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사람들 막15:21~27
◑도입
요즈음 <허준>이라는 연속극이 있습니다. *2000년 상황
시청률이 50% 대에 육박해서, 지금까지 이 만큼 많은 사람들이 시청하는 연속방송극이
많지 않았다는 얘기를 합니다.
지금 시중에 '허준신드롬'이라는 것도 생겼습니다.
이 연속극이 나간 다음에 한약방이 그렇게 잘된다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통 병원보다는 한약방을 찾아가게 되는 모양입니다.
며칠 전에 신문을 보니까, 지금 총선 기간이지 않습니까,
어떤 후보가 허준으로 분장을 해서 ‘병든 나라를 고쳐보겠다’ 유세를 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허준으로 분장한 전광렬 탤런트에게는 한약사 협회에서 너무도 고마워서
명예 한의사 자격증도 주었다는 그런 얘기도 있습니다.
▲드라마에 나오는 허준의 모습이 얼마만큼 역사적 사실과 접근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이 드라마에서 나오는 허준의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인 모습입니다.
한의사로서 병든 인간을 사랑하고, 그 병을 고쳐주려고 정성을 다하는 허준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줍니다.
뿐만 아니라 허준은, 병든 사람을 보면, 자기의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고
병든 사람을 그냥 지나쳐서 거절하고 그냥 가는 일이 없습니다.
심지어는 과거를 보러 가다가도, 시간은 촉박한데 병든사람들이 몰려와서
'내 병을 고쳐달라'고 하면, 그 지역에 머물러서 병을 고쳐주다가
시간이 늦어서 과거를 못보고 마는 일도 있었습니다.
가난한 사람이든지, 돈이 있는 사람이든지간에
허준은 병든 사람을 한 인간으로보고,
돈과는 관계없이 병든사람을 지극 정성으로 돌보고 고쳐주는그런 의사의 모습을
우리는 이 허준을 통해서 보게됩니다.
허준이 과거에합격을 해서 '어의'가 됐습니다.
대개 어의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좋은 자리를 찾아가려고 그러는데
허준은 혜민서 라는 곳에 배치됐습니다.
혜민서는 돈 없는 백성들에게 무료로 치료해주는 곳입니다.
혜민서에 가서 일을 하게 되면, 출세의 길이 막히고, 그래서 누구도 가려하지 않습니다.
왕이든지, 대감이든지 이런 왕실에 있는 가족들을 돌보기 원하지
혜민서에서 천민들을 상대해서 병을 고쳐주는 것을 다 싫어하고 불평합니다.
그런데 허준은 혜민서에 가게되면서 말하기를
'자기는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줄 수있는 기회가 생겨서 너무도 좋다'는 것입니다.
너무도 감동적인 일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허준> 연속극이 나갔기 때문에 곤란해진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의사와 간호사들입니다.
요즘 환자들이 병원에 찾아가서 의사들에게 진료를 받고 하는 얘기가
"허준이 반만 같았어 도..."
또 간호사들이 툴툴거리는 것을 보고서는
"예진이 반만 같았어도..." *허준의 도우미
▲그런데 며칠 전에 제가 신문을 보니까, 어떤 사람이 글을 썼어요.
지금 <허준> 때문에 엉뚱한 화살이 다른 사람에게까지 날아가는 그런 격이 됐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도대체 뭐 하느냐, 예수 믿는 사람들은 뭐 하느냐?'
엉뚱하게 지금 연속극 때문에, 교회가 도마 위에 올려졌 습니다.
허준이라는 사람은 예수를 믿지 않는, 예수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때에는기독교가 들어오지 않았으니까, 예수를 믿을래야 믿을 수도 없었겠지요.
'예수도 믿지 않는, 예수도 알지 못하는 허준이
저렇게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전심전력을 다해서 사랑을 베푸는데,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난한 사람을 돌보라는 그런 계명을 받고,
그런 가르침을 받는 교회가,
그리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 거냐?
