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내가 여기 서 있습니다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
리라 함과 같으니라.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전에 우리나라에는 무속이 우리민족의 정신과 의식을 무섭게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 무속의 지배 영향은 참으로 지대하였습니다. 그때에는 집집마다 신이 있었습니다. 안방에는 그 집의 수호신인 성주신이 있었습니다. 작은 방에는 삼신이, 부엌에는 조왕신이, 마당 장독대에는 터주신이, 문에는 문신이, 뒷간에는 측신이, 외양간에는 우마신이 있었습니다. 모양새도 가지각색이었습니다. 경기, 충남, 경남, 동해안지역에는 한지로 묶은 신을, 전라지역에는 단지에, 충북내륙지방에는 혼합형의 신을 만들어 놓거나 걸었습니다. 특히 천정위 대들보에는 터줏대감인 성주신을 모셔 놓고 천정에 구멍을 뚫어 숨을 쉬도록 했습니다. 이 수많은 신들의 제사장은 무당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무당에게 매사를 의논하여 결정하였습니다. 이사할 때도, 이름을 지을 때도, 혼인할 때도 택일을 하고 사주도 보고 실행하였습니다. 이런 정신적 의존도는 오늘도 그대로 답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혼인을 할 때 사주와 택일을 보고 이사하는 날도 좋은 날을 잡아 하느라고 좋다는 날에 한꺼번에 몰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같은 풍습은 참으로 우리조상들의 삶을 무섭게 억압하였고 속박하였습니다. 우리민족이 그렇게 우매하게 무속에 얽매여 살아갈 때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왔고 그때부터 우리민족은 그 속박으로부터 해방되었고 자유 해졌습니다. 오늘 생각해 보면 참으로 우매하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기 전 유대인들은 율법을 최고로 여기며 살았습니다. 모든 유대인들은 율법에 의해서 사정없이 얽매여 살았습니다. 율법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법에 사람들은 더 철저히 믿겠다 해서 더 많은 법을 첨가하여 스스로를 얽어맸습니다. 안식일 날에는 뜻을 다해 지키면 되는데 스스로 법을 만들어 구속하였습니다. 그래서 안식일날 사람이 우물에 빠져도 건져내지를 못했습니다. 안식일이 시작되기 전에 미처 전등을 끄지 못한 사람은 불을 켜 놓은 채로 있어야 했고 아니면 이웃집에 사는 타민족을 불러 불좀 꺼달라고 부탁해야 했습니다. 얼마나 심각한 구속이고 속박입니까. 그리고 구원을 위해서 그들은 수많은 수고와 자선을 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살던 그들에게 어느 날 세상에 예수께서 오셨습니다. 오셔서 제물 되시고 마침내 그 율법을 완성시키셨습니다. 이제는 율법시대가 지나고 은혜시대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율법과 상관없이 누구나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믿음의 중심이 율법에서 예수께로 옮겨지고 율법과 제물에서 은혜와 믿음과 말씀이 중심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분명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를 왜 세상에 보내셨는가 하면 마지막으로 제물을 삼으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예수님은 제물이 되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때 성소안에 쳐져있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성소와 지성소 중간에 칸막이로 휘장이 쳐져있어 누구도 그 안에 들어갈 수도 들여다 볼 수도 없었지만 예수께서 죽으심으로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그 말은 이제는 하나님과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 졌다는 뜻입니다. 그때부터 누구나 자유롭게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를 하였고 응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중보자가 되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다 구원을 받는다고 선언합니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이 세상에 기독교가 탄생하게 되었고 지난 2천년동안 기독교가 세계종교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가 시작되어 1500여년이 되던 때에는 그 참신했던 믿음이 흐려지기 시작하여 마침내 그 강했던 영성이 증발되고 깊었던 믿음이 얇아지게 되었고 그토록 묵직하게 그 시대마다 메시지를 주던 믿음이 가벼워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기독교는 교권이 강해지면서 순수한 말씀에서 이탈하고 믿음이 변질되고 생동감을 잃고 형식주의로 치닫게 되었습니다.
