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설교〓/곽선희 목사 설교

이 사람의 믿음! (요 1:45-51)

by 【고동엽】 2022. 12. 3.
목차로 돌아가기

이 사람의 믿음! (요 1:45-51)

 

구약성경에 보면은 창세기에 아브 라함이라고 하는 사람이 나타납니 다. 그의 생애를 간결
하게 또 자세 하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창세기 12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75세 때 하 나님
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십니다. 거기서부터 하나님의 선택받은 사람 으로 그의 일생이 전개됩
니다. 75 세에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시고 네 부모와 친척, 이 고향 갈대아 우르 를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 갈 바 를 알지 못합니다. 어쨌든 떠나라! 이 명령을 받고 그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납니다. 떠나는 아브라함 에게 두 가지 약속을 해주십니다. 그 때까지 자식이 없었
습니다. 하 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게 아 들을 주겠다. 그리고 그 아들을 통 해서 계계승승 번창하면서 큰 나라 를 이
룰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또 하나는 지시할 땅을 주시겠다 땅 의 기업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 다.
이 두 가지, 아들을 주신다 땅 을 주신다 하는 말은 신학적으로 매 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
니다. 왜냐 하면 아들을 주신다는 말은 시간적 인 축복이요 땅을 주신다는 것은 공 간적인
것입니다. 그래 아주 상징 적인 중요한 의미를 가진 두 가지 복을 아브라함에게 주시고 복
을 약 속으로 주십니다. 이건 미래적인 것입니다. 이 약속을 믿고 아브라 함은 고향을 떠납
니다. 정말 떠난 후에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이 땅을 너와 네 후손에게 주마"
이제 땅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지정표도 없고 땅문서도 없습니다. 어쨌든 네가 지금 누운 이
땅, 네가 있는 이 땅을 너와 네 후손에게 준다, 말 씀하셨습니다. 거기에 거처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신 땅에 거하면 평안하고 풍년이 들어야 될 거 아닙 니까. 그러나 이상하게도
하나님이 주시는 이 땅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는 이 땅을 끝까지 지키지를 못하 고 그는
애굽으로 피난을 갑니다. 식량을 구하러 가게 됩니다. 여기 서 아브라함의 선택이 일단 실수
하 게 됩니다. 그래 신학자들 가운데 는 그렇게도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이렇게 함으로 해서
그 백성이 후손 들 가운데에 애굽으로 가서 고생을 하는 일이 생겨야 했다고 말합니다. 또
한가지는 자식을 주신다고 했는 데 10년을 기다려도, 그 십년이라니 참 긴 시간입니다, 자식
이 태어나질 않습니다. 점점 나이는 먹습니다. 그래 그는 편법을 써서 이스마엘이 라고 하는
서자를 얻게 됩니다. 하 나님께서는 이것을 책망하시면서 그 건 아니라는 겁니다. 자 이렇게
세 월이 흐릅니다. 이제 창세기 17장 에 보면은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십니다.
"내년 이 때에 네가 아들을 낳으리 라"
이제 이 말씀을 들은 지가 25년 입니다. 자기 나이 벌서 100세가 가까웠습니다. 이 기막힌
시간에 와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년에 아들을 낳으리라"
어떻습니까? 이렇게 말씀할 때
"오 하나님, 할렐 루야 아멘"
뭐 이래야 하는 거 아닙 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럴 수 없었어요. 나이가 많았거든요. 자
기 아내가 단산한 것도 알아요. 그 러기 때문에 창세기 17장 17절에 보 면 엎드려 웃었다고
그랬어요. 아 브라함이 엎드려 웃었어요. 이거 참 하나님 웃기시누만, 뭐 그런 거 예요. 좋아
서 웃은 게 아니에요. 믿을 수가 없어서, 기가 차서 웃은 거예요. 그리고 중얼거렸어요.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90세니 어찌 생산할 수 있으 리요."
