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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자유인! (요 8:31-38)

by 【고동엽】 2022.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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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자유인! (요 8:31-38)

 

러시아의 문호 도스또예프스키의 작품 가운데 '대 심판관'이라고 하는 유명한 명작소설이
있습니다. Great Inquisitor 라고 하는 소설입 니다. 그 내용 가운데 다시 세상에 오신 예수
님을 체포하고 대 심판관 이 여기서 예수님의 잘못을 지적하 는 그런 내용으로 장면이 전개
됩니 다. 심판관의 말속에 이런 말이 있 습니다.
"너는 인간을 너무 존귀한 존재로 과대평가하고 있다. 인간이 란 바로 유치한 아이와 같아
서 권위 와 기적으로 영도되기를 바라고 있 다. 인간들에게 빵을 주었다면 너 는 쉽게 성공
했을 것이다. 인간은 빵만 쥐어주면 누구에게나 복종하는 데 어째서 자유가 무슨 가치가 있
단 말이냐? 인간에게 자유를 주어도 결국은 그 자유를 발아래 내동댕이 치고 다시 노예로
삼아 달라고 애걸 복걸할 것이 뻔한 일이다"하고 말합 니다. 아주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사
람들은 빵만 주면 누구에게나 순 종한다. 자유를 주었댔자 그 자유 의 소중함을 모르기 때
문에 바로 다 시 또 다른 어떤 것에 스스로 노예 가 되어버리고 만다. 인간은 근본 적으로
노예성이 있는 구제불능한 인간이라고 고발하는 그런 내용의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
은 스스로 얼마나 자유 하다고 생각하 십니까? 얼마나 스스로 자유를 누 린다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정치적 인 자유,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그 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경제적
자유입니다. 가난한 자는 자유인이 아닙니다. 한 그릇의 빵을 위해서 양심을 팔아야 되니까
요. 또 지식 의 자유가 없는 자도 자유가 아닙니 다. 우스운 얘기입니다 만은 제가 오래 전
에, 아주 오래 전에 대만을 처음 갔을 때, 좀 거리를 구경하고 싶어서 혼자서 이 골목, 저
골목 다 니다가 배가 고파서 식당을 찾아 들 어갔는데 내가 중국말 모르지요, 그 사람이 한
국말 모르지요, 내가 영어 를 하지만은 저 사람 영어 모르지 요, 말이 전혀 안 통하는 겁니
다. 그 뭐 메뉴, 차림표라고 가지고 왔 는데 빨간 글씨로 맨 중국말만 썼는 데 그거 하나도
모르겠어요. 자 이 거 먹기는 해야겠고, 정말 정말 답 답하더만요. 그래서 할 수 없다, 거 기
에 있는 분을 소매를 끌고 가서 남 먹는 걸보고 저 사람 먹는 것 좀 달라고 손짓, 발짓해
가지고, 그래 한끼 얻어먹고 나온 일이 있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 다는 거, 지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거 얼마나 답답한 건 지, 뭐 감옥이 따로 없습니다. 이게 바로 부자유라는 것이죠,
자유 함이 없는 것이에요. 그런데 이 보 다 더 무서운 것은, 내가 얼마나 비 참한 노예적 상
황에 있다는 것을 자 기가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 치 아픈 줄 모르는 병이 죽는 병인
것처럼 이렇게 자기가 얼마나 지금 구제불능한 노예상태에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거예
요. 그런데 오 늘 본문성경에 보면 예수그리스도께 서 자유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바로 그
유대인들을 향해서 정면적으로 아주 직선적으로 저들의 어리석음을 꾸짖는 그런 내용이 있
습니다. 저 들은 정신적으로, 문화적으로, 도덕 적으로, 신학적으로 철저하게 노예 상태에 있
었습니다. 아주 불쌍한 정도로. 그들의 철저한 노예상을 예수님께서 지금 지적하고 있는 그
런 모습입니다. 유대사람들이 말합 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후손이다. 노예 된 적이 없거늘 우리를 어째서 자유케 한다고 하느냐?"