허준 같은 사람을, 한국교회 교인들 가운데서 찾아볼 수가 없으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어떤 사람이 신문에 그런 글을 쓴 것을 제가 읽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속으로
'이거 큰일 났구나! 연속극 <허준>이 빨리 끝나야지, 여러 사람이 지금 어렵게 됐구나!'
하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허준과 같은 사람이, 우리 한국 사회에 100명만 있었어도,
100명은 고사하고 50명만 있었어도,
50명은 그만두고 10명만 우리 사회에 그런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 사회는 오늘날과 같은 그런 사회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세상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제가 참으로 부끄러운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허준>이라는 연속극을 보면서, 그 연속극의 장면 장면을 우리가 생각하면서
저는 참으로 부끄러운 마음으로 보고 있습니다...
(비록 연속극이긴 하지만) 허준이라는 사람, 우리 모두를 부끄럽게 하는 그런 사람입니다. *설교 제목
◑여러분, 요즈음 저를 부끄럽게 하 는 또하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매주일 3시, 우리 교회에서 모이는 <조선족 교회> 교인들이 저를 참으로 부끄럽게 하고 있습니다.
2주일 전쯤에 조선족 교회의 부목사인 김의종 목사님이 저를 찾아 왔습니다.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
"목사님, 저희 조선족교회가 지난 주일에 270명이 모였습니다. *2000년 상황
도저히 이 교회에 앉을 자리가 없어서
앞에도 앉고 다 앉았는데 그래도 부 족했습니다.
무슨 대책을 좀 강구해야 되겠습니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그럼 어떻게 하냐? 천상 시간을 잘 조정해서 2부로 나눠서 예배를 드리는 수 밖에..."
그런데 2부로 나눠서 예배를 드리는 것도 상당히 어렵습니다.
1시예배 있지요, 2시예배 있지요,
3시시 조선족 교회 예배지요,
5시에 파키스탄 예배 이니깐.......
"어떻게 무슨 달리 방법이 없으니, 시간을 좀 잘 조정해서 2부 예배를 봐야지 어떻게 하겠느냐?"
그 얘기를 듣고 그냥돌아갔습니다.
그 다음 주에 또 전화를 해 가지고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 무슨 일이냐? 와라"
"지난주에는300명이 왔습니다.무슨 대책을 강구해야 되겠습니다."
제가 그 얘기를 듣고 신경질이 났습니다.
"아, 여보게 김목사, 자네도 알다시피 교회가 좁은데
내가 지금 이 교회를 (고무줄처럼) 늘릴거냐, 어떻게 할거냐?
대책을 강구해 달라니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얘기냐?
가서 계단에 앉아서 예배를 보던지, 3부를 보던지, 2부를 보던지 알아서 하지!
그걸 가지고 자꾸 나한테 찾아와서 이러느 냐? 가라."하고 돌려보냈습니다.
그러고서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사정을 뻔히 아는데
왜 자꾸 와서 대책을 세워달라고 그러지?
그래서 생각을 해 보니까, 신도림에 새로 짓는 큰 예배당을 내놔라.
그런 뜻이 아닌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갈릴리 교회는 (한국인 예배) 듣자하니 뭐 몇명이 모이지 않는 교회가
지금 있는 예배당도 너무 충분하고 자리도 넉넉한데
무슨 큰 교회를 가서 차지하려고 그러는가?
듣자 하니 갈릴리 교회 교인들에게 전도하라고 해도
전도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큰 교회 되기는 틀렸고
또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큰 교회에 가는 것에 대해서 시큰둥하고,
가지 말자고 하는 그런 사람도 있다는 소문을 들었으니
잘됐다. 무슨 사람도 별로 모이지 않는 교회가
큰 교회를 차지하려고 하는가?
