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표 목사
사람은 누구나 다 찌르는 가시가 있습니다. 가시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나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 가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다 행복하게 보일 수 있으나 보이지 않는 어떤 가시가 우리를 찌르고 있는 것을 스스로 고백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일생동안 몸에서 떠나지 않는 육체의 가시가 있습니다. 간질이라든지 안질 또는 두통, 관절병 등 평생 괴롭히는 질병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가정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남편이 가시가 되고 또 아내가 가시 노릇을 하면서 일생동안 괴로움을 당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자녀들이 가시가 되어서 일생동안 괴로움을 당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친구가 가시가 되어 자기를 찌르면서 고통을 주기도 합니다. 훌륭한 목사님 가운데도 가시와 같은 교인들이 있어서 목사를 찌르는 교인들도 있습니다. 사람이 일평생 사는 동안 가시 없이 살 수 없습니다. 어떤 모양이라든지 우리 생을 찌르고 있는 가시를 우리는 볼 수가 있습니다.
위대한 사도인 바울에게도 남모르는 가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기 사도바울은 육체의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내게 주셨다고 했습니다. 이 사도바울을 찔렀던 가시는 뭘까? 칼빈은 영적인 유혹이나 의심, 가책, 갈등이라고 그는 해석을 했습니다. 루터는 바울이 받았던 모든 핍박, 환란을 육체의 가시라고 해석을 했습니다. 그러나 교부 터툴리안는 바울에게 있는 두통, 안질병은 평생 고생을 했던 병으로 해석을 했습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해석으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바울을 끈질기게 괴롭히던 육체적인 고질병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이 가시라고 하는 것은 육체의 가시, 사도바울을 찔렀던 가시, 이것은 작은 것처럼 보이나 평생 고통을 주는 그런 아픔이었습니다.
우리 가운데 가시로 고통을 당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외적으로 다 멀쩡하게 보일 수 있으나 남이 모르는 어떤 고통이, 육체를 찌르고 가정생활을 찌르고 마음을 괴롭히는 그런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가시는 개인뿐 아니라 민족적으로도 우리에게 가시가 있습니다. “너희가 만일 그 땅 거민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지 않으면, 너희가 남겨둔 자가 너희 눈에 가시와 너희 옆구리에 찌르는 것이 되어, 너희 고하는 땅에서 너희를 괴롭게 할 것이다. 평생에 너희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이 가나안 땅의 족속을 추방하지 아니하면, 그것들이 너희에게 눈의 가시와 옆구리를 찌르는 가시가 될 것이다." 개인이나 민족에게 가시는 다 괴로운 것입니다. 우리가 심리상, 고통도 견디기 어려운데 육체적 질고라고 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것입니다. 일생을 살아가면서 이 가시가 우리를 찌를때 신앙적인 자세가 있어야 됩니다. 그것은 먼저 가시는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고린도후서 12:7)
사탄의 사자라는 말은 마귀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사탄이 곧 뭐냐면, 나를 찌른다는 것입니다. 허락은 하나님이 하셨지만 직접 고통을 주고 있는 것은 사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의 사자노릇을 한다는 것입니다. 고통을 당하는 것이 하나님이 배후에서 허락을 한 것이지만 직접 사탄이 건들고 괴롭히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가시가 올때 원망하거나 불행으로 저주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받으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고통이 휘몰아칠 때, 저주나 불행으로 받지 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시련으로 받으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표현할 수 없는 육체의 고통이 가시로 찌를 때 하나님이 주신 사실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이 가시를 주었습니까? 사도바울은 이렇게 깨달았습니다. 7절에 자고하지 않게 했다는 말은 스스로 교만하지 않도록 겸손케 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가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것이 너무나 컸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것이 보통사람과 달랐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2절을 읽겠습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사 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고린도후서 12:2)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고린도후서 12:3)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고린도후서 12:4)
