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모습
시 119:9-11,16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
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내가 전심
으로 주를 찾았아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말
게 하소서.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매년 5월이면 우리는 정신없이 사느라고 혹시 잊고 살아갈 수 있는 가정을 생각하고 살피고 수정하는 시간을 가지게 됩니다. 오늘은 가정이 상당히 파괴되는 시대입니다. 가정의 달이 되면 어린이 주일이나 어버이 주일은 모든 교회들이 잘 지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가장 소외되는 그룹이 있습니다. 그것이 청년들입니다. 그래서 청년주일은 없습니다. 교회마다 청년들이 중요하다고 말은 하면서도 실제로는 청년들을 소홀히 여겨집니다. 그래서 오늘은 청년주일로 지킵니다.
여러분은 인생에서 가장 좋을 때가 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청년 때일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모두 청년시절이 있었을 것입니다. “청년”, 말만 들어도 설레지 않습니까. 청년 때는 꿈도 많고 기대도 많습니다. 그래서 청년입니다. 그런데 청년은 청년다운 청년성(靑年性)이라는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야성이고 모험심이고 용기입니다. 청년에게 이것이 없으면 몸은 청년인데 마음은 애늙은이가 됩니다. 젊은이는 무엇보다도 싱싱하고 새롭고 신선하고 향기가 있어야 하고 우선 뜻이 선해야 하고 모험심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읽은 본문을 보면 그런 싱그러운 젊은이의 삶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청년이 가져야 마음을 몇 가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분명한 목적을 갖는 일”입니다.
본문 9절 말씀을 보면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내가 주의 말씀만 지킬 뿐이니이다“하고 말씀합니다. 이 말은 “내가 하나님을 따라 살겠습니다”는 분명한 뜻을 나타내는 고백입니다. 여기에 분명한 목적이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신앙인에게는 이런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또 청년에게도 삶에 이런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삶에서 이렇게 분명한 목적은 참 중요합니다.
곤충학자 장 앙리 파브르라는 학자가 날벌레를 연구하던 중 아주 중요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날벌레들이 공중을 빙빙 돌며 날아다니는데 가만히 보니까 이 날벌레들이 목적이 있어서 도는 것이 아니고 아무런 목적도 없이 무턱대고 누군가 앞에서 돌고 있으면 뒤에 있는 놈들은 무조건 따라서 빙빙 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앞에 있는 날벌레가 돌면 자기도 방향이나 목적도 없이 그냥 빙빙 도는 바람에 밑에 먹이가 있어도 먹지도 않고 도는데 얼마를 도느냐 하면 7일간을 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결국 굶어 죽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목적 없는 삶의 모습입니다.
젊은이들 중에도 친구 따라 덩달아 빙빙 도는 삶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참 많습니다. 빙빙 돌다가 같이 범죄하고, 같이 밤새우고, 빙빙 돌다가 실수하고 그럼니다. 한밤에 폭주하는 폭주족 보십시오. 친구하나가 폭주하니까 덩달아 따라나서 밤새도록 빙빙 돌고 다닙니다. 양로원의 노인들이 가장 많이 사망하는 시간대가 언제인가 하면 생일날 다음날이라고 합니다. 양로원의 노인들에게 크리스마스나 생일날은 목표가 있습니다. 그날 많이 먹자하고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날이 지나면 목표가 없어서 삶의 의지가 약해져서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목표가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어느 학생이 개근을 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 학생이 지각을 했습니다. 선생님이 왜 지각했느냐고 물으니까 학교 오는 길에 어떤 아저씨가 동전을 잃어버려서 같이 찾아주다 보니까 늦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동전 찾아주는 것이 중요하냐 아니면 학교 가는 것이 중요하냐고 물으니 아이는 자꾸만 동전 찾아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우깁니다. 그리고 이 아이가 선생님이 한심하다는 듯이 “내가 그 동전을 한발로 밟고 있는데 어떻게 학교를 올 수 있느냐”고 말했습니다. 이 아이가 그 아저씨가 동전 찾기를 포기할 때 까지 기다리다가 학교에 늦은 것입니다. 그 아저씨가 참 고마운 아저씨입니다. 그 아이가 한발로 동전을 밟고 있는 것을 알았을 것인데 동심에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모른 체 그냥 돌아간 것입니다.