이 얼마나 웃기는 소리입니까. 아 애굽에서 400년 동안 노예생활 했잖아요, 바 벨론 70년 포
로생활도 했잖아요. 아, 역사 속에 노예생활 한 것이 얼 마나 많은데, 우리는 자유인이다, 노
예 된 적이 없다, 이건 허상이고요 또 자기 자신, 벌써 선민의 협소한, 스스로의 민족 우월
감에 빠져있고 문화적으로, 정신적으로, 노예적이에 요. 아주 비참할 정도의 노예생활 을 하
고 있는 것이고 더 중요한 것 은 신학적 문제입니다. 율법주의의 노예가 되어서 그 결과로
외식주의 자들이 되어서 많은 종교 예식과 함 께 허상, 거짓, 위선에 빠져 있잖아 요. 그 율
법에 매여서 벌벌 떨고 살고, 그 많은 계율에서 노예가 되 어 사는 그 비참한 모습, 자기들
이 모르고 있는 거예요. 그 뿐입니까? 기득권에 대한 아집입니다. 예수를 영접할 수 없는 것
이에요. 자기 지 금 현재에 있는 이 자기 처지, 바로 여기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 를
영접할 수가 없었고 마침내 예수 를 십자가에 못박게 됩니다. 자기 고집, 자기라고 하는 그
런 집착성, 여기에 매여있습니다. 이 기득권을 양보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 소 중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저들은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자기가 얼마나 비참한 건지 자기 스
스로 모 르고 있습니다. 때로는 좀 알지요. 깨닫기도 하고, 보기도 하고 예수님 의 이적 기
사를 옆에서 보았습니다. 더욱이 상당한 깨달음도 있었습니 다, 느낌도 있지만은 그러나 자
기 현재의 처지에서 물러서고 싶지 않 아요. 그래서 메시아를 영접하지 못하고 마침내 회개
없이 예수를 십 자가에 못박는 엄청난 죄를 범하게 됩니다. 자 이 사람들이 자유인입 니까?
엄청난 죄악의 노예상태에 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는 자유인이다', 이게 얼마나
한심한 일입니까?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얼마나, 얼마만에 자유를 누리고 있 습니까?
오늘 본문 가운데는 예수님께서 대단히 중요한 전제를 내 놓습니다.
"자유 문제는 죄 문제다"
이렇게 결 론을 짖습니다. 정치·경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죠. 이거는 교육의 문제도 아니
요, 자유의 문제는 바로 죄 문제라는 것이죠. 죄를 짓는 자 마다 죄의 종이 되니까요. 이것
은 잘 살고, 못 살고의 문제가 아니에 요.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잘 살고, 못 살고는 얘기하
지 맙시다. 좀 제 대로 바르게 사는데 문제가 있는 거 예요. 바르게 사는 자유를 잃어버 린
거예요. 어떤 사람이 셋방살이 로 이리저리 다니면서 사니까 한평 생 소원이 제발 좀 내 집
쓰고 살았 으면 좋겠다. 그러면 이사 안 할 수 있으니까 좀 자유롭게 신앙생활 을 할 수 있
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어찌어찌 해서 집을 하나 마련했어 요. 너무 좋아요. 그 때에 그 만
족 한 마음은 비교할 수가 없어요. 그 러나 바로 몇 달 안돼 가지고 '집이 왜 이렇게 작아?
남의 집들은 크더 만, 이게 요렇게 조그매 가지고 답 답해서 살수가 있나.' 좀 큰집, 좀 큰
집이 있어야 자유롭겠다고 몸부림 을 쳐서 또 애써서 큰집을 마련했습 니다. 좀 무리하게
하고 나니까 이 젠 집이 커서 좋다, 했더니요 청소 하는 게 힘들더랍니다. 또 그런가 하면
집이 크다보니까 작은 집 쓰고 사는 사람들 친구들 만날 때마다 이 거 돈도 없는 사람이 집
만 큰 거 가 졌다고 하는 거 비난하는 거 같아서 이거 또 따가워요. 마음이 좋지 않 아요.