사도바울은 자기 몸이, 자기 영이 몸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황홀한 경지,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하늘로 올라가서 낙원에 갔습니다.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신비한 천국의 환상을 보았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경지의 세계를 들었습니다. 이런 은혜를 사도바울이 받았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는 2000년 교회사에서 예수님 이후에 처음 나오는 대 신학자입니다. 그는 유대인 중에서 특별히 율법에 있어서는 흠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참으로 사도바울은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말하면 족보가 대단했습니다.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율법으로는 흠이 없고,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한 자요, 바리세인 중에 바리세인이요, 그는 유대인 중에서 전통 유대인이었습니다. 학문으로 보면 최고의 경지였습니다. 신비의 체험으로 봐서는 아무도 일찍이 해볼 수 없는 천국에 직접 간 자요, 은혜가 충만한 자였습니다. 더군다나 그는 성격이 너무 강직해서 한번 비유가 틀어지면, 그는 상대하지 않을 정도로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마가요한이 저지른 한번의 실수를 용서하지 못해서, 그의 선배요, 또 그의 은혜였던 바나바와 결별할 정도로 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분명히 사도바울은 영적으로 교만할 조건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사도바울을 생각할때, 받은 은혜는 크고 이 사람에 대해서 일생동안 잘못 조절하면 하나님께 큰 누가 될 것을 아시고 손을 썼습니다. 바울이 받은 은혜가 크니, 내가 좀 겸손하게 만들기 위해서 가시를 너희에게 주겠다는 것입니다. 남의 병은 고치면서 자기 병은 고치지 못하고, 남에게는 능력을 행하면서 자기에게는 능력을 베풀수 없는 연약한 인간인 것을 알기 위해서, 그는 하늘 높이 올라가는 신비한 은혜를 받았지만, 너는 땅에 있는 사람이다라고 하는 자기자신에 대해서 겸손을 알게 한 것입니다. 가시를 주어서 조금 교만해 질려고 하면, 찔러 겸손하라고 경고했던 것입니다. 참으로 사도바울은 영적인 교만을 하나님이 꺾으셨습니다. 그의 가시로 꺾으셨던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기도하는 중에 이상한 환상만 보아도 무슨 신비한 천사가 된 것처럼 떠들어 대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꿈에 본것은 자기가 본 것입니다. 이것을 소용없는 소리입니다. 그것은 혼자 하는 사람이지, 남에게 무엇을 봤다는 것은 자랑할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성경을 읽으면 됩니다. 일반적으로 노력하지 않고 받았음에도 그 은혜를 감사하지 못하고 오히려 교만한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학교에서 교만한 사람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자기 머리가 좋아서 공부 잘하는 사람들은 아주 교만합니다. 여자들, 부모 덕택에 인물 반반하면 자기가 대단한 미인인척 깔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남편자랑, 자식자랑, 사위자랑, 조심해야 합니다. 남편도 잘 두었으면 한가지 칭찬할 지언정 앉으면 자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손쓸 징조입니다. 자식자랑도, 자식을 주신 하나님께 대하여 한번정도 칭찬할 지언정 계속 자랑하는 입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습니다. 다른사람 딸은 과년해서 결혼하지 못했는데 사위 자랑을 앉으면 하고 있는 입도 하나님께서 손을 써야 할 입입니다. 어디서 교만병 들어가지고 쓸데없이 앉아서 남의 허물이나 얘기하고 앉으면 자랑하고 있는 사람들, 하나님이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바울이 교만할 것을 아시고 이미 그에게 가시를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교만은 하나님을 망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파멸을 이르게 하는 것이 교만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교만해질까, 가시로 다스리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은 겸손해야 합니다. 저도 교만하다가 하나님께서 많이 손을 썼습니다. 교만해서 하나님이 손써서 꺼꾸려 틀어서 병원으로 청계산으로 수없이 연단을 시켰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별세의 은혜를 주셨는지 아십니까? 이것은 내가 착해서 주신 것이 아니라 못쓰게 생겨서 하나님이 손을 가장 많이 써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무슨 깡패라든지, 도덕질 했다든지, 간음해서가 아니라 착하게 살려고 하는 것이 자기 의에 빠져있기 때문에, 이것은 그리스도인에 가장 대적하는 것이 때문에, 죄를 지은 사람은 하나님이 축복하기 쉽고 은혜 주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처럼 율법으로 흠이 없는 자요, 바리세인중에 바리세인이요, 자기 우월감에 자기 어떤 의에 들어있을때 하나님은 이 사람을 손쓰는 것입니다. 혹시 우리는 예수를 오래 믿으면서 자기가 신앙연조로서 어떤 우월감에 있습니까? 이것은 하나님이 손 써야 할 징조입니다. 깨뜨리지 않고는 예수님이 결코 그를 통해서 영광을 받지 못합니다. 사도바울을 하나님께서 가시를 찔러서 겸손케 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입을 다물어야 합니다. 낮아져야 합니다. 혹시 목에 힘이 들어가 있습니까? 힘을 빼야 합니다. 자기 의에 취해 있습니까? 의를 빼야 예수의 의가 들어갑니다.