당연한 얘기죠. 나는 여기 서 한 가지 생각하고 싶은 것은요 아들을 기다리면서도 아들 주
신다는 이 말씀에 더구나 이는 시한부예요,
"내년에"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여기 서
"아멘"하지 못했다는 거예요. 이렇게 웃고 있는 아브라함, 이 좀 미안하지만 나 같으면요,
내가 하나 님이라면요
"너 왜 믿음이 없냐? 약속 취소다"
그럴 거 같아요. 그 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아요. 나 약함을 알고 아브라함의 그 부족함 을
다 이해하시고
"네가 웃었느니 라. 그러나 아들은 낳을 것이다."
참 좋으신 하나님이에요, 참 고마우 신 하나님이요. 그래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지 못해서
그 약속의 성 취를 전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 허물을 하나님이 다 덮어주셨어 요. 여
기서 우리는 생각해야합니다. 항상 소원도 있고 기대가 있어요. 엑스펙테이션(Expectation),
대망이 있어요. 그러나 이 약속이 현실적 으로 나타나는데 대해서 믿음이 없 어요. 구체화되
고 역사적 사건으로 나타난다고 할 때 이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약함이 있어요. 더구나 나
를 통해서 역사한다고 할 때 허물 많고 부족한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고 할
때 그것을 그 대로 수용하지 못하는 결점이 있습 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있습니다. 데이빗
J. 리버만(David J. Lieberman)이라고 하는 분이 요새 재미있는 책을 써서 온 세계에 베스
트셀러가 되고 있습니다. 전전 주 일에 제가 브라질 여행을 하면서 이 책을 시간을 얻어서
정독을 해 보았 습니다. 참 재미있는 책이에요
"나 에겐 분명 문제가 있다"
그런 책이 에요. 영어로는
"인스턴트 아날리 시스(Instant Analysis)"라고 하는 책인데 이 책 가운데는 참 가짓수도 많
아요. 나에게 문제가 있다, 일흔 일곱가지. 일흔일곱가지를 지적해 놓았는데 가만히 생각하
면 일리가 있어요. 다 나와 관련이 있는 얘기 입니다. 내게 향한 얘기입니다. 그 첫 장에서
"후 미(Who me)?"
그럽 니다. 내가 누구냐? 그리고 일흔 일곱가지를 다 설명할 시간은 없고 첫 번째가 뭔가
보세요. 첫 번째가 이렇습니다. 다른 사람이 실패할 때 은근히 나는 즐거워한다. 그래 요 안
그래요? 이건 문제가 있는 거예요. 또 마지막 일흔일곱번째는 뭐냐하면 틀렸다는 것을 알면
서도 주장을 바꾸지 않는다, 이게 재목이 에요. 잘못된 걸 알면서도 생각을 고치려고 하질
않아요. 익숙한 것 에 매여서 생각을 돌이키질 않아요. 그게 망조죠. 자 우리는 깊이 생각
해야돼요. 늘 소원합니다. 소원이 있어요. 소원이 현실화되어야 되는 데 소원은 항상 소원대
로 두려고 해 요. 결정적인 허물입니다. 나에게 문제 있는 것이죠. 이스라엘 백성 은 보세요.
메사아니 에스펙테이션 (Messiah Expectation), 메시아 대 망사상, 그건 이스라엘 신앙의 핵
심 입니다 이스라엘 믿음의 중심입니 다. 예수님을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메시아를 기다렸습
니다. 그 장소와 시간 생각하며 기다렸습니다. 그래 서 그들은 장소, 어 베들레헴에 나 실
거라고. 다 알고 있었어요. 그 래 어떤 사람들은 베들레헴에 가서 살았다지 않습니까. 그렇
게 간절히 기다리다가도 진작 메시아가 왔다 하니까 안 믿어요. 이게 인간의 결 정적인 허
물입니다. 그것도 예루살 렘 그 누가 이 이야기를 하는 게 아 니고 멀리 있는 동방박사가
찾아와 서 '여기에 메시아가 났을텐데 어디 에 났을까요?' 저들은 성경을 연구 했던 대로 '
베들레헴입니다' 그래요. 베들레헴이라고 해서 동방박사들은 베들레헴으로 가게하고 난 그
다음 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요. 예루살렘 은 소동을 했다 그랬어요. 메시아 가 났다는데 소동
을 하기만 하고 한 절이 빠졌어요. 내가 답답한 건 그 거예요. 소동하고 수만 명이 베들 레
헴으로 갔다, 그렇게 기록되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왜 그 말이 없 어요? 소동하기만 하고
베들레헴으 로 간 사람이 없어요. 엉뚱하게 헤 롯왕은 메시아가 났다는 말만 듣고 당장 죽
일 생각만 해요. 예수가 와 서 역사 할 때 모두가 예수를 메시 아로 보고 있는데 당시의 종
교 지도 자 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 이런 사람들은 결국은 예수를 영접하지 못하고 그들의
손으로 예수를 십자 가에 못박아 버려요. 왜요? 현재 에 안주하려고 기득권을 양보하고 싶
지 않아서. 오늘 내가 가지고 있 는 생각을 고치고 싶질 않아요. 메 시아는 기다리면서도 오
신 메시아는 영접하고 싶지 않아요. 이것이 모 순이요. 여기에 아이러니가 있다는 말입니다.
