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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복 받는 길 (신명기 5장 22-29절)

by 【고동엽】 2023. 1. 3.

영원히 복 받는 길 (신명기 5장 22-29절) 1. 위임한 리더를 존중하라

 하나님은 십계명을 주실 때 호렙산 위에서 불과 구름과 흑암 중에 큰 음성으로 전체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르신 후 더 말씀하지 않고 십계명을 두 돌판에 써서 모세에게 주셨다(22절). 율법의 기초인 십계명은 백성에게 직접적으로 주셨고 그 외의 율법은 중재자인 모세를 통해 간접적으로 주셨다. 어떻게 모세가 합법적인 중재자가 될 수 있었는가?

 호렙산에 불이 붙은 것처럼 보일 때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각 지파의 수령과 장로들이 모세에게 나아왔다(23절). 그들은 율법이 주어질 때 나타난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에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하나님을 직접 보거나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으면 죽을 것 같았다. 그런데 하나님과 말씀을 나눴던 모세가 생존하는 것을 보고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 직접 나서서 죽을 이유가 있겠느냐고 했다(24-25절)

 결국 그들은 자신들이 직접 살아계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하기보다 모세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서 들은 말씀을 자신들에게 전해주면 그 말씀대로 듣고 행하겠다고 했다(26-27절). 그때 각 지파의 수령과 장로들이 “나도 리더인데.” 하고 곳곳에서 자기 소리를 냈다면 이스라엘은 콩가루 공동체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 일이 없도록 그들은 모세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겠다고 사실상 모세에게 전체 통치권을 위임했다.

 복된 공동체가 되려면 공동체 구성원이 대표권을 위임한 리더를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 물론 리더가 “내가 리더로 위임받았으니 무조건 내 말을 따르라.”고 독선적이고 명령조로 강요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위임받은 리더는 자발적인 책임의식을 가지고 맡은 일을 감당하고 위임한 팔로워는 자발적인 순종의식을 가지고 기쁘게 리더의 리더십에 순종해야 한다는 뜻이다. 장로나 권사라도 성가대원으로 있으면 성가대장에게 기쁘게 순종하고 해당 년도의 남녀 선교회 회장에게 기쁘게 순종할 때 그 공동체도 복 받고 그 장로나 권사도 더 존경받는다.

 교회의 성가대장, 각 부서장, 남녀 선교회 회장, 지역장 등은 이스라엘 각 지파의 수령과 같은 존재이고 담임목사는 모세와 같은 존재다. 그래서 교회의 각 리더는 기본적으로 담임목사의 말대로 따르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따르기로 했던 ‘모세가 전하는 말씀’은 각종 율법은 물론 사법적인 판단 및 정치적인 시스템과 관련된 결정도 포함된 개념이다. 즉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전권을 모세에게 위임한 것이다.

 담임목사는 교회의 제반 문제에 관한 전권을 위임받은 존재다. 그렇다고 독재적으로 맘대로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더 책임감을 가지고 면밀하게 작은 소리들을 새겨들어야 한다. 또한 사람마다 의견과 지향점과 달란트가 다르고 처한 자리와 위치와 상황도 다르기에 신중하게 기도해서 어떤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을 뚝심 있게 실행하는 결단력과 실천력도 있어야 한다. 그렇게 교회의 전권을 위임받은 존재이기에 온유하고 겸손하고 바르고 사욕이 없는 담임목사를 만나는 것은 인생 최대의 복 중 하나다.

2. 말씀을 듣고 행하라

 이스라엘 각 지파의 수령과 장로들은 모세에게 전권을 위임하면서 “하나님이 당신에게 이르시는 것을 우리에게 전하면 우리가 듣고 행하겠습니다.”라고 했다(27절). 위임한 리더를 존중하라는 말은 결국 그 리더에게 순종하라는 말이다. 리더의 조치가 흔쾌히 수용되지 않아도 일단 순종하라. 하나님은 순종 훈련 자체를 잘 수행하는 태도도 보신다. 순종 훈련은 복된 인물이 되는 기본적인 필수 코스다. 하나님은 작은 일에도 묵묵히 순종할 때 더 큰 것을 주신다. 축복과 성공을 위한 잘 훈련해서 체질화시켜야 할 것이 순종이다.