저는 지금도 우리 교인을 알고 있습니다. 사업이 날로 번창했습니다. 조금 교만해졌습니다. 목사님께서 말씀하셔도 안 듣습니다. 주일날도 빠지고 십일조도 안 바칩니다. 교도소에 들어갔습니다. 그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목사님, 제가 은혜를 많이 받고 있습니다. 전날에 교만하다가 하나님께서 손을 써서 제가 아주 겸손해 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잘 들어갔다. 들어가야지, 왜 그렇습니까? 겸손이 축복이라 그렇습니다. 오늘 사랑하는 성도들, 자기 자신이 자고해지지 않도록 노력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모두 다 겸손해야 합니다. 여기서 사도바울은 나에게 가시를 준 것은, 자고해 지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이 나를 쳤습니다. 두번째로 사도바울은 가시를 통해서 받은 은혜를 8절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고린도후서 12:8-9)
이 가시가 물러지기를 세번이나 간절히 기도했다. 세번이라고 하는 말은 세번이라는 말이 아니고 간절하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 잔을 내게서 옮겨 달라고 간절히 기도한 표현을 세번 했습니다. 사도바울이 얼마나 그 가시가 괴로운지 이 가시를 내게서 제해 달라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믿음 좋은 사도바울도 견딜 수 없습니다. 왜 고통에는 장사가 없습니다. 병이들면 약해집니다. 금식하고 철야 기도하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몇 일 전에도 한 자매가 제 기도원에 따라 왔습니다. 목에 조금 아픔이 왔습니다. 그것 때문에 통곡을 합니다. 목사님, 제가 전날에 너무 자만했습니다. 교만했습니다. 명문대학 나왔다고 자랑했습니다. 가문 좋다고 자랑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병들고 나니까 내가 이렇게 불쌍한 존재인지 알았습니다. 통곡을 합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통곡을 들었는지, 눈물을 보았는지 그 아픈것을 치료해 주어서 낮게 해주었습니다. 오늘 만났는데 얼굴이 조금 밝아 졌습니다. 목사님, 하나님이 자고하지 않도록 나를 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내게 크게 임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약할 때 은혜를 많이 봤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이러한 은혜를 가시를 통해서 내가 약해집니다. 가시에 찌르면 약해집니다. 병들면 약해집니다. 넘어지면 약해집니다. 사업이 부도나면 약해지고 가정이 어려우면 약해집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은혜를 주십니다. 내 은혜가 내게 족하다 하십니다. 중국에 유명한 목사님이요. 성자이신 또 순교자이신 월츠만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가 위대한 하나님이 종임에도 불구하고 몸에 병이 들어서 낮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금식하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시여, 이 병을 내게서 물러나게 해 주십시오. 그런데 물러나지 않습니다. 어느날 오랜 기도중에 꿈에 환상이 나타났습니다. 그가 중국에 양자강에 배를 타고 지나가는데 큰 바윗돌이 막고 있어서 하나님 앞에 무릎을 끓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시여, 이 바윗돌을 제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배가 지나가도록 해 주십시오. 그때 하나님께서 잠잠히 들려준 음성이 있었습니다. 월츠만리야! 이 바윗돌을 빼 주랴? 강물이 넘쳐서 지나가게 해주랴? 그는 오주여! 바윗돌을 빼는 것보다 강물이 넘쳐 지나가는 것이 더 편합니다. 강물이 넘치면서 잠이 깼습니다. 그는 하나님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렇다. 내 몸에 있는 가시를 빼는 것보다 하나님 은혜가 넘쳐서 지나가는 것이 복되도다." 고백을 했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말할 수 없는 인생의 가시가 올 때 가시를 다 제하고 살 수는 없습니다. 