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마지막 부탁, 전도하라
막 16:15-16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오늘은 전도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전도”는 교회에 한사람을 데려오는 그런 차원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이 전도의 의미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전도라는 말 속에는 더 깊고 크고 원대한 하나님의 뜻이 들어있고 계획이 들어있고, 섭리가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를 말할 때는 먼저 몇 가지 전제해서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사”
하나님은 이 세상의 구원을 위해서 예수를 보내셨습니다. 보내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제물로 삼으셨습니다. 이 정도면 하나님의 세상을 향한 관심사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 영혼이 구원받는 일을 온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하나사상에 대해서 많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탕자의 비유도 하나사상이 들어 있는 비유입니다. 탕자의 비유 속에 한 영혼이 돌아옴을 고대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동전의 비유에서도 잃어버린 한 영혼을 찾으려는 하나님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잃은 양의 비유에서는 그 심정이 더 절절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온전한 양 99마리를 놓아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서 온 들을 헤매는 목자의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목자의 모습이 곧 하나님의 마음이고 심정입니다.
전도는 한사람을 교회로 데리고 오는 차원이 아닙니다. 한사람을 데려와서 교회를 부흥시키자는 차원도 아닙니다. 전도는 그 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복음을 들고 산을 넘는 자의 발걸음이 어찌 그리 아름다우냐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 중에는 온통 세상을 구원하고 영혼들이 멸망당하지 않고 구원받는 것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전도하라면 자리도 없는데 자꾸 데려오라고 한다고, 교회만 크게 만들려고 한다고 불평하고 있습니다. 아주 잘못된 인식입니다.
“예수님의 관심사”
역시 예수님의 관심 속에도 영혼 구원하는 일이 주 관심사입니다. 본문 말씀은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분부하신 말씀내용입니다. 마지막 순간에 주님은 제자들에게 부탁하셨습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요 믿지 않는 자는 정죄를 받으리라.” 여기 “정죄”라는 말은 끝까지 고집스럽게 믿지 않으면 멸망당한다는 말입니다.
지금 예수님이 승천하시는 순간입니다. 이제 헤어지면 긴 이별이 시작됩니다. 지금 예수님은 지상의 사역을 모두 끝내고 승천하십니다. 그 마지막 순간에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이 말씀입니다. 마지막 말씀은 의미가 있습니다. 뜻이 있습니다. 내용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은 전도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사역을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가르치는 사역입니다. 예수님은 3년 동안 많은 교훈을 남기셨습니다. 특히 산상수훈은 길이 남는 예수님의 교훈입니다. 두 번째는 고치시는 사역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3년 동안 많은 사람들을 고치셨습니다. 육신의 병, 정신의 병, 마음의 병, 영적인 병 등 예수께 온 병자들은 다 고쳐서 보내셨습니다. 복음서에 나타난 병자들은 모두 원초적인 병자들이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병자된 앉은뱅이, 혈루병자, 나병환자, 소경, 귀신들린 자 등 모든 병자들을 고치셨습니다. 참으로 큰 사역이었습니다. 누구도 예수께 와서 그냥 돌아간 사람이 한사람도 없습니다. 세 번째는 전파하는 사역입니다. 예수께서 많은 병자들을 고치셨지만 그것이 예수님이 오셔서 하실 사역의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 수단으로 고치신 것뿐입니다. 원초적인 병자들을 고침으로서 하나님의 권능을 보여주고 자신이 메시야임을 나타내시고 복음을 전파하고 영혼을 구원하시려고 수단으로 고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진정한 사역은 복음전파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셔서 천국을 전파하시고 하나님의 의를 전파하시고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전파하셨습니다.
그리고 사역을 마치자 예수님은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시고 오늘 승천하십니다. 그 마지막 시간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또 마지막으로 부탁을 하셨습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전도는 이런 차원의 일입니다. 전도를 가볍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전도는 그리스도인의 사명이고 교회의 사명이고 하나님의 궁극적인 사역입니다.
“우리의 관심사”
당연히 우리의 관심사도 전도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합니다. 그것이 이 세상의 그리스도인들 모두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이 전도는 이 세상 끝날 까지 중단하지 않고 해야 할 과제입니다. 그런데 전도를 말할 때 몇 가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1) 전도 “가장 좋은 소식을 전하는 일”
전도는 구원의 소식을 전하는 일입니다. 말하자면 최상의 소식을 전하는 일입니다. 전도는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소식을 전해주는 일이라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살아가다가 가장 기쁜 소식이 있을 때 누구에게 먼저 전하시겠습니까. 아무에게나 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때는 가장 가까운 사람,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먼저 전하게 될 것입니다. 전도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Good News 즉 “복된 소식”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이 세상에 “부활, 영생, 천국“ 그 보다 더 신나고 더 기쁜 소식이 어디 있습니까. 영원히 죽지 않는 삶은 부활의 삶이고 천국의 삶입니다. 이 영원히 죽지 않고 구원받는 소식이 있다면 그 소식보다 더 좋은 소식이 세상에 어디에 또 있습니까. 이 세상에서 이 보다 더 신선하고 감격적이고 복되고 영광스런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복음이 Good News 인 것입니다. 고로 주님은 마지막 당부로 제자들에게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전도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부탁을 마지막으로 남기시고 승천하셨습니다.
