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자료 18,185편 ◑/자료 16,731편

생명의 강이 흐르는곳

by 【고동엽】 2022. 10. 7.

겔47:1-12                                        

오늘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받은 은혜가 점점 식어지고 힘을 잃고 지치고 낙심한 가운데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 엄청난 축복의 약속을 환상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생명수 강’에 대한 것입니다.
요새 처럼 더운 날씨면 많은 사람들이 물을 찾아서 강으로 바다로 갑니다. 강으로 바다로 찾아가는 것은 시원함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물의 소중성은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물 없이는 아무것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물 없이는 어떤 생명체도 존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동물의 세계를 보면 수많은 짐승들이 물을 찾아서 이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물이 이렇게 모든 생명체에 없어서는 아니될 생명과 같은 것입니다.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인류의 역사도 강을 찾아 이룬 역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크고 번성한 도시를 볼 것 같으면 거의가 다 강을 끼고 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의 ‘생수’가 시작되는 근원을 보면 그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1절에 보면 “그가 나를 데리고 전 문에 이르시니 전의 전면이 동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서 동으로 흐르다가 전 우편 제단 남편으로 흘러내리더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전’이라고 하는 것은 성전을 말합니다. 그리고 제단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생명수 강으로써 ‘그리스도의 복음’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그 강이 성전 주변을 채울 뿐 아니라 사해에 이르기까지 모든 죽었던 곳이 다 소생하게 됩니다. 이 ‘생명의 강’은 바로 하나님의 사역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수’와 같습니다. 말씀이 임하는 곳에 어떤 역사가 일어나는가를 오늘 본문에서 잘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1. 그 생명의 강은 성전에서부터 흐릅니다.
  1절에 보면 “그가 나를 데리고 전 문에 이르시니 전의 전면이 동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서 동으로 흐르다가 전 우편 제단 남편으로 흘러내리더라”고 했습니다. 그 강줄기는 문지방 밑에서 흘러나왔다고 했는데, 그것은 바로 제단을 통해서 흘러내렸다는 것입니다.
성전 문지방에서부터 흘러나온 ‘샘물’이 제단을 통과해서 남쪽으로 흘러 나가는 것으로 말씀이 시작되었습니다. 여기에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요, 제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갈보리의 구속 사건에 대한 예언적 상징으로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강’은 십자가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십자가 때문에 생명의 길이 열리게 되었고, 십자가 때문에 은혜의 생수가 흐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 때문에 성령님이 우리에게 오실 수 있었고, 또 성령의 역사로 새로운 생명을 체험하는 그리스도인의 놀라운 삶을 이룰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성이라는 동네에 들어가셨습니다. 그 때에 한 여인이 물을 기르러 우물에 나왔다가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요청하면서 대화하는 가운데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4:10절에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물을 먹어도 먹어도 다시 목마르는 물입니다. 다시말하면 부귀영화 모든 권세와 쾌락을 다 누린다고 할지라도 바닷물을 마시는 것 처럼 갈한 목은 더 타들어올 것입니다. 만족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주시는 물은 마시는 자마다 영원히 목르지 아니할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생명수’ 되시는 주 안에서 시원함과 참된 만족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생명의 근원이 바로 하나님이신데, 그 ‘생명수’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 모두가 넘치도록 주시는 ‘은혜의 생수’입니다.
그러므로 성전에 나와 주님을 만나는 자마다 세상에서 갈한 심령들이 시원함을 얻게 될 것이며, 생명을 잃은 자들이 새 생명을 얻게됩니다. 그리고 얼마든지 주시는 생명수 강에서 참된 만족과 시원함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2. 그 물은 언제나 충만하게 넘칩니다.
   5절에 보면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창일하여 헤엄할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가믐의 고통이 얼마나 큰 가는 농부가 되어보지 않고는 모를 것입니다. 조금만 가믐이 와도 온 국민이 아우성입니다. 저수지에 물이 바닥이 나서 물고기들이 떼죽을 하고, 농부들은 타들어가는 논과 밭을 바라 보면서 가슴이 타는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소방 대원들은 시간제로 물을 공급하느라고 고생하며, 그리고 아낙네들은 물 한 방울이라도 더 받으려고 야단 법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수는 마르거나 떨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끊어지는 일이 없습니다. 원하는 심령마다 얼마든지 넘치도록 부어주십니다. ‘생수의 강’은 발목까지만 겨우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헤엄칠 정도로 창일하고 풍성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은 우리가 겨우 접촉만 할 정도, 맛만 볼 정도의 물이 아닙니다. 우리는 능히 잠기게 할만큼 넘치고도 넘치는 다함이 없는 물입니다.
요10:10절에 보면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님의 그 영원한 생명을 얻기만 하고 신앙의 전진이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신앙의 성장이 더이상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영생을 얻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이 풍성하고 깊은 은혜의 강에서 주님과 더불어 교제하도록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은혜의 강에서 어린아이와 같이 발목만 잠기는 얕은 곳에 머므르며 안주하고 맙니다.