 만약 리더가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잘못된 길로 가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기본적으로 순종하는 마음을 가지되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이 누가 봐도 명백하면 무조건 그 길로 가지 말라. 그래서 각 지파의 수령과 장로들이 “나쁜 일도 무조건 순종하겠습니다.”라고 하지 않고 “당신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겠다.”고 했다. 리더에게 순종해야 하지만 만약 리더의 지침과 말씀의 지침이 다르면 말씀을 따르라. 아무리 위대한 인물이라도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그를 통해 주어진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

 리더는 자기 우상화를 극복해 자신이 숭배되지 않게 하고 팔로워는 리더를 지나치게 높이지 말아야 한다. 인간의 우상화 극복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 중의 하나가 ‘듣는 귀’다.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비천한 사람을 통해 들리는 말도 겸손히 들으려고 하라. 때로는 자연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진다. 복된 존재가 되려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듣는 귀’를 통해 말씀을 듣고 행하려는 자세다. 듣고 싶은 말만 들으면 점차 무지하게 되고 듣고 싶지 않은 말도 잘 들으면 점차 지혜롭게 된다.

 매월 <월새기(월간새벽기도)>를 교정할 때는 마치 잔소리처럼 약 5백 군데 정도 교정 제안을 받는다. 그때 필자는 “아니! 저자를 무시해?”라고 하면서 상처받지 않는다. 교정 팀원에게 저자를 무시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음을 알기 때문이고 잘 수용하면 그만큼 유익이 되기 때문이다. 그때 4백 군데 정도는 제안을 수용하고 나머지 100군데 정도는 수용하지 않고 원래 표현을 고수한다. 그 100번의 제안이 수용되지 않았다고 해서 교정 팀원도 상처받지 않는다. 저자의 표현을 최대한 존중하려는 기본자세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저자의 절대권을 인정하는 바탕에서 저자와 교정 팀원이 서로를 최대한 존중하며 서로의 얘기를 들어주기도 하고 거부하기도 하니까 매월 교정 시간은 웃음꽃이 넘치는 시간이 되고 그 결과 <월새기>가 조금이라도 더 좋게 된다. 잘 들어서 손해가 없다. 사랑하는 사람의 말을 기분 나쁘게 듣지 말고 기쁘게 들으라. 귀찮은 잔소리도 사실상 필요한 경우가 훨씬 많다. 그 잔소리 때문에 자기 관리를 훨씬 잘하게 된다. 잔소리를 잘 수용하면 대개 손해가 없고 복이 주어지면서 작품 가정과 작품 교인과 작품 인생이 된다.

3. 책임적으로 행동하라

 하나님은 백성들의 순종 선언을 옳게 들으시고 항상 그런 마음을 품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모든 명령을 지켜서 그들과 그들 자손이 영원히 복 받게 되기를 원한다고 말씀했다(28-29절). 이 말씀에서 “항상 그런 마음을 품으라.”는 말씀은 쉽게 마음이 변하지 말고 책임의식을 가지고 말씀대로 행동하라는 뜻이다. 교인과 제자는 어디서 달라지는가? 책임의식을 가지고 사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누가복음 14장 26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그 말씀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하나님 우선순위의 삶을 살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강조한 말씀이지 정말로 가족을 다 버려야 한다는 말씀이 아니다. 믿음 생활을 빙자해 가족을 버리는 행동은 불신자보다 더 못한 행동이다. 가족에 대한 책임의식도 철저히 가지라. 특이하게 구별된 삶을 보여야 영성이 탁월한 것으로 여기지 말라.

 예전에 세상을 떠난 한 유명한 스님은 하나밖에 없는 딸과 평생 인연을 끊고 살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위대하다고 했지만 정작 스님 자신은 그 일을 가장 큰 잘못으로 여겼다. 사람들은 특이하게 보여야 영성이 좋은 것처럼 생각하지만 가정을 버리고 특이하게 사는 것은 영성이 있는 삶보다는 무책임한 삶에 가깝다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일반적인 원리다. 하나님은 성도가 하나님에 대한 책무도 잘하고 사람에 대한 책무도 잘하기를 원하신다.

