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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영원 예화모음 20편

by 【고동엽】 2023.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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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주제별 예화모음)

 

▣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솔로몬 왕은 인간 영화와 우생의 극치를 누린 사람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이웃 왕족들이 정치 결혼을 원해서 공주격 처첩이 천 명이고 황금 궁전에 학문적 예술적 위락적 모든 조건을 갖추었었다. 눈이 원하고 입이 원하고 육체가 원하고 마음이 원하는 무엇이나 다 해 보았다. '먹고 즐거워하는 일에 누가 나보다 승하랴'(전2:25)고 말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가 하나님 없는 삶의 전방위 추구의 경험적 결론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된 허무였다(전1:2).

영원과 하나님으로 채워야 할 공간을 유한한 임시적인 대용품으로 아무리 채워도 갈증은 더하기만 하고 만족도 행복도 안식도 없다(전3:11; 12:13). 우리 마음은 우주를 담고도 모자란다. 인간은 우주보다 초월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바다에서 삼천 마일 떨어진 내륙에서 조개껍질을 귀에 대고 들으면 바다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바다소리가 들리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영혼의 귀에 영원과 하나님의 소리가 들리는 것을 막지말라.

-예수칼럼 : 김준곤-

 

 

 
 
 

 

 

▣ 영원한 쉼터

 

우리 부부는 미국 LA 은혜교회 김광신 목사님 내외분과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김목사님은 1년 예산이 50억원이나 되는 큰 교회 목사님이신데 13평짜리 아파트에 살고 계셨습니다. 반찬은 세 가지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막 집회를 마쳤습니다. 지친 사모님이 김목사님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3일만 휴가를 주세요. 강목사님 사모와 둘이 팜 스프링에 가서 쉬고 오고 싶어요”

이 말을 듣고 나는 얼른 받았습니다. “그것 참 좋은 생각이군요. 우리 남자들끼리 일할 테니 가서 쉬고 오세요” 이때 김목사님이 정색을 하고 손가락으로 위를 가르키면서 말했습니다.

“여보. 저 세상에 가면 영원한 휴가가 있는데 왜 이 땅에서 짧은 인생을 낭비하려고 그래요”

지금도 쉬고 싶은 마음이 들 때면 김목사님의 그 손가락이 눈에 아른거립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놀이터로 보내지 않고 일터로 보내셨습니다. 인생을 풍요롭게 누리는 것도 필요하지만 주님이 주신 사명이 우리 삶의 우선순위가 되어야 합니다.

/강문호 목사

 

 

 
 
 

 

 

▣ 포기할 수 없는 영원한 생명

 

토마스 모어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 그의 아내와 자식들은 왕에게 항복하라고 그를 졸랐다.

"우리는 아직도 오랫동안 함께 살 수 있어요. 그런데 왜 당신은 꽃 같은 나이에 당신과 우리 가족에게 가장 비극적인 불행을 가져오려 하십니까?"

이 말을 들은 모어는 이렇게 되물었다.

"당신은 내가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래 살 수 있으리라 생각하오?"

"최소한 20년은 사실 거예요."

그러자 그는 소리쳤다.

"이 땅에서의 20년밖에 안 되는 삶을 위하여, 내가 영원한 삶을 포기하고 고통에 나를 내어 준다면 그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오! 영혼을 잃는 것보다는 그 밖의 다른 모든 것을 잃는 편이 오히려 더 좋은 일이오.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소?"

* 참조: 요일1:2, 요일2:25, 단12:2,7, 요10:28, 12:25

 

 

 
 
 

 

 

▣ 영원히 사는 법

 

최근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해파리가 급격히 늘어가고 있다고 한다. 죽지 않고 영원히 젊게 살 수 있는 생물체가 바다에서 점점 개체수를 늘려가고 있다는 것이다.

해파리의 일종인 '투리토프시스 누트리큘라'는 성적으로 매우 성숙한 단계에 도달한 뒤 다시 강장동물의 기본 체형인 폴립으로 돌아가는 이 과정을 무한히 반복할 수 있다고 한다. 잡아먹히거나 병들어 죽지 않는 한 이론적으로 영생불사 할 수 있는 유일한 생물체라고 한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영원히 살 수 있는 생명체로 만드셨다고 가르친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다시 젊은 육체로 돌아갈 것도 없고, 잡아먹히거나 병들어 죽을 일도 없이 영원히 사는 영적 몸이 될 것이다. 영원히 사는 것은 오랜 인간의 꿈이었다. 영원히 사는 법을 아는 것은 축복이며 인간에게 가장 고상한 지혜다.

