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미래를 베팅한 마리아 요12:1~8
본문은, 마리아가 3백 데나리온이나 되는, 옥합을 깨뜨린 장면입니다.
주님께서는 ‘복음이 전파되는 곳이면 어디든지, 이 사건이 기억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막14:9
▶이 말씀의 진의眞意를, 우리가 오해할 때가 있어요.
옥합을 깨서 예수님께 기름을 붓는 그런 헌신을 했고,
그래서 예수님께 칭찬을 받았다.. 라는 식으로
본문을 ‘헌신-보상’관점으로 해석하는 것은
본문의 진의가 아닙니다.
‘헌신’에 대한 ‘보상’이 따를 것을
본문이, 그 주제로 가르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마리아의 헌신’ .. 여기까지는 맞습니다. 헌신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엔 꼭 보상이 뒤따른다’는 해석은
(그 말은 틀리지 않아도)
본문의 핵심 메시지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 본문의 핵심 메시지가
‘복음을 믿으려면, 누구나 다 옥합을 깨는 마리아의 신앙고백(적 삶)이 되어야 된다’
라는 관점으로 해석해 보려고 합니다.
▶잠시 이 사건의 배경을 살펴보면,
이 즈음,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합니다.
가룟유다는 상황판단이 빠르고 정확했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죽음이 기정사실이다’ 라는 판단이 섰습니다.
이때 가룟유다가 배반한 이유는,
그는 이제까지 3년 동안, 예수님께 자기 미래를 위하여 베팅한 겁니다.
예수님께 자기 미래를 건 거에요. ‘올인’ 한 것이지요.
그런데 예수님의 죽음이 분명해지자
자기 전 인생을 다 걸었는데 (베팅했는데)
그걸 다 날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동안에 했던 투자가 있으니까,
그간의 투자에 대한 손실을 조금이라도 만회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얼마의 돈을 받고 팔아넘기려고 합니다.
▶제자들도 비슷하게, 예수님께로부터 점점 멀어집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죽는 자리까지 같이 갈 거라고 큰소리를 치지만,
죽음의 위협이 가시화되는 상황 앞에서는.. 슬금슬금 빠져나가 버립니다.
그동안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게 될 꿈까지 꾸었지만,
예수님이 죽음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는
제자들도..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 버립니다.
경제적 표현을 쓰자면, 자기 투자금을 다 빼냅니다. 회수해 버립니다.
그동안 자기 미래를 위해서 투자했던/베팅했던
그 모든 ‘투자’를 다 취소시켜 버리고 있는 겁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제 마리아의 신앙고백이 어떤가를 살펴보십시다.
마리아는, 정반대로 행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에는 ‘마리아’라고 이름이 명시가 되어 있습니다.
자! 이 마리아가 옥합을 깨는데,
3백 데나리온 어치의 굉장히 값진 향유였습니다. 주1)
‘나드’라고도 하는데, 인도에서 만들어지는 향유입니다.
오빠가 나사로이고, 언니가 마르다인 이 집안에
부모도 없이 살고 있는 마리아에게
3백 데나리온의 향유라는 것은
그의 개인적인 전 재산이고, 그의 결혼지참금입니다.
▶근데 그걸 깨버렸다는 거예요.
마리아가, 이 향유를, 어디다 쓸 거였겠습니까?
그 당시 여자들의 미래는
어떤 남자와 만나서 결혼을 하느냐에 달려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향유가 결혼 지참금처럼 사용될 것이라는 의미는,
자기의 미래를 베팅할만한 남자(결혼상대)를 만났을 때,
그때에 이 옥합을 사용하는 겁니다.
존경과 사랑의 의미와 표현으로,
내 마음, 내 인생의 모든 미래를 당신에게 베팅합니다라는 뜻으로
이 옥합을 깨서 사용합니다. 주2)
그러니까 그 분이, 내 일생에 존경할 최고의 분임을 인정하는 의미가..
‘옥합을 깨는데’ 담겨있었습니다.