우리 조선족 교회, 이렇게 300명, 400명 모이는 사람들이 앉을 데도 없는데
우리에게 교회를 내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맞는 말이지요? 부모에게 자식이 둘이 있는데
하나는 애를 많이 낳아서 식구가 많고
하나는 식구가 적다고 한다면
부모 입장에서는 어떻겠습니까?
큰 집은, 식구 많은 집은 자식에게 주고,
작은 집을, 식구 적은 집에 주는 것이 마땅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지 않습니까?
갈릴리 교회(한국인 예배)가 무슨 특권이 있길래
모이는 사람도 적은데 큰 교회를 차지할 권리가 어디에 있는가요?
도대체 사람 많으면 큰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사람 적으면 작은 교회에서 예배 드리는 것이 마땅한 것이 아닌가?
그런 뜻이 아니겠는가?
설마 그렇게까지야 생각을 했겠습니다만
그래서 다 사정을 뻔히 알면서 계속해서 '대책을 세워주세요, 대책을 세워주세요'
하는 그 뜻이 도대체 무엇이겠는가? 제가 마음에 큰 부담이 됐습니다.
그래서 고민중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한달 쯤 전에는 저한테 또 오더니
"목사님, 부탁이 있어서 왔습니 다"
"무슨 부탁인가?"
"저희 조선족 교회가 구역 예배를드리기를 원하는데
갈릴리 교회 교인 중에 구역예배 장소를 좀 구해주세요."
"그래? 언제 필요한가?"
"토요일 날 저녁 10시 30분에 구역예배를 드리려고 합니다."
다들 직장인이라서 토요일 날 밤 10시반 정도에 일이 다 끝나니까
10시 반에 예배를 드리겠다는 거예요.
그러니 조선족 교회 교인들이, 구역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장소를
좀 내어달라고 하는 거예요.
제가 가만히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우리 교인들 얼굴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토요일 저녁 10시 반에, 누가 조선족 교회 구역예배 보라고 장소를내어 줄 수 있는가?'
장집사님이 내 줄수 있을까, 최집사님이 내 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보다가
"안되겠네."
"왜 안되십니까?"
"우리 교회 교인들은 말이야, 주일을 얼마나 귀중하게 생각하는지,
주일날 일찍 일어나서 교회를 오려고, 토요일날 저녁엔 다 텔레비젼도 안 보고
아무 것도 안하고 다 일찍 자네.
그래서 토요일 날 저녁 10시 반에 집 못 빌려주네."
그러면서 제가 거절을 했습니다.
그 말을 해놓고 제가 심히 부끄러운마음이 들었습니다.
▲얼마 전에 제가 조선족 교회 설교를 하려고 3시에 올라갔습니다.
제가 당회장이니까 서리집사를 임명하는 날이어서
설교를 하고 서리 집사를 임명하러 갔습니다.
제가 별로 설교를 잘 하는 사람이 아니지 않습니까?
설교를 잘 못하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뭐 설교시간에 한번도 "아멘!" 그러는 게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조선족 교회에 가서 설교를 하는데, 종종 "아멘" 그러는 거예요.
여전히 "아멘, 아멘" 하는거예요. 박수도 쳐요.
제가 설교하고 박수 받아 본 것은 처음입니다.
얼마나 신이 나는지, 그날 목도 잠기고 1부 예배, 2부 예배, 재직회 있었지...
뭐 힘든 스케줄이었는데, 설교를 1시간 가까이 했습니다.
그리고 서리집사 임명을 하는데 16명을 임명했습니다.
아무개, 아무개 다 일으켜 세워서 16명이 집사임명장을 받는데
눈물이 글썽거리고, 너무도 감격스러워 하는 거예요.
갈릴리 교회는 (한국인 예배는) 권사가 되었다고 해도 무덤덤,
안수집사가 되었다고 해도 무덤덤, 장로가되었다고해도 마찬가지고...
물론 다 교양이 높으셔서 속에 좋은 것을 다 겉으로 표시를 안 해서 그렇겠습니다만..