/이성희 목사 <연동교회>

 

 

 
 
 

 

 

▣ 영원한 승리

 

승자로 사는 사람과 패자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승자와 패자는 시작부터 다르다. 승자는 넘어지면 앞을 보지만 패자는 넘어지면 일어나 뒤를 본다. 승자는 순간마다 성취의 만족을 경험하고 패자는 영원히 성취의 만족을 경험하지 못한다. 승자는 꿈을 가지나 패자는 욕심을 가진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하는 패배의 자리에 잠시 머물렀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렸고, 예수님을 부인한 잘못에 통곡하며 제자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가 순간적으로 예수님을 부인한 것은 편안한 불 피운 뜰의 자리에 앉았기 때문이다. 이 자리는 불신앙의 자리요, 자기 욕망의 자리였다. 베드로는 이후 예수님을 위해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죽기까지 주님을 사랑했다. 그의 죽음은 실패가 아니라 영원한 승리였다.

우리는 지금 어느 자리에 있는가. 불신앙의 자리인가. 믿음의 공동체의 자리인가. 아름다운 덕성을 가지고 패자가 아닌 승자의 자리에 머물러 있기를 바란다.

/장학일 목사 (예수마을교회) <국민일보/겨자씨>

 

 

 
 
 

 

 

▣ 영원한 영광

 

마음이 신실한 어떤 노인이 임종하게 되었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가족들은 집안에 있는 모든 불을 다 켰다. 마침내 밤이 깊어 창밖이 칠흑처럼 어두워졌을 때 노인은 주위를 둘러보면서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불을 끄시오. 해가 떴습니다" 그리고 그는 평화로운 모습으로 숨을 거두었다. 이 밤에 해가 떴다니 가족들은 얼른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알았다.

영원히 지지 않는 찬란한 천국의 영광을 보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다는 사실을.

 

 

 
 
 

 

 

▣ 나는 영원히 살테야

 

월남 이상재 선생은 YMCA운동의 선구자였습니다. 하루는 어떤 청년이 그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선생님! 신문에 보니까 영국 수상 처칠은 100세를 누릴 수 있다고 장담하고, 또 어떤 사람은 자기가 120세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선생님도 건강하시니까 오래 사실 것 같은데, 얼마나 사실 것 같으십니까?" 그러자 그는 껄껄 웃으면서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사는 법을 몰라. 나는 영원히 살테야!"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사는 법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이시기에 예수를 믿고 예수 안에 거하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사람을 만날 때마다 살려주셨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려주셨습니다. 나인성 과부의 죽은 아들도 살려주셨습니다. 죽은지 나흘이나 되는 나사로도 살려주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 자신이 삼일만에 사망의 권세를 깨치시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의 심령은 살아납니다. 생명을 얻은 우리의 심령은 육신이 무너진다 해서 죽는 것이 아닙니다. 더 나은 세계로 옮겨가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습니다. 죽어 가는 것이지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만 생명이 있음을 명심합시다!

 

 

 
 
 

 

 

▣ 영원한 속죄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

당신은 사람 앞에서는 조금 선하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하나님의 율법과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죄사함을 받지 못하면 거룩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하여 죄사함을 받을 수 있을까요? 선행이나 기도나 교회봉사나 율법을 지킴으로 죄사함을 받을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브리서 9:22)

당신은 선한 행위로, 기도로, 교회봉사로, 율법을 지킴으로 죄사함을 받지 못합니다.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죄 때문에 수많은 양들이 피를 흘리고 죽었듯이 당신의 죄를 속하기 위해 피가 뿌려져야 합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한복음 1:29)

구약의 양 대신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죄를 대신한 속죄의 양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의 피가 당신의 죄를 사하여 주신 것입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브리서 9:12)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흘리신 피는 당신의 과거 죄만 용서하였습니까? 현재와 미래의 죄는 일일이 기도해야 하고 죄를 범하지 않아야 죄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영원한 속죄, 영원한 속죄입니다. 당신의 과거, 현재, 미래의 죄까지 다 용서되었습니다.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히브리서 10:18)

당신의 죄를 사하기 위하여 또 다른 무엇이 필요하지 않도록 영원한 속죄를 이루어 주셨습니다. 이제 당신이 죄 용서함을 받기 위해 해야할 일이 선행입니까? 율법을 지키는 일입니까? 확실히 아닙니다.

"너희가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2:8,9)

당신이 죄사함 받기 위해 해야할 일은 십자가의 은혜를 마음으로 믿는 것뿐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으니"(에베소서 1:7)

* 당신은 천국에 들어갈 확신이 있습니까?