어떤때는 하나님이 그대로 두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때에 더 큰 은혜를 받으시기를 주의 은혜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생애에 어떤 환란이나 곤고나 적신이나 기근이나 어떤 시련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가 있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요한레슬레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는 훌륭한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어머니의 신앙이라는 것은 천하가 다 아는 것입니다. 훌륭한 어머니입니다. 그런데 그의 부인은 세상에 그런 괴팍한 여자는 없습니다. 아주 강팍한 여자입니다. 얼마나 강팍했는지 남편을 때립니다. 심지어 남편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방바닥을 헤맸습니다. 이런 정도의 부인이었습니다. 집에 들어가면 부인이 가시로 찌르니까 그는 두가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는 인간이 온유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또 하나는 그는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전도하기 위해서, 안방마님이 무서우니까 밖에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평생 4만 2천번 설교를 밖에서 했습니다. 매일 오륙십마일을 말을 타고 여행을 하면서 세번씩 설교를 했습니다. 요한레슬레는 안방에 찌르는 가시때문에 밖에 나가서는 장미꽃을 피웠습니다. 향기를 발했습니다. 결국 영국을 복음화하는 위대한 영적인 지도자가 되었고, 어쩌면 가시와 같은 아내 때문에 일생을 복음 전도에 바쳐서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혹시 여러분이 가정에 찌르는 가시가 있습니까? 교회로 달려와서 기도하십시오. 하늘로 승천할겁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찌르는 은혜 때문에 족한 은혜로 바꾸어 가져야 합니다. 가시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를 놀라운 기적으로 이끌어 갈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찌르는 가시가 있을 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풍성한 은혜를 주실 줄을 확신합니다. 여기 또 하나의 말씀이 있습니다.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러 하려함이라." (고린도후서 12:9)
여러분, 사도바울이 이제 그의 가시를 자랑하게 되었습니다. 이게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우리의 장점을 자랑합니다. 내 인물을 자랑하고 머리를 자랑하고 가문을 자랑하고 전부 나에게 있는 것을 자랑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자랑은 천만번을 해도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돈 자랑하다가 안될때 남들이 잘 망했다고 기뻐합니다. 인물 자랑하다가 병이 들면 꼴좋다고 비난합니다. 자식 자랑하다가 시험들면 잘됐다고 고소해합니다. 여러분, 세상적인것 아무것도 자랑하지 마십시오. 겸손하십시오. 가진 것 있으면 겸손해야 합니다. 우리가 가만히 보면, 사람들 자랑 가운데 최고의 자랑은 하나님 자랑인데, 어떻게 하나님을 자랑할 수 있습니까? 자기의 약한 것을 통해서만이 하나님이 자랑하게 됩니다. 내가 병들었을때 고쳐주신 하나님, 내가 가난할 때 축복하신 하나님, 내가 어리석을 때 지혜롭게 해주신 하나님, 내가 가시에 찔러 상처를 입었을때 낮게 하신 하나님, 이 놀라우신 하나님의 영광을 사도바울은 보았습니다.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고린도후서 11:30).
사도바울이 지금까지는 육체에 속한 자랑을 했습니다. 자기 인간적인 것을 자랑했습니다. 장점을 자랑했습니다. 남보다 뛰어난 것을 자랑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가시를 통해서 자기 약함을 알고 이제부터 자랑은 나의 약함을 통해서 하나님의 강하심이 나타나셨고, 나의 어리석음을 통해 하나님의 지혜로움이 나타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랑이 시작이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이러한 자랑으로 은혜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나의 죄인됨을 자랑할때 그리스도의 의로우심이 나타날 것이며, 나의 약함을 자랑할때 전능하신 능력이 나타날 것이며, 나의 부정한 것이 자랑될때 그리스도의 은혜가 증거될 줄로 믿습니다.