'조선족들이 어떻게 이렇게 (뜨겁게) 예수를 믿는가?'
여러분, 밖에서 올라 오다보면, 3시에 조선족 예배인데
벌써 10시 반에 와서 기다리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예배 끝나고 여러분들 내려가 보세요. 제 말이 참말인가, 거짓말인가?
많은사람들이 지금 (11시 낮예배 시간인데)
3시 예배를 기다리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 성남에서 옵니다. 수원에서 옵니다. 일산에서 옵니다. 동두천에서 옵니다.
안양에서 옵니다. *갈릴리교회 구로구 위치
열심히 기도합니 다.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합니다. 감격스러운 예배를 드립니다.
이 조선족 교회 교인들을 보면서, 저는 참으로 부끄러운 생각을 가집니다.
'교회를 잘못 빌려줬구나. 이렇게 부담스러운 교인들을 끌어들였으니
교회를 잘못 빌려줬구나!' 하는 생각이 들만큼
조선족 교회 교인들, 우리들을 참 부끄럽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설교 제목
◑여러분, 때때로 저를 부끄럽게 하는 또 하나의 사람이있습니다.
이는 성경에 나오는 인물입니다.
저는 그 사람만 생각하면, 저도 모르게 부끄러워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 사람은 오늘 본문 막15장에 나오는 구레네 사람 시몬입니다.
구레네 시몬이라는 말은, 구레네 지방에서 살던 시몬이었다.. 는 말이죠.
구레네는 아프리카 북단의 도시입니다.
북아프리카에 살던 사람이니까 이 구레네 시몬 이라는 사람이 흑인이었을 것이다라 고
하는 그런 학자들의 얘기도 있습 니다.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
이 사람이 무슨 일 때문인지 예루살렘에 왔습니다.
마침 예루살렘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날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듭니다.
한 갈릴리 청년이 십자가를 지고 가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 사람들이 웅성거립니다.
먼 타지 사람 구레네 시몬도 무슨 일인가 기웃기웃 하다가
재수없게 걸려서 로마병정에게 걸려서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모습에 대해서 여러 번 생각을 해 봅니다.
이 구레네 시몬이라는 사람,
'야, 너 나와!' 그러면, 나 같았으면 도망갔을 텐데...
우물쭈물 하다가 걸려 들었지요.
아니, 도망을 못 가서 십자가를 지고 간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불평이라도 했을 텐데 '도대체 내가 무슨 죄가 있어서십자가를 지냐?'
또 한참 지고 가다가 너무 힘들어서 '못하겠다 교대하자' 그럴 수도 있고..
그런데 성경에 보면 그런 말이 없습니다.
그저 추측컨데, 이 구레네 사람 시몬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까지
대신 지고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구레네 시몬이라는 사람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져야 될 아무런 이유가 없는 사람입니다.
이 구레네 시몬은 그동안 예수님을 따라 다니기는커녕
예수님 얼굴도 아마 처음 본, 처음만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무슨 예수님에게 신세를 진 일도 없습니다.
다른 사람처럼 예수님이 병을 고쳐준 적도 없고,
예수님에게 병고침을 받은 적도 없고
예수님이 만들어준 떡이나 빵을 먹어본 적도 없는 사람입니다.
머나먼 지역 구레네에 살았다고 하니, 동족도 아닙니다.
우리는 동향 사람을 굉장히 좋아하지요. 그지요?
4·13 총선이 다가오는데, 그래서 다들 동향 사람 찍습니다.
여러분, 예수 믿는 사람들은 동네를 좀 넘어설수 있어야 됩니다.
저는 한가지 자랑이 하나 있는데
아직까지 무슨 선거할 때, 동향 사람이라고 찍어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 출신이라고 찍어본 적이 없습니다.
나는 김종필 씨를 한번도 찍어본 적이 없습니다. *설교자 인명진 목사는 충남 출신
정신차려야 됩니다. 공부한 사람도 그렇고, 인격이 있는 사람도 그렇고
그 동네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 구레네 시몬은 예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입니다.