* 당신은 분명히 거듭났습니까?

* 당신의 죄는 눈처럼 희어졌습니까?

 

 

 
 
 

 

 

▣ 영원한 투자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잠11:30)

우리는 영원하지 못한 시한부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사형수들입니다. 우리의 집행시기를 모르고 살아갈 뿐입니다. 진지한 사형수들의 고뇌는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이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뜻있는 이들은 영원한 가치를 탐색합니다. 시간속에 남길 영원한 흔적을 찾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영원한 것을 찾다가 세 가지를 찾아냈다고 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분만이 영원히 존재하시는 영원 자이심을 알게 된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이었다고 합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하나님의 말씀은 세세토록 영원하다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셋째가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사람의 육체는 잠간입니다. 사람이 구하는 돈도 명예도 권력도 잠간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영혼은 영원합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이 세상도 정욕도 지나가되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람을 섬기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잠언기자는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을 얻는 것은 사람의 영원한 생명을 구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적 의인은 이런 영원한 사람을 얻는 일을 인생의 가장 소중한 열매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웃을 사랑하고 전도하는 일이야 말로 인생의 영원한 투자입니다.

* 기도: 영원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영원한 투자를 게을리 않는 인생을 살게 하소서. 아-멘

/이동원 목사

 

 

 
 
 

 

 

▣ 불변하는 영원한 사랑

 

아주 오래된 1941년의 이야기이다. 그해 8월 길거리에서 우연히 두 사람의 남녀가 만나게 된다. 남자는 이탈리아의 장교였던 루이지였고, 여자는 그리스의 처녀인 안겔리키였다. 길을 묻는 적군 장교에게 그 처녀는 친절하게 그 길을 가리켜 주었다. 그 일을 계기로 해서 두 사람은 마음을 나눌 만큼 가까워졌다. 장교였던 루이지는 그녀가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는 것을 알고는 전투식량과 음식물들을 그녀에게 수시로 주었다. 그렇게 두 사람의 만남 속에서 비밀스러운 사랑은 깊어만 갔다. 비록 적군의 장교였지만 루이지는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청혼을 했다. 그녀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의 청혼을 받아들였다. 이탈리아로 돌아간 루이지는 1,000일 동안 그녀에게 매일 편지를 썼으나 아무런 답장을 받지 못했다. 그 이유는 그녀의 고모가 결혼을 막기 위하여 그 편지들을 전부 소각해버렸기 때문이었다. 실망한 루이지는 할 수 없이 다른 여자와 결혼을 했다. 긴 세월이 흘러 그의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되자,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56년이나 지났지만 첫사랑이었던 안겔리키를 찾으려고 노력을 했다. 스카이 방송사에서 일하는 기자들의 도움을 받아 그는 그녀를 만날 수 있는 기적을 경험하게 되었다. 반세기를 지난 다음에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게 된 그들은 너무도 감격해서 그 자리에서 결혼을 약속했다. 그 당시 그들의 나이는 77세와 79세였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다음해 1월에 결혼식을 2주 남겨놓고 그 할머니는 그가 보낸 사랑의 편지들을 가슴에 안고 숨을 거두고 말았다. 주변 사람들은 루이지 할아버지의 건강을 염려해서 그 할머니의 죽음을 비밀로 하고, 결혼식이 연기되었다고만 알려주었다. 그 루이지 할아버지는 그날부터 계속해서 첫사랑이었던 안겔리키에게 사랑의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편지는 결국 그 안겔리키 할머니의 무덤 위에 수북이 쌓이게 되었다. 그 편지의 끝에는 아모레 셈프레(영원한 사랑)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다고 한다. 가슴 찡한 한편의 영화와 같은 스토리가 아닐 수 없다. 그 노인들의 사랑이야기가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유럽의 젊은이들이 큰 감동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애절한 사랑의 이야기라고 해도, 그것이 영원할 수는 없다. 불변하는 영원한 사랑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고난의 십자가에서 드러난 그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리스도인들은 구원을 받고, 독수리 날개의 새 힘을 얻으며 영생을 꿈꿀 수 있는 것이다.

 

 

 
 
 

 

 

▣ 영원히 갈하지 않는 생수

 

자신만이 세상의 중심인 듯 철부지처럼 행동하면서 10대를 보내고, 백마 탄 왕자님 기다리며 꿈에 젖어 20대를 보내고, 결혼 후에는 내 집 마련에 심혈을 기울입니다. 명성과 부를 쫓아 인생의 후반부는 달음질칩니다. 오늘도 변함없이 해결되지 않는 갈증으로 우물물을 길으러 나왔던 수가성 여인에게 예수님은 다가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지금 삶을 돌아봅니다. 현대판 수가성 여인의 모습은 아닌지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는 오직 그분께로부터 얻게 됩니다. 다시 말씀과 기도로 그분 앞에 나아가십시오.