▶주제를 말씀 드리면,
본문은 ‘헌신과, 그에 따른 보상’에 그 의미가 있지 않고,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마리아가,
자기 인생의 전부요, 자기 미래의 전부가 걸려있었던
옥합을 깨뜨린 것처럼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내 인생을/ 내 미래를 모두 버리고, (십자가에서 자기가 죽고서)
따르는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주님이 소중하신 분이고,
구원은, 내 인생을 다 팔아서 바꿀 만큼 값지고 소중한 것입니다.
(자기 재산을 다 팔아서, 보화가 감추인 밭을 샀던 비유와 마찬가집니다.)
그런 마리아의 ‘신앙고백’이
가룟유다나, 다른 제자들과 비교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의 메인 포커스는.. <마리아의 신앙고백이지>..
give and take 식으로 받게 되는 <보상>이 아닙니다.
▶마리아는, 구세주를 만나고는, 자기 미래를 접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그녀는 옥합을, 자기의 미래를 베팅할만한 남자를 위해서
사용하기 위한 결혼 지참금으로 갖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주님께 깨서 드렸는데,
문제는.. 주님께서 내일모레 죽으신다는 겁니다.
쉽게 말하면, 망해버린 회사의 주식을 사는 것과 같은 것이라 이겁니다.
휴지조각 같은 주식을.. 1년 연봉을 다 깨서.. 산 것입니다.
내일모레, 이 지상에서의 삶이 죽음으로 마감하실 예수님을 위하여,
자기 미래를 함께할 남자를 만났을 때 써야 할 옥합을 깨버린다는 것은,
자기 미래를 접는다는 얘깁니다.
자기 미래를 위한 베팅을 그쳤다는 얘깁니다.
더 이상 마리아는, 훌륭한 남자 만나서
자기의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일을 접어버렸다는 얘깁니다.
미래를 접는다는데, 그 의미가 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구원/천국/복음이..
자기 인생과, 자기 미래보다.. 더 가치 있고,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무덤에 찾아갔을 때의 모습을 보면,
예수님께서 부활 하실 거라는 얘기를 기억 못하고 있습니다.
현실적인 이야기로 못 받아들인 거였겠지요.
그러므로 마리아의 옥합을 깨고,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행위는,
이제 내 미래는 주님 이후에는 그 누구에게도 베팅할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확언하는 얘기이고,
주님이 죽는다면, 주님의 죽음에,
나의 미래를 함께 묻어버리겠다는 얘기였습니다.
▶이처럼 기독교 신앙은,
이 지상에서의 나의 미래를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함께 묻어버리는 겁니다.
이게 바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태도>입니다.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자의 옥합을 깨뜨리는 사건이 함께 얘기 될 것이다..'
라는 말씀도
'예수 믿는다는 것은, 마리아처럼, 자기 미래(전 인생)을 다 버리는 것이다'
그 신앙고백이.. 온 세상에 전파되도록 하라.. 는 뜻입니다.
‘단순히 마리아의 선행을 널리 기억하고 칭찬해라’가 아닙니다.
복음을 믿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나의 미래를 다 접었습니다!’ 가 되는 것입니다.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자의 옥합을 깨뜨리는 사건이 함께 얘기 될 것이다..’
라는 얘기가 바로 그런 뜻입니다. 그런 신앙고백을 널리 전파하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십자가 사건은 두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제까지 지은 모든 죄가
십자가에서 주님과 함께 죽었다는 것을 고백함을 통하여
죄 씻음을 받습니다.
그러고 나서 끝나버리면 안 됩니다.
그러고 나서, 이 지상에서 내 비전을 꽃 피우는 게 아닙니다.
-이제는 십자가(자기 죽음)를 일상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와 함께 죽었으니까요!
내 미래도 죽고,
내 야망도 죽고,
내 자아와 욕심도 죽고,
(이게 다 결국은 안 좋은 것이니까, 죽는 게 좋습니다.)
이게 바로 복음을 받아들이는 겁니다.
옥합은 마리아의 미래였습니다.
죽는 주님에게 자기의 옥합을 드립니다, 자기의 미래를 드립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을 받아들이는 태도라는 이야기에요.