2) 전도 “인내하며 할 일”
전도 잘 안 됩니다. 하루 100집을 돌아다녀도 한집도 응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늘은 순수하지 않아서 전해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스탠리 존스라는 인도 선교사가 아무리 전해도 받아들이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지쳐서 쓰러졌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왜 쓰러져 있느냐” “아무리 전해도 사람들이 믿지를 않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그렇게 음성을 들려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사과나무를 보라, 햇볕이 뜨겁게 비추고 농부가 거름을 주면 7년이면 열매를 맺느니라, 지금 열매 없다고 낙심하지 말아라.” 전도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순순히 전도 받고 교회에 나오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기적입니다. 그것은 모래사장에서 진주를 캐낸 것과 같은 일입니다. 그래서 전도는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실망하지 않습니다.
3) 전도 “끝까지 해야 할 일”
전도는 끝까지 최선을 다 해서 할일입니다. 전도가 힘들다고 도중에 포기하고 중단할 일이 아닙니다. 전도는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할 일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 4:2)고 했습니다.
미국 필립 부륵스 목사는 임종시간이 다가올 때 누구도 만나주지를 않았습니다. 일체 면회를 사절하였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법률가 잉거솔씨는 방문을 허락하였습니다. 잉거솔씨는 브룩스 목사를 임종시간에 만난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목사님에게 “이렇게 나를 만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하고 인사했습니다. 그러자 브룩스 목사는 잉거솔씨의 손을 꼭 잡으면 조용히 말했습니다. “여보게 잉거솔씨, 다른 사람들과는 모두 천국에서 다시 만날 것 같아서 특별히 만나지 않았는데 그런데 당신과는 아무래도 천국에서 다시 만날 것 같지 않아서 이렇게 면회를 허용했네.” 이 목사님은 마지막 임종순간까지 전도를 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전도하는 모습이 신실하고 아름답지 않습니까.
타이타닉 호가 침몰한지 4년이 지난 후에 한 젊은이가 어느 모임에서 간증을 했습니다. “나는 그때 타이타닉 호에 타고 있었습니다, 부서진 파편 조각을 붙잡고 표류하고 있을 때 내 곁에 함께 표류하고 있던 죤 하퍼 목사님께서 내게 물었습니다, “자네 예수 믿는가”, “아니요” 그때 다급한 목소리로 “예수 믿으세요” 하고 파도에 휩쓸려 물속에 잠겼다가 한참 후에 다시 물 밖으로 나왔을 때 또 다시 물었습니다, “이제는 예수를 믿는가”, “아니요” “꼭 예수를 믿으세요”그리고 그 목사님은 파도에 휩쓸려 물속으로 들어간 후 다시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존 하퍼 목사님이 전도한 마지막 사람입니다“하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런 순간에 죽어가면서도 심각하게 전도하는데 그 전도를 거부할 수가 있습니까. 그 결과 그 젊은이가 살아나서 예수를 영접하게 되었고 또 그 젊은이는 다니면서 예수를 전하고 간증하는 전도자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는 끝까지 해야 할 일인 것입니다.
4) 전도 “요령이다”
전도가 어렵다고들 말합니다. 전도는 실제로 어려운 일입니다. 쉬운 일이라면 주님께서 그렇게 부탁하시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전도가 왜 어려우냐 하면 맨입으로 해서 어렵습니다. 전도도 요령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이 수고와 투자와 정성도 없이 몇 마디로 전도했다고 감동받고 쉽게 나오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처음 신앙생활 시작할 때 “교회가자” 해서 그 즉시 나온 분이 있습니까. 전도는 그렇게 쉽게 되는 일이면 무슨 기도가 필요하고 수고가 필요하겠습니까. 특히 오늘은 악한 시대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렇게 쉽게 따라나서질 않습니다. 거기에는 수고가 필요하고 노력이 필요하고 공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것은 전도뿐이 아니고 세상의 이치가 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요일 3:18을 보면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고 말씀했습니다.