* 기도: 주님! 갈증을 해결해줄 수 없는 세상 우물에 연연치 않게 하소서.

* 묵상: 내가 의지하고 있는 세상의 우물은 무엇인가 생각해봅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 영원한 샘물

 

영국의 유명한 학자이며 군인이자 저술가인 토마스 에드워드 로렌스(Thomas Edward Lawrence)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입니다. 그는 1919년 파리에서 개최된 평화 회담 때에 아랍 대표들과의 중재역할을 맡는 특별한 임무를 맡았습니다. 그는 아랍 대표들을 위해서 프랑스의 최고급 호텔에 방을 예약해 놓고 그들에게 프랑스의 유명한 명소를 관광시켜 주었습니다. 그들은 관광했던 에펠탑과 루브르 박물관 등의 유명한 명소보다도 호텔의 목욕탕을 훨씬 더 인상적으로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물이 아주 귀한 사막지역에서 온 아랍 대표들에게는 조그만 꼭지만 틀면 물이 펑펑 나오는 호텔의 목욕탕이 너무도 신기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목욕탕을 볼 때마다 “야, 여기 이런 신기한 것이 있었구나!”하며 환호성을 지르며 감탄했습니다. 그런데 그 회담이 끝날 무렵 로렌스에게 그들이 묵고 있던 호텔의 직원이 황급히 찾아왔습니다. “정말 큰일났습니다. 로렌스 경, 지금 아랍 대표들이 호텔의 목욕탕을 다 뜯고 있습니다. 빨리 와 보십시오.” 그래서 달려가 보니 그들이 정말로 정신없이 목욕탕을 뜯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황급히 그들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 “아니 왜 목욕탕은 모두 뜯고 있습니까?”

그러자 아랍 대표들은 “이것을 다 뜯어서 아라비아로 가져가려고 합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들의 대답에 당황한 로렌스는 자세한 내용을 차근차근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의 대답은 정말 황당했습니다. “물이 없는 사막에서 이 목욕탕은 정말 인기가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정말 놀랄 겁니다. 사막 한가운데에 이 목욕탕을 놓고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펑펑 쏟아질 테니까요.” 속사정을 들은 로렌스가 아랍 대표들에게 목욕탕에 물을 공급해 주는 수도관이 따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땀을 뻘뻘 흘리면서 겨우 설명했답니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한복음 4:14)

 

 

 
 
 

 

 

▣ 영원한 상급

 

이슬람 지역의 유명한 선교사인 사무엘 즈웨머(Samuel Zwemer)는 8일 사이에 네 살과 일곱 살 된 두 딸을 잃었다. 베란다의 가장 시원한 곳에서도 기온이 평균 41도까지 오르고, 사역에는 열매가 거의 없으며, 그와 아내를 좌절시키는 일들만 일어났다. 그러나 50년 후 그는 옛날을 돌아보며 “그때의 순전했던 기쁨을 기억한다. 나는 그 모든 일을 기꺼이 다시 하겠다”라고 고백했다.

집과 전토와 가족을 떠났던 선교사들은 그리스도를 섬기는 기쁨이 모든 희생을 보상해 준다는 것을 증명한다. 존 파이퍼(John Piper)는 “당신이 가까이 있는 어머니의 사랑과 관심을 포기한다면, 항상 함께하시는 그리스도께 100배나 되는 사랑과 관심을 받게 된다. … 당신이 집에서 느낄 수 있는 아늑함을 포기한다면 어느 집에서나 시냇가에서나 숲에서도 주님께 속한 위로와 안전을 100배나 돌려받는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더 좋은 것을 위해 그보다 덜 좋은 것을 포기하라고 요구받는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아는 것과 비교할 때 모든 것이 배설물과 같다고 선뜻 말했다. 그와 같은 헌신에 주시는 영원한 상급이 있다. 그 상급은 당신이 포기한 것보다 훨씬 크다.

