그 분의 진리를 아는 체험이 가져다준 ‘하나님께 대한 거룩한 경외함’ 때문에 칼빈의 신학적인 결론에 동의하는, 하나님을 아는 칼빈주의자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하여는 그의 학문과 함께 독특한 신학함을 회복해야 한다. 학문적인 탐구의 과정이 하나님을 향한 경배가 되고, 그 열매가 하나님을 향한 송영이 되는 길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되물어야 한다.(김남준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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