어떤 사과장수가 전도를 많이 했는데도 안 나오더니 어느 날 교회에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교회에 나왔느냐”고 물으니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일주일에 세 번씩 우리 가게에 들러 과일을 사가는 분이 있었는데 그 분은 항상 못생기고 덜 싱싱한 사과만 골라 사가는 거예요, 너무 미안해서 몇 개 더 주면 한사코 거절했어요, 지금 당장 먹을 것이니 좀 썩은 것도 괜찮다고 하면서, 저는 그때부터 그분을 존경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그분이 예수 믿으라고 권고하는 거예요, 나는 그때 그 분이 믿는 예수라면 나도 믿고 싶다 생각되어 오늘 이렇게 나오게 되었습니다”고 하고 대답하더라는 것입니다. 전도는 희생입니다, 인내입니다. 투자하는 일입니다. 마음을 감동시키는 일입니다. 전도하는 사람에게서 예수의 모습이 나타나고 전달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감동하고 세상이 감동해서 예수께로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전도에도 그런 요령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전도는 통계를 보니까 이웃이 전도하는 것이 가장 효과가 좋았습니다. 이웃의 전도에 의해서 신앙생활하게 되었다고 응답한 사람이 40,1%나 되었습니다. 살아가면서 좋은 이웃을 만나는 것도 참 중요한 일입니다. 좋은 이웃을 만나는 것도 하나님이 주신 은혜이고 축복입니다. 또 좋은 친구를 만나는 것도 축복입니다. 친구의 권유로 신앙생활을 시작하였다고 응답한 사람도 18,6%였습니다. 가족이 가족을 전도한 경우는 5% 뿐이었습니다. 전도 내용도 예수님이나 하나님을 소개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응답하였습니다. 모두 47%였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다니는 교회를 긍정적으로 소개하고 담임목사를 좋게 소개해서 교회에 나오기 시작하였다고 응답한 사람도 42.6% 되었다고 합니다. 자기가 다니는 교회 그리고 목사님을 좋게 소개하는 것도 좋은 전도법일 수 있습니다.
듣자니까 여러분들이 돌아다니며 우리교회를 그리고 목사를 너무 좋다고 소개하고 다닌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소리를 들으니까 너무 과분하게 말씀들을 하시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분은 목사님이 장동건 같이 생겼으니까 한번 와보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우리교회로 찾아오는 것입니다. 와서 사람들이 예수를 만나고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내가 인도해서 교회에 나온 사람이 영혼이 구원받고 엄청난 변화를 받았다면 그것이 작은 일입니까. 그래서 전도는 큰일인 것입니다.
5) 전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
전도는 내가 한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나는 도구로 사용될 뿐입니다. 내가 사람들을 교회로 인도해서 주님께로 안내만 하면 그의 영혼을 열어 결신하게 하시고 구원받게 하는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나는 심을 뿐이고 물을 줄 뿐이지 자라나게 하고 꽃이 피게 하고 열매 맺게 하는 일은 나의 소관이 아닙니다. 또 내가 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 일은 하나님이 하실 일입니다. 우리는 씨를 뿌리고 물주고 가꿀 뿐입니다.
길거리에서 전도지 나누어줍니다. 그 모습을 보고 생각하기를 “저렇게 한다고 누가 믿을까”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그리스도인은 오늘 이 시대에도 저런 전도를 하고 있다고 비웃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것도 교만한 걱정입니다.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믿고 안 믿고 열매 맺고 안 맺고는 여러분들이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방법이 좋던지 안 좋던지 오늘 열심히 씨를 뿌리고 물만 주면 됩니다. 그러면 그 이상의 것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입니다. 우리는 다만 언제나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씨를 뿌릴 뿐입니다.
인도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철길에서 기차가 다니는 레일을 베고 자살하려고 누웠습니다. 건너편 철길에서 기차가 오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때 기차 안에서 누군가 전도지를 들고 전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힌두교인이 전도지를 받자마자 찢어서 창문 밖으로 던져버렸습니다. 그러자 찢긴 전도지가 창밖에서 바람에 날려 퍼져버렸습니다. 그때 죽으려고 레일을 베고 누워있던 사람의 얼굴로 쪽지 하나가 날아가다가 떨어졌습니다. 이 사람이 보니 쪽지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러면 너와 네 집이 구원받으리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 문구를 읽는 순간 성령이 그냥 가만히 있었겠습니까. 그 순간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는 기분으로 그에게 충격을 주었을 것이고 또 그 영혼의 눈을 활짝 열게 하셨을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문제는 전도는 어느 기회든지 목적을 가지고 뜻을 가지고 목표를 가지고 하면 되도록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나의 신앙자세에 있습니다. 내 안에 누구에게든지 복음을 전하고 싶고 이 소식을 전하고저 하는 마음이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내 마음에 그런 의지만 있다면 전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일 즉 Good News인 것입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예수님의 열정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복음전파를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오셔서 3년 동안 눈코 뜰 새 없이 천국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오늘 승천하시는 순간입니다. 그때 주님은 제자들에게 그리고 이 세상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하셨습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전도는 주님의 마지막 명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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