그런가 하면 밖에 나갈 때마 다 도둑놈 들어 올까봐, 밤에 잘 때 마다 아무 것도 없는데 집
이 크니까 강도 들어 올까봐 걱정이 되어 가지 고. 심지어는 누가 찾아 올까봐 교 회도 못
나가요. 집을 비울 수가 없어서. 자 자유는 어디로 갔습니 까? 차라리 문단속 안 해도 될 만
큼 살 때가 좋았는데, 그렇게 생각 했다는 거죠. 참 자유라는 것은 그 것은 경제문제도 아니
요 정치문제도 아닙니다. 지위와 명예도 아닙니다. 죄의 문제입니다 죄. 죄를 짓는 자 마다
가책에 매이죠, 양심의 가책. 또 저주의식에 매입니다. 죄를 짓 고 사는 사람은요 감기만 걸
려도 죄 때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조그만 자동차 접촉사고만 나도 하나님이 나를 저주하
신다고 생각합니다. 벌 벌 떨면서 이렇게 살아가야 합니다. 어디 자유가 있다는 말입니까?
또 그런가 하면 죄의 노예가 되었기 때 문에 죄를 반복하는 죄를 짓습니다. 죄에 끌려서 또
다른 죄, 또 다른 죄를 지을 수밖에 없어요. 이 얼마 나 비참한 것입니까? 죄의 영향을 받아
서 성품도 파괴되고 맙니다. 그래서 거짓되지요, 변명의 사람이 되지요, 남을 원망하고 불평
하는 사 람이 되지요, 무능한 사람, 무지한 사람, 그리고 아무 것도 없으면서 속에 쓸데없는
교만만 남았어요. 이러한 인간, 정말 살고싶지 않은 그런 비참한 인간이 되는 거예요. 죄의
값은 사망이니까요. 그렇다면 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자유함의 근본이에요. 돈 벌어 자유
하는 거 아니에요. 출세해서 자유하는 거 아닙니다. 오직 죄로부터 자유할 때만이 내 영이,
내 인격이 자유하 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또 소중한 진 리를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것 은 자유케하는 일에 대
해서 말씀합 니다. 어떻게 해야 자유함을 얻을 수 있느냐하는 거지요. 이에 대해 서 자세하
게 비결을 가르쳐 줍니다.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그랬어 요. 이게 비결입니다. 주님의 말씀 을 영접해야 되고, 주
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야 되고, 주님의 말씀을 많 이 깨끗한 마음으로 수용해야 되요. 그리할
때 나도 모르게 어느 사이에 진리를 알게 되요. 진리를 알게 되 면 이제는 진리가 나를 자
유케 하는 것이에요. 주의 말씀을 받아들여야 됩니다. 그런데 바리새 교인과 서 기관들, 예
수님이 그렇게 귀한 말씀 을 전하는데 받아들이지 않아요.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가
없 어요. 너희 마음에 내 말이 거할 곳이 없다고 말합니다. 욕심과 시 기 질투로 가득차 있
으니 주님의 말 씀이 들어갈 곳이 없어요. 그래 하 시는 말씀이예요. 내 말이 너희 안 에 거
하면 진리를 알게 되고, 진리 를 알게 되면 너는 자유케 되리라. 말씀이 내 안에 밀려올 때
내가 매 여있던 이 많은 쇠사슬이 다 풀려나 는 것이예요. 그걸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유명
한, 여러분 잘 아시는 지미 카터가 The Virtues of Aging 이라고 하는 책을 써서 여러분
다 읽어보신 줄 압니다. 제가 언젠가 도 한 번 말씀을 드렸는데 그 책 중 에 이런 말이 있
습니다. 기자가 묻 기를
"당신은 대통령도 했고, 세계 를 호령하면서 여기저기 큰 일도 많 이 하고 했는데 참 많이
행복한 날, 가장 즐거웠던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한평생 지내오면서 최고의 때가 언제
였습니까?"라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지미 카터의 유명한 말은 이렇습니다.