십자가를 대신 져야될 이유가 없는 사람입니다.
사실 그 때 그 자리에는 정말 구레네 시몬이 아니라
마땅히 예수님의 십자가를 나누어서 져야될 사람들이 많이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렇지 않습니까,
갈릴리에서 온 동향 사람들도 있었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에게 신세진 사람도 많았겠지요,
병고침을 받은 사람, 떡 얻어먹은 사람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까?
이 사람들, 다 십자가를 대신져야 될 사람입니다. 같이 져야 될 사람입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구레네 사람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갔습니다.
제자들을 포함해서 예수님에게 신세진 사람들은
부끄러워했어야 될 사람들이 아닙니까?
▲그런데 여러분, 사실은 구레네 사람, 아무 이해관계도 없는 사람이
엉뚱하게 십자가를 지고 가는 그 모습을 보면서
사실은 우리들 자신도 부끄러워 해야 될 사람들입니다.
우리가누구입니까? 예수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를 수십 년 믿은 사람들입니다. 집사입니다. 권사입니다. 장로입니다. 목사입니다.
구레네 사람, 엉뚱한 사람이 십자가를 지고가는데, 누가 부끄러워야 됩니까?
우리가부끄러워 해야지요. 같이 지고 가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 해야 되지요.
예수님 대신 십자가 지지 못한 것을,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인명진 목사, 인목사야 말로
구레네 사람이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을 보고 부끄러워해야 될 사람입니다.
사실은 내가 구레네 사람 대신 십자가를 져야될 사람입니다.
제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60년 가까이 믿었습니다.
제가 목사 아닙니까? 예수님 덕분에 밥 먹고 살고, 대접받고 사는 사람이 아닙니까?
마땅히 나같은 사람이, 구레네 시몬이 아니라
내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가야될 사람입니다.
그런데 엉뚱한 사람이 십자가를 지고갑니다.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때때로 우리가 져야 될 십자가가 다가옵니다. 그때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그 십자가를 피해서 도망갈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고생스러운 일을 안 하려고 합니다. 편하게 예수를 믿으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이 십자가를 지고 가는것,
엉뚱한 사람이 대신 지고 가는 것을 못 본척 합니다.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을 쳐다보는 구경꾼입니다.
입으로는 "잘하셨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덕분에,
먹고살고 복받고 편하게 살고 있다" 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다 부끄러운 사람들이 아닙니까?
오늘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다 부끄러워 해야 될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십자가 없이 빈 몸으로, 두팔 내젖고 예수를 따라간다고,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우리들의 모습이야 말로
얼마나 이중적이고, 위선적이며, 부끄러운 모습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는 구레네 시몬,
한없이 한없이 우리들을 부끄럽게 하고 있습니 다.
내가 져야될 십자가를, 아무 관계도 없는 구레네 시몬이 지고 가는 그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우리는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모르는 우리들의 마음입니다.
▲여러분, 저는 이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허준이라는 사람은 예수를 알지도 못하고, 예수를 믿지도 않았던 사람이었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한번도 받아본적이 없는 사람이지만,
이웃을 사랑하며 내몸처럼 사랑하라고 가르침을 받은 우리들보다도
더 사랑을 철저하게 실천하며 사는 이 허준이라는 사람은
우리들을 더욱더 부끄럽게 하는 사람입니다.
또한 조선족 교회 교인들이 우리를 부끄럽게 합니다.
