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자본
잠 1:1-6
어리석은 자로 슬기롭게 하며 젊은 자에게 지식과
근신함을 주기 위한 것이니 지혜 있는 자는 모략
을 얻을 것이라 잠언과 비유와 지혜있는 자의 말
과 그 오묘한 말을 깨달으리라.
5월이 가고 있습니다. 오늘이 마지막 주일인데 오늘을 청년주일로 지키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모두 청년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청년의 시절을 살아가고 있는 젊은이도 많습니다. 생각해 보면 청년시절이 가장 좋은 시절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인생 중 가장 소중한 때는 청년의 때입니다. 그런데 정작 젊은이들은 젊은이의 시절이 그렇게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고 살아갑니다. 그 소중함을 알게 되는 날은 이미 그 소중한 황금기와 같은 시간들이 다 지나간 다음입니다. 사람은 늘 후회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의 젊었던 시절을 되새겨보고 오늘 젊은이들에게는 말씀을 통해서 교훈을 드리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을 본문으로 택한 이유가 있습니다. 지난주간 북경을 가느라고 비행기를 탔는데 주는 신문을 읽었습니다. 신문에 눈이 가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대통령의 아들 홍걸씨가 구속되기 전날 이 이 본문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렸다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청년주일에 이 본문말씀으로 설교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홍걸씨도 젊은이입니다. 안쓰럽게 생각되었습니다. 동정심도 일어납니다. 사람들은 그를 욕하지만 누구나 그 자리에 있었다면 그런 유혹을 피하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우리는 대통령의 아들이 안된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역대 대통령의 아들들은 모두 불행했습니다. 이승만대통령의 아들 강석씨는 움직일 때마다 장관들이 수행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4,19때 비참하게 종말을 맞이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아들 지만씨는 아직도 궤도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살다가 다섯 번째 구속되었습니다. 전두환 대통령의 아들 재국씨는 비자금 관리문제로 조사를 받았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의 딸 소영씨는 20만 불 외화 밀반출 문제로 조사를 받았고, 김영삼 대통령의 아들 현철씨는 구속되었고 김대중 대통령의 세 아들 모두 구설수에 오르고 구속되기도 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삶의 지혜를 주기 위해서 주신 말씀입니다. 오늘 현대인들과 젊은이들은 이 말씀을 통해서 교훈을 받았으면 합니다. 여기서 몇 가지 교훈을 받습니다.
하나는 “교훈을 중시하라”는 것입니다.
옛말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래서 교훈입니다. 교훈집 중에 탈무드가 있습니다. 이 교훈집은 유대인들이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책입니다. 그들의 조상들이 모진 고난 속에서 터득한 교훈들을 모아놓은 책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 교훈집을 성경 다음으로 소중히 여깁니다. 또 채근담이라는 교훈집도 있습니다. 중국 명나라 홍자성이 썼다는 수양서입니다. 오늘 중국인들이 소중히 여기는 교훈서입니다. 또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잠언이라는 교훈서룰 내려 주셨습니다.
이 잠언은 솔로몬이 직접 체험하는 형식을 통해서 우리에게 피부에 닿을 만큼 생생한 교훈으로 주셨습니다. 이 잠언을 사람들이 잘 모릅니다. 그래서 무시하고 소홀히 합니다. 사람들이 이 교훈을 무시하다가도 아주 실감나게 읽고 되새길 때가 오게 됩니다. 그 시간이 언제인가 하면 사람들이 실패의 자리에 앉게 될 때입니다. 그 때는 이 교훈이 그토록 피부를 찌를 만큼 구구절절이 저려오는 말씀으로 대하게 됩니다. 그래서 홍걸씨가 구속되기 전날 밤에 이 말씀에 밑줄을 쳐가면서 눈물을 흘리며 읽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비로소 실패의 자리에 앉아 보니까 그 말씀이 살아서 들려온 것입니다.
오늘 젊은이들은 정신이나 인격이 미성숙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세상에서 다 성장하고 이룬 것처럼 모든 일들을 부정하려듭니다. 권위나 질서 그리고 도덕이나 교훈들을 무시하고 듣지 않으려 합니다. 물론 기존의 질서가운데 고쳐야 하고 부정해야 하고 허물고 버려야 할 것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무조건 부정하려하면 안됩니다. 그러니까 때로 젊은이들이 실패하고 좌절하고 한계를 쉽게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인격이나 정신이 유약한 인간에게 나침반같이 그리고 길잡이 같은 역할을 해 주는 교훈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젊은이에게 지식과 근실함을 주려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훈들을 소중히 받아야 합니다.