신학적으로 설명하면은 프라미스 앤 풀필먼트(Promise and fulfillment) 이렇게 말합니다. 약
속 이 있고 성취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약속은 약속대로 그대로 소망하고 싶어요. 성
취를 믿지 않 아요.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이에 요. 약속은 성취해야 되고 성취, 바 로 거기
에 신앙의 뿌리가 있어요. 약속의 성취를 믿지 않는 그리고 약 속을 약속대로만 마치 멀리
바라보 는 무지개처럼 믿고 싶어하는 감상 적이고 관념적 신앙에 문제가 있다 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나다나엘이라는 사람은 그런 점에서 훌륭한 믿음을 가졌습니다. 이 사람
의 믿음을 보 세요. 이 사람은 구약성경을 아는 사람이요 모세의 율법을 알고 모세 의 율법
을 통해서 메시아가 오리라 는 것까지도 알고 있는 사람이요. 전이해가 있고 상당한 지식이
있어 요. 그러나 오늘 성경 자세히 보면 재미있는 부분이 하나 있어요. 자 기 친구가 찾아와

"내가 메시아를 만났다",
"어디?",
"나사렛."

"그래, 그렇구만. 아 감사하다. 우리 마을 에 메시아가 났다며?"
이렇게 받아 들여야겠는데 이 사람 한다는 소리 가
"나사렛에 무슨 선한 것이 나겠 느냐?"
설사 선지자가 와도 우리 동 네는 아니다 이거예요. 절대로 우 리 이웃은 될 수가 없다. 이
렇게 일축해 버립니다. 이게 무슨 막말 입니까? 이런 잘못된 지식이 있어 요. 그런데 일단은
부정했다가도 거절했습니다만은 그 친구가 말하기 를
"내가 만났다"
그럽니다. 내가 공부한 게 아니고 내가 발견한 것도 아니고 내가 만나 보았다 할 때에 나다
나엘은 지금까지 생각했던 성경 적 지식, 자기가 생각하는 편견, 자 기의 전이해 이런 생각
을 다 버리고 논리적인 생각과 지식적 방법을 버 리고 그는 이 시간에 만남이라고 하 는 방
법으로 진리추구 방법을 바꿉 니다. 만남이란 종합적인 시기입니 다. 만나지 않는데 문제가
많아요. 일대일로 인격과 인격이 만날 때 이 런 이론의 문제가 아닙니다. 모든 이론을 다 초
월할 수 있습니다. 그 래서 예수를 만나기 위해서 그가 예 수님께로 옵니다. 더 재미있는 것
은 이 온다고 하는 액션, 행동이 중 요한 거예요. 의심도 많아요, 생각 도 많아요, 일단 믿음
이 가지 않아 요. 하지만 예수님께로 나옵니다. 행동, 이 행동적 신앙 적극적 신앙 입니다.
또 있습니다 나아오는 나 다나엘을 예수님께서 보시고 말씀하 시기를
"이 사람은 참 이스라엘 사 람이다"라고 말합니다. 나다나엘이 묻기를
"어떻게 저를 아십니까?"
