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가는 곳에는, 마음이 먼저 가 있는 법입니다
몸이 가지 않는 곳에는, 마음도 가지 않는 법입니다.
성경에, 예수님을 찾아 나오는 수많은 사람들이 나옵니다.
이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기에.. 이렇게 예수님을 찾아 나서고
나는 어떤 사람이기에.. 예수님을 찾아 나서지 않을까요?
기도원에 매일같이 예배 드리러 오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번 강추위에도 빠지지 않고, 그 새벽에 기도드리러 오셨습니다.
저는 기도원 안에 사니까, 멀리 찾아 갈 필요가 없었지요.
찾아 가는 것,
몸이 가지만..
몸이 가기 전에, 마음이 찾습니다.
그러니 찾아 감에는, 몸과 마음의 어떤 관계가 있습니다.
몸이 찾아 갈 필요가 없으니.. 마음의 찾음이 그리 열렬하지 않습니다.
몸이 편안하니.. 마음이 그리 뜨겁게 찾지 않습니다.
평소에 저는,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다고 늘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찾아 어디 갈 필요를 느끼지 않았고
하나님을 찾아 어디 간 적이 없습니다.
아무튼 기도원에 주님이 계시고,
내 안에도 하나님이 계시다고 생각하니
무엇을 찾아 어디 갈 생각이 없고,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이것이 저의 축복인 것 틀림없지만
미동微動도 않으니.. 감동感動도 없는 것은 아닌가..? *작을 미, 움직일 동
몸으로 찾지 않으니..
주님을 찾는 마음도 없어지는 것은 아닌가,
깊이 생각하게 되는 새벽입니다.
몸이 간다는 것은, 먼저 마음이 가는 것입니다.
먼저 마음이 가지 않기 때문에, 몸이 따라서 가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 마음이 먼저 가야할 곳은, 과연 어디인가요?
또한 내 마음을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 내가 해야될 일은 지금 무엇일까요?
스스로 자문해 봅니다.
▲하나님의 피조물이 아파하는 그곳에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습니다.
안전지대에는, 무풍지대에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없습니다.
혹시 “와서 보아라.”라는 예수님의 감동이 내게 있다면,
그것은 ‘아픔에로의 부르심’입니다.
“아픔을 보고, 아픔을 함께하고, 아픔을 치유하라!”라는 부르심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아픔이 있는 곳에 있건만, 우리의 몸은 마냥 편하기만 원합니다.
가서 보는 것 보다.. 그냥 자기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는 것이,
앉아 있는 것 보다.. 누워 있는 것이,
또 그냥 누워 있는 것 보다.. 잠자는 것이 더욱 편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편한 것은 죽음밖에 없습니다.
육체적 편함의 마지막은.. 무의미한 죽음입니다.
우리는 몸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늘 편안함을 떠날 줄 알고, 아파할 줄 알아야
하나님의 부르심에 '매일' 따를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몸은 쾌락의 온상이 아니라,
하나님을 모시는 그릇이며
의의 일을 하는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만나서 상대방을 훌륭하게 만들어주는 사람
윌리엄 글래드스톤 과 벤자민 비즈렐리는
영국역사상 가장 위대한 두 명의 수상이다.
한 여성이, 이틀 연속 두 사람과 각각 저녁 식사를 같이 했다.
어떤 사람이 그 여성에게 “두 분에게서 어떤 인상을 받았습니까?”라고 묻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제가 글래드스톤 수상과 식사를 같이 한 후, 식당을 나올 때는,
‘그 분이 영국에서 가장 현명한 분’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가, 비즈렐리 수상과 식사를 한 후에 식당을 나올 때는
‘제 자신이 영국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건성으로 읽으면, 글래드스톤 수상이 더 뛰어난 분으로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찬찬히 읽으면, 비즈렐리 수상이 더 뛰어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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