「영원한 상급」/ 어윈 W. 루처 생명의 삶

 

 

 
 
 

 

 

▣ 영원한 집으로

 

우리는 요세미티 국립공원으로 출발했다. 따뜻하고 화창한 아침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저 멀리 산에 눈보라가 몰아치는 것이 보였다. 저녁 무렵 공원 입구에 이르렀을 때 이미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고, 산림 경비원은 우리에게 눈보라가 심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돌아가는 편이 낫겠다고 말하면서도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를 주었다. 나는 “계속 가겠소!”라고 말하고 산길로 들어섰다. 핸들을 꽉 쥔 탓에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끝까지 갈 수 있을까?’ 내가 거의 희망을 버리려 했을 때, 나무들 틈새로 불빛이 보였다. 굽은 길을 돌자, 발코니에는 꽃으로 장식돼 있고 창에는 큰 트리가 세워진 빅토리아 풍의 하얀 건물이 보였다. 차를 주차하자, 사슴 한 마리가 숲에서 나와 하얀 눈밭을 가로질러 지나갔다. 안전한 곳에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기어코 해냈다!

어느 날 우리는 굽은 길을 돌게 된다. 오랜 방랑의 설움은 고향에 도착했다는 기쁨의 눈물로 잊혀질 것이다. 이제부터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이렇게 다짐하자. “오늘도 고향을 향해 한 걸음 더 나가는 거야. 오늘이 그 굽은 길을 도는 날일지도 몰라.” 그날에 우리를 괴롭혀 온 것들, 용과 벌레, 화살과 거짓 연인들 그리고 사탄마저도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그때에 진정한 삶이 시작되리라!

「예기치 못한 사랑」/ 존 엘드리지 & 브렌트 커티

 

 

 
 
 

 

 

▣ 영원한 진리

 

주후 177년 8월1일, 로마의 리옹 원형 경기장에서는 그물에 묶인 100여명이 성난 황소에게 던져졌다. 이들은 "예수님만이 부활과 구원의 하나님이다"고 믿는 교인들이었다.

이들 중에는 90세의 주교 포티누수부터 여자 노예 블란디나까지 있었다. 그들은 당당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당시 권력은 로마 황제가 신이며 구주라고 강요했지만, 이들은 "하나님의 영광, 그것은 살아 있는 인간 존재"라고 찬양하며 교회를 지켰다. 죽음조차 하나님의 진리를 막을 수 없었다. 지난 2000년 동안 이 세상은 온갖 고문과 조롱, 변증 요구와 이단을 이용해 기독교 진리를 집요하게 공격해왔다. 교법사였던 가말리엘이 했던 말처럼 이 진리가 사람으로부터 난 것이면 스스로 무너졌을 것이다(행 5:38). 그러나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진리는 모함과 거짓 속에서 오히려 더 왕성하게 살아 숨쉬고 있다. 지금 이 순간도 마찬가지다.

/권오성 목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 영원한 희망

 

자살이 연소화하고 있다. 여고생의 성적비관 자살에서 최근 중학생들의 자살로 이어지더니 이제는 초등학생들까지 자꾸 자살한다. 며칠 전 청각장애를 앓던 초등학생의 자살사건이 발생, 모두를 안타깝게 했다.

현재 미국 청소년 의 경우 78초마다 한 명씩 자살을 시도하고 90분에 한 명씩 자살하며 고의 적인 사고까지 합쳐 1년에 2만 명이 자살한다는 보고가 나왔다. 자살의 구조적인 원인과 개인적인 원인이 있겠지만 「희망결핍」이 「근본원인」일 것이다. 영원한 희망은 그리스도에게 있다.

 

▣ 영원한 친구

 

왕이 어떤 사나이에게 사람을 보내 즉시 자기에게 오라고 명령했다. 그 사나이에게는 세 친구가 있었는데, 그중 첫 번째 친구를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있었다. 두 번째 친구 역시 사랑하고 있었지만 첫 번째 친구처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다. 세 번째 친구는 친구라고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별로 관심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왕의 명령을 받자 그는 자기가 어떤 악한 짓을 하여 벌을 받는 것이 아닌가 두려웠기 때문에 혼자서 갈 용기가 나지 않아 세 친구들에게 함께 가자고 부탁했다. 그는 먼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친구에게 함께 가자고 부탁했으나 그 친구는 이유도 말하지 않고서 싫다고 거절했다. 두 번째 친구에게 부탁하자 “궁궐 문까지는 함께 가지만 그 이상은 갈 수 없네”라고 했다. 그러나 세 번째 친구는 “암, 함께 가 주지. 조금도 두려워할 것 없네. 내가 함께 가서 임금님께 자네는 아무 나쁜 짓을 하지 않았다고 말씀 드려 주지” 하고 말했다.