우리들은 게으름을 피우고, 감격도 없고, 편안하게 예배드리고 그러면서도
감사할줄 모르고,그러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도 모르고
그렇게 신앙을 살아가는 우리를 너무도 부끄럽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아무 이해관계도 없이, 영문도 모른체, 따질 줄도 모르고
예수님 대신 십자가를 지고가는 구레네 시몬,
마땅히 그 십자가를 져야될 사람들은 옆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엉뚱한 사람이 십자가를 지고 가고
마땅히 그 십자가를 져야될 사람들은 옆에 서서 구경하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는,
내가 져야 될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는 구레네 시몬,
우리들을 너무도 부끄럽게 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무엇으로 보나 예수님의 십자가를 함께 져야 될,
대신 져야 마땅할 우리들이
이렇게 멀찍이 서서 구경꾼으로 예수님을 따라가고 있으니
우리들은 너무도 부끄러운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머리를 들 수없이 부끄러운 우리들,
허준 앞에서, 조선족 교회 사람들 앞에서, 구레네 시몬앞에서
도저히 부끄러워 머리를 들 수없는 우리들,
주님, 이 시간 부끄러운 우리들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우리들 모두가 주님 십자가 밑에 꿇어 엎드려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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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1:27-29
많은 사람들은, 자신은 처음부터 못난 사람이기 때문에
못난 모습 그대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도, 잘난 사람만 쓰실 것이라고 흔히 생각한다.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실 때,
지혜 있고 영향력 있고 높은 신분의 사람만 쓰시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세상의 미련한 사람들,
세상적 가치로 볼 때 잘나지 못한 사람들을 택하셨다.
이방인보다도 못한 그리스도인
“심판 날이 오면 니느웨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일어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은 요나의 설교만 듣고도 회개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요나보다 더 큰 사람이 있다.
심판 날이 오면 남쪽 나라의 여왕도 이 세대와 함께 일어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는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솔로몬보다 더 큰 사람이 있다.”
즉, 하나님 앞에서 악행을 일삼던 그들,
그래서 심판 당할 위기에 처해 있었던 니느웨 사람들에게
요나는 무슨 기적을 행하고, 불을 던지면서 설교하지 않았다.
또 하늘에서 유황불을 쏟으면서 회개하라고 하지 않았고,
메뚜기 떼나, 재앙을 내리면서 회개하라고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아무런 기적을 보여주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니느웨 사람들은 요나의 말 한마디에 마음이 모두 열렸다.
그들의 교만이 무너졌고, 그들의 거짓과 죄악을 깨달았다.
그리고 엎드려서 회개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두 가지 예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니느웨도, 시바 여왕도 결국은 이방인들이라는 것이다.
이방인은 유대인들이 싫어하고 혐오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 이방인들이 도리어 유대인들을 부끄럽게 할 것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복음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연약한 자, 깨어진 자, 겸손한 자
그들이 완전히 하나님께 항복하고, 자기를 부인하고 나올 때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들어 쓰신다는 것이다.
약한 자를 들어 쓰셔서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무식한 자를 들어 쓰셔서 지혜로운 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가난한 자를 들어 쓰셔서 다른 사람들을 부요하게 하고
죽어가는 자를 들어 쓰셔서 다른 사람을 살린다. 이것이 복음이다.
▲예전에 감동적인 신문 기사를 읽었던 적이 있습니다.
한 여인이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남편을 6년 동안이나 간호해서 의식을 되살려낸 것입니다.
이 여인은 의사들도 회복할 수 없다고 포기한 남편을 기적적으로 소생시켰습니다.
그녀는 항상 "그는 환자가 아니다. 내 남편이다."라고 스스로 다짐하였으며
하루에도 수십 차례 의식 없는 남편과 대화를 나눴다고 합니다.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남편을 아기처럼 껴안고 뽀뽀도 하였으며
남편이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다고 했습니다.
도저히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이 그 남편은 6년 만에 부활하여
첫마디를 "아멘"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 아름다운 이야기는 남편을, 아내들을 부끄럽게 만듭니다.
모든 부부는 분명히 결혼식에서 '비가 오나 바람 부나 괴로울 때나
슬플 때나 병들었을 때나 늙었을 때나 항상 사랑할 것을 맹세'한 신랑 신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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