여러분, “주객전도”라는 말을 아십니까. 아라비아 상인들이 낙타에 짐을 싣고 사막을 오갑니다. 사막은 밤은 춥고 낮은 덥습니다. 밤이면 도중에 텐트를 치고 낙타는 밖에서 자야 합니다. 밤이라 춥습니다. 그래서 낙타가 텐트에 주둥이를 슬며시 집어넣습니다. 주인이 나가라고 하니까 얼굴만 들여놓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인이 묵인해 줍니다. 그랬더니 조금 있다가 앞발이 슬며시 들어옵니다. 주인이 나가라 하니까 앞발만 넣고 자게 해 달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묵인해 주었더니 조금 있다가 몸 전체를 들여 밀더니 주인보도 나가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주객전도라고 말합니다. 처음에 딱 잘랐어야 하는데 우유부단하고 끊고 맺음이 없고 불필요하게 지나치게 인정을 베풀다 보니까 마침내는 자기위치를 빼앗기는 것입니다.
여러분, 살아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꾸물거림, 늑장, 지나친 불필요한 인정, 우유부단 이런 습관들에 길들여지면 나중에는 그 인생 전체가 쓰레기장으로 변해버립니다. 그래서 나중엔 외상값, 월부 값, 꾼 돈, 카드 빚, 실패, 질병과 후회만 남기게 됩니다. 이런 것들이 모두 쓰레기들입니다. “내가 말씀만 지킬 뿐이니이다“. 그 말은 나에게는 아주 분명한 목적이 있고 목표가 있다는 말입니다. 청년의 때는 이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나는 결코 하나님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얼마나 분명한 목표입니까.
두 번째는 “최선을 다하는 삶”입니다.
본문 10절 말씀을 보면 “내가 전심으로 찾았사오니”하고 말씀합니다. “내가 전심으로” 이 말은 “내가 전심전력하여 하나님을 찾았다”는 자세를 말합니다. 신앙인의 태도 가운데 가장 좋은 태도는 전심전력입니다. 예배도 전심전력입니다. 기도도 전심전력입니다. 헌신의 삶도 전심전력입니다. 그 삶의 태도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이것은 젊은이의 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심으로” “전심전력으로”, 이런 인생관을 가진 젊은이에게 길이 열리고 문이 열리는 법입니다. 최선 다하는 모습,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엊그제 어느 주차장에 가서 차를 맡겼습니다. 아주 새파란 젊은이 몇 명이 주차관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중 한 청년이 늘 웃으면서 손님들의 차를 맡아서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함께 있던 분이 그렇게 말합니다. “나는 저 젊은이만 보면 참 마음이 기쁩니다. 저 청년은 자기가 하는 일을 너무나 해피하게 여기며 일하고 있습니다, 저 얼굴 좀 보십시오 언제나 웃고 있습니다”. 얼마나 좋은 태도입니까. 그 젊은이는 언제가 누군가의 눈에 띄어서 반드시 길이 열릴 것입니다.
스필버그라는 사람은 영화감독인데 그분이 쥐라기 공원이라는 영화 한편을 만들고 자동차 150만대 수출한 만큼의 돈을 벌었다고 합니다. 그분은 여섯 살 때 처음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17세 때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처음 구경 갔다가 실버즈라는 유명한 영화전문 기자를 만납니다. 그 기자가 스필버그에게 잠재되어 있는 소질을 발견해 주고 마음껏 터트려 주었습니다. 그래서 연구에 몰두한 것이 오늘 세계적인 영화인이 됩니다.
여러분, 한 가지 일에 전심전력해 보십시오. 그러면 뭔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에디슨은 하루 18시간씩 연구실에 몰두해서 연구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평생 3천 가지나 발명했습니다. 빌 게이츠는 컴퓨터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세계의 모든 가정 모든 책상위에 컴퓨터를 놓자”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렇게 집중하는 사람이 무엇인들 이루지 못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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