예수님 말씀하시기를
"네가 무화과 나무 아래에 있을 때 내가 보았다. 네가 내게 오기 전에 내가 너를 먼 저 보
았다"
고 말합니다. 이 한 마 디에 나다나엘은 그만 꿈뻑하고 맙 니다.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 요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하고 신앙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
럼 왜 이것이 이렇게 중요했더냐 이거죠. 이 한 마디가. 이스라엘 사람들은 경건한 이스라엘
인은 당시에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합니다. 아무리 바쁜 일을 하다가도 시간으로 말하면 9 시,
12시, 3시, 세 번만은 딱 멈추고 조용히 기도합니다. 무화과나무 아 래서 명상하며 성경을
생각합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그런 시간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멀 리서 벌써
보았습니다. 저기에 경 건한 사람이 있다고. 그리고 오늘 여기서 만나는 거거든요. 이제 보
세요. 이렇게 생각하면 어떻습니 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 다나엘아 내가 너 술집에 앉아서 노 닥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러면 어떻 게 되겠습니까? 그럼 얘기는 달라 집니다. 나다나엘에게도 여러 가지 생활이
있습니다. 잠 잘 때도 있고 밥 먹을 때도 있고 죄 지을 때도 있 고 예배드릴 때도 있고 기
도할 때도 있고 잘못된 길로 갈 때도 있어요. 그러나 그 생애 전부 묻지 아니하시 고 나다
나엘로 말하면 경건의 절정 이요, 경건의 피크요, 가장 경건하고 가장 거룩한 그 시간, 예수
님이 보 셨다는 겁니다. 나다나엘의 입장에 서 보면은 나의 진실을 알아주시고 나의 경건을
알아주시고 나의 이 부 족한 믿음을 알아주시는 그 분을, 그 분에게 그만 감격하고 맙니다.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나를 믿 어 주셨다는 것이죠. 나를 찾아주 시고 나를 이미 알고
계신다는 거 죠. 나를 벌써 아시는 분에게 내가 신앙을 고백하게 됩니다. 특별히 참 이스라
엘이라고 말합니다. 여러 분 아시는 대로 이스라엘이라는 것 은 야곱을 지칭합니다. 야곱은
복 받을 수 없는 사람으로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적극적이요, 축복을 가 져갈 만 하고 한
평생 축복을 위해 서 노력한 그런 노력형입니다. 너 는 진짜 이스라엘이다, 라고 말합니 다
적극적 신앙을 말하고요. 이제 그는 고백합니다.
"당신은 왕이십 니다. 당신은 메시아입니다. 당신 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하고 고백 합니
다. 이제 그는 만족합니다. 이 한 마디로 그는 완전히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고 맙니다. 영국
의 래클 경이라고 하는 분이 음악을 하시는 분으로서 일년에 한 번씩 메시아 곡 을 늘 교회
에서 연주를 했습니다. 헨델의 메시아 곡을 지금 연습하고 있을 때 그 연습 중에 여러분 아
시 는 대로 그 할렐루야 합창곡이 아주 웅장하게 나오죠. 이걸 연습하고 나서 바로 이어서
거기에 소프라노 아리아가 나옵니다. 내 주는 살아 계시고……. 소프라노 가수가 유창 하게
아주 잘 불렀습니다. 박자도 음정도 훌륭했습니다. 모든 합창대 원들은 잠깐 쉬면서 이 아리
아에 귀 를 기울이고 감탄했습니다. 그러나 부르는 도중에 지휘봉을 딱 멈추고 래클경은 말
했습니다. 당신, 내 주 는 살아 계신다는 것을 믿느냐, 하 고 물었습니다. 가수는 깜짝 놀라
서 다시 생각하며
"예, 주님께서 살 아 계심을 믿습니다."
