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759회] - 한국인 최초 신부 김대건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마태복음 5:10)
초기 한국 천주교회는 조정(朝廷)의 혹심한 박해 속에서도, 일부의 배교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착실히 그 전교(傳敎)의 사명을 수행해 나갔습니다. 그 동안 성직자 없는 시대가 오래 계속되면서, 외국에서 신부들이 들어오기만을 고대하던 조선 천주교회도 이제는 조선인 신부를 맞는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한국인 최초의 신부로 서품을 받은 영예를 안은 이는 김대건(金大建:안드레 1821-1846)입니다. 그는 1821년 8월 충청도 강진군(康津郡) 지천면(芝川面)에서 태어났는데, 조부와 부친 모두, 박해로 순교한 독실한 천주교 가정에서 자라났습니다.
그가 16세 때, 한국에 나와 전교하던 불란서 신부 모방이 김대건, 최양업, 최방제 세 명의 소년을 선발하여 마카오(Macao)로 유학을 보냈습니다. 이것이 근대 해외 유학의 효시(嚆矢)입니다.
이들이 1837년 마카오 외방전교회에 도착하자, 전교회(傳敎會)는 이들의 신학 교육을 위해 ‘조선신학교’를 세우고, 깔레리(Callery) 신부를 교수 겸 교장으로 임명하였습니다. 이 신학교는 비록 외국에 설립된 것이지만, 조선 최초의 신학교입니다. 김대건과 최양업은 이곳에서 신학 수업을 마치고, 상해로부터 20리쯤 떨어진 진가함(金家巷) 교우촌의 성당에서 서품을 하였는데, 그 때가 1845년 8월 17일이었습니다. 조선 교회가 설립된 지 60여년 만에 첫 번째 조선인 신부가 탄생하는 경사가 났으니 이는 김대건 자신의 영광일 뿐만 아니라 조선 교회 전체의 영광이요 기쁨이었습니다.
김대건은 1845년 10월 페레올 주교, 다블뤼 신부와 함께 충청도 강경(江景)을 통해 밀입국하여, 서울과 충청도 지방에서 전교활동을 하였습니다. 김대건은 비밀리에 입국하려는 매스뜨르 신부와 최양업의 안내를 위해 서해로 나갔다가 황해도 해안 등산곶(登山串)에서 1846년 6월 관리들에게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습니다.
김 신부는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신자들에게 써 보낸 편지에, 자기의 죽음을 영광스럽게 생각하면서, 다시 목자 없이 지낼 양 떼에 대한 연민의 정을 나타내면서 시련을 극복하고 최후 승리할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지극히 사랑하는 교형 여러분! 주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내려오시어 직접 수없는 괴로움을 당하셨다는 것을 아십시오. 그의 괴로움으로 그가 당신 교회를 세우셨으니, 이 교회도 십자가와 고난 가운데에서 자라야 합니다. 구세주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사도시대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교회는 항상 천 가지 박해 가운데서 자라왔습니다.……주의 거룩하신 뜻을 따르고 우리의 으뜸이신 예수의 편에 서서 언제나 세속과 마귀와 대항하여 싸웁시다.……무엇보다도 서로 사랑하는 덕을 잊지 말고 서로서로 도우며……박해의 때는 천주의 시험입니다. 세속과 마귀를 이김으로 덕과 공로를 얻게 됩니다.……여러분을 모두 천국에서 만나 함께 영원한 복을 누리기를 바랍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새남터로 끌려가 목 베임을 당하였는데, 그는 ‘서양 야만인과 교섭을 가졌기 때문’에 사형에 처한다는 선고문을 듣고 나서 다음과 같은 유언을 그의 교우들에게 남겼습니다.
“나는 이제 마지막 시간을 맞이하였으니 여러분은 내 말을 똑똑히 들으십시오. 내가 외국인들과 교섭을 한 것은 내 종교를 위해서였고 내 천주를 위해서였습니다. 나는 천주를 위하여 죽습니다. 영원한 생명이 내게 시작되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죽은 뒤에 행복하기를 원하면 천주를 믿으십시오. 천주께서는 당신을 무시한 자들에게는 영원한 벌을 주시는 까닭입니다.”
김 신부는 1846년 7월 새남터에서 목이 떨어져 그 짧은 생을 마쳤는데, 그 때 그의 나이 25세였습니다. 그리하여 최초의 한국인 신부였던 김대건도 순교의 영예를 안고 초기 한국 천주교회 위에 고귀한 피를 뿌렸습니다.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내한하여, 복자(福者) 103위에 성인(聖人) 칭호 시성식을 할 때, 김대건도 거기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의 머리는 현재 서울 가톨릭신학대학 성당 지하에 모셔져 있습니다.
한국 가톨릭교회는 지금도 전교에 힘쓰고 있고, 순교자의 피 위에 세워진 교회는 더욱 성장한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순교자들의 후예들인 우리도 더욱 전교(전도)에 힘써야겠습니다. 샬롬.
L.A.에서 김 인 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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