성도의 신앙상태가 발목에 그쳐서는 않됩니다. 구원은 받았지만 충만한 자리에까지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은혜의 놀라운 체험과 감격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들의 신앙생활을 보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보다는 내 편한 대로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다시말하면 혈기도 전과 같습니다. 시기, 질투, 미움이 그대로 있습니다. 별로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얕은 수준에 머물러 있어서는 않될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와 은혜가 충만한 자리에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내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 살게됨을 체험하게 됩니다. 나는 죽고 주님이 살아 역사하시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이 생명의 강물에 온 몸을 잠그고, 헤엄치며, 하나남께서 주시는 ‘생명수’ 은혜의 깊이를 맛본다면 그 삶이 얼마나 놀랍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예비하신 풍성하고 더욱 깊은 삶이 예비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신앙의 정도가 겨우 발목만 적시는 자리에 머뭇거리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교회에 나와서 신앙고백하고, 찬송하고, 기도하고, 헌금하고, 말씀 듣는 것이 전부인 줄 아십니까? 예수를 믿어도 그저 그렇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들어갈 수 있는 더욱 깊은 삶, 더욱 풍성한 삶이 우리에게 예비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앙의 얕은 곳에 머물러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맑고 깨끗하고도 깊은 강에서 헤엄치는 그 즐거움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명을 걸고도 깊은데 들어가서 헤엄치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생명수 강에 깊이 들어가 헤엄치는 것은 절대로 위험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과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강수이기 때문에 그것에서 혜엄치는 자마다 그저 즐겁고 기쁘고 안전하기만 합니다. 그런데도 깊은데 들어가 보지 못하고 찰거리는 물가에서 논다면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이제 우리는 생명수 강, 은혜의 강, 풍성하고도 다함이 없는 강,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강, 그 깊은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자유스럽게 헤엄치며 그 즐거움과 희열 맛보며 신앙생활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이 준비하신 것은 언제나 풍성합니다. 언제나 복된 것입니다. 언제나 안전한 것입니다. 그것은 겨우 우리를 적시는 정도가 아닙니다.
이제 우리는 메마른 삶에서 벗어나서 얼마든지 헤엄칠 수 있는 물, 그 풍성함과 깊음 속에서 얼마든지 잠길 수 있는 무한한 ‘생명의 물’ 가운데 거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3. 그 강이 흐르는 곳에는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첫째는 번성하고 풍성한 복을 받게된다는 것입니다.
    7절에 보면 “내가 돌아간즉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더라”고 했습니다.
황폐한 사막에 강이 흐르고, 그 주변에 신선한 생명의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모습만 생해도 얼마나 흐뭇합니까? 그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변성하며, 모든 생물이 살게되는데 심히 많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성도가 풍성한 은혜 가운데 거하면 이러케 넘치는 복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치료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8절에는 “...이 흘러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소성함을 얻을지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9절에 보면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소성함을 얻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바다는 죽은 바다 ‘사해’를 말합니다. ‘생명의 물’이 흘러 내려가면 그 죽은 바다가 소성함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병들어 죽어가는 아들이 치료되어 다시 살게 된다면 그 기쁨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리고 죽었던 아들이 다시 살게 된다면 그 기쁨은 형용할 수 없을 만큼 클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 생명의 강수가 흘러들어가는 곳마다 병든자가 치료받고, 강건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죽은자가 다시살아나는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나 11절에 보면 진펄과 갯펄만은 소성치 못하고 그대로 죽은 땅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자들은 레17:5-6절 말씀과 같이 그 심령이 강팍하고 교만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그리고 히12:15절에 있는 말씀과 같이 이러한 자들은 물이 그 옆을 흐를지라도 회개하지 않으므로 은혜에 이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불행한 자들이 우리 가운데는 한 사람도 없기를 바랍니다.
본문에서 ‘소성치 못한다’는 말은 ‘치료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회개하는 심령만이 치료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세째는 번성하고 창대케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10절에 보면 “또 이 강가에 어부가 설 것이니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 그물 치는 곳이 될 것이라 그 고기가 각기 종류를 따라 큰 바다의 고기같이 심히 많으려니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기를 무어라고 하셨습니까?
창12:2절에 보면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창대하고 번성하는 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시들거나 약하여지거나 퇴보하는 것이 아니라 향상하고 발전하고 성장하며 번성하는 복입니다.
은혜의 생수 가운데서 번성하고 창대하는 복을 체험하고 누리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네번째는 열매를 맺게 됩니다.
   12절에 보면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실과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실과가 끊치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실과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로 말미암아 나옴이라 그 실과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고 했습니다.
생명의 역사, 치료의 역사, 변화의 역사를 통해서 좋을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시1:3절에 보면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열매는 심령의 건강하고 정상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열매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바로 될 때에 열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열매를 보아서 그 나무를 알수 있다고 했습니다. 열매는 축복의 상징입니다.
그러므로 열매 맺는 삶이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삶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치며 유익을 주는 복된 삶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 열매는 사시 사철 맺는 열매입니다.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뿌리를 은혜의 강수에 깊이 내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항상 풍성한 은혜 가운데 거하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성려의 아홉가지 열매 곧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복된 열매를 주렁주렁 맺기바랍니다.

이 생수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만이 홀로 내 목마름을 만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근원이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께로 나오기만 하면 그 풍성한 생명의 강물 속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그때는 우리도 에스겔서의 이상처럼 주께서 나를 위하여 예비하신 그 풍성한 은혜와 넘치는 사랑 가운데서 마음껏 헤엄칠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는 생명의 강수에 겨우 발목만 들여놓은 자들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심령 속에 생명의 강이 흘러 넘쳐 생명을 얻고, 치료받고, 창대하고 번성하며, 많은 축복의 열매를 맺게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자료 18,185편 ◑ > 자료 16,731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벽을 깨우리로다  (0) 2022.10.07
조용히 일하시는 주님  (0) 2022.10.07
하나님은 거룩하시니  (0) 2022.10.07
하나님은 영이시니  (0) 2022.10.07
선택하며 살아가는 인생  (0) 2022.10.07

댓글