두 번째는 “자신의 인생을 건설하는 일”입니다.
젊은이는 먼저 “내가 누구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내 아버지가 대통령일지라도 나는 대통령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점을 알아야 합니다. 나는 대통령의 아들일 뿐입니다. 대통령의 아들은 자연인입니다. 그런데 홍업씨는 착각을 했습니다.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행세를 했고 돈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실패하는 것입니다. 대통령의 아들이 행세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이 땅에 와서 하나님의 권세를 남용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사람과 똑같이 태어나는 과정을 거쳐 태어나시고 배고픔을 느끼며 성장했고 고난받으며 인간과 똑같이 죽음의 과정을 거쳐서 일생을 마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실패 없이 주어진 사명을 잘 마치셨습니다.
아버지가 대통령이고 재벌이면 오늘 사람들은 그 아버지의 후광이나 프리미엄을 너무 쉽게 받고 편승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권세를 자신도 행세하려 합니다. 아버지의 부를 자신도 거리낌없이 누리며 살아가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온갖 부작용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 젊은이들은 너무 의존적입니다. 그리고 너무 물질에 오염이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젊은이 하면 무엇부터 생각나십니까. 청년하면 우선 깨끗함과 청순함 아닙니까. 그래서 젊은이들이 데모도 하고 정의도 부르짖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이 젊은이들이 너무 물질로 오염이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감당도 못하고 수입도 없으면서 카드를 만들어 절제 없이 쓰고 다니다가 결국에 가서는 사고를 치고 살인을 하고 그럽니다. 빚은 내가졌는데 왜 다른 사람이 죽어야 합니까. 이런 논리가 어떻게 성립될 수 있습니까. 대통령의 아들이 왜 돈을 받습니까. 받아도 한두 푼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 사람도 젊은 사람입니다. 젊은 사람이 그렇게 물질에 노예가 되었습니다. 불행입니다.
젊은이들의 결혼 풍속도를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매년 40만 쌍이 결혼을 한다는데 한해 결혼시장이 5조원이나 된다고 합니다. 혼수가 자그마치 95가지인데 보통 필수로 하면 35가지를 준비해야 한다고 합니다. 60년대는 화장대를 준비하는 것이 필수였습니다. 70년대는 14인치 TV를 준비하는 것이 필수였고 80년대는 200리터 짜리 냉장고가 필수였습니다. 이 내용을 보면 참 소박합니다. 그 시대를 말해주는 대목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그런 준비는 고사하고 3,4시간 결혼식을 위해서 쓰는 돈만도 상상을 초월합니다. 기껏 3,4시간 사용하는 신랑 턱시도 값이 200만원입니다. 신부의 이탈리아제 웨딩드레스가 300만원이고 입장할 때 자욱한 안개꽃길을 걸어가는데 100만원입니다. 모델처럼 짙게 화장하는데 100만원이고 기념사진에 비디오를 찍는데 300만원입니다. 그리고 신부가 결혼식 후에 던져버리는 부케가 10만원입니다. 식사는 얼마나 호화롭습니까. 결혼식 날 딱 5분 주례사에 모두 15분 동안의 결혼식을 위해서 보통 수천만 원을 씁니다. 모두 물질에 깊숙이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젊은이들도 문제지만 부모들도 문제입니다. 그렇게 물 쓰듯 쓰다가 떨어지면 어떻게 살 것입니까. 그래서 강도 짓이 나타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세계적인 부자 록펠러는 손자 교육시키는데 일화를 남겼습니다. 손자에게 매주 용돈으로 25센트를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손자에게 의무를 주었습니다. 그 용돈 중에서 3분의 1은 십일조를 하고 3분의 1은 자선기금으로 내고 3분의 1은 용돈으로 사용하되 사용 후에는 반드시 그 내역을 보고하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철두철미한 금전교육입니까. 그에게 돈이 없어서 그렇게 인색하게 교육했겠습니까. 그러니까 그 손자가 커서 맨해튼 중앙은행의 총재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홍걸씨도 대통령의 아들이 아니었더라면 오늘 아주 평범한 사람으로 지금 건실하게 살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지만씨도 대통령의 아들이 아니었더라면 그도 역시 오늘 평범한 시민으로 건실하게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의 삶을 가꾸고 조성하고 건설하는 일에 소홀히 했습니다. 아버지가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내 인생을 건설하고 만들어 나가는데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그들은 몰랐습니다. 인생은 결국 내가 만들고 건설하는 것입니다. 오늘 젊은이들은 이점을 알아야 합니다.
