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 성취에 필요한 것(1) (삼상 7장 12절) < 거룩한 어리석음도 필요합니다 >
1987년, 저는 선교사의 꿈을 가지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원래 목표로 한 신대원은 미국 LA에 있는 풀러(Fuller) 신대원이었지만 당시 신대원 입학 허가로는 미국 비자가 잘 나오지 않아 일반 전공으로 비자를 받고 미국에 들어간 후 학교를 옮기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미국 동부 코네티컷에 있는 브리지포트 대학 화학과에 입학허가서를 받고 출국했습니다.
LA에 도착해 부모님 집에 머물면서 풀러 신대원에 지원서를 내고 입학 허가를 기다렸습니다. 그때 조언자들이 미국에서 대학을 옮기는 것은 자유지만 유학생은 처음 비자를 받은 대학에 등록한 후 옮겨야 불이익이 없다고 해서 일단 동부로 가서 브리지포트 대학에 등록했습니다. 거기서 풀러 신대원의 입학 허가서가 오기만 초조하게 기다렸지만 한 달이 지나도록 오지 않았습니다. 그때 한 목회자가 뉴욕 근처에 좋은 복음주의 신대원이 있다고 소개해주었는데 그것이 얼라이언스(Alliance) 신대원입니다.
입학 지원 서류를 구비해 얼라이언스 신대원을 직접 방문하자 입학 담당관이 그 서류를 본 후 입학에 문제가 없다고 했습니다. 비로소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그날 기쁘고 들뜬 마음이 되었지만 한편으로 왜 풀러 신대원에서 가부간의 소식이 없는지 궁금했습니다. 다음 날, 풀러 신대원의 입학 담당관에게 직접 전화해서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자 추천서 하나가 미비해 심사를 미루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알고 보니까 당시 추천서를 부탁했던 부모님이 다니던 교회의 A 목사님이 추천서를 써 보내겠다고 약속한 후 보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때서야 A 목사님이 부랴부랴 추천서를 보냈고 얼마 후 풀러 신대원에서도 입학허가서가 도착했습니다. 두 장의 입학 허가서를 놓고 하나님의 뜻을 물었습니다. 처음 목표로 했던 곳은 풀러 신대원이었지만 얼라이언스 신대원 입학 담당관의 따뜻한 미소와 뉴욕에서 잠깐 사귀었던 교우들이 좋아서 뉴욕에서 공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것이 제가 얼라이언스 신대원에 들어가 미국 기독교 선교연맹(Christian & Missionary Alliance, 미국성결교)의 선교 비전에 동참하게 된 계기입니다.
1991년, 저는 신대원을 졸업하고 C&MA의 선교비전을 품고 귀국했습니다. 당시 미국 C&MA 본부에서는 한국은 상당히 복음화 되었기에 선교지(Mission Field)가 아니라고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한국은 선교지는 아니지만 선교 자원 지역(Mission Resource Field)로서 중요하다고 여기고 큰 비전을 품고 혈혈단신 귀국했습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동역자나 후원자가 없어서 어떻게 비전을 구체화시켜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선교 자원을 발굴하려면 선교사 훈련학교도 필요한데 후원도 없도 재정도 없어서 일단 여러 신학교에서 강의를 했고 인천에서 교회도 개척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교단도 없고 배경도 없고 후원도 없고 재정도 없는 상태에서 교회 성장은 쉽지 않았습니다. 선거 때 무소속으로 출마하면 당선되기가 쉽지 않듯이 교회도 무소속으로 성장시키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또한 C&MA가 어떤 단체이고 C&MA의 창시자인 심슨 목사님이 누구인지 목회자들도 잘 몰라서 이단 오해도 받았습니다. 찬송가에는 심슨 목사님이 지은 찬송가가 <어제께나 오늘이나>, <내 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은혜 구한 내게 은혜의 주님>, <내 병든 손 내밀라고>의 5곡이 있습니다. 그 찬송가들은 알아도 정작 심슨 목사님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심슨 목사님은 1843년 캐나다의 장로교 가정에서 태어나 1866년 캐나다의 낙스(knox) 대학을 졸업하고 23세의 나이에 캐나다에서 두 번째로 큰 낙스 장로교회의 담임목사로 부임하고 탁월한 설교로 교회를 크게 부흥시켰습니다. 그리고 8년 후 건강 및 새로운 비전을 위해 미국으로 들어와 켄터키 루이빌의 <체스트너트(Chestnut) 장로교회>와 뉴욕의 <13번가 교회(Thirteenth Street Church)>의 담임목사를 지냈습니다.