믿음은 날마다 개혁해 나가야 합니다. 그래야 그 믿음이 오랫동안 순수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그냥 놔두면 믿음이 형식화 되고 나중에는 알맹이는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게 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성령이 강림하였을 때 그때 믿음이 얼마나 신선하고 강렬했습니까. 그 후 300여 년 동안 극심한 고난과 핍박이 왔고 로마의 압제가 가혹할 때에도 그리스도인들은 동굴 속에서 300여 년 동안을 피신 생활을 하였습니다. 당시 기독교인들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땅에 굴을 파고 그 안에서 300여 년 동안을 생활했습니다. 그 안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혼인하고 또 낳고 죽어 그곳에 묻히기를 300여 년 동안을 유지했습니다. 신앙의 힘이 얼마나 위대합니까. 그 힘이 마침내 325년에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이게 하였습니다. 그 후 로마교회는 발전하여 정신적 권위와 종교적 권위를 유감없이 행사하였고 그러다가 그 권위가 마침내 하늘을 찌를 정도가 되어 종교권이 황제 권을 압도하여 교황이 황제를 폐위시키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유감스러운 것은 그때부터 기독교가 타락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중세 기독교가 유례없이 타락의 길로 들어서서 마침내 있어서는 안 되는 성직을 사고팔았고 마침내는 면죄부까지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가톨릭에는 고해성사라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죄를 지으면 신부에게 가서 고해성사라는 것을 하는데 신부가 듣고 그 죄를 사해줍니다. 처음에는 사죄의 값으로 로마순례를 하게 하였고 노동을 시키기도 하였는데 교황 레오 10세에 이르렀을 때 성 베드로 성당을 증축하는데 비용이 모자라자 면죄부를 팔기로 했습니다. 면죄부 판매 담당이었던 수도승 테첼이 “면죄부를 사기 위해서 돈을 통에 넣으면 돈이 통에 떨어지는 소리가 나는 순간 본인의 죄는 물론이고 돌아가신 그 부모와 친지의 영혼까지도 연옥의 불바다에서 튀어나와 천국문에 이르게 된다”고 선전하였습니다. 그러자 이 우매한 사람들은 저마다 돈을 주고 면죄부를 사가지고 왔습니다. 돈만 주고 면죄부를 사면 내 모든 죄가 다 사해질 뿐 아니라 지옥에 가 있는 내 부모님의 영혼도 천국으로 올라간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니 그 당시 종교가 얼마나 타락했다는 말입니까. 그렇지 않아도 평소 많은 의문을 가지고 있던 마틴 루터가 “이것은 아닌데” 하고 생각했는데 누구 하나 선뜻 나서서 말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상한 일들이 그치지 않고 계속 번져서 더 성황을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참다못해 1517년에 종교개혁의 시동을 걸게 된 것입니다. 그때 종교개혁의 목표가 “원시 기독교로 돌아가자”였습니다. “교회를 교회답게 하자”해서 “오직 은혜”를, “예배를 회복하고 말씀을 회복하자” 해서 “오직 믿음”을, “성경으로 돌아가자” 해서 “오직 말씀”을, “구원의 길에서 다른 길은 있을 수 없다” 해서 “오직 예수”를 강조하게 되었습니다.
그랬다고 루터는 마침내 그 무시무시한 종교재판에 회부되었습니다. 마침내 루터는 신성로마제국의 대제 칼 5세 앞에서 종교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당시 교황은 절대권력 행사자로 누구도 그 앞에서 오금을 펼 수가 없는 권위적인 존재였습니다. 그런데도 루터는 당당하게 그 막강한 교황권에 맞섰고 마침내 루터는 종교재판에 회부당하고 말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루터에게 “재판정에 가지 말라, 재판정에 가는 도중에 칼에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고 말렸습니다. 그런데도 루터는 겁 없이 갔습니다. 당시 루터는 겁 없이 막강한 교황권에 도전하고 거부했으니 사형감이었습니다. 당시 교황권에 도전하면 누가 죽여도 죄를 묻지 않는다는 교황의 칙서가 발표되었을 때입니다. 추상같은 명령입니다. 누가 감히 그 앞에서 도전하겠습니까. 그런데도 이 젊은 수도사 루터는 그 종교재판을 받으려고 당당히 집을 나서면서 외쳤습니다. “기독교인은 면회부와 같은 것에 의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많은 고통을 통해서 천국에 간다.” 얼마나 겁이 없습니까. 사람들은 이 겁 없는 젊은 신부를 보려고 몰려들었습니다. 그 날이 1521년 4월17일 날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마지막으로 “가지 말라, 교황은 얀 후스에게 한 것처럼 너에게도 화형을 시킬 것“이라고 말렸습니다. 얀 후스는 체코의 종교개혁자입니다. 프라하 대학의 학장이었던 후스는 후에 성직을 받았습니다. 후스는 위클리프의 영향을 받아 구령예정설을 제창하였다고 파문당해서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성직을 박탈당하고 화형당해 죽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일을 떠 올리고 루터를 만류했지만 그는 다시 외쳤습니다. “그들이 내가 가는 길에 불을 질러 그 불꽃이 하늘에 닿을 지라도 나는 주님의 이름으로 간다, 나는 맹수의 입안으로 들어가 그 이를 부수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할 것이다, 마귀가 보름스 의사당 지붕의 기왓장만큼 많아도 나는 간다.” 누가 이 사람의 길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루터가 재판정에 도착했을 때 모두들 놀랐습니다. 루터가 그 죽음의 장소까지 나올 줄을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재판이 열려 루터가 칼 황제 앞에 섰습니다. 그 곁에 고관대작들이 즐비하게 늘어 서 있었습니다. 그때 트리니에 대주교의 고문관이 두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하나는 “루터 이름으로 출판된 책들이 모두 자신의 것으로 인정하는가”라는 질문이었고 두 번째는 “책에서 주장한 내용들을 모두 취소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책의 내용들은 “믿음, 영혼 구원, 말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취소하면 당장 자유가 주어집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주장한 믿음, 영혼구원, 말씀은 부정하는 꼴이 됩니다. 뿐만 아니고 계속 뜻을 굽히지 않으면 루터는 화형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루터는 순간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하루의 시간을 달라”고 했습니다. 하루 더 고민한다 해도 답은 뻔했습니다.