세 번째는 “좋은 인생관을 갖는 일”입니다.
집을 지으려면 좋은 설계도가 필요하듯이, 넓은 바다를 항해하려면 나침반이 있어야 하듯이 좋은 인생을 살아가려면 좋은 인생관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 이 시대가 얼마나 유혹이 많습니까. 청년은 청년대로, 노인은 노인대로, 신앙인은 신앙인대로 비신앙인은 비신앙인대로 유혹거리들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넘어지는 일들이 많고 실패하는 경우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런 유혹들을 극복하고 이겨내는 데는 좋은 인생관이 필요합니다. 좋은 인생관은 그런 문제들을 극복해 주는데 상당한 역할을 해 줍니다.
그러면 좋은 인생관이란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헌신하는 인생관입니다. 이것이 가장 바람직한 인생관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 신앙인들에게 원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한창 문제가 되어 있는 각종 게이트라는 사건의 장본인들을 보십시오. 모두 젊은 분들입니다. 능력있고 이 시대를 앞서가는 안목과 지혜를 지닌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에게는 한가지 인생관이 있었어야 합니다. 그것은 “나는 이 사회에 공헌한다”는 인생관입니다. 그런 인생관이 수립되었더라면 그들은 문제들을 극복하고 편법을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인생관이 없었기 때문에 빨리 출세하고 성공하려는 유혹에 쉽게 넘어간 것입니다. 그래서 온갖 편법을 동원하고 부정한 방법을 동원하다가 결국 자신도 무너지고 나라를 이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에게 이 헌신의 인생관이 없으면 꿈이나 생각이나 삶이 나 위주로 좁혀지게 됩니다. 그러면 지극히 이기주의적인 테두리 안으로 갇혀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나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와 개인주의가 나타나고 각종 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것입니다. 모두 헌신하는 인생관이 결여되어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살되 헌신하는 인격체로 살고 기여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정신입니다.
우리민족은 장점도 많은 민족이지만 결정적으로 결여된 단점은 바로 이 헌신하는 인생관의 결여입니다. 우리사회가 이기주의가 판을 치고 개인주의가 날마다 더해 가는 것이 모두 여기에서 기인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민족은 모이면 싸움부터 하지 않습니까. 더불어 살아가는 일에 아주 서툴고 조화로운 삶을 살아가는데 아주 미흡합니다. 오늘 정치판을 보십시오. 매일같이 일년 내내 싸우고 다투지 않습니까. 언제 한번 정치권에서 지혜를 짜서 문제를 풀어보려는 일이 있었습니까.
그래서 우리민족은 개인기에는 뛰어납니다. 혼자 하는 일은 세계적입니다. 골프, 음악, 마라톤을 보십시오. 세계적입니다. 그런데 함께 하는 일은 아주 서툽니다. 축구를 보십시오. 국가의 지엔피는 13,4위인데 축구는 하위입니다. 함께 협동하는 일에는 이렇게 약합니다. 이것이 우리민족에게 아주 부족한 부분이고 약점입니다. 사람은 아무리 실력이 있고 똑똑하고 능력이 있어도 나 혼자면 패하기 쉽습니다.
여러분, 기회 되시면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켄 블랜차드와 셀든 보올즈라는 분이 하이파이브라는 경영학 책을 썼습니다. 잘 나가던 사원 앨런이 해고를 당합니다. 이 사원은 어느 누구보다도 능력이 있습니다. 능률도 누구에 비교되지 않을 만큼 월등하게 해 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해고됩니다. 그래서 이 사원은 항의를 했습니다. 그때 사장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는 당신의 능력 믿는다, 당신은 혼자서도 몇 명의 일을 해내는 수완도 믿는다, 그런데 많은 사원들은 당신 때문에 조화가 잘 되지 않는다, 나는 우리회사의 팀웍을 원한다”. 독불장군은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효과적이질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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