19세기 말, 심슨 목사님은 <13번가 교회>의 담임목사직을 떠나면서 복음주의 전도운동과 성결한 삶과 선교를 강조하면서 1884년 기독교 선교연맹(C&MA, Christian & Missionary Alliance)을 창설합니다. 기독교 선교연맹이란 명칭의 원래 뜻은 ‘기독교인과 선교사 연맹’입니다. 즉 후방의 기독교인과 전방의 선교사가 연합해서 효과적으로 세계선교를 이루자는 취지로 창설된 선교 공동체입니다.
1894년 미국 시카고의 무디 교회에서 열린 세계 선교대회에서 주 강사였던 심슨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감리교 출신의 카우만 부부가 C&MA 선교사로 헌신해 1901년 일본에 동양선교회(OMS)를 세웠습니다. 동양선교회는 심슨 목사님의 4중 복음(중생의 주, 성결의 주, 신유의 주, 재림의 주)을 내세워 선교활동을 펼쳤습니다. 그 동양선교회에서 세운 신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한국에 돌아와 세운 교단이 성결교단입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C&MA는 한국 성결교단의 뿌리와 같은 교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당시 “방언을 강권하지 말고(bid not) 방언하면 막지 말라(forbid not).”고 했던 C&MA와 달리 “방언은 성령세례의 증거로서 꼭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따로 분리되어 나와 순복음 교단이 생깁니다. 또한 심슨 목사님이 주장한 4중복음에서 ‘성결’ 대신에 외적인 은사 표현을 통한 ‘성령세례’를 대신 넣고 ‘축복’ 교리를 추가해서 5중복음(중생, 성령 세례, 신유, 재림, 축복)을 내세운 것을 볼 때 C&MA는 순복음 교단의 신학 사상 및 운동에도 큰 영향을 미친 셈입니다. 그래도 한국에서는 C&MA를 거의 몰랐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아무런 재정이나 배경이나 후원자도 없이 C&MA의 선교 비전 하나만 가지고 한국에 들어와 혼자 C&MA 목회자로 활동하니까 얼마나 무모한 일입니까? 당시 여러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목사님이 장로교회로 오면 좋은 곳으로 부임할 수 있을 텐데 왜 한국에서 미국 C&MA 목회자로 남아있는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그 후 간간히 타 교단에서 담임목사 청빙 제의도 왔습니다. 그 중에는 사례비가 상당히 많이 책정된 교회도 있었습니다. 그 청빙에 저도 흔들리지 않았고 아내도 이런 말로 저를 붙잡아주었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뜻도 아닌데 교회를 옮기면 큰 죄가 되니까 당신은 그러지 말아요.” 하나님의 강권하신 뜻이 아니라 단순히 조건이 좋아 옮긴다면 그때는 저의 비전이 ‘비전’이 아닌 ‘야망’인 것으로 정체를 드러내는 때일 것입니다.
야망을 가지는 것이 큰 죄는 아니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공 요소는 아닐 것입니다. 세상적인 야망과는 달리 거룩한 비전은 자기를 포기하면서 이루려는 찬란한 꿈입니다. 목회자 총회에 가면 가끔 ‘보다 큰 교회’로 부임하기를 원하는 목사님들의 부산한 발걸음이 느껴집니다. 보다 나은 곳을 향한 추구는 보편적인 현실입니다. 그런 현실을 무시하고 계속 ‘C&MA 선교 비전’을 붙들고 있으니 얼마나 어리석게 보입니까? 원래 선교란 어리석은 사람이 있어야 이뤄질 수 있는 것입니다. 때로는 거룩한 어리석음도 필요합니다. (다음주 화요일에 계속됩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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