루터는 다음날 같은 자리에 섰습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무슨 말이 나올까 루터의 입만 바라보았습니다. 그때 루터가 하늘을 처다 보았습니다. 그리고 눈을 감았습니다. 한참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눈을 뜨고 기도를 했습니다. “주님 내가 여기 서 있습니다, 나는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소서.” 그리고 대답했습니다. “나는 믿음, 영혼구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쓴 책의 내용들을 취소할 수가 없습니다.” 그 대답의 결과가 무엇인지 그는 잘 알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강조된 것이 4가지입니다. 그것을 4S라고 부릅니다.
sola scriptura - 오직 말씀
초기에 그토록 참신하고 강렬했던 믿음이 1,500년을 지나오는 동안 말씀의 종교가 의식의 종교로 전락했습니다. 중세까지 1,500년을 거쳐 오는 동안 온갖 형식적인 의식이 다 들어와 말씀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중세시대에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일반인들은 읽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말씀이 없어지니까 그 대신 십자가가 신앙의 대상이 되었고 기도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십자가 상 앞에서 절하고 기도하였습니다. 토마스 아켐퍼스 까지 나서서 “십자가 앞에서는 주님께 드리는 예배와 같이 예배하여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 후 십자가는 악마를 물리치고 전염병이나 재앙을 물리치는데 능력 있는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중세말까지 이 십자가가 예배의 대상으로 제단에 비치되었고 다른 기물들이나 형상들은 왜소하게 보이도록 십자가를 더 크게 세웠습니다. 그리고 중세 십자군 전쟁 때에는 이 십자가 깃발을 들고 전쟁에 임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회교도들은 이 십자가만 보면 치를 떱니다. 중세 종교개혁자들은 십자가가 우상화 되는 것을 우려하여 교회 내에서 십자가를 철거하기 시작했습니다.
십자가는 자기 부정의 자리입니다. 그런데 오늘도 십자가는 성공의 자리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두 그 밑에 가서 성공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서도 실제로 십자가를 지는 일은 기피하고 있습니다. 말씀이 없으면 보이는 형상들을 믿게 됩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이 제일 먼저 외친 말이 “말씀을 회복하자”였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모국어로 번역하여 일반인에게 나누어 주고 읽게 시켰습니다. 그때부터 강단에서 그 말씀으로 설교하고 말씀이 예배의 중심이 된 것입니다. 루터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내용 중 가장 위대한 부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전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쯔빙글리, 칼빈 그리고 개혁자들은 “하나님이 일찍이 선지자들과 사도들에게 말씀하신 것 같이 오늘도 성경 속에서 말씀하신다”고 외쳤습니다.
sola fide - 오직 믿음
개혁자들은 율법으로는 구원을 받지 못하고 선행으로도 구원을 받을 수 없고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고 외쳤습니다. 루터는 이것을 “이신득의”라고 말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이신득의입니다. 이 이신득의가 종교개혁자들이 주창한 가장 중요한 종교개혁의 모토입니다. 믿음은 인간의 노력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돈으로 노력으로 선행으로 헌금으로 봉사로 안 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만 의롭게 되고 구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오늘 읽은 본문말씀의 내용입니다. 그래서 오직 믿음입니다.
sola gratia - 오직 은혜
믿음이나 구원받음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믿음이나 구원은 인간의 노력이나 수행의 공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믿음은 내가 갖고 싶다고 해서 가져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믿음을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가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과 구원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이 믿음을 선물 받았습니다. 그것만도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solus christus - 오직 예수
개혁자들은 예수만이 구세주이고 중보자이고 주님으로 높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구원의 방법은 오직 예수를 믿는 길 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개혁자들이 외친 내용을 요약하면 “인간의 구원은 행위로가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하나님의 의로부터 나온 것이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는 오직 예수 안에서만 나타난다, 고로 이 같은 진리는 오직 성령 안에서만 나타난다”고 규정했습니다. 이것이 종교개혁의 과정입니다.
믿음은 순전해야 합니다. 믿음에 불순물이 들어가면 순도를 잃게 되고 강렬한 신앙의 의지를 잃게 됩니다. 중세 기독교는 말씀을 잃어버렸습니다. 말씀이 없으니까 수단이 나타났습니다. 방법이 나타났습니다. 형상을 믿었고 성인을 믿었고 십자가를 목에 걸고 다니면서 그 십자가를 믿었습니다. 그리고 말씀이 약화되고 예수가 약화되다 보니까 행위와 봉사와 수고함이 구원이 조건이 되는 것처럼 강조되었습니다. 그래서 본문은 오직 믿음을 강조합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또 히브리서 11장6절을 보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이 계신 것과 또 하나님이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믿음이 충천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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