저는 최근에 깨달은 은혜가 있습니다. 제 속에 자존심이 있는 걸 알았습니다. 제가 어린시절에 사진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니까 아주 가난한 그 집에 사진 있는 것을 보니까 창피해서 내버렸습니다. 나중에 병원에 들어가서 초취한 몰골의 사진을 보면서 창피하다고 찢어 버렸습니다. 인물 좋고 조금 훤할때 찍은 사진은 보기는 좋은데, 눈이 들어가고 피골이 상접한 모습은 창피하다고 찢어 버렸습니다. 이제 그 사진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왜냐구요? 제 전기를 만들었으면서, 출판사에서 계속 당신의 어린시절의 가난한 사진을 달라는 것입니다. 이것만이 자랑이 된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당신이 병들고 죽게 된 모습의 사진이 있으면 달라는 것입니다. 인물 반반하고 옷잘 입고 건강한 모습은 우리에게는 별 의미가 없고, 그 모습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것이 자랑인데, 하나님의 은혜로 된 사실을 증거하기 위해서, 오늘 우리들은 곰곰히 생각하면 여러분들의 과거가 참으로 가난하고 가문적으로 비천했을때,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저 하늘나라 족보에, 하늘나라 가문에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한다면, 그것을 비교 시키기 위해서 그게 바로 자랑이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우리 약한것과 우리 연약한 것들이, 나의 부족한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자랑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저는 몇일전에 제 존경하는 목사님의 글을 읽으면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제가 한국 교회사에서 존경하는 목사님이 이상근 목사님이십니다. 이상근 목사님께서 얼마전에 소천하면서 그 아들이 연동교회 이성희 목사님이신데, 자기 아버지를 아들 셋 중에서 자기만이 목사가 되었는데, 특별히 자기가 어린시절부터 자기가 본 아버지라라는 글을 세세히 썼는데, 눈물겨운 감동이 되었습니다. 저는 몰랐던 사실인데, 그 목사님이 한국의 대 신학자요, 인격적으로 고매하신 분이시요, 그리고 대구 제일교회 훌륭한 목회자이십니다. 이상근 목사님이 16살때 발에 병이 들었습니다. 대구 달성공원 느티나무 아래서 40일동안 작정 기도했으나 병은 오히려 짙어갔습니다. 그래서 3년동안 발이 아파서 출입을 못했습니다. 그래서 방안에서 성경을 거의다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컴퓨터가 없는 그 시대에 성경을 거의 머리속에 입력을 시켰습니다. 그는 그의 어머니가 병을 낮게 하기 위해서 담방약을 붙였는데 독이 올라서 영 그 발은 평생을 낮지 못하는 발로 되었습니다. 학교 공부도 못하고 심지어 대학도 검정고시로 들어 갔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때 당시에 방안에서 발병으로 성경을 읽어서 머릿속에 입력시킨 것이 대 성경학자가 되게 한 것입니다. 60년동안 발로 고통을 얼마나 받았는지 발에서 진물이 나오니까 양말을 두겹으로 신었습니다. 그 부인은 늘 세탁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병균이 옮길까봐 가까이 하지도 못했습니다.
그 목사님은 평생동안 그 발병 때문에 어디 가지도 못하고 앉아서 연구하는데 시간을 많이 보냈고,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은퇴한 후에 의사님이 이제 목사님 발이나 수술하자고해서 수술 했습니다. 수술했는데 놀라운 것은 1,5㎝ 철사가 그 속에 들어 있었습니다. 어렸을때 맨발로 다니다가 발에 찔린 철사가 그 속에 들어가 60년동안 괴롭힌 것입니다. 이 목사님은 그 가시를 들고, “이 가시가 나를 오늘의 학자가 되게 했다. 자랑스럽도다." 이렇게 그가 공개를 했습니다. 60년을 고생했지만 60년동안 성경연구의 은혜를 주신 도구였다고 그는 하나님의 은혜가 족하다고 모든 사람에게 자랑을 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신비하고 오묘한 일이십니다. 여러분, 값비산 진주를 어떻게 구하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조개가 입을 벌리면 바다속의 있는 모래들이 조개 속으로 들어옵니다. 그러면 그 조개는 그 모래가 그 속에 들어옴으로 아프기 때문에, 계속 진물을 내서 물을 내서 그것을 덮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굳어지게 만듭니다. 1년, 2년, 3년 세월이 지나가면서 조개속의 진주가 되는 것입니다. 진주속에 있는 모래알의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서 싸고 싸고 또 싸서 만든 것이 진주가 된 것입니다. 우리의 생을 만들어 가면서 우리가 가시를 찌를때 그 가시는 나를 아프게 해서 주께로 가게 할 것입니다. 가시가 아프게 할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로 싸게 할 것이며, 그 가시는 내 면류관으로 바꾸질 것이며, 찬란한 그리스도의 자랑 거리가 되게 할 것입니다.
오늘 사도바울은 내 몸에 가시를 통해서 겸손해졌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족하게 받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자랑했습니다. 우리 사랑하는 성도들, 여러분의 생애에 어떤 가시가 찌르게 되었습니까? 낙심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서 기도해서 은혜를 받되, 겸손한 은혜를 받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주신 족한 은혜를 받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 자랑거리를 만들어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살아 계신다는 것을 보라고 할 수 있는 우리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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