"바로 지금입니다."
다 그만두고, 다 은퇴하고, 지금 농촌에 있지마는 바로 지금이 가장 행복하 다고. 왜? 가장
자유로우니까. 이 제 아무 걱정도 없어요. 아무 미련 도 없어요. 내 영혼이 가장 자유롭 기
때문에 지금 이 시간이 가장 행 복한 시간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반생을 살아오면서 그 언제가, 언제 가 가장 최고의 해였습니까? 어떻 게 되면
최고의 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가장 위대한 사람의 고백은 이겁니다. 바로 지금
이라고. 지금은 내 영혼이 온전히 자유하고 있으니까 이 시간이 가장 행복한 것 이라고 이
러한 고백이 아쉽습니다. 진리를 알아야합니다. 아는 문제입 니다. 진리를 깨달아야합니다.
진 리를 깨달을 때에 그 속에서 내 가 치의 존재를 찾고, 삶의 의미를 찾 고, 내게 주어진
약속의 땅을 바라 볼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 진리를 알기 위해서는 주님의 말씀을 내가 받
아들여야 됩니다. 순수한 마음으 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야 됩 니다. 그러면 이제는 진
리가 너를 자유케 하리라. 여러분 내가 스스 로 자유할 수 없는 것입니다. 생각 해보세요.
내가 물에 빠져서 이제 홍수에 떠내려간다고 합시다. 내가 내 머리카락을 내 손으로 추켜올
린 다고 해서 물에서 빠져 나올 수 있 는 겁니까? 몸부림 쳐봐야 아무 소 용없어요. 이젠
적어도 이건 알아 야지요. 내 노력, 내 수고, 내 의지 로서는 불가능한 것이요. 이제는 주님
의 말씀이 나와 함께 하는 길 외에 자유케 될 수 있는 길이 없습 니다. 특별히 여기에는 중
요한 신 학적 문제가 있습니다. 예수님 다 시 말씀하기를
"아들이 자유케 하면 자유하리라"
간단한 말씀이요, 우주 적인 진리입니다. 예수그리스도 메 시아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 희를 자유케 하면 비로소 자유하리 라."
무슨 말입니까? 예수께서 우 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셔서 우리로 사망과 죄로부터 자
유케 하 실 것을 말씀하는 겁니다. 그 약속 입니다.
뉴욕에 브르클린에 플림마우스 (Plymouth)라고 하는 교회가 있는 데 여기에 1928년에 있었
던 이야기 입니다. 어떤 할머니가 예배 끝났 을 때쯤 되서 손을 들고
"목사님 죄 송하지만 딱 한번 마지막으로 부탁 하는데 저 강단에 나가서 간증 좀 하게 해
주세요"
그 너무 간절해서 허락을 했어요. 이 할머니가 이 강 대상에 올라와서 조심스럽게 이야기
합니다.
"지금 제가 이야기하는 것 은 68년 전 이야기입니다"그래요. 68년 전 날짜까지 자세하게 기
억하 고 있습니다.