 책임의식을 가지라는 말은 믿음으로 행동하라는 말이다. 어떤 교인은 술을 끊지는 않고 “끊어주세요. 끊어주세요.”라고 기도만 한다. 어떤 교인은 “몸에 좋으니까 담배를 끊고 싶은데.”라고 소원만 가진다. 어떤 교인은 “전도해야 믿음도 자라는데.”라고 하면서 맞는 말만 한다. 기도만 하거나 소원만 가지거나 맞는 말만 하지 말고 행동에 나서야 하나님께서도 도와주신다. 내가 요단강에 발을 옮겨 놓아야 요단 강물이 멈추고 마른땅으로 변한다. 믿음으로 행동할 때 기적과 변화가 일어난다. 행동하는 믿음과 책임의식은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

 일을 책임적으로 감당하는 삶을 외면하고 기적만 추구하는 믿음은 결코 복된 믿음이 아니다. 각자의 은사로 맡은 직분을 잘 감당하는 믿음이 복된 믿음이다. 성장이 없는 것에 대해 어떤 사람은 “다 제 탓이죠.”라고 말한다. 지혜로운 말이지만 그렇게 말한 후 그냥 있지 말고 성장을 위해 힘써야 한다. 말하는 것이나 듣는 것이나 배우는 것만으로는 성장할 수 없다. 심지어는 기도하는 것만으로도 성장할 수 없다. 어떤 일을 맡았으면 그 일에 최선을 다할 때 성장도 따라온다. 행동이 있을 때 대개 성장도 있다.

< 하나님과 직접 소통하라 >

 본문의 언약이 이뤄진 순간부터 모세에게는 하나님의 대리자와 같은 신적 권위가 부여되면서 합법적인 중재자가 되었다. 그때부터 백성들은 모세의 입을 통해 나오는 모든 말을 하나님이 친히 말씀하신 것으로 인정하고 전적으로 순종해야 했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중재자 모세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제사장 제도와 성막 제도와 같은 시스템이 구축되었고 십계명 외에 수많은 율법들도 제정되었다.

 구약시대에는 모세 같은 중재자가 필요했지만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이 영원한 중보자가 되셨기에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성도는 직접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다. 지금은 모세 같은 신적인 중재자가 필요하지 않다. 신약시대의 목사의 개념은 영적인 안내자(guide)의 개념이지 영적인 중재자(medium)의 개념이 아니다. 성도는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의 거룩한 소통을 직접 이루면서 앞날을 멋지게 개척해나가야 한다.

 기도할 때는 늘 제자답게 기도하라. 하나님은 아무 기도나 다 들어주시지 않는다. 요한복음 15장 7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아무 것이나 기도하면 다 주시지 않고 먼저 주님 안에 거하고 말씀 안에 거하고 하나님의 뜻과 말씀대로 살면 기도한 대로 이뤄주신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열매를 많이 맺을 때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다(요 15:8).

 말씀에 의거한 행동도 없이 기도 응답만 바라지 말라. 기도는 욕망을 채워주는 수단이 아니다. 기도할 때는 “하나님! 환경을 변화시켜주소서.”라고 기도하기 전에 “하나님! 저를 변화시켜주소서.”라고 기도하라. 그런 기도가 선행되지 않으면 기도의 축복을 맛보기 힘들고 수시로 기도하는 삶에 대해 회의에 빠지게 된다. 반면에 회개와 선한 결단을 선행시키는 진실한 기도에는 결코 외상이 없다. 바른 기도는 복된 문으로 들어가는 최대 열쇠다.

 인간적인 욕심을 품고 기도하면 실망도 잘 생긴다. “왜 응답이 없을까? 왜 하나님은 간절히 기도했는데 이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을까?” 그러나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어도 기쁨을 잃지 말고 계속 기도하라. 하나님은 지금도 나와 함께 하신다. 때로 하나님의 사랑의 매가 있어도 그 매는 언제나 내 죄나 실수보다 관대하고 내일을 기약하는 창조적인 매다. 그 매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는 것으로 인해 감사하라.

 내 뜻보다 하나님의 뜻을 앞세워 기도하면 후대까지 지속되는 복의 주인공이 된다. 복은 당대로 끝나지 말고 후대까지 지속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늘 듣고 행하는 마음을 품어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모든 명령을 지켜 영원히 복 받게 되기를 원한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열어 듣고 말씀대로 살 때 조만간 축복의 소낙비 소리도 들려올 것이다. 늘 말씀대로 행하는 삶을 통해 대대로 복 받는 가문의 창시자가 되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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