여기서 첫 번째 친구란 재산이다. 사람이 아무리 돈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할지라도 죽을 때에는 고스란히 남겨 두고 가야 한다. 두 번째 친구란 친척이다. 무덤까지는 따라가 주지만 그를 거기에 남겨 두고 돌아가 버린다. 세 번째 친구는 선행이다. 착한 행실은 평소에 별로 눈을 끌지 못하지만, 그 사람이 죽은 뒤에 그와 함께 영원히 기억되기 때문이다.

- 「달콤한 소금」/ 김기연

 

 

 
 
 

 

 

▣ 영원을 준비하라

이동원 목사님의 「내 영혼의 네비게이션」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케네디 대통령은 세상을 떠나기 몇 달 전,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해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이 전하는 '영원을 준비하라'라는 설교를 듣습니다. 기도회 후 그는 빌리 목사님에게 잠시 백악관으로 가서 설교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할 수 있겠느냐고 청합니다. 하지만 감기에 걸린 빌리 목사님은 대통령에게 병원균을 옮기고 싶지 않다며 다음에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고 사양했습니다. 케네디가 쓰러진 11월 23일, 뉴스를 접한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은 순간적으로 몇 달 전 워싱턴에서 자기에게 백악관으로 가서 좀 더 이야기할 수 없겠느냐고 간청하던 대통령의 애절한 얼굴이 떠올랐다고 합니다. 그는 그날 감기를 구실로 케네디와 더불어 영원에 대한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복음을 충분히 전하지 못한 것이 일생 최대의 후회라고 그의 전기에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지 모릅니다. 성경은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브리서9:27)라고 말합니다. 죽음 이후의 영원을 준비하십시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지나간 기회를 돌아보며 흐느껴 우는지 모릅니다. 지금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영원한 나라로 초대해야 할 때입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할 때입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4:2)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이루는 일에 하루하루를 바쳐 순종하십시오.

 

 

 
 
 

 

 

▣ 죽음, 그리고 영원한 생명

미국에 있는 한 성도님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아들이 어릴 때는 교회에 다녔지만 장성하면서 발길을 끊었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신앙 생활을 다시 시작할 것을 권하지만, 그때마다 아들의 논리에 자신이 압도당하고 만다는 것이다. “진정 하나님이 사랑의 신이라면 왜 태어날 때부터 불구자가 있게 하는가?”, “정말 하나님이 정의의 신이라면 어떻게 이 땅에 불의가 기승을 부릴 수 있는가”, “정녕 하나님이 전능의 신이라면 어찌 이 땅에 그토록 숱한 재난이 있을 수 있는가?” 이와 같은 아들의 반론에 아무 대답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그분께 다음과 같은 요지의 답장을 드렸다. “만약 이 세상의 삶으로 모든 것이 다 끝나 버린다면 아드님의 주장이 백 번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코 끝에서 호흡이 멈추는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면, 그 이후에 다른 삶이 있다면 아드님의 주장은 완전히 틀렸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불구의 몸으로 태어났기에 한평생 영원을 바라보고 살아간다면, 불의한 자로 인해 고통받기에 영원을 사모할 수밖에 없다면, 재난을 당했기에 비로소 영원에 대해 눈뜨는 자가 되었다면, 그보다 더 복된 사람은 없습니다. 오히려 세상에서 모든 것이 자신의 뜻대로 이루어져서 영원을 생각할 필요도 없이 살아가는 자가 있다면, 그야말로 불행한 사람입니다. 앞으로 아드님에게 신앙을 권유하려 하시지 말고 머지않아 반드시 관 속에 시체로 드러누울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일깨워 주십시오. 언젠가 아드님이 죽음이란 남의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것임을 인식하게 될 때, 그는 영원한 생명의 하나님을 향하여 돌아서게 될 것입니다.”

-참으로 신실하게 / 이재철

 

 

 
 
 

 

 

▣ 시간과 영원

세계적인 시사 주간잡지 'Time'을 모르는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Time' 이란 말은 물론 시간이란 뜻이다. 'Time' 지는 매주 미국을 비롯하여 세계에서 일어나는 소식을 전하여 줌은 물론 때로는 현실 문제 해결에 대한 지혜도 제공한다. 그런데 기독교계에 '이터니티'(Eternity - 영원)라는 잡지가 있다. 이 주간지는 주로 미국과 세계 기독교의 소식을 전하여 줄 뿐 아니라 인간 생활면에 있어서 신령한 차원 곧 영적 문제에 대하여 밝은 빛을 전하여 준다. 시간은 인간의 매일 매일의 삶을 의미한다. 시간은 귀하다. 시간은 곧 생명이다.