"1860년 9월 19일, 그 날은 주일날이었습니다. 저는 이 교회당 바로 마당에서 거기서 노예
시장이 열렸는데 저는 노예로 팔려 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경매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딴 곳으로 노예로 팔려 가는 모습을 보 면서 나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 다. 나
는 지금 어디로, 어떤 집으로 팔려가게 되나, 내 운명은 어떻게 되나, 초조하고 벌벌 떨고
있을 때, 방금 이 예배를 마치고 이 교회에서 나오는 목사님이 나를 붙들고 800불 을 주고
나를 사서 그 시간에 나를 자유하게 해 주었습니다. 듣자하니 그날 우리가 어찌할 수가 없
지만은 우리가 오늘 헌금을 해서 노예 한 사람이라도 자유를 줍시다, 해서 헌 금한 돈을 가
지고 저를 사서 풀어주 어서 내가 자유인이 된 것입니다. 저는 그런고로 이 교회를 떠날 수
가 없었습니다. 68년 동안 이 교회에 출석하며 이 교회를 위해 기도하며 이렇게 한 평생을
살았는데 이제 내 가 나이 많아서 죽을 때가 가까왔기 에 이 말을 꼭 하고 가야겠기에 말
씀을 드리는 겁니다. 여러분 노예 가 스스로 자유할 수 있습니까? 팔 려 가는 노예가 자유
할 수 있습니 까? 정욕과 죄와 시기, 질투, 저주 로 지금 완전히 노예된 인간이 스스 로 자
유 할 수 있습니까? 예수그리 스도께서 값을 치러서 대신 십자가 를 지심으로 그리고 그를
믿음으로 해서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가 되고 다시 하나님의 자녀가 될 때, 오늘 말
씀대로 아들에게만 자유 함이 있어요. 노예는 자유가 없어 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순간에
그로부터 자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국의 학자인 아이자야 베를린 (Isaiah Berlin)이라고 하
는 분은 Four Essays on Liberty라고 하는 책에서 이렇게 자유를 두 가지로 나 누어 설명
합니다. Negative Liberty, 소극적인 자유가 있고 Positive Liberty, 적극적인 자유가 있다.
그런데 소극적인 자유는 어 떤 간섭이나 억압으로부터의 자유, 여기서 벗어나는 자유, 그런
고로 Freedom from Something, 그러한 자유가 있고요. 또 하나는 Freedom for Something,
무엇을 위 하여 스스로 자기 자유를 버리는 자 유, 거기에 진정한 자유가 있는 것 이다. 무
엇으로부터 벗어나는 소극 적 자유만 가지고는 자유하지 못합 니다. 오히려 나 자신을 선한
일에, 의로운 일에, 사랑에 노예가 될 때 자유할 수 있어요. 미워하는 사람 은 자유인이 아
닙니다. 내가 미워 하는 사람에게 내 자유를 빼앗기고 있기 때문이에요. 용서하고 사랑할 때
만, 사랑하는 자만이 자유인이 되 는거요. 영국의 교육 철학자인 알 에스 피터스(R.S.
Peters)는 Paradox of Freedom이라고 하는 아 주 재미있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 다. 자유
의 역설! 왜요? 큰 자유 를 위해서 작은 자유를 버려야 되니 까요. 작은 자유를 버릴 때에
큰 자유를 얻을 수 있다. 여기에 자유 의 역설이 있습니다. 내 정욕, 시 기, 교만, 이 우스꽝
스러운 자존심, 이 끝없는 욕심, 깨끗이 버려요. 그 리고 주님을 영접할 때만 비로소 참 자
유, 큰 자유, 영원한 자유를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진리를 알지 니 십자가의 진리를 알
고 비로소 그 지불된 값을 할 때, 나 자신이 하나 님의 자녀로 소중한 존재로 발견됩 니다.
나는 진리의 노예가 되고 진 리는 나를 자유케 할 것입니다. 나 는 그리스도의 종이요, 영원
한 노예 로, 영원한 사랑의 노예가 될 때 비 로소 여러분은 자유인이 될 수가 있 는 것입니
다. 이 자유인만이 건강 합니다. 이 자유인만이 행복합니다. 이 자유인만이 창작적, 창의적
능력 이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람만이 21 세기를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의 사람 이 될 수 있습
니다. 내 손에 무엇 이 있던 없던 그거 중요하지 않습니 다. 남이 나를 향하여 뭐라고 하든
말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 영혼 이 자유할 때만이 영원한 자유인이 될 수 있는 겁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얼마나 깊은 수렁 에 빠졌고 얼마나 비참하게 쇠사슬 에 묶여있는지 그것조
차 의식하지 못하고 사는 저희들을 자유케 하신 주님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얼마나 고귀한
값이 주어졌고 나의 자유의 의미가 얼마나 큰 것을 알아서 다시 는 죄의 노예가 되지 않고
물질의 노예가 되지 않고 세상 그 무엇의 노예되지 않은 영원한 자유인으로 그렇게 살아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 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 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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