▶자! 자기 미래가 없어지면서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은, 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앞으로 내 인생이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
인생이 위로 올라가 버린다는 얘기에요, 천국으로.
내 인생이 위로 올라가고,
나의 앞으로의 미래의 삶은.. 완전히 하나님의 것이 됩니다. 하나님께 붙잡힙니다.
그게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세상의 기준으로 성공이든/ 실패이든
내 인생은.. 하나님 것이 돼버립니다. (하나님이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이는 순간에
내가 베팅할 내 미래는 없어져 버리는 거예요.
(내가 죽었다니까요!)
내 미래를 접을 생각하지 않고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자신과, 나의 미래 중에,
어느 것을 마음을 쏟으며 사랑할 것인가를.. 내게 묻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즉 내가,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내 미래까지도 내 마음에서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에 묻어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미래를 포기하면서까지,
내 마음을 다해 주님을 사랑하는 것..
이것이 복음이요,
이것을 실제로 보여준 이가, 옥합을 깨뜨린 마리아였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십자가는 이제까지의 내 모든 죄를 씻어주는 사건이면서 동시에,
십자가로 일상적으로 생활함을 통하여,
내 미래를 주님의 죽음과 함께 묻음으로써,
내 인생의 미래보다도,
내가 하나님을 더 사랑하며 산다는,
우리 신앙의 표현이 바로 십자가의 길입니다.
본문의 마리아가,
가장 복음에 합당한 신앙고백적 삶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는 얘깁니다.
미래를 위한 우리의 투자, 미래를 위한 우리의 베팅
이것은 십자가와 함께 끝나야 합니다.
베팅이 끝나지 않는 삶은 끝내 신앙인이 아니고,
아직도 복음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럼 내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앞으로 내 인생이 활짝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
인생이 위로 올라가 버린다는 얘기에요, 천국으로. (차원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내 인생이 위로 올라가고,
나의 앞으로의 미래의 삶은, 완전히 하나님의 것이 됩니다.
다만 우리가 확신하는 것은,
하나님은 그 전능하신 지혜와 섭리로,
가장 좋은 길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기독교신앙은, 나의 구원은
나를 위해서.. 내가 주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구원의 목적은,
주님을 위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한 .. 나의 구원입니다.
그런데 결국은, 그게 내게도 좋은 것입니다.
나를 위해서.. 내가 주님을 믿는 것은.. 그게 결국 내게도 안 좋습니다.
주님과 그 나라를 위해서 .. 주님은 나를 구원하셨습니다. .. 그런데 그게 결국 내게도 좋습니다.
(구원마저도.. 자기 이기적 목적으로 이용하려는, 자기 중심적 태도는.. 변화되어져야 합니다.)
기도/ 하나님아버지, 옥합을 깨뜨림이 일상화될 수 있게 해 주셔서,
내 인생의 미래에 대한 베팅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복음을 바로 받아들인 사람으로 하루하루 온전히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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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300데나리온이면, 여러분 오병이어의 기적 때, 남자만 오천 명인데,
여자와 아이 노인 다 합치면 2만 명가량 된다고 추정합니다.
2만 명이 한 끼 식사를 배불리 먹는데 돈이
빌립의 계산에 의하면 200데나리온이라 그랬습니다.
그러면 3백 데나리온은.. 3만 명이 한 끼 먹을 수 있는 가격입니다.
요즘 1끼 식사를, 싸게 5천원으로 잡으면,
어쨌든 아주 큰 돈이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당시 하루 근로자들의 하루 임금이 평균임금이 한 데나리온입니다.
그러므로 300 데나리온은.. 1년치 연봉이에요.
주2)
옥합을 깬다는 얘기는 고대에 그런 습관이 있었다고 해요.
왕이라든지 귀한 분, 내가 평생에 존경해야 될 그런 분들이
내게 있는 어떤 그릇에 물을 담아 먹었다, 포도주를 담아 먹었다 그러면,
그 그릇이 하도 귀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깨버렸다는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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