한 시간을 낭비하면 우리의 삶은 그만큼 단축된다. 영어에 시간을 허비하는 것을 'Killing' 곧 죽인다는 말로도 표현하는데 시간을 죽이는 것은 살인은 아니지만 사실은 자살을 의미한다. 인간의 삶의 시간은 꼭 제한이 있다. 이 엄연한 사실을 기억하고 살아야 삶을 허비하지 아니한다. 우리가 꼭 기억해야할 것은 인간의 삶은 시간에서 영원에 미친다는 사실이다. 시간에 심는 것을 영원한 세계에서 거둔다. 시간은 영원한 삶의 준비다. 그러므로 이 깊은 진리 아래에서 우리는 매일의 시간의 삶을 조절해야 한다. 성경은 경고한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4:14)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2:15.17)

우리는 오늘 이 시간의 삶에서 영원한 삶을 준비해야 한다.

/한경직 목사

 

 

 
 
 

 

 

▣ 영원, 영생에 관한 성경 말씀

 

0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삼하7:16)

0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할지로다 아멘 아멘(시41:13)

0 그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함이여 의인은 영원히 기억되리로다(시112:6)

0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시121:8)

0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136:26)

0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신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사26:4)

0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마25:46)

0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눅1:33)

0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신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요3:14)

0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5:24)

0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요6:54)

0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요6:68)

0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요8:35)

0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10:28)

0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17:3)

0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롬2:7)

0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롬5:21)

0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6:8)

0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딤전6:12)

0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13:8)

0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요일2:25)

0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요일5:11)

0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오 영생이니라(요일5:20)

 

 

 
 
 

 

 

▣ 영원, 영생에 관한 금언

 

0 지존 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는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사57:15)

0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마25:46)

0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신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요3:14)

0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5:24)

0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요6:54)

0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요6:68)

0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10:28)

0 영생은 곧 유일한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17:3)

0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로2:7)

0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롬5:21)

0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6:8)

0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딤전6:12)

0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요일2:25)

0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요일5:11)

0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오 영생이니라(요일5:20)

0 농아 학생에게 영생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것은 전능자의 일생이다라는 아름답고 명쾌한 답변을 하는 것이었다. 영생은 절대적인 이름으로 옷 입혀진 소극적인 관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적용시킨 것에 대한 현재의 존재요, 시작의 부정이거나 그 존재의 끝에 대한 부정이라고 할 수 있다.(윌리엄 펠리)

0 나는 사랑하는 자는 나와 함께 미지의 바닷가로 가는 것은 꿈꾸게 하라.(펠리시아 히맨스)

0 소원은 자주 무너지고 내 심장은 뜨거운데 이 세상에서 배울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구나. 그 일이 저 세상에까지 계속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할 일이란 천국에서 열매 맺을 일을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겠구나.(wid 파울 리히터)

0 영원한 세계는 참으로 광대하구나! 그것은 태고부터 모든 인류를 삼키고 지금도 삼키고 있으며 앞으로도 끝없이 많은 인류를 삼킬 뿐만 아니라 신비로 가득찬 우주를 모아들일 것이며, 장면과 전망이 넓게 펼쳐져 많은 관심을 충족시키기에 족하고 다양하며 한없이 많은 지성적인 존재들의 마음을 끊임없이 흡수할 것이다.(나다니엘 에몬스)

0 모든 자연은 그의 자연적 만족을 갈망한다. 우리가 목말라할 것에 대비하시어 하나님은 갈증을 해결해 주실 물을 창조하셨고, 우리가 애정을 갈망할 것에 대비하시어 그 애정을 만족시켜 주실 사랑이 있게 하셨다. 우리가 영원한 생명과 사랑을 갈망할 것에 대비하셔서 그 갈증을 해소시킬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사랑을 갈망할 것에 대비하셔서 그 갈증을 해소시킬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사랑을 예비하신 것이다.(프래드릭 윌리엄 로버트슨)

0 영생은 축복으로든 고통으로든 그 자체가 완전히 신비롭고, 경의로운 모든 상태로 나타난다. 한 시대의 흥미가 무의미하게 사라져버리는 데 비해 영생을 계속적으로 모든 인간에게 중압감과 그 중요성을 부여한다.(로버트 홀)

0 어떻게 아는지는 모르나 인간의 마음속에는 대게 미래의 실재성에 관한 확실한 육감 같은 것이 있다. 그러한 육감이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이들은 대개 위대한 천재들이나 가장 뛰어난 사람들이다.(마르크스 툴리우스 키케로)