신앙을 다시 고백하고 다시 불러, 다시 부르게 될 때 얼마나 많은 감동을 받았는지 모든 사
람이 눈물로 감격하며 그 아 리아를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크리스마스는 2000년 전 이야기를 가지고 오늘 기념식 하는 거 아닙니다. 내 주는
살아 계십니 다. 오늘 여기에 살아 계셔서 나와 함께 하십니다. 그 분을 만나고 그 분에게
신앙을 새롭게 고백하는 그 것이 성탄의 기본입니다. 그 고백 속에서, 내 주는 살아 계심을
내가 확증하는 가운데서 내가 새로워지는 것이올시다. 우리는 소원은 있어요. 그러나 성취는
믿지 않아요. 믿는 다 믿는다고 하지만은 내 현실 속에 내 구체적인 생활 속에 나와 함께
하시는 약속의 성취를 믿는 그러한 믿음이 없고 항상 추상적이고 관념 적인데 거기에 문제
가 있다는 말입 니다. 독일의 시인 릴케가 본래 믿 음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만은 중 년에
서부터 예수를 믿고 참 깊은 신 앙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의 시 중에 이런 말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내 눈을 감겨주십시오, 그래도 나 는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내 귀 를 막아주십시오, 그래
도 나는 당신 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발이 없을 지라도 나는 당신께로 가고 있 습니
다."
이것이 신앙인의 체험입 니다. 재미있는 얘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나폴레옹 황제가 부관과
같 이 두 사람이 어느 시골에 있는 조 그마한 여관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됩니다. 이제 나폴
레옹 황제는 변 장을 하고 평민처럼 이렇게 또 부관 은 친구처럼 둘이서 호텔에서 하룻 밤
을 자는데 그날 저녁에 식사를 하 는데 식사를 잘 시켜서 있는 대로 좋은 식사를 하고 식사
끝에 웨이터 가 14프랑이라고 하는 많은 돈 계산 서를 가지고 왔습니다. 나폴레옹 황제가
"어 이 돈은 내가 내지"
그 러면서 계산서를 받아들고 손을 주 머니에 넣어 봤는데 지갑을 가져오 지 않았습니다.
돈주머니가 없어요. 그래 당황하니까 옆에 있는 부관이
"제가 내지요 뭐."
그런데 그 사람 도 주머니에 돈이 없어요. 두 사람 다 돈이 없어요. 그러니까 부관이 정중하
게 말하기를
"대단히 죄송합 니다 만은 지금 두 사람 다 지갑을 가져오지 못했는데 정확하게 한 시 간
후에 돈을 갖다 드리겠습니다. 좀 이해해 주세요."
그러니까 웨이 터는 그런 대로 이해하는 거 같은데 그 호텔 주인이 나와 가지고 야단야 단
하는 겁니다. 돈도 없는 사람들 이 비싼 음식을 먹고 돌아다닌다고. 정신없는 놈들이라고 욕
을 욕을 합 니다. 오늘 당장 내라고. 그 부관 이 하도 정중하게 사과를 하고
"한 시간 후에 꼭 갖다 주겠습니다."
그 웨이터가 가만히 보니까 믿음이 가요.
"보자 하니 그렇게, 이 이렇 게 거짓말할 분들은 아닌 거 같은데 이해하십시오"하다가 정
주인이 말 을 안 들으니까 이 사람이 웨이터가 자기 돈을 냈어요. 14프랑을 내고
"먼저 가십시오."
그래서 손님들을 보냈습니다. 한 시간 후에 부관이 다시 왔습니다. 돈을 내주고 주인 보고
하는 말이
"이 여관 얼마면 살 수 있겠소?",
"이거 제가 얼마 전에 3만 프랑을 주고 샀는데요",
"좋아 요, 여기 3만프랑 있소. 이 집문서 를 내 놓으시오"
그래 그 호텔을 사 가지고 그 자리에서 당장 웨이터에 게 주었어요.
"이제부터 이 집은 네 거다. 너는 나를 믿어주었다. 그것으로 나는 이만큼 기뻤다."
여러분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오 십니다. 오셨습니다 사랑하십니다. 믿어달라고 말씀하십니
다. 임마누 엘을 믿어달라고. 그런데 아무도 믿지를 않습니다. 믿는 자에게 하 나님의 자녀
가 되는 특권을 주십니 다. 모든 편견, 고집 다 버리고 목 적과 방법도 중심을 바꿔야됩니
다. 그리고 내 보좌를 그리스도께 양보 해야 됩니다. 그를 주(主)로, 그를 왕으로 모시고 살
아 계신 그리스도 를 믿게 될 때 하나님의 자녀된 특 권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