0 절망한 자는 자신의 소망을 확실한 신앙에 둘 수 있지 않을까 하여 그 방향으로 돌리고, 성공한 자는 그가 열렬히 추구한 목적이 불멸의 영에 대한 갈망을 만족시켜 주지 못함을 느끼며, 악인은 행여 그의 영혼을 구원하여 살수 있지 않을 까 하여 그의 행악에서 돌이킨다.(로버트 사우티)

0 영원한 세계는 언제나 엄하고 거대한 형상이신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곳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눈을 감은 채 엄숙하고 희미한 목소리로 언제나 “하나님, 하나님, 하나님”을 되뇌일 것이다.(로버트 브리우닝)

0 이 세상은 영원한 세상의 현관이다. 영원한 세상에 들어가는 자는 그 현관에서 입장권을 받아야 한다. 그 입장권은 그리스도의 보혈이요, 그 문을 통과할 때 사용되는 암호는 “예수”이다.(김경선)

0 우리의 삶의 목표는 영생에 관한 방대한 문제의 해답을 얻는 것이다. 그것에 대해 현자나 천재, 그리고 철학자에게, 때로는 목사에게 질문해 보지만 속시원한 답변을 얻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문제를 응답해 줄 하나님께 마음 문을 열어 놓고 물어야 할 것이다.(죤 포스터)

0 우리는 영생을 약속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죽음에 직면하고 있다. 우리는 부활을 보장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썩을 몸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의롭다하심을 받았다. 그러나 우리의 속에는 아직도 죄가 꿈틀거리고 있다.(죤 칼빈)

0 우리가 영생이라고 부르는 것은 좀더 아름답고 고상한 곳에 가기위해 가정을 떠나 죽음이라 부르는 일련의 끝없는 변천 과정을 거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영광스러운 영혼은 자신이 머물 곳을 찾아 환경과 행동 무대, 소망을 옮겨 놓게 된다.(에드워드 죠지 벌위 리튼)

0 어느 누구도 영생으로 바뀔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영생 안에 있기 때문이다.(프래드릭 윌리엄 파라)

0 이 세상은 원인과 경향의 씨앗이나, 저 세상은 수확과 결과, 완벽하고 영원한 결과의 세상이다.

0 영생! 당신은 어마어마한 생각에 만족하고 있는가! 우리들이 어떤 새로운 장면과 변화, 그리고 경험해보지 못한 다양한 일들을 통과해야만 하는가! 우리 앞에는 끝없이 넓고 아름다운 전망이 펼쳐지겠구나! 그러나 아직은 그 앞에 그림자와 구름, 어두움이 가려있네.(죠셉 애디슨)

0 인간의 최대 관심사는 짧고 일시적인 인생을 마친 후 자신이 들어가게 될 나라이다. 영원한 나라에 대한 인간의 기대가 어떤 근거에 두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확신 위에서 희망이나 두려움을 갖고 있는 지 살펴 보아야 할 것이다.(제임스 클라크)

0 다가올 영생에 대한 총체적이고 본질적인 준비는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한 것을 믿고, 성경이 우리에게 명령한 것을 행하는 것이다.(토마스 챨머스)

0 만약 시간이 좀더 비열하고 적대적으로 흐른다면 영원한 세계는 좀더 당당하고 친절하게 보일 것이다.(토마스 칼라일)

0 모든 위대한 자연들은 안정을 기뻐하고, 모든 위대한 사람은 자신의 기능의 약속으로 확인된 영생을 발견한다.(랄프 왈도 애머슨)

0 두 세상의 실재를 느끼는 것은 매우 어렵고, 인간의 생각과 감정에 적합한 것들을 정당하고도 생각하는 것 역시 매우 어렵다. 우리가 영원한 세계를 향해 가는 길에서 한눈 팔지 않고, 우리 마음의 눈과 영혼의 눈을 언제나 약속의 땅에 고정시킨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어거스트 헤아)

0 영원한 세계가 단순히 시간과 죽음을 초월한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시간을 초월하여 이 세상에서의 모든 것들의 형태대로 그 자체를 구현할 수 있다. 영원한 세계의 빛과 힘은 어느 곳에나 잠재해 있으며, 지상의 모든 것들을 덮은 베일을 명료하게 벗기려고 하였다. 또 형용할 수 없는 광채로 인간의 평범한 삶을 온통 덮고 있다.(죤 캐어드)

0 영생에 대한 생각은 짧은 인생에 위안을 준다(샤레시앙 길라원 마레쉬에르브)

/한태완 목사 360 주제별 예화모음(메일: jesuskore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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